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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스크바국은 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서구의 방문자들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모스크바국을 마법의 세계와 비슷한 무엇인가로 묘사했다. 기이하기도 하고, 호화롭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고, 그들이 그때까지 보았던 어떤 것과도 달랐으며, 아주 야만적이기도 했다. 외국의 사절들은 호화로운 복장, 특히 모피 옷, 눈에 띄는 회색 수염, 정교한 궁정 예식, 풍성한 연회 그리고 엄청난 음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모스크바국을 떨어져 있는 이상한 세계로 보았던 견해는 어느 정도의 진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모스크바국 러시아는 키예프 루시와는 대조적으로 비교적 고립되어 있었다. 게다가 모스크바국 러시아는 종교와 의식주의에 기반을 둔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외부의 어떠한 영향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으며 독선적인 태도를 취했다.



2.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말까지 남부 러시아를 지배했다. 당대에 살았던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스키타이인들이 세운 국가는 최대로 확대되었을 때,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의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는 캅카스를 넘어서 소아시아에 이르렀다.


스키타이인들은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황소가 끄는 텐트처럼 생긴 마차에서 생활했으며, 식량으로 삼기도 했던 말의 숫자로써 자신 재산을 셈했다. 그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탁월한 경기병 부대를 구성했는데, 말의 안장을 사용했으며 활과 화살과 단검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다. 기동력과 치고 빠지기 작전에 기반을 둔 그들의 전술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심지어 강력한 이란 계통의 적수인 페르시아인들도 자신들의 고국 영토에서 그들을 패퇴시키지 못했을 정도였다.


스키타이인들은 남부 러시아에서 강한 군사 국가를 수립했으며, 수 세기 이상 그 지역을 상당히 안정시켰다. 이 시기에 토착 문화는 계속해서 발전하면서, 새로운 접촉과 기회를 통해서 풍요로워졌다. 특히 스키타이인들의 유목민적 성격과 목축 중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흑해 북부의 스텝 지대에서는 농업이 계속해서 번성했다.


3.

블라디미르가 기독교를 수용한 것은 정치적인 행위였다. 그는 군주가 비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탁월한 신과 세속적인 정치적 권위와 결합된 교회를 강조하는 종교의 도움을 받아서 다양한 민족들을 단일한 사회로 통합시키고, 자신 및 자신의 왕조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에 도움을 얻으려고 계획한것이다. 기독교화는 비잔티움과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하는 데에 용이하기도 했다.


4.

조금도 과장 없이 러시아 목조 건축은 놀랄 만한 업적이다. 각각 약 6~7미터 길이의 나무기둥을 쌓아놓은 직사각형 꾸조물인 클렛 혹은 스럽은 고대 러시아 목조 건축의 기본이었다.


러시아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비잔티움의 교회 건축 규범을 자신의 목조 건축에 적용시켰다. 교회에서 필수적인 세 부분은 다음과 같이 세워졌다. 항상 동쪽에 있는 성소는 작은 클렛으로 이루어졌다. 회중이 서 있는 교회의 중심 부분은 커다란 이중 클렛으로 건축되었는데, 하나의 클렛은 다른 클렛 꼭대기 위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서쪽 편에 있는 또다른 작은 클렛은 프리트보르(pritvor), 즉 독립된 현관 입구를 이루었다. 이곳은 원래 초심자들이 본당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잠시 기다리던 곳이었다. 커다란 클렛으로 된 두 개의 경사면을 가진 높은 지붕 위에는 작은 쿠폴라(cupola)가 얹혀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이러한 단순한 고대 형태의 교회는 오래된 성상화에서 볼 수 있으며, 그중 북부 러시아에 있는 몇몇 교회 -그러나 17세기에 건축된 것들-는 우리 시대까지 전해진다.


교회 건축에서는 다양한 발전이 뒤따랐다. 특히 교회의 지붕은 점점 더 가파르게 되어, 그중의 많은 것들은 쐐기 모양과 비슷해졌다. 하나 혹은 다섯 개의 쿠폴라를 가진 교회를 건축하던 비잔티움의 전통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인들은 석재로든지 목재로든지 간에 더 많은 쿠폴라를 선호하는 성향을 보였다. 키예프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에는 13개의 쿠폴라가 있었고, 키예프에 있는 또 다른 교회인 티테에는 25개의 쿠폴라가 있었다.


5.

