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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를 늘린다는 것은 자신 삶의 양과 질을 늘린다는 것과 같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표현 수단에 머무르지 않으며, 사유를 펼치는 데 필요한 기본 수단이다. 언어로 생각을 표현한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생각과 언어는 동시성을 지닌다는 게 언어학자 대다수 견해다. 언어는 사유와 감정을 창조하며, 생각 실마리를 언어로 잡아내어 정리할 때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다양한 어휘를 익힌다는 것은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기르는 일이 된다.


독일 언어학자인 홈볼트는 ‘우리는 언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대로 현실을 인식한다’라고 했다. 언어가 현실을 규정한다. 언어가 우리 생각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가치관에 영향을 준다. 언어가 사유를 형성하고 사유가 행동을 결정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살기 어려운 현실은 존재했으나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그런 현실에 관한 인식이 더욱 강화되기 시작했다. ‘정말 그말이 맞아’라고 동조하는 사람이 늘면서 정치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비정규직을 줄이고 청년 실업을 막기 위한 정책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실제 내용과 다른 말을 끌어들여 허위를 진실로 포장하기도 한다. 지배 계층일수록 언어를 통한 상징 조작을 많이 한다. 우리나라에 존재했던 정당 이름을 살펴보면 가장 선호하는 말이 자유, 민주, 공화, 정의 같은 단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대상과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낱말 하나에도 자기 정치적 입장을 담고 있다.


말은 인식을 반영하는 매개체이므로 끊임없이 자신 인식 체계를 들여다보고 바르고 정확한 뜻이 담긴 말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전적 변이(variation)를 ‘다양성’으로 표현하면 유전 정보의 다양성이 사람마다 다른 특징이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전하겠다는 뜻이다. 색깔이 보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인식에 기초해 색맹이라는 용어를 ‘색각 다양성’으로 표현한다. 미혼 대신 비혼으로, 폐경 대신 완경(完經)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여성 몸은 여성 자신 것이라는 주체적 인식 속에서 낙태라는 말 대신 ‘임신 중단’이라는 말을 쓰자는 요구도 있다. 그것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가깝게 연결된다.


어휘에 예민해야 한다. 중립이나 중재라는 말을 쓸 때 이해당사자가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진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고 있을 때 그런 말이 강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 하사금이나 고위층처럼 권력에 따른 상하관계가 스민 측면에 관한 고려도 충분히 감안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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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을 알면 영어가 산다 - 번역 방법론
김옥수 지음 / 비꽃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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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문법을 배우면서 영어를 품사별로 번역하도록 익혔다. 하지만 그것은 번역이 아니라 문장 파악, 즉, 독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우리말이 지닌 특징을 외면하고 영문 자체를 이해하는 수준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역은 외국어를 우리말 특징에 맞도록 바꾸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품사에 맞춰서 일대일 대응어를 찾아가며 번역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1.
영어는 가능하면 명사로 표현하는 반면 우리말은 가능하면 동사로 표현한다. 따라서 명사 분위기를 동사 분위기로 최대한 바꿀 때 비로소 우리말에 가까운 번역이 나온다.

 

1) ‘형용사+명사’는 ‘명사+동사’ 형태로 바꾼다. 
- He is a religious fanatic.
잭은 종교적인 광신도이다. → 잭은 종교에 완전히 미쳤다.


- It is a very expensive place.
여기는 돈이 아주 많이 들어. → 여기는 아주 비싸다.

 

2) ‘(형용사+)명사+조사+동사’는 ‘부사+동사’ 형태로 바꾼다.
- 그런 대답을 했다 → 그렇게 대답했다
- 울음을 터트리다 → 엉엉 울다, 마구 울다
- 네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잖아 →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같았다 → 주인처럼 행세했다

 

3) 영어는 명사를 수식하는 관계절이 뒤에 오지만 우리말은 앞에 온다.
- This is the student who(m) I like to talk to.
내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학생은 바로 이 학생이다. (명사구 중심 독해)
→ 나는 이 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 (동사 중심 번역)


- He struck up a sturdy song that was like a Gale in itself.
등대지기가 그 자체로 질풍노도 같은 억센 노래를 불렀어. (명사구 중심 독해)
→ 등대지기가 노래를 억세게 부르는데, 질풍노도 같더군. (동사 중심 번역)

 

 

2.
우리말은 장형(長形) 부정을 피하고 단형(單形) 부정을 사용한다.

 

- 신경 쓰지 않으면 → 신경 안 쓰면
- 그렇지 않아 → 안 그래
- 가지 않는다 → 안 간다
- 가지 않을 것이다 → 안 가겠다
- 씻지 않을 거예요 → 안 씻겠어요
- 할 수 없다 / 하지 못 한다 → 못 한다.

