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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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_ 19세, 그 혼란의 성문화를 이야기하다.

 

 

-한 번 하자.

-싫어.

.......

-한 번 하자.

-싫어, 인마.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이다. 왠지 19금 분위기가 소설을 장악할 것 같은 예감이다. 얼굴 붉힐 일이 많을까?

제목에서도 19금의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童貞? 同情? 動靜? 同精? 동정?

 

작가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배반치 않고 시종일관 십대의 성을 다루고 있다. 19금이냐고? 살짝 19금. 아무튼 이 소설에는 포르노, 마스터베이션, 야동, 섹스 등이 거침없이 다뤄진다.

 

 

19세, 수능을 치고 난 직후.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어정쩡한 경계에 선 남자 아이들의 성문화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이다.

 

 

 

주인공 준호는 자나 깨나 여친 서영이와 한 번 해 보는 게 소원인 아이다. 공부 잘하는 서영이는 매번 싫다며 다른 것에 관심을 돌려 보라고 한다. 그러나 준호의 구애는 끈질긴 고무줄이요, 착착 달라붙는 찹쌀떡이다.

 

 

 

남자는 여자를 알아야 어른이 되는 거야.

 

 

이 말은 친구 경석이의 주 레퍼토리다.

친구들은 벌써 미아리에 가서 동정을 떼고 어른이 되었다고 자랑 질인데……. 준호는 자신만 아이인 것에 은근 약발 돋는다.

 

죽을 때는 따로 죽더라도 살 때는 같이 살아야 한다친구들의 맹세가 부질없다는 생각에 배신감만 든다. 그렇다고 미아리로 가자니 서영이가 걸리고 …….

 

 

수능은 봤지만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도,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없지만 열렬한 단 하나의 소망이라면 서영이와 한 번 해 보는 것이다. 섹스를 하고 싶은 욕망과의 투쟁.....

 

 

-십대가 성욕이 제일 왕성한 때인데 못하게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생물학적인 나이와 사회적 나이의 괴리 탓이야.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십대에 이미 시집가고 장가가고 했잖아....

 

 

성적 욕망이 가장 빠른 시기가 지금이라며 자신의 생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준호. 친구이자 아버지 같은 삼촌, 명호 씨는 조카의 궁금증에 농경시대와 자본주의 시대를 비교하며 궁금증을 풀어 준다.

 

 

 

야설과 소설이 한끝 차이라는 준호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그 한끝의 차이가 실은 굉장한 차이임을 느끼게 된다.

 

 

준호 엄마 숙경 씨.

주변에 흔한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바람직한 모성 상을 보여줘서 가장 깊은 인물이다.

 

 

-엄마, 우리 집에는 왜 아빠가 없어?

-아빠? 왜 없냐면 말이지. 없으니까 없는 거야.

-그래도 다른 집에는 다 있는데?

-그럼 말이지.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가 있어?

-없어.

―그러면 할머니는 있어?

-돌아가셨잖아.

-그래서 지금은 없지?

-응.

-우리 집에는 아빠만 없는 게 아니라 할머니도 없고 할아버지도 없고 네 형이나 동생도 없어. 근데 어떤 아이들은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도 있을 테고 또 어떤 아이들은 형이나 동생이 있지? 식구라는 건 다 그렇게 집마다 다르게 있는 거야. 무슨 얘기인지 알겠어?

-응.

 

 

아빠가 왜 없냐는 아이의 질문에 조곤조곤 예를 들어가며 집집마다 다른 게 현실이고 그게 자연스럽다고 설명한다. 요즘엔 한 부모 아이가 많다고 하는데 좋은 답변 같아서 가슴에 새겨 둬야겠다.

 

 

-이제 슬슬 원서 쓸 때지? 어떻게 할지 생각은 해봤어?

-아직 모르겠어.……. 정말 나 대학 안 가고 미용학원 같은 데 가도 괜찮겠어? 아니 미용학원도 안 가고 다른데 취직도 안 하고 그냥 집에만 있어도 괜찮겠어?

―네가 한 제일 큰 효도가 뭔지 알아?

-뭔데?

-네가 태어나서 이십 년 동안 내 옆에 있었다는 거야.

 

 

자식에게 대학가지 않는다고 야단은커녕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절대 사랑의 경지. 말은 맞는데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자식사랑의 고수다운 말에 숙연하고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가까이 있어야 효도인 것인 것은 맞는 것 같다.

 

 

독일사는 친구, 영국사는 친구들이 있다. 자식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고 하는 친구 엄마들을 뵐 때, 가까이 사는 게 효도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수험생의 비애를 묘사한 부분은 가슴 아프다.

우등생 영석. 그는 서영이 사촌이기에 늘 성적 좋은 서영이와 비교되는 불운의 친구.

잘 나온 성적에도 불구하고 부모 모두 서울대생, 두 형들도 서울대생이다 보니 자신도 서울대를 가야 격을 맞출 수 있는 집안…….그래서 결국, 재수를 선택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는 게 아니라 학벌을 찾아가는 모습에 안타깝다. 우리의 모습 같아서......

 

 

준호는 대학을 가느냐. 엄마처럼 헤어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용학원을 가느냐로 저울질 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길을 가는 친구들을 보며 심심해한다.

 

 

아무리 옆에 사람들이 많다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이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존재본연의 고독함을 폐부 깊숙이 느끼는 준호…….준호는 심심한 것보다는 근사해 보이는 고독을 택한다며 소설을 읽는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돈 주앙, 오양의 이야기, 눈 이야기, 북회귀선, 작은 새, 홍루몽, 소녀경......

 

 

 

삼촌 명호 씨.

서울법대를 나왔으나 백수생활 끝에 어릴 적 꿈이었던 만화카페를 연다. 위풍당당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멋지다.

그는 포르노를 수집하는 조카에게 포르노의 뜻과 어원을 찾아보게 한고 궁금해 하는 것을 상담해 준다.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준호가 아니기에 일단 들어주고 충고하는 센스 있는 삼촌.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져 버려.......

욕구라는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게 되어 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는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 봐.

 

내가 일류로 근사한 사람이 되면 내가 나온 대학은 무조건 일류대가 될 것이다.

 

 

 

무엇을 하건 간에 어차피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준호는 미래에 대해서도 섹스에 대해서도 점점 어른스러워져 간다. 그래도 아직은 어른이 되는 과정이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때론 되고 싶기도 하고, 때론 되고 싶지 않기도 한 어른.

하고 싶은 게 뭔지 막연하기만 한데, 선택은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감은 몰려들고......

불쑥 솟는 욕구도 다스려야하고 미래도 설계해야 하는 시점. 19세.

 

갑자기 커버린 당혹감에 한 번 쯤은 세월이 정지하기를 바란 적은 없었을까.

 

 

 

이 소설에는 동음이의어의 잔칫상 같다. 사색, 동정....

그리고 온갖 유명인들이 동정을 뗀 시기에 대한 열거도 흥미롭다. 평균 16세....

성에 관한 주제를 다룬 소설도 굉장히 많이 나온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소녀경.......

 

 

 

 

성을 매개로 했지만, 수능이 끝난 어중간 시점의 청소년의 심경을 잘 대변해 준 소설.

19세의 심리묘사가 제대로 되어 있는 소설.

 

십대들의 성적 호기심을 풀어 주면서 그들의 성문화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설이다. 성적 자극이 널려 있는 시대에 올바른 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 소설..... 청소년들이 있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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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5-28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십대의 성문화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가득한 소설. 우리시대의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도 그리고 있어서 훈훈한 소설. 살짝 19금인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