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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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속에 감춰진 비밀의 맛! [달고 차가운]

 

제목이 주는 감각적인 표현이 책을 읽는 내내 신경 쓰인다. 달고 차가운 것이 무엇일까. 마치 숙제를 해야 하는 아이처럼 감각적인 표현만 나오면 긴장하며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런 숙제를 내는 소설은 정말 처음이다.

 

먹는 음식 중에 달고 차가운 것은 무엇일까.

인간관계에서 달고 차가운 것이라면 무엇일까.

 

달고 차가운 것이라면 냉동실 속에 있는 아이스크림, 초콜릿, 요플레 등이 떠오른다.

달고 차가운 기억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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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없앨 방법은 악밖에 없을까? (본문에서)

 

첫 서두가 강렬하다. 유쾌하지 않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무엇도 알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적어도 돌아온 뒤에 많은 것이 변해 버린 걸 실감하게 되리란 사실만은 알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장 나쁜 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삶, 아닐까. (본문에서)

 

십대시절을 꿈꾸는 시절이라고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자신이 꾸는 꿈보다 엄마나 가족의 꿈과 집안의 자존심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강지용.

영어 학원을 2개 운영 중이고 임대 하던 오피스 빌딩을 고시원으로 바꾸느라 바쁜 엄마,

고시패스로 고위직 공무원인 아빠, 의대생 형, 미국 비즈니스 스쿨을 다니는 누나를 둔 잘사는 집안의 아들이다. 가족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점수로 인해 명문대 진학이 어렵게 되자,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재수를 결심한다. 대통령 자식이라도 대학이 삼류면 평생 삼류 꼬리표 달고 산다는 엄마의 논리에 동조를 하지 않지만 엄마를 이길 재간이 없거니와 아버지는 아예 난공불락의 성역이기에 순종하는 척 할 뿐이다.

 

강지용이 민신혜를 처음 만난 건 재수학원에서였다.

재수학원의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남자들이 까맣게 있는 가운데 빼빼마른 여자아이가 아이스 바를 먹는 모습에 끌려든다. 흰 얼굴의 여자아이가 긴 원기둥모양의 아이스 바를 돌려가며 먹는 모습에 야동을 떠올린다.

 

지용은 담배를 피우는 것, 수업에 충실하지 않는 것 등으로 엄마를 속인다. 그는 엄마를 처음 속일 때는 불안했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오히려 짜릿함 마저 느낀다.

 

지용에게 신혜와의 첫 키스는 부드럽고 차가운 것이었다.

지용이 재수를 하게 된 배경과 엄마와의 갈등을 이야기하며 벗어나고 싶다고 하자, 그건 그저 지옥의 입구일 뿐이라며 신혜는 자신의 지옥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기대가 무섭다는 지용과 그런 기대가 부럽다는 신혜는 딱 맞는 퍼즐 조각을 찾은 아이들 같다.

 

그게 네 지옥이라는 거니? (본문에서)

 

신혜는 여행 가이드였던 새아버지는 2년 전에 죽었고 지금은 호프집을 하는 어머니와 새아버지가 데려온 어린 동생과 함께 산다. 가난이 뭔지, 지옥이라는 게 뭔지 넌 모른다며 자신이 맛 본 인생의 차가운 맛을 이야기 한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을 이용해 돈벌이를 한 것처럼 어린 동생을 이용할 지도 몰라 지켜주고 싶다는 신혜의 말에 지용은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신혜의 잦은 중얼거림을 듣고 결국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얼굴에 겹쳐지는 낯익은 얼굴이 있다.

 

오늘 아침 내가 꿈에서 본 건 죽은 여자가, 아니 내가 죽인 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마주하던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것이, 오늘 아침에는 평온했다. (본문에서)

 

엄마의 등쌀에 밀려 미국 유학을 준비하러 지용은 미국으로 간다. 그 여자를 죽였으니 신혜는 이제 지옥에 있지 않을 거라며 안도하며 미국에 가지만 신혜와 연락이 되지 않자, 지용은 신혜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날아온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신혜의 말이 가짜라는 것이었다.

어디까지 거짓인 걸까.

초등학생 어린 동생도 없고 신혜의 대학기록도 다 가짜이고 지금은 엄마의 사망보험금을 가지고 새 아버지와 홍콩의 침사추이에서 민박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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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아이의 달콤한 키스에 남자 아이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신혜의 손은 부드럽지만 늘 서늘한 느낌이었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신혜의 키스도 달콤하지만 늘 차가웠는데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믿음이 지나치면 그것도 지옥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기엔 너무 어렸을까.

 

부드러운 것을 찾다가 살인자의 길로 들어선 지용의 모습이 달콤한 선악과의 유혹에 빠져 고통의 맛을 알게 된 아담의 모습과 닮았다.

아름다운 빛깔과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장미꽃 속에 가시가 있는 줄 모르고 덥석 쥐는 아이 같다.

달디단 단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 배앓이를 하는 아이 같다.

 

달콤한 것의 뒤에 오는 고통의 맛은 날카로운 얼음송곳처럼 심장을 찌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달고 차가운 건 어쩌면 인생 자체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양면성, 인생의 야누스적인 면 일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달콤한 맛 뒤의 씁쓸한 맛이 있음을 항상 조심하며 단 것만 덥석 물지 않기를,

가족의 꿈, 미래, 자존심 보다는 아이의 꿈과 미래가 먼저이길,

어머니가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손길이 되는 세상이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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