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융자를 지원받아 지금 여러 농촌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갖가지 시설농원이나 기업농 체제는 말의 참다운 의미에서 이미 농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농업공동체가 중심이 되지않고, 다만 자본과 기계와 화학물질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특화작물의 생산은 농업의 공업화 과정의 전형이며, 따라서 그것은 ‘흙의 문화’의 번창에 아무런 기여를 할 수가 없다. 오히려 공업화된 농업은 극심한 토양 오용으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 사막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P87

인간의 삶에 있어서 작든 크든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고통은 삶의 근원적인 조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통 없는 삶이란 인간에게 있어서는 불가능한 꿈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바람직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통 없는, 안락한, 절대적으로 안전한 삶에 대한 희구는 그것이 배타적인 목표로서 추구될 때 도리어 삶의 온전함을 망가뜨리는 파괴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적 안전에 대한 완강한 집착 - 이것은 사람의 사람다운 삶의 궁극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기도의 또다른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나날의 생존이 무수한 인연의 보이지 않는 자비로움 속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자기를 앞세워 세계의 고요와 평화를 깨뜨리고, 나아가 자기 자신의 본성에 대하여도 심히 난폭한 공격을 해야 하는가? - P90

그러나 지금 산업사회가 자랑하는 온갖 종류의 거대한 인공구조물에는 그 체제의 본질상 그런 대책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산업체제의 근본 문제는 부분적인 합리성을 넘어서 전체적인 국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인데, 이것은 쓰레기에 대한 이렇다 할 아무런 ‘합리적‘ 방책도 없이 생산의 증대만이 일방적으로 추구되는 모든 산업적 생산활동의 공통한 문제이다. 요즈음 이야기되고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새로운 전략은 쓰레기의 팽창 속도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바가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인 해결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쓰레기문제는 결국 쓰레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생활방식 - 자연의 재생순환 과정에 우리의 생활을 종속시키는 것밖에는 다른 어떤 해결책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플라스틱 우유병을 적게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라 플라스틱 병 자체의 생산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다. - P93

거대한 건축물은-성당 건물을 포함하여-자신의 본원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열망하는 인간의 야심의 표현이다. 이것에 비하면 가능한 한 이 지상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니며"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것을 삶의 제1원칙으로 삼았던 인디언 부족들의 경우는 경탄할 만한 대조를 보여준다. 북미대륙에서 몇만 년에 걸쳐 인디언들이 살았지만 그 흔적은 "하늘의 구름이 땅을 스쳐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이들의 문화가 하늘과 별과 땅과의 생생한 교감 속에서 성립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디언을 포함하여 세계의 여러 원초적 사회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요한 특성은 초월적 실재로서의신(神)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실제로, 신의 개념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자연 또는 우주와의 살아있는 관계가 단절된 이후일 것이다. 그래서 근원적인 소외를 체험하게된 인간은 바로 그 소외로 인해 자극된 권력에의 욕망-불멸에의 욕망을 신에 대한 예배라는 형식을 통하여 표현하기 시작하였고, 그 단적인 상징이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인공구조물로 나타난 것이다. - P94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상황 묘사 가운데,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그것이 지상의 온갖 샘과 웅덩이와 강물 속으로 쓰디쓴 쑥이 되어 들어간 탓으로 세상의 삼분의 일의 물이 못쓰게 되어 무수한 사람들이 죽게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바로 이 ‘쓴 쑥‘의 우크라이나말이 ‘체르노빌‘이라는 것이다!
묵시록적 상황은 결국 사람 자신이 만들어낸다는 얘기이다. 1986년 4월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오염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광대한 땅이 못쓰게 되고, 생물이 서식할 수 없는 지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실은 피난 갔던 많은 사람들이 체르노빌과 그 부근의 고향땅으로 되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귀향은거주조건이 회복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타향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한사람들의 절망적인 선택이다. 고향으로 되돌아왔지만 그들은 지금 극도의 불안과 우울 속에서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오랜 세월 생명의 안식처였던 체르노빌 주변의 숲은 다시 거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으려면 몇백 년이 더 지나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 P96

