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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에 대한 대중 오해는 아주 심각해서, 어떤 정책을 들고나오든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매우 힘들다. 많은 사람은 핵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 여기며, 가이거 계수기의 딸각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떤다. 만약 핵폐기물 저장고가 핵폐기물을 충분히 오랫동안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많은 사람은 당신을 원자력 산업의 앞잡이라고 몰아세울 것이다. 숫자를 내세워서 설명하려고 해 봐도 결국 아무도 그런 걸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린 1만 년 동안 완벽하게 안전할 핵폐기물 저장소를 만들 필요가 없다. 좀 더 합리적인 목표는 누출 위험도를 0.1%로 줄이는 것이다. 핵폐기물 방사능이 땅속 우라늄보다 1천 배 더 해로운 것이라고 할 때, 0.1% 줄임으로써 위험도(확률 X 위험도)는 1,000 X 0,001=1, 즉 기본적으로 우라늄을 처음 있던 장소에서 캐내지 않은 것과 같은 위험도가 된다. 게다가 0.1%의 안전도를 1만 년 내내 유지할 필요도 없다. 300년 뒤면 분열 부산물의 방사능이 1/10로 감소하여, 천연 우라늄의 100배 정도의 방사능이 된다. 그땐 0.1%가 아니라 1% 정도가 누출되어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1만 년 내내 절대적으로 안전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핵폐기물 저장 문제도 슬슬 다룰 만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핵폐기물의 방사능이 지하수에 스며들 위험은 땅 속 천연 우라늄의 자연 방사능이 지하수에 흐를 위험보다 덜 하다. 왜 우리는 (핵폐기물을) 더 위험할 수 있는 토양 속 묻혀 있는 천연 우라늄과 비교하지 않는 걸까? 미국 콜로라도 지역의 자연 방사능은 핵폐기물 저장장치 법적 허용치의 20배에 달하며, 방사능이 10분의 1 수준으로 반감하려면 적어도 130억 년이 걸린다. 콜로라도 지역의 강 수원은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고를 포함한 서부 지역 대부분의 식수원으로 쓰인다. 핵폐기물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 상수도원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 사례는 불가사의하고 생소한 종류의 위험에 대해서 걱정하다 보면 때로 균형 감각을 잃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자료를 갖고 여러 가지 계산하면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핵폐기물 저장 시설의 누출 가능성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살림, 2011)

 

 

 

 

 

 

 

 

 

 

 

 

 

 

 

 

 

 

 

“기술적인 의미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독자 스스로 무식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독자의 반항심만 부를 것이고 글쓴이의 에토스는 훼손될 것이다. 예컨대 의학전문가와 환경전문가들은 핵페기물과 유독성 폐기물의 ‘안전성’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지만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 최근에야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위험’과 대중이 생각하는 ‘위험’이 다르다는 데 원인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전문가들은 위험이라는 말을 ‘발생가능성 X 비용’과 같은 기술적, 통계적 의미로 사용한다. 위험이란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노출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에다 그로 인한 대가(죽음, 부상, 질병 등)를 곱한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소 주변 3km 이내에서 30년 동안 살았다면 발전소로 인해 암에 걸릴 ‘진짜’ 위험은 0.1퍼센트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이는 욕조에서 미끄러질 확률보다 낮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을 안다 하더라도, 위험을 통계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심리적으로 정의한다. (이런 뻔한 사실을 사회심리학자들이 밝혀내는 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적어도 다음 네 가지 요인을 종합하여 위험을 판단한다.

 

 

1. 대가의 크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다칠까?
2. 대가의 급박성: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한 번에 다칠까, 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해를 입을까?
3. 위험에 대한 통제: 위험이 자신 행동으로 일어나는가,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일어나는가?
4. 위험의 선택: 위험은 우리가 무릅쓰기로 선택한 것인가?