 

 

3.
우리말은 ‘사족’을 싫어하는 깔끔한 말이다.

 

- 퀴퀴하고 축축한 거리의 그늘에서
: 소유격 ‘의’는 대표적인 번역어투다. ‘의’를 빼고 읽어보라.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는가?


- 숲에서만 살아서
: ‘~서’ 두 개가 중복이다. 우리말은 조사가 절반이다. 문장 흐름을 고려해 ‘~서’ 하나를 생략해야 한다.


- 문을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 ‘걸어’가 없으면 더 좋겠다. ‘성큼성큼’이 걷는 동작을 나타낸다.


-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라는 사족이 흐름을 깨뜨린다. ‘마음이 편안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도가 좋다.

 

 

4.
복수명사는 원칙적으로 우리말에 없다. 외국어에 영향받아 억지로 들여왔다. 우리말은 복수명사를 부사로 표현한다. 
 
1) 머린은 궁전 다락방 보관함에서 가져온 방석들에 앉았다.
원문을 보면 ‘방석들’을 ‘some cushions’라고 표현했다. ‘방석 여러 장’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머린은 궁전 다락방 보관함에서 방석을 여러 장 가져와 포개 앉았다’가 된다. 표현이 한층 살아난다. 우리말은 복수명사를 부사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5.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1) 우선, ‘것’에 담긴 뜻을 찾아서 표현해야 한다.
-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환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은 환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시키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2) ‘~것’을 ‘마음’, ‘사실’로 바꾸고 세 번째 ‘것’은 생략했다. 이제 비로소 한글 냄새가 난다. 하지만 아직도 명사구 중심이라서 딱딱하다. 동사 중심으로 바꾸면 어떨까?
→ 환자만 마음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3)  [명사구 보문+의존 명사 ‘것’]에 나오는 ‘~것’ 역시 생략하는 게 좋다.
- 앞서 살펴본 것처럼 →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것은 → 세계대전이 일어난 원인은

 

 

6.
영어는 시제 일치, 우리말은 시제 불일치

 

1) 수로는 마당에 넘친 물 때문에 사라졌고, 쓰레기들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 수로는 마당에 넘친 물 때문에 사라지고, 쓰레기들만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사라졌고’는 당연히 ‘사라지고’라는 현재형을 써야 한다. 영어는 시제일치 원칙 때문에 시제를 통일해야 하지만 우리말은 모두 현재형을 쓰고 동사 하나만 시제를 주어야 한다. 시제불일치 원칙이다.)

 

 

7.
우리말은 ‘A and B’형 서술에 익숙하다. ‘그 사람은 키도 크고 잘생겼어’라든가 ‘그 사람은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겼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1) He is tall, dark, and handsome
따라서 위 같은 문장을 번역할 때는 ‘그 사람은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키도 크고 돈도 많아’라는 식으로 ‘A랑 B’ 형식을 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굳이 세 개로 서술할 때는 ‘A랑 B, C’ 혹은 ‘A와 B, C’ 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8.
‘or’를 ‘또는’으로 번역하지 말자. ‘또는' 이란 표현은 원래 우리말에 없다.

 

1) ‘내일 또는 모레’나 ‘비 또는 눈이 온다’
→ 우리에게는 ‘내일이나 모레’란 표현이 있고 ‘비나 눈이 온다’는 말이 훨씬 편하다.

 

 

9.
‘~뿐이 없다’는 당연히 중복표현이다.

 

1) 연탄이 세 장뿐이 없다.
→ 연탄이 세 장뿐이다/연탄 세 장이 전부다/연탄이 세 장밖에 없다.


‘~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돈이 이것뿐이다’, ‘나는 네가 하는 말을 들을 뿐이다’에 담긴 의미처럼 ‘~뿐’에는 없다는 의미가 있다. 
 


10.
일반적으로 주격조사 ‘이/가’는 영어의 부정관사 ‘a’와 비슷하고 보조사 주제격 ‘은/는’은 정관사 ‘the’와 비슷하다.

1) There was a dog. The dog had a piece of meat in his mouth.
→ 개가 있었다. 개는 고기 한 조각을 물고 있었다.

 

 

11.
콜론은 부연설명, 세미콜론은 인과관계를 의미한다.

 

 

1) He reported the decision: we were forbidden to speak with the chairman directly.
→ 비서가 결정사항을 통보했다. 우리는 회장님이랑 직접 대화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부연설명)

 

 

2) He reported the decision; we were forbidden to speak with the chairman directly.
→ 비서가 결정사항을 통보했다. 우리는 회장님이랑 직접 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

 

콜론과 세미콜론을 비교할 때 가장 커다란 차이는 전자는 앞 문장을 부연해서 설명하는 것, 후자는 앞뒤 문장의 인과관계라는 사실이다.
영어에서 문장부호가 발달했다면 한글은 부사나 접속사, 연결 어미 등이 발달했다. 영어 문장부호에 맞는 부사나 접속사를 찾아서 대체해야 한다.