모든 것은 설득력의 문제로 돌아온다. 아무리 현실 극복을 말하더라도 우리의 깊은 내면세계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모든 것은 헛일이다.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것은 그럴듯한 논리가 아니다. 우리의 온몸과 영혼 전체가 반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믿고 있듯이 필요한 것은 남들을 설득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설득,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지 모른다. 우리 각자가 정말 이 어둠의 현실에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오히려 이 어둠을 자신도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노자(老子)는 자애로움(慈)과 검소함(儉)과 남들 앞에 나서지 않음(不敢爲天下先)을 세 가지 보배로 들었다. 삼풍사고에서 변을 당한 한 희생자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잃은 후에는 땅바닥의 벌레도 감히 밟을 수가 없게 되더군요." 아마 이것은 이번 사고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소득의 하나일 것이다. ‘不敢爲天下先’이란 결국 벌레를 죽이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닌가. 만물이 형제이며, 천지와내가 한 몸뚱이라는 깨달음에 가닿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온몸으로 감당해야 할 크나큰 충격이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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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마고기 demagogy: 선동정치가가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정치적인 의도로 유포시키는 선동적 허위선전

우리는 인간의 사고방식이 사회의 물적 기초의 반영이라는 가정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사고 자체가 사회 전체의 변혁에 필요한 또다른 물적 기초를형성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이 지금 인정하고 싶은 것 이상으로 우리 대다수가 생산력의 형이상학에 너무나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오늘의 이 어처구니없는 생명파괴의 일상화와 구조화를 뿌리로부터 극복하는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 P63

모든 문제가 현실적으로 규모의 문제, 대규모 산업화, 세계무역의 현실과 그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적정의 문화, 적정의 정치, 적정기술에 대하여 숙고하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가 된다. 오늘날 생태적 위기의 본질도 근본적으로는 권력의 집중화에 기인하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64

극소수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세계의 무역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으로 경쟁력이 배타적으로 강조될 때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 공동체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문화적 전통과 개성을 부정하며, 인간다운 교육을 위한 최종적인 근거를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 P67

우리는 인간영혼의 요구와 친자연적(親自然的)인 생명가치를 철저히 무시하는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온 산업주의에 대해 정말로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한 큰 사랑과 책임감과 에너지가 우리 자신 속에 있는지 물어보지 않으면 안된다. - P69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희망을 위한 싸움이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의 조짐을 우리의 삶 속에 드러내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도대체 ‘무한경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 이성의 이름으로 수용될 수 있는가? 우리 각자가 이런 터무니없는 데마고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자신의 몸으로 산업소비체제의 전횡에 묵종하고, 세계 전체 인구의 퍼센트에게 허용되어 있는 개인자동차를 아무런 비판 없이 ‘나의 것‘으로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면, 산업주의의 논리를 강화하고 생명의 논리를 부정하는 데 우리 자신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P75

일찍이 간디는 언젠가 산업주의가 인류에게 큰 저주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자기 파멸을 향하여 가속적으로 달려가면서도 결코 멈출 줄모르는 것이 산업주의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이 지옥으로 가는 자동차에서 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행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에게는 희망의 가능성이 커질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결국 혼자서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희망을 위한 싸움‘은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 P77

물질적 재화의 소비규모의 과다에 의해서 측정될 수밖에 없는 생활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핵심적인 기준이 될 때, 토착문화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파괴되고, 전통적인 농업이 사라지고, 생태적 재앙이 따르고, 공동체가 해체되며 인간의 도구화가 심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수준의 향상을 꾀하는 ‘개발‘이 진행되면 될수록 부의 독점은 심화되고, 빈곤문제는 갈수록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된다는 것은 현대사에서 너무나 명백하게 증명되어온 사실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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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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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결핵을 비롯한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전쟁의 기억과 가난한 이웃과 자연을 끌어안고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성자 같은 삶은 실천하셨던 권정생 선생님. 모든 인세를 남북한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신 권정생 선생님의 귀한 글 모음이다.


몇 년 전 안동여행에서 찾아간 생가는 진정 '자발적 가난'이 아닌 '자발적 빈곤'의 삶을 택하신 선생님의 생전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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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6-09 2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지고 있습니다. 자발적 빈곤의 삶을 사셨던, 생가 다녀오셨군요. 전 못 가봤어요. 교회 종지기를 했던 교회도 여전히 있는지요?

햇살과함께 2022-06-09 19:28   좋아요 2 | URL
네 일직교회도 있어요. 근처 폐교를 개조한 권정생문학관도 있어요. 안동여행 가실 기회 있으면 들러보세요. 저도 안동 처음 가봤어요.

