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명화의 수수께끼
드림프로젝트 지음, 홍성민 옮김, 이강훈 그림 / 비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세계명화의 수수께끼- 그림 속에 이런 놀라운 비밀이~~

 

그림에 관련된 책 몇 권을 내리 읽으면서 이제 그림을 좀 아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그림에 얽힌 사연이 우리가 이전에 알던 것과 다르다는 책을 접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그림에 대한 이해의 길은 아직 멀었구나 싶으면서도 슬슬 흥미가 돋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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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그림 속에 감춰진 놀라운 비밀과 발칙한 거짓말을 부제로 한 책.

<세계명화의 수수께끼>

 

이 책은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고 추리소설보다 흥미진진한 89가지 명화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지만 그나마 알고 있던 것도 가짜지식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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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의 메인요리를 왜 양고기 대신 생선을 그렸을까

 

<최후의 만찬>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텔레그라치에성당의 식당에 그려진 벽화다. 예수의 얼굴도 미완성이지만 손상된 부분이 많고 오염돼 있어서 만찬에 나온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1999년 세정작업을 하면서 메인요리가 생선으로 밝혀지는데...

최후의 만찬이 있던 날은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관습대로 어린 양고기를 먹었을 텐데 생선이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어로 물고기'JCHTHUS', 그것은 "예수 Jesus', '그리스도 Christos', 하나님의 아들 Theon Uios', 구세주 Soter' 라는 단어의 조합과도 같다. 장난 같은 단어의 조합 같지만, 예수의 상징이 된 물고기를 최후의 만찬에 그렸다는 사실은 '희생양'으로서의 이미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의도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박해의 역사를 담으려 한 의도도 숨어 있다고 한다.

그림 속에 은유와 암시를 담고자 했던 다빈치의 재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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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걸작 <만종>에 나오는 농부 부부는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기 전 슬퍼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화단에 나타난 바르비종파는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화폭에 담았다. 그 중 농민화가로 알려진 장 프랑수아 밀레.

후대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부부 사이에 놓인 바구니가 수확한 작물을 담는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아이를 담은 관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잃고 슬퍼하며 관을 묻기 전에 잠시 기도하고 있었다니.....

밀레의 <만종>은 빛과 그림자가 녹아들듯이 스며들며 인물을 부각시켜 순박한 농부의 삶과 신앙심을 살려낸 걸작 중의 걸작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들판에서 저녁종소리를 들으며 하루 일을 마치는 감사의 기도로는 바구니가 빈약해 보인다.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하는 남자의 모습, 애절하고 간절하게 두 손 모으며 기도하는 여자 모두 예사롭지 않은 자태다.

달리 측에선 루브르에서 엑스선 검사를 하니 바구니 아래에 아이의 무덤이 있었던 것 같다는 주장도 했으나 밀레 연구자들은 달리의 주장을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누구의 주장이 맞을까. 밀레만이 알고 있을 <만종>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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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서 나폴레옹이 탄 것은 '말'이 아니라 '당나귀'였다?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험한 산길에 강한 당나귀가 말 대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탄 당나귀 옆에는 길 안내를 위해서 현지인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검은색 옷 위에 주홍색 망토를 걸친 초상화 속의 씩씩한 나폴레옹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앞발을 든 말 위에 앉은 평온한 자세를 그려 주시오."

나폴레옹의 주문대로 그렸다는 이 그림이 확실히 영웅적 이미지에 걸맞은 힘과 열정이 느껴진다. 실제 모습을 조작한 영웅주의, 정보조작의 흔적들이다.

 

 

살아서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고흐, 죽어서 갑부가 되었다?

 

생전에 팔린 고흐의 그림은 <붉은 포도밭> 뿐 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헐값에 팔렸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작품은 어마어마한 값인데....

고흐가 죽고 난 뒤에야 그의 작품들이 후한 평가를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권총으로 자살한 형 고흐를 위해 동생 테오는 자신의 화랑을 열어 형의 개인전을 열 계획을 세우지만 자신도 반년 뒤에 죽고 만다.

고흐가 죽은 지 15년 만에, 테오의 아내와 아들의 노력으로 최초의 회고전을 열면서 고흐의 그림들은 세상의 이해와 관심을 받게 된다. 그들은 고흐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국의 미술관으로 보내 전시하거나 팔지 않았다. 그 대신 고흐 미술관을 차려 그의 예술혼을 알리고자 했다.

안타깝게도 테오와 조안나 모두 고흐 작품의 명성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위대한 예술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 덕분에 고흐의 방대한 작품은 지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예술을 사랑한 두 형제와 그 가족들의 예술에 대한 일편단심에 감동이다.

 

너는 단순한 미술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다오.

