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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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일본의 한 청년이 어느 날 헌책방에서 알래스카 사진집을 보게 됐다. “그 책에는 작은 에스키모 마을을 공중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석양이 베링 해로 떨어지려고 하는, 역광이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그는 “사진이 보여주는 신비한 광선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황량한 곳에 인간이 생활할 수 있을까 하며, 사진 배경에 점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이 마을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사진 캡션에 쉬스마레프(Shishmaref)라고 씌어있었다.” 하지만 방문하고 싶다는 편지를 쓰려고 해도 “주소를 알 수 없었다.” 영어사전에서 mayor란 단어가 ‘읍장’ 혹은 ‘이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편지에 주소를 적었다. “Mayor, Shishmaref, Alaska USA” 그는 6개월 후 마을로부터 방문을 환영한다는 회신을 받았으며, 그 후 20여 년 간 알래스카 야생동물 사진작가로 사는 삶을 시작했다.

 

 

책 뒷부분에 사진 해설이 마련되어 있다. “자연을 찍는 사진가 중 사진을 하나의 상품으로 자연 속에서 오려내서는 소비자인 독자 앞에 여봐란듯이 득의에 찬 얼굴로 내미는 사람이 많다.” 그런 사진은 “눈길은 가도 마음을 뒤흔드는 것이 없어서 끝내 잊히고 만다. 예술품과 상품의 경계선이 어디쯤 그어지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저자의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경건함 혹은 외경과 친근함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점이 뭇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동물 사진을 보면 촬영자와 피사체 사이에 뭔가 대화가 오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어 없이도 성립하는 대화가 거기에는 있다. 포즈를 잡은 사진도 아니고, 무턱대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다가 요행으로 건진 사진도 아니다. 셔터 찬스를 계산한 것이 아닌데도 이것밖에 없겠다 싶은 순간의 동물 표정을 필름에 담아낸다. 이는 무언의 대화를 통해서 피사체와 한 몸이 되는 사진가의 숙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작품 속 동물들은 “모두 표정이 있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들려온다. 그의 작품 중 얼음 바다를 걷는 북극곰 한 마리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고독을 호소하는 듯한 그 모습은 인간 언어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표피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사진이 아니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내가 이 책을 왜 선택했는지, 저자는 바로 내 마음을 읽었다. 저자는 때 묻지 않은 먼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을 잘 알고 있다. 아마 그도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개의 소중한 자연을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까운 자연, 그리고 좀처럼 갈 수 없는 먼 자연이다. 먼 자연은 비록 가볼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거기에 그런 자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자연은 가끔 이야기가 담긴 풍경을 보여준다. 아니, 우리를 둘러싼 풍경은 전부 어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이 퍼즐을 읽지 못할 뿐.”

 

 

 

“오랫동안 만나고 싶었던 흰 부엉이는, 툰드라의 별로 눈에 띄지 않는 30세티미터쯤 되는 작은 둔덕 옆에다 알 네 개를 낳아 놓았다. 그것을 모르고 걷고 있던 나는 본의 아니게 어미를 둥지에서 떠나 있게 했던 모양이다. 나는 빨리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알이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날 밤도 북극해에서 불어대는 바람이 쉴 새 없이 으르렁대고 있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알래스카 대지에 150센티미터쯤 되는 나의 텐트만 툭 튀어나와 있어, 마치 나 혼자 이 바람을 다 당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6월이 되었다. 시절은 벌써 백야의 계절. 24시간 쏟아지는 태양은 금세 눈을 녹이고, 북극권의 봄은 달음박질로 찾아온다. 눈은 다 사라지고 툰드라는 향기로운 흙내를 풍긴다. 마침내 강물이 열리고 반년 동안 잠자고 있던 대지는 천천히 기지개를 켜듯 꿈틀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침, 먼 산비탈을 그리즐리(북미산 큰 회색곰)가 걸어가고 있었다. 들판에서 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체험일까. 저기 한 마리 곰이 있을 뿐인데도 광대한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

 

