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기후대응은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온난화로 인해서 영구동토층과 심해에 묻혀 있는 메탄이 대기 중으로 풀려나서 지구온난화가 손쓸 수 없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 P3

이제 경제성장은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가능하지 않다. 경제가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물질적 기반인 자원들(토양, 석유 등)이 급속도로 소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끝없는 이윤추구(자본축적)라는 단 하나의 동기밖에 없기 때문에, 투자수익이 성장의 비용을 감내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곧장 무너지게 되어 있다. 역사학자 존 M. 그리어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이미 장기침체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파생상품이나 금융(카지노경제)부문을 제외한다면 2009년 이후 세계경제는 마이너스 혹은 제로 성장을 하고 있다. - P5

지금까지 과학이 확실하게 밝혀낸 한 가지가 있다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 P6

햇빛이나 바람은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한곳에 집중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는 태생적으로 분산적·민주적 구조와 어울리지만, 에너지밀도가 높은 화석에너지는 권력집중적 속성을 갖는다. - P8

산업문명에 대한 불복종 저항은 구체적으로 내 삶에서 시장(기업)에 대한 의존성을 줄여나가는 일이다. - P10

산업적 경제성장으로 문명생활과 인간해방이 가능하다는 것은 뿌리 깊은 근대적 미신이다. 산업화의 결과로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아무리 크게 잡아도 세계 인구의 25%를 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허락된
‘자유‘는 욕망의 노예가 될 자유 이상의 것이 아니다.

- 발행인 김정현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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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 녹색평론 서문집
김종철 지음 / 녹색평론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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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5월에 시작한 게으른 읽기가 12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고 김종철 선생님의 녹색평론 서문집으로, 창간사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 농업, 생태, 기후위기, 민주주의, 탈성장 등에 대한 한결같은 걱정, 우려, 비판과 대안적 목소리를 담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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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주목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다. "남북이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지난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행한 발언이라고 보도되었는데, 우리는이 말에서 너무나 닳고 닳은 직업정치인들의 상투적인 말을 들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이 말은 어떠한 가식적인 꾸밈도, 거창한 개념적인 어휘도 없이 매우 알아듣기 쉬운 소박한 일상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쉬운 표현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희망과 실감에 매우 충실한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여기서 우리는 남북연합이니 연방제니 1국가 2체제니 하는 남북 간의 관계설정에 관련해서 정치가들이나 전문가들이 흔히 쓰는 공식적인 어휘들을 접할 때와는 전혀 다른 ‘진정성‘과 ‘절실한 마음‘을 확연히 느낄 수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의 수구언론의 눈에는 대통령의 이 - P349

말이 ‘반헌법적‘ 발언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 말이 "대통령은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라고 적혀 있는 헌법66조 3항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실로 기발한 주장을 하고 있다(<조선일보> 온라인판, 2018년 3월 21일).) - P350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에게는 아무런 정치적 이데올로기, 사상, 신조도 없다는 점이다. 종잡을 수 없는 경박함과 무례함, 퇴영적인 언행으로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그가 여전히 상당한 대중적 지지 속에서 대통령직 수행을 계속하는 것은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과 그 자신이 기성의 엘리트층에 대한 극심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결코 우연적으로 등장한 인물이 아니 - P350

다. 트럼프의 등장은 오늘날 미국을 위시한 서구세계의 민주주의-정확히 말하면 선거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상징하는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민 다수는 그동안 상류층 엘리트들이 온갖 논리로미화해온 자유민주주의가 실은 대중을 배제한 엘리트들만의 민주주의임을 온몸으로 체득해왔고, 그 과정에서 쌓인 분노를 어느 모로 보나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트럼프라는 인물에게 표를 던지는 것으로써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전체 유권자들 중 절반 이상이자신들의 생활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든 독재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까 트럼프가 결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패퇴를 표상하는 인물이라면, 그에게서 민주주의의 재생도, 좋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도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트럼프는 지금 해묵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미국의 엘리트정치가, 외교관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북핵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351

아마도 그런 까닭에 최근 영국의 <가디언>은 세계 전역에서 곤충들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일반 보도기사가 아니라 사설社說)로다루었는지도 모른다. <가디언>(2018년 10월 19일)에 의하면, 자연 생태계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대표적인 지역의 하나인 푸에르토리코의우림(雨林)에서 지난 40년 동안 곤충의 수효가 약 60분의 1로 줄어들었 - P357

