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찍은 사진.

 

 

 

 

어느 맞벌이 신혼부부의 이야기다. 갓 결혼한 새 신부는 속이 상하였다. 연애할 땐 자신을 위해서 모든 걸 양보했던 신랑이, 그토록 너그러웠던 신랑이 결혼 후 다른 남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신랑이 다른 남자로 보이는 건 애초에 그녀가 신랑을 잘못 봤던 것일까, 아니면 신랑이 두 얼굴을 가졌던 것일까.

 

 

첫 부부 싸움은 신랑과 함께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발생했다. 신랑이 여행용 코펠과 버너를 샀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하니 친정에서 빌려 써도 된다는 그녀의 말을 신랑은 귀담아듣지 않고 사 버렸다. 그다음엔 텐트에 관심을 보이며 백화점 점원에게 가격을 묻는 것이었다. 텐트도 구입할 모양이어서 그녀는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여 화를 내고 말았고 결국 두 사람의 말다툼으로 번졌다. 전셋집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이라 앞으로 집을 장만하려면 그녀로선 알뜰하게 살림하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쓰지 않아도 될 돈을 마구 쓰는 신랑이,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신랑이 낯설고 미웠다.

 

 

두 번째 부부 싸움이 일어난 것은 신부가 며느리로서 최근 시가(시댁)에 안부 전화를 한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엔 효자인 신랑이 화를 냈다. 자기가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도 하지 않은 그녀를 못마땅해하였다. 내일 전화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녀가 말해도 신랑은 화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신랑은 며느리가 시가에 자주 전화해야 마땅하다고 여겼고, 신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화하면 적당하다고 여겼다. 신부는 사위도 처가(친정)에 전화해서 장모님에게 안부 인사를 해야 평등하다고 말했는데 신랑은 대꾸가 없었다.

 

 

위와 같은 부부 싸움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루며 살기에 일어날 법하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나 의견 충돌로 시작된 부부 싸움은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이 오가며 큰 싸움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의견 충돌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아예 두 사람의 타협점을 찾아 두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난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부부 지침서’를 만들어 놓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지켜야 할 지침을 적어 놓은 기록문을 말함이다. 양방의 의견을 잘 조율하여 결정한 지침을 기록해 놓는 것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부 지침서는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청소, 설거지, 쓰레기 처리, 장보기 등을 누가 전담할지를 기록해 둔다. 맞벌이 부부라면 먼저 퇴근해 귀가한 사람이 저녁 준비를 하는 걸 원칙으로 하되, 매일 늦게 귀가하여 상대편보다 집안일을 적게 하는 사람은 주말에 가사를 벌충함으로써 공평하게 분담하면 된다. 상대 배우자가 동의하지 않는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엔 물건을 산 본인이 설거지를 이 주일 동안 하는 벌칙을 정하여 두면 구매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마찰이 생기지 않아 좋다. 또 신부는 며느리로서 시가에, 신랑은 사위로서 처가에 안부 전화를 하는 횟수를 미리 정해서 기록해 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를 대비하여 육아에 대해서도 분담하여 명문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각자 할 일을 충실히 하는 모습을 보면 부부간의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요즘 코로나 19로 웃음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삶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맹자>에 이런 글이 있다. 「풍년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나태해지고 흉년에는 젊은이들이 대부분 포악하게 되는데, 이것은 타고난 재질이 그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의 마음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란 흉년이나 풍년과 같은 환경 조건이 그들을 나태하거나 포악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 지침서를 갖고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은 부부가 다투지 않도록 좋은 환경을 만듦으로써 삶의 지혜를 발휘한 것과 같다.

