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1607년 초연 당시 일종의 전위음악이었다. 아직 오페라라는 장르가 확립되기 전이라서, 악보는 ‘음악적 우화’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음악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가곡인 마드리갈(16세기 르네상스와 초기 바로크 시대 노래로 이탈리아에서 태동하여 영국, 독일 등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17세기 오페라 아리아로 발전했다), 화려한 합창, 생기 있는 춤곡, 현악기, 리코더, 트럼펫, 트럼본, 코르넷 등 이례적인 대편성의 기악 합주… 당시에 동원할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모두 구사한 수준 높은 드라마였다. 결국 우리가 아는 ‘최초의 오페라’가 된 것이다.

 

 

 

유튜브 추천 음악: <Orfeo Monteverdi Savall> 호르디 사발 지휘,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 공연

 

 

 

카치니와 페리는 연극을 단순한 대사 낭송이 아닌, 시 운율에 따라서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으로 공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주저음(바로크 합주곡의 기초를 담당하는 저음 파트, 쳄벌로와 첼로, 오르간과 첼로가 맡는 경우가 많다) 위에 리듬과 화음을 갖춘 단선율을 노래했는데, 이를 모노디(monody)라고 한다. <에우리디체>는 이런 모노디를 이어서 만든 노래극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성음악이 지배했지만, 가사의 명료한 전달을 중요시하는 모노디는 바로크 시대 노래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카치니와 페리는 음악의 감정이론(Doctrines of Affections)을 신봉했다. 음악 힘이 사람 감정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랑과 기쁨, 분노, 증오, 공포 등 다양한 정서는 사람 몸속에 흐르는 체액의 불균형 때문에 생기는데, 음악이 체액 흐름을 자극하여 인간 정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두려움을 표현할 때는 낮은 음역에서 하강하는 선율이 주로 등장하며, 불협화음과 쉼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기쁨을 표현할 때는 빠른 템포에 셋잇단음표와 화려한 꾸밈음을 많이 구사한다. 여기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은, 노래 하나는 한가지 감정만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카치니와 페리가 실험한 이 방법은 바로크 오페라의 기본 원칙으로 발전한다.

 

 

유튜브 추천 음악: <Caccini Peri Euridice> 니콜라스 이흐텐 지휘, 스케르 무지칼 연주

 

 

 

 

<라 폴리아 변주곡>의 작곡가 코렐리는 바로크 바이올린 음악의 기초를 다진 사람으로, 비발디, 바흐의 협주곡과 소나타(sonata: 울린다(sonatre)는 말에서 유래한 기악 독주곡. 건반과 통주저음의 반주 위에서 독주 악기가 연주하는 트리오 소나타는 근대 소나타의 원형이 되었다)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바로크 기악곡은 춤곡에 바탕을 두고 발전했다. 조바꿈을 하지 않고 춤곡을 확대하여 작곡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음곡’으로, 알레망드(독일 무곡), 쿠랑트(프랑스 무목), 사라반드(스페인 무곡), 지그(영국 무곡) 등 춤곡을 모아서 만든 음악 형식이다. 다른 하나는 ‘변주곡’으로, 춤곡을 주제로 제시한 뒤 리듬과 선율에 변화를 주어 재미있게 연결하는 기법이다. 코렐리의 <라폴리아 변주곡>은 바흐의 <샤콘>, 헨델의 <파실칼리아>와 함께 바로크 시대 변주곡의 대표작이다.

 

 

유튜브 추천 음악: <Corelli La Folia Bruggen> 프란스 브뤼헨 리코더 연주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보에가 사람 영혼을 빼앗아간다 하여 연주를 금지한 적도 있다. 소리를 내는 구멍이 아주 작아서 연주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소리가 또렷하고 청아해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지 않고 잘 들릴뿐더러, 온도가 변해도 음정이 곧게 유지되어서 오케스트라가 조율할 때 오보에를 기준으로 한다. 오보에 연주자는 리드(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떨림판. 갈대(reed)로 만든다) 상태를 잘 유지하기 위해 늘 칼로 리드를 다듬는 ‘목공예’를 한다.

