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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의 이전 모든 작품을 보았고, 개인적으로 그를 조금은 알고 있지만, 아직 그 상을 수상할 정도로 충분히 역량 있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영화 산업 100주년을 기념하여 정부나 관련 단체에서 좀 심하게 로비를 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영화 <기생충>을 보니, 그의 이전 작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생충>과 같이 자본주의 문제점을 다루는 영화들은 기본적인 흔한 코드가 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가 그 코드를 따랐다. 계급 대립이 있고, 상류계급이 하층계급을 착취하며, 종국에는 혁명으로 치닫는 것이다. <설국열차>는 원작이 있었기에 전형적인 코드를 벗어나기 어려웠겠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크게 실망했던 느낌이 기억난다. 그렇지만 이번 <기생충>은 그 코드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전형을 벗어났기에 영화를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제각기 자유롭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등장인물 엔딩 크래딧에는 소개되지 않은 주인공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나’와 ‘당신’이다. 당신과 나는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집에 사는 상류계급이나 반지하 집에 사는 하층계급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 중간 어정쩡한 집에 사는 우리나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계급일 가능성이 크다. <기생충>은 중간계급이 채워져야 완성되는 영화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 하나가 ‘계획’이다. 송강호, 실질적으로는 봉준호 감독은 계속해서 ‘계획’과 ‘무계획’이란 단어를 중간계급에게 던진다.

 

 

상류계급이나 하층계급 모두 현재 위치는 자신 계획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감독은 일깨운다. 사회에서 성공이나 실패 모두 본인 능력 혹은 비역량을 바탕으로 계획적으로 추진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의 현재 상태는 계획된 일이 아닌, 한마디로 그냥 ‘운’일 뿐이다. 물론 ‘운’은 우리 중간계급에도 적용된다. 우리 현재 상태도 계획된 것이 아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경쟁에서 이기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라고 감독은 중간계급을 일깨운다. 일단 이러한 인식 전환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송강호의 아들 기우는 아버지를 위해 계획을 세운다. 대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부자가 되겠다는 계획인데, 하층계급이 그만큼 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대부분 관객들도 영화를 해피 엔딩이 아닌 새드 무비로 인식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기생충>은 일단 성공한 영화다. 중간계급이 기우에게 감정이입이 충분히 되었다면, 그 다음에 드는 자연스러운 생각은 그럼 어떡하지?’ 아닐까. <기생충>은 혁명이 나오지 않는 혁명 영화다. 봉준호 최고…^^

 

 

“중산계급이 하층계급과 정치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고, 이런 연대야말로 중산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가장 효과적으로 얻어 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정치적 현안과 관련하여 중산계급은 대개 하층계급과 대립하는 상류계급 편을 들기 마련이다. 이유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보지 못하도록 중산계급 눈을 가리는 이데올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상당 부문은 중산계급이 맹목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성공’, 즉 그저 진취적이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하층계급의 가난은 꿈도 야망도 없고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평이론의 모든 것>(앨피,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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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6-05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을 보셨군요. 저도 봐야하는데... 이러다가 IPTV 로 볼 듯 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6-05 19:20   좋아요 1 | URL
요즘 엄청 바쁘시군요. ㅠㅠ
꼭 보셔야 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9-06-24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북다님 역시bbb

저도 <기생충> 재밌게 봤습니다. 그 중 ‘계획‘ 이라는 것에 감독의 어떤 의도가 숨어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북다님의 해석을 들으니 만족스럽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6-24 20:3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고양이라디오 님. ^^
나심 탈레브 좋아하시니 아마 공감 되신 것 같습니다. ^^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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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영화(책)는 우리 인생과 붙어 있다. 우리는 몸으로 영화(책)을 본다. 영화(책) 내용은 감독(작가)의 ‘연출(저작) 의도’가 아니라 관객(독자)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역할과 책임
사람들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에서 ‘내 일을 했을 뿐’으로 정당화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데, 이런 말은 인간을 혼자 살게 내버려 둔다. 이 말에 사람들은 깊게 상처받는다.


