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  올해 하반기 읽은 책 분류

 

역사 7, 사회 6, 심리 4, 철학 3, 미술 3, 경제 2, 물리 2, 수학 1, 뇌과학 1, 생물 1, 과학종합 1, 경영 1, 인류문화 1, 소설 1, 글쓰기 1 (모두 33권)

 


●  올해 하반기 단 한 문장

 

“동물은 자극에 직접 반응하지만, 사람은 마음속에 표상된 자극에 반응한다. 객관적인 자극은 사람 마음속에 주관적인 자극을 일으키며, 사람은 이러한 주관적인 자극에 반응한다.” – 대니얼 길버트

 


●  올해 하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6권

 

<문명 이야기 1-2> 윌 듀런트 지음/ 역사,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음/ 심리, <누구나 한 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남경태 지음/ 철학,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사회, <포스트워 1945~2005 1> 토니 주드 지음/ 역사,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지음/ 역사

 

 

 

 

 

 

 

 

 

 

 

 

 

 

 

 

 

 

 

 

 

 

 

 

 

 

 

 

 

 


●  그럼, 올해 하반기 읽은 책 Best Top 10

 

 

10.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엔지어 지음, 햇살과나뭇꾼 옮김
2003년 11월, 374쪽/ 생물

 

 

성실과 게으름

 

근면이 미덕이라는 윤리의식이 있지만, 게으름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변별 있는 행동이며,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미덕이다. 이솝 우화에 일벌과 일개미가 대단히 부지런한 동물로 나오지만, 과즙을 모으거나 집을 청소하는 시간은 낮 시간 20%에 불과하다. 그 외 시간은 게으름뱅이처럼 빈둥거리기만 한다. 개미나 벌이 근면한 동물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된 것은 벌집이나 개미집 전체가 보여주는 번잡함 때문인 듯하다.

 

 

군집 생활을 하는 곤충이 사소한 활동에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개미와 벌은 축전지와 같아서 사용할 일정량의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 에너지는 빨리 사용하거나 천천히 사용할 수는 있지만, 재충전 되지 않기에 잘 먹고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고 해서 더 얻을 수는 없다. 결국 열심히 일할수록 빨리 죽는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꿀을 모으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벌 심정이 이해된다.

 

 

인간은 생존에 쓰고도 넘칠 자원을 모은다. 이러한 물욕은 대개 문화적인 훈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사냥이나 채집으로 자원을 획득하고, 대체로 그날그날 소비하는 동물은 하루에 서너 시간만 일한다. 사실 일밖에 모르는 사람도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싶어 하는 선천적인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에 육욕, 대식과 함께 게으름을 일곱 죄악(seven sins) 중 하나로 여기는 것 아닐까?

 


9.

 

 

 

 

 

 

 

 

 

 

 

 

 

 

<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엘리, 2019년 5월, 520쪽/ 소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민사든 형사든 공정함은 사회 계약의 필수 요소며, 진실을 알아내기 전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영상 기록을 통해 실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하여 논쟁을 매듭지으려는 커플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하지만 진실 추구는 그 본질적 선함을 잃게 한다. 서로 사적인 관계는 곧잘 다른 목적이 더 중요하기 마련이고, 그럴 경우 엄밀한 진실 추구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서로 자잘한 흠을 들추어내는 일은 해결책이 아니다.

 

 

사실에 입각한 진실과 감정에 입각한 진실이 있다. 감정에 입각한 진실은 시간 흐름과 더불어 내가 상상으로 느낀 감정에 물들여진 기억으로, 조금씩 되풀이하여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에 입각한 진실과 감정에 입각한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기억에 두드러지게 각인된 진실은 내 감정이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다. 설령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특정 순간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 기억은 우리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8.

 

 

 

 

 

 

 

 

 

 

 

 

 

<유럽사 속의 전쟁>
마이클 하워드 지음, 안두환 옮김
글항아리, 2015년 6월, 400쪽/ 역사

 

 

전쟁의 책임

 

많은 사람은 역사상 가장 엄청났던 전쟁, 모두 13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1차 세계대전을 유럽이 치른 지 불과 20년 만에 또다시 왜 더 파괴적인 2차 세계대전을 겪었는지 궁금해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 포로는 상호 국제 감시 아래 인도적으로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최전방 병사까지도 예전 전쟁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조건에서 지냈다. 그들은 충분한 식사를 제때 맞춰 했다. 많은 병사는 자신 나라에서 민간 생활을 할 때보다도 더 좋은 보살핌을 받았다. 전후 세계로 복귀한 참전 병사는 일반 사람들이 느낀 이미지와 달리, 1차 세계 대전이 끔찍하고 두려웠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았다. 참전 용사에게 전후 세계는 오히려 실망스럽고 지루했다. 전우 모임에서 동지애와 모험, 도전과 승리, 그와 더불어 경제적인 안정과 가정 내 책임에서 벗어났던 지난 전쟁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확신했다. 이와 같은 안정과 지위, 삶의 목적을 가져다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향수는 다양한 형태의 파시즘을 낳았다.

 

 

1, 2차 세계대전은 과거 전쟁과 달리 각국 군대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20세기 전쟁은 호전적인 국민들의 의지와 사기의 쟁투였다. 이처럼 전쟁 수행 핵심이 군대가 아닌 시민 대중에게 있다면, 승리는 적 시민에게 견딜 수 없는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1, 2차 세계대전 종전은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지도자 뒤에서 단결하며 전쟁 수행을 위한 손실과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고자 했던 후방(Home Front) 시민 의지의 분쇄에 있었다.

 


7.