프랑스는 계속해서 러시아의 적대국으로 남아 있었다. 프랑스는 대륙의 지배권을위한 최대 적인 합스부르크 가문을 패퇴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서 투르크, 폴란드, 스웨덴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는 그전부터 동유럽에 있는 이들프랑스의 세 동맹국과 반복적으로 싸움을 벌여왔다.


그와 대조적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배하던 오스트리아는 러시아가 가장 신뢰할 동맹국이었다. 이 두 나라는 프랑스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러시아에게는 좀더 중요한 사실로서 투르크와 스웨덴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 스웨덴은 30년 전쟁에 대대적으로 개입한 것을 출발점으로, 독일 지역에서 계속해서 합스부르크 가문 이익에 거스르는 행동을 해 왔다.


6.

푸시킨은 죽은 이후에, 심지어 그의 짧은 생애 동안보다 훨씬 더 독자적인 러시아의 ‘국민 시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했다. 국민 시인이라는 표현은 푸시킨이 살아 있을 때 고골이 다음과 같이 이미 사용한 구절이었다. ˝푸시킨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국민 시인에 대한 생각을 상기시켜준다.……푸시킨은 러시아 정신이 명백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다.….…그의 내면에 러시아의 자연, 러시아의 영혼, 러시아의 언어, 러시아의 성격이 반영되어 있다.˝


1880년에 모스크바의 푸시킨기념상의 제막식에서 연설(도스토옙스키에 따르면, 이 연설은 황홀감의 울부짖음˝과 마주쳤다)을 했던 도스토옙스키에게, 푸시킨은 정확히 말해서 어떤 국가의 정신이든지 표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러시아적인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목소리는 러시아 자체처럼, ˝유럽의 갈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하고, 우리의 보편적이며 인간적이고 통합적인 러시아의 혼 속에서 유럽적인 권태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예언적인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주장은 완전히 발달된 푸시킨 신화가되었고, 1800년대 후반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아주 강력하게 발전되었다.


7.

레르몬토프는 비록 푸시킨만큼 결코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푸시킨의 그늘 속에 가려져서는 안 될 작가이다. 1814년에 태어나서 1841년에 결투를 벌이다 사망한 레르몬토프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상당량의 다채로운 문학 작품을 남겨놓았다. 레르몬토프는 푸시킨과는 기질이나 관점이 아주 달랐으며, 러시아 문학계에서 대표적인 낭만주의적 천재에 가장 근접했던 ˝러시아의 바이런˝ 이었다.


그의 생애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반항은 푸시킨의 죽음과 관련하여 러시아 상류사회를 비난하는 그의 아주 멋진 시와 같은 공개적인 의사 표시와,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사적인 문제 모두에서 표현되었다. 레르몬토프는 생애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장엄한 장편시인 「악마(Demon)」를 저술하거나 개작하면서, 차이와 소외의 정신을 상징하는 악마 현상을 통해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탐구했다.


나는 희망이 피어오르는 바로 그 순간에
시선 하나로 그것을 꺾어버리는 자,
나는 아무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로부터 저주받는 자,
나는 내 지상의 노예들을 향한 천벌,
나는 인식과 자유의 황제,
나는 하늘의 원수, 나는 자연의 재앙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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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리더십 - 제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혁신을 위한 리더의 조건
김진호.최용주 지음 / 북카라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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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빅 브라더는 기업일지도...



“미국 기업 엑시엄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개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기업에 판매한다. 액시엄은 한 사람의 개인 정보를 약 1,500개 항목별로 평생 동안 추적하면서 관리한다. 당신이 어디에 살고 직업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몸무게, 소비 패턴, 정치 성향, 가족 건강, 휴가 계획까지 속속들이 안다.


액시엄은 약 3억 명에 이르는 거의 모든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의 개인 정보를 보유하고, 연간 50조 건의 거래 내역을 분석한다. 미국인의 일상생활에 대해 미국 연방수사국이나 미국 국세청보다 훨씬 깊이 있게 조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9·11 테러 당시 19명의 가담자 가운데 11명에 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액시엄은 일단 특정한 개인의 정보를 취득하면 그 사람에게 13자릿수로 만들어진 번호를 부여한다. 이후에는 모든 정보가 이 번호로 분류·관리된다. 수집되는 정보는 나이, 주거지, 성별, 피부색, 취향, 정치 성향부터 선호하는 휴가지, 기르는 동물, 물품 구매 행태, 교육 수준, 수입, 병력病歷, 재정 상태, 가족 관계, 잡지 구독 여부 등 엄청나게 많다. 액시엄의 장점은 그들이 가진 정보가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데이터라는 데 있다. 즉,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정보다.