가족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영역은 북한이나 섹슈얼리티가 아니라 가족 담론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 계급이다.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부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 과장이 아니다. 동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각도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남자 며느리가 웬 말이냐!’) 이처럼 가족은 정치경제적 영역인데도 자연적인 장소로 묘사된다(특히, 모성).
어떤 글이나 텍스트를 읽어도 가족에 대해서는 어쩌면 그렇게 상상력이 부족한지 정말 놀랍고, ‘그들의 무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가족에 관한 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본질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다’이다. 사랑은 시점이 개념을 좌우한다. 사랑할 때와 헤어질 때 혹은 ‘식었을 때’ 태도의 차이가 인간의 인격 기준이라 믿는다. 사람은 역사적 산물이다. 내 사랑도 특별하지 않다. (현재) 사랑은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 종교이자 산업이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계산,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남성 중심주의
남자의 삶에서 여자와 소통하기 위해 자아를 조절하는 기간은 연애할 때 몇 개월이 유일하다(여성들은 거의 평생 남성을 위해 자신을 조절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 중심성의 또 다른 측면은, 남성이 여성의 친밀성 능력과 감정 노동을 착취한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들이 남자와 연애할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남자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여자들이 자신이 지닌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


여성과 출산
‘여성이 자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모두 아이를 낳아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 질문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여성 출산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제도라는 사실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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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25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늦었지만 메리 클스마스 되시고 앞으로 더 많은 소통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8-12-25 22:41   좋아요 1 | URL
항상 경쾌하신 분... 항상 좋은 기운을 많이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
북플에서 좋은 분 만나고 알게되어 반갑습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
 

 

 

 

 

 

 

 

 

 

 

 

 

 


■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써야 할 글에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문장이 생각을 만들어가게 한다. 첫 문장을 잘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야 한다.

 

“호흡이 좋아야 글이 명료하다. 글 쓰는 사람은 자기 호흡으로 글을 쓰겠지만 독자들이 모두 그 호흡으로 글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기에, 거기서 자주 오해가 생긴다. 특히 긴 문장을 쓸 때는 여러 가지 호흡으로 글을 읽어보고 낱말의 위치를 바꾸거나 조사를 바꾸어 호흡을 조정한다.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명료하게 읽혀야 잘 쓴 것이다. 구두점을 잘 이용한다. 구두점은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한다.”

 


■ 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쓴 다음, 늘 하던 소리다 싶으면 지운다. 상투어구는 생각을 안 하거나 생각을 미진하게 했다는 증거이며,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한 것과 다르지 않다. 지우고 다시 쓰다 보면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가짜 생각’과 ‘진짜 생각’이 구분된다. ‘허위의식’이라는 말은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의식’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 되도록 의성어, 의태어도 쓰지 않는다.

 

“가능한 의성어, 의태어를 피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문장에 활기를 주는 듯하지만, 자주 내용의 허술함을 감추어주기에 쓰는 사람까지 속을 수 있다. ‘닭이 울었다’고 쓰면 되지 ‘닭이 꼬기오 하고 울었다’고 쓸 필요는 없다.”

 


■ 팩트 간의 관계를 강제하지 않는다.

 

“접속사 등으로 팩트를 강제로 묶으려 하면 글이 담백함을 잃는다. ‘태극기가 펄럭인다. 오늘은 3·1절이다’ 하면 상황과 인과관계가 모두 전달된다. ‘오늘은 3·1절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같은 문장은 독자를 바보로 취급하는 셈이 된다.”

 


■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가들이 그런 조언을 하는 것은 짧은 문장이 반드시 좋은 문장인 것이어서가 아니라, 긴 문장을 쓸 만한 내공이 없을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을 섬세하게 드러내려면 긴 문장이 필요한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자꾸 써봐야 한다. 짧은 문장을 많이 쓴다고 긴 문장을 잘 쓰게 되지는 않는다.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 형용사의 두 기능인 한정과 수식을 구분해야 한다.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형용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수식, 다른 하나는 한정이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식 기능의 형용사는 줄일 수 있지만 한정 기능의 형용사를 없애면 모호한 글이 된다. 글을 단단하게 하는 것은 적절한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표헌에 자신감이 붙게 하는 것도 한정 기능의 형용사다.”

 


■ 속내가 보이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잘 고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런데 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 보이게 쓰는 건 다르다. 글로 이익을 취하려 하거나 사태를 왜곡하면 속 보이는 글이 나온다. 속 보이는 글은 사실 자기 속내를 감추는 글이다.”

