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어쩌면 스무번>
표제작 ‘어쩌면 스무번’의 주인공은 치매 증상이 있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산골로 이사를 한다. 무성한 숲이 있고 인적 드문 비포장도로가 있어 치안이 걱정되는 곳이다.
보안 회사 로고가 붙은 소형차를 타고 남자와 여자가 찾아온다. 남자는 부부에게 지난해 동네에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한다. 강도가 침입해서 온몸에 피가 묻어 있는 시신이 삼 주 만에 발견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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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오 분 안에 출동해서 칼을 든 놈을 때려잡았을 겁니다. 놓쳐도 걱정할 게 없어요. 요새 CCTV는 엄청난 화질을 자랑하니까요. 죽고 나서 후회하면 뭐합니까.”(31쪽)
- 편혜영, <어쩌면 스무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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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치매로 일곱 살 아이가 된 장인을 보살펴야 하는 집 안의 문제와, 생명을 위협하는 강도를 조심해야 하는 집 밖의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그들 부부의 세상살이는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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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충분히 먹였는데도 간혹 장인이 일찍 깨어날 때도 있었다. 잠이 깨면 장인은 암막 커튼이 쳐진 불 꺼진 밤의 어둠에 놀라 괴성을 지르며 울었다. 여러 번 가르쳤지만 불 켜는 법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하도 문을 두드려 주먹이 까지고 몸을 때려 멍이 들었다. 장인은 갈수록 사나워졌다. 수월하게 달래기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아내는 장인보다 더 사납게 굴었다. 아파트에서는 옆집을 의식해 참았는데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27쪽)
- 편혜영, <어쩌면 스무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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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부부의 삶은 운이 나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수 시대로 인해 치매를 앓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세상은 각박해져서 범죄가 날로 늘어나는 세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현대인들이 불안을 느끼며 사는 모습을 잘 포착하여 사실적으로 그린 것 같다. 소설 속에서 부부가 처한 현실은 누구에게는 과거였고, 누구에게는 현재진행형이고, 누구에게는 미래가 될 것이다.
영업을 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뛰어난 상술, 그 상술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부부의 마음,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모시는 대가로 형제에게 매월 말일에 받게 된 돈. 타자와의 관계에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부연 설명)
결혼을 하고 나면 배우자의 부모를 포함해 부모가 네 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네 명 중에서 치매 환자가 나올 수 있다.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치매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