 

 

결혼식이 많은 봄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을 즈음에는 서로 상대 배우자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넉넉한 법이다. 즉 부부 지침서를 작성하기 알맞은 때인 것이다. 이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가 이 글을 읽어도 좋겠지만 특히 예비 신랑, 신부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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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책

 

 

 

 

 

 

 

 

 

 

 

 

 

 

 맹자, <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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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10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돌아오셨돵!! 그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페크pek0501 2021-04-11 12:02   좋아요 1 | URL
한달 가량 몸살이 왔다 갔다 반복했네요. 쉬라는 몸의 신호 같았어요.
다행히 지금은 건강 회복했어요.
첫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1-04-10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침서 말씀에 공감합니다. 신혼 초 연애 당시 감정만 생각한다면 ‘뭘 그런 것까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오해는 정말 작은 것부터 예상치 않은 것으로부터 시작되더군요. 물론 10년차 되니까 하던대로 안하는 목록을 지침서로 만드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페크pek0501 2021-04-11 12:05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잘 지내셨겠지요?
할 일을 분담해서 하면 너무 계산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상대가 애써 주는 만큼 오히려 양보하고 배려하게 될 걸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오래 같이 살다 보니 남편과 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더라고요. 장보기나 청소는 남편이 할 때가 많고, 부엌일은 내가... 이런 식이죠.
댓글, 감사합니다.

잘잘라 2021-04-10 1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안녕하세요? 꽃보다 페크님!!!

페크pek0501 2021-04-11 12:06   좋아요 0 | URL
잘잘라 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우리 잘잘라 님의 페이퍼를 그동안 못 봤네요. 쉬면서 눈팅이라도 해야 하는 건데...
이삼주 쉬기로 하고 몸살이 나는 바람에 연장됐어요. 쉬니까 또 쉬는 것에 적응이 되더라고요. 즐겁게 지냅시당~~

서니데이 2021-04-10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지내셨나요.
꽃이 참 예쁘게 피었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1-04-11 12:0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벌써 봄이 완연하네요. 벌써부터 더워질까 봐 겁이 나네요.
이젠 제 몸이 더위에 약해집니다.
좋은 하루 매일 보내시길 바랄게요.

stella.K 2021-04-10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오셨군요! ㅎㅎ
저는 얼마 전 TV에서 장자 강연 듣고
오강남 교수의 책을 샀습니다.‘
나이가 드니 동양철학이 땡기네요.ㅋ
언제 읽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맹자도 읽어보고 싶군요.^^

페크pek0501 2021-04-11 12:10   좋아요 1 | URL
옙. 드디어 왔습니다. 오강남 님의 책을 저는 거의 다 샀던 것 같아요. 장자, 도덕경도 괜찮게 읽었어요. 저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요.
동양철학이 매력이 있지요.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것도 장점 중 하나.
맹자도 밑줄을 그을 곳이 많답니다. 감사합니다.

붕붕툐툐 2021-04-11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귀환을 환영합니다!!

페크pek0501 2021-04-11 12:11   좋아요 0 | URL
붕붕툐툐 님, 닉네임을 보니 무척 반갑군요.
환영해 주셔서 무지, 황송하게 감사합니다. 좋은 봄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파이버 2021-04-11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오랜만이에요!! 봄꽃과 함께 돌아오셨네요^^♡

페크pek0501 2021-04-11 13:23   좋아요 1 | URL
봄꽃과 돌아왔다는 말씀, 멋지네요.^^♡

희선 2021-04-1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잘 살려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두는 게 좋을 듯하겠습니다 뭐 그런 걸 정하나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는 것보다 서로 이야기 해 보는 게 더 낫겠지요

이번 봄에는 꽃이 빨리 피었어요 철쭉 영산홍도 피었군요 주말이 가고 새로운 주 시작입니다 페크 님 새로운 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희선

페크pek0501 2021-04-13 10:33   좋아요 0 | URL
요즘 신혼부부들은 맞벌이가 많아서 아마 집안일을 분담해서 할 듯해요. 다만 문서화하지 않아 갈등이 있을 수 있기에 부부지침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꽃이 빨리 피어서 깜짝 놀랐어요. 실내는 아직 서늘한데 밖은 덥기도 하더군요. 봄이 점점 빨리 오는 것 같아요.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십시오.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4-12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다시 뵙네요. 건강 회복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1-04-13 10:34   좋아요 1 | URL
이하라 님, 잘 계셨어요? 반갑습니당~~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han22598 2021-04-15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셨네요 ^^ 웰컴백! 페크님 ^^

2021-04-1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1-04-1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 열렬한 알라딘 식구들의 환영에 저도 한 목소리 더합니다.

