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이후 태러방지법이 통과되자 진중권 교수는 헌법주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방송에서 흥분했다. 그런데 만약 그 정신이 올바른 상태가 아니라면? <지대넓얕 - 현실 세계 편>의 저자 채사장은 헌법 정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본인 저서에서 우리나라 헌법 10조가 소수 부자를 보호하기 위한 불평등 법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은 생명권과 자유권 특히 재산권을 말하는데, 상대적으로 가난한 다수가 부자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국가가 제도적 장치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이해는 되었지만 주장이 과도하다고 생각했는데, 채사장 주장은 장 자크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알려진 토머스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성악(性惡)으로 보았지만, 루소는 성악 시절 훨씬 이전 성선(性善)을 인간 본성으로 상정한다. 아주 옛날 자연 상태의 인간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과 다른 사람 협력이 필요 없는 기술에 전념하는 동안, 그들 본성이 허용하는 만큼 자유롭고 건전하고 선량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계속해서 상호 간 독립적인 상태에서 평온함을 누렸다.” “그들은 본능과 이성에 따라 자기를 위협하는 악으로부터 몸을 수호하는 데 그쳤고, 타고난 연민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 억제할 수 있었으며, 남에게 피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자 존 로크의 격언처럼 ‘소유가 없는 곳에 바르지 못한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던 평등의 시절을 지나 소유 개념이 등장하자 인간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특히 “토지 경작은 필연적으로 토지 분배라는 문제를 낳았으며, 일단 소유가 인정되자 정의에 관한 최초의 규칙이 생겼다.” “토지 분배가 새로운 종류의 권리, 즉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생겨난 권리(자연권)와 다른 ‘소유’라는 권리를 낳았다.” 이에 따라 더 많이 소유한 “부자는 가난한 자의 봉사가 필요하고 가난한 자는 부자의 원조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던 인간이 실질적으로나 표면상으로 남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기들 이익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력하거나 제대로 상속받지 못한 자들은 가난뱅이가 되어 부득이 먹고살 것을 부자에게서 얻거나 빼앗아야만 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 각자의 다양한 성격에 따라 굴종 또는 폭력과 약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사실 부자들 “횡령은 오직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다시 힘으로 재산을 빼앗긴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노력과 뛰어난 솜씨로 부자가 된 자도 자신 소유에 내세울 명분은 없었다. 예컨대, ‘당신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갖고 있지만, 그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당신 형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당신이 자기 몫 이상의 것을 공동의 식량에서 취하여 소유하려면, 모든 사람에게서 만장일치의 명백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리하여 부자는 자신 입장을 정당화할 유효한 이유나 자신을 방어할 충분한 힘도 없고, 강도 떼에게는 짓밟힐 수 있고, 약탈의 공통된 희망으로 결집한 만인에 홀로 맞서게 되었다.”

 

 

“마침내 부자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인간 정신 속에 일찍이 스며든 적 없는 가장 교묘한 계획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세력 자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고, 자신 적대자를 자신 방어자로 만들고, 자신에게 유리한 제도를 적대자에게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의도에서 부자는 가난하든 부유하든 모든 사람에게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며 각자 소유를 보장하기 위해 단결합시다.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규칙을 정합시다. 어느 쪽도 차별하지 않고 강자와 약자가 평등하게 서로 의무를 따르며, ‘운명의 변덕에 좌우되지 않는 규칙’을 만듭시다!” “사실 무지하고 속아 넘어가기 쉬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이런 설명조차 필요 없었다.” “누구나 자신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 쇠사슬을 향해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 제도의 이점을 느낄만한 이성은 갖고 있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위험’을 내다볼 정도로 충분한 경험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해 자연적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버리는가 하면, 소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활한 (부자) 횡령은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그 후 온 인류를 몇몇 야심가들 이익을 위해 노동과 예속과 비참함에 복종시킨 것이다.”