고, 그 결과 곤충을 먹고 사는 새와 도마뱀 등도 3분의 1 내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심히 불길한 느낌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현상이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독일에서도 같은 기간에 무려 75퍼센트나 곤충의 수효가 줄어들고, 영국에서도 나비와 벌을 비롯하여 수많은 곤충들이 사라졌다.
더욱이 이런 현상을 확인한 조사·연구의 대상 지역이 도시나 도시 근처의 오염 지역이 아니라 ‘인간의 간섭 범위‘로부터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는 자연보호 지역들이라는 점은 더 충격적이다. 그러니까 살충제나 대기와 물의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지역은 지금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렇게 곤충이 사라지는 데는 기후변화라는 요인도 크게 가세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P358

지난 10월 초 인천에서 열린 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총회에 참석한 과학자 전문가들은 세계를 향하여 또다시 다급한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요지는 산업혁명 직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1.5도를 더 초과한다면 지구사회가 대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적어도 203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보다 40~50퍼센트까지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의 이 회의의 결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도 내지 2.0도 이내로 억제할 것을 목표로 했던2015년의 파리기후협약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장차 닥칠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새로운 과학적 평가에 따라 1.5도 이내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 P359

위에서 언급한 <가디언>의 사설은 결론적으로, 기후변화라는 엄중한사태에 직면하여 우리가 개인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손쉬운 일로서 <캉디드>의 작가 볼테르의 권유대로 우리가 각기 나름대로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연 설명이 생략된 갑작스러운 결론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제안도 없을 듯하다. - P362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근한 것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떤 경작방식에 의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식탁에 도달했는지 등등을 곰곰이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최대한 육류와 낙농제품을 줄이고 가까운 논밭에서 수확한 유기농산물 중심의 식단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난화 가스의 주된 원천으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화석연료에 기댄 전력생산 시스템, 개인자동차 중심의 교통수송체계,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세계의 농지에 광범하게 적용되어온 대규모 산업농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 시스템을 최대한 신속히 확대하는 것과 석유 의존 수송수단을 대폭적으로 축소하기 위한 혁명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도 긴급한 과제이지만, 산업농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길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농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업화된 대규모 단작농사를 의미하지만, 과학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생태계 파괴의 원흉이자 동물학대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대규모 축산산업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영향도 실제로 엄청난 것이다. - P363

지금은 낡은 방식을 되풀이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시급한 때이다. 물론 이것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겨냥하는 방향전환이어야 한다는 것은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모든 국가정책도 이 기준에 따르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점에서 참으로 한심한 뉴스는 12월 18일 세계적 농민단체 ‘비아캄페시나‘가 작성한 <농민 및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유엔총회에서 결의·선포될 때 한국이 ‘기권‘ 표를 던졌다는 소식이다. 이는 한국정부가 농민과 농촌, 농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징표이다. 한심한 것은 정부뿐만 아니다. 국회에서 통과된새해 국가예산 편성을 보면,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평균 9.7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중 농업 관계 예산 증액은 겨우 1.1퍼센트에 그치고 있다. - P367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은 경제성장 시대가 끝났거나 끝나가고 있다는 객관적인 세계경제 정세에한 명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는 여러 논자들이 이미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30여년 동안 저성장 내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해온 일본의 경우는 특기할만하다. 오늘날 일본의 지식사회에서는 ‘축소균형의 시대‘라는 개념이 별로 낯선 게 아니다. 일본에서는 꽤 여러 해 전부터 재야의 지식인은물론, 공직자들 중에도 성장시대는 더이상 재현되지 않는다는 생각에동의하는 사람들이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용어의 창시자는 시모무라 오사무(下村治)라는 저명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원래 1960년대에는 고위직 관료로서 소득배증론(所得倍增論)을 제창했던 성장론자였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서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고 난 뒤에는‘축소균형‘이 다가오는 시대의 불가피한 추세가 될 것임을 누구보다 앞서서 내다보았던 선지자였다. - P372

그러나 특출한 인간의 존재를 상정하는 정치가 정상적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란 원래 ‘인민의 자기통치‘를 뜻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예외적인 인간이아니라,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와 생각이라는 것을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어떻게 자기들의 삶에 관한 결정권을 상호-주체적으로 행사하면서 공생공존의 질서를 구축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삼 물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정기적으로 습관처럼 치르는 선거가 과연 이에 합당한 제도냐 하는 것이다.
확실히 선거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선거의 문제는 그 점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선거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실은 평범한 생활인들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 P388

