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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바그다드에서 우리가 만난 것을 정말 놀라운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전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제가 오늘 여기 도착한 것이, 이십 년 뒤 주인장이 바그다드로 이사해 가는 원인이 된 것입니까?”


바사라트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우연도 의도(목적)도 태피스트리의 앞뒤 면에 불과합니다. 둘 중 하나를 마음에 들어 할 수는 있지만, 한쪽이 진짜이고 반대는 가짜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요.”


“여전히 제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시는군요.”<숨>(엘리, 2019)

 

 

 

 

 

 

 

 

 

 

 

 

 

 

 

 

 


"과학적 방법은 ‘자연’이 객관성을 갖고 있다는 당연한 가정 위에 놓여 있다. 어떤 현상을 최종 원인, 즉 ‘목적’의 차원에서 해석함으로써 진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려 하는 체계인 것이다. 이 원리가 발견된 일시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갈릴레이와 데카르트가 정식화한 관성 법칙은 단지 역학의 기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과 우주학을 폐기함으로써 근대 과학의 인식론 기초를 구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은 의미의 과학은 단지 이것만을 기초로 하여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더하여 객관성 전제 위에 서는 엄정한 비판이 필요하다. 이는 영구히 논증할 수 없는 순수한 전제다. 자연 속 어디를 찾아보아도 추구해야 할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은 전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활설’이라는 사고법은 인간이 자신의 강력한 합목적적 의식을 무생물인 자연 속에 투영하는 일이다. 바꿔 말하면 자연 현상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주관적, 의식적이고 목적을 가진 활동과 같은 방식과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또 설명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설이다. 이런 어린애다운 소박한 가설에 애정과 존경에 찬 미소를 보내는 일은 잘못이다. 근대문화가 자연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단념하였다고 정말로 믿어도 좋을까? 물활설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깊은 맹약을 확립했으며, 일단 그 맹약에서 이탈하면 그 뒤에는 단지 무서운 고독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객관성 원리가 그것을 요구한다 하여 정말로 이 맹약을 단절시켜야만 할 것인가?

 

 

우리는 바로 객관성이 가리키는 바에 의하여 생물이 갖는 합목적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생물이 제각기 구조와 성능을 통해서 어떤 목적을 실현하고 또 추구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거기에는 외견상 심각한 인식론상 모순이 있다. 생물학의 중심 문제는 바로 이 모순 자체며, 만일 이 모순이 외견상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풀어야 하고, 만일 실제로 모순이라면 그것이 근본적으로 해답할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서구 철학은 약 3천 년 전에 이오니아 제도에서 탄생한 이후 줄곧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자세로 분열되어 온 듯하다. 그 중 하나는 우주의 참다운 최종 실재는 전혀 변화하는 일이 없고 본질적으로 불변하는 형상 속에 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서 또 다른 하나는 운동과 진화 속에 우주의 유일한 실재가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에서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이상학적 인식론은 항상 그것을 엮어낸 사상가 자신의 도적적이며 정치적인 관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데올로기적 구축물은 선험적인 것으로 제시되어 오기는 하였으나 실제로는 미리 품고 있던 윤리와 정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천적 구조물이었다.

 

 

이 책은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라는 데모크리토스 명언으로부터 시작하여 실험을 통해 생물 특성은 합목적 활동과 불변의 재생인 필연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시적인 세계에서 발생하는 우연성과 그 결과가 거시적 세계로 이행된 필연성, 즉 거시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의 유전적 형질 표현을 합목적성과 불변성으로 보는 것이다. 합목적적인 필연성이 진화에 따른 적응으로 나타나며, 진화는 미시적 우연에 의해 교란을 받는 것이다. 우주의 다른 모든 체계 구조와 구별되는 생물은 우리가 합목적성이라는 부르는 특성이 있다. 예컨대 자연의 기관(器官)인 눈은 어떤 영상을 포착하려는 계획을 달성하려는 것임을 부정한다고 하면, 그것은 얼마나 무익한 일일까? 개별적인 계획은 모두 보다 총체적인 계획 일부로서의 의미밖에 갖지 않는다. 근본적인 합목적적 계획이라는 것은, 종 특징을 이루는 불변성 내용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단백질은 합목적적 역할을 하며, 유전자는 불변성 역할을 한다.

