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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는 최소한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번째로 무질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시간 방향을 가리키는 열역학적 시간이 있다. 두번째는 심리적 시간인데 이것은 우리가 시간은 흐른다고 느끼는 방향,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는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우주론적 시간이 있다. 이것은 우주가 수축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시간 방향이다.

 

 

먼저 열역학적 시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질서 있는 상태보다 무질서한 상태가 항상 더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만약 우주 극히 초기에 우주가 무질서한 상태였다면, 시간 흐름에 따라 무질서는 점차 감소할 것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여러분은 바닥에 깨어진 찻잔이 다시 합쳐져서 탁자 위로 올라앉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찻잔을 관찰하는 모든 사람이 시간 흐름에 따라서 무질서가 감소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즉 그러한 세상에서는 과거 사건이 아니라 미래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찻잔이 깨지면 찻잔이 탁자 위에 놓여질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찻잔이 탁자 위에 있을 때, 찻잔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시간에 대한 우리 주관적인 느낌, 즉 심리적 시간은 열역학적 시간에 의해서 우리 뇌 속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는다. 왜 우리는 열역학적 시간과 우주론적 시간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관찰하게 되는가? 즉 왜 무질서는 우주가 팽창하는 시간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증가하는가? 만약 무경계 제안이 암시하듯, 우주가 팽창한 다음 다시 수축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이것은 왜 우리가 수축 국면이 아니라 팽창 국면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된다.

 

 

우리가 인류원리를 기반으로 이 의문에 답할 수 있다. 즉 수축 국면에서 조건들은 ‘왜 무질서가 우주 팽창과 같은 시간 방향으로 증가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지적 생명체 생존에 부적절하리라는 것이다. 무경계 제안이 예측하는 우주 초기 단계에서 인플레이션은 우주가 재수축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는 임계율에 아주 가까운 비율로 팽창하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앞으로 아주 오랜 기간 재수축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별은 연료를 전부 태우고, 그 속에 들어있던 중성자와 양성자는 아마도 가벼운 입자와 복사로 붕괴할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거의 완전한 무질서 상태가 될 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강력한 열역학적 시간도 없을 것이다.

 

 

이미 우주가 거의 완전한 무질서 상태에 있기에 무질서는 더 늘어날 수 없다. 하지만 지적 생명체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강한 열역학적 시간이 필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 인간은 질서 있는 에너지 형태인 열로 전환시킨다. 따라서 지적 생명체는 우주의 수축 국면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이로써 우리가 열역학적 기간과 우주론적 시간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관찰하는 이유는 설명된다. 우주 팽창이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경계 조건이 무질서를 증가시키고 이러한 팽창 국면에서만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적절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1956년까지 물리법칙들은 C, P, T라고 하는 세 가지 대칭성 가운데 하나를 따른다고 믿어졌다. C 대칭성은 법칙들이 입자와 반입자에 대하여 모두 동일함을 뜻한다. P 대칭성은 법칙들이 모든 상황과 그 거울상(오른쪽으로 스핀하는 입자의 거울상은 왼쪽으로 스핀하는 입자이다)에 대해서 동일함을 뜻한다. T 대칭성은 모든 입자와 반입자 운동방향을 역전시키면, 그 체계의 초기 상태로 돌아가야 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법칙은 시간의 정방향과 그 역방향에 대해서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1956년 두 명의 중국 태생 미국 물리학자 리정다오와 양전닝이 약한 핵력은 실제로는 P 대칭성을 따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약한 핵력은 우주가 그 거울상이 전개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같은 해 동료인 우젠슝이 두 사람 예견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그녀는 자기장 속에 방사성 원자의 원자핵을 일렬로 늘어세워서 같은 방향으로 스핀하게 만든 다음, 전자들이 다른 방향보다 한쪽 방향으로 더 많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 다음 해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또한 약한 핵력은 C 대칭성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되었다. 반입자로 구성된 우주는 우리 우주와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것임이 밝혀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핵력은 결합된 CP 대칭성에 따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한 가지를 더 추가해서, 만약 모든 입자가 그 반입자로 교환된다면, 우주는 그 거울상과 같은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1964년 또다른 두 명의 미국인 제임스 크로닌과 발 피키가 K-중간자라는 특정한 입자의 붕괴에서는 CP 대칭성조차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크로닌과 피치는 이 발견으로 1980년 결국 노벨 상을 받았다(우주가 우리 생각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 공로로 무척이나 많은 노벨 상이 주어진 셈이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따르는 모든 이론은 CPT 대칭성을 항상 따라야 함을 기술하는 수학 정리가 있다. 만약 모든 입자가 반입자로 바뀌고 거울상을 취하며 시간 방향도 역전된다면 우주는 그 전과 똑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크로닌과 피티는 만약 입자가 반입자로 바뀌고 거울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간 방향이 역전되지 않으면 우주는 똑같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따라서 시간 방향이 역전되면 물리법칙은 바뀔 수 밖에 없으며, T 대칭성을 따르지 않는다.