 

 

정리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위험이란, ‘크기 + 급박성 + 통제의 부재 + 선택의 부재’라는 의미이다. 위험전문가들이 통계적이고 인증된 정의로 위험을 설명하는 한, 원자력 폐기물을 실은 차량이 마을을 거쳐 가도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일반적인 정의를 사용하여 위험을 설명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좀 더 합리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독자들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는 기술적인 의미를 사용하여 일반의미를 무시할 수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권위가 있어 보이고 독자들이 쉽게 설득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전문용어를 독자 이해수준에 맞춰 설명해야 한다.”<논증의 탄생>(홍문관, 2008)

 

 

 

 

 

 


‘이론(theory)’이라는 단어만큼 과학과 대중 사이에 오해를 유발하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과학자에게 이론이란 ‘어떤 현상을 체계적으로 입증하고 분명하게 진술한 설명’을 의미하는 명확한 인증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따라서 양자이론이나 상대성이론이라고 하면, 전자나 빛의 속도에 대한 추정이나 입증되지 않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들이 폭넓게 받아들이는 체계적인 설명을 의미한다.
반면 일반대중은 이와는 정반대로 단순한 사색, 육감, 추측을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론일 뿐’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이론’이란 말을 일반의미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는 생물학자들이 생각하는 ‘이론’의 인증의미와 전혀 다르다. 진화론에 대해 논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이론일 뿐이야’라는 주장은 절대 이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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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은 대개 명확하게 선동적인 표현을 쓰지 않아도 독자가 모두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애매모호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자신 의지를 표현해야만 독자는 알아듣는다.


2.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독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또한 내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논리와 근거를 독자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라. 논증을 통해서 풀고자 하는 문제를 찾아냈다면 우선 독자가 이 문제에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보라.


글을 쓸 때는 강단 위에 올라서서 어둑한 관중석에 앉아있는 이름 없는 청중을 향해 일방적으로 자기 글을 읽어 내려간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친하기는 해도 깐깐한 친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자신 생각을 내세우며 까다로운 질문을 꼬치꼬치 캐묻고 끊임없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말문을 가로막는다고 상상하라. 친구 의심과 반박에 대해 일일이 대답을 해야 한다. 특히 ‘그래서 어쨌다고?’ ‘그런 이야기에 내가 왜 귀 기울여야 하지?’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반드시 답해야 한다.


3.

모든 글에는 글이 목적으로 삼는 가상독자가 있다. 하지만 만약 ‘일반대중’을 가상독자로 삼아 글을 쓰려고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실제로 그런 독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땐 주요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또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가정해도 좋다. 지적 수준은 나와 비슷하지만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으며 거기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가상독자로 삼아라.


4.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그 글이 독자를 어떻게 가정하는지 분석하라. 독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독자가 알지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근거는 설명하고, 어떤 근거는 설명하지 않는가? 어떤 근거에 대해서 부연설명을 하는 것은 글쓴이 스스로 새롭거나 논란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논증을 글로 쓸 때 첫 번째 할 일은 논증을 유발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어떤 것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라는가? 왜 그것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 독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를 바라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가? 그런 행동으로 어떤 문제가 풀리겠는가?


문제를 완전히 파악했다면 몇 가지 해법을 떠올려 보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 하나를 뽑아서 독자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근거를 나열해보라. 이 근거 목록을 대충 만든 글의 전체윤곽으로 사용해도 좋다.


6.

한 번에 완벽하게 글을 쓰려고 하는 것보다, 무작정 원고를 써 내려간 뒤에 다 쓴 원고를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 고치는 것이 훨씬 좋다. 시간도 크게 절약된다.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글을 쓰고 나서 하루 정도 묵혀 두었다가 다시 보면 자신 글이 얼마나 허술한지 깨닫게 된다.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완벽하게 찾아낸 다음에 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로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글로 직접 써보는 것도 문제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을 쓰다 보면 자신이 풀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초고를 쓰는 것이 자신 주장을 테스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라. 가정을 세우고 나면, 비판적인 독자도 이러한 주장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당해 보이는 여러 이유(하위주장)을 써라. 독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순서로 이유를 재배치하면 그 자체로 글의 윤곽이 되기도 한다.


7.

초고를 제대로 다듬지 못하도록 우릴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너무 많은 기억이다. 글을 쓴 사람은 절대 자신이 쓴 글을 독자 눈으로 읽지 못한다. 글을 쓰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자신 글속에 빠져서, 독자가 자신 글에서 이해해주기 바라는 내용만 뽑아서 읽어낸다. 하지만 독자는 눈앞에 보이는 하얀 종이와 까만 잉크자국만으로 글을 읽는다. 그렇기에 글을 고칠 때에는 자신이 쓴 들을 멀리하고 읽어야 한다. 글 내용이 더 이상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덮어두어도 좋다.