 

 

“효소 적응이라는 현상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여 종래에는 없었던 새로운 효소작용을 하는 현상인데, 생물 합목적성의 한 표현으로 간주되어 왔다. 예컨대 대장균은 보통 유당을 분해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효소작용을 하지 않지만, 당원으로서 유당만 주면 유당을 분해는 효소(베타 갈락토시다제)가 활성 된다. 효소 단백질이 유당을 줌으로써 새로이 합성된 것이다. 유사한 현상으로 어떤 종류의 박테리아는 자외선을 쬐면 박테리오파지(박테리아에 붙는 바이러스)가 합성된다. 효소나 바이러스를 만드는 잠재 능력이 유전적으로 갖추어있어도 억제되어 있으면 효소나 바이러스를 만들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억제가 해소되면 합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유전 인자를 갖고 있지 않는 생물은 어떤 물질이나 자극을 주어도 그러한 바이러스나 효소를 합성할 수는 없다. 적응 능력이라는 것은 유전적, 선천적으로 결정되고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적응현상이 생물의 능동적인 능력발휘가 아니라 미리 유전적으로 규정된다는 오페론 이론은 개체 생물 자유도는 유전정보에 의해서 제한되나, 집단으로서 생물 자유도는 단백질 성질에 의해서 조절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생물권에서 보여지는 형태는 진화가 아니라 오히려 ‘안정성’일 수도 있다. 어떤 생물 종의 경우 수억 년 동안 진화를 나타내지 않는다. 특히 '현대의' 세포는 20~30억 년 이전부터 존재하였다."<우연과 필연>(범우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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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연구자들은 한때 우리 몸 지방이 피부 밑과 내부 기관 주위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몇 부위가 집중적으로 살이 찌는 것은 유전적 특수성이나 운동 습관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가장 마른 야생 포유동물조차 몸 특정 부위에 살이 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다람쥐, 오소리, 사슴, 아메리카오소리, 낙타, 인간 할 것 없이 포유동물은 모두 젖가슴, 앞다리 윗부분(인간의 경우 팔의 윗부분), 꼬리뼈 주위, 넓적다리 부근, 복근의 여덟 부위 중 세 부위와 목덜미에 지방층이 쌓인다. 실제로 상당 많은 포유동물은 심장 주위에 지방층을 갖고 있다.

 

 

식품에 들어 있는 지방은 아주 쉽게 체지방으로 변화한다. 섭취된 지방을 저장 가능한 지방으로 변화시키는 대사 과정에서 소화계는 섭취된 지방 분자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2%만 쓰고 나머지는 지방세포에 저장한다. 이에 반해 탄수화물을 저장 가능한 에너지로 변화시킬 때는 섭취된 탄수화물에 내재된 칼로리의 절반이 대사 과정에서 소비된다. 다시 말해서 다른 식품에서 지방을 만드는 것보다 지방에서 지방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게다가 훗날 대비해 지방 분자를 저장하는 지방 조직은 거의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이는 지방 조직이 피부를 제외한 다른 신체 조직과 다른 특성이다. 지방세포는 원래 크기의 열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다. 지방세포는 크고 둥근 지방 방울을 싸는 얇은 막과 같은데, 돼지고기로 채워진 소시지의 막보다 더 잘 늘어난다. 섭취한 식품에 지방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체내 존재하는 지방세포가 다 흡수할 수 없으면, 신체는 새로운 지방세포를 생산해서 남은 지방을 흡수한다. 또 지방세포는 한번 생성되면 죽은 법이 없다. 체중이 줄 때는 지방세포가 죽은 것이 아니라 수축하는 것뿐이다. 한번 만들어진 지방세포는 절대로 죽지 않고 지방질이 풍부한 식품을 늘 기다리고 있다.

