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1.


"고전역학은 자연계에 적용되는 변화 원리를 찾아내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돌이 날아간다’라고 할 때 돌의 ‘특성’을 지칭할 개념과 돌의 운동을 지칭할 ‘상태’ 개념이 구체화되어야 의미 있는 서술 및 예측이 가능하다. 돌이 날아가는 현상에 대해 대상의 특성은 보이는 그대로의 돌이 아니라 숨겨진 성격인 질량과 이것이 받는 힘에서 찾아야 하고, 대상의 상태 또한 겉모습이 아니라 서술에 적합한 위치와 운동량으로 삼아야 한다.

 

 

이처럼 대상 ‘특성’과 ‘상태’를 규정하고 나면, 어떤 존재자의 운동을 서술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해답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게 된다. 존재자 ‘특성’, 곧 질량과 이것이 받는 힘을 일단 알아냈고, 또 이것의 현재 ‘상태’, 곧 현 시점에서의 위치와 운동량을 관측을 통해 알아냈다고 할 때, 미래 시각에서 상태 값은 얼마인가 하는 물음이다. 뉴턴 고전역학의 핵심은 바로 이 일반적 방식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운동량은 물체의 질량에 의존하지만, 물체의 위치와 속도는 처음 위치와 속도에 의존할 뿐 물체 질량에는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중력을 받는 물체의 운동 궤적은 그 질량에 무관하게 초기 속도와 위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초기 위치 및 속도 크기와 방향에 따라 낙하 운동, 포물체 운동이 되고, 또 초기 속도가 일정한 값보다 커지면 쌍곡선 형태의 궤적에 따라 지구에서 영구히 벗어난 운동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고전역학과 달리 양자역학은 위치와 운동량으로 상태 개념을 설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며, 위치와 운동량은 오히려 ‘진정한 상태’가 외부와 접촉에 의해 그 성격 일부가 드러나는 ‘흔적’에 해당한다. 양자역학 초기에 입자라고 여겨졌던 존재물(예컨대, 전자)은 파동성을 가진다는 특성이 알려졌지만, 이것이 수면 위 파동이나 음파와 같이 실제로 시공간을 점유하는 물질의 파동이 아님은 확실했다. 대상은 파동적으로 행동하지만 그 위치를 측정해보면 여전히 한 점에서 충돌하는 입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물질이 입자성과 더불어 파동성을 지닌다고 하는 이른바 이중성 논지를 펴기도 했지만, 이것은 빛이나 물질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이들의 ‘상태함수’를 나타내는 성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곧이어 이것이 대상 입자가 시공간 안에서 관측될 확률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실제 물체가 어느 시공간 안에 ‘있으리라’ 추정하는 통상적 확률과도 그 성격을 달리한다. 실제로 이 파동 값은 실수가 아니라 복소수로 표시되기에, 이 값의 절대치 제곱은 대상이 그 지점에서 ‘발견될’ 확률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다가 점차 이것은 물질 분포나 확률을 직접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술하려는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임이 밝혀졌고, 이것을 대상의 ‘상태함수’라 부르게 되었다.

 

 

