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모니카 마시아스 지음 / 예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대통령의 딸이 평양의 망명자로~[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적도기니 대통령의 딸에서 평양의 망명자로 16년을 살다가 껍질을 깨며 스스로의 운명 앞에 주인이 되고 싶었던 모니카 마시아스.

 

그녀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의 막내딸로 태어나서 일곱 살의 나이에 평양으로 간다. 아프리카 최초로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이 된 그녀의 아버지는 강경한 탈식민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1979년 스페인 정부와 우호적이었던 사촌이자 국방장관 테오도르 오비앙 응게마의 쿠데타 성공으로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 뒤 모니카 마시아스의 형제들은 아버지와 친분이 돈독한 김일성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피신한다. 결국 아버지가 군사재판에서 처형을 당하고 되자, 잠시 머무를 줄 알았던 평양에서 모니카의 형제들은 망명자의 신세가 되고 만다.

마시아스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평양이라는 머나먼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16년간 북한의 교육과 문화를 공부하게 된다. 그녀의 평양생활은 보통의 북한 주민들에 비해 편안한 삶이었다. 양부인 김일성 주석의 보살핌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가 형님처럼 받들던 김일성에게 자녀들의 교육을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의사공부를, 오빠는 건축 공부를, 마시아스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해서 훗날 적도기니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부탁의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삼남매는 김일성의 특별배려로 외국인 전용 아파트에 살면서 만경대혁명학원에 특별학급까지 설치하면서 교육을 받게 된다.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모국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잊어버리고 북한말을 모국어처럼 사용하면서 평양의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적응이 최선의 방책이었겠지. 까만 얼굴에 곱실한 머리로 인해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녀는 뼛속까지 북한사람이 되어 간다. 살기 위해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새기며 북한식 사고와 생활습관을 배우고자 노력한다.

 

현실은 늘 평양 안에서 한정된 사람만 만날 수 있고, 한정된 곳에만 갈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평양은 고향 같은 곳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중국, 두바이, 시리아 등에서 온 외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렸지만 유년기와 사춘기를 평양에서 보낸 그녀에겐 평양식 사고빙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로 부딪치기도 했다.

 

 

-너는 쭉 평양에서만 살았으니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를 수밖에. (본문에서)

 

그녀는 임수경의 평양 방북으로 자연스럽고 당당한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모니카, 우리도 저 친구처럼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본문에서)

 

리노라는 사촌이 베이징에 적도기니의 대사로 와 있다는 사실을 듣고 방학을 맞아 베이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평양의 다른 아이들처럼 나는 김일성 주석을 '위대한 수령님'이라 부르며 늘 존경해왔다. 더구나 나는 개인적인 은혜까지 입지 않았던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 철학, 정치 등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100% 진실이라 믿어왔다.

(본문에서)

 

베이징의 많은 인파,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너는 쭉 평양에서만 살았으니까'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에도 변화가 오게 된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남한 사람들과도 만나면서 벽을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이라는 도시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순박함은 사랑하지만 보이는 이게 다일까. 그제야 자신의 자유로운 기질을 발휘하며 익숙해 있던 것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외부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다가 김일성 주석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재자요, 자신의 아버지도 악마처럼 알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를 찾기 위한 여행의 시작을 스페인에서 하기로하고 떠난다.

 

모니카,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면 세상이 만들어놓은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해. 진짜와 가짜가 어지럽게 섞여 있는 세상속에서 진실만을 골라내려면 스스로 부딪혀가며 찾아야 할 거야. (본문에서)

 

마리벨, 난 죽을 때까지 여행을 할 거야. 북극도, 남극도 내 눈으로 직접 벌 거야. 너무 오랫동안 마음을 가둬뒀으니까 이제 영원히 열어 놓고 다닐 거야. (본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유년의 고향이던 평양을 떠나면서 낮은 자세로 세상을 체험하고자 한다. 스페인, 뉴욕, 한국, 적도기니를 다니면서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여유와 성실함이, 진정성과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다른 세상에 향한 강렬한 호기심과 열정이 통했던 걸까. 그녀는 세계와의 벽을 허물어 뜨리며 자신의 운명과도 화해하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진실도 알게 된다.

 

 

운명을 거머쥔 자는 누구일까.

타고난 운명을 거스른다는 건 운명의 주인이 된다는 말일까.

태어나는 과정에서는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는 없지만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껍질들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게 사람의 운명이 아닐까.

 

 

알에서 깨어나는 새처럼 자신의 운명을 깨고 나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모니카의 경우라면. 그래도 운명과 마주하며 주인이 되려면 껍질을 깨야 할 것이다. 모니카처럼. 기구한 운명이든, 행복한 운명이든 결국 패는 자신의 손에 놓여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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