 

 

12.
우리말은 현재형으로 모든 시제를 표현하는 게 원칙이다.

 

그럼에도 사건이 일어난 순서를 파악하는 데 지장이 없다. “예전에 거시기 있잖아” 해도 대충 눈치로 때려잡는 게 우리말이다. 반면에 영어는 열두 개(?)나 되는 시제 형식으로 사건 순서를 표현한다.

 

 

13.
우리말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주어와 능동문이 발달했다.

 

우리말은 무생물주어와 수동태를 싫어한다. 스스로 움직일 힘이 없어 남이 움직여야 하는 무생물은 동작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 거다. 그래서 ‘수동태’ 대신 ‘피동문’이라고 한다. ‘남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14.
우리말은 공동체주의, 영어는 소유주의다.

 

우리는 ‘나’, ‘너’, ‘우리’, ‘너희’라는 공동체 의식이 DNA에 뿌리 깊게 박혔다. ‘우리 아빠’, ‘우리 학교’, ‘우리 집’, ‘우리 동네’, ‘우리 친구’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소유개념이 발달한 영어에서 불가능하다. ‘a friend of mine’이나 ‘one of my friends’라는 이중소유격까지 나오며, 중심은 언제나 ‘나’니 말이다.
그래서 ‘have’동사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엄청나다. ‘have a meeting, have a friend, have a meal’ 등 모임도 가지고, 친구도 가지고, 식사도 가진다. 물질문명보다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우리말에서 ‘가지다’는 동사는 중요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15.
우리말의 주어 특징

 

우리말은 이중주어 문장도 가능하며 주어 없는 문장도 가능하다. 주어를 당연히 생략할 수도 있다. 아니, 주어를 생략해야 할 때가 많다. 주체가 분명한데 또 언급하는 건 중복이다.
영어는 한 문단에서 원칙적으로 주어를 한 번만 사용해야 한다. 영어가 주어를 하나만 써야 하니까 이중주어 ‘당신은 얼굴이’가 ‘your face’라는 소유격 주어로 변한다. 이걸 번역하면 ‘당신의 얼굴’이 된다. 번역어투가 나오는 순간이다.

 

 

 

 

 

 

번역은 외국어를 한글로 한 번 걸러내는 특징 때문에 원문에 담긴 색깔이 그만큼 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번역할 때는 더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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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3-22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자들이 한국어를 외극어보다 잘 해야하는 이유를 잘 알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8-03-22 20:1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우리말을 모르면 제대로된 번역이 어렵습니다.
번역서를 주로 읽는 제게는 울퉁불퉁한 번역 읽는게 여간 고역 아닙니다. ㅠ

blueyonder 2018-03-22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약 감사합니다. 특히 10번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거네요.

북다이제스터 2018-03-22 20:31   좋아요 0 | URL
우리말 중 가장 어려운 말이 은/는 과 이/가 인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읽은 책들 주장이 약간 모두 달랐습니다. ㅎ
덕분에 내일 한 번 정리하고 싶은 욕심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말과 글을 살리는 문법의 힘 - 두고두고 찾아보는 한국어 사용 설명서
정재윤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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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 공부를 한다는 것은 우리말 규칙을 이해하고 왜 이런 규칙이 생겨났는지를 탐구하는 일이다. 우리말을 좀 더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규칙을 몸에 익히는 일이다.

 

 

언어의 기능
언어의 한 가지 표현에 한 가지 기능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달이 참 밝다’라는 문장은 ‘달이 밝음’을 나타내는 지시 기능, ‘달이 밝아서 좋다’라는 표현 기능, ‘산책할까’라는 지령 기능, 나아가서는 ‘할 말이 있는데’라는 친교 기능까지 나타낸다. 다만 말을 하는 문맥과 장면에 따라 어떤 기능이 주로 강조되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맥과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이해해야 할 일이다. 안 그러면 눈치 없다는 소릴 듣는다.

 

 

우리말 특징
세계 언어의 50퍼센트가 영어 ‘He loves me’처럼 ‘주어+서술어+목적어’ 구조로 이뤄지고, 우리말 ‘그는 나를 사랑한다’처럼 ‘주어+목적어+서술어’ 구조를 이루는 언어는 40퍼센트 정도 된다. 아랍어나 켈트어처럼 ‘서술어+주어+목적어’ 구조로 되어 있는 언어도 10퍼센트 된다고 한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와 친족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언어와 구별되는 한국어의 성질을 알아보자.