2021-04-20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분간 쉬겠습니다.

 

책 출간을 위한 작업을 하던 작년 봄에도 쉰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휴식을 갖고자 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땐 휴식이 최고라고 여기기에.

 

이런 글을 올리지 않고 그냥 쉬면 되지 뭐 하러 이런 페이퍼를 올리느냐고 묻고 싶은 분들이 혹시 계실까 봐 한 말씀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밝혀 놓고 쉬어야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람인가 봅니다. 

 

당분간 쉰다고 밝혀 놓았으니 쉬는 동안 이웃 서재에 제가 댓글을 남기지 않더라도 섭섭해 하실 분이 없겠지요?

 

많이 쉬지는 않을 겁니다. 2~3주 내외로 잡고 있어요. 그 정도의 휴식 기간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아래에 사진을 올립니다. 이번 겨울에 찍은 사진입니다. 해질 무렵에 찍어서 색상이 조금 어두운 것 같습니다. 이 글을 보실 여러분께 드리는 저의 작은 선물입니다.

 

나목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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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0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2-10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진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푹 쉬시고 돌아오세요. 역시 쉬는게 제일이죠. ^^

scott 2021-02-10 1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푹 쉬시고 명절 연휴 가족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붕붕툐툐 2021-02-10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의 휴식을 응원합니다~ 세상에서 젤로 필요한 일이죠~ 푸욱 쉬시며 즐겁게 지내고 오세요~😊

stella.K 2021-02-10 1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유, 놀랬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
그래요. 쉬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쉬시고, 설 연휴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다시 돌아 오실 땐 봄이 더 성큼 다가와 있겠네요.
따뜻한 봄날 다시 뵈어요.^^

겨울호랑이 2021-02-10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행복한 설연휴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2-10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 잘 쉬시고, 설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1-02-1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월은 아직 겨울일 텐데, 요새는 봄에 더 가깝습니다 여전히 밤에는 쌀쌀합니다 봄은 가까이 왔겠지요

페크 님 편안하게 쉬시고 설도 잘 쇠세요


희선

파이버 2021-02-1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하늘과 나목이 작품같습니다. 페크님 설명절 잘 보내시고 재충전 잘 하시고 오세요~~^^

2021-03-18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3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과나비🍎 2021-04-0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잘 쉬고 계시겠지요?...^^* 이제는 만우절이면 페크 님 생각이 나네요~^^; 생일 축하드려요~^^* 오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랄게요~^^* 참, 페크 님 책은 제가 직접 몇 달 전에 만났어요~^^* 역시 좋은 글이 담겨 있더라고요~^^* 그나저나 이 댓글을 언제 보시려나 모르겠네요~^^;

2021-04-03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7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21-04-0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pek님 글 보고싶어요~~

