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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평점 :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마음을 끈다.
풍요의 시대에 소비가 미덕이 되면서 어느덧 절약의 미덕은 쓰레기통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냥 그래도 되는 걸까' 라며 걱정하던 찰나에 이 책을 만났다.
![쓰레기탐색자.jpg 쓰레기탐색자.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722_122114_469efc0e59750a36141836a782448d26.jpg)
최근에 읽은 <에네르기 팡>에서는 지구의 자원들이 정점을 지나 고갈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는 자원고갈의 심각성을 모르는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소비와 낭비는 도시에 흘러넘친다.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자손손 풍요를 누리려면 대책이 필요한 법인데....
이 책은 쓰레기가 주는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자는 걸까, 쓰레기를 재활용하자는 걸까,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걸까, 그냥 쓰레기 자체에 대한 해부일까.....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이 책을 펼쳤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누추함을 강조했고, 그 속에서 묻어나는 위대함을 발견했다.
-진 게넛 <좀도둑의 일기>
![20130720_110728_resized[1].jpg 20130720_110728_resized[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722_122232_30cb4e2e2b621301049c7e8e2e04b14d.jpg)
저자는 애리조나 대학의 종신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텍사스 주 포트워스의 오래된 옛 고향에서 8개월 동안 거리를 떠돌며 여행을 하게 된다.
재활용품을 수거하기도 하고 쓰레기들을 수집하면서 길거리 세계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 올린 현장 연구들...그리고 법률적인 연결고리들...
한국에서도 이른 새벽을 다녀보면 도시의 쓰레기가 넘쳐 남을 볼 수가 있다. 그러다 해가 뜨고 출근 시간이 되면 거리는 말쑥한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다. 그 사이에 분리수거 차량들이 다녀가거나 쓰레기 차량, 음식물 쓰레기 차량, 종이박스 모으는 노인들이 다녀간 것이다.
아파트에서도 쓰레기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분리가 되고 재활용이 되기에 쌓여서 지저분한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소비지상주의인 미국.
소비를 넘어 낭비가 넘실대는 미국의 거리들을 보며 자원고갈, 환경오염, 동물의 서식지 파괴에 대한 교육을 미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개발도상국들이 낭비라고 하는 것은 미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틈새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본다. 필요에 의해 구입한 물건이 보물이 되었다가 쓰레기로 버려지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소중한 자원으로 재탄생하거나, 예술품으로, 대안 건축물로, 재활용품으로, 돈으로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그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사회적 불평등의 깊이가 심각함을, 무분별한 낭비에 대한 전 지구적인 대책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소비와 낭비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파괴 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보면서 미국은 왜 아직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건지, 왜 쓰레기를 줍는 게 불법인지, 주운 쓰레기 거래가 왜 불법인지가 의아했다.
쓰레기 수집과 관련된 비극들은 무엇일까.
베트남 하노이 정부는 6,000명의 ‘수집가와 중개상’을 지원해준다. 그러나 베트남 등지에는 전쟁 당시 폭발하지 않은 수류탄이나 지뢰, 포탄 등이 너무 많아서 금속류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중 매년 많은 수가 희생된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도시의 한 쓰레기장에서 금속 폐품을 줍던 사람들이 쓰레기더미에 깔려 한꺼번에 아홉 명이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북러시아에서는 핵연료 시설에 고용된 네 명의 고철 처리반원들이 발전설비의 뚜껑을 잘못 여는 바람에 방사능에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두 명은 심각한 화상과 함께 방사능 관련 질병으로 병원에 후송되었고 다른 두 명은 감옥에 갔다.(본문 중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하는 작은 역사들, 감성을 자극하는 흔적들은 무엇일까.
이혼, 별거, 사망, 자녀의 유학, 거주지 이전 등과 같이 삶의 급격한 변화를 겪는 이들이 남긴 흔적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나오는 생활 쓰레기와는 달리 이런 종류의 쓰레기더미에는 갑작스러운 비극이나 변화 때문에 일상적인 사회생활이 끊김으로써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누군가의 과거가 담긴 물건들이 엄청난 양으로 쌓여 있다. 그중에는 빛바랜 아기 신발, 학위증, 결혼사진, 티켓 영수증, 오래된 신문 스크랩 등과 같이 한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물건도 포함되어 있다. (본문 중에서)
쓰레기를 뒤지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저는요, 미쳤어요. 쓰레기를 뒤지는 데 완전히 빠졌지요.” 일레인이 웃으며 말했다. 일레인은 포트워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오랜 친구들은 그녀가 쓰레기 줍는 일을 그만두었으면 했지만, 결국 시 정부에 체포될 때까지 그만두지 못해 집 마당을 깨끗이 정리하라는 명령도 받았다.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카렌과 나는 특히 일레인이 주운 쓰레기를 가지고 장식하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크리스마스나 할로윈데이,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 때면 길거리에서 주운 물건들을 활용해서 현관에 있는 마네킹이나 나무 등을 꾸민다고 했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그녀는 내년에 작은 혼다자동차를 팔고 쓰레기를 줍기 안성맞춤인 차를 장만할 예정이다.(본문 중에서)
술 애호가라면 이럴 땐 어떻게 할까. 술파티를 할까.