 

 

현대 남성의 복부 비만은 건강에 상당히 위험하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복부 지방층이 자극받을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만성적 스트레스로 아드레날린이 계속 분비되면, 지방세포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에 자극받아 끊임없이 혈액 속에 지방산을 방출한다. 방출된 지방산은 먼저 간으로 갔다가 순환계 활동으로 우리 몸 곳곳으로 퍼져나가 근육 활동을 위한 에너지로 쓰인다. 하지만 간에 너무 많은 지방산이 들어가면 간은 인슐린 활동에 장애를 일으킨다. 그러면 혈중 포도당 수치가 급격히 증가하고 이자에서 분비되는 인슐린 양은 더욱 많아져 고혈압, 당뇨병, 급성 심장질환 등을 일으키게 된다.

 

 

근면, 성실함과 게으름


근면이 미덕이라는 윤리의식이 있지만, 게으름 피우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변별 있는 행동 양식이며,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미덕이다. 이솝 우화에는 일벌과 일개미가 대단히 부지런한 동물로 나온다. 하지만 그 동물들이 과즙을 모으거나 집을 청소하는 시간은 낮 시간의 20%에 불과하다. 그 외 시간에는 할 일을 적어둔 쪽지를 잃어버리고도 걱정조차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처럼 일은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한다. 개미나 벌이 근면한 동물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것은 벌집이나 개미집 전체가 보여주는 번잡함 때문인 듯하다. 벌집이나 개미집은 겉보기에는 쉴새 없이 움직이는 작은 우주 같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각각의 개미와 벌이 매순간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개체 하나하나에 일일이 꼬리표를 붙이고 관찰한 결과, 벌과 개인의 휴식 시간이 상당히 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군집생활을 하는 곤충들이 사소한 활동에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개미와 벌은 축전지와 같아서 집단을 위해 사용할 일정량의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재충전 되지 않기에 빨리 사용하거나 천천히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잘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고 해서 더 얻을 수는 업다. 결국 열심히 일할수록 빨리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 꿀을 모으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하는 벌들의 심정에 공감이 간다.

 

 

인간은 생존에 쓰고도 남을 양의 자원을 모은다. 인간의 그러한 물욕은 대개 문화적인 훈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냥이나 채집을 통해 자원을 획득하고, 그렇게 획득한 자원을 대체로 그날그날 소비하는 동물들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일한다. 사실 일밖에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싶어하는 선천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게으름을 육욕, 대식과 함께 일곱 죄악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동물을 의인화하면 안 되는가?


