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의 못난 개항 -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
문소영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조선의 못난 개항- 조선 양반들의 리더십의 부재와 타이밍의 실수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우리 역사, 한 발자국만 일본을 앞서 갔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역사, 제대로 개혁에 성공했더라면 지금 일본과 우리의 처지는 달라졌을 텐데 하는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는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16.jpg)
처음 이 책을 받아든 날, 나는 평소에 읽고 싶은 책이어서 무척 기뻤다.
평소 마음속에 느끼던 궁금한 것들을 속 시원히 풀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한국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쉬운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개항 전후부터 시작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까지였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17.jpg)
대구에 있는 근대 문화골목길 투어를 가다보면 청라언덕, 3.1만세 문화 운동 길과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을 구경하게 된다.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다가 가슴 아픈 역사의 장면들을 사진으로, 비석으로, 건물로 맞닥뜨리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동학혁명과 천도교의 이야기를 담은 <여울물소리>, 정약용 형제와 천주교의 박해를 담은 <흑산>, 윤동주이야기를 담은 <별을 스치는 바람>, 김소월 이야기를 담은 <소월의 딸들> 등의 그 시절에 관련된 역사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최근에 혁신과 관련된 경제 경영서적을 여러 권 읽으면서 눈앞에 아른거리던 생각도 130여 년 전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개혁의 시기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그 시절은 바로 나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사시던 시대여서 그 분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니 더욱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18.jpg)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하지만 E. H Carr 의 말처럼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요, 오늘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창이다. 그러므로 아쉬웠던 우리의 역사를 부지런히 재조명해서 현재와 미래에는 그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 시절을 자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한 발 더 전진하고 싶은 마음이 하늘같다. 그러하기에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면서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인 문소영은 역사학자가 아닌 기자이다. 기자로서의 예리한 눈과 통찰력으로 조선개항 시점의 역사를 집요하게 연구하여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의 부재처럼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 에 대한 이리도 깊이 있는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그 시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다름을 느끼게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19.jpg)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는 47년 동안 조선이 이것만 일찍 했더라면 하는 것이 개항과 개화의 시기이다. 일본보다 한 발 앞섰더라면 그 당시 정치가들에게 미래세계의 판도가 읽혀졌을 것이고 그런 선견지명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오랫동안 민족 전체가 고통의 세월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라의 규모나 인구, 지리적 위치 등이 비슷했던 두 나라 한국과 일본.
조선과 일본의 역사는 130 여 년 전의 개항, 개국을 시점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간격이 벌어지면서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정치 경제에까지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는 꾸준히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해야 할 과거가 바로 개항과 개화기라는데 깊은 동감이다. 도대체 일본의 성공요인은 무엇이고 조선의 실패요인은 무엇인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조선보다 23년 일찍 개항한 일본은 당시의 막부 통치권이 천황에게 이양되면서 내각제와 천황체제를 공고히 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게 된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의 잇따른 승리로 조선에 대한 우선권을 영국, 미국, 러시아로부터 각각 부여 받게 되면서 아시아에서의 위치가 점점 강력해진다. 중국의 제 1차 아편전쟁 때 일본은 위기감을 느낀 반면, 조선은 18년 뒤 제 2차 아편전쟁 때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시작된 네덜란드 무역상들과의 교류는 일본에게 서양문물과 세계흐름에 대한 정보통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본은 외부 정보에 민감하게 되고 국제사회질서에 적응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일본이 유럽 열강만큼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는 1905년 전후이고 조선은 점차 합방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간다.
일본의 하급무사들이 혁명을 통해 부단히 변화를 이끌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킬 때 조선의 양반들은 주자학을 고수하고 명나라를 사대할 것이냐 청나라를 사대할 것이냐로 다투며 외부의 변화는 오랑캐의 일이라고 무시하곤 했다. 일본이 서양의 근대화 문물과 산업시설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고 부국강병을 꾀하는 사이에 조선은 사회적 혼란과 가난 속으로 백성들을 몰아넣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21.jpg)
일본이 유럽과 미국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유학 보내거나 선진 문물을 견학할 때 조선은 기껏 일본과 청에 수십 명의 유람단이나 사절단을 보내는 데 그쳤다.
일본은 개혁의 필요성이 전 지식층과 서민들에게 발 빠르게 확산되어 책출판과 독서인구의 확대로 이어졌고 반면에 조선은 일부 북학파와 실학자들이 개화의 필요를 느꼈지만 실학자들이나 역관들은 정치적 세력이 아니었기에 정책으로 연결되지도 못했고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변혁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지식인들이 필요하고 그들에 의한 학문과 사상의 저변확대가 필요하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1866년에 쓴 <서양사정>이 당시 25만부 팔렸고 <학문의 자유>는 370만 부 이상 팔렸다. 그 외에도 <만국공법>, <문명론의 개략>, <유럽문명사>, <영국 문명사 >, <만국신사 >등의 책이 출판되어 지식층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보다 20년 뒤에야 <만국공법> 이 소개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최초의 유학생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도 1889년에 완성되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23.jpg)
책을 읽으면서 근대를 받아들이는 일본 지식층과 일반 시민들의 분위기가 조선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외국서적을 빠르게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지금도 300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간 책으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정도라고 한다.
처음 시작은 외세에 의한 강제적인 개방 개항이었지만 점차 위기감을 느끼고 자율적으로 개혁 개방을 펼쳐 나간 일본이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 되고 개항에 적응해가며 구체제를 해체해 가는 과정들이 광범위하게 전개된다. 구체제 해체의 주체는 하급무사와 지식인들이고 이들을 성공적인 메이지 유신의 완성은 조선과의 차이를 더욱 벌려 놓는다. 반면 조선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원군은 호포제 실시, 서원철폐, 비변사 폐지 등의 개혁을 실시하기도 하고 개화파들은 갑신정변을 시도해 보지만 큰 성과 없이 단발에 그치고 만다. 그 이후로 우리는 외세에 침략과 간섭에 두 손, 두 발 들고 당하게 되고 급기야 개항한 30년 뒤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405/pimg_726971195841524.jpg)
그 당시에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무엇일까?
만약 기술학을 우대했더라면, 주자학 이외의 다른 학문에 대한 열린 입장이었다면, 동학혁명이나 천주교의 전래를 적극 받아 들였다면……. 우리의 지방 선비들이 근대적 의식을 좀 더 일찍 깨치고 백성들을 계몽했더라면…….흥선 대원군이나 고종에게 강력하고 현실적인 리더십이 있었더라면 ……. 개방의 타이밍이 20년만 앞섰더라면……. 모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은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받아들이는 개방과 속도의 시대. 그 당시나 지금이나 턱없이 부족한 독서인구도 걱정스럽고 평화상 이외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사실도 걱정스럽고 개방과 속도면 에서도 솔직히 우려스럽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많은 고민들을 해 봐야 겠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욕을 먹더라도 의욕을 부린 기자에게 나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