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전우익 선생님과 이오덕 선생님 진짜 닮으셨네..
찾아보니 두분 동갑이시구나.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면 온갖 냄새가 난다. 외양간에서는 쇠똥 냄새가 나고 두엄 냄새와 뒷간 냄새, 닭장에서는 닭똥 냄새가 난다.
쇠죽 솥에서는 구수한 쇠죽 냄새, 정지에서는 어머니가 짓고 있는 밥냄새, 국 냄새, 이렇게 시골집 아침은 갖가지 냄새로 우리들의 코를 자극하고 그것들이 온몸에 배어버린다.
봄날, 학교길엔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들 냄새, 꽃 냄새, 강물에 서려퍼지는 비릿하고 상큼한 물 냄새, 버들꽃과 보리밭, 밀밭에 불어오는 바람 냄새, 거기다 지저귀는 종달새 소리, 산비둘기 소리, 멀리 지나가는 기차 소리, 땡땡땡 울리는 학교 종소리, 어느 것 하나 따뜻하고 정겹지 않은것이 없다. - P174

몇년 전, 우리 마을 앞으로 아스팔트가 깔리고 그 해 여름, 밤새 비가 내린 뒤 나가봤더니 길바닥에 온통 개구리들의 시체가 깔려 있었다.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은 시체들이었다. 보기에도 끔찍했지만 온통 숨막히게 나는 비린내는 농촌의 종말을 그대로 말하고 있었다.
과수원과 고추밭에 뿌리는 농약은 그대로 씻겨내려가 시냇물을 온통농약으로 흐려놓아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메뚜기와 잠자리들이퍼득거리며 죽는 모습을 보면 농촌이 삭막하다 못해 살벌해지기까지 한다. 이젠 농촌은, 삶의 터전으로서 농촌은 없다. 그냥 먹을 것을 생산해내는 식품생산단지로 변한 것이다. - P180

우리 속담에 "일해서 죽은 무덤은 없다"는 말이 있다. 흙과 더불어 일을 하는 것은 최상의 건강비결이다. 거기다 약간씩 부족하게 사니 모든일에 지나치지 않는다. 부자가 될수록 더욱 욕심이 생기고 과식을 하면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 P185

사람의 행복은 편리한 것, 풍요로운 것이 다가 아니라,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부족한 것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 P185

인생의 끝은 스스로 할 일이 없어졌을 때, 그래서 뒷구석으로 밀려났을때다. 그렇게 되면 굳이 뇌사상태까지 안 가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일이 없어 우두커니 앉아있는 노인들의 고통은 차라리 죽어버리기만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생을 일하면서 산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보여진다. - P188

나무와 바위한테 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하느님의 자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 P193

선생님, 자유인이란 가능할까요? 선택의 자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절대 자유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행복했습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땀 흘려 일하지 않아도 온갖먹을 것이 풍성하고, 그들을 해치는 폭군도 적도 없고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천사처럼 깨끗한 어린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동산엔 딱 한 가지 자유라는 게 없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성장이 없고 성장이 없으면 바보 천치가 됩니다. 일종의 꼭두각시로 사는 거지요.
결국 에덴동산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겁이 많은 남자 아담이 아니고 여자인 하였습니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여자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절대 먹으면 안되고 죽는다고 했던 선악과를 하와가 제손으로 따서 자신이 먼저 먹고 아담에게도 먹였습니다.
그들의 눈앞엔 에덴동산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자신들의 몸뚱이는어린아이가 아닌 다 큰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기를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고 하와에겐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고통이 있을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에는 이렇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 P204

어느 스님이 저한테 무엇에나 집착하지 말라 하시더군요. 집착(執着)하지 말라는 것은 붙잡고 있지 말고 붙어 있지 말라는 뜻이니 결국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네요. 그래서 제가 스님께 여쭈었지요. "스님은 왜 속세를 버리고 떠나서는 산속에 숨어서 수행에 집착하십니까? 일단 떠나갔으면 그것으로 해탈을 한 것이 아닙니까?"
스님은 그냥 웃더군요. 제 질문이 억지였을까요? - P205

선생님이 저희 집에 찾아오신 것이 1976년이었지요.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오셨을 때 너무 닮아 쌍둥이는 아니더라도 사촌쯤은 되는가 싶었습니다. - P202

가끔씩 저는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해서의식을 지니고 이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에 떠있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생겨났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내가 있다는 것에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다가 조금 안정이 되면 그래도 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웃고 울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잠깐이라도 ‘삶’이란 걸 맛본 것에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 P206

고흐의 그림책을 받고 잠시 좋았는데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서평을 써달라는 쪽지를 보고는 아이구! 속았구나 싶어 실망했습니다. 과연 세상엔 어느 것 하나 공짜가 없음이 눈으로 확인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이래저래 공짜 없는 세상이니 이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쉬셨다가 내년쯤 이런 책 한 권만 더 쓰시길 빌겠습니다. - P207

박이엽 선생이 쓴 《한국교회사》 안중근편을 보니, 북간도 독립군으로싸웠던 안중근이 일본군 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 보낸 대목이 나온다.
동지 하나가 안중근에게 따지고 든다.
"잡은 놈을 놓아줄 바엔 무엇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싸웁니까?"
안중근이 대답한다.
"우리는 포로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침략자들이요, 힘없는 자와 선량한 사람은 비록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죽여서는 안됩니다."
그 뒤 안중근은 죄없는 일본군을 상대하기보다 제국주의 앞잡이인 이등방문 하나를 죽이는 쪽이 국권을 회복하는 빠른 길이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는 착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 P215

장부는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이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임할지라도 기운이 구름 같도다.
눈보라친 연후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아느니라.
이로움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어라.

서른두살의 안중근은 진정한 의인이요 이 땅의 시인이었다. 온 세상이모두 "하일 히틀러!"를 외쳐대도 "절대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던가. - P216

나는 고속도로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이 바그다드를 향해 폭격을 하는 전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하다고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생명이 죽었고 또 죽어가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모두 끼니마다 밥상에 시체를 잔뜩 차려놓고 즐기며 먹는드라큐라들이 아닌가. 시체를 먹고 시체로 된 옷을 입고, 시체로 만든 이불 속에 누워자고, 시체 위를 걸어다녀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목숨이니, 그누구도 큰소리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 한녘에 미안한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엄청난 파괴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P237

미국 역시 우리 한국을 꼼짝 못하게 목을 조르고 있다. 지난 시절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한반도의 반쪽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에서 미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미국과 한국이평등한 동맹국이라면 절대 이럴 수는 없다. 약소국의 슬픔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많은 한국사람들은 미국과 이런 기막힌 관계를 모르고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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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6-06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때 처음으로 시골 가서 소똥 냄새에 놀랐었는데

햇살님이 올려 주신 책에 [조금씩 불편하고 조금씩 부족한 것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말씀에 밑줄 쫘악~✍

햇살과함께 2022-06-06 21:54   좋아요 1 | URL
전 어렸을 때 방학마다 한달씩 시골 할아버지댁으로 추방당해서 쇠똥 냄새, 쇠죽 냄새 아주 익숙합니다~ ㅎㅎ
지금의 시골은 그때의 시골과 많이 다르겠지만,, 나이들수록 그립네요.
권정생 선생님은 말씀대로 사신 분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