 

 

유튜브 추천 음악: <Marcello Oboe Concerto D Minor> 마르셀 퐁셀, 일 가르델리노 오보에 연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고작 2분 동안 짧은 시간에 8개 음표를 변화무쌍하게 활용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만든 바흐의 천재성이 놀랍다. 건반악기 연주 기법의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바흐의 건반 음악의 정점이 된 이 작품은 당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을 잘 연습한 사람은 그로부터 얼마든지 혼자서 공부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베토벤은 바흐의 이 곡을 접하고서 ‘이건 시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야!’라고 찬탄했다. 쇼팽은 이 곡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제자를 가르칠 때 최고의 교본으로 활용했다. 한 음악학자는 말했다. ‘만일 큰 재앙이 일어나 서양음악이 일시에 소멸된다 해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버곡집>만 남는다면 재건할 수 있다’고 말이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것이 바로 이 곡 때문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유튜브 추천 음악: <Bach Well-Tempered Clavier 1 Gulda> 프리드리히 굴다 피아노 연주

 

 

바흐의 중요한 기악곡들은 대부분 쾨텐 시절(1717-1723)에 작곡했다. 쾨텐의 스물세살 젊은 영주 레오폴트 후작은 음악을 매우 사랑했고 바흐를 극진히 우대했다. 재미있는 것은, 쾨텐 궁정이 칼뱅(캘빈)파여서 복잡한 교회음악을 금지했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바흐는 자신 천재성을 모두 발휘하여 세속음악 작곡에 몰두했고, 그 결과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관현악 모음곡> 등 위대한 기악곡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쾨텐 시절이 없었다면 바흐는 협주곡, 오르간곡 같은 종교음악만 남긴 근엄한 작곡가로 역사에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유튜브 추천 음악: <Bach Violin Concerto A Minor 1st mov Chung> 정경화 바이올린 연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임에서 마흔한살의 한 여인이 소감을 말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지금까지 한 번도 생일 잔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게 축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오늘 참석했고, 바로 오늘 태아 시절의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살아 있고, 세상에 태어난 게 기쁩니다.’ 참석자들 모두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고, 그 여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여인의 기나긴 수난에 경의를 표하며 바흐 협주곡의 느린 악장 <2악장 라르고 마 논 탄토>를 드리고 싶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목이 맨 경험이 있습니까? 제가 아는 바흐 선율 중 가장 아름답고, 그래서 목이 메이는 곡입니다.

 

 

유튜브 추천 음악: <BWV 1043 D minor 2nd mov Nishizaki Jablokov>

 

 

 

 


바흐의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 연주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는 임파선 악성 종양 때문에 서른세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1950년 9월 16일 브장송에서 열린 그의 마지막 연주회는 눈물로 뒤덮였다. 병마와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예정된 쇼팽 왈츠를 다 연주하지 못한 채 쓰러져 버렸다. 안간힘을 써서 일어난 그는 다시 무대 위에 나와 작별 곡을 연주했다. 바흐의 <예수는 언제나 나의 기쁨>이었다. 젊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안타까운 마지막 연주, 죽음마저 위로하는 바흐의 위대한 선율에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그의 마지막 연주는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마음을 위안하며 눈물짓게 한다.

 

 

유튜브 추천 음악: <Bach Jesus Joy of Man’s Desiring Lipatti> 디누 리파티 피아노 연주

 

 


흔히 바흐의 <커피> 칸타타로 알려져 있는 ‘조용히 하세요! 잡담을 멈추세요!’(1732)는 당시 독일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커피하우스의 홍보 행사에서 연주되었다. 커피를 찬양하는 내용을 익살스런 스토리에 담았다.
내레이터 역의 테너가 커피하우스 손님들을 향해 ‘조용히 하세요! 잡담을 멈추세요!’ 외치며 시작한다. 커피에 미친 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는 실랑이를 벌인다. ‘커피를 그렇게 마셔 대면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아버지가 협박하자 딸은 굴복하는 체하지만, 결혼 계약서에 ‘커피 맘대로 마시기’라는 조항을 슬쩍 써넣는다. 화 잘 내고 투박한 성격의 아버지는 허둥대는 음악으로, 영리하고 재치 있는 딸의 음악은 상큼하고 명랑한 음악으로 표현했다.
바흐의 ‘세속 칸타타’를 듣다 보니 18세기 독일의 아득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새로 문을 연 커피하우스에 손님들이 북적인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갈등하는 모습은 동서고금이 다 비슷해 보인다. 바흐 칸타타,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유튜브 추천 음악: <Bach Coffee Cantata Koopman> 콘 쿠프만 지휘,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연주

