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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문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곳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감옥이다. 네바강이 발트해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밀물 때는 수위가 높아지는데, 일부러 물에 잠기도록 만든 감방에 한 여인이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의 이름은 타라카노바(Tarakanova)로 결국 감옥 안에서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엘리자베타 여제의 사생아인 타라카노바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나서자 예카테리나 2세가 그녀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밀물 때면 물이 흘러드는 감옥이었는데, 그해에는 바닷물의 수위가 특히 높아져 타라카노바는 감옥 안에서 익사했다고 전해진다. 혹은 익사하기 전에 폐렴으로 죽었다고도 전해진다.


2.
이 그림이 그려진 19세기의 러시아는 무능한 황제와 부패한 귀족들로 인해 민중의 삶은 극도로 궁핍했다. 현재 예수가 있는 황야는 당시 민중들의 삶의 터전과 닮아 있고, 남루하고 초췌한 예수의 모습은 민중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어쩌면 이 그림은 러시아 사회에 던진 마지막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현재 민중은 ‘황야의 그리스도’처럼 극단적인 가난과 굶주림에 놓여 있다는 경고, 만약 그들의 삶을 지금 돌보지 않는다면 그들을 유혹하는 세력이 생겨날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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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그림은 “미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인식 자체를 뒤흔든 사건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하나의 해석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원근법적 인간 사고가 여러 개의 해석도 가능하다는 다원적인 사고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근법과 음영 등의 기법은 평면에 불과한 캔버스에 마치 입체의 조각이 새겨지거나 깊은 동공이 파인 듯한 효과를 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속임이고 거짓일 뿐이다. 그냥 얇은 종잇장에 불과한 평면 위에 마치 현실처럼 전개되는 3차원 세계는 하지만 실재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가상이다. 우리가 거기서 3차원적 부피와 깊이를 느끼는 것은 우리 환상일 뿐이다. 마네는 이런 거짓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얇은 평면에는 깊이도 있을 수 없고, 조명이 들어갈 여지도 없다. <올랭피아>와 같은 작품은 마네가 온갖 야유와 욕설을 들어가면서 그렸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낯선 그림이다.

 

 

 

 

<올랭피아> 나체화 속의 꽃다발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꽃과 같은 정물화는 정식 그림보다 한 단계 낮은 부차적인 그림으로 여겨졌는데, 그런 하찮은 소재가 고대 화가들의 이상적인 그림인 누드화와 대등하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비평가 토르는 ‘여인의 얼굴보다 꽃을 더 중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게다가 마네가 그리고자 했던 그림은 문학에 종속되지 않은 그림, 한 마디로 있는 그대로의 그림이다. 그림을 서사성에 종속시키는 것은 회화의 자율성을 해치는 요인이 된다.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고 죽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렸다면 그 그림은 원래 언어로 되어 있는 내용을 단지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림이라는 수단을 이용했을 뿐이다. 회화 자체 목적은 사라지고 문학에 종속된 화면만 남는다. 그림이 뭔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언어적인 기능이다. 결국 미술은 문학에 종속되고, 그림 자체보다는 주제가 더 중요하게 된다. 마네는 무언가를 말하는 회화가 아닌 ‘회화의 침묵’을 원했다.

 

 

마네는 읽는 회화를 볼 수 있는 회화로 대체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그가 그린 인물의 자세는 뭔가를 의미하지 않고, 몸짓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구도는 그 어떤 스토리에 봉사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이래 회화는 실용성이나, 군주 혹은 교회에 너무 많이 봉사했다. 하지만 예술은 합리적 이론이나 앎으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라 그냥 뭔지 알 수 없는 황홀한 법열의 순간일 뿐이다. 예술은 오만하고 지성적인 학자가 논하는 합리적 이론의 세계, 앎의 세계가 아니다. 마네와 함께 회화는 알레고리(우화)가 되기를 그쳤다. 오랫동안 감동으로 교훈과 즐거움을 주는 것이 회화 임무로 여겨졌었다. 정념은 회화의 주제만이 아니라 그 목적성 자체였다. 그림은 관객 영혼을 움직여야 하고, 감정이 생겨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벙어리처럼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는 그림 앞에 섰을 때 관객들은 실망하고 분노했다. 바타이유가 보기에 이것이 ‘마네 스캔들의 진실’이었다.

