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의 편지모음 책에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나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이후 2015년에 출간된 양철북 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는데. 한길사 사장이 살아계신 권 선생님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출판하다니. 양아치네.

그렇게 한반도에 불어친 바람은 제주도로 여수, 순천, 온 나라 곳곳으로 엄청난 태풍이 되어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6·25 전쟁이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다. 가족을 잃고 재산을 잃고 고향을 잃고 소중한 인간성마저 파괴되어 버린 채 살고 있다. 일제침략에서시작된 고통의 세월이 백년을 넘었으니 어떻겠는가. 지금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도 가혹한 군사정치의 유산은 그대로 남아있고 어느 것이 참인지아닌지 구분조차 안된다.
동족상잔의 끔찍한 대학살은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고 저주하면서도, 우리의 적은 다름 아닌 동족이다. 그래서 스무살 아까운 젊은이들을동족의 가슴에 총대를 겨누도록 전쟁터로 내보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보안법인지 국회의원조차 하느님 모시듯 그 국가보안법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걸까.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니면 국회의원이란 자리를 잃을까 봐서 그런지, 그것도아니면 내가 아홉살 때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봤던 덩치 큰 미군병사가 휘두르던 몽둥이가 무서운 걸까.
정말 서글프다. (2005년) - P247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 P248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2000년) - P249

나중에 선생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청송 화목 장터에 살면서 화목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 당시 이오덕 선생이 그 학교 교사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 두 사람이 서로 이런 사실을 안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 연도를 맞춰보니 우연히 일치했다고 한다. 이 당시 화목은 경상도 골짜기였기 때문에 빨치산이 출몰했고, 붙잡힌 빨치산이 장터 여기저기로 끌려 다니면서 돌 맞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는데 그 장면이 너무 무섭더라고 회상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P281

이오덕, 전우익 선생과의 교분

이야기가 약간 달라지지만, 2003년에 출판된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한길사)라는 책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이 책은 이오덕 선생이 원고를 생전에 출판사에 넘기고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 책 출간에 대해 권정생 선생은 동의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책이 나와 시중에 깔리자, 선생은 매우 화를 내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돈 꿔달라는 편지처럼 별로 밝히고 싶지 않은 사적인 내용도 들어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책은 내더라도 당사자들이 죽고 난 뒤에 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닌가 싶다. - P285

선생이 아홉살 무렵 일본에서 귀국할 때, 두 형은 일본에 남겨두고 다른 가족들만 귀국했다. 당시 ‘조선인연맹‘ 에 가입해서 귀국하지 못했던두분 가운데 큰형은 작고했고, 작은형 한분은 살아있지만 투병중이라고한다. 가족들이 귀국한 이후 이분들은 ‘조총련‘에서 활동한 것 같다. 1982년으로 기억하는데, 한번은 조탑리 교회 문간방으로 찾아갔더니, 일본에계신 큰형님이 왔는데 조총련이라고 해서 형사들이 똥 누는 데까지 따라 다녀 얘기 한마디도 못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선생의 동화가 특히 분단문제, 통일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게아닐까 생각해 본다. 통일에 대한 선생의 문제의식의 씨앗이 이런 불행한가족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 P287

흔히 동화에다 무리한 설교조의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 있는데, 과연 그런 동화가 우리 인간에게 얼마만큼 유익한지 알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은 훈시나 설교가 아니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 속의 인간보다 잘 보존된 자연 속의 인간이 훨씬 인간답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권의 도덕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다. 한 포기의 나무와 꽃과 풀도 끊임없이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피운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빛깔로 세상을 밝혀주고있다. 공존은 성스럽다. 이웃사랑은 남의 것을 빼앗지만 않으면 된다. 되로 주고 말로 빼앗는 ‘자선사업‘은 가장 미워해야 할 폭력행위이다.
- <나의 동화 이야기> 중에서 - P289

그는 생전에 동화와 소설, 시와 수필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존경해왔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문필업적들은 오래도록 위로와 용기를, 또 가르침과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느 것이나 절실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 비할 바 없는 삶, 거의 성자의 후광에 둘러싸인 듯한 그의 흉내낼 수 없는 삶에 비하면 빙산(山)의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가 이 세속의 삶을 마감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보내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평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뿐 아니라 벌레와 새와 쥐와 개구리,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 P292

행복이라는 환상을 떨쳐버리지 않는 한 인간은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하다는 사람, 잘산다는 인간들, 선진국, 경제대국, 이런 것 모두 야만족의 집단이지 어디 사람다운 사람 있습니까. 어쨌든 저는 앞으로는 슬픈 동화만 쓰겠습니다. 눈물이 없다면 이 세상 살아갈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 권정생 - P293

선생은 짐작했던 대로 짧은 대화도 힘겨운 게 분명했고, 당시 내가 다니던 ‘민들레교회‘의 담임 목사이자 선생의 오랜 벗이기도 했던 최완택목사가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처럼 "애면글면 찾아가서 수다스럽게 말붙이고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 선생을 돕는 길"이라는 말씀 때문에 다시선생을 찾아갈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논문을 끝마친 뒤에도 종종선생의 글을 찾아 읽으며 선생을 떠올리곤 했다. 나는 권정생 선생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은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글을 써오셨지만, 지난 100여년간의 우리 삶의 밑바닥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변화와 그 훼절을 가장 근본적으로, 아프게 그리는 대작가이자, 그분의 존재 자체가 이 땅의 일그러진 삶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되는 분이라고, 이라크전 발발 당시에,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겪었던 여러 혼란스러운사건들의 길목에서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선생의메시지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지적이었다.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일부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신랄한 비판 또한 실은 우리 사회 운동 전체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지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답답하고, 헷갈릴때 나는 종종 "권정생 선생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곤 했었다. - P295

내가 민들레교회를 다니던 시절, 선생이 보낸 안부 편지를 읽은 목사님이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나직히 노래를 읊조리던 모습을 엿보았던 때가 생각난다. 선생이 오래도록 사귀었던 종교인들, 최완택 목사, 이현주목사, 김영동 목사, 정호경 신부와의 교분은 우정의 훈훈함으로 가득 찬 한폭의 풍경화였을 것 같다. 선생은 이분들께 더러 익살스럽게 농을 걸기도 했던 것 같고, 2002년 3월 3일자 <민들레교회이야기〉에 보낸 선생의시는 지금 읽어도 싱긋이 웃음이 난다.

임오년의 기도

눈오는 날 / 김영동이 걸어가다가 /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으면 / 속이 시원하겠다.
오월달에 / 최완택이 산에 올라갔다가 / 미끄러져 가랑이 찢어졌으면 되게 고소하겠다.
칠월칠석날 / 이현주 대가리에 불이 붙어 / 머리카락 다 탈 때까지 /소방차가 불 안 꺼주면 / 돈 만원 내놓겠다
‘올해 ‘목‘자가 든 직업 가진 몇 사람 / 헌병대 잡혀가서/장 백대맞는다면 두 시간 반 동안 춤추겠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 / 모두 정신차려 거듭나기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 기도하옵니다 / 아멘.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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