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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그 특유의 추상성 때문에 한 번에 다양한 물리 현상을 기술할 수 있다. 예컨대 물결과 음파, 전파 모두 파동 방정식이라는 편미분 방정식 하나로 기술된다. 애초에 물결 연구에서 얻은 파동 방정식 자체를 연구하여 추가로 얻어 낸 수학 지식은, 예컨대 전파 연구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실제 세계의 문제들에 자극받아 만들어진 풍성한 연구 성과는 상이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수학 구조가 있음을 깨달을 때 더욱더 강화되고 그 의미 또한 분명해진다.

 

 

하지만 과학 문제들은 완벽하게 해명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욱 나은 근삿값이 얻어질 뿐 최종 해답은 얻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3체 문제(태양과 지구, 달과 같이 세 물체의 인력이 서로 작용할 때 운동을 기술하는 문제)와 같은 기본 문제도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다. 베이컨이 지적했듯 자연의 정교함은 인간의 꾀를 훨씬 더 넘어선다.

 

 

그렇다면 유일하고 엄밀한 논리적 구조가 아니라면 수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수학이란 사람들이 언제라도 기꺼이 적용할 만한 논리를 통해 면밀하게 걸러지고 정제되고 또 조직화된 일련의 뛰어난 직관적 지식이다. 하지만 수학이 의지하고 있는 직관적 지식은 인간의 감각 기관, 두뇌, 외부 세계 등의 산물이다. 수학은 결함 많은 인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고, 따라서 완벽한 기초를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학은 직관의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다. 그리고 직관의 발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종적 증명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 증명을 수정하여 나온 새로운 증명이 최종 증명이라고 착각할 뿐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수학자들은 실제 그렇게 엄밀한 증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증명, 절대적 엄밀성 등은 ‘수학 세계 속에 거처를 두고 있지 않은’ 허깨비이자 이상적 개념이다. 엄밀성을 엄밀하게 정의할 도리란 없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준이란 없다. 공리를 포함한 논리학에는 인간 사고에 제약을 가하는 온갖 오류와 불확실성이 담겨있다. 우리가 수학을 연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얼마나 많은 가정을 했는지 깨닫는다면 놀라움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수학이 높은 위상을 점하고 있는 것은 수학 명제가 여타 과학 명제에 비해 훨씬 더 폭넓게 검증되고 확인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사람들은 수학 정리가 여타 과학 분야의 가설 및 이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잘못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수학 정리는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자연과학 이론은 개연성이 높을 뿐이거나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푸앙카레는 ‘해결된 문제란 없으며 단지 어느 정도 해결된 문제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절대적 증명이란 현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목표, 하지만 결코 획득할 수 없는 목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계속 쫓아가도 잡히지 않는 환영에 불과하다. 완벽하게 증명하겠다는 기대를 버리고 대신 현재의 것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증명과 관련된 역사를 살펴보면 설사 얻을 수 없는 목표를 추구해도 여전히 가치 있는 것을 얻기도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학을 바라보는 태도를 재조정함으로써 우리 환멸감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갖고 수학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수학은 사고 활동이지 엄밀한 지식 체계가 아니다. 앞으로도 수학에 새로운 이론이 첨가되고 첨가된 이론은 새로운 기초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학은 여타의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다.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불변의 수학적 진리란 없다.

 

 

따라서 수학 위상은 물리학보다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괴델은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기초’라는 것의 역할은 가설 설명 기능에 좀 더 가깝다고 하겠다. 물리학 공리가 그 체계의 정리들에 대해 참된 기초를 제공하기보다는 정리들에 의해 기술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역할이다.’