 

 

 

 

 

회화에 적용된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 과학 지식이 미술에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당대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이기도 했다. 원천적으로 모든 시대 미술은 언제나 그 시대 인식론과 궤를 같이 한다.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 시 지각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인문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안된 원근법은 세계를 주체에서 분리시키고 대상화하는 실증적 과학 정신과 일치한다.

 

 

원근법적 사고는 인간이 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장악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원근법에는 바라보는 주체와 바라보이는 대상이 있다. 인간과 세계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설정되고, 인간은 주체, 세계는 대상으로 규정된다. 이와 같은 공간적 거리와 대상화 방식을 통해 르네상스 이후 근대까지의 서양 학문이 탄생했다. 철저한 객관성과 실증성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서양 학문은 인간을 절대적 주체로 상정하고 대상을 부동의 것으로 고립, 고정시킨 후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부동의 자세로 꼼짝 않고 얼어붙어 있는 대상이 아니다. 모든 대상은 보는 사람 각도에 따라 얼마든지 위치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최근 금융 위기에서 허둥지둥 대응하는 전문가들이나 당황스럽게 사후 진단을 내리는 학자들을 보고, 정교한 경제학 논리, 더 나아가 모든 학문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인지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인식 대상은 생명체와 같이 매 순간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물인데, 마치 불변의 사물인양 견고하게 고정시켜 연구하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 소위 모든 학문의 이론이기 때문이다. 탈근대적인 현대 사회에서 물질세계는 더 이상 원근법적 세계의 견고성을 갖지 못한다. 세계는 유동적이고, 주체인 우리 자신 자리도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유일하게 고정된 하나의 중심이 사라지고, 그 중심을 차지하는 것도 더 이상 주체가 아니다.

 

 

철학과 회화에서 동일하게 진행되고 있는 주체에 대한 회의, 그 출발선상에 마네가 있다. 그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을 해체하고 미술에 자율성을 도입함으로써 현대의 비재현적 회화의 길을 열어 주었을 뿐 아니라, 포스트 모던적 인식의 가능성도 열어주었다. 마네의 위대성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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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8-12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갈릴레오가 과학을 신학에서 독립시켰다면, 마네는 미술을 문학을 독립시켰음을 북다이제스터님 덕분에 배워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8-13 08:58   좋아요 1 | URL
네, 저는 피카소 그림의 시작이 세잔인 줄 알았는데, 마네란 걸 처음 알았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8-13 09:45   좋아요 1 | URL
세잔도 있었군요...ㅜㅜ 미술 공부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듭니다.^^:)
 
러시아 미술사 - 위대한 유토피아의 꿈
이진숙 지음 / 민음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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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동양인들에게는 서방이지만 서유럽인에게는 동방인 나라. 러시아 역사가 숨 막힐 듯 격변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동안, 러시아인들은 스스로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했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러시아 문화를 ‘성(聖)과 속(俗)의 대립’이라고 요약했다. 러시아 정교 전통에 근거한 러시아는 성을, 서유럽화된 러시아는 속을 의미한다. 이 두 요소는 사상적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슬라브주의)과 서유럽 전통(서구주의)의 대립과 충돌이며, 러시아 정신 세계를 이룬다.

 

 

러시아 문화 천 년은 러시아인들이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 가는 과정이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인 삶이란 ‘진실하게 사는 것 혹은 더욱 중요한 점은 러시아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지식인과 문화 예술인 모두 이 열망에 충실하게 반응했다. ‘삶과 미술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러시아 미술 자체의 내재적 속성이다. 러시아 미술 작가들이 그토록 미술에 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삶’ 자체였다.

 

 

우리가 컴퓨터 아이콘(icon)을 ‘그림’이라고 여기지 않듯이 중세 러시아 사람들도 이콘(icon)화를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 모습이 저절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조그만 교회와 농부 오두막집, 귀족 저택, 차르 궁전에 이르기까지 ‘크리스느이 우골’(아름다운 모서리)이라 불리는 집 안 동편에 이콘화와 촛대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늘 기도를 했다.

