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 북인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김만중의 예술혼과 그의 선견지명에 놀라다

 

 

요즈음 고전과 옛 문학에 끌려서인지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라는 소설이 김만중의 유배생활 3년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은 끌렸고 설렘은 가득했다. 그런데 왜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걸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추리소설인가? 후편이 계속 나오는 건가? 표지의 제목도 '잠들지않는다'에서 띄워 쓰기를 하지 않았는데 등등 온갖 미스터리한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 소설은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를 온 시점부터 그가 노도에서 생을 마치기까지를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자료로 하여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요리해서 맛있게 먹기 좋게 버무려 놓았다. 그래서 김만중과 함께 유배된 심정으로, 사대부이자 유력 정치가의 쇠락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라도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유배인의 심정, 정치적 세력에 내몰린 억울함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쉽게 다가왔고 실제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도 가지게 되었다.

인간사 일장춘몽을 느끼게 하는 구운몽은 불법을 전하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의 이야기다. 성진은 대사의 심부름을 가다 용왕이 보낸 팔선녀의 미모에 빠져 불법에 회의를 품다가 지옥으로 추방된다. 이후에 성진은 양처사의 아들로 이승에서 다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팔선녀와 다시 재회하고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다시 불도를 닦는데 깨어보니 모두 한낱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는 풍채 좋고 언변에 막힘이 없는 사나이 양설규의 색락과 풍악, 불도를 즐기는 모습들을 몽환이라는 이야기로 쓰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패관잡기를 즐기는 어머니를 위해, 좀 더 쉽게 백성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언문소설을 다듬고 완성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누가 봐도 구운몽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씨남정기는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대부집안 정실인 사 씨가 간사하기 짝이 없는 교 씨라는 첩을 들이면서 온갖 고생과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훗날 첩의 악행이 드러나 첩은 처형되고 사 씨는 다시 남편과 백년해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장 선달 댁 며느리 이소정의 정숙함과 그의 첩 채란의 간계와 모략, 충직한 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긴박함과 긴장감을 끌어 올려 마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다. 사씨남정기는 희빈 장 씨의 세도를 빗대고 당시의 정치현실을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장희빈의 치마폭에서 놀아 난 숙종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글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김만중이 생을 달리한 이후에 소설의 내용처럼 장희빈은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의 목숨을 건 충언과 예언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권선징악의 교훈이 역사 속에서 소설처럼 펼쳐지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설 속에서 김만중은 평소에는 눈여겨 볼 틈이 없었던 시골 민초들의 마음과 아낙네들의 고달픈 하루, 서민들의 힘겨운 목소리를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장에서 본 조선 민초들의 삶이 좀 더 정겹고 좀 더 애틋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인생무상을 절감했을 그가 헛헛하고 갑갑한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는 부인과 주고받는 편지와 글쓰기임을, 그로 인해 위로를 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만약 김만중에게 세 번의 유배 즉, 강원도 금성, 평안도 선천, 남해 노도에서의 유배가 없었다면, 그래서 계속 집권세력으로 정치의 중요위치에 있었다면 구운몽, 사씨남정기 같은 유배문학을 남겼을까? 였다. 국문학사에 한글소설문학의 선구자라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마도 정치에 집중하느라 문학에는 그리 신경 쓸 수 없는 환경이었을 테고 한문을 출중하게 구사하던 그였기에 열정적인 정치가였기에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 그였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유배로 인해 몸은 비록 자유롭지 못했지만 생각은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었고 정신은 살아 펄떡 일 수 있었으리. 유배지를 떠돌며 생각해 낸 것들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가 노도에서 운명을 직감한 듯 생각들을 정리해서 작품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리라. 떨어져 있는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성과 우리말, 우리글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기존 사대부들과 정계에 일침을 가하고자 함이 절절해서 문학으로 결실을 맺었으리라. 그리하여 구비문학이 한문학보다 진실성이 우월하다는 그의 주장과 한글로 써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던 그의 이론을 펼칠 수 있었으리.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생각을 세상 사람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언문소설로 완성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계를 떠나서야 시간적 여유가 많아 졌기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며 사고를 재정립하고 당시의 주류인 주자학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론도 펼칠 수 있으리라. 그의 소설에서 불교적인 용어와 도교적인 것과 유교적인 것이 융합된 형태로 나타남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양반들이 언문이라고 무시하던 한글로 글을 썼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 남해 노도. 배를 젓는 노를 많이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노도. 강화도 뱃길의 선상에서 태어나 노도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배, 바다와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나 보다.

몇 해 전 봄에 남해를 다녀왔다. 금산 보리암에 오르기도 하고 죽방멸치들을 보며 신기해했던, 풍부한 횟감에 입은 즐거웠던, 구불구불 뱀 같던 해안 도로들의 이색적인 풍광들을 두 눈 가득, 따뜻한 인심들을 가슴 가득 담아 온 적이 있다. 그 곳이 김만중의 유배지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후세들의 무심함에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고등학교시절 교실에서 배운 것은 한글소설 구운몽의 국문학사적 가치와 김만중의 저서, 유배문학의 가치 등이었다고 어렴풋한 기억들이 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책과 참고서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늦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제목처럼 남해는 잠들지 않고 김만중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 일게다.

이런 류의 소설이 나와 줘서 청소년들이 더 쉽고 가깝게 고전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단지 아쉬운 점은 옛 말, 옛 언어들, 옛 내용들이라서 학생들이 알기에는 어렵거나 생소한 단어와 낯선 용어들이 많지 않았을까.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페이지 아래쪽에 한 두 개씩이라도 어려운 말의 뜻풀이가 친절하게 있다면 국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옛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김만중의 성격과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책 속의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부드러움이 능사는 아니다.’

‘세상에 나가 무슨 일이든 이루려면 단정한 품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법이 다. 배짱과 단호함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때로는 공부에도 행동에도 선을 넘을 줄 아는 강단이 필요하다.‘

‘공자의 말에 물획하라. 이 말은 자신의 능력에 미리 선을 긋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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