초기 우주가 T 대칭성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즉 시간이 앞으로 흐르면서 우주가 팽창한다. 만약 시간이 반대로 흐르면, 우주는 수축할 것이다. 그리고 T 대칭성에 따르지 않는 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서 이 힘들은 전자가 반쿼크로 바뀌는 것보다 더 많은 반전자들이 쿼크가 되게 만들었다. 그후 우주가 팽창하고 냉각되면서 반쿼크들은 쿼크와 함께 소멸을 일으켰고 반쿼크보다 쿼크의 수가 더 많았기 때문에 그 차이에 해당하는 만큼의 쿼크들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게 남은 쿼크들이 오늘날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물질이나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물질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대통일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간주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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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에서 회의가 끝나갈 무렵, 과학자들은 교황을 알현할 기회를 얻었다. 교황은 우리에게 빅뱅 이후 우주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빅뱅 그 자체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빅뱅이 창조 순간이고 따라서 신의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교황이 방금 전 내가 회의에서 했던 강연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때 내 강연 요지는 시공이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다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그 말은 시공이 출발점, 즉 어떠한 창조 순간도 가지지 않음을 뜻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양자역학과 중력이론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완벽하고 모순 없는 이론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통일이론이 갖추어야 할 일부 특성을 상당히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한 특성 중 하나는 양자이론을 역사 총합에 의하여 정식화하자는 파인만 제안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접근방식은 하나의 입자가 고전이론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단일한 역사만 가지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입자는 시공 속에서 가능한 모든 경로를 지날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각각 역사에는 그와 연관된 하나의 숫자쌍이 존재한다. 그 수들은 각기 파동 크기와 주기 속에서 위치(위상)를 나타낸다. 가령 그 입자가 어느 특정한 점을 지날 확률은 그 점을 지나는 가능한 모든 역사와 연관된 파동을 합하여 얻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이러한 총합을 실행하려고 할 때, 우리는 아주 어려운 기술적 난관에 부딪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특수한 처방을 채택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실’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허’시간(imaginary time)이라고 부르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입자 역사의 파동을 합해야 한다. 사실 허시간이라는 것은 명확하게 정의된 수학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계산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실수보다 허수를 이용해서 시간을 측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시공에 흥미로운 효과를 일으킨다. 즉 시간과 공간 차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사건들이 시간 좌표에서 허수 값을 가지는 시공을 유클리드 시공이라고 부른다. 유클리드 시공에서는 시간 방향과 공간 방향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 반면 사건들에 시간 좌표의 실수 값이 붙여지는 실제 시공에서는 그 차이를 이야기하기 쉽다.

 

 