 

 

이러한 법률이 생기게 되자 자유 이외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자는 자기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인 자유를 자진하여 포기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가난한 자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린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는 세력가와 자신이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비굴과 그들 보호를 거만하게 자랑한다. 자신의 노예 상태를 자부심으로 느끼며,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금언으로 잘 알려진 루소뿐 아니라, 홉스와 로크, 롤스 등 정치 철학자들은 자연 상태의 인간 권리, 즉 자연권이 진정 무엇인지 집착한다. 첫 번째 이유는 철학 하는 방식인 형식 논리에 있다. 철학자는 기하학자와 같은 방식인 연역으로 결론을 도출한다. “기하학은 참이라고 가정하는 공리에서 출발하여 체계를 세우고, 이 체계를 현실 세계에 적용한다. 예를 들면, ‘점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지만, 위치는 있다’라는 공리는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기하학은 바로 이런 공리를 이용하여 작업한다. 철학도 기하학 공리처럼 원초적 입장인 자연법을 상정하는 것이다.” 즉 “역사적 사건은 아니지만 자연 상태라는 전통적 개념을 분석적으로 유추해서 가정적 상황(대전제)을 만드는 것이다.” 사실 정치 이론은 사람과 환경마다 다양한 상황 이해를 벗어나기 힘들어 좀처럼 사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 “이런 어려움을 타파하기 위해 무지의 베일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가정적 상황을 만들어내 정의 원칙을 이끌어내는 것이 유일한 방도이다.” <철학 읽어 주는 남자>(탁석산, 2003. 2.)

 

 

 

 

 

 

 

 

 

 

 

 

 

 

올바른 자연법(자연 도덕법)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논리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중요하다. “실정법은 도둑질 종류를 정의하고 도둑질 각 종류에 상당하는 처벌을 정할 뿐,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명령하는 것은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양심을 통해서 인간에게 구속력을 갖는다. 반면 실정법은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며, 입법자 의지로 제정되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따라서 “나쁜 실정법과 좋은 실정법 또는 정의로운 법과 정의롭지 못한 법을 구분하는 원리나 기준”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실정법이 자연법에 합리적으로 기초한 것으로 본다면 실정법은 강제력뿐 아니라 양심을 통해서도 구속력을 갖는다.” “어떤 시점에서 우리는 모든 자연권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법에서 적절하게 도출되지 않는 실정법은 이름뿐인 법이다.” <개념어 해석>(모티어 J. 애들러, 2007. 5.)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장 자크 루소가 남긴 마지막 문장에 큰 울림이 있다.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 사람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 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법칙에 어긋난다.”
소유가 불평등의 기원이지만 소유 제도를 없애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소유 제도를 없앤 공산주의 국가는 불평등이 없어졌는가? 문제 해결 중 가장 하수가 ‘손바닥 뒤집기’ 방식이다. 책에는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루소의 한 문장으로 유추할 수는 있다. “오직 힘만으로 지탱하는 그들을 타도하는 것도 힘뿐이다.” 그래서 1789년 프랑스 시민은 혁명으로 힘있는 자들에게 힘으로 맞섰다. 그렇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불평등은 사라졌는가? 이제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사회의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좌우되고, 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불평등은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 이를테면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권력을 더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불평등으로 현재 상태에 불만을 품고 있는 그대는 동시대인들을 비판하게 하며, 불행히도 그대 뒤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는 공포를 불러일킬 것이다.

사회화하고 노예화한 인간은 연약하고 겁이 많아지며 비굴해진다. 게다가 나약한 생활 양식은 인간의 힘과 용기를 완전히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념은 우리 욕구에서 비롯되며 우리의 지식을 통해 진보해간다. 모든 국민의 정신 진보는 국민에게 강요된 상황 필요에 따라 정확하게 비례하며,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재촉하는 이념에 비례한다.