상태함수가 의미하는 바는 대상이 ‘어느 시점에, 어느 위치에서 존재할 확률이 얼마냐’하는 시공간 분포를 말한다기보다는, 대상이 ‘어느 위치에 존재할 확률이 얼마냐’ 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즉 대상은 어느 시점에서나 확률 1로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단지 공간적 변화만을 보려는 입장이다. 이렇게 얻어진 상태함수를 통해 그 대상 관련한 모든 물리량을 산출해내는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상태함수를 통한 대상 존재의 서술은 결코 사건 자체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대상이 지닌 ‘사건 야기 성향’만을 말해준다. 결국 이러한 사건야기 성향을 지닌 대상이 ‘사건유발 능력’을 가진 외부 존재자와 조우하게 될 때 두 가지 형태(입자성 혹은 파동성)의 사건이 실제 발생하며, 그 각각에 대한 확률 및 결과로 대상 및 외부 존재자에 나타날 변화를 명시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관측을 했느냐 안 했느냐 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양자역학이 밝혀낸 가장 새롭고 중요한 사실은 고전역학처럼 존재물의 상태가 위치와 운동량 값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태함수’로 규정된다는 사실이다. 상태함수의 전형적 형태는 존재물 그 자체가 ‘위치와 운동량을 지니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상태함수로 표현되는 ‘상태’에 있을 뿐이며, 이것에 대해 관측되는 모든 성질, 예컨대 위치와 운동량은 상태함수를 통해 일정한 방식으로 도출되는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고전역학에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양자역학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단순화된 부분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역학 세계의 존재론적 구조는 ‘상태 층’과 ‘사건 층’ 두 가지 층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상태 층’이라 함은 주체가 접하는 모든 대상이 ‘상태’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층위로서, 이는 실재 일부를 대표하는 것이기는 하나 어떠한 관측에도 직접 포착되지 않는, 말하자면 수면 이하 세계와 같은 존재를 말한다. 이에 비해 ‘사건 층’이라 함은 사건 또는 빈-사건의 총체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오직 이것만을 통해 대상 존재가 외부와 관계를 맺게 되는 층위에 해당한다. 이는 말하자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세계를 의미하는데, 인식주체는 오직 이 층위에서만 대상과 어떠한 교섭을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일상 경험하는 세계는 당연히 ‘사건 층’에 속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자체만으로 서 있는 세계가 아니라 그 바탕에 ‘상태 층’을 깔고 있으며 ‘상태 층’에 의해 조정되는 외피에 해당하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원론적으로 고전역학에서도 성립한다. 고전역학에서의 상태 또한 ‘상태 층’을 형성하며, 구체적으로 관측되는 물리량이 ‘사건 층’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다시 말해 외부 관측 장치와 아무런 교섭이 없는 한, 고전역학에서도 대상의 상태를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고전역학에서는 상태 자체를 관측하는 물리량 값(위치와 운동량)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이러한 구분 자체가 현실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의불식간 이 두 층위를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 묶어버리고, 물리적 실재로서 별도의 ‘상태 층’을 수용할 여지를 아예 배제해버린다. 따라서 고전역학 관점에서 보면 약자역학에서 나타나는 ‘상태 층’을 수용할 별도의 존재론적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존재론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 대해 ‘비실재론’이라든가 ‘도구주의’라는 명칭으로 폄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양자역학을 통해 마련된 중층적 존재론 관점에서 보면, ‘상태 층’이라고 하는 그동안 묻혀 있던 새로운 층위의 존재가 선명한 구분을 가지고 밝혀진 셈이며, 그간 실재 세계라고 여겨졌던 현실세계가 실은 ‘사건 층’이라고 불려야 할 실재의 한 구성 층위에 불과했음을 알게 된다.

 


2.


특수상대성이론은 원칙적으로 빛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론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순수하게 시간-공간에 관한 이론이며, 단지 시간과 공간 변수들이 하나의 보편 상수 c를 통해 4차원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빛이 하필이면 이 보편상수 c에 해당하는 속도로 움직이게 되는 것은 시간-공간이 지닌 성격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다.

 

 