 

 

 


영국 극작가 존 게이는 1728년 런던에서 <거지 오페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18세기 런던의 거지와 창녀들의 삶을 익살스레 묘사한 이 작품은 영어로 되어 있고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의 전통 선율을 가져다 썼기에 헨델의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다. 게다가 정부, 귀족 사회, 결혼 제도를 풍자하는 내용이라 관객들을 아주 유쾌하게 해 주었다. <거지 오페라>는 초연된 1728년뿐 아니라, 18세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이탈리아 오페라는 귀족과 지식인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존 게이는 클래식 오페라와 대중 뮤지컬의 중간쯤 되는 이 작품으로 서민들에게 직접 다가섰고, 그것이 바로 대박의 비결이 되었다. 돈밖에 모르는 영국 지배층과 돈을 위해서 서슴없이 양심을 파는 법조인들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거지 오페라>는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의 효시가 됐고, 정확히 200년을 건너뛴 1928년에 <서푼짜리 오페라>의 모태가 되었다. 게다가 <마술피리>, <후궁 탈출> 등 모차르트의 위대한 징슈필(18세기 독일어 오페라로, 구어체 대사를 구사하고 희극적 성격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에 지배적이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반발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에도 그 영향이 스며들었다.

 

 

유튜브 추천 음악: <John Gay Begger’s Opera> 제레미 발로우 지휘, 브로드사이드 밴드 연주

 

 

보통 ‘라르고’라고 알려진 노래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서곡에 이어 1막 첫머리에 나오는 아리아 ‘그대의 시원한 그늘’이다. 이 아리아 하나만으로도 헨델은 인류에게 큰 선물을 했지 싶다. 힘들 때, ‘그대의 시원한 그늘’은 위로를 주는 곡이다. 인생이란 기나긴 여정이 늘 아름답고 위대하지는 않지만 어느 한 순간, 한 기억만으로도 인생은 살 만한 것임을 이 아리아가 새삼 일깨워 준다.

 

 

유튜브 추천 음악: <Handel Ombra Mai Fu Bartoli>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노래

 

 

헨델은 오라토리오(‘기도 드리는 장소’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메시아>를 서른두 차례나 직접 지휘했다. 자선 연주의 수익금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등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했다. ‘이 음악은 굶주린 자를 먹였고, 헐벗은 자를 입혔다.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꼬마들을 키웠을까!’라고 당시 한 평론가는 말했다.
1759년 4월 6일, 코벤트 가든에서 <메시아>를 지휘하던 헨델은 마지막 ‘아멘’ 코러스가 끝나자 쓰러졌다. 헨델은 부축을 받고 무대에서 내려와 바로 병상에 누웠고, 1주일 뒤 일흔네살의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안치 되었다.

 

 

유튜브 추천 음악: <Handel Hallelujah Choir of King’s College>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합창단

 

 

어떤 악기든 실제로 배운 사람은 그 악기 특성을 알기에 좀 더 정밀하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해당 악기의 레퍼토리에 관해서도 일반인보다 더 많이 알 수 있다. 피아노를 전공한 친구들과 함께 피아노 연주회에 간 적이 많은데, 그 친구들은 분명히 나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음악 칼럼을 쓰는 분들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은 저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음악을 들을 줄 알 것입니다. 시창, 청음, 연주 테크닉 등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공자의 ‘귀’를 따라갈 수는 없다.

