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빛나는 삶, 환희의 날을 위하여^^ - 모든 것은 빛난다.

 

 

세계는 과거의 방식으로 더 이상 우리에게 중요성을 띠지 못합니다.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이 영위했던 열정적이고 의미심장한 삶, 그리고 단테의 중세 기독교 세계를 구성했던 의미의 거대한 위계질서는 모두 우리의 세속 시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 세계는 다양한 형태로 성스럽게 빛나는 사물들의 세계를 이루곤 했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것들은 이제 멀리 사라진 듯합니다. 이 책은 그 빛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가까이 가져오고자 합니다. (서문 중에서)

 

 

시대가 다르면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현대를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표현할 때면 한 편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섬뜩해진다.

예전의 따스한 인간적인 모습들이 사라지고 기계적인, 획일적인, 집단적인 특성들이 차츰 현대를 덮게 된다면 우리의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치의 기준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저자들은 현상학과 실존주의 철학 연구의 대가인 휴버트 드레이퍼스 교수와 숀 도런스 켈리 교수다.

 

 

저자들은 현대를 인간의 이성이 빛나던 시대가 사라지고 무기력과 허무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남자가 있다고 하자. 과감히 뛰어들어 구해주는 사람은 시민 영웅이 되고 그 외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구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여기서 선택의 짐을 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본다. 시민영웅은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손을 내밀었을 뿐이고, 주저 없이 행동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자기 선택의 기준이 명확해서 확실히 행동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불확실성과 주저함 속에서 자기 확신과 자기 의지로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이 약하다.

 

 

마음은 있으나 행동은 없는 무기력의 시대는 모든 이들을 버겁게 한다.

마약이나 오락, 그 밖에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마저 잃게 만드는 다양한 유혹들에는 자신의 길을 명확히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강박과 심취와 중독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가.

마약, 알코올, 약물뿐만이 아니라 게임, 블로그, 스마트폰, 상품 따위로 자신이 하려한 일을 잊은 적은 없는지.

통제력을 상실하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끌려 간 적은 없는지.

이러한 무기력이 선택의 기로에서 회피하게 만든다.

그러니 영웅적인 행동, 주관적인 결단이 점점 희귀현상이 되고 있다.

 

 

하루를 왜 사는지 생각도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위대함의 특징은 상황의 요구에 따라 일관되게 반응한다. 주춤거리지도, 동요하지도, 눈치 보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를 괴롭히는 인간적인 우유부단함 같은 것에 일말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위대함을 존중하면서도 일상은 위대하지 않다는 모순들.

어쩌면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나 자신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선택의 짐이 인간 실존의 필연적 특징처럼 보인다.

 

 

시민 영웅들의 선택에는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가치가 깔려 있다. 용기 있는 선택이 개인적일 수도, 사회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 선택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무기력을 보게 된다.

삶의 방식이란 특정한 지역, 문화 보다 훨씬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선택의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본다.

모두에게 이런 특징들이 일반화 되어 있다면 지금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성향들에 과연 희망을 걸어도 될까.

그러나 올바르게 살기 위한 규범에 일치하도록 행동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아크라시아, 또는 의지의 허약함이라고 불렀다. 선택의 어려움, 행동의 어려움이 본질이라면 지금 우린 무엇이 문제일까.

 

햄릿의 유명한 독백,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는 선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담은 것이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 도스토옙스키 (본문 중에서)

 

 

중세의 신은 실존적인 문제를 묻기도 전에 답해주는 역할을 했다. 현대인들은 실존의 기본 문제들에 대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던 중세가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답이 없는 질문이 현실을 허무하게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걸까.

 

 

나는 오랫동안 되풀이 된 경험을 통해 느낀 바 있다. 인간이란 어떤 경우에서건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결국에는 낮추거나, 적어도 전환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행복은 결코 지성이나 상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심장, 침대, 식탁, 안장, 난롯가, 그리고 전원 등에 있는 것이다. - 모비딕 (본문 중에서)

 

 

선택의 자유가 현대의 삶이 이룩한 위대한 진보의 표식 가운데 하나일까.

 

현대 세계의 특징은 우리들 대다수에게 그 이전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그 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우리가 이런 종류의 실존적 선택에 직면했을 때, 저것 아닌 이것을 선택하게끔 해주는 참다운 동기가 없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앞으로 고도의 문화를 가진 어느 시적인 민족이  그들의 타고난 권리로써 옛날의 쾌활한 오월제 신들을 불어내어   오늘날의 이기적인 하늘 아래   신들이 사라진 언덕에 그 신들을 다시 앉힌다면,   거대한 향유고래는 틀림없이 제우스처럼 높은 자리에 군림하게 되리라. - 모비딕 (본문 중에서) 

 

 

 저자들은 호메로스, 아이스킬로스,  예수,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데카르트, 칸트, 사르트르,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끌어 들인다.

 

다시 신들을 불러 모으고 신념을 일반화하면 허무와 무기력을 극복 할 수 있을까.

 

 

진짜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데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초자연적인 실체로서 신 혹은 신들이 존재하는지, 또 그 속성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현상학적인데 있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경험하고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지의 문제가 더 앞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짜 쟁점은 신이 원인자인가 아닌가에 있는 게 아니라, 감사가 과연 적절한 반응인가 하는데 있다는 얘기다. (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과 해결점을 풀어 갈 때, 소설, 영화, 고전 등의 친숙한 소재들을 가져 온다.

그리고 문학도 예술도 빛에 이르는 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성스러움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는 말이다.

 

지적 이해만 가지고 세계를 대하다 보면 무의미와 허무주의는 필연적 일지도 모른다. 머리의 한계처럼.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작동시켜 온 몸과 영혼으로 삶을 대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다시 신의 시대로 회귀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가치를 선택하고 발견하기 위한 실존적 선택의 기로에 선 현대인의 무기력과 허무함을 친숙한 소재들로 풀어냈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이 도서는 예스24시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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