사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보편상수 c, 곧 광속 불변의 가정은 우리 직관에 크게 위배된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운동하는 두 좌표계에서 모두 같은 값을 가진다는 것을 가정으로 내세웠다. 예를 들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를 시속 99킬로미터로 가는 차에서 관측하더라고 여전이 이것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가는 것으로 관측되는 일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를 기준으로 할 때 앞 차는 시속 1킬로미터로 달렸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린 것이 아니다. 사실 칸트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이른바 직관 형식으로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바탕 관념(아 포리아)’이라고 했지만, 아인슈타인의 ‘광속 불변’은 바탕 관념에서 크게 벗어난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 4차원을 형성한다는 데 있다. 실제 3차원 공간은 눈에 보이고 몸으로 더듬을 수 있는 사물을 담고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차원인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과 관계되며, 특히 3차원 공간에 수직하게 또 하나의 축을 세워 서술할 그 어떤 단서도 잡을 수 없다.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18세기말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친 가우스 시대부터 허수 단위 i(i^2=-1)가 알려졌고, 이것이 실수축에 수직 방향으로 또 하나의 축인 허수축을 구축하면서 가우스 평면이라는 2차원의 복소수 공간이 이루어짐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허수 공간은, 설혹 ‘허수’라 지칭되기는 하지만, 실수 체계와 무관하게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좀 더 수학적 정합체인 ‘복소수’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간의 한 차원을 1차원 실수 공간에 대응시킨다면, 시간은 허수 공간에 대응됨으로써 공간-시간의 2차원 구조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공간은 서로 수직인 세 개의 실수축을 지닌 3차원 공간에 해당되므로 시간은 이들 모두에 수직인 허수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4차원 시공간을 이루게 된다. 4차원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지는 평면상 모든 방향이 대등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기서 대등하다는 것은 이 평면상 어느 방향을 기준 축으로 설정해서 관측하더라도 자연법칙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평면상에 서로 다른 기준 축을 택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속도를 지닌 관측 계를 택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4차원 시공간을 이룬다는 말 속에는 이미 ‘모든 자연법칙은 관측자의 속도에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09-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상식이 3차원의 지구라는 공간에서 한정적으로 얻어진 경험임을 생각한다면, 긴 시간의 관점에서 폭넓게 생각할 때에는 개인의 편견은 접어두어야겠습니다.^^:)
 

 

 

 

 

 

 

 

 

 

 

 

 

 

 

 

 


루프양자중력이론 개념은 간단하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이 유동성 있는 거대한 연체동물과 같아서 압축될 수도 있고 비틀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종류의 장이 ‘양자(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랑 단위: 전자와 쿼크, 광자, 글루온, 중성미자, 힉스)로 이루어지고’ 미세한 과립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물리적 공간 역시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양자는 공간을 채우고는 있지만 자갈 같은 물체가 아니라 기본적인 ‘장’에 상응한다. 예를 들어 광자가 전자기장의 양자인 것처럼 말이다. 이 입자들은 기본적으로 여기(excitation, 勵起) 상태에 있으며, 흐름이 있는 작은 파동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신비로운 양자역학의 법칙에 따라 다시 나타난다. 이 묘한 양자역학 법칙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절대 안정적일 수 없다. 여기서는 하나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면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간 중에서 원자가 없는 빈 영역을 관찰해보면 이러한 입자들이 무리를 형성한다. 그러니까 진짜 빈 공간, 완벽하게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기본 입자들은 모두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불안해하며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또 파괴되고 있는 셈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 핵심은 공간은 연속적이지 않으며 무한하게 나누어지지도 않지만 알갱이로, 즉 ‘공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간 원자 크기는 가장 작은 원자핵보다 수십, 수천억 배나 작은 아주 미세한 크기다.  ‘루프’ 즉 고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원자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슷한 것들과 ‘고리로 연결’되어 공간 흐름을 이어주는 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연속적이지 않은 공간이라는 개념에 따라, 사물과는 별개로 흐르는 기본적, 기초적인 ‘시간’에 대한 개념도 사라진다. 공간과 물질 입자를 설명하는 방정식들이 더 이상 ‘시간’ 변화를 수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시간 흐름은 세상 안에 있고, 세상 안에서 그리고 양자간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양자간 사건들이 곧 이 세상이고 그 자체가 시간의 원천이다.

 

 

루프양자중력 이론은 블랙홀을 설명하는 데 쓰인다. 별을 구성하던 물질이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 물질 자체 무게에 짓눌렸다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물질은 무한한 어느 한 지점에서 실제로 붕괴될 수 없다. 무한한 지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유한한 영역뿐이다. 자신 무게에 짓눌린 물질은 밀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양자역학이 반대 압력을 발생시킬 필요 없이, 스스로 무게를 상쇄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른다. 이처럼 수명이 다한 별의 마지막 상태를 ‘플랑크의 별’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서는 시공간의 양자 파동에 의해 발생한 압력이 물질 무게 균형을 맞춘다.