액시엄은 사람들이 생활에서 남기는 흔적(데이터)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예를 들면 공문서 신청, 신문·잡지 정기 구독, 각종 설문 참여, SNS 활동,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보통 5~6개씩 갖고 있는 고객 서비스카드 사용 내역, 부동산 담보 대출 신청, 보험 가입 등을 수집한다. 액시엄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데이터 수집 노하우로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개인 정보를 엄청나게 축적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엑시엄은 현재 4,000개 이상의 데이터 뱅크를 관리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신용카드 회사 10곳 중 7곳, 미국의 대형 백화점 10곳 중 6곳,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 중 8개 회사도 액시엄의 고객이다. 액시엄의 매출은 2010년부터 약 9억 달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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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영웅 1인의 성공 신화


둘. 여건과 조건이 다른데 벤치마킹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


셋. 고객 불행을 기반으로 한 성공


넷. 종업원 고용을 우습게 보는 태도


다섯. 결국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배금주의

 

 

 

“카지노 기업인 해리스는 빅데이터 리더십 덕분에 위기에서 세계 최대 카지노 그룹으로 우뚝 섰다. 빅데이터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화려한 카지노 기업도 데이터 분석으로 승부를 갈랐다. 이 이야기는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데이터 분석적인 리더를 영입해 최고 성과를 거둔 사례로 유명하다. 1998년 해리스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서비스 경영을 가르치던 게리 러브먼 교수를 영입했다. 그의 분석 지향 리더십으로 해리스는 승승장구하게 됐고, 업계 라이벌인 시저스를 인수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카지노 해리스는 지역별로 산재된 자사의 카지노 시스템을 통합해 전국적으로 고객들애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데이터베이스를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정책에 적극 활용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고객을 인구 통계변수와 지출 이력을 바탕으로 무려 80개의 이질적 집단으로 구분한 뒤 각 집단의 특성에 적합하도록 차별적으로 마케팅을 했다.

 

 

가령 개개인이 잃고 따는 금액을 실시간 추적하다가 어떤 개인이 그의 인내 한계점(영어로는 ‘pain’ threshold라고 한다), 즉 총 잃은 금액이 도박을 중지하도록 만드는 액수에 가까워지게 되면 직원이 접근해 공짜 식사나 쇼 티켓을 무료로 제공해 기분을 누그러뜨리고 계속 호텔에 머물도록 유도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에 대한 인센티브나 성과급도 그들이 창출한 매출이 아니라 그들이 봉사했던 고객의 만족을 기반으로 산정했다. 이는 서비스에 만족했던 고객이 다음 해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는 데이터 분석 결과 때문이었다.

 

 

심지어 게리 러브먼 교수는 “우리 회사에서 해고되는 사유는 3가지다. 절도, 성희롱, 근거가 되는 데이터 없이 말하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게리 러브먼을 영입한 후 고객들이 카지노 해리스에서 도박에 지출한 돈은 약 40퍼센트가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도 평균 27퍼센트나 늘었다. 특히 2003년에서 2006년 사이 해리스 주식 가격이 14달러에서 85달러로 약 6배나 폭등했다. 또한 2005년에는 전세계 7개국에서 51개 카지노를 운영중인 세계 최대 카지노 그룹 시저스를 인수한 후 기업명을 시저스엔터테이먼트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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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비판하려면 그 대상이 지닌 한계를 뚜렷이 밝혀 드러내면 된다. 이것을 비난과 혼동하면 안 된다. 저자 깜냥과 한계를 지적해 주는 건전한 비판 덕에 학문이 발전한다. 구체적으로 비판하면 (비판한 사람) 자신 한계도 함께 노출되므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다른 사람이 다시 지적해 줄 수 있다. 그러면 최초 비판자인 나는 창피하여 얼굴이 화끈거리겠지만 깨닫지 못한 걸 알게 됐으니 고맙게 받아들이면 된다. 합리적으로 비판하자. 비판이나 제안으로 당신이 속한 공동체의 지적 자산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유유, 2014)

 

 

 

 

 

 

 

 

 

 

 

 

 

 

이 책 <비즈니스모델 4.0> 서문은 무척 공들여 쓴 느낌이다. 각 문장이 간결한 단문으로 읽기에 편하고, 논리 상 흐름도 부드럽다. 경영의 핵심 전략 ‘차별화’를 대중 개념어 ‘다르게’로 표현하여, 독자가 처음부터 책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끝까지 읽지 않아도 책에 무엇이 담겨 있으며,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한눈에 감 잡을 수 있게 한다. 몇 페이지의 서문에서 저자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필요한 인용문이 몇 개 있다. 그렇지만 다소 적절치 않은 경우도 있다. 서문에 담긴 인용 두 가지만 말해 보자.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적응을 잘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비즈니스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는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도 이에 적응하는 기업만이 생존하고 성장합니다.”