쓰레기 수집의 세계란 늘 술에 절어 있는 사람들의 세계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쓰레기통이나 각종 쓰레기봉투에서 술병을 찾고 보면 어떤 것은 꽉 차 있고 어떤 것은 반쯤 차 있다. 종류도 샴페인부터 포도주, 증류주 등 다양하다. 깜빡 잊고 버린 것이든, 질려서 버린 것이든, 경찰 단속 때문이든 이유야 무엇이든 뚜껑이 열린 맥주 캔, 맥주병 등도 발견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증류주나 과실주 같은 것들은 집으로 가져가고 맥주는 보통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둔다. (본문 중에서)
쓰레기 더미에서 미래의 직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지도 모른다. 이건 꽤 괜찮은 건데.....
자전거를 타고 나선 길에 구리선과 알루미늄 캔, 3페니, 낡은 고등학교 졸업장과 함께 1941년 판 《항공기술 매뉴얼》 한 권과 공군에서 1953년에 발간한 《훈련과 예절》 매뉴얼 두 권을 얻었다. 그중 한 권에는 내 미래의 직장 소유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텍사스크리스천 대학교, AFROTC, 정부 소유.” 몇 개월 후에는 길가 쓰레기더미와 쓰레기통에서 텍사스크리스천 대학교의 1950년대, 1960년대 연간물들을 얻었다. 몇 개월 후에는 《훈련과 예절》을 또 수집했고, 7월에는 《서비스 메카닉 핸드북, 모델 PV-1, 기밀》을 손에 넣었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던 해군의 PV-1 항공기 매뉴얼로 페이지마다 ‘기밀’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책에는 그 의미를 일깨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항공기는 물론이고 파일럿의 생명이 당신 손에 달려 있다.”(본문 중에서)
미국은 아직 쓰레기 분리수거가 안 될뿐더러 쓰레기 줍는 것도 불법이고 주운 쓰레기 거래도 불법이라고 한다. 우리로서는 납득하기가 힘들다. 쓸 수 없다며 버린 건데…….
시민들에게 허용된 앞마당 세일은 1년에 단 두 번으로 한 번에 사흘 이상 지속할 수 없으며, 모든 물건은 마당 안에만 진열되어야 하고, 광고물에도 ‘세일이 있다’는 내용과 일시, 장소 외에는 추가할 수 없다. “조례를 어기고 벌금을 내고 싶은 분은 불법 앞마당 세일을 계속하세요." 라며 시 당국은 경고한다.
벌금이 최고 2,000달러나 되므로 수거한 물건을 되파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본문 중에서)
도시정화를 위한 쓰레기 수거는 일거양득!!
2003년 6월이었다. 포트워스 시가 지역방송사와 연계하여 길거리 정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8주 동안 노숙자가 거리에서 빈 병을 주워오면 병당 3센트씩 주기로 한 것이다. 빈병들을 재활용하여 발생하는 수익은 도시 동편 언덕에 세워질 커다란 노숙자 캠프에 쓰일 예정이었기에 시는 3,000달러의 도시 정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20130720_110627_resized[1].jpg 20130720_110627_resized[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121/103621/1/20130722_122518_2afcb6407e04b21072de276849ffa1e1.jpg)
소비인가, 낭비인가, 범죄인가, 불법인가.
사회학자가 들여다 본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을 읽으며 버려지고 재활용되는 자원의 흐름들을 본다.
쓰레기의 흐름을 보며 세상의 불평등을 보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은 유기적인 조직처럼 흘러감도 본다.
쓰레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읽으며 구질구질하게 보이던 쓰레기가 달리 보이는 건 왜 일까. 쓰레기에서 꽃 피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예술, 새로운 자원, 새로운 가치 창조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숨은 경제로서의 쓰레기의 미학, 경제적 약자들의 삶의 수단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