 

 

만약 태양이 연소를 멈추고 블랙홀을 만든다면, 블랙홀 지름은 약 1.5킬로미터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안에서 태양을 구성하던 모든 물질이 계속 가라앉아 결국 플랑크 별이 된다. 이때 태양 물질, 곧 플랑크의 별 물질 전체가 원자 하나의 공간 속에 응집된다. 이처럼 물질이 극단적인 상태가 되면 플랑크 별이 만들어진다.

 

 

플랑크 별은 안정적이지 않다. 일단 최대로 압축되면 튕겨 올라 다시 팽창하기 시작하고 블랙홀을 폭발 상태에 이르게 한다. 만약 블랙홀 안에서 플랑크 별을 관찰한다면 이 과정은 한 순간의 점프처럼 매우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 외부에 있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블랙홀이 아주 오랜 시간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블랙홀은 바깥에서 보면 매우 느린 속도로 도약하는 별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호킹은 양자역학을 이용해 블랙홀이 항상 뜨거운 상태라는 것을 증명했다. 블랙홀은 난로처럼 열을 방출한다. 블랙홀 열이 중력의 특성을 지닌 블랙홀에서 양자 효과를 발생시킨다. 열이 개별적인 ‘공간 양자’의 기본 입자, 곧 진동을 하면서 블랙홀 표면을 뜨겁게 만들어 블랙홀에 열을 발생시키는 ‘분자’인 것이다."

 

 

 

 

 


우주 이미지는 우리가 만든 사고 속에서 존재한다. 우리가 가진 한정된 수단을 동원해 재구성해서 파악한 모습과 실재 현실 사이에는 우리 무지를 비롯해 감각과 지식, 특별한 주체로서 경험하게 하는 조건 자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과 장치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칸트가 상상한 것처럼 보편적이 않다. 유클리드 공간 특성과 뉴턴 역학까지 실재하는 것처럼 추론되는 모든 것이 왜곡된 것이다. 우리는 학습해서 얻는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 개념 구조를 조금씩 바꾸는 것 뿐 이다. 우리가 만든 세상 이미지는 우리 안에,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 공간 속에 살고 있으며, 그 이미지들이 우리가 속한 현실 세계를 어느 정도는 설명해준다. 그래서 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그 이미지 흔적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다.

아인슈타인은 중력도 전력처럼 일정한 범위, 곧 ‘장’이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다. 다시 말해 전기장과 동일한 중력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중력장이 공간 속에서 확산된 것이 아니라 중력장 자체가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반상대성 이론의 개념이다.

초기 우주 전에는 어땠을까? 우주가 극도로 압축된 상황에 양자이론을 적용하면 빅뱅이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세상은 현재 이전의 우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다. 과거의 우주가 자체 무게 때문에 압축돼 아주 작은 공간 속에 짓눌리다가 결국 ‘재도약’을 한 후 다시 확장하기 시작해, 현재 우리 주위에서 관찰되는, 계속 확장하는 우주가 된 것이다. 빅뱅 순간, 우주가 호두 껍질만 한 공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때 진정한 양자중력의 왕국이 펼쳐진다. 공간과 시간이 모두 사라지고 세상이 수많은 가능성의 구름 속에 녹아들어 있는 순간인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4-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4-18 20:34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사진 봤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생각만으로 블랙홀 실재를 예언했으니까요.
요즘 양자역학 과학자들이 은근 아인슈타인을 까고 무시하는데, 제 짐작은 언젠가 결국 아인슈타인 주장이 옳았다고 결론 날 것 같습니다. ^^
 

 

 

 

 

 

 

 

 

 

 

 

 

 

 

 