 

 

정리하자면 아직 그 참됨이 확립되지 않은 기초론으로 수학 타당성을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수학의 타당성은 물질 세계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수학은 뉴턴 역학과 마찬가지로 경험 과학이다. 수학은 응용 이론으로서 제대로 작동하는 한도 내에서만 옳은 이론이며,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는 수정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2000년 동안 수학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학은 절대적 진리도, 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수학 타당성을 응용 가능성 여부로 판단할 때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과학 성취는 전자기학 이론과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이다. 19세기 전반부에 전기와 자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고 1860년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 각 법칙이 서로 양립 가능한지 살펴보았다. 그는 두 법칙이 수학적으로 양립하려면 방정식에 항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항을 변위 전류라고 불렀다. 새로 도입한 항에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의미는 전원(전류가 흐르는 전선)으로부터 전자기장 혹은 전자기파가 공간으로 퍼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전자기파는 여러 주파수를 가질 수 있는데 오늘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사용되는 전파를 비롯해 엑스선, 가시광선, 적외선, 자외선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순전히 수학만을 사용하여 맥스웰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여러 현상의 존재를 예측했으며 또 빛이 전자기 현상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전자기파가 무엇인지 그 물리적 의미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직 수학만이 그 존재성을 보증해 주고 있으며 수학 도움으로 공학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 냈다. 원자와 핵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론 물리학자들은 중력장, 전자기장, 전자장 등을 마치 물결이 배와 기슭을 때리는 것처럼 공간으로 퍼져 나가 영향을 미치는 실제의 파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은 허구다. 우리는 물리적 속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장들은 단지 빛과 소리, 물체의 운동 그리고 관찰 가능한 현상과 일정 부분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현대 물리학 이론은 물질의 허상이다. 현대 과학은 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장이나 전자 같은 순전히 인위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개념에 대해서는 오직 그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수학 법칙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물질의 참된 본질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수학이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긍정의 대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수학이 왜 유용성을 갖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이는 수학의 가장 큰 역설이다. 그렇지만 수학이 왜 그런 엄청난 효용성을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과연 수학을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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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수(3차원 복소수) 도입은 수학자들에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수와 복소수가 지닌 기본 성질, 즉 ab=ba를 만족하지 않는 대수, 그러면서도 물리학에 유용하게 쓰이는 대수, 그런 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해밀턴이 사원수를 만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분야를 연구하던 수학자들이 그보다 더 이상한 대수들을 도입했다. 케일리가 도입한 행렬이 그것이다. 행렬에도 역시 대수의 일반 연산이 정의되지만 사원수와 마찬가지로 곱셈의 교환법칙을 만족하지 못한다. 더욱이 두 행렬이 0이 아니면서도 그 곱이 0이 되는 때도 있다.

 

 

새로운 대수의 등장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던 산술과 대수의 참됨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헬름홀츠는 물리현상에 산술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검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산술 법칙 가운데 어떤 것이 적용 가능한지 경험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특정 상황에서 산술 법칙이 적용 가능한지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헬름홀츠는 여러 가지 적절하고 타당한 사실을 지적했다. 수의 개념은 경험에서 생겨난다. 경험의 종류에 따라 자연수와 분수, 무리수의 개념이 생겨나고 각각 성질도 도출된다. 그렇기에 산술의 단순 적용이 성립하지 않는 예는 많다. 섭씨 40도의 물과 섭씨 50도 같은 양의 물을 섞으면 90도의 물이 되지 않는다. 초당 100회 진동하는 소리와 200회 진동하는 소리를 동시에 내면 초당 진동수가 300회인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알코올 1쿼트와 물 1 쿼트를 섞으면 약 1.8쿼트의 보드카가 된다. 알코올 음료를 혼합할 경우 대부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자연수의 성질이 자연 현상에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뿐 아니라 분수의 셈도 다르게 적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야구 경우를 살펴보자. 한 경기에서 세 번 타석에 들어서 두 번 안타를 치고, 다른 경기에서 네 번 타석에 들어서 세 번 안타를 쳤다면 타율, 즉 안타 수를 타석에 선 수로 나눈 값을 구하는 경우다. 첫 번째 경기의 타율은 2/3, 두 번째 타율은 3/4이다. 그런데 두 경기 전체 타율을 2/3+3/4= 17/12로 계산하면, 답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보통 사용되는 분수 합으로는 두 경기의 타율을 구할 수 없디.