나는 노예가 된 인민이 쇠사슬에 메인 채 누리고 있는 평화와 안식을 끊임없이 찬양하며 비참하기 그지없는 예속을 평화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명이나 자유는 자연의 본질적 선물이다. 자유를 제거하면 인간 품위는 떨어지고 생명을 제거하면 인간 존재는 소멸된다. 이 세상의 어떤 재산으로도 그 양자 가운데 어느 것도 보상할 수 없으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자연과 이성을 동시에 거스르는 일이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암담함과 비참함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몇몇 세력가와 부자가 권세와 부의 절정을 누린다는 것은 민중이 비참하지 않게 되면 부자와 세력가들은 행복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억압이 끊임없이 증대되는 가운데, 억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억압이 과연 어디까지 미칠 것이며 또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어떤 합법적인 수단이 남아 있는가를 결코 알 수 없다. 또한 시민의 권리나 인민의 자유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약자들의 요구가 반란의 불평등으로 취급된다.

함께 모인 사람들을 갈라놓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 겉으로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분열의 씨가 뿌려질 수 있다면, 권리나 이해의 대립을 통해 상호간 불신과 증오를 불어넣어 여러 계급을 억압하는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조장하는 통치자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애니비평 2016-03-27 1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소는 사적인 소유는 그 사람의 생계수단과 생존을 위한 기본인데, 우리는 그것마저 박탈하니..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째서 당신네 서구 문명에는 화물이 많고, 우리가 사는 땅에는 화물이 없는 거지요?’ 2005년 우리나라에 출간된 이후 엄청난 스테디 셀러가 된 <, , >에서 원주민인 알리가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저자는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폭 넓은 조사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 , >를 쓰고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 , >에서 제시하는 민족과 국가 그리고 대륙의 경제적 번영 차이는 인종의 지적, 도덕적, 유전적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 차이 - 대륙 특성에 따른 식물의 확산, 가축화 가능한 동물, 전염성이 강한 세균, 교류 가능한 지리적 특성, 그리고 척박한 환경 내에 경쟁 등 - 에 있다는 것이다.

 

 

 

 

 

 

 

<, , >의 한계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 본 도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원제 - Why Nations Fail :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이다. 한 국가의 경제적 번영과 빈곤 그리고 더 나아가 멸망은 정치, 경제 제도가 좌우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본 도서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 , >의 오류를 지적하는 논리는 지리적 위치 가설로는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돼지와 소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조사한 바와는 달리, 현재 부자 국가가 많은 유라시아는 물론 빈곤한 북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살았다는 것이다. 또한, 보리와 밀은 이란에서 아프카니스탄에 걸쳐 키르키스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륙의 동식물 차이를 근거로 하는 <, , >의 이론으로는 다양한 국가의 경제적 불균형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스페인이 남미 대륙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스페인의 오랜 농경 역사와 그에 따르는 탁월한 기술(, ) 덕분이라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사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침략했을 당시만해도 두 국가의 국민 일인당 소득 차이는 두 배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으며, 오히려 현재 스페인과 잉카제국의 후손인 페루의 소득 격차가 여섯 배로 벌어진 이유를 <, , >는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 밖에도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지리적 천혜 자원이 더 많은 남미가 북미보다 왜 더 못사는지, 그리고 기술 발전의 요체인 산업혁명이 동유럽 국가가 아닌 하필 영국에서 왜 발생할 수 있었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등 오랜 세월 성장이 정체되어 있던 나라들이 근간 갑작스럽게 고속성장을 한 이유 등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 , >의 지리적 환경 이론의 한계를 제시한다.

 

 

 

 

 

저자들에 대해서

 

 

 

본 도서는 공동 저자인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15년 간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대런 애쓰모글루 현 MIT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경제학, 개발경제학, 경제성장, 소득불균형, 노동경제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제임스 A. 로빈슨 현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정치에 관한 세계적 전문가로 인정 받고 있다.