작년 저자의 다른 책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를 읽고 무척 놀랐다. 그의 책은 물리학자 글이 아니었다. 어떤 이웃님이 말씀하신 뜻처럼 ‘김상욱 교수의 글이 물리학 박사 과정 학생 정도의 글이라면 카를로 로벨리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완숙한 철학자 글이다.’ (김상욱 교수 글이 미흡하다는 것이 아니라, 굳이 비교하면 상대적 차이가 그렇다는 의미일 듯 하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가 좋았던 독자라면, 이 책 <모든 순간의 물리학>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이전 책보다 훨씬 짧지만, 여전히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물리학 책에서 철학 의미까지 곱씹게 하는 글을 만나기란 분명 흔한 일이 아니다.

 

 

 

 

 

 

 

 

 

 

 

 

 

 

 

 

 

‘현재’란 무엇일까? "현재는 흐르고 있고, 사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존재하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것일까?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현재의 개념이 주관적인 것으로 증명되었기에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현재에 대한 생각은 환상이며, 보편적인 시간의 흐름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경험한다. 특히 시간과 열의 밀접한 관계, 곧 열의 흐름이 있을 때에만 과거와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과, 열이 물리학적 확률과 관련되는 상황에서 시간을 느낀다. 세상의 미세한 상호작용이 하나의 체계(예를 들면 우리 자신)에 의해 시간적인 현상을 발생시키고, 이때 체계는 무수한 변수들의 평균을 통해서만 상호작용을 한다. 우리 기억과 의식은 이러한 통계적인 현상에 의해 만들어지고,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할 수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어서 아주 예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흐르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존재인 우리 인간은 세상의 퇴색한 모습만 보기에 시간을 살게 된다.

 

 

우리는 에너지 전이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수 있다. 좌우로 움직이는 진자운동을 지켜보면, 진자는 마찰 때문에 지지대를 약간 가열시키면서 에너지를 잃고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든다. 마찰은 열을 생산한다. 진자는 정지된 상태에서 출발해 왕복운동을 시작할 때 지지대의 열을 흡수해 얻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열이 있을 때만 발생한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본적인 현상은 열이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왜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이동하고 그 반대로는 이동하지 않는 걸까? 이는 그저 확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많을 뿐이다. 통계적으로 뜨거운 물질의 원자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차가운 원자에 부딪히면서 약간의 에너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많고, 반대로 차가운 원자가 뜨거운 원자에게 에너지를 남겨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사실 열역학에서 말하는 가능성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무지와 관련 있다. 분자들이 물체 안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지, 각각 분자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지만 이런저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예상해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우리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이 세상의 습성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비이성적을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있든 없든, 찻잔 속에 잠긴 차가운 스푼은 뜨거워진다.

 

 

사물의 운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과 불가능성은 사물의 정확한 상태를 우리가 아느냐와 상관없다. 관련있는 것은 우리와 상호작용을 하는 사물의 한정적인 특성 수준이다. 특성 수준은 우리가 스푼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예측 가능성은 사물 자체의 변화와도 관련 없다. 다만 사물이 다른 사물과 상호작용할 때, 사물이 가진 특성의 각 부분이 얼마나 어떻게 변하는지와 관계 있다. 차가운 스푼이 뜨거운 찻잔 속에서 따뜻해지는 이유는 차와 스푼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상태(예를 들면 온도)를 특징짓는 수많은 변화 가능성 중에서 단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해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이러한 요인들의 변화만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물 움직임을 예상하기는 충분치 않지만, 스푼이 따뜻해질 거라는 가능성은 최대한 높여줄 수 있다.

 


세상 사물은 꾸준히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그 과정에서 상호작용을 함께한 다른 사물의 상태를 알고 흔적을 얻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물은 서로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한다. 하나의 물리 체계가 갖고 있는 다른 체계에 대한 정보는 전혀 의식적이거나 주관적이지 않다. 물리학은 그저 어떤 무엇인가의 상태와 다른 무엇인가 상태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일 뿐이다. 사물이 주인인 세상이 아니라 사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좌우되는 세상이다.