 

 

유튜브 추천 음악: <Praetorius La Volta John Williams> 프레토리우스, <발레>와 <라 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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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음악의 글 3
에런 코플런드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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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책 제목인데, 자꾸 “음악에서 무엇을 ‘덜어’ 낼 것인가”로 읽힌다. 그렇지만, 역자는 원제 <What to ‘Listen for’ in Music>을 “들어 낼~”로 옮긴 것이다. 저자가 클래식 음악을 귀담아 들으라고 강조한 점을 역자가 반영한 것이다. 서문만 읽어도 그 뜻이 짐작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그저 감상이라는 욕조 속에 들어앉은 채 소리에 둘러싸인 감각적 차원의 반응에만 안주하고 만다. 하지만 음악에는 질서와 체계가 있음을, 음악은 감각적 호소력뿐만 아니라 지적인 호소력 역시 가지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음악을 그저 생각 없이 흘러듣는 대신 정신을 집중하고 들”어야 한다. 그렇게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수고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특권”이다. 따라서 저자는 “듣는 이를 위해 작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적하고 그것이 거기에 있는 이유를 알려준다.”


차이코프스키 팬들이 들으면 노발대발 하겠지만, “음악가들이 열이면 열 베토벤이 차이코프스키보다 더 위대한 작곡가”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베토벤보다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썼고 음악이 더 간편한 반면,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꼬집어 말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처럼 언제 들어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은 음악은 머지않아 지루한 음악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베토벤 음악처럼 들을 때마다 의미가 조금씩 바뀌는 음악은 그만큼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음악의 감각적 호소력이 아닌 “머리를 이용해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음악적 재료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선율, 리듬, 화성, 음색을 의식적으로 ‘들어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이며, “곡을 쓴 사람의 생각 흐름을 따라가려면 형식 원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리듬이 바로 박자라고 잘못 알 정도로 예전 중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짧은 지식만 갖고 저자의 음악 이론을 따라가기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저자가 음악에서 “들어 낼” 것으로 강조한 점을 남긴다.


작곡가의 음악 창조 과정은 글을 쓰는 작가의 창조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정작 작곡가들은 세간의 생각만큼 ‘영감’의 문제에 몰두하지 않고,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작곡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생리작용만큼이나 자연스런 일이다. 작곡가는 하나의 악상에서 시작한다. 작곡가는 언제든 생각이 나는 대로 메모를 한다. 그렇게 악상(주제)을 모은다. 이 과정을 피해갈 도리는 없다. 작곡가가 주제를 손에 쥐면, 더불어 그간 공책에 쌓아둔 다른 주제들도 하나하나 살핀다. 작곡가는 수중에 어떤 밑천이 있는지 알고자 함이다. 그러고는 각각의 악상이 움직이는 형식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모색한다. 그러면서 주제가 어딘가 부족함이 보이면 조금씩 매만진다. 이와 동시에 작곡가는 주제에 담긴 감정적 의미를 깨닫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주제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면 지닐수록 주제를 다양하게 뒤바꿀 가능성을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다. 주제만 놓고 보면 시시해 보이지만 정작 그 주제를 사용한 작품 전체는 위대한 걸작으로 인정받는 곳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오죽하면 주제가 시시하고 불완전할수록 새로운 의미를 품을 여지가 커진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주제에 살을 붙이는 방법은 최초 주제와 어울릴 법한 다른 악상을 찾는다. 그렇게 찾은 악상은 주제와 비슷한 성격일 수도 있고, 현저하게 다른 성격일 수도 있다.” “가장 힘든 과제는 지금까지 모은 재료들을 하나로 이어붙여 일관성 있는 전체를 만드는 일이다. 작품은 시작, 몸통, 끝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듣는 이가 세 부분 가운데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곡가의 책무다.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작곡가라면 기본적인 곡의 구조적 얼개 몇 가지는 장사 밑천처럼 가지고 있다. 잘 쓰인 곡은 ‘거대한 라인’이라 부르는 음악의 흐름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음악에서 들어 낼 “선율은 마치 끊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이를 이끌어야 한다. 멜로디 라인을 꽉 붙잡은 채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자. 선율은 잠깐 동안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나중에 다시 등장할 때 보다 강력한 임펙트를 싣기 위해 작곡가가 잠시 뒤로 물려놓을 수도 있다. 종적을 없앴던 선율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다시 돌아오고야 만다는 점만 유념하자. 심중팔구 멜로디는 부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음악적 재료와 함께 등장하곤 한다. 부수적 재료에 정신을 빼앗긴 나머지 선율의 자취를 잊지 않도록 주의하자. 멜로디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멜로디 그 자체를 머릿속에서 구분해서 따로 기억하자. 머릿속에서 멜로디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작품을 들을 때는 소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 외에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주요 멜로디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보조 재료들을 분리해서 인식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멜로디 라인은 한 섹션에서 다른 섹션으로 넘어가거나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로 넘어가는 식으로 운용되는게 보통이다. 듣는 이는 정신을 바짝차리고 선율의 궤적을 놓치지 않고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