과학은 현실적인 학문이면서도 종교처럼 ‘죄악’이라는 것에 대단히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과학에서는 죄악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상당히 많은데, 예를 들어 실험 결과를 조작하거나 동료를 불신하는 태도 등은 과학에서 큰 죄에 해당하고 실험을 게을리 하고 텔레비전에 자주 출연하는 행동 등은 작은 죄에 해당한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가 가장 피해야 할 작은 죄로 받아들여진 것은 바로 동물을 의인화하는 태도다. 이는 동물이 인간 속성이라 여겨지는 감정, 목적, 의식, 지적 능력, 욕구 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최근 의인화도 올바르게 적용하면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동물 생활과 감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물행동학자들이 적잖게 등장하면서 이 오래된 금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인화를 신봉하는 학자들은 만만치 않은 반대 세력에 부딪히면서도 많은 동물이 자신과 타자를 인식하고 어느 정도의 지력과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피실험 대상인 동물이 동기와 욕구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물학적으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고 보다 효과적인 실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인화를 열렬히 신봉하는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동물들이 환경 상당 부분을 의식적으로 조작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동물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의인화론은 인간과 자연계 다른 동물 사이에 부정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반박한다. 우리는 어째서 인간 심리와 행동을 특출한 것이라 여기고, 지구상 다른 생물체는 그런 요소가 없다고 믿는 것일까? 의인화론에서는 인간을 다른 유기체와 연장선상에 있는 유기체로 보고 우리 동료인 다른 생명체 행동에서 인간과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의인화란 동물 세계를 규정하는 시력과 냄새, 울부짖음과 웽웽거림 등을 동물 입장에서 파악하고 동물이 주의를 기울이는 일과 무시하는 일, 예기치 못했던 일에 직면했을 때 취하는 반응 등을 동물 입장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의지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동물 뇌가 정교하고 가치 있는 기관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물론 자연을 지나치게 인간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는 태도가 낳는 위험도 있다. 시궁쥐의 우리를 지나치게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것을 들 수 있다. 시궁쥐는 악취를 맡아야 마음의 안정을 얻기 때문이다. 의인화 논쟁은 또한 학자들간에 동물차별주의를 양산하여 저마다 자신이 연구하는 동물이 가장 영리하고 고등하고 따라서 가장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게 할 위험이 있다.

 

 

동물과 인간 관계에 대한 논쟁은 현재 동물이 자신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 인식하는가와,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어느 정도까지 고려해야 하는가에 초점 맞추고 있다. 의인화를 비판하는 몇몇 동물행동학자는 뇌 기능을 밝히는 과학기술이 아직 너무 조잡해서 동물이 의도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도출해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물이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인간에게 언어나 시각적 도구로 설명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동물에게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기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또 의인화론자들이 동물의 목적의식이 과학 영역에 속한 것처럼 주장해 본말을 전도할 뿐 아니라 그러한 주장을 동물이 간청하기라도 한 것인 양 가장한다고 비난한다.

 

 

의인화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동물행동학자라면 자신이 연구하는 동물과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훌륭한 과학자라면 자신 연구 성과가 폭넓게 이용될 수 있도록 정확한 자료를 공정하게 분석하여 주관성이 배제된 연구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물이 스스로의 행동을 인식한다고 보는 태도는 과학의 제1원칙, 즉 과학자라면 자신이 관찰하는 것을 가장 순수하게 해석해야 한다라는 명제와 동물은 인식이나 감정, 전략적인 계획 없이 행동한다는 가정에 충실한 연구 자세다.

 

 

이미 50년 전에 누군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세균이 고양이나 개만큼 커진다면, 세균 또한 소망과 느낌, 지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세균들이 의식적으로 설탕물이 떨어지는 쪽으로 달려가고 독극물이 있으면 달아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글은 의인화를 비판하는 학자들의 사고가 가장 적절하게 드러난 글인 듯하다.

 

 

이에 대해 의인화론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동물에 대해 가장 확실하고 명확하고 합리적인 가정을 내리고 있으며, 맹목적인 인간 우월론자들이 인간의 배타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반박한다. 인간 우월론자들은 수년 전에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뒤 침팬지나 코끼리 같은 몇몇 동물이 나무 막대기와 돌 같은 물건을 도구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들은 인간만이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침팬지가 막대기를 목적에 따라 변형시킨다는 사실이 또다시 밝혀졌다. 그들은 이제 인간만이 도구를 이용해 다른 도구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자연계에서 인간만이 독보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는 과학적 발견 앞에서 휘어지고, 주춤거리고, 수정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면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라고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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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왜 뛰어난 철학가나 시인이나 미술가는 모두 우울증에 빠지는가?’ 그로부터 2천 년 뒤에 영국 시인 존 드라이든은 ‘천재성과 광기는 매우 가까우며, 둘 사이 경계는 아주 얇다’라고 썼다.