 

한국어의 자음에 울림소리(유성음)는 ㄴ, ㄹ, ㅁ, ㅇ 네가지 뿐이고 나머지는 안울림소리(무성음)인데, 안울림소리는 예사소리(평음, ㄱ ㄷ ㅂ ㅈ ㅅ)/된소리(경음, ㄲ ㄸ ㅃ ㅉ ㅆ)/거센소리(격음, ㅋ ㅌ ㅍ ㅊ)로 삼중 체계를 이룬다. 이 삼중 체계 때문에 우리는 달, 딸, 탈이나 불, 뿔, 풀을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닌 다른 소리로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영어나 독일어, 일본어의 자음은 유성음/무성음 이중 체계를 이룬다. 그래서 이들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달’과 ‘탈’, ‘불’과 ‘풀’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부산, 대구, 광주’를 ‘푸산, 태구, 쾅주’라고 발음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우리가 단어의 첫 자음을 무성음으로 발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어의 자음에는 마찰음이 ㅅ, ㅆ, ㅎ 세 개뿐이다. 그런데 영어에는 f, v, θ, ð, s, z, ∫, ʒ, h 등 마찰음의 개수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 배울 때 고생한다. 예를 들어 ‘ð’와 ‘d’를 구별해서 발음할 수 있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현대 한국어의 첫소리에는 둘 이상 되는 자음이 한꺼번에 올 수 없다. 그런데 영어에서는 ‘spring’이나 ‘street’처럼 첫소리에 자음이 둘 이상 올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스프링, 스트리트’처럼 자음에 모음 ‘ㅡ’를 붙여서 읽는다. 물론 이렇게 읽으면 서양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는다.


한국어의 자음은 음절 끝 위치에서 완전히 파열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역’, ‘부엌’은 [기역], [부억]으로 닫힌 채 발음되지, [기여그], [부어크]로 발음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에서는 ‘egg’, ‘cake’ 발음을 할 때, [에그], [케이크]처럼 발음한다. 끝소리 자음을 닫힌 채로 발음하지 않고 터뜨리면서 발음하기 때문이다.

 


의존 명사
‘철수는 공부를 잘한다. 뿐만 아니라 운동도 잘한다’라고도 쓸 수 있지 않나? ‘뿐’은 의존 명사이지만, 앞에 꾸미는 말 없이 이렇게 문장을 시작할 수 없다. 흔히들 이렇게 쓰긴 하지만, 이렇게 쓰면 틀린다. ‘그럴 뿐만 아니라’ 또는 ‘그뿐만 아니라’라고 써야 맞는다. ‘나름 열심히 해’, ‘때문에 우리는 더 알차게……’와 같은 문장도 문법적으로는 틀린 문장이다.

 

 

인용격 조사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하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고, 라고’는 인용격 조사다. ‘고’는 간접 인용에 쓰이고 ‘라고’는 직접 인용에 쓰인다. 영어의 직접 화법과 간접 화법은 열심히 익히면서 우리말의 인용격 조사는 대충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너만 있으면 돼” 하고 그가 말했다고 치자. 그러면 간접 인용으로는 “그는 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라고 말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는 나만 있으면 된다라고 했어”, 이렇게 말을 전하면 어색하다. 직접 인용을 할 경우에 인용격 조사 없이 ‘하고’를 쓰기도 한다. “이 형사는 ‘움직이지 마!’ 하고 크게 소리쳤다.” 이럴 때의 ‘하고’는 조사가 아니라 동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그러나 ‘라고’는 인용격 조사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이 형사는 ‘움직이지 마!’라고 크게 소리쳤다.”

 

 

주격 조사
이미 알려진 사실에 대해 쓸 때 ‘은/는’을 쓴다. 이야기책에서는 ‘옛날 어느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처럼 ‘가’라는 주격 조사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정보에는 ‘가’라는 주격 조사를 쓰는 것이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그런데 그 농부는 걱정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하고 보조사 ‘는’을 쓴다. 앞에서 이미 농부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농부의 존재는 이미 알려진 정보다. 그래서 두 번째 문장에서는 보조사 ‘는’을 써서 앞에서 말한 그 농부를 화제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보조사 ‘은/는’을 쓰면 글이 어색해진다. ‘옛날에 심청이라는 마음씨 착한 소녀는 살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하멜른이라는 도시는 있었습니다.’ 어색하지 않은가? 새로운 정보에는 격조사 ‘이/가’를 쓰고 이미 알려진 정보에는 보조사 ‘은/는’을 써야 자연스러운 글이 된다.

 

 

형용사
'행복하세요!'는 말이 되지 않는다. ‘부지런하다’, ‘행복하다’는 형용사로, ‘~하자’ 같은 청유형이나 ‘~해라’ 같은 명령형으로는 쓸 수 없다. 동사만이 청유형이나 명령형이 될 수 있다. 동사에는 명령형 어미 ‘-어라/-아라’ 그리고 청유형 어미 ‘-자’가 결합할 수 있지만, 형용사에는 그럴 수 없다. ‘은교야, 일어나라’(○, 동사). ‘인나야, 이제 그만 가자’(○, 동사). ‘손님, 행복하세요’(×, 형용사). ‘우리 다 같이 성실하자’(×, 형용사).


