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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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미발표 작품들^^ [노란집]

 

 

마흔이 넘어 글쓰기 시작해서 매순간 순간을 글로 표현해 왔던 작가 박완서. 2000년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 중에서 미발표된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 <노란집>이라고 한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낸 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툇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 뿐, 스멀스멀 살갗을 간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속삭임'에서

 

봄이 오는 기척을 이리도 간지럽게 ,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금은 가을이건만 다시 봄볕이 진동하는 듯 희망과 화사함을 느끼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봄이어선지 봄 이야기엔 늘 솔깃해진다. 겨울나무 티를 못 벗은 나무 가지 끝에 노니는 봄볕의 재롱, 땅 속 미물들의 기척에 균열을 일으키는 대지에 대한 표현들이 그대로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게 한다. 그리고 노부부의 동문서답에 다리 역할을 한 봄기운의 소통능력에 대한 찬사도 유머러스하다.

 

요즘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더러 들리는데, 심심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학교성적과 무관한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건 괜히 한 번 해보는 걱정일 뿐 어른의 진심도 아니다.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은 켜녕 한숨 돌릴 새도 없니 돌아가는 팽이와 다름없다. -'심심하면 왜 안 되나' 에서

 

허걱~ 가슴이 찔린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책 읽어라, 꿈을 꾸라,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건 또 다른 속박이고 굴레고 잔소리일 뿐인 것 맞다. 아이들이 심심해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나도 심심하고 싶다. 바쁘게 사는 게 습관화 되었고 중독이 된 듯하다. 쉬고 있으면 무엇이 잘 못된 것만 같고 불안한 우리들이다. 심심한 시간은 창조력의 원천, 상상력의 뿌리, 충전의 쉼터임을 알면서도 참으로 그리하기가 어렵다. 시간을 쪼개 사는 것에 어지간히 중독된 모양이다.

 

바람소리, 봄기운, 잎새의 떨림, 땅의 꿈틀거림...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으로 담아내는 것을 보며 참 따뜻한 사람이 구나를 느낀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시골풍경이 정겹고, 티격태격하는 노부부의 일상도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라는 말씀도 가슴에 새겨야겠다.

 

 

책을 읽다 보니 선생님의 미소만큼이나 정갈하고 시원한 글이다. 산길의 옹달샘처럼 나그네들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편안하고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라는 엄마의 말씀 같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내려다보고 살라는 어른의 말씀이다. 그렇게 잔잔히 물결쳐와 가슴에 파고든다. 선생님을 더욱 그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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