 

 

“어느 날 오후, 지평선 너머로 까만 점들이 잇달아 떠올랐다. 거대한 카리부(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순록의 일종) 때가 툰드라 저쪽에서 이쪽으로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장면과 맞닥뜨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툰드라를 가득 메운 전설 같은 카리부 때. 그것이 바로 지금 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벌떡거리는 가슴을 꼭 누르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수만 마리에 이르는 무리가 시야를 금세 채워나간다. 어미와 새끼가 서로 부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그 화음들이 점차 사위를 가득 채웠다.” “시야는 온통 카리부 바다였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혹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바닷속에서 수만 마리의 카리부가 울려내는 발굽 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으로 물을 길러 간다. 눈 녹은 철의 강물 소리처럼 봄을 실감 나게 전해주는 전조도 없다. 신록으로 물드는 자작나무 속에도 그 소리가 흐르고 있을까. 나무줄기에 얼굴을 대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뿌리가 대지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 힘은 과연 무엇일까”

 

 

 

“작은 장작불이 흔들리고 있다. 타닥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나의 마음을 풀어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더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역시 묘한 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자잘한 일상에 좌우되면서도 새 등산화나 봄기운에 이렇게 풍족해질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만큼 얕다. 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되고 별이 나왔다. 랜턴을 켜놓고 일기를 쓴다.”

 

 

 

“어느 겨울밤, 거대한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는 오로라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한평생을 마감하는 순간, 누구나 어떤 한 가지 강렬한 풍경을 떠올리게 되어 있다면, 나에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에서 내내 보아온 오로라일 것이라고.”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오로라를 보는 사람은 과연 그 광채 때문에 감동하는 것일까? 사람은 늘 무의식적으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들려주는 무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 풍경에 벌써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알래스카 삶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땅끝인 줄로만 알았던 곳에서도 사람들의 생활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 사람의 생활과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함에 매혹되어갔다. 어떤 민족이라도, 아무리 다른 환경에서 살아도, 인간은 한 가지 공통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꼭 한 번만 산다는 것이다. 세계는 그런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43세 되던 1996년 사진 촬영을 위해 떠난 캄차카 반도 쿠릴 호반에서 야외 취침 중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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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0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떠나도 사진의 감동은 여전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10-06 19:55   좋아요 0 | URL
안타깝게도 좋은 분인 것 같은데, 너무 일찍 가셨어요.

cyrus 2016-10-06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연을 상품으로 취급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기 뜻대로 자연을 훼손합니다. 그런 사람은 카메라를 들 자격이 없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06 19:5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자연 상황을 일부러 조작해서 사진 찍어 출품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 정말 싫어합니다.

보슬비 2016-10-0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하는 나무`를 통해 알고 있던 작가였는데, 다른책을 찾아볼생각을 못했네요. 북다이제스터님 덕분에 좋은책 알게 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06 19: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읽어보니 사진뿐 아니라 필력이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DanielYeo 2016-10-0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요올 퍼스널 지오그래피같군요 사진 실력이 대단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10-06 19:58   좋아요 0 | URL
책에는 더 감동적인 사진이 많은데, 인터넷에는 무료 사진이 많지 않아 정말 일부만 게재했습니다.

AgalmA 2016-10-06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행하는 나무>로 기억하고 있는 작가인데, 때묻지 않은 자연만큼이나 때묻지 않으려 노력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06 20:00   좋아요 1 | URL
대체 못 읽어 본 작가와 책이 무엇이신지 궁금하며 다독가이신 줄 알면서도 매번 놀랍니다.^^

blueyonder 2016-10-06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사진과 책 소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06 20:01   좋아요 0 | URL
제가 감사합니다. 읽어 봐 주셔서요.