 

 

답은 분수를 합할 때 새로운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전체 타율은 7/5인데, 분모는 분모끼리 분자는 분자끼리 더하여 뒤집어 주면 올바른 답을 얻는다. 즉 2/3+3/4=7/5이다. 여기서 +의 의미가 다르다. 이러한 예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연산을 도입할 수 있고 또 현실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산술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수학자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이런 산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각 산술은 물질 세계의 특정 현상을 나타내도록 고안되어 있다. 주어진 상황에 보통의 산술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오직 경험에만 의존하여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산술을 자연 현상에 필연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의 집합체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수학은 산술의 확장이기에 진리의 집합체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수학자들로서는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여기서 진리라고 함은 실제 세계의 법칙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산술과 기하학의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공리는 경험에 의거해 채택되므로 그 구조가 갖는 적용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디에 적용 가능한가는 오직 경험에 의거해서만 결정된다. 자명한 진리로부터 출발한 연역적 증명만으로 수학의 참됨을 담보하려는 그리스인들의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차츰 수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가 물질 세계에 관한 필연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정 영역의 경험은 특정한 공리를 채택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공리들과 그 공리들의 논리적 귀결은 그 영역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영역이 확대되면 적용 가능성은 소멸될 수도 있다. 물질 세계의 연구에서 수학은 이론이나 모델만을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이 기존 이론보다 현상을 더 적합하게 기술한다는 사실이나 경험이나 실험으로 입증되면 기존 이론은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된다. 수학과 물질 세계 관계를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표현했다.

 

 

‘수학 명제들이 현실을 기술하는 한에서는 그 확실성을 담보받지 못한다. 명제들이 확실성을 담보받는 한에서는 그 명제들은 현실을 기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학, 특히 그 중에서도 기하학은 실제 대상들의 속성을 알려는 우리 욕구에서 생겨났다는 점은 확실하다.’

 

 

모든 분야에서 진리를 발견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은 수학에 진리가 없다는 깨달음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정치학, 윤리학, 종교학, 경제학 등에서 진리를 얻어 낼 수 있다는 희망 또는 신념이 지금도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그 희망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던 지지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수학은 인류가 진리를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지만 곧 그 증명을 파기하고 말았다. 이런 지적 재앙을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의 기념비적 승리라고 할 수 있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었다.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 ‘인간의 지적 생활이란 거의 전적으로 경험의 근원이 되는 지각 질서를 개념 질서로 바꿔 내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개념 질서가 지각 질서를 온전히 담아 내지는 못한다. 역사가 남긴 교훈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이는 확고한 진리라고 해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확고한 진리로 여겨지는 것들이 실은 가장 의심스러운 것들이다. 그것들은 인류의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 한계와 제약을 드러낼 따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개념을 정의할 때 이미 알려져 있는 개념들로 기술해야 하며, 출발점에서는 정의되지 않은 개념(무정의 술어)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물리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만든 분야가 완전히 다른 물리적 상황이나 수학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다른 학문과는 독립적이기에 정의를 하려면 다른 수학적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정의를 무안히 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에 빠진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기본 개념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다.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 개념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그 개념들에 대해 어떤 사실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 주장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에 답은 이렇다. 공리가 무정의 개념에 대해 언명하고 있고, 따라서 어떤 언명이 가능한지를 공리가 말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점과 직선이 정의되지 않았다고 해도 두 점이 유일하게 직선을 결정한다는 공리와 세 점이 평면을 결정한다는 공리는 점과 직선, 평면에 대한 언명으로부터 추가의 결과를 연역해 낼 수 있다. 공리를 통해 이른바 암시 정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에서 모든 개념을 정의했다. 이 결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설명이 있다. 무정의 술어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유클리드가 동의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무정의 술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했지만 술어의 지관적 의미를 기술하여 독자에게 뒤를 이어 나오는 공리가 올바른 명제임을 알려주려 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본문 안에 정의를 포함시키지 말아야 했다. 유클리드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200년 동안 그를 추종했던 수학자들은 모두 무정의 술어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파스칼은 <기하학의 정신에 대한 고찰>에서 이러한 필요성에 주의를 환기시켰지만 그의 주장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연역 체계에는 반드시 무정의 술어가 포함되어 있고, 또 공리를 만족하는 한, 무정의 술어를 여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학을 새로운 수준의 추상화 단계로 진입시켰다. 모든 공리 체계에는 무정의 술어가 있고 그 무정의 술어 속성은 오직 공리를 통해서만 규정된다. 직관적으로는 수와 점, 직성에 대한 의미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술어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공리가 이들 속성을 고정해 주어 우리가 직관적으로 결부시키는 속성을 갖게 해 준다.

