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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이유는 뒷담화 때문이다. 우리가 타인과 나누는 대화 주제의 70퍼센트 이상이 제3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장점을 말할 때도 있지만, 단점에 대한 이야기의 10퍼센트 수준밖에 안 된다. 사람들이 뒷말을 시작하게 되면서 사회적인 평판과 명성관리 기술을 통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한편 모든 인간은 뒷말을 즐기지만 대다수는 뒷말과 뒷말을 늘어놓는 자들을 나쁘게 보는 모순도 있다.

 

 

스캔들 역시 재미가 보통이 아닌데, 타인에 대한 경멸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경멸감은 자신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도덕 감정이다. 경멸감을 느낄 때는 분노의 경우처럼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필요도 없고, 두려움이나 역겨움을 느낄 때처럼 현장에서 도망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경멸감은 남과 공유가 가능하다. 스캔들 뒷담화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도덕적 관심사를 서로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이 아는 사람과 능글맞게 웃으면서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으로 제3자 스캔들을 이야기 해 보라. 서로 유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능글맞은 웃음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 문화와 시대를 가릴 것 없이 어디서든 흔하게 발견되는 가정 보편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하나같이 위선자라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위선을 두고 입방아질을 할 때 우리는 자신 위선을 심화시킬 뿐이다. 최근 사회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신 눈에 박힌 들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기제를 찾아냈다. 이러한 발견에 함축된 도덕적 내용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며 인간의 가장 굳건한 도덕적 확신에 도전장을 던진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해방시켜주기도 한다. 부정적 도덕주의와 분열적 독선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들킬 위험이 없다고 판단할 때 가끔 부정한 짓을 한다. 게다가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내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에서부터 포로수용소를 운영했던 나치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사람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이유를 지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 위선에 대해 ‘선천적으로 무지’하다. 위선은 우울증보다 더 심각하다. 대개 우울한 사람은 최소한 자신이 우울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우울증 환자는 에어런 백의 인지 3요소(나는 못났다, 세상은 끔찍하다, 내 미래는 황량하다)를 인정한다. 우울증보다 위선을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려운 이유는 자신은 위선적이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 직감을 지지하기 위해 이유를 찾아내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말하자면 여론의 법정에서 이성은 무의식적 직감을 대변하도록 고용된 변호사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어떤 입장을 취하면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를 찾고 우리가 취한 입장을 지지해줄 만한 이치에 맞는 증거를 발견하는 순간 생각을 멈춰 버린다. 온갖 연구가 인간은 자신이 선호하는 신념이나 행동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으라는 인지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이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에 자신이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지니며, 실제 자기 입장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인식은 상당히 정확하다. 정작 왜곡되어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장밋빛 거울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 행동을 보고 평가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나만의 특별한 추가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내면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 행동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찾아내고 내가 남들보다 낫다는 환상에 매달릴 수 있다. 특히 애매함은 환상을 조장하고 부추긴다. 리더십 같은 애매한 자질의 경우에서도 리더십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기에 우리는 마음대로 자기 기분에 가장 잘 맞는 기준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자신만만하다면 리더십을 자신감으로 규정하기 쉽다. 스스로 인간관계술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리더십을 사람을 이해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근데 이런 자부심을 부풀리는 편견 효과가 자신에 대한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뿐이라면, 별 문제가 안 될지 모른다. 사실 나 자신과 나의 능력, 그리고 장래 전망에 대해 긍정적인 환상을 많이 품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며 더 호감의 대상이 된다는 증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들며, 이에 못지않게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믿는 다른 사람과 끝없는 논쟁에 휘말려들 여지를 만든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고무하는 강한 이상주의적 자부심이 비현실적이거나 자아도취적일 때는 쉽게 현실의 위협을 받으며, 그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종종 폭력을 휘두른다. 게다가 이상주의가 쉽게 위험해질 수 있는 이유는 거의 불가피하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믿음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 중 어느 것이 더 마음에 와 닿는가? (1)'자존심이 모든 민주주의 기초다.' (2)'당신만 중요한 게 아니다.' 첫 번째는 자율 윤리의 핵심 사상을 반영한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개인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개인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고 그들 자율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주는 사회라는 것이다. 자율의 윤리는 각기 다른 배경과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화합하게 하는 데 아주 적합하다. 이 윤리는 각 개인이 자신이 선택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글은 자아는 우리가 지닌 문제의 원인이기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특별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해 상이나 칭찬, 운동을 통해 직접 아이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려는 노력은 확실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이 욕망하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많은 욕망은 정욕의 지배를 받는 자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학교와 가정, 언론매체는 모두 협력하여 어린이들이 자아의식과 권리의식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많은 주요 전투들은 기본적으로 인생의 어떤 측면이 자율의 윤리 혹은 공동체 윤리에 의해 조직화되어야 하느냐를 둘러싼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자신 몫 이상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을 위해 한 일은 하나하나 잘 기억하면서도 타인이 내게 한 일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 비록 자신 계산이 정확했다고 해도 자신 계산 범위를 정하는 데는 독선적이다. 우리 각자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접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보는 사실은 모두가 볼 수 있기에 다른 사람들도 내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그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이 아직 관련 사실을 접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사적인 이익이나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고 단정해버린다."