 

 

 

 

 

 

 

 

 

 

 

 

 

 

<사회학 공부의 기초>
앨런 존스 지음, 이솔 옮김
유유, 2016년 11월, 370쪽/ 사회

 

 

직장에서 튀는 옷을 입지 못하는 이유

 

누군가 규칙을 어기는 일은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행위다. 규칙 위반은 ‘우리라는 경계’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복장에 대한 규칙이 도덕성과 무슨 상관이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통념에 비추어 보면 대답은 대부분 ‘별 상관없다’일 것이다. 하지만 관점을 확대하면 규칙은 집단이나 사회 본질을 규정하여 구성원이 갖추어야 할 도덕 기준이 된다. 만약 누군가가 ‘틀린’ 옷을 입고 회사에 간다면 그가 정말로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 회사 ‘본질’에 헌신하는지 의문시된다.

 

 

따라서 복장 위반과 도덕 관련 해답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든, 저녁 식사 자리에서 행동하는 방법이든, 회사에서 입는 복장이든 모든 도덕은 소속감과 그로부터 생겨나는 의무를 부여하면서 사회와 우리 자신을 설명한다. 특히 도덕을 소속감과 관련해 본다면 규칙을 위반한 이들이 일탈자 취급을 받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낙인(stigma)이다. 낙인은 특정한 행위를 한 사람이 아니라 정체성에 문제를 일으킨 일탈자에게 부여된다.

 

 

규칙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을 집단이나 사회로 묶어주는 애착심이다. 규칙이 없다면 사람들은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낄 것이며 사회는 산산이 조각날 것이다.

 


6.

 

 

 

 

 

 

 

 

 

 

 

 

 

 

<수학의 확실성>
모리스 클라인 지음, 심재관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년 3월, 640쪽/ 수학

 

 

물리학은 ‘왜’를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갈릴레오는 우리가 찾아야 할 지식 현상이 기술(記述)에 머물러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는 ‘낙하하는 물체에 가속도가 생기는 이유를 찾는 일이 연구에 필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과학 탐구는 궁극적 원인을 찾는 형이상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물리적 원인에 대한 사변은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자 임무는 원인을 캐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수량화하는 것이다.

 

 

당시 갈릴레오 주장에 큰 반감이 있었다.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현상을 수식으로 기술한다고 해서 별다른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뉴턴에게도 물리학적 설명 대신 수학 법칙을 강조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천체 역학에서 중요한 물리 개념은 중력이고, 중력은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서 수백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설명은 신뢰할 수 없어 보였다.

 

 

그래서 뉴턴은 ‘힘(force)의 수학적 개념만 다룰 뿐 물리학적 원인과 의의는 다루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중력 본질이 연구되고 이해되길 바랬다. 하지만 중력의 물리적 실체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중력은 인간 마음이 만들어 낸 과학적 허구에 머물러 있다. 수학은 서술할 따름이지 근본 원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뉴턴 역학에서 질량 개념도 허구에 불과하다. 물체는 실재하지만, 뉴턴에게 질량의 주된 속성은 관성이었다. 그런데 관성은 가공의 개념이지 실험으로 얻어 낸 사실이 아니다. 어떤 힘도 가해지지 않는 물체는 이 세상에 없다.

 


5.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 지음, 전대호 옮김
승산, 2007년 1월, 352쪽/ 물리

 

 

엔트로피는 우리 무지의 표현이다.

 

엔트로피는 입자 위치나 속력 혹은 온도나 압력, 부피와 관련된 양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정보와 연관된 양이다. 하나의 계에 속하는 입자들의 특정한 배열을 발견할 확률, 즉 엔트로피는 그 계의 성질을 우리가 얼마나 아는지에 결정된다.

 

 

엔트로피 값은 우리가 계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 때 0이고, 우리가 계에 대하여 가장 적게 알 때 최대값이 되므로, 엔트로피 값이 클수록 계를 이루는 입자들의 세부 운동에 대한 우리 무지를 나타낸다. 엔트로피는 결여된 정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볼츠만은 물리학 영역 속에 정보 개념을 들여놓았다. 엔트로피는 관찰자가 아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더 영리한 존재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질 것이므로, 계에 더 작은 엔트로피를 부여할 것이다.

 


4.

 

 

 

 

 

 

 

 

 

 

 

 

 

 

<명품을 코에 감은 코끼리, 행복을 찾아 나서다>
조너선 하이트 지음, 권오열 옮김
물푸레, 2010년 7월, 432쪽/ 심리

 

 

얀테의 법칙

 

자부심이 단지 스스로 좋게 느끼는 기분이라면, 별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자부심은 자신이 실제보다 더 대단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들며, 이에 못지않게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믿는 다른 사람과 논쟁에 끝없이 휘말리게 한다. 우리가 자녀에게 강한 자부심을 부추길 때 그들은 비현실적이거나 자아도취에 쉽게 빠져 현실과 부딪치며, 특히 젊은이는 종종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게다가 이상주의가 더욱 위험한 이유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게 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자부심은 자율 윤리의 핵심 사상을 반영한다. 자율 윤리는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개인이며, 따라서 이상적인 사회는 해악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자율과 선택 자유를 존중해주는 사회라는 의미다. 반면 당신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는 사회는 자아가 문제 원인이기에 아이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상(賞)이나 칭찬, 운동 등의 노력은 확실히 잘못된 일이라고 보는 공동체 윤리다. 한 개인 욕망은 특별히 중요하지 않다. 많은 욕망은 정욕의 지배를 받는 자아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학교와 가정, 언론매체 모두 협력하여 어린이들이 자아의식과 권리 의식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처럼 문화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많은 주요 전투는 인생을 자율 윤리 혹은 공동체 윤리 중 무엇으로 조직하느냐와 관련된다.

 

 

북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얀테 법칙’
(1) 당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남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자만하지 마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모든 것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마라.
(9)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관심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3.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홍기빈 지음
책세상, 2011년 10월, 400쪽/ 사회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힘이 자본주의에 내재한다.

