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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인생충전기
안은영 지음 / 해냄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여자인생충전기 - 그대 청춘에도 충전은 필요해^^
삶이 힘겨울 때는 잠깐 쉬어도 좋아.
얼어버린 네 마음에서 윤기가 솟아날 테니......(표지글)
이 책의 저자 안은영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18년 동안 월간지와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여성들의 사랑과 연애 및 직장생활과 인간관계를 다룬 조언서 <여자생활백서>, 남자와 연애에 관한 지침서 <여자생활백서 2>, 흔들리는 청춘에게 소박한 위로의 편지를 담은 <여자공감>등을 출간했다. 이 3권의 책 모두 중국과 대만까지도 출판된 이력이 있는 기자출신의 작가이다. 저자의 책들이 2030 여성들의 멘토로 자리매김하면서 이 책 역시 2030 여성들의 취향에 어울리는 상큼 발랄한 책이다. 각 장마다 7권의 책소개가 있어서 35권의 책을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경쾌하게 리뷰한 책이다. 읽으면서 도서목록을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책 목록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어서 맥 빠지는 기분이었지만 반갑고 좋았다.
한쪽에서는 힘들다고 볼 멘 소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속삭인다. 삶이 생존이기에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지라 2030이든 3040이든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저지른다는 게 쉽지 만은 않다.
때때로 생활의 적은 생활인 듯하다.
너무 빡빡한 일상이 계속되다보면 왜 사는 건지 허해질 때가 있다. 어깨엔 힘이 빠지고 그런다고 갑이 되는 것도 아닌 현실의 매정함에 여유로운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할 때가 있다. 바로 그러한 때가 2030이 아닐까 싶다.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갖고 돌아보는 지혜를 가지라고 저자는 외쳐댄다.
독서와 여행, 연애와 취재, 영화와 오락 등의 일상을 꼬리에 꼬리를 물며 털어 놓고 있다. 가벼운 수다 같다가 깊이 있는 농담 같다가 푸른 바닷속으로 빠졌다가 깊숙한 산 속으로 기어드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산다는 것의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별다를 것 없는 비슷한 일상들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공간을 비워 냈을 때의 기분 좋은 여유에 공감이 되기도 한다.
음식이야기에선 어느덧 입에 침이 고이고 책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지다가 여행이야기에 두 눈이 커져가고 음악이야기에는 몸이 가볍게 흔들리게 된다.
철저한 혼자만의 시간을 내서 내 속의 아우성을 들어 보고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자신을 점검해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 시간에 우리는 치유와 성장의 짜릿한 체험을 하게 되니까.
이 책은 5장의 테마로 이루어져 있고 각 장마다 7가지 주제와 7권의 책소개와 일상의 스토리들이 버무려져 있다.
1장 끊임없이 움직여야 끊임없이 성장한다.
한창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김은정 <옷 이야기>
최예선 <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목수정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산도르 마라이 <열정>
암컷은 봄철에 알이 차 있다. 알 맛이 기가 막히다. 아주 잔 햅쌀로 밥을 지어놓은 것 같다. 씹는 질감이 끝내준다. 머리를 가르면 먹물이 들어 있다. 이게 소스 역할을 한다. 찍어먹으면 된다. 너무 익히면 먹물이 굳어 버린다. 다리는 어슷어슷 잘라 무쳐놓으면 좋은 반찬이 된다. -한창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속 '문어' 중에서 -본문 17쪽-
이 부분은 절대 배고플 때 읽지 마시라. 더욱 허기가 질 터이니. 표현이 너무 맛깔스러워서 배를 움켜잡고 읽었다. 남도 바닷마을 출신 작가의 글이니 고향을 만난 듯 바싹바싹하고 쫀득쫀득한 표현들이 본능 아니겠는가.