 

북유럽 지역의 <얀테의 법칙>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2. 당신이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아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현대의 삶에서 자유롭다는 착각을 안겨주는 ‘선택’은 일종의 함정이다.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때 고르는 일은 더 힘들어진다. 선택을 한다 해도 결과에 대해 덜 만족한다. 선택 여지가 많을수록 완벽한 것을 고르리라는 기대감도 높아지지만 동시에 최고의 것을 골라낼 확률도 그만큼 낮아진다. 이 같은 선택의 역설은 인간이 선택을 소중히 하고 종종 행복에 지장을 줄 때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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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자기계발서는 우리가 사건 자체에 영향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 생각과 해석을 통해서만 영향받는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석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건 역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각종 자기계발 서적이나 세미나는 사람들이 이러한 개념을 이해할 때까지 계속 가르치고 훈계한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는 인간의 의식적 사고의 힘을 지나치게 과장한다. 우리가 자신 삶을 극적으로 통찰하고 자신 습관이나 인생관을 바꾸기로 굳은 결심을 했더라도 아마 3개월 뒤에는 처음 출발했을 때 상황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음을 발견하곤 한다. 통찰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 약효는 대부분 며칠이나 몇 주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저 이성이 변화를 결심하고서 감성에게 따르라고 명령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계속된 변화는 감성을 재훈련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참 쉽지 않다.

 

 

우리 인간은 좋고 싫음의 측정기를 갖고 있는데, 늘 무의식적으로 가동된다. 세심하게 관찰하면, 인간은 비록 인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에 좋고 싫은 반응을 한다. 예컨대 인간의 좋고 싫음의 측정기는 자신 이름에도 반응한다. 자신 이름과 비슷한 말을 보거나 들을 때마다 우리는 좋은 감정을 느끼고 그 대상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데니스(Dennis)나 데니즈(Denise)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보다 치과의사(dentist)가 될 가능성이 약간 더 높다. 루이스(Louis)와 루이즈(Louise)는 루이지애나(Louisiana)나 세인트루이스(St. Louis)로 이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자기 이름과 비슷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은 결혼에도 나타난다. 사람은 자기 이름과 발음이 비슷한 이름을 가진 상대와 결혼할 확률이 약간 더 높다. 그 유사성이 그저 머리글자만 같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연구가 의미하는 불편한 진실은 대다수 사람이 내리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서 살 것인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이 모두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이름을 발음할 때 나는 소리 같은 하찮은 요인에 영향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진정 우리가 갖다붙이는 해석에 불과하지만, 해석작업, 즉 사고과정은 우리가 모르게 아주 빠르게 일어난다. 감성은 본능적으로 반응하여 이성을 새로운 곳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이성보다 감정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인간이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해 오랜 기간 진화했다고 보면, 기회 포착이라는 이성적인 반응보다 위협이나 불쾌한 감성적 반응이 더 빠르고 더 강하며, 게다가 더 억제하기 어려워야만 한다.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불리는 이 원리는 심리학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결혼 생활에서 해롭거나 파괴적인 행동이 한 번 있었다면, 이를 벌충하기 위해서 배우자에게 최소 다섯 번의 유익하거나 건설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금융거래나 도박에서 돈을 버는 기쁨은 같은 액수를 잃는 고통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 한 번의 살인행위를 벌충하려면 다른 생명을 25차례 구하는 영웅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우리 마음은 위협과 폭력, 실패 요인을 찾고 그에 반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에 의지력만으로는 모든 것을 좋게 바라볼 수는 없다.