 

 

<블라드미르의 성모> 콘스탄티노플 화파, 12세기 초, 목판에 템페라, 트레타야코프 미술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은 숱하게 많지만, <블라드미르의 성모>처럼 이런 슬픔을 담은 그림은 거의 없다. 아기 예수는 이제 막 걸음마를 할 나이지만, 성모는 사랑하는 아들이 서른셋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역사가 이미 이루어졌고, 그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중세 예정론적 사고의 표현이다.

 

 

 <손으로 그리지 않은 구세주> 노브고로트 화파, 12세기 후반, 목판에 템페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우리의 구세주> 안드레이 루블료프, 1410년경, 목판에 템페라,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끊임없는 전쟁과 질병, 가난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중세인에게 세상은 종말이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심판의 날에 예수가 세상 불의를 벌하고 의인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은 세상 지배자이자 심판자로서의 예수, 분노하는 예수 상을 만들어 냈다. 예수 분노는 바로 중세 사회의 총체적 위기 징후다. 세상이 순탄해지면 예수 표정도 부드럽게 바뀐다.

 

 

<예카테리나 2세> 드미트리 레비츠키, 1783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미술관

 

 

정통성 문제를 고민한 군주들 구미에 맞는 미술 사조가 바로 고전주의다. 고전주의 주인공은 이상화된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왕위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편법으로 왕조에 오른 나폴레옹이나 예카테리나 2세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이러한 미화하는 이상화 작업은 정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었다.

 

 

<마리아 로푸히나의 초상> 블라디미르 보로비코프키, 1797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루이 16세를 처형한 프랑스 혁명은 유럽 모든 군주를 긴장시켰다. 계몽주의는 가장 위험한 사상이 되었고, 정치적 배경이 삭제된 계몽주의적 인물은 ‘개인’으로 남게 되고 정치적 출구가 막힌 계몽주의는 감상주의로 변질된다. 문명 이전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주장하는 루소적 인간은 자기 내면 성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 감정적 정조는 바로 감상주의다.

 


그림 속 여인 배경은 신비로운 자연이다. 이렇게 초상화 배경에 부드럽게 표현된 자연을 삽입하는 것은 일반적인 고전주의 양식에서는 볼 수 없는, 브로비코프스키만의 독특한 테크닉이다. 올리브 색과 라일라 색, 진주 빛이 도는 은색은 특유의 평화롭고 섬세한, 마치 ‘탈콤한 꿈’ 같은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마치 먼 옛날부터 숲 속에 살았던 님프처럼 신비롭다.

 


약간 기댄 듯한 흐트러진 자세,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듯 직시하는 눈빛은 일반적인 고전주의 초상화와는 다르다. 작가는 그녀 내면에 깃든 본질, 즉 문명 세례를 받지 않은 ‘영원한 여성’을 우리 앞에서 조용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영원한 여성’은 19세기 러시아 귀족과 농노 대립이라는 사회적 모순을 뒤로하고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던 태초 순수한 자연 속으로 돌아가 평온을 되찾고 있다.

 

 

<낚시꾼> 그리고리 소로카, 18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미술관

 

 

그림 <낚시꾼>은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지만, 분위기는 얼음처럼 고요하다. 소로카 세계는 햇살이 비추나 빛은 일렁이지 않고, 강물은 흐르나 물결이 없다. 고요를 넘어 질식할 것 같은 적막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유리처럼 투명하고 단단한 무언가에 갇혀 있는 폐쇄된 공간이다.

 


막막한 느낌을 소로카는 평생 느꼈을지 모른다. 소로카는 농노였고 그의 주인은 결코 그를 해방시켜 주지 않았다. 1864년 소로카는 지역 농민 해방 운동에 연루되어 무거운 형벌을 받는다.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지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림 속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단절감은 소로카가 농노제라는 비인간적인 제도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소령의 구혼> 파벨 페도토프, 1851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림 맨 오른쪽 거만한 자세의 콧수염 난 사내가 소령이다. 그보다 한발 앞서 방으로 들어간 붉은 옷의 여인은 매파로, 늙은 남자에게 소령이 왔음을 알린다. 늙은 남자는 화면 가운데 고개를 돌리고 뛰어나가는 아가씨의 아버지다. 소령은 지금 구혼을 하러 이 집에 방문했다. 그런데 아가씨는 청혼을 거부하고 뛰어나간다. 왜?