 

 

저자가 말한 다윈 인용문에서는 핵심 단어, ‘우연한 돌연변이’가 빠졌다. ‘가장 강한 종이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우연한 돌연변이로 인해) 변화에 가장 적응을 잘하는 종이 살아남는다.’ 진화론에서 종이 변화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것은 단지 ‘우연’한 일이다. ‘비즈니스모델’을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노력해서 만들어야 하는 기업체에는 적절치 않은 인용이다. 굳이 진화론을 경영 이론에 제대로 접목한다면,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 비즈니스모델을 계획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고, 기업 성공이란 결국 대부분 ‘우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원래 세상사에 더 적합(fitness)하지 않을까? 저자의  또 다른 ‘적절한’ 인용문을 보자.

 

 

“1998년 일론 머스크와 함께 온라인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PayPal)을 설립해 2002년 15억 달러라는 거금을 받고 이베이에 매각한 피터 틸은 ‘성공한 기업은 모두 달라서 독특한 문제를 해결하고 ‘독점’을 구축한다. 실패한 기업은 모두 비슷비슷해서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다.”

 

 

재미있는 인용 글이다. 이 같은 말을 한 피터 틸은 대단히 솔직하고 센스 있으며, 언어적으로도 충분한 소양이 있는 듯 하다. 그의 말 모양새가 무척 익숙한데, 톨스토이의 책 <안나 카레리나> 첫 문장과 구조가 흡사하나 내용은 반대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안나 카레니나 1>(민음사, 2009)

 

 

유명한 문장이라 많이 회자되며, 읽는 사람마다 해석도 다양하다. 내 해석의 도움은 ‘필요조건, 충분조건’이다. 불행한 가정은 단 한가지 필요 조건만 있어도 불행하며, 행복한 가정은 모든 충분 조건이 있어야 하기에 행복하기란 매우 힘들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같은 뜻을 피터 틸 인용문에 그대로 적용하면 대부분 기업은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해도 실패하며, 기업 성공은 ‘우연’한 일이며 불가능에 가깝지만, 굳이 성공하려 든다면 시장을 ‘독점’하는 방법 이외는 없다는 솔직한 표현이다.

 

 

무수한 경영학 이론이 있지만, ‘현실’적인 경영학 이론이 분명히 밝히든 혹은 감추든, 기업 생존과 성장 열쇠는 결국 ‘독점’뿐인 셈이다. 하지만 ‘독점’은 명시적으로 불법이며, 인간적으로 반사회적이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이 경쟁적이고,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속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결합, 합병, 통합, 트러스트, 위탁 등 독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독점이 이윤을 늘리며, 반면 경쟁은 이윤을 줄이는데, 자본가가 왜 경쟁을 하겠는가? 제품 생산이 몇몇 기업에 집중됨에 따라 경쟁에서 독점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초래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경쟁이 독점으로 바뀌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경쟁’ 그 자체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산업과 금융 자본의 결합을 통해 몇몇 기업들은 엄청난 규모로 팽창하여 독점 대기업이 되었다. 독점 자본가들은 가격을 자기 뜻대로 정하며, 그들이 가장 높은 이윤을 올릴 수 있는 지점에서 가격을 고정시킨다. 이밖에 기본적인 특허권을 장악하고 그들이 정한 가격에 따르는 후순위 기업들에게만 생산기술 사용을 허락하는 방식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한다.

 

 

독점 사업자는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내리려는 소매업자들에게 제품 공급을 거절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간다. 독점 사업자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산업의 기술 발전을 방해한다. 예를 들면, 듀퐁 연구소는 저렴한 안료인 ‘모나스트랄’ 시리즈를 새로 개발했다. 이것은 탁월한 기술적 진보였지만, 그 기술이 회사의 섬유 가격 수준을 높게 유지하는데 방해가 되어 섬유 부문의 이윤을 떨어뜨릴 수 있었기에, 듀퐁은 연구소에서 개발된 안료를 상품화하지 않았다. 게다가 독점은 상품의 질을 떨어뜨린다. 내구성이 떨어지면 소비자들은 제품을 더 자주 많이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상품 수요 감소 시, 독점 기업은 가격 하락을 방치하는 대신, 생산 감축을 유도한다. 이런 정책이 노동자들에게는 실업을 의미한다. 독점 사업자는 불안정한 가격 수준에서 자신 상품을 내다파는 것을 거절함으로써 공장을 놀리고 노동자를 해고한다. 이로 인해 소비자의 소득이 줄면서 경쟁 산업의 생산물 수요까지 하락한다. 결국 소득이 줄어든 경쟁 산업의 제품 생산자들은 여전히 고가인 독점 산업의 상품들을 구입하기 힘들어 진다.