프레이야 2022-06-09 20:03   좋아요 2 | URL
넵 안동은 여러 번 갔는데 매번 이곳은 가보질 못했어요. 한번 날 잡아 가봐야겠어요. ^^

햇살과함께 2022-06-09 21:00   좋아요 1 | URL
다리 다 나으시면 가보세요^^

그레이스 2022-06-09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발적 빈곤!
저도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2-06-10 00:08   좋아요 1 | URL
가 보시길 추천드려요^^ 안동여행도 좋았어요
 

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편지모음 책에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2015년에 출간된 양철북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는데. 한길사 사장이 살아계신 권 선생님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출판하다니. 양아치네.

그렇게 한반도에 불어친 바람은 제주도로 여수, 순천, 온 나라 곳곳으로 엄청난 태풍이 되어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6·25 전쟁이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고향을 잃고 소중한 인간성마저 파괴되어 버린 채 살고 있다. 일제침략에서시작된 고통의 세월이 백년을 넘었으니 어떻겠는가.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도 가혹한 군사정치의 유산은 그대로 남아있고 어느 것이 참인지아닌지 구분조차 안된다.
동족상잔의 끔찍한 대학살은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저주하면서도, 우리의 적은 다름 아닌 동족이다. 그래서 스무살 아까운 젊은이들을동족의 가슴에 총대를 겨누도록 전쟁터로 내보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보안법인지 국회의원조차 하느님 모시듯 그 국가보안법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걸까.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회의원이란 자리를 잃을까 봐서 그런지, 그것도아니면 내가 아홉살 때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봤던 덩치 큰 미군병사가 휘두르던 몽둥이가 무서운 걸까.
정말 서글프다. (2005년) - P247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 P248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2000년) - P249

나중에 선생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청송 화목 장터에 살면서 화목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이오덕 선생이 그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두 사람이 서로 이런 사실을 안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연도를 맞춰보니 우연히 일치했다고 한다. 이 당시 화목은 경상도 골짜기였기 때문에 빨치산이 출몰했고, 붙잡힌 빨치산이 장터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면서 돌 맞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무섭더라고 회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P281

이오덕, 전우익 선생과의 교분

이야기가 약간 달라지지만, 2003년에 출판된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라는 책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이 책은 이오덕 선생이 원고를 생전에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 책 출간에 대해 권정생 선생은 동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책이 나와 시중에 깔리자, 선생은 매우 화를 내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돈 꿔달라는 편지처럼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적인 내용도 들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내더라도 당사자들이 죽고 난 뒤에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 P285

선생이 아홉살 무렵 일본에서 귀국할 때, 두 형은 일본에 남겨두고 다른 가족들만 귀국했다. 당시 ‘조선인연맹‘ 에 가입해서 귀국하지 못했던두분 가운데 큰형은 작고했고, 작은형 한분은 살아있지만 투병중이라고한다. 가족들이 귀국한 이후 이분들은 ‘조총련‘에서 활동한 것 같다. 1982년으로 기억하는데, 한번은 조탑리 교회 문간방으로 찾아갔더니, 일본에계신 큰형님이 왔는데 조총련이라고 해서 형사들이 똥 누는 데까지 따라 다녀 얘기 한마디도 못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선생의 동화가 특히 분단문제,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게아닐까 생각해 본다. 통일에 대한 선생의 문제의식의 씨앗이 이런 불행한가족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 P287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익한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권의 도덕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다. 한 포기의 나무와 꽃과 풀도 끊임없이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피운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빛깔로 세상을 밝혀주고있다. 공존은 성스럽다. 이웃사랑은 남의 것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빼앗는 ‘자선사업‘은 가장 미워해야 할 폭력행위이다.
- <나의 동화 이야기> 중에서 - P289

그는 생전에 동화와 소설, 시와 수필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존경해왔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문필업적들은 오래도록 위로와 용기를, 또 가르침과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느 것이나 절실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 비할 바 없는 삶, 거의 성자의 후광에 둘러싸인 듯한 그의 흉내낼 수 없는 삶에 비하면 빙산(山)의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가 이 세속의 삶을 마감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보내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평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뿐 아니라 벌레와 새와 쥐와 개구리,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 P292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앞으로는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권정생 - P293