 

자유 시장 경제는 산업과 경제의 생산성 향상에 큰 걸림돌이 된다. 전 세계 경제를 장악하는 거대 자본의 사적 이윤 동기에 산업 전체를 넘겨주면 생산 자원의 불완전한 활용이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시장 경제는 사회의 잠재적 생산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는커녕 생산 역량을 ‘과소’ 사용하여 높은 실업률을 낳는다. 이러한 의견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바로 베블런의 ‘기업(business)이 산업(industry)에 깽판 놓기(sabotage)’ 이론이다. 따라서 기업 폐해를 막고 사회 생산 자산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시장 경제 한계에 개입해 산업을 조직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늘날 기술 발달로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대기업은 자신 이윤 극대화라는 전략 목표에 따라 산업 활동을 조정하며, 특히 그 목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사회 공동체의 복리 극대화’라는 산업 고유 목표에 ‘깽판 놓기’를 한다. 베블런이 보기에 이는 결코 이따금 벌어지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대기업이 창출하는 주된 이윤 근원은 사회 전체 산업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깽판 놓기’이며, 이것이 아예 구조적, 체계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마르크스가 주로 착취와 궁핍 같은 불평등 측면을 문제 삼았다면, 베블런 같은 제도학파는 ‘자본주의 비효율’을 비판한다. 따라서 처방 방향도 다르다. 제도학파의 ‘사회화’는 기업가에게 정의(正義)의 철퇴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산업 사회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자기 조정 능력을 맹신하는 자유주의 경제 사상은 사이비 과학이기에 근본부터 부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안 이론을 구성하는 일이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

 


2.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필립 바구스 외 지음, 배진아 옮김
청림출판, 2015년 3월, 276쪽/ 경제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빠진 내용

 

우리 사회가 점점 소원해지고 있다고 느끼는가? 전통적으로 이어온 사회 결속 끈이 점차 마모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사람들이 점점 더 물질에 집착하며 냉혹하게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수 부자는 점점 더 부유해지고 다수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낭비 사회 혹은 소비사회로 불리는 사회 내부 부조리 원인은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 사실 모든 문제의 진짜 원인은 국가가 독점하는 화폐 시스템에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국가의 화폐 독점권을 문제 삼지 않는다. 당신은 화폐 시스템에 의문을 가져본 적 있는가? 의문을 가져본 적 없다면 일반적인 독과점 폐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과점은 낭비와 비효율, 지속적인 가격상승을 초래한다. 화폐라고 해서 폐해가 다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가는 의도적으로 통화량을 확대하여 물가하락을 저지한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IT업계에서 이뤄낸 기술 혁신과 중국, 인도의 저렴한 인건비가 국제 분업체제에 편입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상품 가격은 30~40% 혹은 그 이상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상품 가격은 오히려 매년 상승한다. 통화량 확대로 물가는 오르고 기업 이익은 증가한다. 이렇게 되면 온갖 종류의 세금을 통해 국가 수입이 자동으로 늘어난다. 당신은 엄청난 규모의 통화량 증대와 그 배후 숨겨진 어마어마한 부의 불균형 분배를 상상할 수 있는가? 통화량을 확장하여 물가 상승을 유발할 때뿐 아니라, 새로 돈을 찍어내지 않으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내려갈 우려가 있는 시기에 통화량을 확대하면 사회 내부에 수입과 자산 재분배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것도 대체로 저소득자 쪽에서 고소득자 쪽으로 재분배가 이뤄진다.

 


1.

 

 

 

 

 

 

 

 

 

 

 

 

 

 

<모든 것의 가격>
에두라르도 포터 지음, 김홍래 외 옮김
김영사, 2011년 5월, 364쪽/ 경제

 

 

현재 우리 노동력은 얼마나 저렴할까?

 

우리는 노예 제도를 혐오하라고 배웠다. 하지만 역사 기록을 보면, 사회가 노동 방식을 선택하는 기준은 가치관이나 도덕보다 노동 이용에 따르는 수익성과 관련 있다. 노예를 사서 의식주를 제공하는 방식과 자유 노동자를 고용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저렴한지에 좌우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예 제도가 생산성 향상을 둔화시킨다. 노예 주인이 값싼 노예를 계속 추가하여 손쉽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노동절약 기술에 투자할 인센티브를 갖지 못한다. 노예도 생산성을 높일 인센티브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 봐야 주인에게 더 많은 잉여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 ‘자유로운’ 노동자다.

 

 

오늘날 노동 시장은 노예 제도나 강제 노동에 부합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자 임금이 너무 저렴하여 굳이 실질 노예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미국 최저 임금은 30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 게다가 국제화로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풍부하게 제공받는다. 자본주의에서 불평등이 경제성장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2009년 미국 공장 노동자 평균 시급은 1972년보다 낮았다. 두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 수입은 10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 노동자가 주당 40시간 일할 경우 평균 임금으로 각종 청구서를 지불할 수 있었던 시기는 40년 전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9-12-05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하반기에도 좋은 독서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12-05 14: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님도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 부탁드립니다.^^
 

 

●  올해 상반기 읽은 책 분류


사회 7, 철학 5, 경제 5, 역사 4, 물리 3, 과학 3, 수학 2, 뇌과학 1, 생물 1, 교양인문 1, 에세이 1, 글쓰기 1 (모두 34권)

 

 

●  올해 상반기 단 한 문장

 

“의식 있는 소수가 의식 없는 대중 선두에 서서 기습이나 혁명을 수행하던 시대는 지났다. 사회를 변혁하고자 할 때, 대중은 스스로 변혁 속에 있어야 하며, 또 문제가 무엇이고 몸과 마음을 다해 무엇을 지지해야 하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엥겔스

 

 

●  올해 상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휴버먼의 자본론> / 경제, <홍성욱의 STS, 과학을 경청하다> / 과학, <자본의 시대> / 역사

 

 

 

 

 

 

 

 

 

 

 

 

 

 

 

 

●  그럼, 올해 상반기 읽은 책 Best Top 10

 

10.