이 두 저자는 국가의 발전 이유를 제도라는 관점에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는 학제 간 연구를 하여 학계에서도 높은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정치야!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 ‘지금 발전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계속 번영할 수 있을까?’ 혹은, ‘지금 가난한 나라는 어떻게 하면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등 이러한 유사한 궁금증은 항상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이에 대해 저자들의 결론은 명료하다. 한 국가의 번영과 빈곤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 제도지만, 그 국가가 어떠한 경제 제도를 갖게 되는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고, 이러한 정치와 경제 제도가 상호 작용하면서 한 나라의 빈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번영을 이끄는 정치제도를 포용적 정치제도(Inclusive Political Institutions)라고 하고 있다. 포용적 정치 제도는 충분히 중앙집권화되어 있으면서도 권력이 고루 분배되고 서로 견제될 수 있는 다원적인 성격의 제도를 말하며, 두 조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아서 국민을 빈곤하게 하는 제도를 착취적 정치제도(Extractive Political Institutions)라고 하고 있다.

한편, 더 많은 일반 대중이 경제 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재능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며 개개인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는 경제 제도를 포용적 경제제도(Inclusive Economic Institutions)라고 하고, 반면 한 계층의 소득과 부를 착취해 다른 계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안된 제도를 착취적 경제제도(Extractive Economic Institutions)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심지어 발목을 잡는 착취적 정치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시행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제도의 선택, 즉 제도의 정치가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열쇠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국가의 착취적 제도가 지속되는 이유는 기득권 엘리트 집단이 자신들의 이권이 감소될 수 있다는 창조적 파괴의 공포 때문에 포용적 정치 및 경제제도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초에 한 국가의 정치, 경제 제도가 포용적 혹은 착취적 성향을 띠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아쉽게도 역사의 우연적 주요 사건()결정적 분기점이 되어 제도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차이가 쌓이다 보면제도적 부동(Institutional Drift)’ – 인종, 문화, 언어, 지리, 자원 등 다른 모든 면이 유사한 사회라 하더라도 정치적, 경제적 제도 때문에 서로 간극이 벌어지는 현상 - 과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도적 부동의 특성은 정해진 방향이 없고 반드시 축적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 세기를 거치며 두드러지기도 하고 때로는 중요한 국가의 빈부 차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모델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들은 잉카제국, 미국, 산업 혁명, 그리고 중국 등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잉카제국은 왜 멸망하였나?

 

 

 

500여 년 전만해도 지금의 페루 위치에 있던 잉카제국은 북아메리카의 작은 나라들보다 훨씬 더 부유하고 기술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스페인에 의해 식민지화 되는 과정에서 역사의 우연적 주요 사건들인 결정적 분기점과 착취적 제도 변화가 상호 작용하면서 잉카제국이 멸망하고 후손인 페루는 현재 빈곤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 분기점 측면에서 보면, 스페인이 잉카제국에 처음 왔을 때 노예화할 수 있는 원주민 수가 많았으며, 체제도 이미 중앙집권화된 착취적 국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스페인이 쉽게 잉카제국을 장악하고 대규모 원주민을 광산과 농장의 강제노동에 투입할 수 있는 착취적 제도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잉카제국을 장악한 스페인은 착취적 정치, 경제 제도 특성의 식민지화를 약 300년 간 유지하였고, 남미는 독립 후에도 이러한 착취적 정치 및 경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어 현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왜 강국이 되었는가?

 

 

 

반면, 비슷한 시기에 영국이 북미 대륙을 식민지화 하려고 했으나 현지 원주민들의 숫자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넓은 대륙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 노예화가 쉽지 않았다. 또한, 남미의 원주민들과 달리 북미의 원주민들은 노예화 되는 것에 크게 저항했다. 따라서, 북미의 초기 영국 정착민들은 영국인을 비롯해 대규모 유럽인들을 북미 대륙으로 이주시켰으나, 이주한 유럽인들은 초기 정착한 엘리트들의 통제 받기를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국 왕실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점차 확대하여 기존 엘리트층을 몰아내고 다원적 성격의 포용적 정치 제도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스페인이나 영국이 남미에 처음 갔을 때 원주민 수가 노예화하기에 적었거나 혹은 그 반대로 북미의 원주민 수가 많고 남미처럼 착취적 경제 체제였다면, 현재 페루와 미국의 경제 수준이 서로 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혁명은 왜 영국에서 발생했을까?

