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서
전시 환경파괴는 전쟁범죄이다
1943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어느 생물학 실험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아서 갤스턴은 ‘2, 3,5-트라이아이오도벤조산‘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이 식물의 생장을 무분별하게 촉진시켜서 오히려 말라죽게 한다는논문을 발표하였다. 불행하게도 이 연구결과는 갤스턴이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적극 활용되었다. 1950년대 영국과 미국 국방부 소속 과학자들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식물을 말려서 죽이는 제초제, 즉 고엽제를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고엽제는 미군이 1961년부터 1971년까지 10년 동안 베트남전에서 약 8,000만L를 살포했던 ‘에이전트오렌지‘라는 이름으로 잘알려져 있다. 영국 공군도 1950년대에 일명 ‘말라야 비상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반도에 고엽제를 살포하였다. 에이전트오렌지를 비롯한 제초제의 파괴력은 잔혹했고,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이었다. 오늘날 에이전트오렌지로 인해 파괴되었던 인도차이나반도의 숲은 외관상으로는 옛 모습을 되찾은 듯하다. 하지만 화학염으로피해를 입은 베트남 주민들은 최소 400만 명에 이르며,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미국과 한국 군인들도 고엽제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오염물질이 빗물에 씻겨서 지하수로 흘러들어간 뒤 인간의 건강뿐만 아니라 동식물에도 소리 없는 피해를 계속 입히고 있다. - P109

백무산
현실은 이제 인간에 대한 문제에 다른 관점을 요구한다. 인간문제를넘어서 인류의 문제로, 문명의 역사를 넘어 인류사 전반의 문제로 인식의 확장을 요구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사회를 기준으로 나머지 다른 영역을 해석하는 오만하고 잘못된 전통 그대로 문명사회를 기준으로 과거 인류의 문제를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을 제대로이해하기 위해서 ‘머나먼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P121

도시문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문자였다. 도시는 이질적인 사람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며 교환을 위한 사업적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문자가 이질적인 것을 연결하고 권력에 의한 통제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문자는 단순히 말을 받아 적은 기호가 아니었다. 문자는 우리의 생활세계에 생성하고 소멸하는 구술적 상호작용 대신에 정신을 사물화하고 불변하는 허구적 세계를 구성하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지상에서 더없이 우월한 존재로 만들었다. - P123

자본주의 노동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감각을 변형하고 왜곡시킨다. 자본주의 노동습관은 자연에 대해 무관심과 적대와 공격적인충동을 유발한다. 노동의 윤리는 그 시대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태도를결정한다. 노동 자체에 대한 성찰은 근대성에 대한 성찰이며 자연과의왜곡된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기계노동은 신성하지도 인간적이지도않다. 그 누구도 인간성의 요구대로 노동자가 된 사람은 없다. 채찍과감옥이 있었고 감시와 처벌로 훈육되고 개조되었다. 이러한 성격을 인간성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윤리성을 인간의 고유성으로 둔갑시켰다. - P125

숲속을 거닐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기보다 무엇으로부터 자신이 발견되는 것을 느낀다. 그들의 시선에서 발견되는 나는 내가 생각해온 내가 아니다. 그 시선은 나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깬다. 나는 보는 자이기도 하지만 보이는 자이기도 하다. 보여지는 것도 나의인식의 일부다. 나의 내면은 내 안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 P127

강수돌
저는 언론과 대중문화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개개인이 분리배출 잘하고 전기차를 타면 기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녹색과 성장이 양립할수 있는 개념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정치의 책임으로부터 눈을 돌리게합니다. 그렇지만 수치로 따져도 세계 최상위 부자 10%가 대기 중 온실가스의 약 45%의 책임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 사람들의 생활이 평균으로만 내려와도 온실가스가 3분의 1 줄어든다고 합니다. - P146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생활정치라고 할까요, ‘나부터 혁명‘이라는저서도 여러 권 내셨지만 사고장애, 경쟁, 동일시, 중독 등의 개념을 가지고 우리 보통사람들의 왜곡된 욕망을 분석하고, 노동(자본)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때 맛볼 수 있는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가능성을 몸소 실천적으로 주창해오셨지요. 저희 편집실은 깊은 무기력증과 빈곤한 상상력의 수렁에 갇혀 있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정밀한 진단과 함께 대안적 삶의 모습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을 청해 듣고 싶었습니다. - P147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력’으로서의 삶을 무시할 순 없지만, 노동력 차원이 10~20% 정도라면 ‘인격체‘로서의 삶이 80~90%가 돼야 온전히 삶의 주인으로서 살 수 있어요. - P148