 

 

 

 

 

 

 

 

 

 

 

 

 

<사회학의 쓸모>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노병우 옮김
서해문집, 2015년 10월, 256쪽/ 사회

 

사회학은 사회과학이 아니다.

 

사회학은 인간 삶이 ‘필연성’이나 ‘자연 질서’에 기반한다는 믿음을 무너뜨려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학은 홉스적 의문에 저항해야 한다. 홉스적 의문이란, 이미 정해져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마치 자신 의지로 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다.

 

 

그런데 상상력을 상실한 사회과학은 사회학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고작 정보만 제공할 뿐이다. 사회과학은 ‘과학적 예측’을 하려는 야심과 충분히 ‘과학적’이라는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 사회과학자들은 과학적, 객관적이라는 바리케이드 뒤에 숨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정책 입안자나 사업가가 울리는 조종에 맞추어 기꺼이 행진할 뿐이다. 반면 사회학적 상상력은 개인 삶과 각자 일대기가 필연성이나 자연 질서에 기반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과 사회 구조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학은 ‘인간 경험이 아닌 개인 체험’과 대화다. 경험은 개인 상호 혹은 그 상위 객관적 상태지만, 체험은 분명히 명시적으로 주관적이다. 인간 체험은 과학 표준으로 명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인간은 원래 과학이 다루기에 이상적인 대상이 아니다. 관찰자가 제시하는 증거 타당성과 신뢰도는 관찰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9.

 

 

 

 

 

 

 

 

 

 

 

 

 

<물가의 경제학>
홍완표 지음
신론사, 2009년 8월, 266쪽/ 경제

 

물가가 계속 오르는 이유

 

레닌은 물가가 계속 오르면 정부와 기업이 국민 부(富) 상당 부분을 눈치채지 못하게 빼앗아 간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가난해지며, 일부 사람은 부유해진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를 낮추는 일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가장 사악하고 확실한 수단이다. 파괴하기 위해 경제법칙에 내재한 비밀스러운 모든 힘이 동원되지만 아무도 간파하지 못한다.

 


물가 상승은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이 선호되어 부동산 투기가 만연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은 과도하게 채무에 의존하며 외형 확대 경영 형태를 보인다. 물가가 상승하면 기업 이익은 자동 증가한다. 기업은 남의 돈을 빌려 원료와 기계설비, 노동력을 산다. 물가가 지속 상승하는 동안 상품을 만들어 팔면 자동으로 이익이 생기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완만한 물가 상승은 대부분 기업 이익으로 직결된다.

 

 

통화 당국이 자연이자율 - 화폐가 사용되지 않고 모든 대부가 실물자본재 형태로 이루어지면, 수급에 따라 결정될 이자율 -과 화폐이자율이 불일치하도록 화폐 공급을 조절하면 물가가 변동한다. 이때 화폐이자율은 은행 자금 공급과 기업가 수요로 결정되며 자연이자율에서 더욱 괴리 된다. 이처럼 물가 변동은 통화 당국과 기업가 합작으로 나타난다.

 

 

8.

 

 

 

 

 

 

 

 

 

 

 

 

 

 

<인문 고전 강의>
강유원 지음
라티오, 2010년 4월, 576쪽/ 교양인문

 

‘개인적 공동체’라는 형용모순

 

우리는 개인 정체성을 중시하면서도 개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를 고려하는 ‘개인적 공동체주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 서로 모순이 되어 말이 되지 않는다.

 

 

자유주의 입헌국가는 개인 사적 이익을 모든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헌법에 명시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개인이 세계에서 우뚝 선 고유 존재며, 개인 판단과 생각,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개인이 자신과 연결된 가족, 국가, 공동체와 연결고리를 끊고 오롯이 독자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인 중심 자유주의인데, 공동체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다.

 

 

7.

 

 

 

 

 

 

 

 

 

 

 

 

 

<독일 이데올로기>
카를 마르크스 외 지음, 김대웅 옮김
두레, 2015년 8월, 282쪽/ 사회

 

불평등 원인, 분업

 

분업이 국가와 사회, 조직, 개인이 각기 대립하며 분열하는 원인이다. 분업은 불평등한 분배와 소유를 야기한다. 결국 분업과 불평등한 사적 소유는 동일한 표현이다. 분업은 활동에 관해서, 불평등한 사적 소유는 활동 산물에 관해서 일컫는 말이다. 분업은 국가와 사회, 조직, 인간을 구속한다. 노동이 분화되자 각 주체는 하나의 일정한 배타 영역에 놓이고, 그 영역이 강요되어 벗어나지 못한다.

 

 

분업으로 인간관계가 물질적 관계로 전환된 현상은 물질적 관계의 관념을 머릿속에서 몰아내어서는 안 되고, 오직 모든 주체가 분업을 지양함으로써만 가능하다. 그런데 공동체가 없으면 이는 불가능하다. 각 주체가 분업으로 분화되어 그들 사이 필연적, 유대적 결합이 낯선 관계로 대체 되었기 때문이다.

 

 

6.

 

 

 

 

 

 

 

 

 

 

 

 

 

<블랙 스완>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동녘사이언스, 2008년 10월, 548쪽/ 경제

 

성공은 노력? 혹은 행운?

