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58쪽)
- 블레즈 파스칼, <팡세>에서.
→ 이 글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쓸 수 있다.
자신의 애정이나 미움에 따라 상대의 본모습이 바뀐다. 인간의 이성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니 쓸모가 없다.(인간의 이성적 판단조차 믿을 게 못 된다는 뜻.)
→ 이를 내가 해석해 보았다.
인간은 자기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자를 무조건 좋게 보고, 자기가 미워하는 상대자는 무조건 나쁘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애정이나 미움은 대상의 본모습을 바꿔놓기 쉽다. 자신과 사이가 좋은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인간이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여기고, 자신과 사이가 좋지 못한 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안 좋아한다니까.’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의 본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보든 본인의 주관적인 해석이 작용할 뿐이다.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인간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리라.
(58쪽) 애정이나 미움은 정의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중략) 바람 따라 어느 방향으로나 나부끼는 가소로운 이성이여!
(61~62쪽) 우리 자신의 이익도 우리를 기분 좋게 눈멀게 하는 신기한 도구이다. 아무리 공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소송에 재판관이 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 자애심에 빠지지 않으려고 반대로 그지없이 불공정했던 사람들을 나는 안다. 지극히 정당한 사건에 패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사건을 부탁하는 것이다.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 어쩌다 닿기라도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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