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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상실한 오늘을 사는 흠집투성이들 - 파과
<피그말리온 아이들>을 통해 구병모 작가를 처음 알았다. 그러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게 되었고 오늘 <파과>를 읽었다.
![20130804_105749_resized[1].jpg 20130804_105749_resized[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804_145443_7ac92476ae791ea06dc7a15ea504ab5b.jpg)
破果는 흠집난 과일이다.
냉장고 속에 넣어 두고 있는 줄 도 모르다가 어느 날 청소하다 보면 물러 문드러진 복숭아처럼. 무관심 중에 내버려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웃의 상실된 부분에 대한 상처다.
첫 부분의 내용들이 너무 무서워, 너무 소름 끼쳐서, 너무 끔찍해서 밤에는 결코 읽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이런 생도 있을까, 이런 사람들도 있을까.
이해되지 않은 소설 속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글 솜씨에 이끌려 읽다 보니 어느새 클라이맥스다.
너무 불쌍해서, 너무 슬퍼서 마지막엔 먹먹한 가슴으로 책을 덮고 마는 이야기다.
금요일 밤 전철에 올라 탄 65세의 노부인 조각 .
아이보리 면 모자에 꽃무늬 티셔츠와 카키색 바람막이 점퍼 차림의 그저 평범한 할머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갈색 보스턴백에서 성경을 꺼내 루페로 성경을 읽는 교양 있는 연장자의 전형일 뿐이다.
잠시 후 열차가 멈춰서면서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중에 50대의 건장한 남자가 일수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퍽 쓰러지게 되고 공익요원과 역무원이 몰려온다. 그러는 혼란 중에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루페 속에 감춰진 비수의 독을 닦고 있다.
그녀는 누구 일까.
왜 그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이제는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 나이일 텐데 젊은이들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살인 청부업을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는 방역업체의 원년멤버로서 대모라고 불리는 현역이다. 마약이나 도박처럼 방역도 중독성이 있는지 45년간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살아온 여자다.
어릴 적 낳아 준 부모는 가난을 이유로 조각을 당숙 집에 식모로 보냈다. 결혼하는 당숙 집 언니의 귀금속을 잘못 건드렸다가 당숙 집을 쫓겨나게 되면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업소로 오게 되고 자신을 겁탈하려는 외국인을 찔러 죽이게 된다. 그녀의 솜씨를 눈 여겨 본 조와 류가 그녀를 거두면서 시작되는 청부업자 생활.
사회의 벌레들을 없앤다는 방역업에 종사하면서 그 일을 시킨 고위층이나 유지들이 누군지, 그들이 얼마나 더 벌레 같고 쓰레기 같은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방역 대상의 대부분이 기족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남은 가족에 대한 생각도 연민도 가져 본 적이 없던 그녀다.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이가 해외 입양 브로커의 손에 넘어 갔을 때도 생물학적 어미로서의 죄의식이나 슬픔 또는 그리움은 사치였다. 그러니 타인의 눈 속에 든 공허감을 보며 공감이니 연민이니 하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다.
같은 방역업체의 투우는 아들 뻘이다.
어렸을 적에,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칼 맞아 쓰러져 있고 엿새간 가사를 맡아서 자신에게 알약을 갈아주던 도우미가 창문으로 탈출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왜 그랬을까. 왜 아버지를 죽여야 했을까.
방역업체를 찾아 아버지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녀의 정체가 뭔지를 찾고자 방역업체에 들어온 투우,
그는 특전사 출신이라는데 책도 많이 읽고 인물도 말끔하지만 엄마뻘인 조각에 대해서 말끝마다 시비다. 사실 방역업체 직원 끼리 안면을 트고 지내진 않는다. 일의 특성 상 철저한 개인 플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조각에게 시비를 건다. 이유가 무엇일까.
![20130804_110007_resized[1].jpg 20130804_110007_resized[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804_145628_f81358e9f0a8cf8ee445d566a5925376.jpg)
조각이 50대 남자의 방역을 하던 중 심하게 다쳐서 거래 병원의 장박사에게 갔던 날이다.
흐릿한 시야에 강이 장으로 보이는 바람에 강 박사의 치료를 받게 된다.
칼에 맞은 등을 치료해주는 젊은 강 박사의 눈길에서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서로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도 불안함에 뒷조사를 해서 강박사 부모가 하는 시장 귀퉁이의 과일 노점을 기웃거리게 된다.
과일 노점에서 노부부가 손녀와 지내는 것을 보며 새삼스럽게 부러운 시선으로 일상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45년의 세월동안 금기시 되었던 일상의 즐거움을 부러워하며 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기도 하며 과일을 사가기도 한다.
![20130804_105925_resized[1].jpg 20130804_105925_resized[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804_145721_b973d9dd549f810b3fc7bafe7d638f6c.jpg)
방역은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단지 구제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처럼 설명도, 동정도, 계산도 필요치 않다. 의뢰인이 고위 공직자일수록, 방역대상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입장을 가진 자일수록 '왜'는 언제나 누락된 채 업자에게 전달된다. 그의 죽음으로써 누가 무슨 이득을 얻게 되는지, 그의 죽음이 창출하는 이윤을 방역업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삶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
희미해지던 양치식물의 냄새가 사라지고 그녀는 투우의 눈을 감긴 다음, 역시 무심코 중얼거린다.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본문 중에서)
![20130804_105820_resized[2].jpg 20130804_105820_resized[2].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804_145953_9fb960cf16d8283bea233eff21d0e28b.jpg)
지속적인 상실과 마모의 생을 살았다는 조각과 투우의 과거는 너무나 어둡고 칙칙하다. 양지바른 곳의 삶, 세로토닌이 상승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인간이 된 듯한 삶은 언감생심이다.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나 자신의 기쁨에 대한 권리도 모르는 연체동물 같은 하루다. 이런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 극단이 아닐까.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런 삶이 없길 바라고 바래본다.
작가의 이야기는 늘 사회적 문제의식을 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혀 과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느낌들이 신선하다 싶었는데, 이번 작품은 충격적이라고 할까.
![더 테러 라이브.jpg 더 테러 라이브.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804_150049_adf7797711102ce5dff353ccae1bc838.jpg)
하정우 주연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와서일까.
사회에 대한 분노, 개인에 대한 분노가 무의식에 깔릴 때의 폭발력을 보며 끔찍함을 생각한다. 상실이 습관화되면 일상적인 의미들이 사라지고 파괴적이 된다는 건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