궁극적 이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두번째 특징은 중력장이 휘어진 시공으로 표현된다는 아인슈타인 개념이다. 파인만의 역사총합이론을 아인슈타인의 중력관에 적용시키면, 입자 역사에 해당하는 것은 우주 전체 역사를 나타내는 완전히 휘어진 시공이 된다. 역사들을 실제로 총합하는 데에서 부딪치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피하려면, 이 휘어진 시공은 유클리드 시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시간은 허시간이고 방향 면에서 공간과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일정한 특성 – 가령 모든 지점과 모든 방향에서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성질 –을 가진 실제 시공을 발견한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러한 특성을 가진 모든 역사와 연관된 파동을 모두 더해야 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고전이론에서는 서로 다른 많은 가능한 휘어진 시공이 있다. 그 각각은 우주의 서로 다른 초기 상태에 상응한다. 만약 우리가 우주 초기 상태를 안다면, 우리는 그 전체 역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중력이론에서도 우주의 서로 다른 많은 가능한 양자상태가 있다. 여기에서도, 만약 우리가 역사총합 속의 휘어진 유클리드 시공이 초기에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다면, 우주의 양자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시공을 기초로 하는 고전 중력이론은 우주가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 두 가지밖에 없다. 즉 무한한 시간 동안 존재했거나, 또는 과거의 어떤 유한한 시간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거나 둘 중 하나다. 반면 양자중력이론에서는 제3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시간 방향이 공간 방향과 같은 기초를 갖고 있는 유클리드 시공을 이용하기에 시공이 그 크기에서 유한하면서도 가장자리나 경계를 형성하는 어떠한 특이점도 갖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시공은 단지 두 차원을 더 가지는 것 외에 지구 표면과 흡사하다. 지구 표면은 그 크기에서 유한하지만 경계나 가장자리를 갖지 않는다.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해나가도 가장자리로 떨어지거나 특이점 속으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유클리드 시공이 무한한 허시간의 과거로 뻗어나가거나 허시간에서의 어느 특이점에서 시작되었다면, 우리는 우주 초기 상태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고전 이론이 부딪쳤던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어쩌면 신은 우주가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가 다른 방식이 아닌 어느 하나 방식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할만한 어떠한 특별한 이유도 제기할 수 없다. 반면 양자중력이론은 시공이 어떠한 경계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 경계 움직임을 규정해야 할 아무런 필요도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모든 과학법칙이 붕괴되는 특이점이나, 시공 경계조건을 설정하기 위해서 어떤 새로운 법칙이나 신에게 호소해야 하는 시공 가장자리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우주의 경계 조건은 그것이 아무런 경계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주는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우주 밖의 그 무엇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우주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저 ‘있을(be)’ 따름이다.

 

 

역사총합 속에서 각각 역사는 시공뿐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기술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원리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정당화로 이용될 수 있다. 만약에 모든 역사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그중 하나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왜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류원리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 그 밖의 다른 역사들에 대해서 정확히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역사총합이론을 이용해서, 우리 우주가 그저 가능한 역사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확률이 높은 역사 중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양자중력이론의 이러한 관점은 훨씬 더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경계를 가지지 않는 가능한 모든 유클리드 시공의 역사를 모두 더해야 할 것이다.

 

 

허시간에서 우주가 유한하지만 경계나 특이점을 갖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실시간으로 돌아오면, 여전히 특이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블랙홀 속으로 떨어지는 불쌍한 우주비행사는 여전히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그가 허시간에서 살았을 때에만 특이점과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허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실시간이고, 우리가 실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실시간에서 우주는 특이점에서 시작과 끝을 가지며, 그 특이점이 시공 경계를 형성한다. 또한 그 특이점들에서 과학법칙은 모두 붕괴한다.

 

 

하지만 허시간에서는 특이점도 경계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허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마도 실제로는 더 근본적이며, 우리가 실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주 모습을 기술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한 인위적인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과학이론이란 우리 관찰결과를 기술하기 위해서 만든 수학 모형에 불과하다. 과학 이론이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실시간, 허시간, 어느 것이 진짜일지 물음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유용한 기술(記述)인가이다.

 

 

우주가 출발점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창조자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우주가 진정한 의미에서 완전히 자기-충족적이고 어떠한 경계나 가장자리도 갖고 있지 않다면,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그렇게 된다면, 과연 창조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아리스토텔레스 생각이 갈릴레오나 뉴턴 생각과 크게 차이를 보였던 점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지상태를 다른 상태들보다 우선하는 상태로 믿었고, 모든 물체는 어떤 힘이나 충격이 주어지지 않는 한 정지상태를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뉴턴 법칙에 따르면, 정지에 대한 유일한 기준이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물체 A가 정지해 있고 물체 B가 물체 A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말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물체 B가 정지해 있고 물체 A가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은 서로 다른 시간에 일어난 두 사건이 공간상 같은 위치에서 발생한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전차 위 탁구공이 위로 뛰어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져서 1초 동안 같은 장소에 두 번 튀겼다고 가정하자. 선로 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 두 차례의 튐은 13미터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공이 두 번 튀기는 동안 전차가 선로를 따라서 13미터 진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정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믿었던 것처럼 공간상의 절대적인 위치에 어떤 사건을 부여할 수는 없음을 뜻한다. 사건들의 위치와 그 사이 거리는 전차 위에 있는 사람과 선로 위에 있는 사람에게 각기 다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위치를 다른 사람 위치보다 선호해야 할 이유도 없다.