 


매파 손의 돈주머니, 그것은 이 결혼이 가난한 귀족 가문과 작위 없는 부유한 상인 가문의 결혼, 즉 당시 유행하던 거래 결혼이었다. 교육받은 미모의 아가씨는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 감상주의 소설에 나오는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 철부지 아가씨에게 다가온 사랑은 너무나 세속적이고 건조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상황을 외면한다. 아가씨 어머니가 단호한 표정으로 딸 옷자락을 잡고 만류하는데, 그리 교양 있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발 앞에 떨어진 손수건 한 장, 이 순간에도 아가씨는 ‘낭만’을 잊지 않았다. 아가씨가 문을 쾅 닫고 제 방에 들어가 버려도 소령은 유유히 손수건을 집어 그녀에게 전하리라. 그림 속 인물들은 무엇보다 행동으로 심리를 표현하여 마치 눈앞에서 연극 한 편이 펼쳐지는 듯하다.

 


페도토프의 <소령의 구혼>은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가장 보기 힘든 그림이다. 크기도 별로 크지 않은 데다 꼼꼼한 묘사를 즐기려면 그림에 바짝 붙어 봐야 하기에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가벼운 몸싸움을 하더라도 반드시 봐야 할 작품이다. 페도토프의 인물들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 문제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이 모순을 의식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순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이점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웃음이 생긴다. 웃고 있지만 단순히 웃을 수만 없는 것이 민중 삶이다. 민중은 행복하지 않지만, 페도토프는 그 불행 앞에서 날카롭게 웃게 한다.

 

 

<미지의 여인> 이반 크람스코이, 1883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림 속 여인은 마차 위에서 관람자를 내려다본다. 그림을 어느 높이에 걸든 그녀가 내려다보기에 우리는 경외심을 갖고 올려다볼 수밖에 없다. 차가운 표정의 여인은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전형적인 러시아 미인이다. 그녀는 경멸하는 듯 유혹하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 아름다움과 카리스마에 설레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녀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추측만 나돌았다. 그녀는 바로 톨스토이 소설 여주인공 안나 카레리나다. 안나가 브론스키와 처음 사랑을 교감할 때 검정 벨벳 드레스 차림이었다. 마차에 탄 안나는 브론스키가 기다리는 파티장으로 가는 길인지 모른다. 그 길 끝에는 지독한 운명적인 사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 니콜라이 게, 1863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미술관

 

 

일반적으로 유다 행동은 ‘배신’으로 불린다. 배신이란 어느 한 편의 분명한 정당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니콜라이 게는 독특하게 ‘배신 문제’를 ‘대립과 균열 문제’로 바꿔 버린다. 게의 그림 <최후의 만찬> 속에서 유다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가 외투를 걸치는 모습은 거대한 실루엣으로 표현되어 관람자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예수는 자기 앞에 놓인 운명에 침통해하고 있다.

 


유다의 검은 그림자가 일으킨 화면 균열은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균열이라는 ‘라스콜’에서 유래)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불의한 현실을 단죄하고자 다시 불의를 범한다는 점에서 라스콜리니코프와 유다는 닮았다. 놀랍게도 게의 <최후의 만찬>은 지난 토스토예프스키 소설이 씌어지기 3년 전에 그려졌다.

 

 

<진리란 무엇인가?> 니콜라이 게, 1890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그림에서 빌라도는 예수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 기름진 풍채의 빌라도는 세속 논리를 대변하고 매마른 육체의 예수는 정신적 논리를 주장하는 모습이다.

 


진리는 현실에서 결코 단선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진리에 헌신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득권 유지와 자기 헌신 사이 갈등은 당시 모든 지식인의 고민이었다. 그들은 진정 알고 싶었다. ‘진리란 무엇인가?’

 

 

<수확기> 그리고리 마소예도프, 1887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19세기 러시아 농노제 폐기법은 농노를 법적으로 없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진 못했다. 토지 가격이 너무 비싸 토지를 매입할 수 없었던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개혁에 반감을 가진 지주들은 높은 소작료와 임대료를 받아 챙겼다. 러시아 농노제 폐지가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발달이 지체되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가난한 민중들이 일할 곳은 없었다. 그런데 또 한편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지체한 것은 바로 농노제라는 강고한 틀이었다.