 


■ 한국어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두점이 필요 없다거나 한국어는 사물절을 쓰지는 않는다는 등의 한국어에 대한 속설이 많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서양에서도 구두점은 16세기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요순시대의 말로 남아 있게 할 수는 없다. 사물절을 쓰지 않는 건 한국어의 어법이 아니라 한국의 풍속일 뿐이다. 모든 풍속이 미풍양속은 아니다. 토속적인 말투를 질펀하게, 실은 상투적으로, 늘어놓는 글들이 있는데, ‘보그 병신체’, ‘박사 병신체’와 맞먹을 ‘토속어 병신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피해야 할 것은 낯선 어투가 아니라 상투적인 어투다.”

 


■ 문장이 가지는 실제 효과를 생각한다.

 

“말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리듬도 좋은데 감동이 없는 글이 많다. ‘작은 눈도 크게 뜨고 좁은 길도 넓게 가자.’ ‘운전은 경주가 아니다.’ 두 개의 문장이 모두 교통안전 표어인데 어느 쪽이 효과가 있을까. 글의 효과와 설득력은 대체적으로 사실성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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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비평가는 모름지기 하나의 작품에서 복잡성과 그것이 독자에게 가져오는 힘을 보통 사람보다 더 강력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몸 구석구석,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그것이 가져오는 힘을 생생하게 느끼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지적으로 우수하여야 하며, 본능적으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는 재능도 갖추어야 한다. 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기술도 터득해야만 한다. 그는 훌륭한 작품을 보면 거기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괴상한 정열도 타고난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도덕적으로 대단히, 대단히, 용기 있고 또 정직해야만 한다.” - 이창국 <문학비평 이야기>

 

 

문학이나 영화 비평가의 덕목이 이것뿐일까? “보통 사람보다 더 강력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느끼고” 본능적으로 남이 보지 못하는 메타포를 발견하는 재능은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이 책 저자는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일부 젊은이들이 영화평을 쓰면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이 베트남전이라는 공적 비극을 개인적 비극으로 축소시켰다고 간단하게 매도했는데, 이는 미국 영화의 메커니즘과 미국인들의 관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전쟁 책임과 같은 것은 아마도 정치학 같은 사회과학 영역이거나, 아니면 역사학 같은 인문과학 영역일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전쟁의 무책임함과 잔혹성과 부조리성 같은 것들이 어떻게 군대라는 집단 속에서, 그리고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개인’ 삶과 인간성과 세계관을 파괴하는지 고발함으로써, 전쟁에 책임을 져야 되는 세력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방식을 택한다.
간접적 비판은, 영화나 문학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모두에게, 그 어떤 직접적인 단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비판 수단이 된다. <플래툰>에 대한 그러한 식의 그릇된 비판은 비교적 관대한 국내사회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냉정한 국제무대에서는 자칫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국제사회에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작품들을 그런 시각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상식 이하의 짓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집합적인 의식을 개인적인 문제로 바꾸는 경향을 갖고 있다. 집단적 갈등을 곧 개인적인 고뇌로 바꾸어 놓는다. 집단적인 경험이나 무의식을 사적인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미국인들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예컨대 베트남전 참전 미군 병사들이 정신적 충격의 후유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사실은 전장에서의 살상을 곡 개인적인 책임감과 죄의식으로 느끼는 그들 특유의 심리구조 때문이다.”

 

 

“한국에서 <포세이돈 어드벤처>와 <타워링> 같은 대재난 영화를 만든다면, 아마 무엇보다도 협동정신과 단결이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재난 영화들은 단순한 집단의식보다는 역시 개인적인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부각시킨다. 특히 어떤 공동체를 다룰 때면 미국 영화들은 언제나 집단 속에서 개인 문제, 그리고 공공사회와 개인과의 관계 등을 통해서 더 큰 문제들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므로 대재난도 한 집단이 공동적으로 겪는 것으로 묘사되기보다는 각기 다른 개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겪는 것으로 그려진다.
개인 문제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대재난 영화에서 중요한 또 하나 모티브는 ‘가정의 수호’다 사실 대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상당 수가 재난을 겪은 후 한때는 파경 위기를 맞았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재난은 그들에게 가정을 되찾게 해주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

 

 

“영화 <엑소시스트>와 <가디언> <크러쉬>는 베이비시터의 손에 맡겨진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보호자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위탁 보호자, 즉 베이비시터 손에 맡겨져 있고 그 보호자(가디언)은 오히려 아이들을 해치고 있다. 가정은 파괴되고 아이들은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우리의 심각한 현실이다. 오늘날 직장 일에 쫓겨 아이들을 등안시하고 있는 현대인 가정에 커다란 경종을 울린다.”