 

 

의사들은 고흐 작품과 편지를 연구, 분석하여 고흐가 이명, 뇌종양, 녹내장, 백내장, 조울증, 정신분열, 마그네슘 결핍, 디기탈리스 중독 등 152가지 넘는 병을 앓았다고 주장한다. 다기탈리스는 고흐가 발작 치료를 위해 먹었던 약초인데 많이 먹으면 노란색 환영이 보인다고 한다. 의사들은 고흐가 선명한 노란색을 즐겨 쓴 것이 디기탈리스 중독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흐 질병을 연구하는 클럽의 최근 프로그램 제목은 ‘화폭의 진단’인데, 주된 목적은 화가 병명을 밝히고 작품에 나타난 색, 구도, 주제 등을 분석해서 병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클로드 모네는 백내장으로 심각한 시각 장애를 앓았고 백내장 수술이 <수련> 연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바이런, 셀리, 허먼 멜빌, 로베르트 슈만, 버지나아 울프, 콜리지, 헤밍웨이, 로버트 로웰, 테오도르 레트커 등 조울증이나 우울증을 앓은 예술가를 열거해보면, 마치 예술가의 판테온 신전을 보는 듯하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창조성이 높은 사람이 조울증과 우울증을 앓는 비율은 일반인의 서른 배나 된다. 창조성은 어떤 분야에서나 필수 요소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서 창조성이 정서 불안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남자 배우의 60%가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으며 소설가 중에는 41%가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서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이들은 3%에 불과하고, 군인 중에서는 10%에 불과하다. 조울증 경우에는 남자 배우의 17%, 시인의 13%가 조울증에 시달리는 반면, 과학자는 일반인과 비슷한 1%만이 조울증에 시달린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은 조증과 울증 사이사이에 한동한 정상적인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데, 대개 그럴 때 예술활동을 한다. 건강한 시기에는 감정 상태가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자신감과 집중력이 높아져 천상의 가치를 노래하는 악기가 된다. 광기도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듯하다. 정서 불안이 신경생물학적으로 창조적인 사고를 자극하고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정서 불안과 창조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울증 환자들은 생화학적 영향을 받는 상반되는 두 가지 극단적 감정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이다. 그들 뇌는 좀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좀더 유연하다.

 

 

정서 불안증을 앓는 사람 뇌는 신경섬유간 연결이 매우 강화되어 있기에 새로운 정보와 새로운 감정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을 연결시키기도 하고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야말로 예술 창조의 핵심이다. 상반되는 극단적 감정 상태를 경험해본 사람, 감정 변화의 폭이 너무나 큰 사람, 하지만 그러한 감정적 혼란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사람, 그런 사람은 화폭에 표현할 추억이나 기억과 같은 정신 재산을 일반인보다 훨씬 풍부하게 갖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현대 미술이 차츰 비구상화되가면서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정서 불안이 낳은 부산물로 치부해버리고 정신과 의사들이 ‘맞아요, 그 화가는 병신병자였습니다’라고 이야기해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미술사가와 의학자들은 적절한 진단을 통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독특한 화풍을 규정짓는 특별한 노력을 헐뜯으려고 안달이다.

 

 

1913년 파리 의사들은 엘 그레코가 난시였기에 인물을 길고 가늘게 그렸다고 주장했다. 난시란 안구가 구 모양이 아니라 풋볼공 모양이어서 생기는 시력상 문제로, 안경으로 교정해도 물체가 길고 가늘게 보이거나 납작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엘 그레코의 그림을 엑스 레이로 촬영해보변 색칠된 부분 밑에 정상적인 형태를 지닌 밑그림이 보인다. 이 것은 화가가 밑그림에 유화 물감을 칠할 때 인물을 의도적으로 길고 가늘게 그려 천상의 분위기를 풍기려고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벼운 조울증은 오히려 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를 들자면 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둘 수 있다. 조울증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병이 아니라 유전되는 병이다. 조울증이 아주 무작위적이고 인간에게 해로운 유전성 질환이라면 조울증 환자는 드물어야 한다. 하지만 뉴욕에서건 칼라하리 사막에서건 조울증 환자는 백 명에 한 명 이상 꼴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조울증이 이유 없이 존재하는 질환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선사 시대 사람들은 조울증을 물려받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이점이 많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창조적이고 정력적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솜씨가 뛰어나고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며 당당하면서도 자기 과시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지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조울증은 성공과 관련 있다. 사회에서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보다는 높은 사람이 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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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우화 작가들은 하이에나를 보고 ‘수컷인 척하다가 금세 암컷으로 변하는 지저분한 짐승’이라고 서술했다. 헤밍웨이는 맹수 사냥에 빠진 사냥광이었으나 동물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부족했던 것 같다. 하이에나가 양성 동물이라는 무식한 말을 수 차례나 했기 때문이다.