뉴턴은 이러한 이른바 절대 위치 또는 절대 공간의 부재라는 문제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그 사실은 절대자인 신에 대한 자신 믿음과 모순을 빚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수립한 법칙에 이미 그러한 사실이 함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공간 부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믿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버클리 주교였는데 그는 물질적 대상과 공간,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하다고 믿은 철학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은 모두 절대 시간을 믿었다. 그들은 우리가 두 사건 사이 시간 간격을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정확한 시계를 사용하기만 한다면 이 시간은 누가 측정하든 똑같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공간과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전혀 별개의 무엇이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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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블랙홀이 엔트로피를 가진다면, 동시에 블랙홀은 온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특정한 온도를 가지는 물체는 일정한 비율로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 게다가 낮은 온도 물체도 복사를 방출하는데 일반적으로 그 양이 아주 적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따르려면 이러한 복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블랙홀은 복사를 방출해야 한다.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아무것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알려져 있는 데,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주는 답은 입자들이 블랙홀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쪽에 있는 ‘빈’ 공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비어 있다고 생각하는 곳도 완전히 비어 있을 수는 없다. 완전히 비어 있다는 말은 중력장이나 전자기장과 같은 모든 장들이 정확히 0이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장의 값 그리고 시간에 따른 변화율은 입자 위치 및 속도와 흡사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우리가 이러한 양 중 어느 하나를 더 정확하게 알수록 다른 양은 덜 정확해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따라서 빈 공간에서, 그 장은 정확히 0으로 고정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정확한 값(0)과 정확한 변화율(역시 0)을 동시에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의 값에는 불확정성의 특정한 최소의 양 즉, 양자요동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요동을, 어느 때에 하나로 나타났다가 서로 떨어지고 그런 다음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쌍소멸하는 광자나 중력장 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입자들은 실제 입자와는 달리 입자검출기를 통해서 직접 관측될 수 없다. 하지만 원자 내 전자 궤도의 에너지에 나타나는 작은 변화로 간접적 측정이 가능하며, 이론적인 예측과 놀랄 만큼 정확하게 일치한다. 또한 불확정성 원리는 전자나 쿼크와 같은 물질입자에도 그와 유사한 쌍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 경우 입자쌍 중 하나는 입자이고 다른 하나는 반입자(빛과 중력의 반입자는 입자와 같다)일 것이다.

 

 

에너지는 무에서 창조될 수 없기에 입자/반입자 쌍 둘 중 하나는 양의 에너지를 갖고 다른 하나는 음의 에너지를 가질 것이다. 음의 에너지를 갖는 쪽은 짧은 수명의 가상입자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 입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항상 양의 에너지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상입자는 상대를 찾아서 함께 소멸해야 한다. 하지만 질량이 큰 물체 가까이 있는 실제 입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보다 적은 에너지를 가질 것이다. 그 입자를 천체 인력에서 멀리 벗어나게 하는 데에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태에서 그 입자 에너지는 여전히 양이지만, 블랙홀 내부 중력장이 워낙 강하기에 실제 입자조차도 그곳에서는 음의 에너지를 가진다.

 

 

따라서 음의 에너지를 가진 가상입자가 블랙홀 속으로 떨어져서 실제 입자나 반입자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럴 경우 그 입자는 더 이상 짝을 찾아 소멸할 필요가 없다. 이때 버림받은 짝 역시 블랙홀 속으로 떨어질 수 있다. 또는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실제 입자나 반입자로 블랙홀 가까운 곳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이때 멀리 떨어진 관찰자에게는 마치 블랙홀에서 입자가 방출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블랙홀이 작을수록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실제 입자가 되기 전에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짧아지고, 따라서 블랙홀 방출속도와 걷보기 온도는 높아진다.