 

말없이 묻힌 많은 증거를 무시하는 경향은 재능과 경쟁력을 서로 비교하는 일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특히 독점 등 승자독식이 이루어지는 분야에서 더욱더 그렇다. 성공한 사람이나 기업은 자신 성공이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닌 자신 노력과 능력 덕택이라 말한다. 이는 도박꾼이 수백만 분의 1 확률을 손에 쥔 일을 마치 자신 능력 덕택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 세계 카지노 전체에서 벌어지는 수백억 회의 게임 횟수나 도박꾼 숫자를 고려하면 일곱 번 연속 이기는 정도는 나온다. 수 많은 경우와 수 많은 사람이 존재하기에 한 명에게 깜짝 놀랄만한 행운이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위대한 CEO 자서전처럼 성공 결과를 출발점으로써 확률을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승자 위치에서 계산하면, 즉 무수히 많은 낙오자 존재를 무시하고 계산하면, 게임에서 연속 이기는 사건은 행운이 아닌 일처럼 보인다. 반면 결과가 아닌 출발점을 기준으로 계산을 시작하면, 성공이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남들 성공 스토리를 아무리 읽어도 도움 되지 않는다. 승자보다 훨씬 더 많은 패배자를 포함하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회고적 결정, 즉 이미 지난 사건을 재구성하여 원인을 찾아낸다. 특히 역사는 일련의 연속된 사건이 선행 사건과 어떤 관련 있는 듯 보이도록 한다. 어떤 사상이나 종교가 성공을 거둔 요인을 자의적으로 추정하거나,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 솜씨를 위장하여 만들어 주거나, 예술가 성공을 합리화시킨다. 그뿐 아니라 본성-양육 논쟁에도, 역사 ‘법칙’에 대한 환상에서도, 가장 심하게는 극단적 사건 속성을 이해할 때도 눈에 보이는 것과 실재 사이에 편향이 작용한다.

 

 

5.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 이교선 외 옮김
창비, 2001년 10월, 752쪽/ 역사

 

 

‘한강의 기적’과 IMF 대란 속사정

 

1990년대 남한의 괄목할 만한 급성장을 평가할 때, 그리고 북한과 비교한 남한의 상대적인 위치를 평가할 때, 남한 GNP는 일본 빠찡꼬 산업의 연간 총매출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기적’을 들먹이는 기자나 반세기 걸친 남북 간 경쟁은 당시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말은 믿을 수 없게 한다.

 

 

1986년까지 남한과 북한의 일인당 국민총생산은 같은 수준이었다. 그 후 남한은 북한보다 앞서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남한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크게 앞선 것은 아니었다. 남한의 일반 민중 생활수준이 북한의 평균수준보다 높기는 했지만 월등히 잘살지는 않았다.

 

 

냉전 기간이었다면, 1997년 IMF 대란에 미국은 남한의 주요 동맹국이자 전방국가로서 구제금융을 지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극화된 소련과 냉전이 끝나고 보니 남한 경제는 단지 자유시장과 신자유주의 시대에 얼마나 적합한지만 중요해졌다. 많은 한국 사람에게 이런 상황은 놀랍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1997~98년 아시아 위기는 ‘일본/한국 유형의 후발 국가 산업발전’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미국 시도에 깊은 뜻이 있었다.

 

 

4.

 

 

 

 

 

 

 

 

 

 

 

 

<철학 이야기>
윌 듀런트 지음, 임헌영 옮김
동서문화사, 2007년 9월, 520쪽/ 철학

 

이카로스의 꿈

 

우리는 사고(思考)의 도움을 받아 한층 더 넓은 시야를 얻는다. 특히 사고 행위가 결과를 그리는 상상력의 도움을 받을 때 더욱더 그렇다. 그런데 훨씬 더 생생한 현재의 감각이 상상력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상력으로 현재 경험을 선견(先見)으로 바꾸고 미래 창조자가 되어 노예 상태서 해방되어야 한다.

 

 

사실 플라톤은 자신 유토피아가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런 욕망을 그리는 자체가 가치 있다고 말했다. 인간 의의는 보다 나은 세계를 상상하여 적어도 일부분이나마 실현하려는 노력에 있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계획하는 동물이다. 이카로스의 꿈처럼 우리의 많은 꿈은 손발이 자라 걷고 날개가 돋아 날았다. 우리가 이상(理想) 하는 바를 그려놓기만 해도 우리 행동 목표와 모범이 많은 사람에게 빛이 되어 언젠가 지상에서 유토피이가 실현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늘에 전형(이데아)이 있어, 그것을 보려 하는 자는 볼 수 있고 그것을 모범으로 하여 스스로 자신을 다룰 수 있다. 그런 국가가 지상에 존재하는가 또는 언제 나타나는가 하는 사실은 아무래도 좋고, 이상적인 나라의 법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불완전한 국가 안에서도 완전한 법률이 적용될 것이다.

 

 

3.

 

 

 

 

 

 

 

 

 

 

 

 

<서양 문명의 역사 - 하>
에드워드 맥널 번즈 외 지음, 손세호 옮김
소나무, 2007년 2월, 770쪽/ 역사

 

 

국가

 

실업은 정부가 주도한 통화 정책 결과다. 정부는 대출을 어렵게 만들고 통화를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한다. 이렇게 해서 인플레이션은 감소한다. 하지만 통화 긴축 정책은 소비 지출과 사업 투자를 서서히 감소시켜 결국 취업 기회를 줄인다.

 

 

인플레이션 및 실업과 싸움하면서 정부는 노사 양측 힘을 이용하여 강력하게 경제를 장악해 나아갔다. 이러한 활동으로 정부 힘과 통제력이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부하는 나라에서도 정부 통제로 우리 스스로 자신 삶을 이끌지 못하여 민주주의는 점점 더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 정부의 중앙 권력은 국민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에서 이미 상당히 벗어나 있다.

 

 

중앙 정부의 권력 강화로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경계가 흐려졌어도 자신을 자본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더 이상 칭하지 않거나, 이러한 용어에 의미가 없어진 건 아니다. 또한 목적과 수단에 지속적이고 뜨거운 논란이 사라졌음을 함축하지도 않는다.

 

 

2.

 

 

 

 

 

 

 

 

 

 

 

 

 

<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 지음
통나무, 2006년 8월, 299쪽/ 철학

 

세상은 ‘믿음’ 문제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전제 없이 사고할 수 없다. 인간 사고가 언어를 떠나 생각할 수 없는 이상, 언어 체계는 필연적으로 연역 체계를 빌리지 않을 수 없다.