선생은 짐작했던 대로 짧은 대화도 힘겨운 게 분명했고, 당시 내가 다니던 ‘민들레교회‘의 담임 목사이자 선생의 오랜 벗이기도 했던 최완택목사가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애면글면 찾아가서 수다스럽게 말붙이고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 선생을 돕는 길"이라는 말씀 때문에 다시선생을 찾아갈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논문을 끝마친 뒤에도 종종선생의 글을 찾아 읽으며 선생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권정생 선생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오셨지만, 지난 100여년간의 우리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변화와 그 훼절을 가장 근본적으로, 아프게 그리는 대작가이자, 그분의 존재 자체가 이 땅의 일그러진 삶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되는 분이라고, 이라크전 발발 당시에,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었던 여러 혼란스러운사건들의 길목에서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선생의메시지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일부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실은 우리 사회 운동 전체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답답하고, 헷갈릴때 나는 종종 "권정생 선생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곤 했었다. - P295

내가 민들레교회를 다니던 시절, 선생이 보낸 안부 편지를 읽은 목사님이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나직히 노래를 읊조리던 모습을 엿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선생이 오래도록 사귀었던 종교인들, 최완택 목사, 이현주목사, 김영동 목사, 정호경 신부와의 교분은 우정의 훈훈함으로 가득 찬 한폭의 풍경화였을 것 같다. 선생은 이분들께 더러 익살스럽게 농을 걸기도 했던 것 같고, 2002년 3월 3일자 <민들레교회이야기〉에 보낸 선생의시는 지금 읽어도 싱긋이 웃음이 난다.

임오년의 기도

눈오는 날 / 김영동이 걸어가다가 /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으면 / 속이 시원하겠다.
오월달에 / 최완택이 산에 올라갔다가 / 미끄러져 가랑이 찢어졌으면 되게 고소하겠다.
칠월칠석날 / 이현주 대가리에 불이 붙어 / 머리카락 다 탈 때까지 /소방차가 불 안 꺼주면 / 돈 만원 내놓겠다
‘올해 ‘목‘자가 든 직업 가진 몇 사람 / 헌병대 잡혀가서/장 백대맞는다면 두 시간 반 동안 춤추겠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 모두 정신차려 거듭나기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기도하옵니다 / 아멘.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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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전우익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 진짜 닮으셨네..
찾아보니 두분 동갑이시구나.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온갖 냄새가 난다. 외양간에서는 쇠똥 냄새가 나고 두엄 냄새와 뒷간 냄새, 닭장에서는 닭똥 냄새가 난다.
쇠죽 솥에서는 구수한 쇠죽 냄새, 정지에서는 어머니가 짓고 있는 밥냄새, 국 냄새, 이렇게 시골집 아침은 갖가지 냄새로 우리들의 코를 자극하고 그것들이 온몸에 배어버린다.
봄날, 학교길엔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들 냄새, 꽃 냄새, 강물에 서려퍼지는 비릿하고 상큼한 물 냄새, 버들꽃과 보리밭, 밀밭에 불어오는 바람 냄새, 거기다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 산비둘기 소리, 멀리 지나가는 기차 소리, 땡땡땡 울리는 학교 종소리, 어느 것 하나 따뜻하고 정겹지 않은것이 없다. - P174

몇년 전, 우리 마을 앞으로 아스팔트가 깔리고 그 해 여름, 밤새 비가 내린 뒤 나가봤더니 길바닥에 온통 개구리들의 시체가 깔려 있었다.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은 시체들이었다. 보기에도 끔찍했지만 온통 숨막히게 나는 비린내는 농촌의 종말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과수원과 고추밭에 뿌리는 농약은 그대로 씻겨내려가 시냇물을 온통농약으로 흐려놓아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메뚜기와 잠자리들이퍼득거리며 죽는 모습을 보면 농촌이 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지기까지 한다. 이젠 농촌은, 삶의 터전으로서 농촌은 없다. 그냥 먹을 것을 생산해내는 식품생산단지로 변한 것이다. - P180

우리 속담에 "일해서 죽은 무덤은 없다"는 말이 있다. 흙과 더불어 일을 하는 것은 최상의 건강비결이다. 거기다 약간씩 부족하게 사니 모든일에 지나치지 않는다. 부자가 될수록 더욱 욕심이 생기고 과식을 하면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 P185

사람의 행복은 편리한 것, 풍요로운 것이 다가 아니라,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부족한 것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 P185

인생의 끝은 스스로 할 일이 없어졌을 때, 그래서 뒷구석으로 밀려났을때다. 그렇게 되면 굳이 뇌사상태까지 안 가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이 없어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인들의 고통은 차라리 죽어버리기만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생을 일하면서 산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여진다. - P188

