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박희주 지음 / 책마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느티나무와 함께 한 사랑과 추억들....[내 마음 속의 느티나무]

 

 

 

9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을 읽으니 제목만큼이나 잔잔한 여운을 준다.

바람소리 물소리 들리는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떠올리게도 하고, 어릴 적 추억의 학교 길을 그려보게도 하고, 이웃집의 소소한 일상들을 상상해 보게도 하는 친근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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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마음을 더욱 끄는 건 마지막에 나오는 <내 마음 속의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마을의 수호신 같이 우뚝 솟은 존재였다. 휘휘 늘어진 가지마다 무성한 잎들이 반짝이는 한여름이면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곳이었다. 어머니 품 속 같던 편안함으로 동네놀이터, 동네사랑방의 역할을 든든히 했던 느티나무. 그 아래에서 모든 만남이 이뤄졌고 모든 마을 문제가 논의 되었으며 모든 마을사람이 모이던 곳이었다.

 

 

우등생인 이찬이는 학교에서 제일 예쁜 미숙이를 좋아한다. 같은 동네, 같은 나이, 같은 학년, 같은 반이면서도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어느 날 둘은 이찬이가 길가의 밭에서 따 준 단수수대를 먹으며 친해진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자연에서 얻은 열매가 제일 좋은 간식이었다. 앵두만한 파리똥(보리수 열매)을 먹자며 지름길인 산길로 가서 흰 점이 야리야리한 빨간 파리똥 열매를 맛있게 먹게 된다. 그러다 작은 동굴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게 된다. 그 이후로 둘은 더욱 가까워지나 진학을 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삼십년의 세월이 흘러 대학교수가 되어 고국을 찾고, 고향을 찾은 이찬.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마을의 느티나무 두 그루는 베어지고 그곳에는 도로가 나고 옆에는 새로운 정자가 들어서 있다. 어린 시절의 풋 사랑이었던 미숙이는 교통사고로 숨진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 환대해 주는 고향 사람들, 고향을 떠난 사람들과 고향에 남은 사람들.....

 

베어진 느티나무만큼이나 마을도 변했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이나 걸어가던 등교 길은 10분 만에 차로 달릴 수 있고, 수수밭 자리에도 넓은 도로가 나고, 오십호 하던 마을이 열다섯 채 남짓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마치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이찬은 그제야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은 느티나무와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은 느티나무도 없고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가.

 

아버진 너나 너그 성이 높은 사람이 되길 원치 않는다. 사람의 도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면 그만이다. 사람의 도리를 지킬 줄 알면서 큰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말이다. 단 한 가지 너도 커서 장가를 가고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애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애비로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는 거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저 정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을 쉴 수 있게 한 것처럼 너도 그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네 새끼들의 그늘, 나아가서는 너보다 못한 사람들의 그늘 말이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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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느티나무와 아버지의 든든함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듯하다. 베어진 느티나무만큼이나 아버지의 부재는 씁쓸하고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존재들은 다 든든한 느티나무 같은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태어나고 자란 곳의 느티나무. 나에겐 그런 느티나무는 없지만 지금도 부모님들이 느티나무처럼 든든히 버티고 계신다. 그 느티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는 시간, 어릴 적 추억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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