의도를 나타내는 어미 ‘-려’와 목적을 나타내는 어미 ‘-러’와 함께 쓰일 수 있으면 동사이고, 그렇지 않으면 형용사다. ‘그들은 내일 일찍 떠나려고 한다’(○, 동사).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동사). ‘혜교는 예쁘려고 화장을 한다’(×, 형용사). ‘아인이는 검으러 선탠을 한다’(×, 형용사).

 

 

동사
‘시키지도 않은 일, 가로막지 않는 것’에서 ‘않다’는 보조 동사다. ‘필요하지 않은 일, 옳지 않은 처사’에서 ‘않다’는 보조 형용사다. 그러므로 ‘꼭 필요하지 않느냐?’(×)는 ‘꼭 필요하지 않으냐?’(○)로,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느냐?’(×)는 ‘그렇게 하는 게 옳지 않으냐?’(○)로 써야 한다.

 

 

높임말
용언이 여러 개일 경우, 각 용언에 모두 ‘-시-’를 붙이면 문장이 어색해진다. ‘할머니가 버스에 앉으셔서 책을 읽으시고 계셨다.’ 이 문장은 그냥 이렇게 고치는 게 낫다. ‘할머니가 버스에 앉아서 책을 읽고 계셨다.’


주체를 직접 높이지 않고 주체에 딸린 것들, 이를테면 가족, 신체의 일부, 소유물 등까지 확대하여 높임으로써 주체를 높일 때가 있다. 이것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요즘 대통령께서는 고민이 많으십니다’에서 ‘고민’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는 높임의 대상이 되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고민이기 때문에 높임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고민을 높여서 표현함으로써 실제로 높여서 표현해야 할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간접 높임을 할 때에는 특수 어휘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시-’를 붙여서 나타내야 한다. ‘사장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있으시겠습니다(○).’ ‘아버지는 다치신 다리가 아직도 편찮으십니다(×)/아프십니다(○).’ ‘선생님께는 따님이 또 한 분 계십니다(×)/있으십니다(○).’ 이처럼 직접 높임은 특수 어휘로 하지만, 간접 높임은 어미 ‘-시-’로 한다. ‘계시다/있으시다’, ‘편찮다/아프시다’를 각각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철저히 압존법을 지켜야 하지만, 사회에서는 좀 다르다. 압존법을 지킨다면 ‘사장님, 이 부장은 오늘 출장입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장님, 이 부장님은 오늘 출장이십니다’라고 말해야 어법에 맞는다. 아무리 아랫사람이지만 사장에게도 이 부장은 존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시제
이오덕 선생님은, ‘-았었/었었-’을 사용하는 것은 서양말 어법이고 우리말에는 없는 어법이라고 했다. ‘작년에는 해진이가 여기에 왔었지’라는 문장은 ‘작년에는 해진이가 여기에 왔지’라는 문장과 의미가 같다는 것. 그래서 굳이 ‘왔었지’라고 하지 말고 ‘왔지’라고 해야 더 우리말답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에도 해진이가 여기에 왔었지’라고 보조사 ‘는’을 ‘도’로 살짝 바꾸어 말하기만 해도 ‘올해도 해진이가 여기에 왔다’는 뜻이 된다. 꼭 ‘-았었/었었-’을 사용한다고 해서 현재와는 단절된 사건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러분은 어떤가. ‘-았었/었었-’을 사용할 때와 ‘-았/었-’을 사용할 때, 의미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쨌건 꼭 써야 할 필요가 없다면 ‘-았었/었었-’ 사용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내일 제네바로 떠난다’, ‘그들은 모레 한국에 온다’처럼 현재 시제로 충분히 미래 시제를 표현할 수도 있다. 이것을 보면 우리말의 시제를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원 체계가 아니라, ‘과거·현재’또는 ‘과거·비과거’의 이원 체계로 생각해 볼 만도 하다.


‘혜교는 환자를 진찰하는 중이다’처럼 ‘-는 중이다’도 진행상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 표현에는 동작성이 강한 동사만을 써야 한다. ‘알다, 믿다’처럼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를 쓰면 어색하다. ‘나는 그 말을 아는 중이다’(×). ‘나는 네 말을 믿는 중이다’(×). 부정형에도 이 표현을 쓰면 이상하다. ‘나는 어제 밥을 안 먹는 중이었다’(×). ‘나는 학교에 안 가는 중이다’(×).