 

 

불안과 절망 같은 나쁜 느낌이 환희와 기쁨 느낌보다 강하기에 우리는 평상 시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한다. 우리는 존중받기 원하기에 늘 멸시 징후를 경계하며, 혹 그런 일이 생기면 며칠간 심하게 가슴앓이를 한다. 우리는 존중받을 때 기쁨을 느끼지만 대체로 그것이 주는 좋은 감정보다는 경시당할 때 아픔이 더 크다. 다시 말하지만 손실이 이익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 따라서 차츰차츰 부자가 되어가더라도 돈에 대한 생각은 보통 행복보다는 불행을 더 많이 안겨준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낙천적이거나 회의적인 성격은 양육(nurture)보다 천성(nature)이 더 큰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행복수준에서 나타나는 모든 변화의 50~80퍼센트가 자신 인생 경험보다는 유전자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프로작과 그 부류의 다른 약물들이 과잉 처방되고 있다는 일반적인 의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운 좋게도 두뇌 피질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즉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프로작을 부자연스러운 화학적 지름길이라고 왈가왈부 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 의지나 결함과 상관없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성향을 타고난 사람들에게 프로작은 뇌피질 복권의 불공평성을 상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또한 육체가 영혼의 신전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 정신약물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사실 조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적지 않다. 이들은 마치 오래도록 비상용 브레이크를 반쯤 걸어놓은 채 운전을 해온 것과 같다. 그 브레이크를 풀어놓을 때 그들 삶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실험을 해보는 것은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부실한 시력으로 자신 한계에 대처해온 사람에게 콘택트렌즈를 선물하는 것에 가깝다. 콘택트렌즈는 그 사람에게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합리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일단 변화가 왜 그렇게 힘든지 알게 되면, 자기개선을 위해 무지막지하게 힘쓰는 방법을 버리고 심리적으로 좀 더 세련된 접근방식을 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감성을 길들이고 서서히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다. 명상과 프로작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들 각각은 사람에 따라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모두가 쉽게 이용될 수 있게 널리 알려져야 한다. 삶 자체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요물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명상과 프로작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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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들이 지난 세기 끝 30여 년간 한 일은 인간 무의식에 대해서는 모두 잊고 단지 생각과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했다. 그들은 편견에서 우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정보처리’ 이론(컴퓨터에 정보가 입력, 저장, 출력되듯 인간 정신과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는 입장)을 만들어냈다. 경제학자들은 사람들이 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합리적 선택’ 모델을 창조했다. 사회과학은 한 목소리로 인간은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을 이용하여 목표를 정하고 지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합리적 행위자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할까?

 

 

이유는 우리 자아가 서로 충돌하는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각자 몸에 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특정 임무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면서도 종종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위원 여러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와 더 비슷하다. 마음의 분할은 심리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 마음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목적을 갖고 작동하는 모듈의 결합체라는 사실을 아주 섬뜩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은 자신 행동의 원인을 모를 경우에도 그 행동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꾸며내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다.

 

 

인간은 이성이 감성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감성에 의존한다. 그것은 감성 뇌가 제 역할을 해줘야 이성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이성과 감정은 지적인 행동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지만, 대부분 일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몫이다. 그런데 감성은 대부분 완전히 무의식적이다. 의식 흐름은 어떤 노력이나 자아의 지시 없이도 자체 연상 법칙에 따라 계속 흘러간다.

 

 

이성 의지력만으로 감성을 이기는 건 쉽지 않다. 이성은 피로한 근육처럼 곧 지쳐 굴복하는 반면 감성은 자동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판단, 특히 도덕적 판단은 감성적이다. 우리는 좋고 싫음을 즉각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만약 누군가 판단 근거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우리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우리가 누군가의 주장을 반박할 때 그가 자신 마음을 바꿔 우리 의견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던가?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가 패배시킨 논거는 상대가 취한 입장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판단이 내려진 이후 이성적으로 꾸며진 것이다.

