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 노재희 소설집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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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 진정 고독과 통하였느냐!!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스스로 고독하다고 느낄 때는 또 언제일까.

사실 고독이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지만 결론적으로 나에게 고독은   아리송하다.

 혼자 외로워하는 것이라는 고독.

 

 

진짜 내 인생을 살려면 그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시인 김수영은 고독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했다는데.....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이 말은 니체의 문장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 나온 <고독의 발명>.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직장인, 엄복태.

그에게 있어서 중견기업의 과장자리는 토끼 같은 아들과 여우같은 마누라를 먹여 살리려는 가부장의 궁여지책일 뿐이다. 실상은 오매불망 시에 목매달고 있다.

 

애초에 '시인의 아내로 만들어 줄 게' 로 시작한 청혼이 결혼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씩 아내는 '당신은 언제 시인이 될 건가?' 라는 질문을 무심코 던진다. 그런 아내의 질문은 심장에 가시를 박게 하지만 늘 그렇듯 시심은 말라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혼자 산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현실이다.

 

대학시절 시가 주구장창 써 지지 않을 때, 그가 발견한 문구는 바로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이었다. 그 시절에 김수영 시인의 <거대한 뿌리>를 실수로 똥통에 빠뜨린 불경한 짓을 저지르고는 마음이 아팠다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시가 똥통에 거대한 뿌리를 박고 줄기를 뻗고 꽃을 피워 열매 맺기를 기대해 보기도 한다.

 

그에게는 시적 미학의 완성이라는 시인이 되고 독자와 만나는 것이 언제쯤 이뤄질까. 그는 필살기로 거실에 있던 TV와 컴퓨터를 안방으로 치우고 책상도 정리하고 파티션도 세워서 자신의 영역을 마련한다. 그 공간에서 잠시 고독에 빠지는 늦은 밤을 보낸다. 그가 시와 노는 시간인 것이다. 시인은 고독해야 한다니까....

 

마음 속 스승 김수영을 생각할 때마다,

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괄약근을 힘껏 조였다.

그럴 때마다 고독은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했던 김수영의 말을 곱씹었다.

엄복태는 무엇보다도 고독을 원했다.

 

 

 

 

진짜 내 인생을 살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야.

멀리서 쳐다보기만 하는 건 이제 그만이야!

그는 갑자기 가슴이 벌렁거렸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가 날마다 괴로워하고, 고독해 하며 시를 쓰는데도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고독이 덜 깊어서 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시의 세계에 온전히 빠지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선배의 말처럼 힘이 너무 들어가서일까.

 

 

 

혼자 있을 수 있는 자만이

관계에 매달리지 않고 오히려 좋은 인간관계를 꾸려 갈 수 있다.

 

 

 

어느 날 한 줄기 빛처럼 그에게 찾아 온 한 문장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 그게 시를 쓰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인가.

 

 

 

시인과 고독, 고독한 시인 그러고 보니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윤동주, 고향산천에서의 김소월, 제비다방에서의 이상.....

시심과 고독은 통하는가 보다.

 

 

 

 

 

시인이 되고 싶은 자의 절대고독의 경지가 어떻기에 니체는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고 했을까.

 

 

 

이 책에는 시인이 되지 못한 자의 애환이 담겨 있다. 작가는 고독을 유머와 기지가 번득이는 문장들로 승화시켜 놓았다.  정말 유쾌하게 읽어 버렸다.

작가인 노재희가 이미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력에 고개를 끄덕인다.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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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6-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의 이력도 대단하고, 고독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한 사나이의 처절한 몸부림을 유쾌하게 그려서 대단한 작가다

봄덕 2013-06-0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고로 시인은 고독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눈치 9단의 직장인이 시를 쓴다는 것은 희소하다. 우린 그 희소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별종취급해 버린다. 이 소설은 그런 분위기를 재미있게 그려냈다.

봄덕 2013-06-0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쓰기는 어렵고, 시를 안 쓰자니 괴롭고.... 그래도 그 고통이 자신이 하고 싶어서 선택한 거라면 그 괴로움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요, 즐거운 부담이다.

봄덕 2013-06-0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에는 시로 점을 친다는 시점에 대한 얘기가 흥미롭다. 문학에서 그런 식으로 우려 먹는다는데, 우리는 문학 뿐만 아니라 신화도, 전설도, 고전도, 사자성어도 그렇게 우려 먹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