 

 

저자는 “사람들이 흔히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숨겨진 의미나 새로운 시각을 찾아내 밝히려고” 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지는 못 한다. 저자는 미국 영화에 지겹게 나타나는 자유주의나 가족애(愛)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지 못한다. 자유주의는 개인 고립의 이데올로기며, 가족애는 우리 공동체의식을 억제한다. 미국 영화는 끊임없이 개인들을 모래알처럼 분열시킨다.

 

 

가족은 사회 질서에 따라 사랑이 증감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충분한 안전을 보장하면, 개인은 가정에서 벗어나 공동체에서 성장한다. 반면 위협받는 개인에게 사회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가정이 보호처가 된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국가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다.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탈구조주의에서는 현재의 잘못된 상황의 근원 혹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과거로 되돌아간 다음 다시 현재로 되돌아보는 과정 – 미셜 푸코가 ‘반기억’(counter-memory)이라고 부른 과정 –을 통해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는 전략이다.

소수 정예라는 의미의 영화 <어 퓨 굳 맨>은 자신 신념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으며 스스로 소수 정예라는 엘리트의식에 젖어 있는 잭 니콜슨이 나온다. 그의 눈에는 자신 허물은 보이지 않고 오직 다른 사람의 잘못과 무능력만이 보일 뿐이다. 진급이 빠른 것을 자신 능력과 효율성 때문이라고 믿고 자랑스러워한다. 소수 정예를 자랑하는 특권집단일수록 이탈자를 처단하는 내부 규율이 엄격한 법이다.

융의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바로 문명화되기 전의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곧 유색인들과 원시인들에게서 자신들의 감추어진 모습(융의 용어로 ‘그림자’)을 발견하고 그들을 무의식적으로 싫어하고 그들을 문명화시키려는 백인들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JFK>는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다른 진리들의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것은 얼핏 진리의 부정으로 인한 혼란의 자초나 허위 인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제도와 권력에 의해 우리에게 절대적 진리로 강요되어 온 것들의 유효성을 심문하고, 그것들의 횡포를 거부하며, 허위로 규정되어 제외되어 온 다른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의미할 뿐, 결코 일반적인 진리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혼란은 낡은 진리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정보이론과 엔트로피 이론에 의하면, 오직 정보에 있어서만은 결핍보다 과잉이 좋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 과잉은 언제나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는 결국 엔트로피를 초래한다. 하지만 정보는 통제나 조종보다는 차라리 정보의 방출과 넘침이 더 효과적으로 엔트로피를 억제한다. 이와 같은 역설적인 이론은 곧 정보를 통제하려는 지배 권력의 의도를 무산시키고, 결국 새로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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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7-03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록버스터나 전쟁영화가 가족애, 애국심 고취로 빠지지 않고 의미있는 화두로 끝맺음하기 쉽지 않은 거 같아요. 관객의 정서를 끌어내기에 그 감정선을 건드리는 게 가장 쉬운 것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죠. 최근 <군함도>도 거기서 못 벗어났던 거 같고. 흥행을 생각하면 애매한 모험은 피하기 마련이라...
베트남전 다뤘던 <디어 헌터> 인간의 일그러짐을 낱낱이 잘 드러내줬죠.

북다이제스터 2018-07-03 11:14   좋아요 1 | URL
<디어 헌터>도 무척 좋지만 개인적으로 최고의 베트남전 영화는 <야곱의 사다리> 였습니다. 안 보셨으면 강추...ㅎㅎ

