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견된 작물재배와 정주커뮤니티의 유적은 대체로 1만 2,000년 전의 것이었는데,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국가의 유적은 기원전 3,300년 무렵의 것이다. 즉 작물재배가 시작되고 국가가 생길 때까지 8,000년 이상이나 걸렸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 정주를 했지만 본격적인 농경이나 목축으로 향하지 않고 수렵채집을 계속했다는 것, 그 때문에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경의 배신>를 쓴 제임스 스콧에 따르면 인류는 원래 정주하지 않았으며 정주하고 나서도 본격적인 농경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것은 중노동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역병과 기생충 등 많은 장애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실제 초기국가의 대부분은 역병이나 흑사병 같은 유행병에 의해 붕괴되었다. 또 정주를 해도 수렵채집을 계속한 것은 애당초 그것이 가능한 장소를 선택하여 정주했기 때문이다. 또 수렵채집을 하면 인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일이 없으며 트러블이 생겨도 바로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힘과 교환식>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1941년 ‘신석기 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는 농경 발명이 최초 촌락을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정주생활이 도기와 야금술 발명을 낳아 수천 년 만에 최초 문명이 싹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산뜻한 생각은 이제 뒤집어졌다.
수렵-채집이 실은 상당히 효율적인 생활방식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보기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문제다. 현재의 수렵-채집 부족들에 관한 민족지학적 연구는 하루에 3~5시간만 ‘일’을 하면 가족들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석기시대 농부들 유골은 수렵-채집으로 생활하던 조상들보다 더 심한 영양실조, 전염병, 치아 질환 흔적을 보여준다. 게다가 곡물에만 의존하여 사냥과 채집을 하던 때보다 식생활이 단조롭다. 인간이 처음 작물 사육에 성공한 뒤에도 농경은 오랫동안, 아마 1천년 이상 소수의 생활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농경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레 그루브에 따르면 약 2만 년 전에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가 더워지기 시작했고, 인간은 구세계 끝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알려진 세계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먹을 것은 여전히 풍부했지만, 기온이 상승하자 인간의 기생충들도 아프리카를 벗어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열대의 질병이었던 것이 온대 질병으로 바뀌었다. 그루브는 그 중에서 말라리아, 주혈흡충증, 십이지장충으로 인한 질병을 ‘공포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계속해서 두 번째 중대한 사건도 일어났다. 사냥 때문에 거대동물군이 멸종해버린 것이다. 전부 포유류였으므로 남은 포유류는 대형이라고 해야 인간과 비슷한 크기에 불과했다. 갑자기(진화적 견지에서 일순간이다) 기생할 곳을 잃은 세균 포식자들은 인간에게로 몰려들었다.
바꿔 말해 2만 년 전 이후 어느 시점에 세계에는 보건 위기가 닥쳤다. 질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간 생존을 위협했다. 질병 공격을 받은 초기 인간은 늘 이동하는 생활양식, 자식을 3년마다 낳는 관습으로는 일정한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인간은 자식을 더 자주 갖고, 인구를 늘리고, 멸종을 피하기 위해 정주생활로 전환한 것이다.
인류는 농사를 짓기 위해 정주한 것이 아니다. 그루브 이론에는 정주생활과 농경이 분리되어 있다. 수렵-채집 생활양식에서 촌락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정주생활은 이미 농경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생겨났다. 이것은 초기 인간과 그의 생각에 관한 우리 관점을 크게 변화시켰다.“<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생각의 역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