8.

독자를 설득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타당하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투사하는 에토스는 협력적이고 사려 깊은 느낌을 준다. 독자는 자신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자신 관점을 존중하는 논증을 읽을 때 글쓴이를 신뢰한다. 따라서 글을 쓸 때 혼자 대화하는 법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모든 글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고 협력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 자리에 서서 그들 목소리를 혼자 상상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은 상상해야 할 독자 질문이 다섯 가지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1) 핵심이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뭘 주장하고자 하는가? 다시 말해서 나보고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가?

(2) 내가 왜 그 주장에 동의해야 하는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이유를 제시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논증의 기본적인 틀이다. 다음 두 질문은 논증의 ‘논리성’을 증명하라는 요구다.

(3) 어떤 사실에 기초하여 그런 이유를 내세우는가? 그 이유들이 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떤 근거가 그런 이유를 뒷받침하는가?

(4) 이렇게 주장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어떤 원칙 때문에 그러한 이유가 주장을 뒷받침하는가? (이러한 원칙을 전제라고 한다.)

마지막 질문은 독자 관점에서 자신 논증을 바라보는 것이다.

(5) 다른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는가? 누군가 ~라고 주장하면/반대하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당신과 다른 인식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9.

결론에 가서야 주요 주장을 읽을 수 있게 아껴둔다면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논증을 통제할 것이다. 내가 추론해나가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그토록 고대하던 해법을 알려주겠다.’ 이같은 전략이 좀 더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런 글은 구불구불한 지적인 여정을 즐기는 사람들만 좋아한다. 특히 극소수 사람들을 빼면 이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시간을 아끼고 싶어 한다. 주요주장을 빨리 보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서론에서 주요주장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독자들이 자신의 주요주장에 대해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장을 끝까지 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저 멀리서 어렴풋하게다가오는 달갑지 않은 결론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것은, 글을 많이 써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10.


제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관심 있는 화제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지루하게 느낀다면 그 들을 읽는 사람은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글을 많이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화제를 찾으라고 하면 대부분 문제를 찾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문제를 찾으려면 먼저 보편적인 화제(예를 들면 땅다람쥐의 영역습성)를 맥락과 연관성, 특성을 살려 구체적인 화제(땅다람쥐의 영역보호습성과 아이들 습성의 비슷한 점)로 바꿔야 한다.

 

 

화제에 대해 충분히 많은 정보를 알기 전에는 맥락과 연관성, 특성을 덧붙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특별한 내용도 정해주지 않고 연구보고서를 무작정 쓰라고 하는 과제가 어려운 것이다. 일단 화제를 찾고 나면 그 화제와 관련한 글을 무작정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화제를 조금씩 좁혀나갈 수 있을 거이다. 자신이 대답해야 할 문제를 찾아내는 것은 아직 먼 일이다.

 

 

11.


주장은 독자 모두 동의하는 ‘뻔한 사실’이어서는 안 된다. 어떤 주장이든 독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경우에만 관심을 갖고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주요 주장을 진술할 때는, 언제나 의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독자는 단호하고 확정적인 어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이고 단호한 주장을 읽는 순간, 노골적인 불신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려 깊은 독자는 단호한 주장을 읽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지’ ‘어떻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주장과 좀 더 겸손하고 미묘하게 주장을 조율해야 한다.

 

 

12.


똑같이 베끼지 않더라도 개념 흐름이 같다면 표절일 위험이 크다. 표절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먼저 원전을 자세히 읽고 그 의미를 골똘히 생각해본 다음에, 원전을 보지 말고 ‘자기만의 말’로 표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꼭, 자신이 풀어 쓴 문장과 원전을 손가락으로 짚어 비교해가면서 읽어보라. 원문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13.