‘엘리트들’이다. 그 엘리트들끼리의 경쟁을 우리가 선거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시장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구미에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이, 선거판에서 유권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택하여 그에게 표를 준다. 즉,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논리와 하등 다를 게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현대의 선거민주주의인 것이다. - P389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 P389

아마도 대표적인 예는 중세 말기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페스트일 것이다. 당시 중국 쪽에서 시작된 페스트균이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으로이동·확산함으로써 유럽 인구의 태반이 희생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사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대규모 인명소실로 유럽 중세 질서가 결정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큰 피해를 입은 농노와 하층민의 인구가 대폭 줄어들자 중세 질서의 하부구조, 즉 농노제의 지속적인 유지는 크나큰 난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불같은 열정으로 신대륙을 탐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지만, 이는기본적으로 꽉 막힌 폐색상황을 타개하려는 유럽인들의 필사적인 기도에서 비롯된 기획들이었다. - P398

역병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또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는 고대 아테네의 비극적 재난이다. 기원전 430년, 스파르타를 상대로 벌인 펠로폰네소스전쟁 2년째, 아테네는 돌연히 전염병의 창궐에 휩싸였고, 그때문에 결국 전인구의 거의 3분의 1일이 희생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정체불명의 괴질 앞에서는 건강한 젊은 병사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테네의 영웅적인 지도자 페리클레스와 그 아들들도 괴질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전쟁 중에 지도자를 잃고, 대규모의 병력을 잃은 아테네 군대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단지 대규모의 병력 손실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괴질이 창궐하여 가족, 친지, 수많은 동료 시민들이 느닷없이 죽음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자, 아테네인들의 인생관과 윤리관에 큰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절제의 기율을 팽개쳐버리고, 법을 우습게 여기고, 더이상 신을 섬기지도 않고, 찰나적인 향락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ㅡ라고, 그 자신 역병에 걸렸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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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온 것은, 평생 원전 반대운동에 치열하게 헌신했던 세계적인 탈핵사상가 고(故) 다카기 진자부로(三郞) 선생이 간명하게 말했듯이, 원전이란 한마디로 "화장실 없는 맨션아파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다른 문제는 접어두고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원전은 만물의 지속적 생존의 토대인 생태계 내에서는 절대로 용납돼서는 안되는 ‘괴물‘이라는 것을, 사심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수긍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다. - P330

성급한 판단일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장벽은 역시 오랫동안 이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성장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중심주의적 사고의 끈질긴 영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탈원전을 원하면서도, 당면 현안인 두 기의 원전 건설의 중단은 원치 - P330

않는다는, 공론조사의 일견 모순적인 결론 때문이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시민들 중 일부의 사후 소감을 들어보면,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역시 최종적인 판단 기준은 경제논리였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이 경제논리의 안쪽에 있는 심리, 즉 원전을 포기하면 현재의 ‘안락한‘ 생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암암리에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경제논리와 안논리의 경쟁에서 경제논리가 승리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수 시민참여단에게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참사를 보고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 P331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 세계의 논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도 출신 작가 판가지 미슈라가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이 ’분노‘라는 현상이다. 미슈라에 의하면, 오늘날의 이 광범한 대중적 분노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것으로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최신저서 《분노의 시대》(2017)의 집필 동기를 언급하면서, 그것은 예컨대동의 테러조직 IS(이슬람국가)나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으로부터의 탈퇴를결정한 영국의 ‘브렉시트‘, 그리고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기이한 현상을 좀더 깊이있게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고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일견 무관계한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현상들의배후에 공통한 ‘감정적‘ 뿌리가 있다는 관찰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의하면, 이 감정적 뿌리는 자본주의적 산업발전을 통해서 이른바‘근대문명‘을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요점만 말하자면,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된 근대문명은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적 제도의 구축, 그리고 과학기술의 힘으로 ‘진보’를 계속해 나감으로써 그 혜택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것이라는 약속하에서 전개되었으나 실상은 수백 년의 시간이 경과하는 동안실제로 혜택을 받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다수 대중은 언제 어디서나 근 - P339