 

 

하이에나의 가장 큰 특징은 호르몬 구성비가 특이하다는 점이다. 임신한 하이에나 자궁은 남성호르몬, 특히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매우 짙다. 마치 남성호르몬이 가득한 욕조 같다. 그런 자궁 속에서 아이가 자라기에 암수 모두 남성 생식기 형태를 띤 생식기를 지니고 태어난다. 수컷은 표준 생식기를 지닌 채 태어나지만, 암컷은 페니스같이 생긴 커다란 클리토리스와 고환처럼 돌출되고 하나로 붙어있는 음순을 지니고 태어난다. 이 때문에 하이에나 암수 모두 발기할 수 있고 동료 하이에나에게 인사할 때도 발기하곤 한다. 하지만 하이에나 암수의 생식기 모양은 같아도 역할은 우리처럼 확연히 구분된다.

 

 

암컷 하이에나는 어떻게 남성 생식기와 모양이 같은 생식기를 갖게 되었을까? 일반 포유동물의 경우 장차 수컷이 될 태아는 대개 미성숙한 정소 도움을 받아 수컷 생식기를 발생시킨다. 정소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여 생식기 나머지 부분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암컷이 될 태아는 대개 자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남성호르몬이 부족하기에 유전 프로그램에 따라 생식기를 발생시킨다.

 

 

암컷이 여성 생식기를 지닌 채 태어나는 것은 태반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차단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포유동물은 암수 모두 반대 성의 호르몬을 어느 정도 보유하기에 임신한 암컷 또한 소량의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혈액 속에 순환한다. 하지만 태반이 테스토스테론을 태아에게 해가 없는 여성호르몬의 한 형태로 변화시키기에 테스토스테론이 태아 생식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하지만 하이에나 암컷은 평범한 암컷이 아니다. 어미 하이에나 혈류 속에는 고농도의 안드로스테네디온이 순환한다. 이 호르몬은 난소에서 분비되는데 포유동물 호르몬 중에서 아주 일반적인 호르몬이다. 어미 하이에나 태반은 어미 호르몬을 차단하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스토스테론의 선구물질인 안드로스테네디온을 흡수하여 다량의 테스토스테론으로 전환하느 역할을 한다. 그래서 암컷이 될 태아와 수컷이 될 태아 모두 수컷이 될 태아가 자기 힘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남성호몬 양을 훨씬 넘어서는 다량의 남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것이다.

 

 