강 대다수 사람들이 ‘강자동일시‘를 하면서 그들을 선망하고 모방하려 하는 것은 결국 ‘거품을 향한 질주‘죠. 물론 자본주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악마로 묘사할 순 없어요. 오히려 크게 두 가지 측면-신분의 자유화, 소비의 민주화라는 역사적 성취를 이뤘어요. 그러나 이 성취들이갈수록 족쇄로 기능하죠. 신분 자유화로 노동력을 자유로이 거래하는대신 잉여가치 생산시스템에 종속되었고, 소비 민주화는 결국 자원낭비, 자연오염, 생태위기를 초래했어요. ‘이카루스 역설‘처럼 성공의 요인이 패망의 요인으로 작동한 역설이죠. 비근한 예로, 성공 신화로 회자되는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떴잖아요. 그가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성공은 할 만큼 했지만 놓친 게 있다. 바로 내 삶을 놓쳤다. 내 삶의 시간과 내용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결코 살 수 없다." 가치관 내지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이들과 이런 메시지를 공유하고 토론을 해야 한다고 봐요. - P151

그러니까 내가 잡초를 ‘이겨야지‘, 이런 마음으로 달려들면 안돼요. 요즘 저는 잡초한테 배워야지, 잡초처럼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우리도 그런식으로 활동하고 운동해야죠. 칡넝쿨처럼 우리가 가는 모든 지점에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뿌리는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야 해요. 그게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 물어보는 이들이 있는데, 결과와는 관계없이 ‘옳은 일‘이면 해야죠. - P155

복지국가란 원래 자본주의를 존속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지 결코 자본주의를 근본에서 변화시키는 건 아니죠. 이 부분에 저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요. - P162

강 굉장히 중요한 점인데, 아픔이나 고통 같은 어두운 면이나 기쁘고 행복하고 밝은 면 모두, 큰 차원에서는 삶의 흐름 안에서 부단히 교 - P168

차하고 공존하는 거예요. 그런데 도시민들은 대개 좋은 것만 취하려 하고 나쁜 것은 남에게 전가하거나 안 보이는 데로 돌려버리려는 회피성향이 커요. 어두운 면(더러움, 촌스러움, 귀찮음, 아픔 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둠을 직시하지 못하죠.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 자본이 개입해요. 기술이나 약품, 오락의 형태로! 그렇게 해서 중독의 늪에 빠져드는거예요. 자신의 인간적 필요, 고통 같은 것들을 책임감 있게 직접 대면하면서, 때로는 좀 아픔도 겪으면서 긴 터널을 통과하듯 빠져나가야 비로소 어둠과 함께 하나의 큰 세상을 구성하는 빛도 맛볼 수 있어요. 두렵다고 자꾸 우회로를 만들고 달콤한 대체물에 의존하게 되면 중독의수렁에서 헤매게 되죠. 그렇게 ‘악의 일상성‘이 구현되는 거죠.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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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세르비뉴와 라파엘 스테방스는 《붕괴의 사회정치학》에서, 이대로 가면 금융적 붕괴, 경제적 붕괴, 정치적 붕괴 그리고 사회적 붕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라는 희망이사라지고 동료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마저 사라진 다음에는, ‘인류의 선함‘에 대한 믿음마저 잃게 되는 문화적 붕괴까지 일어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 P83

이보 모슬리는 《민중의 이름으로》(녹색평론사, 2022)에서 대의민주주의란 민중이 아니라 중간계급이 권력을 잡고 민중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위선적인 체제라고 대놓고 비판한다. 서구의 근대사회가 이런 대의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에 적극적으로 수출했고, 그렇게 수출된 선거대의제는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신흥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몰아줬으며 민중의 경제적 독립성을 빼앗고 시민사회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대의민주주의를 외친 정치인들은 민중이 아니라 은행, 기업들과 손을 잡았고, "인간의 삶과 행위의 전 영역에서 기업구조가 공민적 구조를 대체해왔고, 전 세계가 부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개조되고 있다"(188쪽). 그 결과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거대한 골이 생겨나고 있다"(54쪽). 대의민주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파국의 원인이다.
이런 설명에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모슬리의 설명을 한국식으로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영국처럼 중간계급이 젠트리에 의한 정부를 세우기 위해 싸우지 않았고,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대의민주주의조차 전면에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통해 선거대의제가 도입된 것은 맞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면서 중간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계층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선거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했고 진보정당, 진보정치의 등장을 봉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이상을 주장하거나 민중이 직접 권력을 쥐자고 주장하기 어려웠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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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라> 황윤 감독 수라갯벌