 

 

밖으로 방출되는 복사의 양(+)의 에너지는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는 음(-)의 에너지 입자 흐름과 균형을 이룰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에 따르면 에너지는 질량에 비례한다. 따라서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 속으로 유입되면 그 질량은 감소한다. 블랙홀이 질량을 상실함에 따라서, 사건의 지평선 넓이는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블랙홀의 엔트로피 감소는 방출된 복사의 엔트로피에 의해서 보상되고도 남는다. 따라서 열역학 제2법칙은 결코 위배되지 않는다.

 

 

게다가 블랙홀 질량이 작아질수록 그 온도는 높아진다. 따라서 블랙홀이 질량을 잃을수록 그 온도와 방출속도는 높아진다. 그렇기에 질량은 더욱 빠른 속도로 상실된다. 블랙홀 질량이 마침내 극도로 작아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리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가장 그럴듯한 추측은 수백만 개의 수소폭탄 폭발과 맞먹는 엄청난 복사를 최후로 방출하면서 블랙홀이 완전히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태양 질량의 몇 배에 해당하는 블랙홀은 절대온도 1,000만 분의 1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온도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극초단파 복사의 온도(절대온도 약 2.7도)보다도 훨씬 낮다. 따라서 이러한 블랙홀은 흡수하는 양보다 훨씬 적은 복사를 방출할 것이다. 만약 우주가 영원히 팽창을 계속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면, 극초단파 복사 온도는 결국 이러한 블랙홀보다도 낮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블랙홀은 질량을 상실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블랙홀 온도는 너무 낮아져, 블랙홀이 완전히 증발하기까지는 약 10^66년이 걸릴 것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우주 나이보다도 더 길다.

 

 

반면 우주의 극히 초기 단계에 불규칙성 붕괴로 이루어진 훨씬 더 작은 질량의 원시 블랙홀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블랙홀은 훨씬 온도가 높고, 보다 큰 비율로 복사를 방출할 것이다. 수십억 톤의 초기 질량을 가진 원시 블랙홀은 대략 우주 나이와 같은 수명을 가질 것이다. 이 숫자보다 작은 초기 질량을 가진 원시 블랙홀은 이미 완전히 증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약간이라도 더 큰 질량을 가진 블랙홀은 지금까지도 엑스 선과 감마 선 형태로 복사를 방출하고 있을 것이다. 엑스 선과 감마 선은 광파와 비슷하지만 파장이 훨씬 더 짧다. 이런 블랙홀에는 블랙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 적절치 않다. 실제로 이들은 백열하고 있으며, 약 1만 메가와트 비율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다.

 

 

이러한 원시 블랙홀을 관측할 가능성은 과연 있는가? 우리는 원시 블랙홀 생애의 대부분 기간 동안 방출하는 감마 선을 찾을 수 있다. 그 블랙홀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에 대부분 원시 블랙홀에서 방출하는 복사가 아주 약하기는 하지만, 전체 블랙홀에서 나오는 복사의 총합은 검출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배경 감마 선을 관측하고 있다."

 

 

 

 

 

 


우주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입자는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우주 속 물질을 구성하는 스핀 1/2 입자 그리고 물질입자 사이의 힘을 발생시키는 스핀 0, 1, 2 입자(중력자, 글루온 등)가 그것이다. 물질입자들은 파울리의 배타원리(Pauli’s exclusion principle)라는 법칙에 따른다. 파울리의 배타원리란 두 개의 비슷한 입자가 같은 상태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입자는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서 주어지는 한계 내에서, 같은 위치와 같은 속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배타원리는 왜 물질입자들이 스핀 0, 1, 2 입자들에 의해서 생성되는 힘의 영향 아래에서 매우 높은 밀도 상태로 붕괴하지 않는지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물질입자들이 거의 비슷한 위치를 점한다면, 그 입자들은 서로 다른 속도를 가져야 한다. 그 말은 입자들이 오랫동안 같은 위치에 머물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만약 세계가 베타원리 없이 창조되었다면 쿼크들은 독립적인, 명확하게 정의된 양성자와 중성자를 형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전자들과 더불어서 독립적인, 명확하게 정의된 원자를 형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쿼크들은 모두 붕괴해서 거의 균일한 밀도 높은 ‘수프’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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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1-22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흑흑ㅠ 절반쯤 읽다가 두뇌정지가 와서 다음에 읽어야겠습니다. 오늘은 많이 피곤해서 다음에 컨디션 좋을 때 다시 도전하겠습니다ㅎ