“곡 전체를 하나로 묶는 청사진을 뚫어볼 수 있어야만 완전한 음악 감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음악은 반복이 원칙이다. 다른 예술 장르보다 음악은 유독 반복을 사용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시간의 흐름에 의존하는 유동적이고 무정형적인 예술이기에 그렇다. 도돌이표가 사용되는 이유다. 음악에는 a를 일단 되풀이하고 b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 곁가지로 빠지기 전에 곡의 뼈대가 되는 a를 듣는 이에게 뚜렷이 각인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반복이 아니라 리듬 강세의 위치를 살짝 비틀어 변화를 꾀한다.” “반드시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점은 주제(a)를 제시한 직후 곧바로 반복될 공산이 크다는 것과 음악이 곁가지(b)를 유람한 다음에 꼭 같은 형태로든 다소 변형된 형태로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점이다.” “마치 작곡가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 아시겠소? 자,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었던 원석이 바로 여기 있소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1악장 형식)으로 예를 들면, “A-B-A에 해당하는 각부가 제시부-발전부-재현부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제시부는 이름 그대로 악장에 사용될 주제적 자료를 제시하며, 발전부는 제시된 주제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방식으로 다룬다. 마지막 재현부는 주제를 원래 세팅으로 되돌려 다시 한 번 들려준다. 제시부는 제1주제, 제2주제, 종결주제를 아루른다. 제1주제는 극적이고 ‘남성적’ 성격이다. 반면 제2주제는 제1주제와 대비감을 살리기 위해 서정적이고 ‘여성적’인 방향을 취하는 경우가 흔하다. 종결주제는 앞선 두 가지 주제보다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발전부는 정해진 지침을 따를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부분이다. 완전히 새로운 주제를 더해 넣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발전부는 작곡가의 창조력, 상상력이 도전받는 시험 무대와 같은 영역이다. 심지어는 곡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일반인을 가르는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발전부를 다루는 솜씨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생각해보면 그다지 극한 표현도 아니다. 들어줄 만한 가락을 뚝딱 지어내어 휘파람 부는 정도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선율을 가지고 멋진 발전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곡가가 가진 기술과 솜씨가 없다면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우선 발전부는 통상적으로 제1주제를 부분적으로 다시 제시하면서 시작되곤 한다. 듣는 이는 발전부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리는 하나의 장치다. 둘째, 발전부가 진행됨에 따라 음악은 으뜸조성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여러 조성으로 조옮김을 하며 이동한다. 이는 재현부가 도래하면 으뜸조성으로 복귀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듣는 이가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구나’라는 쾌감을 느끼기 위한 필수적인 사전 작업이다.”


“틀림없는 사실은 세상에 알려진 위대한 음악 가운데 상당 부분이 청자가 음악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쓰였다는 점이다.” 작곡가가 음악의 이론으로 말을 거는데, 외면하지 않으려면 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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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서술의 책이 좋다. 곡 해설도 훌륭하지만, 음악가 개인 내면과 그가 살았던 시대 설명은 클래식을 몹시 듣고 싶게 만든다. 음악은 작곡가 인생과 시대의 산물이다. 그 산물을 우리가 대면한다.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의 고전주의부터 낭만주의, 모더니즘에 이르는 작곡가 16명과 지휘자, 연주자 8명을 소개하고 있다. 선정 기준은 저자 취향에 따라 임의적이다. 베토벤은 빠져있고 너무 많이 알려진 모차르트와 쇼팽, 브람스 이야기는 지루하지만, 그 외 음악가 설명은 모두 흥미 있다.

