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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정원
랄프 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1월
평점 :
고흐의 정원 사랑을 아시나요? - 반 고흐의 정원
초록과 파랑의 잔치 속에 노랑과 빨강이 놀러 온 듯한 고흐의 정원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멋진 정원에 초대 받은 기분이다.
짧고 긴 대각선의 붓 터치는 가벼운 바람이 불어 향긋한 꽃향기가 날리는 듯하고 굽이치는 점들은 정원의 형태와 결을 살리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정원은 삶이 뿌려지고, 뿌리 내리고, 가지를 뻗어 성장하는 곳이다.
씨앗에서 새싹이 움틀 때의 생동감과 환희, 꽃이 주는 찬란함과 유쾌함, 열매가 주는 풍요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정원이고 우린 각자의 정원을 가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흐는 정원을 소유한 적이 없다. 단 한 평의 땅도 소유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정원을 주제로 한 드로잉과 채색화를 많이 그렸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초기 편지에서도 정원과 공원 이야기가 넘친다. 청년시절 영국에 살 때에는 런던과 외곽지역 아일워스에서 정원 조경 일을 도우기 까지 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정원 그림은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보다 덜 알려진 편이다.
<반 고흐의 정원>
이 책은 고흐의 정원 사랑을 담은 책이다.
고흐의 화가이력 10년을 나눠보면 네덜란드의 초기 발전 시기, 파리의 대도시 생활 속에서 몰입하던 시기, 프로방스의 전원을 탐구하던 시기, 오베르 쉬즈 와르 에서의 마지막 두 달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10년간의 화가 생활 중 2000점 이상의 그림을 그린 고흐.
그는 가는 곳마다 정원을 모티브로 드로잉 60점과 채색화 90점을 그렸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작품수다. 그 외에도 편지에 동봉한 정원과 공원의 스케치까지 친다면 얼마나 될까.
그의 정원사랑은 아마도 어릴 적 자라난 시골 목사관의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추억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유년의 행복했던 기억은 평생에 영향을 미치니까.
네덜란드 개혁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살게 된 그로트 준데르트의 정원과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정말 강렬했나 보다.
그는 극심한 정신 질환을 앓을 때도 정원에서 위로를 얻었다고 한다. 정원은 그에게 위로와 평화, 기운을 북돋아 주던 곳이었던 셈이다.
목사관의 정원을 사계절로 그려대고, 병원의 정원을 그렸으며 공원의 정원도 그렸다.
6주 동안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가지 못했어.
정원에도 못 나갔지.
하지만 다음 주에는 나가볼 거야. (본문 중에서)
그의 정원그림에는 다양한 방향으로 휘휘 도는 듯한 붓놀림이 많다. 그런 붓놀림을 보고 있노라면 강한 역동성을 느끼게 한다.
그는 그림을 시작하면서 여러 화가들의 영향을 받게 되고 나중에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의 점묘법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점묘법의 영향을 받았지만 훨씬 자유로운 붓놀림을 구사하며 생기와 운동감을 살려 낸 고흐...... 신중한 붓질과 섬세한 점으로 구성하면서 붓질의 방향이 길고 짧음에 따라 공간에 주는 강렬함의 차이를 실험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파리의 화가들과 사귀면서 자극을 받았지만 그는 창의성에 필요한 고독과 적막을 갈망하며 파리를 떠나 프로방스의 아를에 머물게 된다.
삶이 다른 데가 아닌 정원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슬프지 않아.
......
정원에서 그린 작품들을 받으면 내가 이곳에서 지나치게 우울하지 않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거야. (본문 중에서)
요양원에서도 정원은 그에게 안정과 그림을 그릴 의욕을 북돋우어 주었다.
다양한 펜과 붓놀림으로 꽃들이 활기차게 자라는 모습을 표현하고 다양한 두께의 터치로 다채로운 형태와 표면 질감을 나타내며 정원 그리기로 안정을 찾곤 했던 고흐.
생의 마지막 70일간 고흐는 대단한 집중력으로 채색화 75점과 드로잉 50점을 그렸는데 마지막 완성작에는 도비니의 정원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이끼 낀 초가지붕들은 최고지. 난 그 지붕들로 뭔가 해볼 거야.
(본문 중에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고 강렬하다. 색채표현능력도 대단하고 뭔가가 꿈틀거리며 곧 폭발할 듯 한 느낌이 든다.
자연에 의지하며 정원과 공원에서 위로를 받았던 고흐.
죽을 때까지도 행복한 유년을 보낸 시골 풍경들을 기억하며 그림을 그린 고흐.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삶의 생기와 자연의 변화무쌍을 느낄 수 있다.
색채와 선과 점이 어우러져 삶을 표현한 그의 정원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숙연해지고 경건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