2장 앓지 마, 아프면 울어야지
김현 <행복한 책읽기>
조세핀 하트 <데미지>
이성복 <남해 금산>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닉 혼비 <하이 피델리티>
티에리 종케 <독거미>
요시나가 후미 <서양골동양과자점>
이문열의 아버지가 교수직을 정년퇴직해서 신의주에서 살고 있다대. 이문열의 우파적 발상은 그것과도 관계가 있을 거야. 아마 거기 가보고 싶은 모양이던데 모든 사유의 뒤에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나 보다. -김현 <행복한 책읽기>- 본문 73쪽
좋은 글, 깊은 울림이 있는 글을 한 글자씩 씹어 먹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깊은 공감이다.
나 역시도 이문열의 글이나 김현의 글 모두 오드득오드득 씹고 싶다.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 두 눈 부라리며 읽던 기억이 새롭다.
3장 지금도 우리는 무수한 순간들로 완성되고 있다
박완서 <그 남자의 집>
장석주 <애인>
피천득 <인연>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이병률 <끌림>
강풀 <순정만화>
이이지마 나미 <LIFE>
누구든 떠나는 순간이 되면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서 거꾸로 매달려 있던 자신과, 가능하다면 한동안 품고 살았던 정신의 부산함을 그 자리에 걸어두고 떠나려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되고 수심 깊디깊은 강을 건너는 일처럼 시작하지 말아야 했을 일이 돼버린다. -이병률 <끌림> - 본문 160쪽
나는 이 여행 산문집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앞을 보고 떠나는 순간에 뒤에 남겨진 것들을 돌아본다는 대목이 자석처럼 끌린다. 비워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묘하게 나타낸 듯하다. 미련 많은 인간의 욕심꾸러미들을 비워내고 게워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한다.
4장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 그럼에도 쉽게 지켜지지 않는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백석 <정본 백석 시집>
미셸 투르니에 <뒷모습>
마리 다리외세크 <암퇘지>
김정호 <조선의 탐식가들>
김영주 <캘리포니아>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중략)......
눈이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본문 191쪽
<정본 백석 시집> 을 읽어 봐야지 하며 벼르고만 있다가 아직도 손에 들지 못했는데 이 구절을 보면서 얼른 사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응앙응앙' 이 귀여운 표현 때문에라도 말이다. '응앙응앙' 이 한마디에 히죽거리며 헤헤거리며 한참을, 정말로 한참을 쳐다봤다. 나는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어떻게 흉내 낼까. 우왕우왕.
5장 치열하게 고민하면 삶이 다가 올 거야
다니엘 글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데즈먼드 모리스 <털 없는 원숭이>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아베 야로 <심야식당6>
마루야마 겐지 <여름의 흐름>
온다 리쿠 <밤의 피크닉>
우리에게는 그들을 잊을 권리가 없다. 박종철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부친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들이 못돼서 죽었소. 똑똑하면 다 못된 것 아니오?" 이 반어에는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 똑똑하지만 너무 착한 우리들에게도 20년 전의 그 6월이 온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 본문 262쪽
더불어 살자고 늘 외쳐대지만 허공에 뿌려지고 마는지 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아직도 가까운 듯 먼 듯하다. 이 부분에서는 80년대의 매캐한 최루탄 가스가 쏟아진 듯 눈물겹다. 부모보다 앞서 간 자식의 죽음이 원통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냐마는 탁! 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수사발표에 얼마나 속이 뒤집혔을까. 6월 항쟁의 불씨가 됐다는 박종철 사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민주화를 위해 애쓰고 희생한 분들 덕분에 우리의 민주화는 한층 앞 당겨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지는 마음뿐이다.
가볍게 들었다가 의외의 깊은 성찰에 무게감을 느끼기도 하는 책. <여자인생충전기>
일과 삶과 휴식의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은 2030에게 그래도 쉬면서 충전하며 움직이라고, 그래야 도태되지 않는다고 사이다처럼 톡 쏘아댄다.
배터리가 다 되거나 방전된 느낌이 든다면 이 책을 읽어 보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릴 수 있도록 충전하시라. 그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책을 탐하고 여유를 탐하고 봄을 탐해 보시라. 휴식은 도약이 되고 추억은 에너지로 돌아올 것이며 독서는 충전 100%를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