 

 

<청강생> 니콜라이 야로센코, 1883년,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미술관

 

 

1880년대 초기 야로센코는 좌파 진형의 진보적인 젊은 학생들을 그렸다. 열정과 패기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서 헌신하는 새로운 부류의 인물을 그린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 모습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이 화가 몫이라고 생각했다.

 


<청강생>은 신선함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러시아 소설에 흔히 나오는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소박한 학생복을 입고 있지만, 결코 그녀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와 젊음을 억누르지 못한다. 수줍은 듯 표정에서 세상에 대한 낙관과 긍정이 담겨 있다. 무릎 위 가지런히 모든 두 손은 얼굴보다 더 크다. 두 손은 헌신과 신뢰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젊음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겸손과 자신이 헌신할 수 있는 열정이다. 그들은 그 손으로 새로운 조국을 건설할 것이다.

 

 

<앉아 있는 악마> 미하일 브루벨, 1890년, 캔버스에 유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은 시각 예술인 미술에 어떤 문학적, 철학적, 사회적 내용도 담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러시아 화가들은 인상주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인상주의 형식이 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러시아 작가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명백했다. 러시아의 비민주적인 상황은 작가들이 그림 형식이 아닌 내용에 골몰하게 만들었다. 러시아와 서유럽 미술의 발전 경로가 달라지는 지점은 ‘이동파’의 등장과 더불어서다. 파리 작가들이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햇빛 찬란한 야외로 나가 인상주의자들이 되었을 때 러시아 작가들은 캔버스와 화구를 들고 민중 삶으로 들어가 이동파가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 풍경화에서는 나무와 숲 냄새 사이로 사람 냄새가 짙게 배어 나온다.

 


이렇듯 미하일 브루벨도 인상주의가 아닌 상징주의 작가다. 그림에서 산등성이에 앉아 서글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상념에 잠겨 있는 그림 속 아름다운 청년은 악마다. 그는 대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 속에서 길을 잃고 돌산 위 잠시 머물러 있다. 천사를 추방하여 악마로 만든 것은 바로 세계 모순과 부조화다. 이 악마는 순수한 악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선과 악이 대립하는 구역질 나는 현실 한계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영웅적인 반항아다.

 


악마는 상징주의와 아르 누보 양식에서 유행했던 테마다. 19세기 말 급속한 산업화와 현대화는 무덤 속에 있던 ‘데카당스(퇴폐주의)’라는 용어를 부활시켰다. 데카당들은 기존 가치 체계를 전도시켰다. 악마는 세계 모순을 사색하고, 연약한 여인들은 남자를 서슴없이 죽이고 매혹적인 웃음을 짓는 팜므 파탈이 되었다.

 


미하일 브루벨이 형상화한 악마 얼굴은 시대를 통찰하는 영혼의 어두운 고통, 비극적 세계에 대한 가슴 아픈 연민과 반항심이 담겨 있다. 악마 발밑에 있는 꽃 더미는 값비싼 돌로 만들어진 모자이크처럼 투명하면서도 혼란스럽고 마법적인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리듬에는 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공존한다. 작가는 칼 모양의 주걱으로 꾹꾹 누르듯이 그려서 특유의 크리스탈 결정 같은 필법을 만들어 냈다. 그가 그린 사물들은 마치 값비싼 모자이크처럼 투명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과 역동적인 리듬을 갖게 되었다.

 

 

<여동생과 함께 있는 자화상> 빅토르 보리소프무사토프, 1898년, 캔버스에 템페라와 유채, 러시아 미술관

 

 

상징주의는 비속한 현실을 넘어서는 숨겨진 세계의 비밀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보리소프무사토프 역시 미하일 부르벨처럼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울증은 예민한 예술가들이 진부하고 천박한 현실 잔혹함 앞에서 느끼는 정서 반응이다. 그는 ‘철의 시대’의 더럽고 비루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

 