2021-04-10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157~158쪽)
-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157~158쪽)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니라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동기이며, 그것은 특정한 종류라야 한다. 중요한 건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는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158쪽) 만약 의무가 아닌 다른 동기로, 이를테면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행동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가치가 부족한 행동이다. 비단 내 이익만이 아니라 내 바람, 욕구, 기호, 식욕을 채우려는 모든 시도도 마찬가지다. 칸트는 자신이 ‘끌림 동기’라 부른 것을 의무 동기와 대조해 비교한다. 그러면서 의무 동기에서 나온 행동만이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162쪽) 중요한 점은 선행의 동기가 그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야지, 쾌락을 주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63쪽) 아이가 진실을 말한 유일한 이유가 죄의식을 피하기 위해서였거나 실수가 발각되었을 때 부정적 여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면, 그 행동에는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이 옳은 행동이기 때문에 진실을 말했다면, 아이의 행동은 그에 따르는 쾌락이나 만족과는 상관없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이 된다. 옳은 이유로 옳은 행동을 했다면, 그때 기분이 좋았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진 않는다.
칸트가 말한 이타주의자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돕는 이유가 단지 그 행위에서 느끼는 쾌락 때문이라면, 그 행동엔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 그러나 타인을 도울 의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했다면, 거기서 쾌락을 느낀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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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2021-02-03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알라딘 들리면 고향처럼 찾는 이 곳 변함없이 정겹습니다.

요즘은 칸트나 공자, 심지어 샌델교수의 정의론도 무색함을 느끼는 건 서글픈 일일까요?
차라리 수많은 인간사를 정리하며 깊이 빠져들었던 사마천의 <회의론>에 동감이 되네요.

차츰 세계가 글로벌리즘으로 경도되는 현상은 결코 이상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닌 몇몇 힘있는
자들의 세계단일화라는 야욕을 이루려는 계획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동기는
선악을 뛰어넘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인륜 파괴적인게 아닐까요?

제가 본류에서 앞서 나갔다면 실례를 용서해 주시길. 꾸우벅.

페크pek0501 2021-02-03 09:06   좋아요 1 | URL
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표면상으로만 정의를 외칠 뿐 실상은 정의롭지 못하지요.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요. 힘 있는 자가 이기심을 맘껏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지요. 자기 자녀를 위한 교수들의 비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힘 있는 자인가, 어느 나라가 힘 있는 나라인가, 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공정함이란 없죠. 그래서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책을 낸 것 같아요. 요즘 읽고 있는 책입니다.

위의 글은 163쪽의 글이 흥미로워서 옮겨 봤습니다. 의도가 옳아야만 하는 것인지, 의도는 옳지 않았지만 결과만 좋으면 된 것인지 우리의 판단을 요하는 것 같아서요. 저는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름이 신문 기사에 나는 게 좋아서 기부했다면 그것도 좋은 일로 봅니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그건 도덕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거죠.

댓글, 감사합니다.
 

 

 

 

 

 

 

 

 

 

 

 

 

 

 

 

 

 


『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5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쓸 수 있다.
자신의 애정이나 미움에 따라 상대의 본모습이 바뀐다. 인간의 이성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니 쓸모가 없다.(인간의 이성적 판단조차 믿을 게 못 된다는 뜻.)

 

 

→ 이를 내가 해석해 보았다.
인간은 자기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자를 무조건 좋게 보고, 자기가 미워하는 상대자는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애정이나 미움은 대상의 본모습을 바꿔놓기 쉽다. 자신과 사이가 좋은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안 좋아한다니까.’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의 본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보든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작용할 뿐이다.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리라.

 

 

 

 


 

(58쪽) 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

(61~62쪽) 우리 자신의 이익도 우리를 기분 좋게 눈멀게 하는 신기한 도구이다. 아무리 공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소송에 재판관이 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자애심에 빠지지 않으려고 반대로 그지없이 불공정했던 사람들을 나는 안다. 지극히 정당한 사건에 패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사건을 부탁하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 어쩌다 닿기라도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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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3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2 15: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께서 말씀하신 파스칼의 <팡세>을 읽으면서 파스칼이 생각하는 이성과 감성이 각각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궁금해집니다. 인용된 글을 보면, 이들 둘이 혼용된 것 같은데, 파스칼에게 이들의 구분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중략)된 부분에 이를 설명할 내용이 담겨있는지 나중에 찾아봐야 겠습니다.^^:) 저도 <팡세>를 예전에 읽었는데, 읽을때마다 새로운 구절이 넘쳐나니... ㅜㅜ 참 끝이 없습니다...