중들이 이러한 희생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느끼자 지금 보는 것과 같대화 혹은 진보를 위한 ‘제물‘이 되어왔을 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대이 지배층 엘리트들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과 분노가 폭발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337

예를 들어, 그동안 자본주의를 정치적으로 뒷받침해온 근대적 ‘선거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보자. 이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확인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본시 민주주의는 ‘선거‘와는 결코 양립할 수없는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아마도 민주주의는 바로선거를 뜻한다고 오랫동안 교육받아온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반드시 돌아봐야 할 원점, 즉 고대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통치의 시스템이었지,
특별히 뛰어난 인물에게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위임하는 시스템 - P337

이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테네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라고부를 수도 있으나, 실제로 모든 시민들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참석하여토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상, 그들은 민회 이외에 평의회와 민중법정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거기서 시민들의 대표자들이 국사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관장하고 재판을 하게 하였다. 그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였다. 그런데 이 대의제에서 특기할 것은 시민대표의 선정 방법이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였다는 점이다. 즉, 아테네인들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선거란 필연적으로 명망가, 재산가특권층에게 권력을 내주는 방법이라는 것, 따라서 그 방법으로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이 제비뽑기였던 것이다. - P338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난 150년간 한반도를 비롯해서 동아시아가 겪어온 역사를 되돌아볼 때, 메이지유신은 또한 이 지역에서의 엄청난 ‘비극‘과 ‘재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대 일
‘본‘의 침략주의와 식민주의로 인해 참혹한 삶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입장에서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오늘날 일본에서는 오히려 메이지유신이후 적어도 1931년 중일전쟁 개시까지를 ‘영광의 시대‘로 보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메이지유신은 물론,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도 일본인의 자부심을 한껏 높여주는 획기적 사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키나와, 대만, 조선, 만주를 침략하고 식민화한 것은일본 자신이 서양의 식민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전개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대 일본의동아시아에 대한 침략과 지배는 이 지역이 ‘전근대‘ 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의 지식사회에서도 존재하고 있는 게 오늘의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하던 미국인 방송저널리스트가 느닷없이 "한국인들은 오늘의 발전에 대해서 일본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는 발언을 한 것은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널리, 그리고 깊게 퍼져 있는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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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베트남의 한국병사‘에 관한 저 에피소드는 심히 뼈아픈이야기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인이 다른 아시아 민족의 반 - P308

식민주의 투쟁을 저지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용병 노릇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그 민족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것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자기망각, 자기배반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과거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파병문제에 관련해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반응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는 거친 항변, 혹은
"그게 역사적인 과오였다고 할지라도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만큼 골치 아픈 이야기는 묻어두자"라는 매우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과오 없는 역사가 있을수 없다. 그리고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슬기로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파병문제와 같은 것을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이 나라를 윤리적황무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 P309

어쨌든 검찰을 비롯하여 언론, 국회, 법원, 경찰 등등, 국가기구들이종래의 억압적 혹은 권위주의적 태도와 자세를 다소간 누그러뜨리고 국민 대다수의 요구에 보다 순응적으로 된 것은 촛불집회와 촛불시위의 위력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 이 촛불이 겨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하나를 바꾸는 수준, 혹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촛불은 모름지기 권력과 민중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하면 민주주의가 확실히 뿌리를 내리고, 우리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좋은 사회‘를 유지하며 살 수 있을지, 그것을 근본적으로 묻고 거기에 대답하고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한 싸움, 즉 4·19와 5·18 그리고 6월항쟁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시민혁명을 수행하는과정 속에 있음이 분명하다. - P3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개표 직전까지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조사는 힐러리의 낙승을 장담하거나 점쳤다. 이것은 미국의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이 미국사회의 ‘밑바닥 심리‘를읽어내는 데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그것은 미국의 기득권층과 민중사회 사이의 괴리가 매우 심각하다는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지표가 된다고 할 수도 있다. - P320

실제로 《자본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고하는가》(2016)의 저자 볼프강 슈트렉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경제학자, 지식인들이 이미 자본주의의 종언을 단언하기 시작했고, 그들 중 일부는 자본주의의 종식에 따른 대안 체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포함해서 자본주의와 성장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지식인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더욱더 필요한 것은 보다 질 높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성장‘ 시대의 ‘좋은 삶’은 ‘공유경제‘, 즉 공동체 전체의 부를 구성원들이 고르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지혜가 얼마나 발휘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부를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의 확립 없이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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