 

 

 

1346년에 시작된 유럽의 흑사병은 이듬해 터키,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프랑스에 창궐한 후 1348년 영국에 상륙했다. 결과는 처참했고 영국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

결정적 분기점인 흑사병으로 영국의 노동력이 급감하자 영주와 농노 관계의 착취적 봉건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많은 농노들은 자신들에게 부과되는 벌금과 부역을 대폭 줄여달라고 영주에게 요청하였고, 만일 새로운 계약을 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주장하였다. 영주들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농노들이 다른 영주를 찾아 떠날 것을 두려워하여 각종 노역의 부담을 경감해 주고 임금도 올려 주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영국 정부의 기득권층들은 제도와 임금 상승의 격변을 막고자 노력하였지만, 농노들은 농민 반란 등 끊임없이 저항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적 분기점이 향후 영국에 포용적 제도가 싹틀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동유럽에도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갔고 영국만큼의 인구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동유럽은 영국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양상이 전개되었다.

동유럽의 영주들은 노동력이 부족해 지자 농노들을 더욱 예속시키고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했다. 동유럽의 영주는 영국의 영주보다 조직적이었고 권리도 많았으며, 영지에 대한 지배력이 더 컸다. 반면 동유럽의 농노들은 영국의 농도들과 비교하여 권리와 자율성이 없었고 결집력도 약했다. 이런 작게 보게 보이는 역사의 결정적 분기점 차이가 오늘의 번영과 빈곤을 가르는 큰 차이로 제도적 부동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흑사병이 발생하기 이전 동서유럽의 정치, 경제적 제도 차이가 미미했으나, 그 후 300년이 지난 무렵에 동유럽은 착취적 정치와 경제 환경으로 되었으며, 국민의 소득도 극심한 격차를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흑사병을 계기로 소작농의 권한이 강화되었으며, 그 후 1688년에 획기적인 명예혁명 사건이 발생했다. 명예혁명으로 왕과 가신의 권한은 약화되고 경제제도를 결정할 권한은 의회에 귀속되었다. 의회는 특허권 등 투자와 거래, 혁신을 꾀할 수 있는 경제제도를 채택했다. 따라서, 영국은 이러한 토대를 기반으로 산업 혁명에 불을 지피는 포용적 정치, 경제 체계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계속 번영할까?

 

 

 

저자들은 착취적 성향의 정치, 경제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성장은 가능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포용적 제도가 가져다 주는 성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착취적 제도하의 상장은 기술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성장이 아니라 기존 기술에 바탕을 둔 성장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에는 창조적 파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착취적 제도를 향유하는 기존 엘리트 계층은 본인들의 이권 때문에 항상 창조적 파괴에 심하게 저항한다는 것이다.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소련을 들고 있다. 소련은 1928년에서 1960년까지 국민소득이 연간 6퍼센트씩 성장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 조차도 1961년에소련의 국민소득은 1984년 정도가 되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을 정도라고 하고 있다. 소련이 지속 가능하게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포용적 정치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창조적 파괴가 있어야 했지만, 기득권 층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결국 성장의 한계를 가져 왔다는 것이다.

소련과 유사하게 착취적 제도하에 일정 기간 성장이 가능하지만 늘 태생적인 한계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추가 사례로 콩고, 중국, 북한 등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요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중국의 경제 성장을 대단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소련이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이 한창일 때 대단해 보였던 것과 같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공산당 통치하에 있기 때문에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을 경험하는 또 다른 사례일 뿐이며, 포용적 정치제도를 향한 근본적인 정치 변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저자들은 단언한다.

 

 

 

이 책의 놀라운 점 중 하나는 저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지구 상 거의 모든 나라의 역사와 사례를 연구한 듯 하다. 또한, 이 책을 읽은 후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일한 자문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 과연 우리나라는 향후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까? 현재 상당 기간 동안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약 2만 달러에 정체되어 있는 이유가 경제가 아닌 정치 때문은 아닐까? 우리나라에 포용적 정치 및 경제 제도를 잉태한 결정적 분기점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중대한 사건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발생조차 하지 않았는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떠오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