하지만 해녀들은 싸움을 그만두지 않았다. 제주도청으로 가서 "제주도지사는 해녀들과 직접 대화하라"며 노숙하고, 공사 예정지 진입로에컨테이너를 두고 밤낮으로 보초를 서서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해녀회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대신 동부하수처리장 시공을 맡은 대저건설이 해녀들을 업무방해로 고소했고,
비대위 네 명에게 각각 1억 9,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다.
해녀들을 억누른 상대는 마을 바깥의 행정기관, 건설사만이 아니었다. 반대입장을 고수한 해녀들은 마을 안에서도 고립되었다. 월정리미래발전위원회는 이장, 개발위원장, 청년회장, 부녀회장, 어촌계장으로구성되었다. 이 중 부녀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며, 어촌계장을포함해 모두 건설업이나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마을대표단은제주도의 증설계획을 수용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해녀회장은 이를 거부했지만, 해녀회가 어촌계의 하위조직으로 - P45

포함되는 마을회 구조로 인해 어촌계장이 해녀회를 대변했다. 심지어마을청년회 소속 남성들은 마을의 어머니들인 해녀들이 활동하던 공사장 앞 컨테이너를 철거했다. 해녀들이 컨테이너를 다시 세우자 이번에는 전기를 끊어버렸다. - P46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었다. 김은아는 해녀에게 농사와 물질이 어떻게 다른 의미인지를 들려주었다. 해녀들은 물질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짓지만, 농지는 대체로 남편 명의로 되어 있다. 농민보조금을 받기 위해 농사를 짓는 가구가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때 남성은 경영자인반면 여성은 무급종사자로 기재되곤 한다. 하지만 공동어장에서는 다르다. 해녀들은 자치적으로 입어 시기, 입어 방식을 정하고 바다의 자원을 관리한다. 이로써 가정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스스로 확보한다. 해녀들은 함께 물질을 하며 서로가 바닷속에서 안전을 지켜준다. 이러한 주체성과 공동성은 여성인 해녀들에게 자긍심과 유대감을 - P46

안긴다. 이 이야기는 해녀들의 억척스런 싸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였다. - P47

착취는 생산과정에서 드러난 전가의 일부이다. 전가는 생산과 폐기에 걸쳐 있다. 빼앗는 것보다 떠넘기는 것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전가는 광범위하고 비가시적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월정리 해녀들은 똑똑히 외쳤다. 더이상의 떠넘김을 떠맡지 않겠다고. 그로써 월정리가 전가의 땅임이 알려졌다.

마을은 성역이 아니다
월정리 해녀들의 싸움은 또 알려준다. 전가되는 마을, 그 안에도 권력과 위계가 있다. 해녀들이 싸울 때 제주도정과의 갈등은 언론에 드러냈으나, 마을 안에서의 시달림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동부하수처리장증설로 마을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해녀들일 텐데, 마을회 차원의 반대운동 궤도 변경 과정에서 그 목소리는 외면당했으며, 반대운동을 이어가자 욕설을 들어야 했다. 이는 마을조직의 가부장주의와 불평등성을 드러낸다. 가부장주의는 여전히 농어촌 마을에서 자원의 배치와 의사의 조직을 결정하는 중요한 권력관계이다. - P49

마을은 성역일 수 없다. 그 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의 상이하고도 비대칭적인 입장과 그에 따른 갈등들이 있다. 제주도에서 떠들썩하게 문제가 되어 여론조사를 한 개발 사안들마다 세대 이상으로 성별에 따른 입장차가 두드러진다. 마을에서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게 발언할 수 있었다면, 제주도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 P50

기록으로 저항하는 사람들
목수, 어린이책 작가, 전직 기자, 학생, 농부.….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정부의 부당하고 폭력적인 간척사업에저항하여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며 2003년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은 정기적인 조사와 기록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시민조사단은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갯벌의 생명과 주민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군산으로 매월 첫째 주말 모였고, "10년은 해보자"고 했던 약속을 지켜냈다. 이들의 활동은 2023년 현재까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대 청년은 중년이 되었고, 아빠 손 잡고 걸음마를 할 때부터 도요새 - P54

를 찾으러 다니던 아기 승준은 이제 청년이 되어 수라갯벌의 생명들을조사하고 기록하고 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기록으로 망각과 왜곡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 P55

강들이 문명을 탄생시켰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문명이 강을 파괴했다는 사실은 말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수계(水)를 망가뜨렸을 때(문명이 붕괴했다는 사실은, 불편하긴 하지만 간과해도 좋은 사소한 일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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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터무니없는 위험을 또다시 ‘경제성‘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핵산업이나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문가들은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후쿠시마 오염수를 처리할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경제성이라는 주문(呪文) 앞에서는 어떤 논리도, 어떤 가치도 힘을 잃는 것이다. - P3