비극적인 파토스에 휩싸여 있던 브루벨 세계는 격렬한 고통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브루벨이 절망한 그곳에서 보리소프무사토프는 조용히 슬픔을 열어 보인다. 그는 여성들에게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조화에 대한 꿈’을 이루고자 했다. 잔혹한 현실은 남자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칸단스키에 따르면 물질주의 악몽이 영혼을 억압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예술은 각각 형식이 외적으로는 다르게 보일지라도 동일 목적에 종사한다. 인간 영혼을 감동시키고 정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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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활동이 예술이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아름답거나 장엄한 형태로 표현해 내는 것이 예술인 것이다. "

 

 

 <성 테레사의 환희> 잔 로렌초 베르니니, 1652년, 대리석,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성 테레사의 환희>는 “주님의 한 천사가 황금으로 된 뜨거운 화살로 성 테레사 심장을 꿰뚫자 아픔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로 충만함을 느낀” 것을 표현했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천사와 성녀가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물론 취향과 교육 문제이므로 시비를 가리는 논란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 작품 이야기는 바로크 미술가들이 의도하는 열렬한 환희와 신비스러운 황홀경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온당하게 사용되었다. 베르니니는 의도적으로 이전 미술가들이 피했던 감정의 극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때까지 미술 영역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표정의 격렬함이 표현되었다.” <서양미술사>(곰브리치, 예경, 2003)

 

 

 

 

 

 

 

 

 

 

 

 

 

 

"그래서 예술을 접하면 태곳적 여자가 남자에게 불러일으켰던, 혹은 남자가 여자에게 불러일으켰던 모종의 기쁨이 되살아난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장신구와 옷가지 하나하나, 우아하고 균형 잡힌 그녀 자태를 떠오르게 하는 모양새와 동작 하나하나 모두가 아름다워 보인다."

 

 

<미술의 기원: 양치기의 그림자를 더듬어가는 디부타데스> 장바티스트 르노, 1786년

 

 

그림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데 필요하다. "부드러운 저녁 하늘은 연인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음을 암시한다. 여자는 남자가 떠났을 때 자신 마음속에 남자를 더 선명하고 더 강하게 붙잡아 두기 위해 실루엣을 벽에 기억으로 남긴다."<영혼의 미술관>(알랭 드 보통, 문학동네, 2013)

 

 

 

 

 

 

 

 

 

 

 

 

 

 

 

 

"또 동경하는 남자 모습에서 미적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약자로 하여금 강인함을 숭배하게 만드는 남자 매력에서 바로 힘의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장엄미가 나오고,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 웅장한 예술을 이룩해 낸다."

 

 

 <성 게오르기우스> 도니텔로, 1416년경, 대리석상, 피렌체 바르젤로 국립 미술관

 

 

“<성 게오르기우스>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결심을 한 사람처럼 두 다리로 땅을 굳건히 딛고 당당히 서 있다. 얼굴은 활력과 집중력이 넘친다. 조각상에 젊음의 혈기와 용기가 매우 탁월하게 표현되어 지금까지 언급될 정도로 유명하다. 또한, 조각 예술의 전체적인 접근법에서도 완전히 새로운 착상을 보인다. 두 손이나 눈썹 세부 묘사는 전통적인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인체 실제 모습을 참신하게 보여준다." <서양미술사>(곰브리치, 예경, 2003)

 

 

"원시 사회에 미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면, 그건 당시엔 성적 욕구가 생기면 지체 없이 바로 충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상당 부분이 상상력에서 비롯되는데, 성적 대상을 상상력으로 미화시킬 틈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다."

 

 

 <카라와 나체> 디에고 리베라, 1944년, 검은 판에 유채

 


“디에고 리베라에게 여체 탐구는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고갱이나 마티스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는 여인과의 쾌락을 통한 자기확인이 필요했고, 지속적인 육체적 접촉이 필요했다. 여체의 아름다움, 모델들의 아름다움은 격렬한 생명의 상징이며, 머릿속 이념들과 지성의 무력함에 맞서는 현실적인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그의 그림은 쾌락과 생명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표현하고 있으며, 남성에 속한 죽음과 전쟁의 본능에 대립해서 빛을 발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여인 육체에서 자신의 그림을 위한 모든 형태를 끌어냈다. 마티스나 세잔처럼 그는 동그스름한 모양과 몹시 부드러운 윤곽 속에서 균형을 찾고자 했다. 똬리를 튼 것 같은 여인들의 형체는 전쟁이나 가난한 자의들의 예속, 강자의 사악함을 순화시켜 준다. 그 곡선은 과일의 모양을 닮았고, 대지의 꿈틀대는 창조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떤 화가도 그처럼 강한 신념으로 남성과 여성, 전쟁과 사랑, 태양과 달의 힘 사이에 작용하는 상호보완성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르 클레지오, 다빈치, 2011)