 

 

그러던 참에 괴델이라는 대재앙이 닥쳤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자연수 산술을 포함할 정도로 큰 수학 체계의 무모순성이 논리주의, 형식주의, 집합론 등 여러 학파에서 채택한 논리학 원리로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의미 있는 수론 명제 S가 있을 경우 S와 S의 부정 모두 그 이론 내에서 증명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론에는 증명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존재하고, 이 명제는 결정 불가능이 된다.

 

 

괴델의 증명 방식에서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다음 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 문장은 참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모순을 가져온다. 만일 그 문장 자체가 참이라면 그 주장대로 거짓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거짓이라면 다시 그 문장은 참이 될 것이다. 괴델은 여기서 거짓을 증명 불가능이란 말로 대체했다. 즉 ‘이 문장은 증명 불가능이다’라는 명제를 만들었다. 만일 이 명제가 증명 가능하지 않다면 이 명제가 말하는 내용은 참이다. 한편 이 문장이 증명 가능이라면 이 문장은 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일반 논리학에 따라 만일 참이라면 증명 불가능이 된다. 따라서 이 문장이 참일 필요충분 조건 이 문장이 증명 불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결과는 모순이 아니다. 다만 이 문장이 증명 불가능하지만 참인 명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괴델이 사용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산술화될 수 있는 수학 공리 체계나 논리학 공리 체계는 수학 모든 분야는 고사하고 한 가지 체계의 진리를 모두 포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공리 체계는 불완비하기 때문이다. 이 체계들에 속하지만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유의미한 명제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명제들은 비형식 논증으로 참임을 보일 수 있다. 공리화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공리적 방법의 부적절성은 그 자체로는 모순이 아니지만 수학자들은 모든 참인 명제는 그 공히 체계 안에서 확립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괴델은 직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수학적 증명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공리적 방법을 과대 평가하고 권장하는 일은 현명하지 못하다. 무모순성에 관한 괴델 결과는 어떤 수학 접근 방식이라도 해도 논리학 원리들로는 그 모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모순성이 증명될 수 없기에 수학 내용이 헛소리일지 모른다는 위험성이 상존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순이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는 어떤 의미에서 배중률의 부정이다. 우리는 명제가 반드시 참이거나 아니면 거짓이라고 믿는다. 현대 기초론 용어를 빌리면, 이는 명제가 속해 있는 체계의 논리학 법칙과 공리로 증명할 수 있거나 아니면 논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괴델은 일부 명제는 증명 가능하지도 않고 또 증명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주어진 명제가 증명되거나 논박될 가능성이 있는 명제인지 결정하는 방법을 묻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를 결정 문제라고 부른다. 1936년 처치는 결정 과정이 일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특정 명제가 주어져 있을 때 이 명제가 증명 가능인지 또는 논박 가능인지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항상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따라서 수학자들은 증명 불가능한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느라 몇 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게다가 특정한 수학 대상물을 규정하도록 의도해 놓은 공리 체계가 그런 의도를 충족시키지 않는다는 뢰밴하임-스콜렘 이론이 알려졌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미국 사람들만을 규정해 주는 속성들을 적어놓았다고 하자. 그런데 적어 놓은 속성 모두 만족시키지만, 동시에 미국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도 가진 동물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가 공리 체계는 해당 수학 분야에 속하는 모든 정리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반면에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공리 체계가 의도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델을 허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리는 모델을 제한하지 않는다. 수학적 실체를 공리체계 안에 오해 가능성이 없도록 새겨 넣기란 불가능하다.