저도 <시간의 역사> 읽어보겠습니다^^

-> 뒷부분 읽어봤는데 역시 어렵네요. 그래도 대략적인 느낌만 가져갑니다ㅎㅎ

북다이제스터 2020-01-22 16:34   좋아요 1 | URL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ㅋㅋ
양자역학은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해서 글 남겨 보았습니다.ㅎㅎ
 

 

 

 

 

 

 

 

 

 

 

 

 

 

 

 


“우주 본질을 이야기하고 우주에 시작이나 끝이 있는지와 같은 문제를 토론하기 앞서 우선 과학이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를 해두어야 한다. 과학 이론이란 제한된 일부 모형에 불과하며, 그 모형 속에 담겨 있는 양과 우리가 실제 얻은 관측결과를 관계 짓는 규칙의 집합일 뿐이다. 과학 이론은 우리 마음속에만 있을 뿐, 그 이외 어떠한 실재(그것이 무엇을 뜻하든 간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개괄적으로 언급한 과학 이론 개념에 따라 우리 인간이 합리적 존재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주를 관측하고 우리가 본 것을 통해서 논리적인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면, 우주 속 모든 것을 기술할 수 있다는 통일장 이론에 근본적인 역설이 들어있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향해서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만약 완전한 통일장 이론이 실재로 존재한다면, 그 이론은 아마도 우리 행동 또한 결정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론 자체가 그 이론에 대한 우리 연구결과를 미리 결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증거를 통해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도록 결정되어야만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가 잘못된 결론을 이끌어내도록 결정되어 있을 가능성도 똑같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할 가능성은?”<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1998)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정론(필연성 학설)에 의하면 인간 행동과 욕구, 사상 등 모든 것은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그러므로 결정론이 참이라면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다.

 

 

반면 만약 결정론이 거짓이라면 몇몇 사건은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생기는 일이 된다. 하지만 우연에 의해 생기는 것은 인간 통제력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경우도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된다. 자유 의지에 관한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에 빠지기 쉽고,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인간이란 무엇인가>(동서문화동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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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0-01-22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시간의 역사> 얼른 읽어보고 싶네요.

북다이제스터 2020-01-22 16:35   좋아요 1 | URL
전 스티브 호킹 박사 책을 처음 읽었는데요, 이렇게 글 잘 쓰실 줄 짐작조차 못 했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20-01-22 17:00   좋아요 1 | URL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해가 깊을수록 쉽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특성상 간결하고 명확하게 설명을 하는 거 같고요.

근데 거기에 유머까지 갖춘 분들을 보면ㅠㅋ
 
막스 플랑크 평전 - 근대인의 세상을 종식시키고 양자도약의 시대를 연 천재 물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이미선 옮김 / 김영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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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너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그 본질을 볼 때 에너지가 정말로 무엇인지, 원래 무엇이었는지는 오랫동안 간파되지 못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에너지는 다른 여건에서 분리되어 있고, 무조건적인 절대성의 형태로 등장한다. 그럼으로써 에너지는 인간과 명백하게 떨어져 있고, 인간은 에너지에 관여할 수 없다. 에너지 보존 법칙에 따르면, 에너지는 생산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인간은 단지 에너지를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는 능력을 가졌을 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확히 말하면 생산하는 것도 아니면서 종종 ‘에너지 생산자’라고 칭하는) 회사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형태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받아간다.


열역학 제1법칙을 약간 다르게 표현한 ‘에너지는 불멸이다’라는 표현은 단순하고 별로 자극적이지도 않게 들리지만, 엄청난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에너지가 사라지지도 생성되지도 않는다면, 따라서 영원히 보존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에너지가 이 세계로 왔단 말인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우주 대폭발, 즉 빅뱅도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폭발은 에너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형태일 뿐이다(이는 ‘대폭발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다른 식으로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면, ‘에너지가 빅뱅 섬광으로 나타나기 전에 에너지는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플랑크의 복음에 따르면, 에너지가 무(無)에서 생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플랑크의 복음은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사실과 에너지는 불멸의 조직을 제시한다는 사실을 보증한다.


