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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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 다른 나 [계약자]

 

 

청소년문학을 많이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읽다가 보면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선자은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지만 글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같다.

 

 

 

<계약자>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의 그림이 섬뜩해서 찌는 듯 한 여름밤에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을의 초입에 읽기에는 더욱 서늘한 기운이 들어서 정말 으스스하다. 특히 첫 장면이 강렬하다.

 

소희와 알음이는 어릴 적부터 지내온 절친 이고 중 3인 지금도 같은 반이다. 소희에게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소원을 비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고 그 의식 이후로 알음의 모든 것에 변화가 온다.

의식은 소희가 치렀는데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은 알음이다.

제아무리 절친 이래도 자존심 상하는 얘기는 할 수 없나 보다. 매사에 툴툴대는 소희, 매사에 차분히 들어주고 웃어주는 알음. 알음의 비밀은 복잡한 집안사정이다.

 

착하기 만한 엄마와 늘 여자문제를 일으키는 아빠의 문제가 자신의 일상을 흔들고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하는 요즘이다. 돈 잘 버는 아빠에, 정이 많은 아빠, 봉사도 열심이고 늘 자신에게 다정한 아빠였다. 그런 아빠의 일탈을 알고 난 뒤 적대감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좋던 아빠가 가족들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다움이라는 남자애까지 데리고 왔다.

 

다움이는 알음이의 도록에 있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까만 밤으로 망쳐 놓기도 하고 수시로 사이렌이 불 듯 울어댄다.

급기야 알음이는 아빠는 배신자이며 자신은 희생자라는 생각에 이상한 소원을 빌게 되는데…….

평소에 착하기만 하던 알음이가 빈 소원은 다움이가 사라지는 것이다.

늦은 밤 꿈속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게 빈집의 거미를 닮은 괴물이 나타난다.

 

-나는 계약자다.

-계약자요?

-나는 너로 인해 자유를 얻을 것이다.

-거미?

-보려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본문에서)

 

소희가 짝사랑하는 신율은 피겨에 관심 있는 옆 학교 남자아이다. 자신의 형이 죽은 후에 형이 모아둔 피겨를 없애려고 팔려는 찰나에 소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울트라맨을 통해 알게 된 아이는 그냥 보통의 애이지만 알음이의 고독한 마음을 알아주는 듯해서 가끔씩 문자를 하게 된다.

그러다 피겨에 관심을 가진 알음이가 신율과 만나면서 소희와 틀어져 버리고 ...

알고 보니 같은 반 일진인 나비진과 나신율이 쌍둥이라고 한다.

 

 

이 둘에 알음이가 끌린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애들과는 달라 보여서? 자신도 보통 애가 아니라 슬픔을 간직한 아이라서?

 

어느 날 할머니가 다움이를 보러 집에 오셨고 그 이후로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작업실에서 늘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빠와의 갈등이 견디기 힘들었을까.

 

축축하고 무겁고 깜깜한 마음을 어디다 두어야 할까.

알음이는 서서히 혼자가 되어 간다.

그리고 밤마다 꾸는 악몽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

-계약은 시작 되었다.

-내가 그걸 가져가면 네가 바라는 것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애를 없애 주세요.

-가지고 싶은 것을 가져라. (본문에서)

 

한 번 잘못 끼운 단추는 걷잡을 수 없이 채워져 간다.

알음이 혼자서 신율을 만난 걸 안 소희는 토라져서 멀어져 가고, 일진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일탈의 세상을 맛보게 된다. 그래도 느낌은 늘 혼자다.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가족 이야기니까.

때로는 계약자의 말이 명분이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혼자 간직해 간다.

누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누가 자기를 위해 손잡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을까.

평균적인 여자애들은 그런 아픔을 모른다.

그래서 일진과 가까이하고 신율과 만났을 뿐인데......

밤마다 들려오는 계약자의 목소리에 이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남의 것이 될 수도 없다.

-사라진 것을 찾지 마라.

-노력하는 자는 승리한다.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넌 나다, 나는 너다. (본문에서)

 

알음은 가지고 싶다. 새 친구도 율도. 그리고 부모님의 사랑도 회복하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이고 싶다.

악몽을 그만두고 싶어도 계약자는 밤마다 나타난다.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는 계약관계. 계약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괴로운 마음에 그림을 그리다 보면 괴물 같은 계약자의 모습이다. 그다음에는 일진아이인 꽁알을 닮은 그림이 된다. 마지막에 보니 자신의 모습이었다. 꿈에서 본 계약자의 모습은 나 자신이었다.

소소하게 시작한 소원이 점점 커져버린 욕망으로 변질되고,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었어도 느끼지 못한 나의 모습을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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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자아가 또다른 자아와 계약해도 눈치채지 못하는 바보들의 모습은 그대로 우리와 닮았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돼지개라는 부정적인 자아를 만났는데 괴물은 돼지개였다니.

선의 자아, 사악한 자아의 모습은 둘 다 우리가 가진 모습이다. 그 양면의 세계에서 누가 주동자가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청소년기에는 친구들의 다정한 손길, 어른들의 관심 있는 경청, 혼자가 아니라는 주변 어른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함을 느낀다. 혼자라고 느끼는 아이들의 일탈은 요즘의 신문, 방송에서도 자주 나오는 소식이기에.

 

 

외로운 아이들에게 혼자가 아닌 세상임을 알려주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책을 읽을 때는 섬뜩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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