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폐허
제스 월터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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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허 - 이야기들은 사람들이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이야기들은 사람들이야. 나도 이야기고 너도 이야기고... 네 아버지도 이야기지. 우리 이야기들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나가는데, 가끔, 운이 좋으면, 우리 이야기들이 하나로 합쳐지기도 해. 그러면 우리는 잠시나마 덜 외로워지는 거야. (92쪽)

 

 

 

 

이탈리아의 한 해안가, 절벽과 바다 사이의 틈새에 낀 작고 외진 마을인 포르토 베르고냐. 전화도 없고 도로도 없고 기차도 없는, 오직 배로만 오갈 수 있는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이다.

 

 

 

가족 소유의 작고 텅 빈 호텔을 꾸려가고 있는 젊고 멋진 파스쿠알레 투르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호텔식당일을 도와주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다. 장차 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명성을 얻게 되리라는 것은 단지 그의 희망사항일 뿐, 실제로는 권태와 만족 사이, 행복과 불행 사이를 적당히 오가는 일상이다.

 

어느 날 죽어가는 미모의 미국 배우 디 모레이의 도착으로 어둡던 호텔에 활기와 긴장이 돋는다. 회색빛 삶 속에 짧게 무지개가 드리워지는 순간이랄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꿈이라기보다 오히려 한 평생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대하는 소나기의 청명함이라 할 수 있었다. (9쪽)

 

 

 

 

이탈리아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클레오파트라>에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캐스팅되면서 영화 홍보담당인 마이클 딘은 두 주인공의 실제 열애사실로 홍보효과를 노리려고 한다. 두 주인공 모두 기혼자였던 만큼 그들의 열애는 기자들의 관심과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리즈의 시녀역인 금발의 디 모레이는 리처드 버튼의 사랑을 받고 그의 아이를 가지지만 영화를 위해 몰래 멀리 보내지게 된다. 뜨거운 열애설이 지저분한 스캔들로 알려지는 순간 영화홍보는 물 건너 간 것이 되므로....

 

 

엉뚱하게 도착하게 된 곳이 바로 파스쿠알레의 포르토 베르고냐의 호텔..... 어머니를 암으로 잃은 충격에 의사의 암 진단은 그녀를 절망에 빠뜨리게 된다. 죽음만 바라보는 그녀에게 호텔에서의 유일한 낙이라면 젊고 멋진 파스쿠알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근처 절벽을 오르거나 실패한 미국의 작가 앨비스 벤더의 쓰다만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며칠 뒤 자신이 위암이 아니라 리처드 버튼의 아이를 임신했고 이 모든 것이 뱃속의 아이를 없애려는 마이클의 계략임을 알고 더욱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던 그녀는 파스쿠알레와 앨비스 벤더의 도움으로 미국에 꼭꼭 숨어버리게 된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마이클의 스튜디오를 찾은 은발의 파스쿠알레.....디 모레이를 찾아 왔다는데....

 

1962년에 일어난 한순간의 이야기가 50년의 세월을 흘러 어떠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한 편의 영화를 보듯, 1962년과 현재 사이를 오가는 동안 일어난 사랑, 인생, 가족, 일에 대한 이야기들....

파스쿠알레, 디 모레이, 마이클 딘의 이야기들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그 외 주변 단역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끼어든다.

 

 

디 모레이를 짝사랑했던 파스쿠알레는 상사병이 든 청년의 마음을 숨기고 자신의 첫사랑과 자신의 아들을 찾아 피렌체로 떠나고 거기에서 아이들의 아버지로, 남편으로 살아간다. 가슴 속에 남겨진 말 못한 그리움은 우울증으로 변하지만 현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주어진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갈 뿐이다.

 

 

실패한 작가, 성공한 술꾼인 미국인 작가 앨비스 벤더. 글을 쓰기 위해 해마다 들르는 파스쿠알레의 호텔에서도 그의 글은 진전이 없고 술 실력만 는다. 아버지의 자동차 대리점 성공으로 글쓰기를 포기하고 가업을 이어가고....아름다운 디 모레이를 찾아서 그녀와 결혼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한다.

 

 

자유로운 영혼 디 모레이. 연극배우를 꿈꾸다가 영화판에 뛰어 들었지만 리처드 버튼과의 짧은 사랑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서 꼭꼭 숨어 살게 된다. 말없이 갑자기 떠난 파스쿠알레에 대한 우정과 사랑에 감사하지만 이젠 가슴 한켠에 자리한 쓸쓸한 추억이 되고....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억누르는 대신 학생들의 야망을 북돋워주는 일에 재미를 느끼며 교사로 ,극장운영자로 살아간다. 데보라 무어라는 이름으로 사는 동안 진정한 희생에는 고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삶을 견뎌온 여자.....

 

 

마이클 딘. 20세기 폭스사의 홍보담당으로 시작해서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성공으로 탄탄대로를 달린다. 더 젊어 보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온갖 시술을 해서 피부를 탱탱하게 유지하지만 영화판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만 골몰하는 진실성이 결여된 남자....

 

 

마이클 딘의 도움으로 드디어 만나게 된 파스쿠알레와 디 모레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미안해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어요.(426)

 

 

흰머리에 주름투성이, 지팡이나 휠체어의 신세를 지고 만나게 되는 늦은 황혼, 호숫가에서의 조우......

 

살짝 비껴가는 인연들이 들쭉날쭉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전체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인생인가보다.

 

젊은 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눈부신 설렘과 야망이 세월이 흘러 서서히 허물어지고 폐허로 남을지라도 그래서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인생은 아름다운가 보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햇빛 아래서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451쪽)

 

 

지나간 일들이 다 화려할 수는 없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여러 빛깔의 이야기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음료처럼 마시기도 하고 나무처럼 기대기도 하다가 황혼의 노을 앞에서 이야기를 음미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예상 밖으로 꼬일 때도 있고 의외로 술술 풀릴 때도 있고......

 

매순간 여러 방향으로 퍼졌다가 모였다가 부서지기도 하는 인생..... 그조차도 아름다운 것임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야기는 나라와 같다. 이탈리아는 대서사시, 영국은 두꺼운 장편소설, 미국은 화려한 테크니컬로 찍은 경박한 영화다. - 앨비스 벤더 (409쪽)

어떤 때는 말이야..... 우리가 하고 싶은 일과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 똑같지가 않단다.....네가 하고픈 일과 해야 하는 옳은 일 사이의 틈이 작을수록 너는 더 행복해 질 거야..... 우리의 의지와 욕망이 언제나 맞아 떨어진다면 인생이 얼마나 살기 쉬워질까.....(407쪽)

 

 

인생은 몇 장의 서류로 요약되기도 하고

한 권의 소설로 완성되기도 한다.

인생은 한 편의 다큐로 찍을 수도 있고

한편의 시로 노래할 수도 있다.

 

 

엘도라도.

그 환상의 이상향이 현실엔 없을지라도 우리는 맺어진 인연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각본에도 없는 스토리를.......

이야기들은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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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5-25 0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그렇게 노력하다가 결국엔 홀로 죽는다해도.그래서 폐허로 남는다해도 아름다운 것임을 일깨운 소설. 그리스로마의 건축유물처럼,닳아서 덧칠해진 프레스코벽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