 

 

피동태
‘잊혀진 계절’처럼 능동사(잊다)에 피동 접미사가 붙어서 피동사가 되었는데(잊히다), 거기에 다시 ‘-어지다’를 붙인 이중 피동도 있다. ‘잊힌 → 잊혀진’, ‘되는 → 되어지는’, ‘나뉜 → 나뉘어진’, ‘끊긴 → 끊겨진’, ‘찢긴 → 찢겨진’, ‘믿기지 → 믿겨지지’ 등이 흔히 쓰이는 이중 피동 표현이다. 피동을 한 번만 써서는 의미가 약하다고 생각해선지 이런 이중 피동을 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피동을 한 번 쓰는 것과 두 번 쓰는 것에는 의미의 차이가 조금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중 피동이 아니면 어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언어 습관에 따른 부분적인 현상일 뿐,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다. 이중 피동은 군더더기 표현이다. 문법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 모든 중복 표현이 대개 그렇듯이 문체상으로도 그리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사동태
원래 사동의 뜻을 지니는 단어에 또 ‘-시키다’를 붙여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 예를 들어 ‘신장하다’는 ‘세력이나 권리 따위가 늘어나다, 또는 늘어나게 하다’라는 뜻이고, ‘오염하다’는 ‘더럽게 물들다, 또는 더럽게 물들게 하다’라는 뜻으로, 주동의 의미뿐만 아니라 사동의 의미도 지닌다. 그러므로 ‘신장시키다, 오염시키다’라고 쓸 이유가 없다.


또, ‘유발하다’는 원래가 ‘어떤 것이 다른 일을 일어나게 하다’라는 사동의 뜻이므로 ‘유발시키다’라고 쓰면 틀린다. ‘소개하다’도 흔히 ‘소개시키다’로 잘못 사용되는데, 본래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양편이 알고 지내도록 관계를 맺어 주다’라는 뜻으로 ‘나는 은숙이에게 종권이를 소개해 주었다’라는 식으로 사용한다.

 

 

띄어쓰기
‘-씨’도 ‘성씨 자체나 그 가문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그래서 ‘그의 성은 김씨입니다’에서처럼 붙여 쓴다. 그런데 ‘씨’는 ‘같은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로서 명사이기도 하고,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어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로서 의존 명사이기도 하다. 명사나 의존 명사일 때는 ‘그 일은 김 씨가 하기로 했다’에서처럼 띄어 쓴다. 접미사인지 의존 명사인지 간단히 구별하는 방법은 성씨를 가리킬 때에는 접미사, 사람을 가리킬 때에는 의존 명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박씨 성을 가진 부인은 ‘박씨 부인’이라고 하고, 누군가의 부인인 어른 여성은 ‘아무개의 부인 박 씨’가 되는 것이다.


합성어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하고, 구는 두 단어 이상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덤벼서 들다’라는 말은 없으므로 떼어 놓아서는 안 된다.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덤벼들다’는 구가 아니라 합성어다. 또한, 실제 동작의 순서와 거꾸로 배열되어 있는 말은 백발백중 합성어다. ‘건너뛰다, 알아듣다’는 굳이 동작의 순서를 따져 본다면 ‘뛰어서 건너는’ 것이고 ‘듣고 나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단어를 떼어 놓을 수 없는 합성어다.


‘돼지같이’는 붙여 쓰고, ‘돼지 같은’은 띄어 쓴다. 왜냐고? ‘같이’는 조사고, ‘같은’은 형용사니까. ‘눈곱만큼’은 붙여 쓰고, ‘먹을 만큼’은 띄어 쓴다. 왜냐고? 앞의 ‘만큼’은 조사고, 뒤의 ‘만큼’은 의존 명사니까.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쓰되, 조사는 붙여 쓴다는 것이 띄어쓰기의 첫째 원칙이다. 그러니까 띄어쓰기도 제대로 하려면 그 단어가 명사인지 조사인지 품사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고는 싶다만 돈이 없다’에서 ‘만’은 ‘마는’의 준말로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 따위를 나타내는’ 보조사다. 이때의 ‘마는/만’은 ‘한정’의 뜻을 더해 주는 ‘돈이 부족하니까 그것만 사자’의 ‘만’과는 엄연히 다르다. ‘미안하지만/미안하지마는’, ‘그러하지만/그러하지마는’ 같은 연결 어미와 의미가 같다고 생각하면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2년 만에 집이 지어졌다’에서 ‘만’은 ‘시간이 얼마간 계속되었음’을 뜻하는 의존 명사다. ‘그가 화를 낼 만도 하다’에 쓰인 ‘만’도 ‘앞말이 뜻하는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다. 그러므로 이들 ‘만’은 보조사 ‘만’과는 다를뿐더러 조사가 아니라 명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그 선수는 이번에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었다’에서 ‘만하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가치가 있다’는 뜻을 지닌 보조 형용사다. 그러므로 이 경우의 ‘만’도 조사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