 

 

 

 

 

 

 

 

 

 

 

 

 

 

 

"예술엔 삶의 의미를 포착한 생각이면 모두, 삶의 긴장을 일깨우거나 풀어 주는 느낌이면 모두 담길 수 있다. 또 예술 형식에는 리듬이 있어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 교대로 들고 나는 우리의 숨소리, 심장 박동에 맟춰 흐르는 피, 겨울과 여름, 밀물과 썰물, 밤과 낮의 웅장한 뒤바뀜과 딱 맞아떨어지는 리듬 말이다."

 

 

 <선원들> 게하르트 리히터

 


리히터의 그림 <선원들>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분해되어 흘러가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 외모도, 인생도, 친구 관계도 끊임없이 변한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리히터 그림이 주목받는 이유는 ‘살아 있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의 추상화엔 수직적 힘과 수평적 힘이 교차한다. 수평선과 수직선을 통해 그림 형태와 색이 분할될 뿐 아니라 시간도 분해되어 흘러간다. 상하를 가르는 수직선은 뭔가 변하지 않는 형상을 나타내는 듯하다. 좌우로 흐르는 수평선들은 흘러가는 시간의 순간성과 덧없음을 표현한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김형태, 문학동네, 2016)

 

 

 

 

 

 

 

 

 

 

 

 

 

 

 

"균형미는 강인한 힘을 대변하며, 균형미 하면 식물과 동물 그리고 여자와 남자의 질서 잡힌 조화가 떠오른다. 또 색을 통해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색은 심기를 밝게 해 주고 생명력을 키워 주는 요소다."

 

 

 얀 페르메이르, <우유 따르는 하녀>(1660)

 

 

네덜란드 작가 얀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1660)에서 "압도하는 색은 앞치마와 식탁보 위에 쓰인 선명한 울트라마린 블루다. 울트라마린 불루는 준보석인 청금석에서만 구해지는 값비싼 안료로, 성화나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그릴 때만 사용되는 재료였지만, 화가는 이 소박한 장면을 위해 눈부신 울트라마린 블루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가장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은 이렇게 가장 위대한 것이 되었다." 페르메이르는 평범함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당시 "17세기 네덜란드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신교와 구교의 갈등을 종식하고 모든 다양성의 공존을 인정하는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 네덜란드에서는 시민이 사회의 주역이었다."<시대를 훔친 미술>(이진숙, 민음사, 2015)

 

 

 

 

 

 

 

 

 

 

 

 

 

 

 

"예술은 자연이나 현실을 손에 잡힐 듯 있는 그대로 그려 내 식물이나 동물의 기막히게 사랑스러운 순간이나, 순간순간 덧없이 변하는 상황의 의미를 포착해, 우리가 오래도록 즐기고 느긋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만히 붙들고 있다."

 

 

<아이의 얼굴> 페터 파울 루벤스, 캔버스에 유채, 파두츠 리히텐슈타인 왕실 소장품

 

 

“루벤스는 자신 손길이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당장 생기를 띠게 된다고 확신했는데 사실상 그의 생각이 옳았다. 그것이 루벤스 예술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구도상 복잡한 기교가 없으며 화려한 의상이나 흘러내리는 빛도 없는 단순한 소녀의 정면 초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맥박이 고동치는 듯하다. 그림의 생기발랄한 생명력은, 분석이 부실 없기는 하지만, 아마 입술의 물기를 암시하는 얼굴과 머리카락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한 대담하고 섬세한 빛의 효과가 분명 관계 있을 듯싶다. 그림 입체감은 채색 소묘의 표현 때문이 아니라 ‘회화적인’ 수단으로 생겨난 것이며, 그 점이 생명력과 활력 느낌을 더욱 강조해 주는 것이다.”<서양미술사>(곰브리치, 예경,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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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8-15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가 구도, 색채, 명암, 알레고리 등을 사용해서 자신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는 방식을 보면, 작은 방식의 차이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맛을 전해준다 여겨집니다. 덕분에, 감상에는 더 많은 공부가 요구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8-08-15 10:13   좋아요 1 | URL
네 좀 알고보면 좀 다르게 보이는 듯 합니다. ^^
 

