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지만 세차게 흘러가는 여울처럼 이름 없는 민초들의 가슴에도 꿈은 흐르고 있다.

 

 

지난 해 말 개밥바라기별을 읽고는 황석영님의 유머 가득한 문장, 깊이 있는 글 솜씨에 반했고 청춘, 그 맘 때 쯤 이면 누구나 한번쯤 했을 고민들에 지극히 공감하며 감동하며 읽었다. 왜 이제야 읽은 거지 싶을 정도로 푹 빠져 읽었다. 그 후론 바리데기, 여울물 소리까지 읽게 되었다.

 

여울물 소리.

제목을 딱 읽었을 때는 꽤나 낭만적인 이야기인가? 표지도 귀여운 핑크색깔인 걸 보니……. 어? 여울은 강이나 바다에서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센 곳이라서 비록 물소리는 작지만 힘이 있는데 그렇다면 기구한 사연이 많은 판소리꾼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다.

 

등단 50 주년을 맞은 일흔이 된 대한민국 대표작가의 넋두리 같은 메시지를 다 읽고 난 지금은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어려운 옛날 용어들이 많아서 사전을 들춰가며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술 재미있게, 때론 가슴 절이며 읽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미처 몰랐다. 이렇게 곱씹으며 긴 생각에 빠질 줄은.

 

2013년 오늘의 현실에서 마주한 19세기 우리 백성들의 아우성. 그 자생적 움직임들. 언제나 백성들은 한결같이 지켜보고 소원하고 있었구나. 올바른 세상.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 억울하고 굶주린 자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이 오기를 목숨 걸었고 비굴과 부조리, 부패에 맞서 용기를 냈구나. 라고 생각하니 울컥한 마음에 고개를 조아렸다.

 

소설의 이야기는 박연옥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그의 남편 이신통과 엮이게 되고 이야기꾼과 동학 즉 천도교, 그 시절의 만인소, 임오군란, 동학혁명 등 역사적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광대, 민요, 판소리, 전기수, 언패소설, 민담, 놀이패, 육자배기, 삼현육각, 거벽 등 새로운 사실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어서 19세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다.

 

박 연옥. 그녀는 시골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로 태어나 나이 열여섯에 시골 부자의 후처로 들어가지만 투전판을 떠돌며 집 안을 돌보지 않던 남편과 삼 년 만에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결혼 전, 이미 마음속에 이 신통을 정인으로 두었기에 민란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하고 돌아온 그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며 짧은 행복을 누린다. 하지만 행복의 단잠은 잠깐 뿐. 나라에서 금지한 천지도의 신자인 이 신통은 도인들의 고통과 각지의 민란을 외면할 수가 없어 연옥을 떠나게 되자 연옥은 그런 신통을 찾아다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제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 신통. 그는 서얼의 서자로 태어나 신분의 한계를 지닌 지식인이 되어 주변부를 떠돌게 되는 엄격한 신분제도의 희생양이다. 이름 난 전기수로, 강담사로, 재담꾼으로, 광대물주로, 연희대본가로, 천지도의 교리와 스승의 행적의 기록자로서의 떠도는 다양한 삶은 신통방통한 그의 글 읽는 솜씨만큼이나 재주가 많고 기지가 번득이기에 좋은 시대를 만났다면 더 많은 일을 하지 않았을까싶다.

 

'내 마음 정한 곳은 당신뿐이니, 세상 끝에 가더라도 돌아올 거요.'(p.87)

신통이 연옥을 떠나면서 남긴 이 말은 오히려 연옥의 혼잣말이 되고 우리 민족의 한 서린 외침 같이 들린다. 마치 정의와 진실은 돌고 돌더라도 반드시 돌아 올 거요 라는 울림처럼. 불의에 맞서기 위한 항거와 봉기의 움직임은 분명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민초들의 꿈의 물결이다.

 

몰락해 가는 왕조와 외세의 침략이 들끓던 19세기 그 격변의 시대에 봉건적 신분제도와 성리학에 바탕을 둔 유교사상을 뒤엎는다는 것은 상상불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정부패와 제국 열강들의 침탈을 더 이상 목도 할 수 없었기에 농민들과 일부지식인들이 감히 용기를 내어 동학혁명을 일으켰다. 결국 권력의 개입과 일본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힘이 없을 것이라 여겼던 민초들의 도도한 저항의 힘이, 그 정신과 혼들이 흐르고 흘러서 3.1운동, 4.19의거,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등으로 세차게 스며든 것이 아닐까? 싶어 그 반란의 가치를 높이 사고 싶다.

 

'그게 모두 일본이 서양 것들에게 당했던 그대로를 우리에게 덤터기 씌운 게랍니다. 석 달 동안에 조정은 미국, 영국, 독일과 차례로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답니다.'(p.248)

 

'바야흐로 난세인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나 정말 죽일 놈들은 모두 벼슬아치들이지요. 청은 물론 양, 왜가 함부로 들어와 나라의 이권을 제각기 도적질해가는 판인데 힘없는 백성들 등이나 치려고 사고 파니 망해가고 있는 거지요.'(p.422)

 

'사람이 바로 하늘이니 사람밖에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마음이 하늘이니 그 마음을 존귀한 하늘처럼 소중하게 받들어서 좋은 마음에 따라 사는 것이 곧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길이로다'(p.372)

 

'평생의 근심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한 각박한 세상이 되었음이라.'(p.375)

 

요즘 영화판을 휩쓰는 메뉴들, 26일, 레미제라블, 클라우드 아틀라스 등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힘없는 자들의 목숨 건 반란과 혁명을 다루는 것 같아 반가우면서도 가슴 한 켠 씁쓸하다.

 

언제쯤이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될까? 정치가들 뿐 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꼭 오리라는 신념과 확신을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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