‘과일에는 사과, 배, 감 들이 있다’처럼 두 개 이상 되는 사물을 나열한 끝에 쓰인 ‘들’은 의존 명사다. 이럴 때 ‘들’은 의존 명사 ‘등’과 비슷한 의미로, 마찬가지로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그래서 ‘여자와 남자들’은 여자 한 명과 남자 여러 명을 뜻하지만, ‘여자와 남자 들’은 여자 여러 명과 남자 여러 명을 뜻한다. 띄어쓰기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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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1-18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고등학생들이 보는 문법 참고서에서는 았었/었었 같은 표현들을 영어의 과거완료처럼 쓰인다고 가르치기도 하더군요. 어떤 것이 맞는 이야기인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어요.

북다이제스터 2018-01-18 16:28   좋아요 1 | URL
‘았었/었었‘에 있어서, 이 책도 둘 다 맞다는 중립적 입장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8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대 한국어의 의미, 사용용례가 상당부분 영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하니, 바르게 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8 16:1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맨날 ‘기자 20명이’라고 쓰지 않고 ‘20명의 기자가’라고 씁니다. ㅠㅠ

AgalmA 2018-02-15 0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쓴 글보다 이런 문법 글 볼 때 글 쓸 의욕이 팍 꺾입니다ㅜㅜ

북다이제스터 2018-02-17 23:27   좋아요 0 | URL
전 주변에 지적질쟁이들이 많아서 숨어서 보는 책입니다. ㅎㅎ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 그 많던 언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 지음, 김정화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언어 없는 땅, 심장 없는 땅 - 웨일스 속담
언어 속에 삶이 있고, 언어 속에 죽음이 있다. - 하와이 속담


동태, 생태, 북어, 노가리, 코다리, 황태, 백태, 먹태, 파태, 무두태 등... 명태의 서로 다른 이름이다. 전 세계 6천여 개의 언어가 있다지만, 우리말만큼 명태에 이렇게 다양한 이름을 붙여준 언어가 또 있을까 싶다. 영어에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한글은 전 세계 6천여 개 언어 중 12번째로 가장 많은 사용자가 있기에 이러한 우리말이 사라질 염려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 사멸의 기준이 되는 10만명 이하가 사용하는 언어는 5천여 개가 넘는다. 그 언어들은 곧 사멸할 것이다. “언어들이 사라질 때, 그 언어에 담긴 세계관도 죽어간다. 문화의 틀 속에서 인간의 경험을 형상화시키면서 인간의 정신 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언어들이 무서운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지난 5백 년 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세계의 언어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 에트투리어, 수메르어, 이집트어 등 고대 제국의 언어들은 수백 년 전에 사라졌다. 아프리카 수단 지역에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4세기 사이에 존재했던 메로에 제국의 공용어였던 메로에어는 오늘날까지도 해독되지 못한 채 비문으로만 남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언어는 일 년에 한 가지 이상 사라지고 있다. 유럽과 접촉하기 전까지 250종 이상의 언어가 분포”했다. 또한, “1492년 콤럼버스가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만 해도 미국에서는 3백 종의 언어가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던 것이 지금은 겨우 175종만이 사용된다. 아마도 한 세대만 더 지나도 모두 사멸하고 말 것이다.” “이 책은 무슨 이유로, 그리고 어떻게 언어들이 사라져 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사라지는 언어는 “자연사하는 것이 어니라 살해당하는 것이다. 글랜빌 프라이스 같은 학자는 영어를 ‘언어 살해자’라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은 언어를 쓰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을 해 보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중심부 경제의 주류에 편입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더 큰 집단의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포함한 몇몇 국제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진보가 아니겠는가? 자신들의 언어를 포기하고 싶다면, 그건 그들의 주체적 선택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을 인용할 필요가 있겠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백인들의 말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영원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말을 알아야 한다.” “언어는 궁극적인 상징체계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표시하는 데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공유하는 의미나 경험을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각 언어마다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창이 있다. 모든 언어는 살아 있는 박물관이며, 언어가 스스로 일구어 낸 모든 문화의 기념비와도 같다.” “자신의 환경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수세기를 살아온 작은 집단들이 사용했던 언어들 속에는, 자연 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담겨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우리 모두가 의존하는 자원을 관리하는 데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한 언어의 일부분을 다른 언어와 비교해서, 특별한 문법 구조로 인해 어떤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여러 가지 사물이나 상황을 더 쉽고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일은 언제나 가능하지만, 원시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언어를 바라볼 때, 우리는 반드시 우리 언어만이 논리적이라고 간주할 만한 필연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을 비추는 창으로서 특별히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언어는 없다.” “예를 들어 하와이어나 태평양의 여러 다른 토착 언어들에서 토지는 양도 불가능한 소유의 개념을 나타낸다. 이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대해 원주민들이 느끼는 깊은 유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행위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고, 사람들이 언제나 자기가 접하는 언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를 택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러는 편이 많은 사람들과 정보와 용역을 교류하는 데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수의 언어를 계속 고수한다면, 그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다른 언어를 습득하는 비용이 어떤 이유에서든 너무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진 그 언어의 문화적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백한 오류이다.”


