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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즐거운 사라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2013 즐거운 사라-야해지고 싶은 것, 관능적이고 싶은 것에 대하여~
시는 그런 忘我感을 주지는 못한다. 시는 역시 함축된 상징과 언어를 절제해야 한다는 압박감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소설이 시원한 설사라면 시는 낑낑거리며 간신히 배설해내는 된똥이다. 하지만 시는 분량이 짧아 속마음을 순간적으로 상큼하게 배설할 수는 있다. 소설은 그런 배설보다는 줄거리의 개연성과 매끄러운 문체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 (본문 중에서)
저자는 마광수. 대한민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발표하면서 본능에 충실한 직설적 화법으로 충격을 던지더니 <즐거운 사라>에서는 본능의 기묘함과 혼란스러움을 표현해서 음란물로 판정받고 본인은 구속되기까지 한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해 보고자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저자의 작품은 처음이다.
제목은 즐거운 사라지만 사라는 전혀 즐거운 여대생이 아니다. 즐거움의 기준이 각자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청순하게 생긴 사라는 친구인 미대 여학생 루리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을 늘 갖고 산다. 루리는 야하고 섹시한 완벽한 외모에 고급 룸살롱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까지 하니까. 그러다 루리의 남자인 마교수를 소개 받게 되고....
마교수의 말대로 친구 사이나 선후배 사이에서 일어나는 질투가 심하면 마음을 갉아 먹나보다.
루리의 완벽한 미모를 늘 동경하던 사라는 성형수술로 야하고 관능적이길 바라게 되고 야한 화장술과 돋보이는 치장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야한 관능, 육체적 쾌락, 노출증적 쾌감을 느껴도 해소되지 않는 깊은 허무와 우울감.... 그녀의 내면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대한 공포? 인간에 대한 공포? 삶의 덧없음에 대한 회의? 단순히 외모에 대한 열등감?....
그렇게 즐거움을 찾던 사라는 우울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상실감만 더해 가는데....
나는 왜 완벽하게 정신적인 사랑과 완벽하게 관능적인 사랑에 대한 양가감정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전적으로 외모만 야한 여자를 좋아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도 거룩하고 외모로도 야한, 정말 무섭도록 고혹적이고 미적으로 치명적인, 글자 그대로 귀신같은 매력을 지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그런 완벽한 여자를, 무턱대고 애모하고 있는 나 자신의 터무니없이 욕심 많은 여성관이 혐오스러워졌다.
......
꽃들이 다투어 악쓰며 피어나는 것은 결국 종족 보존의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자우의 결합이 목적일거야. 꽃들은 그 때문에 관능적 교태와 암내 섞인 향기, 그리고 달콤한 꿀로써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것이지, '아름다움' 그 자체를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야. 말하자면 꽃들은 모두 누군가에게서 사랑받으려고 갖은 애를 써가며 몸부림치고 있어. (본문 중에서)
진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행복'이란 철학자나 윤리학자들이 관념을 팔아 밥을 먹고 살기 위해 쓰는 용어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해. '행복하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쾌감을 느낀다' 는 표현이 더 정직한 표현일 거야. (본문 중에서)

저자의 말처럼 우리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다원성과 자유일까. 표현의 자유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쾌락과 사치로도 해결하지 못한 사라의 우울증을 표현의 자유로는 해결하지 못했는데...
물론, 표현의 자유는 필요하다. 단, 미풍양속을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 자유가 지나치면 방종이 되어 꼴불견과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하니까. 표현도 지나치면 역겨움과 불편함 마음을 지니게 하니까. 그야말로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니까 전체적인 고려와 배려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있다. 야한 여자, 야한 남자가 지나가면 한 번쯤 흘깃하기도 하지만 솔직 담백한 사람, 수수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옅은 화장도 좋아하지만 그대로의 민낯을 더 사랑한다. 야한 치장 뒤에 숨고 싶은 본심의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느낌이 싫어서인지도 모른다.
예술가든 일반인이든 누구나 광기가 있을 수 있고, 윤리와 도덕에 집착할 수도 있다. 돈에 집착할 수도 있고 사랑에 집착할 수도 있다. 자유에 집착할 수도 있고 구속에 집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선량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서로가 이해를 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