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끈을 묶는 몇 개의 아포리즘, 사유


  *진실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에 존재한다.

---> 과학적 규명, 또는 언론, 법적 해석에 적용 필수.


  *두려움은 어두움으로 가는 길이며 

    두려움은 분노를, 분노는 증오를 

    증오는 과로움을 낳는다     요다.

---> 미국 이미 대통령 직을 떠난 트를 탄핵시키려는 민주당의 작태를 보며 깊은 동감


  *인간 본성에 대한 오판의 결과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 사회주의는 번번이 실패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


  *정직하고 머리좋은 사람은 절대 좌파가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사상가 레이몽 아롱

---> 아,이제 알아따. 세상엔 정직하지 않고 우동 가득 머리가 끊이지 않으니까.


  *거짓은 진실을 파괴한다. 거짓은 거짓에서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된다.

---> 거짓에 둔감한 사람들이 언론을 의심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드라마나 영화에선 결말 대신 의문을 제시한다.

--->고개를 갸웃뚱하고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들이 많은 영화가 우수작이라고?


  *힘이 없는 정의는 무기력하고 정의가 없는 힘은 폭압적이다.  파스칼

  *불의보다 더 나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손에 칼을 쥐지 않은 정의다. 힘이 없는 정의는 악과 다를 바 없다.          오스카 와일드

--->정의의 또 다른 서늘한 정의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빨리 잊어도 자신의 재산 손실은 절대 잊지 않는다.마키아 벨리

--->그다운 역설의 뼈 때리는 진리


  *우리가 눈 감고 살면은 우리의 아이들이 엿같은 세상에 산다고!

--->그래서 관심을 갖고 생각하며 목소리를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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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익숙해져야 될 변화되는 세상>


  지난 2021 년 1월 21일 예감한 바대로 조 바이든이 미국 46 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첫 날 17건의 정부 행정명령에 폭풍 사인했다.


그 가운데 성적 평등을 지향하는 젠더리즘과 생명에 관한 획기적인 사안이 있었다.

우리는 전래로 남녀 구분은 타고 난 육체의 심볼을 통해 규정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이 행정명령에 따른다면 각 개인의 성정체성에 따라 스스로 자신이 어느 

쪽인지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남성적 심볼을 가졌음에도

스스로 여성적이라 생각된다면 여자 화장실을 사용해도, 라커룸을 사용해도, 또는 여성전용 운동 클럽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것 이다. 반대로 여자로 태어났어도 스스로 남성이라고 자각한다면 남성으로서의 어떤 행동도 규제되거나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현재도 젊은이들 가운데 이런 성정체성 혼란이 많이 보편화되어 심각한

찬반이슈가 되고 있는 터에 이런 시행령은 이들의 막힌 봇물을 터준 격이다.

앞으로 우리 자녀가 또는 아내나 남편이 어느날 홀연히 남녀 구분을 바꾸어 새 인생 살겠다고 선언을 해도 할 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는 성평등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인적사항이나 개인 기록에 남 녀 구분난을 아예 없애겠다는게 아닌가.


성경 속 구약 창세기에 두 천사들이 롯의 집에서 하룻 밤 유하게 되는데 그 도시 사람들이 롯의 집에 몰려들어 손님을 저희들에게 내놀 것을 살벌하게 강요했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 19:5  

어찌 그런 일이 ?? 하며 진위가 매우 의심스러웠는데 앞으로는 이런 현상도 보편화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진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후세들이 살 변화되는 세상을 놀래지 않고 지켜 볼 담력을 지금부터 준비해 두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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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가는 다 망해갈 때도 최상이라고 말하지만 학자는 가장 좋은 시절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동주 이 용희 선생의 [ 미래의 세계정치 ] 중 발췌


요즘 대한민국 시국에 잘 맞는 말이다. 머리 안에 우동으로 가득 찬 문통이 새해 신년사에서 근사하게 하신 말쌈은 현실을 외면한 채 달나라 얘기를 하고 있는 거 아니었던가.

그가 현실 인식이 안 된건지, 또는 교활하게 사탕발림으로 국민들에게 뻥을 치는건지 본인 아니고는 누가 알겠는가.

위에 인용문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권 63면에서 발췌했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다시 읽고 있다. 한때 그의 좌익 성향에 살짝 실망하여 외면했으나 다시 읽으니 그 행간 속에 품은 소박하고 박식하고, 또 서정적인 글 속에 끌리게 된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하고 북측의 초청을 받아 북한 유적 답사도 하고 북한과 일본까지 두루 우리 민족 고전 문화 유산과 연결고리 등을 광범위하게 조명하여 꽤 신망을 받았고 노무현 통 때는 문공부 장관 까지 하며 아직도 교수로 남아 있다니 일단 성공한 인생 아니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나 거하게 한 몫을 하고 유유자적 나이들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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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내 가슴을 뛰게하는 뭔가가 있다니.