 

 

의도하지 않은 모델이 생기는 이유는 공리 체계에 무정의 술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공리가 바로 이 무정의 술어들을 간접적으로 정의해 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리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따라서 무정의 술어 개념을 매우 획기적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뢰벤하임-스콜렘 정리는 괴델의 불완비성 정리만큼이나 놀라운 것이다. 공리적 방식은 최근까지도 유일하게 타당한 접근 방식으로 여겨졌으며 여전히 채택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기에 또 다른 타격이 가해진 것이다. 괴델의 불완비성은 비정언성을 함의한다. 하지만 뢰밴하임-스콜렘 정리는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인성을 부정한다. 새로운 공리를 추가하지 않고서도 극단적으로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함을 입증한다. 불완비성은 상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고 하면 상이한 모델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모델에서 의미를 지닌 명제 가운데 어떤 명제는 결정 불가능이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명제는 두 모델 모두에서 성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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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은 공리로부터 연역되는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다. 공리는 물질 세계에 관한 감각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물질 세계의 존재성은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 정리는 공리의 필연적 결과이기는 하지만 공리를 좀 더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에 그친다. 정리는 연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연역되는 명제는 이미 공리 안에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정리란 동어반복이다. 따라서 공리나 정리에는 진리가 담겨 있지 않다.

 

 

그런 다음, 흄은 인간이 진리를 획득하는 방법에 대해 답한다. 인간은 결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흄의 철학은 과학과 수학 연구의 결과를 평가 절하했을 뿐 아니라 이성 가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인간의 드높은 능력을 부정하는 흄의 철학은 18세기 사상가 대다수에게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수학을 비롯한 인간 이성 현현을 쓸모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루어 놓은 성과가 너무도 많았다.

 

 

칸트는 흄이 제기한 문제에 천착했다. 하지만 칸트 연구 결과도 면밀히 살펴보면 그다지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순수 이성 비판>에서 칸트는 수학 공리와 명제는 모두 진리라고 확언했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은 공간과 시간 형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칸트 답이었다. 공간과 시간은 지각의 양태다. 칸트는 그것을 직관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러한 직관으로 경험을 파악한다. 우리는 이러한 심적 형식에 따라 경험을 지각하고 조직하고 이해한다. 마치 반죽이 틀에 들어가 모습을 갖추듯, 경험은 이러한 형식을 부여하여 이미 짜 맞춰진 패턴으로 분류해 놓는다. 공간에 대한 직관은 근원이 정신에 있기에 정신은 공간 속성을 자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칸트는 두 점 사이 최단 경로는 직선, 세 점이 평면을 결정한다는 진리, 또 유클리드 공리와 같은 원리를 선험적 종합 진리하고 불렀는데, 이러한 원리는 우리 정신 속에 본래부터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하학은 이러한 원리가 지니는 논리적 귀결을 탐구할 따름이다. 정신에 내재된 ‘공간 구조’로 경험을 파악한다는 사실은 곧 경험이 기본 원리와 정리에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부 세계에서 우리가 지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질서와 합리성은 우리 정신과 사고 형식에 의해 세계에 부여된 것이다.