 

 

연역적 삼단논법은 매우 상식적인 경험판단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같은 대전제 성립과정은 분명 경험적 귀납추리에서 출발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타인 죽음만 경험할 뿐,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일일이 확인한 적 없다. 따라서 대전제에서 도출된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명제는 우리 경험 사실과 무관하게 도출되는 논리적 비약이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명제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가설이며 허구며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상식을 검토해보면, 우리 판단 대부분은 경험명제 위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모든 결론은 그것에 전제하는 믿음일 뿐이다.

 

 

1.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백상현 지음
책세상, 2014년 8월, 320쪽/ 철학

 

진실한 사랑

 

라캉은 인간 사유의 내용과 원인 모두 허구일 뿐 영원한 원인이 없다는 주장으로 자신 이론을 시작한다. 인간사는 아무리 확고해 보여도 결국 주체의 판타즘을 구성하는 요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진리란 바로 이와 같은 지식 체계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구멍’이다.

 

 

라캉 개념은 진리가 의미로 충만한 것, 이데아와 같은 것이라고 사유했던 과거 형이상학 전통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진리는 상식으로 결코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진리는 세계 질서의 불완전함을 폭로하며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구조의 균형점이다. 우리는 진리를 절대적 수렴점이 아닌 모든 것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보편적 시작점으로 사유해야 한다. 진리는 상식적 세계관 자체를 포기하도록 강제하기에 고통이 존재한다.

 

 

라캉 이론으로 ‘진실한 사랑’을 설명하면, 사랑의 대상인 타자가 더 이상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 즉 자신 고유의 타자성으로 출현할 때 일종의 ‘유령’과 같은 모습이 된다. 그리고 진실한 사랑은 바로 상대를 있는 그대로인 ‘유령’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실현된다. 내가 알 수 없으며 알기 원치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 타자를 받아들이는 일은 자신의 질서 잡힌 영토를 찢어서 균열의 자리, 공백의 자리를 마련하는 고통스러운 행위가 있어야 한다.

 

 

진리는 나의 판타즘이 공백 형상으로 텅 비워지는 순간 나에게 강제되는 일종의 희생이다. 그렇게 해서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사랑의 진리와 관련한 ‘연인의 유령‘을 소환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단번에 지워버리는 유령이미지 출현이 그녀에 대한 사랑의 진리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었던 과거 흔적이 아니라 이제부터 그녀가 보여줄 수도 있을 어떤 미래 ‘유령’에 대한 내 신뢰가 중요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6-18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다님 알차고 꽉찬 독서목록....

북다이제스터 2019-06-18 13:10   좋아요 1 | URL
매일 밤 기도하고 있습니다.ㅋ
syo 님이 하루 빨리 좋은 소식 들려주셔서 syo님께서 책 다시 많이 많~이 읽게 되실 날 오기를요....^^

syo 2019-06-18 14:12   좋아요 1 | URL
어쩐지 운이 좋더라니.... 북다님 기도빨이었구나ㅋㅋㅋ

겨울호랑이 2019-06-18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국의 시대>가 순위에 들지 못한 것을 보니 대진운이 어지간히 없었던 듯 합니다. 저도 북다이제스터님 처럼 월별 또는 분기별 정리를 해야하는데... ㅜㅜ 어렵네요

북다이제스터 2019-06-18 14:19   좋아요 1 | URL
올해 저는 홉스봄의 <제국의 시대> 안 읽었는데요....ㅠㅠ

겨울호랑이 2019-06-18 13:14   좋아요 1 | URL
죄송합니다... <
자본의 시대> 오타였습니다 ㅜㅜ

고양이라디오 2019-06-24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님 너무 어려운 책만 읽으시는 거 같습니다ㅜㅜㅋ

북다이제스터 2019-06-24 20:37   좋아요 0 | URL
더 어려운 책 많이 읽으시잖아요 ^^
 

●  올해 하반기 읽은 책 분류
사회 11, 역사 9, 물리 4, 철학 3, 수학 3, 경제 2, 인류 2, 뇌과학 2, 영화 2, 진화 1, 미술 1, 음악 1, 글쓰기 1, 생물 1, 언어 1 (모두 42권)

 

 

●  올해 하반기 단 하나의 문장
가난은 부(富)에 의해 만들어지며, 부가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가난이 가난인 줄 모른다. - 윌 듀런트

 

 

●  올해 하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9권
<자본론을 읽다> /경제,  <개미제국의 발견> / 생물,  <세상에서 가장 쉬운 베이즈통계학 입문>  /수학, <김상욱의 양자 공부> / 물리, <지능의 탄생> /뇌과학, <저주받은 아나키즘> /사회 <지중해의 기억> /역사, <거꾸로 보는 고대사> /역사, <노동가치> /사회

 

 

 

 

 

 

 

 

 

 

 

 

 

 

 

 

 

 

 

 

 

 

 

 

 

 

 

 

 

 

 

 

 

 

 

 

 

 

 

 

 

●  그럼, 올해 하반기 읽은 책 Best Top 10

 

 

10.

 

 

 

 

 

 

 

 

 

 

 

 

 

<감각의 제국>
문강형준 지음
북극성, 2017년 3월, 368쪽 /사회

 


우리에게 도덕적 기쁨을 주는 사람이란?

 

 

우리나라 70, 80년대 ‘진정한 인간들’은 사회 투쟁에 자신 몸을 내던진 바 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할 뿐 아니라 더 가혹해졌다. 진정성이 사라진 뒤, 90, 2000년대 ‘속물적 인간들’은 이미 세계 법칙에 적응했다. 가치가 아니라 생존이 정언명령이므로, 그냥 살아남는 것, 더 성취하는 일만이 최고 가치다. 진정성이 허무를 준다면, 속물성은 역겨움을 준다.

 

이제 우리 문화는 진정성도 속물성도 아닌 제3의 길을 내고 있다. 진정성과 속물성이 반반 섞인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가 원하는 분명한 자기성취를 이뤄낸 이들이다. 노력으로 돈과 명예, 인기, 지위를 얻어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올바른 가치관, 정의로운 시선도 함께 갖고 있다.