나무와 바위한테 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자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P193

선생님, 자유인이란 가능할까요? 선택의 자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절대 자유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행복했습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온갖먹을 것이 풍성하고, 그들을 해치는 폭군도 적도 없고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천사처럼 깨끗한 어린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동산엔 딱 한 가지 자유라는 게 없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성장이 없고 성장이 없으면 바보 천치가 됩니다. 일종의 꼭두각시로 사는 거지요.
결국 에덴동산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겁이 많은 남자 아담이 아니고 여자인 하였습니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여자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절대 먹으면 안되고 죽는다고 했던 선악과를 하와가 제손으로 따서 자신이 먼저 먹고 아담에게도 먹였습니다.
그들의 눈앞엔 에덴동산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자신들의 몸뚱이는어린아이가 아닌 다 큰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기를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고 하와에겐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고통이 있을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에는 이렇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 P204

어느 스님이 저한테 무엇에나 집착하지 말라 하시더군요. 집착(執着)하지 말라는 것은 붙잡고 있지 말고 붙어 있지 말라는 뜻이니 결국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네요. 그래서 제가 스님께 여쭈었지요. "스님은 왜 속세를 버리고 떠나서는 산속에 숨어서 수행에 집착하십니까? 일단 떠나갔으면 그것으로 해탈을 한 것이 아닙니까?"
스님은 그냥 웃더군요. 제 질문이 억지였을까요? - P205

선생님이 저희 집에 찾아오신 것이 1976년이었지요.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오셨을 때 너무 닮아 쌍둥이는 아니더라도 사촌쯤은 되는가 싶었습니다. - P202

가끔씩 저는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해서의식을 지니고 이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에 떠있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생겨났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내가 있다는 것에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다가 조금 안정이 되면 그래도 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웃고 울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잠깐이라도 ‘삶’이란 걸 맛본 것에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 P206

고흐의 그림책을 받고 잠시 좋았는데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서평을 써달라는 쪽지를 보고는 아이구! 속았구나 싶어 실망했습니다. 과연 세상엔 어느 것 하나 공짜가 없음이 눈으로 확인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이래저래 공짜 없는 세상이니 이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쉬셨다가 내년쯤 이런 책 한 권만 더 쓰시길 빌겠습니다. - P207

박이엽 선생이 쓴 《한국교회사》 안중근편을 보니, 북간도 독립군으로싸웠던 안중근이 일본군 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낸 대목이 나온다.
동지 하나가 안중근에게 따지고 든다.
"잡은 놈을 놓아줄 바엔 무엇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싸웁니까?"
안중근이 대답한다.
"우리는 포로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침략자들이요, 힘없는 자와 선량한 사람은 비록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죽여서는 안됩니다."
그 뒤 안중근은 죄없는 일본군을 상대하기보다 제국주의 앞잡이인 이등방문 하나를 죽이는 쪽이 국권을 회복하는 빠른 길이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는 착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 P215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눈보라친 연후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아느니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어라.

서른두살의 안중근은 진정한 의인이요 이 땅의 시인이었다. 온 세상이모두 "하일 히틀러!"를 외쳐대도 "절대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던가. - P216

나는 고속도로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모두 끼니마다 밥상에 시체를 잔뜩 차려놓고 즐기며 먹는드라큐라들이 아닌가. 시체를 먹고 시체로 된 옷을 입고, 시체로 만든 이불 속에 누워자고, 시체 위를 걸어다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이니, 그누구도 큰소리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녘에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엄청난 파괴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237

미국 역시 우리 한국을 꼼짝 못하게 목을 조르고 있다. 지난 시절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쪽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미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평등한 동맹국이라면 절대 이럴 수는 없다. 약소국의 슬픔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많은 한국사람들은 미국과 이런 기막힌 관계를 모르고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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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06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 처음으로 시골 가서 소똥 냄새에 놀랐었는데

햇살님이 올려 주신 책에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부족한 것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말씀에 밑줄 쫘악~✍

햇살과함께 2022-06-06 21:54   좋아요 1 | URL
전 어렸을 때 방학마다 한달씩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추방당해서 쇠똥 냄새, 쇠죽 냄새 아주 익숙합니다~ ㅎㅎ
지금의 시골은 그때의 시골과 많이 다르겠지만,, 나이들수록 그립네요.
권정생 선생님은 말씀대로 사신 분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