 

 

흄에 대한 칸트 비판을 가우스는 몹시 경멸했다. 가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수학 구성물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제시한 정의가 제대로 된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대신에 그 정의가 합당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정해야 좋은지 물어야 한다.’ 칸트와 달리 가우스는 역학 법칙이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갈릴레오의 믿음을 따랐다.

 

 

수학은 선험적 진리의 모임은 아니지만, 수학 명제는 물질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서 나온다는 칸트 주장에 수학자들은 관심을 기울여야만 했는데,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칸트와 달리 수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외부 세계는 인간 정신과는 독립되어 있는 법칙을 따른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세계는 이성적으로 셜계되었으며 인간은 단지 그러한 설계를 파악해 내고 이렇게 파악된 내용을 가지고 외부 세계에서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수학자 칸토어는 무지 보존의 법칙을 언급했다. 잘못된 결론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나면 사람들 생각에서 이를 제거해 내기 어려우며, 또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면 불충분할수록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 무지 보존의 법칙이다. 그래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더욱 큰 충격은 어떤 기하학이 참된 진리인지 또는 참된 기하학이 대체 있는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수학자들이 제한된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르다고 판단한 공리를 채택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를 자명한 진리로 잘못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이제 수학자들은 마크 트웨인의 다음과 같은 독설을 감내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인간은 종교적 동물이다. 참다운 종교를 그것도 여러 개씩이나 갖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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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법칙의 통상적인 공식은 인과적인데 페르마의 원리 같은 변분 원리는 합목적적이고, 거의 목적론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야. 의인화를 통해 확대해석을 해도 무방하다면, 빛은 일단 선택 가능한 경로들을 검토하고 각각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해야 해. 결국 빛은 자신이 도달할 목적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경로 중간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정보도 갖고 있는거지. 한마디로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는 거야.”

 

 

“굴절률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설명한다면, 이것은 인류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있다는 애기지.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면, 당신은 햅타포드(외계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는 것야. 완전히 다른 두 가지 해석이지. 물질 우주는 완벽하게 양의적인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지.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에 해당돼.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야.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이 없어.”

 

 

“인류와 햅타포드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지.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어.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이 이런 차이를 낳은 결과였지.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해. 햅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하지. 최소화와 최대화 목적을...” <당신 인생의 이야기>(엘리, 2016)

 

 

 

 

 

 

 

 

 

 

 

 

 

 

 

 

“기원후 1세기 헤론은 빛이 이동할 때 최단 거리를 택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빛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기에 최단 거리는 최단 시간을 의미한다. 17세기 위대한 수학자 페르마는 최소 시간 원리를 천명했다. 최소 시간 원리란, 빛이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옮겨 갈 때 항상 최소 시간이 소요되는 경로를 따른다는 원리다. 하느님은 빛이 수학적 법칙을 따르도록 했을 뿐 아니라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다.

 

 

18세기 초엽, 자연의 중요한 수량 가운데는 그 수치가 최대화나 최소화되는 예가 있음을 수학자들은 알게 되었다. 하위원스는 빛이 끊임없이 변하는 매질을 통과할 때도 이 원리가 성립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뉴턴의 운동 제법칙도 최소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직선 운동을 하며, 직선은 가장 짧은 경로다.

 

 

18세기 사람들은 완벽한 우주는 낭비를 용인하지 않기에 자연은 최소한의 노력만을 기울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에 따라 일반 원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한 원리를 처음 내놓은 사람은 모페르튀였다. 1744년 빛 이론을 연구하면서 그는 <상이한 자연 법칙의 조화>라는 논문에서 그 유명한 ‘최소 작용의 원리’를 제시했다. 페르마 원리에서 출발해 연구를 진행했지만 빛의 속도가 예컨대 공기보다 물에서 더 빠르다는 주장과 더 느리다는 주장 사이에 논란이 끊이질 않자 모페르튀는 최소 시간을 버리고 대신 작용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작용이란 질량과 속도, 움직인 거리를 곱하고 이를 적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 현상은 이 작용이 최소가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다.