철학가 최진석 박사의 강의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가 말하는 장자의 <덕>의 의미는 완전 틀리다. 

<선한 사람도 수용할 줄 알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수용하는 사람이 선하다>

선하거나 선하지 않다는 건 나의 판단일 뿐이고, 그 사람의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내 자신의 잣대로 아무렇게나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나의 반성;나만 옳다고 여기며 남을 비판하고 싫어하는 섯부른 짓은 하지 말자.

매너란 자신의 위엄과 존엄을 지키기 위하여 남에게 대하는 배려. 위엄과 존엄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하나, 중요한 사항.

사피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구분>

적과나를 구분하고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을 구분하고 그경험을 전승의 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전달하고 지식을 통해서 세계를 확장시킨다. 

*따라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연결해서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열다. 

은유를 통한 창의, 창조 

탁월한 인간은 은유를 통하여 창의와 창조를 하는 인간이다. 

시인들이 이에 속한다.

하얀 별이 내려와 밥솥에 쌀이 되고 쌀이 곱게 퍼져 밥이 된다. 김승희 시 인용

하얀별과 밥의 연결성과 은유. 

여하튼 그의 달변은 교재 한 번 들여다 보지도 않고 한시간 이상을 관심 초집중 아래 이끌어 간다.

 

오늘 참 평화롭고 조용하며 편안했다. 

참 고마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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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6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에 2021-02-08 05:09   좋아요 1 | URL
찾아주셔서 반갑습니다. 저는 귀양살이 하는 심정으로 멀리 미국 동부 큰 도시에서 좀 떨어진 외진 곳에 살고 있어요. 더구나 코비19 때문에 외출도 자유롭지 않고 고국 방문도 어렵고 그리고 아주 치명적인 건 한국책을 쉽사리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ㅠㅠ
한국서 살며 책을 마음껏 찾아 읽을 수 있는 페크님 진정 부러워라.
요즘도 쥐어짜듯 소설을 씁니다. 작년도엔 세 편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보였어요. 눈을 감으면 늘 작품을 구상해요, 그리고 자료를 구하느라, 지식을 넓히느라 또는 영감을 얻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그게 요즘 나의 일상 입니다. 그래서 실없이 바쁩니다.ㅎㅎ
저도 얼아 전 고미숙의 <동의보감>을 읽었는데 숙제가 더 많아져 힘들어 죽을 뻔 했어요.
완전 독자를 휘둘러 몰아 부치더군요 더 읽고 더 생각하라 하면서요. 약간 과장?? ㅋ

가능한 하루 한 편 씩 여기에 잡필을 올리려 해요. 가끔 들르셔서 인사 나누어요.
그리고 한 수 가르침도 기대합니다.

오늘은 한종일 고요히 눈이 내리고 있네요.


 

   Air on the G-string                                               

     (G선상의 아리아)         


   그녀는 이사짐을 다 꾸려놓았다. 아끼던 책 몇 무더기와 꼭 필요한 간소한 가구, 옷 이부자리,그리고 최소한의 부엌살림.

집안은 조용했고 딸 방에선 아무 기척이 없다. 14 살 12 살 손자 아이들도 제 어미가 단속했는지 꼼짝하지 않는다.아마 나서진 못해도 섭섭한 마음을 품고 어디선가 이 할미의 거동을 유심히 살펴볼 터이다.

그냥 떠나야 할 것 같다.

" 나미야, 나 간다. 케이, 더스틴 잘 있어라. 짐차 올 시간이 다 되었구나" 

중얼대며 일어서는 그녀는 목이 메이며 살픗 서러운 눈물이 고였다.

예약한 무빙 트럭이 와서 크락션을 울리자 마음씀이 순하고 활달한 미국인 사위가 얼른 나와 짐을 날라주곤 언어권이 달라 섬세한 말이 통하진 못하지만 애처럽고 걱정스런 눈길로 인사한다. "어머님 굿럭!"