 

바흐
바흐 음악은 “질서정연하며 논리적인 감동”이 있다.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바흐는 주로 종교 음악을 작곡했지만, 그의 음악 본질은 ‘고독’에 있다. 하지만 "헤겔은 바흐 음악을 조롱했다. 그런데 헤겔 조롱은 이해할 수 있다." “국가주의 철학자 헤겔이 바흐 고독을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헤겔에게 개인 내면이란 거대한 절대정신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전체’라는 도식을 신봉했던 헤겔이 전체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 그래서 신에게 기도하는 나약한 개인 고독을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슈베르트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3곡 중 “백미는 <21번 B플랫장조>(D.960)이다.” “고금의 피아노 음악 중 가장 애잔한 곡이다.” “첫 악장은 눈물도 흘리지 않고 두 눈 뜬 채 작별을 고하는 듯 들린다. 두 번째 악장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세상 모든 애가(哀歌)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슈베르트, 쇼팽, 슈만과 같은 작곡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글렌 굴드마저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망아지경에 빠져버렸다’고 고백한다.”

 

 

 

 

 

 

 

 

 

 

베를리오즈
베를리오즈 음악은 “엄청난 규모의 관현악 편성, 거칠고 돌연한 조바꿈, 타악기와 관악기가 만들어내는 두텁고 조밀한 화음, 그 모든 것이 한데 엉켜 분출하는 긴장감 넘치는 음향을 만들어 낸다.” “이 과도한 음악의 육체성은 ‘자본주의 상품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유럽 전역 산업자본주의가 발흥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음악가도 당연히 청중이나 공연기획자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베를리오즈가 한눈에 반해 버린 여배우 해리엇 스미스슨의 마음을 얻지 못해 그녀에 대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환상 교향곡>을 작곡했다. “특히,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과 5악장 <마녀의 론도>에서 그로테스크한 증오를 드러낸다. 여인에 대한 집착을 살인이란 파국으로 마무리한 청년은 단두대로 끌려가는 도중 하나의 환상에 몰입하고 그 기괴한 환영 속에서 사랑했던 여인은 창녀, 혹은 마녀 이미지로 그려진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적과의 동침>에서 <환상 교향곡>이 그토록 절묘했던 이유다.

 


 

 

 

 

 

 

 

 

 

 

 

 

베를리오즈의 <레퀴엠>은 자본주의적으로 “뭔가 보여주겠다는 작곡가 욕망을 가장 확연하게 만날 수 있다.” “음악사에서 가장 광폭하고 공격적인 레퀴엠으로 평가받는 이 곡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요구한다. 무대 위 오케스트라와 별도로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회장 네 방향에 각각 배치돼 (그 당시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휘자 콜린 데이비스(Colin Davis)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과 녹음(Philips)한 것이 대표 명반이다. 가격이 좀 나가는 하이엔드 오디오로 볼륨을 적절하게 높인 채 들으면, 압도적 음향 쾌감에 몸이 떨리는 것이 사실이다.”

 

 

 

 

 

 

 

 

 

 

쇼팽
쇼팽 음악은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격렬하고 뜨거운 쇼팽 곡은 없을까? 쇼팽의 “소나타 3번은 규모가 웅장하고 구성도 치밀한 걸작이다.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 시작하는 1악장의 첫 번째 주제 힘이 압도적이다. 마르타 아르헤치가 67년 녹음한 음반(EMI)이야말로 그 격렬한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해준다.”