 

최근 손석희와 김제동, 최진기, 박원순이 누리는 인기는 이를 보여준다. 종편에 출연하지만 그곳에서 기득권을 비판하고, 제도권에서 성공했지만 그곳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사람. 우리에게 ‘도덕적 기쁨’을 주는 사람은 성취와 가치를 함께 이룬 이들이다. 점점 부상하는 이 새로운 인물형은 착한 사람이 다 죽어버린 이 ‘가차 없는 세계’에 대응하는 진정한 인간형이다.

 


9.

 

 

 

 

 

 

 

 

 

 

 

 

 

<이브의 일곱 딸들>
브라이언 사이키스 지음, 전성수 옮김
따님, 2002년 2월, 316쪽 /인류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가깝다.

 

 

인류유전학 연구는 객관적으로 정의된 종족(race)이 지구상 절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가장 높은 순수성을 자랑하는 민족도 이질성이 존재할 따름이다.

 

예를 들면, 영국 에든버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주 확실하게 폴리네시아인 미토콘드리아 DNA 유형을 가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떻게 그 DNA가 전해졌는지 어렴풋하게 어떠한 단서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전해졌다. 그녀는 매력적인 선장을 만나 사랑에 빠진 타이히 공주 후손일까, 아니면 마다가스카르 해안에서 아랍인에게 잡혀온 노예 후손일까?

 

한국인 미토콘드리아 DNA 서열이 노르웨이나 북부 스코틀랜드 어부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8.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지음, 전병근 옮김
김영사, 2018년 9월, 560쪽 /사회

 

 

일자리를 빼앗을 인공지능이 문제가 아니다.

 

 

보편 기본소득의 진짜 문제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어떻게 정의하든, 일단 한 번 누구에게나 그것이 무료로 제공되면 당연하게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 행복은 객관적 조건보다 자신 기대에 더 크게 좌우된다. 여건이 극도로 좋아진 후에도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사람들이 자신 운명을 주관적으로 더 만족스럽게 여겨 사회 불만이 없도록 할 목적이라면, 보편 기본소득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진정으로 달성하려면 보편 기본소득은 의미 있는 삶과 함께 보완되어야 한다. 일-이후(이외) 세계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방법, 심지어 가난하고 직업이 없더라도 삶의 만족도를 높일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보편 기본소득과 더불어 강력한 공동체와 의미 있는 삶의 추구를 함께 결합할 수만 있다면, AI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더라도 우리는 실제 행복할 수 있다.

 


7.

 

 

 

 

 

 

 

 

 

 

 

 

 

<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지음,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 비, 2013년 10월, 478쪽 /사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경제성장은 주효할 것인가?

 

 

소득주도 성장은 개별 기업 이기주의를 억제하여 역으로 개별 기업 이윤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는 애덤 스미스 생각의 부정이다. 또한 개인 소비를 장려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근면과 저축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베버)’에 반한다. 잉여가치 실현을 개별 기업이나 생산 과정에서만 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잉여가치는 이윤과 달리 각 기업 내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고 소비자로서 생산물을 되사는 ‘유통 과정’에서만 존재한다. 물론 개별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노동자는 자신이 만든 상품을 되사는 셈이다. 잉여가치는 개별 기업이 아닌 사회 전체 ‘총자본’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기업가는 이윤을 추구하려고 가능한 노동자 임금을 깎으려 하거나, 긴 시간 일하게 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모든 자본이 그렇게 하면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생산물을 사는 소비자는 노동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개별 기업이 이윤을 확보할수록 사회 전체 경제불황은 악화된다.

 

 

6.

 

 

 

 

 

 

 

 

 

 

 

 

 

<빈곤론>
가와카미 하지메 지음, 송태욱 옮김
꾸리에, 2009년 8월, 256쪽 /경제

 

 

분배는 해답이 아닐 수 있다.

 

 

사회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난 퇴치 방법이 빈민소득 증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이미 풍부하지만, 분배가 잘 안 되어 많은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기계 생산력은 향상됐지만 그 힘이 완전히 억제되어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많은 사람이 가난하다.

 

 

오늘날 경제 이론은 수요가 있는 곳에 상품이 공급된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수요란 재력이 동반되는 수요다. 현대 경제체계에서 다수 빈민에게 제공되어야 할 상품은 수요를 조금만 초과해도 바로 시세가 떨어져 사업가가 큰돈을 벌지 못하기에 생산이 억제된다.

 

 

자본주의 산업은 기업 영리 활동 목적에 복속되어 있어 사회가 인간 삶 향상보다 기업 이윤을 우선시한다. 기업이라는 분배 권력이 생산을 결정한다. 영리 기업은 사회에 물질 기여가 아닌 차등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윤 소멸 방지를 위해 자신 생산 활동을 전략적으로 제한한다. 따라서 거의 모든 현대 산업은 최대 기술 능력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가동되고 있다.

 

 

5.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샘앤파커스, 2018년 4월, 272쪽 /물리

 

 

미래와 관련 없는 정보도 존재한다.

 

 

열역학 제2 법칙(엔트로피)은 확률이 높은 일이 자주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베이즈 정리의 조건부 확률도 세상에 일어나는 결과는 발생 가능성이 높은 원인 때문에 일어난다는 최우원리(最優原理)를 기반으로 한다. 조건부 확률은 추가적인 정보를 얻어 일부 가능성을 제거하고 나머지 현실로 결과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확률 특성도 일부 정보는 더 이상 미래 예측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양자역학에서 우리가 어떤 물리계와 상호 작용할 때(측정), 우리는 무언가(입자성)를 얻을 뿐 아니라 동시에 물리계 관련 정보 일부분(파동성)을 ‘삭제’한다. 우리가 어떤 물리계의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물리계 관련  총 정보는 유한하므로 무한히 커질 수 없다. 따라서 정보 일부분이 관련성을 잃는다.