사려 깊은 독자는 대부분 근거 없이 ‘전제로 표현된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논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나눠주는 콘돔이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성행위를 부추긴다는 주장은 근거 없이 전제만 제시한 것이다. 이런 논증은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을 제쳐두고 ‘교리적인 진실’에만 의존하여 주장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논증과 달리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논증은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하게 강요하는 주장으로 보일 확률이 높다. 그러한 원칙을 독자들이 거부하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이러한 논증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14.


가능한 독자들의 공통적인 인식오류에 맞서지 마라. 독자들이 가장 깊이, 가장 완고하게 방어하는 믿음을 흔들어 꺾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그러한 믿음이 언제나 모든 문맥에서 100퍼센트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만 그러한 믿음이 적용되는 범위에 한계가 있고, 예외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러한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15.


사전에 나오는 정의라고 해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웬만해선 사전 정의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사전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단순하게 인용해서는 안 된다. ‘웹스터사전에 따르면 애국자란 ‘자산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 나라와 국일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다’ 처럼 인용하는 것은 매우 조잡한 방식이다. 정의를 풀어서 일반 의미로 소개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자신 나라를 사랑하고 지지하고 방어하는 행동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을 애국자라고 생각한다’처럼 일반 의미로 표현해야 한다. 특히 의미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큰 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인용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독자보다 내용에 대해 더 알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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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은 공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주장과 근거를 교환하며 서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논증은 단지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논증은 문제를 깊이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자신 믿음을 설명하도록 도와준다. 순수학문 분야에서 논증은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개념문제(conceptual problem)이다. 우주는 얼마나 클지, 새는 정말 공룡에서 진화했는지 등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면 알수록 세상 문제를 더 제대로 풀 수 있다고 믿는 개념 문제이다.

 

 

논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논증이 아닌 주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협상(negotiation)’은 쌍방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면 무슨 이유를 제시해도 상관없다. 물론 원칙적으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솔직할 필요는 없다. ‘선전(propaganda)’은 주장에 대한 이유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선전은 대개 청중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만 중요하다. 사람들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생각을 꺾는 것이 목적이다.

 

 

‘강압(coercion)’은 자신 주장을 거부했을 때 고통을 치러야 한다고 ‘협박’함으로써 문제를 푼다. 강압을 채찍에 비유한다면, ‘순응하면 보상을 주겠다’와 같은 당근 또한 ‘뇌물’로 사용할 때 또 다른 형태의 강압이 될 수 있다. 또한 ‘내가 나이가 많으니 내 말을 따라’ 처럼 자신 ‘권위’를 논증에 이용하는 것도 역시 강압이다. 상대에게 ‘창피’를 줘서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도 당연히 강압이다. ‘도와줘요.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에요’ 처럼 ‘사정’하는 것도 강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와 주거나 또는 자신 가치를 배신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논증과 전혀 다른 추론방식에 의존한다. 어떤 면에서 이야기는 논증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좋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위압, 공포, 기쁨, 혐오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한다. 이야기를 통해 느끼는 공포나 기쁨은 이성을 통한 논증보다 훨씬 강하다. 논증은 자신 주장과 이유, 상대방 주장과 이유를 반영하여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기에 추상적인 패턴을 유지한다. 반면 이야기는 생생하다. 또한 좋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적어도 잠시라도 비판적인 사고를 보류하게 만든다. 좋은 이야기는 논증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때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논증할 때 주의할 사항도 있다. 자신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주장이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다른 문화사회에서 이런 상황을 조심해야 한다. 두 집단이 서로 근본적인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단순히 자기주장을 주고받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아무런 논의도 진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문화는 절대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일까? 물론, 전제가 너무 깊이 묻혀 있어 한참 파고들어가야지만 서로 다른 전제를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는 어떤 합의도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라도 논증하고 논쟁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왜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지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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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써야 할 글에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문장이 생각을 만들어가게 한다. 첫 문장을 잘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야 한다.

 

“호흡이 좋아야 글이 명료하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호흡으로 글을 쓰겠지만 독자들이 모두 그 호흡으로 글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서 자주 오해가 생긴다. 특히 긴 문장을 쓸 때는 여러 가지 호흡으로 글을 읽어보고 낱말의 위치를 바꾸거나 조사를 바꾸어 호흡을 조정한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명료하게 읽혀야 잘 쓴 것이다. 구두점을 잘 이용한다. 구두점은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한다.”