 

 

인간 마음은 분열된 여러 부분들이 느슨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 한 부분, 즉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언어적 사고와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그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아닌 밤중 홍두깨 격으로 어떤 욕구나 소망, 유혹이 난데없이 고개를 쳐들 때 당황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언을 하고 맹세를 하고 결심을 하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는 데 놀란다. 그래서 간혹 우리가 자신의 무의식 혹은 이드, 동물적 자아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 자아는 이 모든 것의 집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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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데서 온다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런 행복은 지속시간이 짧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연구결과도 이를 확인해준다. 인간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에 적응한다. 단 적응하리라는 것을 미리 깨닫지 못할 뿐이다. 노인들은 대게 건강 문제로 많은 고통을 겪기에 노인이 젊은이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놀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만성병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인간은 ‘감정 예측’, 즉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 예측하는 데 서툴다. 우리는 자신 감정의 반응 강도와 지속시간 모두를 크게 과대평가한다. 복권 1등 당첨자와 하반신 마비환자 모두 1년도 못 가서 대체로 그들이 느끼는 기본적인 행복수준으로 되돌아온다.


좀 더 그럴듯한 행복의 가설은, 행복은 우리 내부로부터 나오며 세상을 내 욕망의 시녀로 만드는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인도의 석가 모니와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사람과 사건에 대한 감정적인 집착을 끊고 수용하는 태도를 함양하도록 항상 가르쳤다.


이러한 고대인들의 생각은 존중할 만하다. 대개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는 마음을 바꾸는 게 좌절에 대한 더 효과적인 대응법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이 행복의 가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우리가 얻으려고 애쓸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으며, 우리를 지속적으로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외부적인 삶의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 연구결과들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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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소속 집단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보이는 순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 이름을 걸고 할 수 있다. 즉 세계에서의 자기 그룹, 가령 자신 나라나 종교, 지역, 민족 등을 변호하기 위해서라면 그런 이유가 아니고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어느 나라에 사는 어떤 유형의 사람도 ‘최소 그룹 효과(minimal group effect: 최소한의 조건만 있어도 무리짓기 사이에 차별이 일어나는 현상)’에 저항하지 못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그룹 간 차별할까? 심리학자들은 ‘자존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을 좋게 생각하기에 자신이 속한 그룹을 좋게 생각하고, 경계를 넘어선 그룹을 차별한다.

 

 

특히, 우리는 위협받을 때 자신이 특정 부류에 속한 사람임을 가장 크게 자각한다. 내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닐 때는 고정관념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할 테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이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그 이점의 밑바탕인 정체성 역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체성이 주입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때는 내가 여자라서, 흑인이라서 특정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듯한 위협이 있을 때다. 이때 나쁜 일이 꼭 일어나야만 위협적인 비상사태인 것은 아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가능성만으로도 정체성은 우리에게 잔뜩 경계하도록 요구하고 지배한다.

 

 

사람들은 흔히 낮은 성과의 원인이 개인 결함이고 생각한다. 흑인과 여학생이 무언가를 기대만큼 잘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필시 개인적인 정신 문제, 낮은 자신감과 기대, 자포자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요소들의 집약, 즉 구체적 요소가 원인이 아닌 사회 구조와 관련 있다.

 

 

여학생은 수학을 못한다는 사회의 고약한 불신을 확증할 위협이나 확증할 것으로 보일 위협의 낙인(stigma)에 대해 자기 능력 한계선을 뛰어넘어 한 단계 도약하려 할 때마다 오는 압박감으로 작용하여 결국 수학 시험 성적이 낮게 된다. 위협의 결과란 바로 소극적인 참여, 자의식, 자유롭지 못한 사고, 평소보다 낮은 성과를 말한다.

 

 

‘사람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악평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성격이 변한다.’ 사람이 속한 집단은 악평 이미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그것을 내면화한다. 이런 이미지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절대 진실로 받아들이고, 애석하게도 가기 자신에 대한 진실로도 받아들인다. 내면화는 낮은 자존감, 낮은 기대치, 낮은 의욕, 자신감 부족 등을 일으켜 결국 성격을 훼손하고, 높은 실업률, 낮은 결혼율, 낮은 교육 수준, 범죄 관련성 등 여러 가지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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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7-12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존을 위한 빠른 판단이 생존과 연결되는 과거에는 편견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편견이 가지는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12 20:48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인간의 패턴 인식이 쉽게 고정관념으로 변화하도록 오랜 기간 진화하여 금세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ㅠㅠ
하지만 이 책은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의외로 단순합니다. 저자의 솔루션은 다음 번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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