페크pek0501 2021-02-03 08:33   좋아요 2 | URL
이성과 감성을 상대적 의미로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아마도 파스칼은 인간의 특성은 (동물과 다르게)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이성에는 감성에 비해 객관성이 있는 걸로 인간들은 착각하는데 이성조차 엉터리다, 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문제 제기였습니다.ㅋ 독서는 그렇게 꼼꼼히 해야 하는 거죠. 이것과 관련하여 겨울호랑이 님이 새로 알게 된 게 있으시면 나중에라도 저에게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3 08:55   좋아요 2 | URL
집에 돌아와 해당 부분을 읽어보니, ‘상상력‘에 대한 팡세의 이야기 중 일부네요. 팡세는 상상력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고, 인간은 이 두 능력을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보니, 큰 틀에서 페크님 말씀대로 전개되네요...

˝인간이 이 두 능력(상상력, 이성)을 결합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설사 이 화해에서 훨씬 더 유리한 것은 상상력이라 하더라도, 왜냐하면 둘이 싸우면 상상력이 전적으로 이성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이 상상력을 완전히 정복한 일은 결단코 없다, 차라리 반대의 경우가 일쑤이다.˝(p59)

정리하면, 파스칼은 인간은 두 능력을 결합하여 사용하지만, 구분해 보자면 상상력이 이성보다 인간에게 더 지배력을 행사하며,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효과(애정, 미움) 등에서 보듯 상상력이 인간을 주관한다. 그렇지만, 상상력은 또한 오류와 허위의 주관자(p56), 이보다 약한 이성은 얼마나 나약한 것일까!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페크님 덕분에 오랫만에 <팡세>를 다시 읽었습니다. 고전은 두고두고 뒤새겨야함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페크pek0501 2021-02-03 09:17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부분을 읽었습니다.
올린 글은 이성에 대한 글만 발췌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이성이란 게 그렇게 나약하고 엉터리라는 게 인상적이어서요.
상상력의 힘도 흥미롭지요. 법관의 옷, 의사의 흰 가운을 보기만 해도 상상력이 발동하여 그 앞에서 주눅 들어 있어 그에 대한 유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재밌어요.

참, 흥미로운 책입니다. 앞으로도 의견을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의 뜰 - 포토 에세이
김살로메 지음 / 문학의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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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에세이에 칼럼과 수필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어떤 글은 칼럼으로 읽히고 어떤 글은 수필로 읽히는데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나에게 대부분 수필로 읽혔다.

 

 

칼럼과 수필을 구분하기 위해 예를 들어 본다.

 

 

『어떤 대상이나 현안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249쪽) 이는 수필로 읽힌다. 잊지 않겠다, 라고 다짐하고 있다.

 

 

(어떤 대상이나 현안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쓰면 칼럼으로 읽힌다. 이는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수필과 칼럼을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사실 칼럼과 수필을 구분하기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마치 길게 쓴 시를 산문시라고 해서 ‘시’로 볼 수도 있고 ‘산문’으로 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에세이를 쓸 때 칼럼과 수필을 꼭 구분해서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칼럼으로 써야 적합한 글이 있고 수필로 써야 적합한 글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저자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작가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서다. 그만큼 그의 글은 문학적이고 사색적일 뿐 아니라 운동으로 키운 근육처럼 탄탄하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문장력이 아닌 것이다.

 

 

<엄마의 뜰>은 신변잡기의 열거에 그치는 에세이집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에서 건져 올린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있는 책이다. 

 

 

몸이 아팠다는 글이 내 눈에 유표히 띄었다. 앞으로 오래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챙기면서 글을 쓰길 저자에게 바란다.

 

 

 

......................

참고 사항 :

알라디너인 다크아이즈 님의 책이다.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다. 