 


■ 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쓴 다음, 늘 하던 소리다 싶으면 지운다. 상투어구는 생각을 안 하거나 생각을 미진하게 했다는 증거이며,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우고 다시 쓰다 보면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가짜 생각’과 ‘진짜 생각’이 구분된다. ‘허위의식’이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의식’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 되도록 의성어, 의태어도 쓰지 않는다.

 

“가능한 의성어, 의태어를 피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문장에 활기를 주는 듯하지만, 자주 내용의 허술함을 감추어주기에 쓰는 사람까지 속을 수 있다. ‘닭이 울었다’고 쓰면 되지 ‘닭이 꼬기오 하고 울었다’고 쓸 필요는 없다.”

 


■ 팩트 간의 관계를 강제하지 않는다.

 

“접속사 등으로 팩트를 강제로 묶으려 하면 글이 담백함을 잃는다. ‘태극기가 펄럭인다. 오늘은 3·1절이다’ 하면 상황과 인과관계가 모두 전달된다. ‘오늘은 3·1절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같은 문장은 독자를 바보로 취급하는 셈이 된다.”

 


■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가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짧은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긴 문장을 쓸 만한 내공이 없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려면 긴 문장이 필요한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자꾸 써봐야 한다. 짧은 문장을 많이 쓴다고 긴 문장을 잘 쓰게 되지는 않는다.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 형용사의 두 기능인 한정과 수식을 구분해야 한다.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형용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수식, 다른 하나는 한정이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식 기능의 형용사는 줄일 수 있지만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 글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표헌에 자신감이 붙게 하는 것도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 속내가 보이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잘 고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런데 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 보이게 쓰는 건 다르다. 글로 이익을 취하려 하거나 사태를 왜곡하면 속 보이는 글이 나온다. 속 보이는 글은 사실 자기 속내를 감추는 글이다.”

 


■ 한국어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두점이 필요 없다거나 한국어는 사물절을 쓰지는 않는다는 등의 한국어에 대한 속설이 많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서양에서도 구두점은 16세기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요순시대의 말로 남아 있게 할 수는 없다. 사물절을 쓰지 않는 건 한국어의 어법이 아니라 한국의 풍속일 뿐이다. 모든 풍속이 미풍양속은 아니다. 토속적인 말투를 질펀하게, 실은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글들이 있는데, ‘보그 병신체’, ‘박사 병신체’와 맞먹을 ‘토속어 병신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해야 할 것은 낯선 어투가 아니라 상투적인 어투다.”

 


■ 문장이 가지는 실제 효과를 생각한다.

 

“말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리듬도 좋은데 감동이 없는 글이 많다. ‘작은 눈도 크게 뜨고 좁은 길도 넓게 가자.’ ‘운전은 경주가 아니다.’ 두 개의 문장이 모두 교통안전 표어인데 어느 쪽이 효과가 있을까. 글의 효과와 설득력은 대체적으로 사실성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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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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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두 명은 왜 그렇게 서평 정의에 집착할까? 서평과 비평 그리고 독후감과 서평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지루하게 반복한다. 책 내용의 7할 이상이다.


"문학평론가 고 김현 선생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는다'는 역설적 표현으로 문학의 효용을 설명한 적이 있다. 글을 쓰는 행위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로움'이다.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글쓰기에서만큼은 이 자유를 맘껏 누려야 한다."


이 책을 읽는 대신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읽고 독후감이 되었든 리뷰가 되었든 서평이 되었든, 명칭과 개념, 형식이 무엇이든 간에 한 번이라도 더 글쓰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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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4-09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작 책은 그랬군요. 저는 공저자 중 한 분의 서평쓰기 특강을 들었어요. 김현 선생의 문장에 공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4-09 18:54   좋아요 1 | URL
전 이 책으로 첨 접한 저자들입니다. 짧은 글로 오해와 오독이 있을 수 있습니다. ^^

cyrus 2017-04-10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누구든지 글쓰기에 대한 정의를 밝히는 일도 개인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4-10 19:18   좋아요 1 | URL
네 맞는 말씀이세요. 회의주의자의 모순이 회의‘주의‘ 그 자체인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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