 

 

물리법칙은 하느님이 창조한 세계에 걸맞은 완벽성을 반드시 지녀야 하는데 최소 작용 원리는 자연이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기에 이러한 요건을 만족시킨다고 모페르튀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원리가 보편적 자연 법칙이며 하느님의 존재와 지혜를 보여주는 최초 과학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18세기 최고 수학자인 오일러도 ‘우주 구조는 완벽하고 또 가장 현명한 창조자의 작품이기에 최대화나 최소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오일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모든 자연 현상은 특정 함수가 최대화되거나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따라서 모든 물리학의 기본 원리에는 최대화되거나 최소화되는 함수가 있게 마련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최소 작용 원리는 라그랑주에 의해 명확하게 정리되었고, 또 더욱 포괄적인 원리로 일반화되었다. 작용은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의미하게 되었으며, 이 일반화 원리에서 여러 역학 문제의 해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최소 작용의 원리는 변분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소 작용의 원리는 영국의 ‘제2 뉴턴’이라고 평가받는 해밀턴에 의해 다시 한 번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이 원리야말로 역학을 지배하는 가장 포괄적인 원리다."<수학의 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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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시대에 연역적 증명만을 합당한 증명으로 채택한 일이 얼마나 혁신적이었는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이 연역을 선호했던 이유는 먼저 사회 체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은 상업에 종사하는 것은 자유민으로서 위신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으며 마땅히 범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벽한 국가에서는 기능직에 종사하려는 시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부족 가운데 하나인 보이오티아 인들은 상업에 종사하여 스스로를 욕되게 한 사람에 대해서 10년 동안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한 사회에 속해 있는 사상가들에게는 귀납법을 이용한 실험과 관찰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실험이나 관찰에서 과학적 결과나 수학적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당시 철학자들이 연역적 논증을 선호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철학자들은 인간과 물질 세계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든지 세계는 짜임새 있게 설계되었다든지, 또 인생에는 목적이 있다든지 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를 확립하기에는 누구나 받아들이는 기본 원리로부터 결론을 도출해 내는 연역적 논증이 귀납이나 유추보다 훨씬 더 우수한 방식이다.

 

 

그리스 지식인들은 행성의 운동에서 나뭇잎 흔들림에 이르기까지 감각으로 인지되는 모든 현상은 명확하고 수미일관된, 그리고 이해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고 여겼다. 자연은 합리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그러한 설계가 이성을 사용하면 이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수학자이자 기술자인 헤론은 빛 반사의 법칙으로부터 중요한 결과를 이끌어 냈다. 빛은 지나는 경로 가운데 가장 짧은 경로를 택한다는 점이다. 자연이 수학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는 물 속에 잠긴 물체에는 물체가 밀어낸 물의 무게에 해당하는 힘이 부력으로 작용한다는 원리가 담겨 있다. 이 원리 덕분에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도 사람이 물에 가라앉지 않고 뜨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수학적 연구 성과와 수많은 과학탐구 결과 그리스 인들은 우주가 수학적으로 짜여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를 남겨 주었다. 수학은 자연 곳곳에 내재되어 있다. 수학은 자연 구조에 관한 진리이며 플라톤이 생각했듯 물질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실체이다. 우주에는 법칙과 질서가 있으며 수학은 바로 그러한 질서를 밝혀내는 열쇠다. 더욱이 인간 이성에는 이러한 우주 계획을 꿰뚫어 수학적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자연의 수학적 구조를 밝히는 것이 곧 진리 탐구였다.