 

 

비 한 방울에는 하늘에 구름이 있다는 정보가 담겨 있고, 한 줄기 빛에는 빛이 나온 물질의 색상 정보가 들어 있다. 시계에는 하루 시간에 대한 정보가, 바람에는 근처 지역의 천둥 번개에 대한 정보가, 감기 바이러스에는 우리 코의 취약성에 대한 정보가 있다. 우리 DNA에는 우리가 아버지를 닮게 만든 유전자 코드에 대한 모든 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우리 뇌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동안 쌓은 정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대상의 상태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닌 우리와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자연과학 관찰은 경제학자 칼 폴라니 책 <거대한 전환>의 다음과 같은 유사한 통찰을 떠오르게 한다.

 

 

“인간사란 워낙 깊게 얽히고설켜 있기 마련이라, 제아무리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그 인과 관계를 전부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나라 체제나 국제 체제도 그러한 자동적인 규제 장치에 의존할 수 없다. 균형 재정과 자유 기업, 세계 무역, 국제 청산소, 고정 환율제 같은 것들이 국제 질서를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폴라니가 강조하는 단어가 바로 ‘사회’(상호작용)다. “인간은 사회를 발견해야 한다. 사람들은 사회 단결과 유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경제적 자유는 어느 정도 계획 또는 지도되는 규제에 종속되어야 한다. 인민과 집단의 권리 그리고 국가 사이에서 상대적 우선권이 다른 층위에서 결합되며, 그리고 전체적으로 개인주의적 가치와 사회적 삶의 필요성이 일반적 질서 내에 상호 종속하면서 결합되어야 한다. 경제를 정치에 복속시키고 지구 경제를 국제 협력의 기초 위해서 재건하는 노력에 함께 매진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우주는 차갑지만 춥지 않다.

“우주 공간은 섭씨 -270도다. 만약 우리가 우주에 나가서 바깥에 손을 내놓으면, 우주 공간은 극저온이니 우리 손은 금방 얼어붙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주 공간은 거의 물질이 없으므로 우리 손의 에너지가 공간에 거의 전달되지 않기에 우리는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는다. 우주 공간은 1세제곱센티미터의 부피에 수소 원자 몇 개가 있을 정도로, 사실상 텅 빈 곳이다. 입자 개수가 이 정도면 열역학적인 온도를 정할 수 없다.


온도란 기체 분자들이 충돌해서 운동 에너지가 전달되는 과정이다. 온도가 높은, 즉 속도가 빠른 입자들이 온도가 낮은, 즉 속도가 느린 입자와 충돌하는 것이 계의 에너지다. 속도가 빠른 입자(따뜻한 우리 손 )가 느린 입자(차가운 우주 공간)에 부딪히면 속도가 느려져 우리 손 온도가 내려 가야 하지만, 우주 공간에는 입자가 거의 없기에 우주 공간은 차갑지만 춥지 않다.”


2.
우리는 쿼크만 따로 볼 수 없다.

“원자폭탄에 사용되는 강력은 양성자를 이루는 쿼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다. 양성자 속 풍경은 두 개의 업 쿼크와 하나의 다운 쿼크가 글루온(강력)이라는 접착제로 뭉쳐 있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양자 역학적 효과에 따라 글루온과 쿼크가 쉼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치 부글부글 끓고 있는 냄비처럼 역동적이다.


그런데, 강력은 특이하게도 거리가 멀어질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따라서 쿼크를 떼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쿼크 사이의 강력 에너지가 점점 높아져서 어느 순간 물질로 전환되어 쿼크 쌍을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쿼크 쌍은 또다시 원래의 쿼크와 합쳐져서 하드론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가 볼수 있는 것은 언제나 하드론뿐이다. 쿼크를 볼 수는 없다.”


3.
자석의 양극은 임의로 결정된다.

“자연의 대칭성이 늘 정확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깨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풍부한 자연 현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대칭성이 깨지는 것을 ‘현상의 탄생’이라고 한다.