 

 

 

 

 

 

 

 

 

 

 

 

 

 


진정한 의미의 작품 감상은 누구도 던지지 않았던 새로운 물음들을 생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하는 능력인 것처럼, 의제를 처음으로 ‘설정’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작품 독해는 그저 남이 이미 읽은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늘 새로운 물음, 새로운 해석으로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들어야 한다. 작품은 작가와 독자의 공동 창작물이다. 창조적이어야 할 것은 작가만이 아니다. 독자 역시 창조적이어야 한다.

 

 

작품을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 오직 보는 이 혼자만이 느끼는 절대적으로 ‘개별적’인 효과를 몰랑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 했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표준적 해석만 끼워 넣을 경우, 이 해석의 필터가 외려 작품에 대한 생산적 독해를 가로막을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작품에 대해 자신만의 고독하고 개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석의 제거> 히에로니무스 보슈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우석의 제거>는 환자 머릿속에서 ‘바보의 돌’을 제거하여 환자의 광기를 치료하는 장면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우라는 증상이 뇌 속에 박혀 있는 ‘어리석은 돌’에서 비롯되었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 속설은 어쩌면 문학적 대구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이 있다고 믿었다. 평범한 물질을 금으로 바꾸어주고, 늙은이를 젊은이로 되돌려주는 이 돌을 찾아내는 것이 연금술의 목표이기도 했다. ‘현자의 돌’이 있다면, ‘우자의 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광기를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도덕주의적이었다. 중세인은 광기를 객관적인 세계의 힘으로, 다시 말하면 사탄의 역사로 이해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광기를 인간의 주관적 속성으로, 즉 ‘인간이 자신과 맺는 관계’로 보았다. 그들에게 광기란 이성과 덕행을 통해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만 하는 인간적 악덕일 뿐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의 휴머니즘적 특성이 드러난다.

 

 

르네상스의 인간들이 신을 향하던 눈을 자신에게 돌렸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인간 내면의 야수성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갑자기 광우가 문학과 예술의 주제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광기를 대하는 태도이다. 인문주의자들의 텍스트는 인간의 광기에 화들짝 놀라 그것을 서둘러 이성의 지배 아래 도덕적으로 가두려 한다.

 

 

하지만 무엇이 광기이고, 무엇이 이성인가? 우리 눈에는 저 무지막지한 제거 수술 자체가 또 하나의 광기로 보일 뿐이다.

 

<염세가> 피터르 브뤼헐

 

 

작품 <염세가> 하단에 피터르 브뤼헐은 ‘세상이 배신하였기에, 나는 비탄에 들어간다’라고 적었다. 그림처럼 진정한 풍자는 세상 모든 것을 거쳐 마침내 자신까지 비웃을 때에 비로소 완성된다. 염세가를 조롱하는 듯 뒤에서 허튼 수작을 하는 사내를 통해 브위헐은 염세가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다. 브뤼헐이 보는 세상은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풍자한다. 하지만 자신의 풍자가 세상을 바꾸어놓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섣불리 세상을 바꿔놓으려는 노력은 외려 세상을 재앙으로 몰아넣을 뿐이다. 그는 이 뒤집힌 세계를, 그것의 부조리함, 그것의 불합리함을 있는 그대로, 주어진 사실로 받아들이려 한다. 부조리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 조건이 아닌가?

 

<교수대 위의 까지> 일부, 피터르 브뤼헐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브뤼헐은 투시법을 교묘히 이용하여 교수대를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형태로 그려놓았다. 이것이 이른바 ‘불가능한 형태’(impossible figure)가 미술사에 최초로 등장한 예이다. 에셔보다 수 백 년이 앞서는 셈이다. 교수대는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 자체가 부조리한 형상인 셈이다. 이 세상 역시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부조리한 교수대야말로 브뤼헐이 바라본 세계 자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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