 

 

자본가들은 흔히 자신 돈을 특정 사업에 투자하면서 돈을 잃을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마땅히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독점적으로 통제된 경제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독점이 만연한 경제 시스템에서는 위험을 감수한 주체가 독점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와 농민, 소비자다. 부익부 빈익빈 초래는 독점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독점 사업자는 노동 생산성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불황 시 생산 감축을 쉽게 하여 실업을 야기한다. 원료 공급지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독점 사업자들이 때때로 원료에 낮은 값을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가난해진다. 독점 사업자들은 상품 가격을 높게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휴버먼의 자본론>(어바웃어북, 2011)

 

 

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돈을 벌고 싶다면, 이 책 <비즈니스모델 4.0>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그렇지만 우리 공동체를 염려하고 자신 정신이 피폐해지고 황폐해지기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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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르네상스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전성호 부록 / 메멘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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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활동했던 “회계학의 아버지 파치올리는 모든 장부 기록자가 모든 회계장부에 십자가를 그려 넣음으로써 기록은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권장했다.” 그만큼 회계의 정확성은 신만이 알 수 있다. “회계는 부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믿기 힘들 만큼 취약하고 아주 위험한 존재다.”



“회계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사기의 가능성도 복잡해진다. 규제자들과 회계감사관들조차 미로처럼 복잡한 숫자와 재무 대수, 초고속으로 이루어지는 거래와 부채담보부증권 같은 복잡한 금융 파생상품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계감사 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사장은 감사란 애초에 불안전한 기술이며, 어떤 회사라도 위조 장부를 준비할 수 있는데 그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주장하며, 부실한 보고서를 기본으로 한 감사가 정확할지에 대해 스스로 우려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은행과 기업, 정부 기관은 운영의 엄청난 규모와 복잡성 탓에 회계감사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골드만삭스를 진짜로 감사하는 데 실제로 몇 명의 회계사가 필요할까? 1만 명? 4만 명?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가능한 임무인가? 어쩌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실 현재로써는 정부와 회계감사 법인들은 박테리아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재무 도구와 금융 수법을 따라잡을 수 없다.” 또한, 지자체와 정부의 부실 회계는 재앙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는 지자체와 정부의 회계가 ‘원시적 무정부’ 단계에 놓여 있다고 규정했다. 부유하건 가난하건, 모든 국가가 연금과 보건의료 비용, 사회기반시설 비용을 대차대조표에서 숨기고 있다.”



“불투명해진 세계 금융 시스템에는 경제 사이클을 넘어 이미 실패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와 근대 정부는 회계라는 내재적 약점을 안고 있다.” 이처럼 회계가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측면인 인간 모습을 감춘 착취 도구로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계속 성공하는 듯하다.



18세기 영국의 웨지우드 도자기 창업자인 조사이어 웨지우드는 회사 회계장부를 비용절감이란 미명 아래 착취와 통제 도구로 사용하였다. “그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이용했다. 웨지우드는 회계를 통해 노동의 간격에 값을 매길 수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술에 취해 ‘밥값도 못 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늘 불평하던 그는 노동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그는 근무일 수가 아닌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계산하는 미성년 노동자가 성인 노동자보다 훨씬 저렴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파악하게 되었다.”



미국 건국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도 회계 기록에 능했다. “제퍼슨은 18세기 프랑스 귀족을 동경하고 그들처럼 고상하게 살기를 원하는 귀족 지주였다. 노예제와 회계는 서로 잘 맞았고, 회계장부는 쉽게 아동이나 노예의 노동을 칸 속의 숫자로 바꿔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노예들이 배를 타고 사슬에 줄줄이 묶인 채 미국에 들어온 것처럼,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장부의 칸 속에서 상품으로 기록되고 팔려 나갔다.”



“발자크는 그의 소설 <금치산 선고>에서 회계가 ‘인간 마음의 비참함’을 감출 최적화된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회계 시스템은 도덕적 권리도, 잘못도, 심지어 행복도 측정하지 않는다”고 그는 회계의 본질을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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