‘세계의 총체적인 에너지는 제로’라는 기이한 생각을 애초부터 배척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딜레마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의 총체적인 에너지는 제로’라는 생각에는, 앞에서 서술한 열과 같은 형태로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가시적인 에너지와 함께, 에너지 전체 양을 감소시키는 비가시적(어두운) 부분들도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이들을 모두 합하면 제로가 된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떨어져 있음으로써만 효력을 발휘한다. 철학적으로 깊이 파헤쳐보아도, 오늘날까지 ‘에너지 존재’를 이해하기란 결코 간단치 않다.
 

파울리는 ‘에너지의 불멸성은 보존과 어떻게 일치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을 했다. ‘우리는 물리학에서 결코 전 우주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외부에서부터 관찰되는 부분 계와만 관계를 맺을 뿐입니다. 만일 이 계들이 관찰을 통해 조절될 수 있다면, 이들은 관찰자나 관찰 방식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납니다. 즉 관찰 방식이 과정의 시간적 경과를 관찰된 계 안에서 정확하게 실행하면 할수록, 관찰 도구와 관찰된 계 사이에서 에너지가 교환될 때 관찰 방식을 조절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그것을 정의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자연의 법칙들은 물리학자들이 이름 붙인 이러한 에너지와 시간 사이의 보완성을 불가피하게 만듭니다. 에너지는 사실 불멸이지만, 과정의 시간적 경과를 규정하는 하나의 측정 명령에서는 에너지 중 어느 정도가 외부로부터 관찰된 계로 들어갔는지 혹은 계에서부터 빠져나왔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은 완결된 계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반면 계들은 정의된 시간적 과정과는 절대 ‘완결된’ 상태가 아닙니다.’


‘에너지’는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외부세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하듯 경험적 질량이 아니다. 에너지는 인간 내면세계에서 발생하며, 우리가 관찰된 것에 질서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개념일 수도 있다. 철학은 인간이 경험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개념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 같은 개념들을 있다. 그리고 철학은 그 구상이 대체 어디에 왔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 그저 칸트의 제안에 따라, 이런 개념을 ‘선험적(아 프리오리 a priori)’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은 이 부분에서 인간에게는 ‘공통의 무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선험적이라고 하는 근원적인(원형적인) 관념들은 의식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이미 무의식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에너지란 경험적인 개념이 아니라 원형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바로 이 원형적인 개념을 갖고 일을 수행한다.


독일 여성 수학자 에미 뇌터는 ‘주어진 물리계가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대칭성을 갖고 있으면, 그 계에는 보존되는 양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여기서 ‘대칭’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전체 표현에 변화가 없고, 그로 인해 상황도 변하지 않은 채, 서술 형식(상응하는 방정식)에 간섭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사 대칭을 예로 들어보자. 거울에 비친 상과 원래 상은 구분되지 않는다. 거울이 상을 반사하는 것은 하나의 행위다. 하지만 두 상이 대칭을 이루기에 거울의 행위는 눈에 띄지 않는다.


‘뇌터의 정리’를 바탕으로, 에너지가 보존되려면 물리학 법칙들은 어떠한 변환에 대해 대칭을 이루어야만 하는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시간 대칭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시간 대칭성이란 그 법칙들이 시간에 상관없이 항상 성립한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실험을 해도 물리학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달리 말하면, 자연의 법칙을 서술할 때 사용하는 공식은 시간의 축이 바뀌어도 대칭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특성, 즉 ‘시간의 동질성’이라고 알려진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에너지는 반드시 보존된다.


플랑크는 시간 전개는 엔트로피를 통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엔트로피라는 단어는 ‘거꾸로 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기에 플랑크는 어떤 과정과 진행이 자연 안에서 뒤바뀔 수 있으며(가역성) 어떤 것이 뒤바뀔 수 없는가(비가역성) 하는 질문에 대해 포괄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발적이며 외형적인 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 하나의 운동은,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시간 반전 불변성’을 갖고 있다. 플랑크는 자연에서 하나의 과정이 가역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것은 처음과 최종 상태에 달려 있지, 계가 이 둘 사이의 길을 어떻게 역행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보편적인 관점을 이용했다.