고양이라디오 2016-10-09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구입해서 보고 싶은 책이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10-09 19:23   좋아요 1 | URL
감동적인 사진과 뭉클한 글이 많습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결정적 순간의 환희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31
클레망 셰루 지음, 정승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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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일대기를 그의 주요 작품과 함께 설명한 전기이다. 앙리를 평생 사진의 길로 이끈 작품은 마틴 문가치가 찍은 <탕가니카 호수의 물보라를 향해 뛰어드는 세 명의 흑인 아이들>이란 사진이다. 그는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불현듯 순간 속 영원성을 사진으로 고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잘 짜인 구성 속에 어떤 강렬함, 자연스러움, 삶의 기쁨, 경이로움 등이 사진에 얽혀있으며, 아직도 이 사진을 볼 때 감탄이 터져 나온다”고 회상한다.

앙리는 그의 초기 작품 시기에 기하학을 사진 구성의 신조로 삼았다. 그는 피사체가 보여주는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피사체와 유사한 형태가 배경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기하학 형태의 구성을 강조했다. 구성에 따른 그의 사진 찍기 방식은 기다림이다. “먼저 흥미롭게 느껴지는 조형물을 점찍어 둔다. 사진 전면을 차지할 평범한 벽, 혹은 선을 그어 원근감을 나타낼 수 있는 공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 뒤 아이들, 남자, 개와 같은 생명을 지닌 하나 혹은 여러 요소가 그 자리에 (우연히) 나타나, ‘자발적 협력’이라 부르는 형태로 하나의 구성을 이루도록 기다린다. 이미지의 기하학 특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미리 계획하고, 더 중요한 부분은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남겨 두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품에는 당시 “자유로움, 상식의 파괴, 규율 위반, 유희적 취향”과 같은 초현실주의 영향도 분명히 드러난다. 사진에는 바지의 단추를 풀어 둔 채 주먹을 꼭 쥐고 가슴에 올려놓은 남성 옆에 여성용 구두가 쌓아있다. “마음을 표현하는 듯 뒤축을 맞춰 놓은 구두, 페티시즘, 인물의 감정동요, 이미지의 서로 다른 부분을 합성한 몽타주 효과는 초현실주의의 정신을 환기한다.”

하지만 앙리는 1차 세계 대전의 경험, 수용소 생활, 지인들의 실종과 같은 일을 겪으며 사진의 추상적 접근보다 ‘인간의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그의 보도 사진뿐만 아니라 초상 사진 촬영에도 드러난다. 앙리는 피카소, 마티스 등 미술가뿐만 아니라 발레리, 사르트르, 카뮈와 같은 문학인의 초상 사진도 촬영했다. “그는 무엇보다 촬영할 인물들의 저서와 친숙해진 후 그 인물의 내면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런 방식을 따르다 보니 한 인물당 필름 한 통 이상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앙리는 흑백필름을 애용했다. “흑백이 아주 복잡하고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는 것과 달리, 컬러는 완전히 분리된 각각의 단편적인 색을 제공한다. 따라서 사진가가 컬러를 선택하는 것은 흑백으로 포착할 수 있는 순수한 움직임이나 삶의 순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대상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할 때, 앙리에게 중요한 것은 ‘움직임 가운데 균형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움직이고 변형되고 발전하는 대상 주변을 맴돌면서 가장 의미 있는 형태적 구성을 포착해낼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모습은 일정의 안무와 같아서 마침 한곳에 만족하지 못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잠자리처럼 그는 인도를 따라 춤을 추며 사진을 찍었다.”

앙리의 사진집 <결정적 순간>이 미국에서 출시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정적 순간’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에게, 사물이 미학적으로 특정한 의미를 띠며 정돈되어 조직화하는 어떤 분명한 순간, 즉 ‘절정’을 의미한다.” “한 가부키 배우의 장례식에서 찍은 사진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슬픔을 표하고 있다. 정중앙에 ‘장례’라고 쓰인 휘장을 중심으로 한 방향으로 움직이듯 등을 돌리며, 손수건에 애통한 마음을 감추고 있다.”

 

 

 

 

뛰어난 사진은 하나의 대상이 내포한 구조와 의미를 머리와 마음으로 그려 사진기로 표현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거기엔 긴 기다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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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6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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