 

 

17세기 갈릴레오의 가장 주된 업적은 물리학적 설명을 포기한 대신 수학적 기술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적 설명이 바로 과학의 진정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둘 사이 차이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공중에서 물체를 놓으면 땅으로 낙하하며, 속도는 점점 더 커진다. 아리스토텔레스 방법론을 따랐던 중세 과학자들은 낙하 원인을 역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갈릴레오는 대신 수학적으로 그 현상만을 기술했다. 갈릴레오가 기술한 낙하 현상은 d=16t^2이다. 여기서 d는 t초 동안 떨어진 거리를 나타낸 수다. 이 식은 물체의 낙하 이유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낙하 현상을 이해하려는 사람에게 충분한 답이 아닌 듯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우리가 찾아야 할 지식은 현상의 기술에 머물러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낙하하는 물체에 가속도가 생기는 원인이 연구에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과학적 탐구는 궁극적 원인을 찾는 형이상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물리적 원인에 대한 사변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과학자 임무는 원인을 캐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수량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갈릴레오 주장에 대한 일차적 반응은 당연히 부정적이었다.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현상을 수식으로 기술한다고 해서 별다른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고, 과학의 참된 기능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의 참된 기능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생각했다. 심지어 데카르트도 갈릴레오를 공격했다. ‘낙하 물체에 대한 갈릴레오 이론은 논리적 근거를 결여하고 있다. 우선 궁극적 원인인 무게의 본질부터 결정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후 전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상의 기술을 목표로 하는 갈릴레오 방식이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적 방법론을 통틀어 가장 심오하고 유용하며 혁신적인 방법론이다. 갈릴레오 방법론의 의의는 바로 과학을 수학 기초 위에 더욱 단단히 세워 놓았다는 점이다. 기존 과학 연구 태도를 공격하는 새로운 철학이 갈릴레오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과학은 물리학적 설명보다는 수학적 기술을 추구해야 했다. 더욱이 기본 원리들은 실험과 귀납적 방법을 통해 얻어야 했다.

 

 

갈릴레오가 죽던 해에 뉴턴이 태어났다. 뉴턴에게도 물리학적 설명 대신 수학 법칙을 강조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천체 역학에서 중심적 물리 개념은 중력이었고 중력 작용은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수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설명은 신뢰할 수 없어 보였다. 라이프니치를 포함하여 다수 사람들도 중력의 수학적 설명에 반대했다.

 

 

하지만 뉴턴의 놀랄 만한 업적이 가능했던 것은 물리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경우라도 수학적 기술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서두에 ‘이러한 힘들의 수학적 개념만을 다룰 뿐 물리학적 원인과 의의는 다루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뉴턴은 앞으로 중력의 본질이 연구되고 이해되길 희망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중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중력의 물리적 실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중력은 아직까지 인간 마음이 만들어 낸 과학적 허구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 법칙을 갖고 여러 사실들을 수학적으로 연역해 낼 수 있기에 핵심적인 물리학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과학이 이루어 놓은 것은 물리학적 이해를 희생하는 대신 수학적 서술과 수학적 예측을 획득한 것이다. 수학은 서술을 할 따름이지 근본 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질량이라는 개념도 뉴턴 역학에서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물체는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뉴턴에게 질량의 주된 속성은 관성이었다. 뉴턴 제1법칙에 서술된 관성의 의미는 운동하는 질량은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직선을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직선일까? 사실 갈릴레오는 관성 운동이 원운동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일까?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정지한다거나 일정한 가속도를 가진다고 할 수 없는 것일까? 관성이라는 개념은 가공의 개념이지 실험으로 얻어 낸 사실은 아니다. 어떤 힘도 가해지지 않는 물체는 이 세상에 없다. 뉴턴의 운동 법칙에 나오는 개념 가운데 물리적 실체를 갖는 것은 오로지 가속도뿐이다. 물체 가속도는 관측과 측정이 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물리학적 설명을 단념했지만 뉴턴은 수학적 개념과 수식을 채용하고 또 기존 공식에서 수학적으로 연역해 내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17세기 물리학 면모를 크게 쇄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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