그런데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타락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보 모슬리에 따르면,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선거대의제 ‘민주주의‘는 200년 전에 그 출발부터 민중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아니었다. ‘민중의 이름으로‘ 시민혁명을 주도했던 중산계급 엘리트들은 정치적·시민적·법적 권리를 확대, 허용함으로써 민주주의라는 외양을 갖추면서 실제로는 정치엘리트와 금권세력이 지배하는 과두적 체제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민중이 직접 통치한다‘는 단순 명료한 정의를 비틀어서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야말로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그릇된 인식을 확산, 고착시키면서 거침없이 자본축적(자연과 민중에 대한 약탈)의 장애물들을 걷어내왔다. 그러므로 지난 30년 동안 세계화의 이름으로 정치엘리트들이 솔선해서 국민국가의경계와 기능을 무너뜨리고 99%의 희생으로 1%가 천문학적 부를 쌓도록 주선해온 것을 실책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선출된 대표자들에게부여된 본연의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 P5

물론 끝없는 확장과 축적은 유한한 세계에서 본디부터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인도와 중국의 폭주를 고려에 넣는다면 이번 세기 안에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어떤 것이 됐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자본주의(끝없는 확장)는 아닐 것이다. 다만 지금보다 나은 것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제 인류사회는두 가지 차원의 난제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라이벌이 없다고 느끼는 자본주의체제가 더이상 민주주의로 가장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탐욕을극한까지 밀어붙일 때 거기에 수반될 인간적, 사회적 고통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그리고 생태문명의 기초가 될 사상적, 심리적, 물리적 토대를 너무 늦지 않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 P7

마침 올해는 이런 일들이 있은 지 딱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사이 국제협약은 개정되어 지금은 모든 핵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오염수 사태에서 드러나듯 이것으로 완벽하지 않다.
런던협약과 그 개정 의정서에서 핵폐기물의 투기(dumping)는 금지되어 있지만, 배출(discharge)은 허용되어 있다. 런던협약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주요 쟁점은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석유시추선 같은 해양인공구조물에서 폐기물을 바다로 버리는 행위를 막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핵폐기물 드럼통을 바다에 던지는 행위이다. 현재 오염수 방류는 육상시설에서 터널을 통해 바다에 방류하고 있어서 이는 ‘배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논리이다. - P15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오염물질로 미세플라스틱 문제가 있다. 19세기 중반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현재는 세계 곳곳에서 쓰레기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5mm이하의 작은 플라스틱을 의미하는데, 덩치가 큰 플라스틱도 자연에서잘게 쪼개지기도 하고, 화장품의 스크럽이나 치약의 연마제처럼 애초에 매우 작은 크기로 제작되는 플라스틱도 있다. 플라스틱은 자연상태에서 분해되지 않고 특히 미세플라스틱은 매우 크기가 작아서 호흡기나 소화기를 통해 인체 내부에 들어오게 된다. 최근 몇몇 연구에서 심뇌혈관, 내분비계, 생식계에서 독성 영향이 관찰되고 있다. 또 플라스틱을 만들 때 사용한 다양한 화학물질이 인체에서 발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과학자들의 미세플라스틱에 관한 독성 연구는 더딘 상황에서 이미 미세플라스틱은 우리 주위에 널리 퍼져 있다. 세계자연기금이 2019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간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은 약 2,000개로 그 양이 신용카드 한장 분량인5g 정도라고 한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칫솔 한개 무게인 21g으로늘어난다. 음용수와 갑각류, 소금 등을 통해 우리는 매일 미세플라스틱을 먹고 있다. 최근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가 강화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는 ‘개인의 자발적 실천‘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정책도 국민적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것이지만, 사회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개인 실천이 갖는 한계도 너무나 명확하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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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6개월의 휴간을 끝내고 격월에서  계간으로 돌아온 녹색평론.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통해 통해 전쟁과 기후재앙이 맞물린 위기임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녹색평론을 읽으면 당장 위기의 농촌으로 달려가 농사를 지으며 자급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 여기서 자원을 낭비하며 기후위기에 일조하며 무얼하고 있는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지만.

역시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그럼에도, 앎을 외면하지도, 상처를 외면하지도 말자고.


<녹색평론>에 대한 자세한 서평은 시사인 824호 장정일의 독서일기. '<녹색평론>은 반드시 필요하다'를 권한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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