이제 출발만 남았다. 현관을 나서며 지난 30 여 년 살아온 집을 돌아 보았다. 처음 이민 와서 20년 함께 살았던  남편이 먼저 갔고 그 후 딸 나미 가족과 함께 살았던 10년. 초여름 뒷뜰 키큰 참나무의 무성한 이파리가 지붕 너머 무수한 푸른 손수건 되어 굿바이 하듯 바람에 팔랑팔랑 흔들린다. 그녀가 정성껏 가꾸었던 덩굴 장미는 붉은 꽃이 만발하여 현관 앞 아치 벽면을 화사하게 뒤덮었다. 지난 삼십 여년 쓰리고 매운 추억과 즐거움이 서린 정든 집에서 인경은 꼭 필요한 자신의 물건들만 챙겨 그 곳을 미련없이 훌훌 떠나는 것이다.


 인경은 함께 살던 딸에게 말했었다.

 "얘야 이제 나 혼자 나가서 독립해서 살고 싶어.아이들도 다 자랐고 더 이상 내 도움이 네게 필요하지 않게 되었어. 이젠 나도 나를 위해 쉬엄쉬엄 살고 싶구나"

물론 딸 나미는 질색하며 반대했다.

 "엄마, 이제야말로 엄마는 우리가 필요할 때라구요, 늙고 허약한 몸으로 어떻게 혼자 살겠다는 거예요?" 딸은 이치 정연하게 말이야 하면서도  인경이 이해할 수 없도록 오버하여 뽀로퉁하게 토라져 말했다.

'너와 같이 산다는게 나에겐  피곤하고 힘들어.'

인경은 독단적으로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적응해야 한다. 

이사 나온 인경이 부딪친 첫번 째 화두다.이제껏은 사회 계층에 구애받지 않고 상류는 아니지만 적어도 중산층이라는 개념 속에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홀로 뚝 떨어져 빈민층의 값싼 실버 아파트에서의 삶은 그녀에게 새로운 하향성 재가치 정립을 강조했다. 그리고 없는 것 투성이의 빈한한 살림살이가  그녀를 당혹케 했다. 사람이 사는데 이렇게 소소하게 많은 것이 필요했던가?

그러한 현실 앞에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없거나 부족한 것에 대응하여 적절한 대안을 찾든지 없는 것에 적응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침대가 없어 바닥에서 첫밤을 자고 난 아침 온몸이 뻐근하다. 적당한 침대를 구하기 까지는 일단 이렇게 견뎌야 한다. 배가 몹시 곺아 키친으로 들어갔다. 작은 공간이지만 렌지, 오븐, 냉장고, 그리고 수도물이 연결된 싱크대는 깔끔히 갖추어 있으니 이것도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당장 음식 만들 식재료가 없어 우선 비상식량으로 준비했던 라면을 끓였다. 평소에 안 먹던 라면이지만 시장하니 먹을 만하다.

 한 오십 여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처녀 때 혼자 도시에 나와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비록 손바닥만한 작은 방이며 부엌이었으나 무한대의 가능성과 자유가 있어 세상은 달콤했다. 서쪽으로 보자기만한 창문이 있어 보라색 천으로 커텐을 치고 저녁이면 얕으막한 산 너머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  충만하고 행복했다. 

결혼하고 여러식구와 살며, 사회적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동안에 그 오붓한 행복은 먼 옛이야기가 되었고 지금의 <이 자유는 외로움이란 값비싼 댓가>를 주고 산 메마른 결과이나 젊은 처녀시절의 어렴픗한 낭만을 상기시켜 막연한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저녁 어스름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아오려니 건물 앞 숲길 벤치에 한 쌍의 연인이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앉아있다. 남자는 희미한 보안등에 반짝이는 은빛 머리칼이었고 이목구비가 멀쑥하여 젊은 날 록허드슨을 연상시키는 꽤나 미남이었을 모습이다. 그 남자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기댄 여인은 흰색 털부츠에 분홍 실내복을 입었는데 어딘지 연약하고 아파보였다. 노연인의 ,그래서 더욱 흐르는 시간이 안타까워 비장함이 느껴지는  애잔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그들 곁을 지나며 조그만 소리로 " 안녕? 좋은 저녁이예요" 하고 인사했다.

그들은 미동도 않은채 손만 들어 까딱 눈으로 답했다.

실버 아파트, 아이들의 놀이터도 없고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들도 안 보이는, 그래서 언제나 조용하고 적막한 이 동네다. 울창한 나무사이로 띄엄띄엄 십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숲 속 빌라같이 그림은 좋지만 소리없는 저승사자의 날개짓이 연한 바람을 일으키며 뺨을 스치는 이 곳.


  이 곳이 내 인생 종착역에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보너스 시공이다.

자연 닳아 아름답고 빛나게 살아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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