 

 

 

(41쪽) 돌이켜보면 아부지 때문에 한겨울인 청춘이었지만 끝내 아부지 덕에 물오른 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글 쓰는 데서 자유롭지 못할 숙명은 당신이 준 고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애증의 저울추를 번갈아가며 기울게 했던 아부지는 제게 결핍인 동시에 충만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궁색과 잔소리의 향연인 당신의 방식은 한 가계를 책임져야 했던 병약한 부성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130쪽) 누구에게나 양면성은 있습니다.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도 당연하구요.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면 나도 더한 깊이로 상대를 공감하고 배려하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심 없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사심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심 없는 절대적 관계가 있다면 페르소나로 자신을 연출할 필요조차 없겠지요. 온 지구촌에 그런 세계가 있다면 일상의 행복지수는 한결같은 높이를 지향하겠지요. 하지만 삶은 그런 높은 차원으로 구조화되고 승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에요. 그저 인간적인 정서와 반응들로 가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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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1-01-27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필과 칼럼의 구분을 이제야 할 것 같습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글이 칼럼이군요. 그간에는 둘의 차이를 모르고 읽어온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1-01-27 14:42   좋아요 3 | URL
저도 잘 모르지만... 칼럼과 수필의 또 하나의 차이는 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면 칼럼이고, 제기할 수 없다면 수필입니다.
유년의 추억을 쓴 수필이 있다면, 누가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유년의 추억을 썼을 뿐인데 말이죠.
만약 ‘질투하는 이유‘는 이거다, 라고 쓴 칼럼이 있다면(제 책 속에 있는 글입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요.
독자 중엔 질투하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 수 있으니까요. 다른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신문에 기고한 글을 다 칼럼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신문에서 오피니언 지면에 있는 글을 칼럼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사설도 칼럼의 일종이죠. 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회사의 의견이나 주장을 독자에게 전한다는 점에서요.
댓글, 감사합니다. ^0^

2021-01-2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8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1-28 2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칼럼과 수필(에세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다크아이즈님의 이번 신간은 에세이같았어요. 칼럼과 수필의 차이가 이의제기에 있다는 것도 참고해보면 좋을 내용이네요. 생각해보니, 신문 오피니언 코너에 실리는 글은 수필 보다는 칼럼이 많을 것 같고요, 에세이는 문학란에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종이신문을 보지 못한지 오래되어서, 요즘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페크님, 잘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페크pek0501 2021-01-29 11:00   좋아요 1 | URL
요즘은 시와 소설을 빼면 전부 에세이로 분류하는 것 같아요. 알라딘에서도 그래요.
에세에, 하면 수필이 떠오르긴 해요. 수필은 문학의 영역 안에 있고요. 칼럼은 비문학적이죠. 너무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시간 낭비가 된다고 여기는 장르 같아요.
문학적 형상화를 하지 말고 그냥 네 견해를 직접 써라, 하는 게 칼럼인 것 같아요.
수필은 다르죠. 문학적인 맛이 나야 하죠.
독자가 문학 감상을 하겠어, 하는 게 수필이라면.
독자가 네 생각을 들어 보겠어, 하는 게 칼럼 같아요.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온 듯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희선 2021-01-29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땅히 글을 써야 하는 사람’ 으로 작가밖에 될 수 없다는 말은 작가한테 가장 좋은 말이겠습니다 여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 담겨 있겠네요 사람은 다른 사람 삶을 보고 배우기도 하죠 그런 것도 많을 듯합니다

페크 님 일월이 빠르게 흘러가는군요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니... 추운 날이지만 따듯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1-01-29 11:03   좋아요 1 | URL
마땅히~~ 라는 표현이 가장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 맞습니다. 작가적이라고 느끼며 읽었어요. 저에게 없는 재능이 이 작가에겐 있더군요.

1월도 거의 가고 있고 시간은 종착역 없이 흘러 가기만 하네요.
계획대로 좋은 겨울날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