새끼 암수 하이에나는 근육이 발달되어 있고 이빨이 가지런히 나 있는 상태에서 두 눈을 뜨고 태어난다. 이 또한 갓 태어난 포유동물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점이다. 어미 뱃속에서 테스토스테론 영향을 받으며 자라다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성숙한 몸으로 태어나기에 태어나자마자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새끼 하이에나는 일반적으로 두 마리가 한꺼번에 태어나지만 두 형제가 오랫동안 함께 지내지는 않는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 젖꼭지부터 찾는 것이 보통이지만, 갓 태어난 하이에나는 함께 태어난 형제 목덜미부터 찾기 때문이다. 보통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한 놈이 함께 태어난 다른 놈을 죽이는데, 이런 일은 성이 다른 새끼가 함께 태어났을 때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갓 태어난 새끼가 함께 태어난 형제를 죽이는 것은 다른 포유동물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갓 태어난 새끼 하이에나가 그렇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영향 때문인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 만도 않다. 새끼 암컷이 성적으로 성숙하여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수컷보다 낮아질 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듯 암컷이 일생 동안 공격성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암컷 하이에나 성격 형성에 테스토스테론이 아닌 다른 요소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것은 테스토스테론의 선구 물질인 안드로스테네디온일 가능성이 높다. 암컷 하이에나는 혈중 안드로스테네디온 농도가 높은데, 뇌에 테스토스테론과 유사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암컷은 혈중 안드로스테네디온 농도가 상당히 진하다. 어쩌면 그 때문에 혈중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남성의 십 분의 일밖에 안 되는 여성이 특정 상황에서 엄청난 공격성을 띠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인간 여성은 평소 왜 하이에나 암컷처럼 남성보다 공격적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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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포유류와 조류, 심지어 몇몇 어류와 파충류까지도 왜 놀이를 좋아할까? 놀이라는 ‘목적 없는 임의의 활동’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놀이에 투여된 에너지는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도 쓰이지 않고, 모든 생물체의 궁극적인 목적인 자손 번식에도 쓰이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뛰어오르고 던지고 달리고 물면서 젊음의 활기를 발산하는 놀이에 몰두해 있는 동물들은 다치거나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많다.

 

 

최근 과학자들은 놀이가 가진 이러한 위험을 고려하면서 좀더 정밀한 연구를 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동물이 놀이에 가장 열중해 있을 때 뇌세포가 시냅스를 활발히 연결시켜 뇌세포간 전기 화학적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신경망이 빽빽해진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놀이에 동반하는 격렬한 감각적 물리 자극은 소뇌에 있는 시냅스 연결을 촉진하여 놀이를 하는 동물의 운동 능력을 발달시킨다. 영장류와 돌고래처럼 뇌가 큰 동물이 놀이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동물들의 뇌는 어미 몸 속에 있을 때뿐 아니라 태어난 뒤에도 한동한 성장을 멈추지 않기에 외부로부터 자극을 많이 받아야 한다.

 

 

이렇듯 놀이는 뇌와 근육을 성장시키기 위해 발전했지만, 좀더 심오한 다른 목적도 있다. 어린 동물들은 놀이를 통해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다양한 행동 양식을 미리 연습한다. 많은 종의 동물이 제각기 자기 목적에 맞게 고도로 의식화된 놀이를 개발했다. 영양이나 양과 같은 초식동물 새끼들은 가상의 맹수로부터 달아나는 거짓 도주 놀이를 즐긴다. 그것은 자신 힘으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능력이다.

 

 

인간 부모와 자식 간 놀이를 다른 동물들도 한다. 알래스카의 새끼 불곰은 제 또래 곰들과 노는 것 못지않게 어미하고도 자주 논다. 불곰들은 서로 꼭 껴안고 데굴데굴 구르는 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어미 고릴라는 새끼 몰래 숨어 있다가 ‘까꿍!’하고 튀어나오는 놀이를 자주 하고, 어미 침팬지는 새끼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놀이를 발전시키는 핵심요소는 놀이 언어를 개발하는 것이다. 놀이 언어를 통해 동물들은 ‘놀자’라든가 ‘좀 천천히 해’라든가 ‘장난으로 그런 거야’ 등의 의사를 표현한다. 놀이 동작 중 상당 부분이 공격 동작과 비슷하기에 놀이를 즐기려는 동물은 자신에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러한 의도를 밝히는 메시지는 때로 정형화된 형태를 띤다. 강아지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앞다리를 구부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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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7-04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아이는 놀아야 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04 15:23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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