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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씨의 말풍선
홍훈표 지음 / 미래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재미있고 예리한 풍자집 [동그라미 씨의 말풍선]
SNS에서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동그라미씨의 말풍선>이 책으로 나왔다.
SNS를 하지 않기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책의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현대인의 삶을,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풍자한 우화집이다.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가 들어 있기도 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이야기들도 가득하다.
미소를 지으며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 책을 읽는 내내 볼 수 있는 포즈가 아닐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오를 정도로…….
주인공은 동글동글한 동그라미 씨다. 친구로는 네모씨, 벽돌 씨가 있다.
평범한 동그라미씨의 생각이나 모습은 우리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시민의 생각과 모습 그대로다. 동그라미씨의 말에 늘 일격을 가하는 네모씨의 말은 핑계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답을 제시해주기에 매력적이다. 까칠하고 예리한 벽돌씨의 촌철살인은 다분히 계산적이긴 하지만 그대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더 공감이 간다.
-모든 사각형의 내각의 합은 360도.
-너는 짝퉁이구나!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공위에 사니까 약간씩 구부러져 있어. 그러다 보니 모서리들이 조금씩 벌어져서 내각들이 약간씩 더 커지는 거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 원리야.
-그럼 너는 짝퉁이 아니란 거야?
-너는 머릿속으로 정상이라는 걸 정해 놓고 거기에 안 맞는 사람들을 전부 다 비정상으로 몰아버리는구나. 하지만 생각해 봤니? 네가 찾는 '정상'이라는 건 사실 세상에 없다는 말이야. (본문에서)
동그라미씨의 원리원칙에 현실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는 네모씨의 열변이 거침없다. 짝퉁이 되기 싫어서 전개하는 논리가 수학적 정의보다 더 논리적이다. 산다는 게 그런 건가보다. 현실은 진리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지 않나.
세상에 평면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
어차피 지구도 평면이 아닌 둥근 타원형인걸......
-인간은 평생 뇌의 용량 중 불과 20% 정도 밖에 사용 안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본문에서)
정말 다행인 것, 맞다. 공감이다.
사회가 더 발전하기 보다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잔머리를 굴리는 우리의 모습에 우리조차 실망한 적은 없을까.
이기적인 내 욕심에 누군가 피해를 입었을 지도 모르는데.....
바보 같은 순수함이 그리워지는 대목이다.
이기적이고 까칠한 것보단 순수와 순진함을 사랑했던 유년의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 본다.
마음을 읽는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동그라미 씨가 혼자 중얼거렸다. 사랑에 빠져 마음이 마구 설레던 차, 그녀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참아, 그런 기계가 있어서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직면하게 되면 아마 그는 미쳐버릴 걸. (본문에서)
사랑에 빠진 때가 아니어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싶을 때가 있는데.....
독심술을 터득해서 상대의 진심을 알았다면 우리는 행복할까. 진심을 아는 순간 스트레스 받지 않을까.
사람이 왜 미니어처를 좋아하는지 알아? 세계를 자기 손 안에 두고 싶은데 그러질 못해서야. 그래서 로봇 장난감이며, 미니어처며, 세계지도 혹은 지구본 같은 것을 거실에 놔두고 싶어 하는 거라네. 화분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을 자기 소유로 두고 싶은 욕망이며, 동물을 키우는 것은 자연이 자기를 따르게 하려는 욕망이지.
......
영화를 사람들이 왜 보는지 알아? 관음증이야, 영어로는 피핑톰. 남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에 깊숙이 박힌 관음증을 해소시켜주는 게 바로 영화지. (본문에서)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동그라미씨, 계산적인 영리한 벽돌씨. 냉철하고 현실적인 네모씨의 이야기가 그대로 오늘의 이야기다. 웃다가 그 현실성에 공감하다가 씁쓸해지다가 예리한 지적에 박수를 치고 만다.
현실을 직시하고 꿈을 논하라는 충고, 땅을 딛고 사랑을 나누라는 조언에 공감이 가는 우화다.
저자의 말처럼 한없이 꼬이다 보면 언젠가 아름다운 매듭이 되겠지. 위로가 되는 말이다.
동글동글 동그라미씨가 지구 모양을 닮아서 가장 끌리는 캐릭터다.
어수룩한 동그라미씨를 만나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