AgalmA 2018-07-03 15:36   좋아요 1 | URL
야곱의 사다리 보려고 찜해 놓고 아직 못 봤는데 꼭 보겠습니다^^
 
토니 부잔의 마인드맵 북
토니 부잔.배리 부잔 지음, 권봉중 옮김 / 비즈니스맵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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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맵핑은 나날이 늘어나는 막대한 양의 자료를 조직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에 관한 생각을 정리할 때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중심 생각들을 재빨리 파악하여 서로의 연관성을 명백하게 알려주는 매우 강력한 사고 도구다. 생각하는 것과 생각을 글로 작성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매워주며, 세부 사황을 통합해 글로 작성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마인드맵은 사고와 글쓰기 과정을 따로 분리하여 진행함으로써 더욱 명확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쯤이면 이미 써야 할 글의 명확한 구조와 확고한 방향 감각을 갖게 되며 글쓰기가 훨씬 쉬우면서도 빨라지고, 무엇보다 즐거워진다. 마인드맵의 진정한 힘은 생각의 기본 질서를 이루는 주개념(마인드맵 형식 측면에서 본다면 주가지)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마인드맵퍼는 약 2억 5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방대한 두뇌의 힘을 컨트롤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자신 사고와 마인드맵을 위계 조직화와 범주화를 사용하여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그 첫번째 단계가 생각의 기본 질서를 이루는 자신의 주개념을 식별해내는 것이다. 주개념은 많은 다른 개념들이 그 안에 조직화될 수 있는 핵심 개념을 말한다. 막대한 양의 하위 정보 범위를 포함하고 있으면서 잠재적으로 그 정보를 구조화할 수 있는 상위 추상 개념이다. 즉 주개념은 창조적 연상결합 작용을 유발하고 조종하는 키다. 주개념을 찾아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가?
* 책이라면, 장 제목은 무엇이 될 것인가?
* 나의 뚜렷한 목표는 무엇인가?
*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7개의 범주는 무엇인가?
* 육하원칙은 무엇인가?
* 이러한 질문에 알맞은 더욱 크고 포괄적인 범주는 무엇인가?
* 제일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10개의 단어를 적어놓고, 그중 어느 것이 전체 제목과 결합될 수 있는지 자문하는 방법도 있다.

아무런 자료도 없이 주개념과 주가지 찾아낼 때 다음과 같은 범주도 도움이 된다.

* 역사: 기원은 무엇이고,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 구조: 어떤 형태를 취하는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 기능: 어떻게 작동하는가? 원동력은 무엇인가?
* 역할: 어떤 역할을 하는가? 어떤 성격인지
* 분류: 다른 것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 평가: 얼마나 좋은지/얼마나 가치있는지/ 얼마나 유익한지
* 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 특성: 사물의 특징


마인드맵을 이용하여 책 등 자료를 정리할 수 있다.

* 주어진 정보의 기본 구조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정보로부터 주개념을 찾아내고 위계적 조직화를 한다. 먼저 자료를 대충 빠르게 살펴보고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마인드맵으로 빠르게 정리한다.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쏟아부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속성 마인드맵을 만든다.이렇게 하면 연상결합을 유도해내는 정신적 갈고리를 마련하게 괸다.
* 이후 자료를 자세히 읽으며 목차, 주요 제목, 결말, 결론, 요약, 주요 삽화나 그래프, 눈에 들어오는 모든 중요한 요소들을 연결하거나 주개념에 보완한다.
* 끝으로 단순히 저자 생각을 마인드맵 형태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배경 지식에 저자 생각을 조직화하고 통합하여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인드맵은 자신 읽은 것에 논평, 생각, 창의적인 이해를 덧해야 한다.


글쓰기에도 마인드맵을 활용한다.

*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묻고자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에 주의를 기울여 적절한 주개념을 선택하여 주가지를 만든다.
* 이후 덧붙일 정보의 항목이나 말하고 싶은 요점들을 자유롭게 분류하여 정리하고 마인드맵의 주가지 중 가장 관련이 깊은 것에 적절하게 배치한다.
* 다음으로는 마인드맵 전체가 응집력 있게 보이도록 편집하고 다시 정리한다.
* 이제 마인드맵을 뼈대로 글쓰기 초안을 쓴다. 잘 짜여진 마인드맵은 자신이 쓴 글이 모든 주요 하위 분류들과 말하고자 하는 핵심 요점들을 잘 나타내고, 서로 관련된 부분들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때 아주 빠른 속도로 초안을 잡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유창한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참고 서적을 연구한 다음 언제든지 수정, 첨가할 수 있다.
* 글을 쓰다가 막힐 경우 그 부분에 또다른 마인드맵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빈가지를 덧붙여 그려주면 두뇌 속에 내재된 게슈탈트 본능, 즉 완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새로운 단어를 빈가지에 채워줄 것이다.
* 마지막으로 증거와 인용 사항들을 더욱 보강하여 자신 논지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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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06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이란 말이 생각나는군요. 빅데이터와 조직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마인드맵은 연역적 사고를 강조하는 방식이니까요. 여기에 확증편향까지 더해지면 ㅎㄷㄷ;;

북다이제스터 2018-05-06 21:18   좋아요 1 | URL
단점 많은 것이 명확하고 인류 4만 5천년 동안 흔한 방법이지만, 여기선 뻔한 마인드맵으로 새삼 포장되어 있지만, 다른 사고 대안이 인류애게 없는 듯하여 더 서글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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