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잘하는지 알게 되었는데,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어서 한때 고민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잘한다고 여긴 것도 착각일 수 있겠다 싶다.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아는 자, 그리고 잘하는 걸 즐기며 사는 자. 이런 자의 인생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만약 뭔가를 잘하지 못하지만 배우면서 즐기며 사는 자가 있다면 이런 자의 인생도 나쁘지 않다. 즐기며 산다는 건 몸이 건강하지 못하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것이 인생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해석은 몸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것. 두 번째 해석은 이 두 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그걸로 인해 즐김에 방해를 받지 않고 산다는 것. 두 번째 해석의 예를 들면 이러하다. 당뇨병 같은 지병을 달고 살면서도 취미 생활을 하면서 살거나, 집을 마련하지 못해 비록 전셋집에 살면서도 취미 생활을 하면서 사는 것. 취미란 즐기기 위한 것이니 어느 경우든 취미가 있다면 좋은 인생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몰두할 무엇이 있는 건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은 시작되었다. 올여름도 더울 것이다. 폭염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달이 이달 7월일 것이다. 8월만 되어도 낫다. 오는 8월 7일이 입추이고 8월 10일이 말복이니 말이다. 앞으로 7월 한 달을 덜 지루하게 보내려면 몰두할 무엇이 필요하다. 난 독서에 몰두하려고 한다.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읽으면 어느새 폭염은 지나가리라.
1.
53년간 쓴 어머니의 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책 제목은 <어머니의 불>이다. 이 책은 어머니의 일기를 옮겨 놓고 글 사이사이에 저자가 부연 설명을 덧붙여 놓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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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없이 내리는 눈을 아침부터 다 맞고 다닌 탓인가 집에 들어오니 몸은 피로하고 오슬오슬 추워진다. 애들은 밥도 안 해놓고 쌈질만 하고 있어 한바탕 욕을 하였다. 애들이야 무슨 죄가 있을까만 내 화풀이를 할 곳은 애들뿐이다. 저녁 먹고 자리에 누우니 몸은 천 조각이 된 양 싶다. 성모여 받으소서.(29쪽)
엄마는 공장 일을 하는 한편 한강로에 있던 태평양화학에 가서 코티 분을 구입해 화장품 장사를 했다. 이른바 투잡이다.(29쪽)
- 민혜, <어머니의 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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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어머니가 쓴 글은 검정색 글자로, 저자가 쓴 글은 빨간색 글자로 구분해 놓아 읽기 편하다.
이 책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다음 글이 책 뒤표지에 있다.
“슬픔과 고통을 가슴속에 담은 채 긴 세월을 보내야 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 칼럼니스트 피은경” - 책 뒤표지에서.
2.
어떤 걸로 구매해야 할지 다음 세 가지 중에서 고민했다.
1) 철학과 굴뚝청소부 – 판매가 16,200원
2) 철학과 굴뚝청소부 (큰글자책) - 판매가 31,350원
3) 철학과 굴뚝청소부 (오디오북) – 판매가 22, 500원(무삭제, 11시간 27분)
고민하다가 가장 저렴한 1)번으로 구매했다. 나중에 내용을 반복해 듣고 싶다면 오디오북을 구매하면 될 듯하다. 내용이 알찬 책이라 맘에 든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읽고 나면 뿌듯했다.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3.
오래된 책이라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고 벌레가 있을 것 같아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버리고 새로 두 권을 구매했다.
<톨스토이 단편선>은 차례를 보니 반 이상이 읽은 것이라서 <톨스토이 단편선 2>부터 봤는데 ‘세 가지 물음’이란 단편을 읽고 깜짝 놀랐다. 요즘 들어 본 적이 있는 말이 톨스토이의 글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 쓴 글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아니 지금 회자되고 있는 것이 그 옛날에 씌어졌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당신에게 중요한 순간은?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세 가지의 물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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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은사가 말했다. “ (중략) 그러니 기억하시오.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 이유는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오. 또한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오. 그 누구도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함께 있는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오. 이는 인간이 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오.”(66쪽)
- 톨스토이, <톨스토이 단편선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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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물음’이란 단편은 1903년작이니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던 시대에 살면서 그런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니.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문장을 여러 책에서 본 것 같은데 톨스토이를 언급한 걸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만 보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