-테오 앞으로 온 고흐의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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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겔은 왜 콜로세움을 모델로 고대의 바벨탑을 그렸을까?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피라미드와 비슷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를 모델로 했다. 하지만 16세기 벨기에 화가 브뤼겔이 그린 바벨탑은 지구라트와 다르다. 그의 그림은 콜로세움을 고층으로 지어놓은 모양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바벨탑>은 브뤼겔이 콜로세움을 모델로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 지배하에 있으면서 항의의 표시이며, 바빌로니아와 로마가 멸망했듯 스페인의 지배도 곧 끝이라는 암시라고 한다.

그림의 배경도 메소포타미아의 사막 한 가운데가 아닌 항구를 떠올리게 하는 물가. 물가에 세워진 바벨탑, 곧 스페인 지배의 종식과 브뤼겔의 시대를 암시한다고 한다고 하니 놀랍다.

무심히 본 그림 속에 그런 항의가 들어 있다니.....

앞으로는 역사와 작가의 처지를 알고 그림을 봐야 겠다. 이것도 일종의 통섭인 거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는 색채에 대한 치밀한 연구 끝에 탄생했다?

 

19세기 프랑스 신인상파의 중심인물 조르주 쇠라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점묘화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태양 아래 밝은 자연의 풍경을 그릴 때 그림물감을 섞지 않고 여러 개의 색을 아주 촘촘하게 캔버스에 찍었다. 이것은 조금 멀리서 보면 색의 밝기가 그대로 살아있다는 색채분할의 방법.

쇠라는 색채이론가를 찾아가 색채대비, 보색관계 등을 배우며 물체의 색이 한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빛의 반사에 따른 색의 변화, 주변 물체에 따라 다르게 감지되는 색채의 변화들을 치밀하게 연구한다.

이 작품은 2년 정도의 긴 시간을 들여 무수한 점들로 그린 것이다. 과학적인 색채연구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을 공들인 화가의 인내와 끈기로 맺은 작품...

모르고 볼 때는 밝은 색채의 고요한 분위기, 섬세한 점묘법의 그림 정도로만 알았는데.....

점묘법을 철저히 연구하고 지킨 쇠라, 선이나 면이 아닌 점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쇠라, 참~대단하고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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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히티의 한 소녀가 시들해진 고갱의 창작욕과 열정을 되살렸다?

 

처음에는 파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하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고갱.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걸으면서 고흐와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그러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타히티로 이주한 그.

문명세계도 아니고 원시의 섬도 아닌 어정쩡한 타히티의 모습에 실망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마타이에아라는 마을에서 발견한 소녀 테하아마나를 만나면서 열대의 섬이 가진 풍부한 색감에 눈을 뜨게 된다. 타히티 시절의 모델은 그렇게 탄생하며 그의 시들해진 창작욕을 불태우게 된다.

식민지가 되기 전의 타히티 본래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 살리고자 했던 고갱. 파리 미술계로부터는 외면당했지만 그는 타히티에서 원주민 여성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덕분에 우리는 그의 그림 속 타히티 여인들의 생명력과 강렬한 열대 색감을 만나볼 수 있는 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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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 자신의 라이벌 미켈란젤로를 그린 까닭은?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의 '서명의 방'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네 점이 있다. 신학, 법학, 철학, 시학을 나타내는 네 개의 벽화들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 받는다는 <아테네의 학당>.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50명이 넘는 위인들이 나온다.

과거의 위인을 현재 살아 있는 사람과 비슷하게 그리는 이유는 두 사람의 업적을 동시에 기릴 때 사용한다고 한다.

라파엘로는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인 다 빈치를 모델로 플라톤을 그렸고 라이벌이면서도 존경하는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렸다고 한다.

이 인물의 위치를 앞쪽 가운데에 놓았다는 건 미켈란젤로와 다빈치에 대한 존경의 표시리고 한다. 그리고 그림의 오른쪽 끝에는 자신을 모델로 한 인물도 그려놓았다.

천재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증거를 이렇게 남긴 라파엘로. 천재들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천재성을 은연히 뽐내고 있다는 뜻이리라.

누구에게나 자신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나 보다. 천재들도 예외는 아닌 걸 보면.....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과 암호, 그림 속 소도구에 감춰진 기절초풍할 메시지, 화가 자신과 모델의 아슬아슬한 남녀관계, 시대적 상황에 대한 암시들, 희대의 스캔들, 거장들의 천재적인 테크닉, 드라마틱한 거장들의 삶.....

 

명화에서 얻은 암시들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그 시절의 정치, 경제, 문화가 녹아있는 그림읽기다.

좋은 작가의 좋아하는 그림에 얽힌 유쾌한 비밀을 알고 나니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평소 좋아하던 그림이 주는 반전에 더욱 그림의 세계로 빨려들게 한다.

 

흥미진진하다는 건 계속 지탱하게 하는 힘을 준다.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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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6-0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에 역사, 정치, 문화, 사상이 재치있게 담겨 있네요. 상상력에 통찰력을 키워주는 책. 이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군요.



봄덕 2013-06-08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알고 있던 명화 지식의 대부분이 가짜라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드러나지 않았던 비밀들이 서서히 수면위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이군요.^^ 그림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