플랑크 표현에 따르면 자연은 최종 상태를 보다 더 많이 ‘총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총애 크기를 재기 위해 하나의 척도를 제시한 것이 엔트로피다. 플랑크는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물체의 엔트로피 총합은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 바로 제2법칙의 의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체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도달할 때까지만 증가한다. 최대치에 도달한 후, 관찰된 계는 계속 변화할 수 없다. 이 계는 플랑크의 표상 안에서는 변함없는 평형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은 결과적으로 우리를 열역학으로, 플랑크 주제로 다시 되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핏 보기에는 맥스웰의 분자와 다윈 도태 사이에 별다른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지만,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중요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다윈은 자연의 첫 번째 통계 법칙을 발견했다. 다윈은 맥스웰이 기체 이론에서 시도했던 것과 같은 것을 했다. 맥스웰은 특정한 기체 분자 운동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말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때마다 결정될 수 있는 분자 몫은 주어진 상황 아래서 분포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적용함으로써 예견할 수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확정될 수 있는 시간단위 안에서 충돌의 최댓값이 발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정보와 다른 정보를 기반으로 맥스웰은 기체의 특별한 특성을 유도할 수 있었고, 특히 열이 있을 때 기체 상태와 관련된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어떤 개별 상황에서 무엇이 변종과 자연도태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다윈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다윈은 장기적으로 볼 때, 식물과 동물이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에 적응할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이미 확실히 적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른 말로 하면, 다윈과 맥스웰은 특히 생물학과 물리학 영역에서 통계적 사고의 일반적이며 포괄적인 타당성을 동시에 발견한 것이다. 이로써 그들은 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우리는 ‘예정’이라는 의미로 표현되었던 결정론은 맥스웰과 다윈의 시대 이후에는 더 이상 논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예정되다’라고 말하는 대신 ‘준비되다’라고 말한다. 플랑크의 생애 동안 과학은, (약간의) 결정론적 법칙과 함께 (훨씬 많은) 미래 사건의 예측 가능성을 (훨씬 덜 결정적인) 새로운 빛으로 감싸는 통계적 법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플랑크는 게다가 진화론적 인식론을 발전시켰다. 그의 이론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우리의 인식 기구는 (생물학적) 진화의 결과다. 주체의 인식 구조들은 세계에 적응한다. 그것들은 진화 과정 중에 이러한 실질 세계와 적응 속에서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실제적인 구조들과 (부분적으로) 일치되기 때문이며, 단지 그러한 조화만이 생존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칸트가 인식의 타고난 구조를 말했다는 점은 타고난 것은 어떻게든 생물학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어야 한다.
 

파울리도 융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의식적 사고가 세계상 내지는 이론 형성에 어떤 역할 할 수 있는지를 애써 찾아내고자 했다. 그는 이를 위해 파동과 원자, 방사능과 같이 자주 사용되는 물리학 개념을 분석했다. 이는 융 학파 안에서 심리학을 특정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던 것처럼, 이 개념들의 원래 배경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심리학의 ‘원형’이라는 말을 집단무의식의 내용으로 이해했다. 이 내용은 외적인 인상을 통해 움직이거나 해소되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수용하기 위해 의식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의 원형적 기본 형태에 속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다.


엔트로피도 통계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엔트로피를 개연성으로 해석하거나 개연성에 대한 척도로 이용할 수 있다. 거의 상태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을 미시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숫자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다양한) 미시 상태가 거시 상태가 될 때 거시 상태의 개연성은 증가한다. 반대로 거시 상태와 일치하는 미시 상태가 별로 없다면, 개연성은 낮아진다. “

 

 

 

 

 

 

플랑크의 에너지 E=hv(h는 플랑크 상수, v는 입자의 진동수)를 아인쉬타인의 E=mc^2에 적용하면, hv=mc^2라는 기이한 관계가 도출된다. 이 관계는 하나의 진동수(파동)가 하나의 질량 m(입자)에 편입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증한다. 에너지가 진동수에 비례한다면 그것은 질량일 수도 있다. 이러한 동일시는 하나의 질량 입자가 파동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준다. 이것은 1905년 사람들이 충격으로 받아들였 듯 상식 밖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놀랍게도 20년이 지난 뒤에는 ‘옳다’고 인정되었고, 원자물리학과 그 기반에 놓여 있는 이론을 철학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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