 

바그너
“디오니소스적인 열정을 찾아 헤매던 니체는 스물네 살 때 처음 만난 바그너에게 완전히 매혹되어 자신을 ‘바그너주의자’로 지칭한다. 니체는 ‘예술이 존재하려면 ‘도취’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반이성주의자였던 그는 ‘논리적인 것이 극복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예술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울러 음악은 아름다움의 외피만을 강조해선 안 되며, 내면의 열정을 표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테>에 대한 니체 찬사는, ‘모든 예술을 다 뒤져도 필적한 만한 작품을 찾을 수 없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거의 경배에 가까웠다.”

 

말러
말러 교향곡 서두는 언제나 ‘나는 이렇게 시작할 테니, 그대들은 내 음악에 집중하라’는 자신 확신의 주문과 같다. 그의 아홉 번째 교향곡 “<대지의 노래>는 중국 이태백과 전기(錢起), 맹호연, 왕유의 시 여섯 편을 가사로 삼아 곡을 붙였다.” 말러는 중국 낭만적 풍경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특히, 마지막 악장 <고별>의 반복선율, 어릿광대의 몸짓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슬픈 선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 경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이는 인간 운명을 암시한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 말러 음악은 혼탁하고 감성적이여 격조가 떨어질 수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러 음악을 ‘저열하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그의 혹평이야말로 오히려 말러를 이해하는 적절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명료함을 추구한 철학자였다. 그런 그에게 말러는 말할 수 없는 주관적 감정에 함몰되어 모호한 언어를 남발하는 예술가로 보였을 것이다.” “고상함과 퇴폐, 서정과 광기, 공포와 안식이 모호하게 뒤엉킨 말러 음악이 듣는 이의 감성을 건드리는 역설이 되었다.”

 

드뷔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목신의 독백>이란 상징주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어 인상주의 풍의 에로티시즘을 음악으로 구현했다. 시의 주인공은 햇살이 작렬하는 오후, 시칠리아 초원에서 물의 요정에게 반해 그 모습을 몽롱하게 더듬는다. 목신은 잠에서 깨어났지만 꿈에서 봤던 님프와 나이아드 모습을 지우지 못한다. 그것은 정녕 꿈이었을까? 목신은 혼란스럽다. 그는 몽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넋을 잃고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모래 바닥에 쓰러져 다시 잠에 빠져든다.” “음악의 모더니즘은 드뷔시의 이 곡으로 시작되었다.”

 

사티
사티는 유럽 음악사를 완전히 다시 시작했다. 그것은 “19세기 말에 지대한 영향을 행사했던 바그너풍 음악과 완전한 결별이었다. 사티는 ‘음악에 경배하지 말 것’을 화두로 삼았다. ‘음악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musique de tout les jours)’이라는 것이다. 엄숙한 콘서트홀에서 빠져나와 일상 삶 속에서 구현되는 음악, 그것을 최초로 구현했던 작곡가가 사티였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 일상생활에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도록 작곡된 음악(BGM)이다. 실제로 사티는 자신 음악이 초연되었을 때, 조용하게 음악을 감상하려는 연주회장 청중들에게 ‘계속 떠드세요, 움직이세요, 음악은 듣는 게 아닙니다!’라며 화를 내고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사티 사후 40년쯤 지나 그의 곡은 ‘미니멀 음악’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

 

야나체크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 <1905년 10월 1일 거리에서>는 가두시위에서 사망한 20세 노동자를 애도하기 위해 작곡했다. “아다지오로 느릿하게 흘러가는 2악장을 듣고 있노라면, 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의 한 시간짜리 즉흥 연주곡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가 떠오른다. 키스 자렛이 야나체크의 곡 주제를 슬쩍 빌려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합창과 테너, 피아노를 위한 곡 <나의 딸 올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는 야나체크의 모든 작품 중 가장 비통하고 애절하다. 또한, 피아노 한 대로 펼쳐지는 <안개 속에서>를 작가 밀란 쿤데라가 ‘푸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는 두멧길에서 빠져나오는 저녁 안개’라고 비유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프라하의 봄>에서 이 곡이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1Q84>에서는 여주인공이 탄 택시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흘러나온다.”