대칭성이 깨지는 방식 중 자발적 대칭성의 깨짐은 특히 흥미로운 과정이다. 이 아이디어는 강자성(철이나 니켈처럼 영구 자석이 되는 금속의 자기 성질)을 설명하는 하이젠베르크 논문에서 알려졌다. 강자성 물질은 분자 수준에서 아주 작은 자석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보통의 경우에는 작은 자석들이 제멋대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자성이 서로 상쇄되기에 거시적으로 자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상태에서는 물질에 특정 방향성이 없기에 모든 방향에 대해서 대칭적이다.


그런데 온도가 내려가면 점점 같은 상태가 되는 작은 자석들이 많아지게 되고, 어느 순간 물질은 자석이 된다. 자석이 되면 자석의 극이 가리키는 특정한 방향성이 생긴 것이므로, 방향에 대한 대칭성이 깨진 것이다. 이때 중요한 점은 거시적인 자석 방향은 물리적인 이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임의로 정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역학에 임하는 태도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깨닫거나 안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큰 모순 없이 연결고리가 생겼을 때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고 말한다. 이해한다는 것이 내가 가진 경험적 지식과 새로운 지식이 모순없이 관계를 맺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양자역학의 기본 전제

“자연의 기술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자연 법칙에 따라 계가 진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계를 관측하는 것이다. 결과를 알기 위해 관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 실험 결과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이론이라면 관측을 따로 떼어내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답은 약자역학이 계의 ‘상태’를 기술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상태의 기술에 있어서는 결정론적이지만, 위치나 속도와 같은 물리량을 기술하는 데 있어 비결정론적이다.’


상태는 관측 결과를 확률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양자역학적 확률은 고전통계학에서 나오는 확률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고전통계학의 확률은 우리의 주관적 무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확률은 우리가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심지어 관측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미 일어난 과거를 바꾸는 것조차 가능하다. 양자 지우개라 불리는 현상이다. 객관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김상욱의 과학공부>(동아시아, 2016)


“고전역학에서는 대상의 상태를 위치와 속도로 규정했는데, 위치와 속도는 개념도 명확하고 실제로 측정하는 물리량에 해당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상태는 이른바 ‘상태함수’라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우리가 측정하는 물리량과 직접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제로 물리량을 잴 때 그것의 상태함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맺어주어야 한다. 상태와 물리량, 곧 이론 체계와 감각기관을 통해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해석이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상태함수는 그 대상의 여러 가지 가능한 상태를 기술한다. 이른바 고유상태들이 포개져 있는 결합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측정하면 계는 가능한 고유상태 중에서 측정된 고유값에 해당하는 하나의 특정한 상태로 바뀐다. 이를 상태(함수)의 환원 또는 붕괴라고 부릅니다. 이 중에서 어떤 고유상태로 바뀌는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 없고, 다만 각 고유상태로 바뀔 확률만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전제다.”<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책갈피, 2019)


양자역학이 재미있는 이유

“독자가 추상적인 압축적인 글을 읽으며 풀어내어 원래대로 되돌리는 해석 행위는 창조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압축을 푸는 독자 생각과 느낌이 들어갈 수 있다. 이 때문에 글의 상실된 부분이 있는 추상적 표현은 오히려 독자에게 창조의 보금자리가 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2-09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개정판이 등판하였군요!! 축하(?)드립니다. ㅎㅎㅎㅎㅎ 사랑하시잖아요.

북다이제스터 2019-02-10 13:04   좋아요 2 | URL
네, 구판은 560페이지인데 개정판은 7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특히,
확률과 정보 가 추가되었는데, 그 내용이
확률 | 베이스추론 | 정보 | 객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 | 양자정보 | 정보와 동역학 등이라고 하니 많이 기대됩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9-02-10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과 마찬가지로 저 역식 북다이제스터님의 추천으로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

북다이제스터 2019-02-10 13:05   좋아요 1 | URL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