“언어가 단지 의사소통하고 사고하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사실상 ‘현실’ 세계란, 상당 부분이 집단의 언어 습관 위에 무의식적으로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 어떤 두 언어도 동일한 사회적 현실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을만큼 비슷하지 않다. 서로 다른 사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다. 같은 세상에 이름만 다르게 붙인 것이 아니다.”

 

 

 

 

 

소수 부족은 시간이 흐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현금 경제에 이끌려 들어간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앙 정부가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할 것을 요구하면, 소수 부족의 근로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물건이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을 받고 파는 물건 하나하나가 전통적인 물물교환 체제에는 손실이 되는 것이고,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서 가정에서는 필요한 식량을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하는 것이다. 식량을 구입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현금 경제에 더 많은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한다. 이는 자기 집안을 위한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나 작물이 더 줄어듦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이 계속 되풀이 되면서 결국 소수 부족이 국가 경제에 편입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은 전체적인 경제 활동이 증진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정부측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마냥 기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경제적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정치적인 지배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각 가정이 그만큼 행복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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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로우 잉글리시 전치사 혁명 - 거꾸로 잘못 배운 전치사 바로잡기
최재봉 지음 / 애로우잉글리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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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에 독후 평가 별점 5개를 줄줄 나도 몰랐다. 창피하지만, 수십여년 간 영어 공부를 했어도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여태 몰랐다. 전치사(preposition)는 흔히 ˝명사, 대명사 앞에 놓여 명사, 대명사와의 관계(위치, 시간, 방향, 소유 등)를 나타내는 품사˝라고 정의되는데, 바로 이점이 그동안 날 혼란스럽게 했다. 이러한 정의는 전치사가 그 다음에 나오는 명사, 대명사와의 관계만을 설명하고 앞에 위치한 주어 성격의 명사, 대명사와의 관계를 감춘다. 전치사의 핵심은 그 다음에 오는 명사, 대명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위치한 명사, 대명사에 대한 상황 설명과 관계에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영어의 전치사는 전치사 보다 ‘앞에 나와있는 명사‘ ‘앞에 나와 있는 존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말이라는 것! 꼭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아주 미묘하지만 큰 차이를 알 수 있는 예시 문장이 ‘Two men nap outside the railway station.‘이다. ‘두 남자가 기차역 밖에서 잠자다‘란 의미가 아니라, ‘두 남자가 잠잔 곳은 바깥인데, 안쪽은 기차역‘이란 의미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Outside the railway station은 ‘기차역 바깥쪽‘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자고 있는 쪽이 바깥쪽이다. 주어를 나라고 할 경우, outside는 내가 있는 쪽이 바깥쪽이 된다. 내가 있는 곳이 바깥쪽이니 안쪽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문장의 단어 순서대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모를 경우 영어 직독직해, 직청직해가 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A man climbs up slop to the top of the mountain, 2400m above sea level.‘이란 예문을 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먼저 비슷한 예문인 ‘I walk up stair‘를 보면, ˝계단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위로 가는데, 밝고 지나가는 것이 계단이란 의미˝인 것과 같다. 2400m 의미도 우리와 다르다. ˝우리나라 사람은 높이를 잴 때 자신이 있는 곳에서 위로 높이를 본다. 그런데 영어는 앞에 먼저 산이 나왔기에 산의 입장에서 높이를 재야 한다. 산의 높이를 아래에서부터 재는 게 아니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재어야한다. 이것이 바로 원어민식 사고의 전개다.˝ 그렇기에 2400m 다음에 전치사 above가 나온다. ˝above는 ‘해수면 위‘가 아니고, 산의 위치가 위에 있다란 뜻이다. 그럼 자연스러운 순서에 따라, 산이 위에 있으니 그 다음에 above를 통해 다음 시선은 밑을 향해야 한다. 그래서 밑을 봤더니 바다가 있다는 의미다.˝


˝영어에서 전치사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 전치사가 영어 문장에 나올 때, 그 전치사는 신호등처럼 전치사 ‘앞‘에 위치한 영어단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표지판 같은 역할을 한다.˝ 영어 문장은 ˝주어 다음 동작이 있고, 동작이 어어져 있는 대상이 있고, 또 나아가서 만나는 대상이 있게 되는 흐름˝인데, 전치사가 동작과 이어지고 만나는 대상과 관계를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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