 

 

 

 

 

 

 

 

 

 

 

 

 

 

쇼스타코비치
슬라보예 지젝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에 대해 “3막에 나오는 카테리나와 세르게이의 격정적인 첫 성교에 대한 생생한 관현악적 묘사”라고 설명한다. “쇼스타코비치는 그 장면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표현주의 기법을 사용한다.” “ 지젝 표현에 따르면 ‘오르가슴 이후 긴장 완화를 반쯤의 희극적 묘사로 제공하는 트롬본 활주를 포함하여, 성교 행위의 헐떡거림과 돌진들’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묘사했던 것이다.”
“나치 독일이 소련 레닌그라드를 연일 폭격하던 시기 쇼스타코비치는 일곱 번째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작곡했다. 전투적 애국주의로 충만한 이 곡은 레닌그라드 시내의 스피커를 통해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울려 퍼진 영웅적인 분위기의 교향곡은 일종의 선무 방송이었다.”

 


 

 

 

 

 

 

 

 

또한, “아내를 잃은 직후 작곡된 <등에 모음곡>은 애수를 풍기는 음악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아내 빈자리를 바라보는 심정, 특히 모음곡 8번 <로망스>와 9번 <간주곡>, 10번 <녹턴>은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느꼈을 쓸쓸함과 허망함을 진하게 드러낸다.”

 

글렌 굴드
“굴드는 콘서트홀 ‘청중’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굴드의 직접적 언급은 1962년 쓴 <박수를 금지하자!: Let’s ban applause!>라는 글에 등장한다. ‘예술이란 내적 연소다. 천박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대중에게 과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음악 목적은 아드레날린을 순간적으로 분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걸쳐 경이롭고 고요한 상태를 점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낭만주의 곡 연주가 대단히 인기 있던 시기에 굴드는 왜 “고리타분”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같은 바흐 음악에 집중했을까? “낭만주의 음악은 대단히 상업화되고 말랑말랑한 레퍼토리로 변질된 상태였다. 굴드가 바흐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시 청중에게 바흐는 낡고 재미없는 음악의 대명사였다. 바흐를 듣는다는 것은 마치 골동품 취미와도 같은 것이었다. 굴드는 그렇게 주류적 통념을 거부한 연주자였다.”

 

 


 

 

 

 

 

 

 

음악은 애초에 인문학 범주에 있었다. “인문학자 월터 카우프만은 ‘인문학이란 철학과 문학, 종교와 역사, 음악과 미술을 통틀어 일컫는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음악이 지향하는 바는 이른바 ‘전인성(全人性)’이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음악은 대학 편제로 ‘예능’이란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게다가 점점 가속된 ‘전문화’ 추세는 음악을 전문주의, 기능주의의 벼랑으로 내몰았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정치적으로 옳다는 말은 타협을 의미하므로 철학적으로 틀린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절충이나 타협은 이미 철학이 아니라 것, 예술도 결국 철학과 동행해야 한다고 바렌보임은 말한다.”
‘음악 전문화’라는 구호 아래 개인 시야가 협소해 지고 대중이 클래식에 다가가기는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자주 들으며 애써 노력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클래식에 친숙해지는 팁 한 가지를 소개한다. “이 곡 저 곡 많이 들으려고 하지 말고, 같은 곡을 자꾸 반복해 들으세요. 그래야 곡 흐름을 외울 수 있으니까요.” “곡 흐름을 외우는 순간, 다시 말해 그 곡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올 때 음악은 ‘내 것’이 된다. 그때 비로소 당신은 클래식의 감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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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2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서술적인(?) 책이 좋아요.
저는 슈만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최근 슈만의 피아노 곡을 듣고 전율이 느껴지더군요. 사실 저는 브람스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슈만을 더 따돌렸더랬나봐요~~~^^;;; 앞으로 슈만의 피아노 곡을 자주 들어보려고요.
음악은 정말 대단해요!! 클래식은 얼마나 대단한지 아침 저녁으로 들으면서 제 못난 머리를 쥐어박는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

북다이제스터 2015-09-30 09:33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말하기를... 생각보다 사람들이 슈만 곡을 많이 안 듣는 이유는
슈만 곡은 좋은 곡이 너무 많은 역설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저도 슈만 곡도 더 자주 들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