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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에게 죽음을 ㅣ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악이 승리하는데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18 세기 아일랜드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다.
이 소설은 침묵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또 침묵이 상황을 얼마나 반전시킬 수 있는지를 전혀 다른 두가지 유형으로 그려 놓았다.
침묵 대 침묵의 싸움!
그래서 약간은 독일판 이끼같은 느낌이다.
테를린텐의 말처럼 모두들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아무일 없는 걸까? 작고 사소한 욕심에서 규칙을 어기게 되면서 범죄는 시작되고 그 작은 실수가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거대해지고 걷잡을 수 없게 되어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이소설은 단조롭던 시골마을에 사소한 욕망, 쾌락 등이 서로 뒤엉켜 지독히도 비릿한 공기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형님의 아내, 형수와 시동생의 불륜, 범죄의 정점에 있던 두 사람 테를린텐과 라우터 바흐원장의 사랑.
첫 시작은 그랬다. 작은 욕망과 사소한 실수에서 출발했지만 테를린텐의 아들 라르스를 백설공주 살인사건에 휘말리지 않게 하려고 내렸던 잘못된 판단으로 거짓말의 그물이 촘촘해지기 시작했고 거기에 순박하던 시골 사람들의 소소한 열망, 이기심, 질투, 짝사랑에 대한 상처, 열등감 등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번지게 되었고 급기야 마을 전체가 집단적인 침묵으로 동조하게 된다. 진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은폐하고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데 동조한다.
주민들의 사악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라르스의 친구 토비는 정작 본인은 전혀 기억이 없는 일인데 누군가 말해줘서 자신이 살인자인걸 알게 된다. 공부,인물,성격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 마을의 희망이던 ,촉망받던 그가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낙인찍히고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10년 후, 출감 한 뒤에도 선량하던 시골인심이 냉담해졌음을, 음흉한 냄새를 감지하기만 할 뿐 누구와도 가슴에 담긴 것을 털어 놓을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오히려 마을 전체가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침묵하고 동조하고 모의까지 한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을 향해 움직이는 법. 불공평 한 것을 싫어하고 억울한 것을 못견뎌하는 성격의 한소녀의 등장으로 희망이 보이게 된다.
18세 소녀 아멜리. 그녀의 토비에 대한 순수한 집념이 사건열쇠가 되고 실마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라르스의 동생 자폐아 티스의 등장은 더욱 반전이다. 그는 말이 없다. 남과는 조금 다를 뿐 누구보다 똑바로 보고 정확하게 사람을 볼줄 아는 그가 사건 당일을 몇 장의 그림으로 그려 놓았을 줄이야. 라르스와 티스의 아버지인 마을 부호 테를린텐의 보호를 받는 대신 입을 다무는 사람들. 거대한 권력자의 욕망과 촌구석의 이기적인 민심이 유기적인 연대로 유착되어 쓰나미 같은 위력을 발할 때 성실한 청년의 피폐해진 미래에는 정녕 희망이 없는 건가? 싶을 때 나타나는 구세주-티스의 그림들.
희망의 한 줄기 빛이 된 침묵자 티스의 고발은 이런 억울할 데가 있나 싶다가도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게야 할때 처럼 안도의 숨을 쉬게 한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다가도 반전에 반전, 미궁에 미궁이 연속되고 속도감과 긴장감이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소설처럼 베일을 벗길 때마다 풀 수 없을 것만 같던 잔인한 실타래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듯 선량하고 진실된 자의 목소리 때문인가 보다. 힘들어도 선의를 가지고 끈기있게 노력할 때 하늘이 돕는 것처럼.
진실을 은폐하고 싶은 자들의 침묵,이성을 잃은 침묵이 마을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티스의 침묵은 정확하게 보고 때를 기다리는 침묵, 진실을 갈망하는 고발자의 침묵이었던 것이다. 침묵은 동조, 방관일수도 있지만 때론 반전을 위한 물밑 작업일 수가 있다. 사악한 침묵도 있지만 관조하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침묵, 세상번뇌 초탈한 구도자의 침묵도 있다.
범죄자들은 말한다. 입다물고 있다면 아무일 없을 거야라고. 그러나 선량한 시민들은 말한다. 세상은 외쳐야 바뀌는 게지. 수행자들은 말한다.침묵이야말로 쓸데없는 생각을 담아버리는 고도의 정신수양이라고. 침묵이 독이 될수도 약이 될수도 있는 세상. 어쨌던 이 소설에서는 침묵으로 멋진 반전과 속도감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