 

 

4.

 

 

 

 

 

 

 

 

 

 

 

 

<칼 마르크스>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미다스북스, 2012년 3월, 432쪽 /역사

 

 

자유주의와 공리주의 문제는?

 

 

'이성과 도덕이 결국 승리한다'라는 믿음은 합리주의 오류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흔하고, 가장 케케묵었고, 모두 바보 천치 같은 주장 내지 아무 내용도 없는 공허한 말이라고 마르크스는 보았다. 그러한 주장은 자본가를 포함한 어떠한 인간도 합리적 주장에는 기꺼이 무릎 꿇을 뿐 아니라, 상황만 적정하면 도덕적 원리를 위해서 본인 출신과 부, 능력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더 정의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동참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마르크스는 지루할 정도로 되풀이해서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불변의 보편적 자연권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는 견해가 자유주의 환상이라고 지적하며 단호히 거부한다.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이론은 사회 조건이 변하면 함께 변한다. 보편성과 불변성을 믿는 것은 자본주의 질서가 영원하다고 믿는 오류를 낳는다.

 

18세기 이래 이상주의적 박애주의자의 윤리적, 심리학적 주장에는 줄곧 이러한 오류가 깔려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자와 공리주의자 가설을 경멸하고 혐오했다. 자유주의자와 공리주의자는 모든 사람 이해관계가 궁극적으로 같고 또한 지금까지 언제나 같았기에 사람들이 이해와 선의, 박애라는 원칙만 지킨다면 만족스러운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사악한 형태의 위선이며 자기기만이다.

 

 

3.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정진상 외 옮김
책갈피, 2007년 3월, 320쪽 /사회

 

 

우리는 생각을 그냥 바꿀 수 없다.

 

 

인간 신념이나 소망, 능력은 사회에 따라 변한다. 사람 존재 방식은 자신이 사는 사회 유형에서 분리할 수 없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다. 사람이 사회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경제학자들은 개인을 사회에서 고립된 ‘자연인’ 개념에 두고 소유권과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지만, 사실상 그런 ‘자연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일삼는 고립된 개인으로 보는 관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을 정당화할 뿐이다.

 

사회의 다양한 측면은 오직 전체를 보고 이해해야만 한다. 새로운 사상은 생활의 물질적, 사회적 조건에서 제기된 문제를 고민할 때 탄생한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새로운 세계관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적, 사회적 조건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 결국 의식을 먼저 바꾸라는 요구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현존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만 바꾸라는 요구다. 사상이 물질적,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는데도, 생각만 바꾸라는 요구는 물질적,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이 불필요한 행위라고 말하는 것과 같기에 관념론은 밑바닥부터 보수적인 관점이다.

 

 

2.

 

 

 

 

 

 

 

 

 

 

 

 

 

<문명 이야기 1-1>
윌 듀런트 지음, 왕수민 외 옮김
민음사, 2011년 5월, 634쪽 /인류

 

 

원시인과 현대인 사이는 지극히 짧고도 좁다.

 

 

순진하게도 우리는 인간이 옛날 낮은 수준의 문화를 거쳐 끊임없이 발전해 오늘날 유례없이 절정기에 이르렀다고 여기는데, 이는 부질없는 생각이다. 자신 이외 다른 인간에게 ‘야만인’이나 ‘미개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부터가 객관적 사실 표현일 수 없다. 넓은 도량과 갖가지 윤리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많은 걸 가르쳐 줄 수 있는 원시인을 과소평가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원시인과 현대인 사이 거리는 지극히 짧고도 좁다. 인류 문명 역사는 그만큼 짧다. 게다가 현대인 윤리라고 반드시 원시인 윤리보다 나은 건 아니다.

 

한번은 영국인이 ‘원시인’ 사모아인에게 런던 빈민에 관해 이야기 해 주자 그 ‘야만인’은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요? 음식이 없다고요? 친구도 없어요? 살 집이 없다고요? 그 사람이 자란 곳이 어디인데요? 그의 친구가 가진 집도 없어요?” 그들에게는 마을 어딘가에 옥수수가 자라는 한 음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원시인’ 호텐토트족 경우,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자가 있으면 모두 똑같아질 때까지 잉여분을 나누는 것이 관례다. 이들은 배고픈 자를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받느니 차라리 자기 배가 고프고 마는 편을 택한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의 커다란 가족으로 생각한다.

 

 

1.

 

 

 

 

 

 

 

 

 

 

 

 

 

<역사의 풍경>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옮김
에코리브르, 2004년 3월, 275쪽 /역사

 

 

역사는 우리가 현재와 미래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과거가 풍경이고 역사는 그것을 묘사하는 방법이다. 과거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 스스로 과거에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학자에게 역사 서술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예컨대 ‘친구들이여, 이게 무슨 나라란 말인가?’와 같은 감정과 직관이다. 역사학자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관찰이라는 행위가 관찰 대상을 바꿔놓는다. 역사 서술에 완벽한 객관성은 거의 기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진리도 존재할 수 없다.

 

역사는 사실의 ‘묘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묘사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이런 묘사는 사건에 대한 동시대인의 일차적 기억과 경쟁하고, 어느새 그 속에 스며들며, 결국 그들 기억을 완전히 대체한다.

 

이때 역사학자는 과거를 해방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학자는 일어난 일에 단 한 가지 설명만이 유효하다는 가능성에서 과거를 해방한다. 역사의 무게가 현재와 미래에 짐이 된다면, 역사학자 역할은 분명히 이 짐을 덜어내는 노력일 것이다. 현재 존재하는 것이 과거에 반드시 그랬던 것은 아니므로 미래에도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학자는 사회비평가야 한다. 역사로 현재와 미래를 해방해야 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8-12-04 0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다님.... 올해도 엄청난 한 해셨네요.

북다이제스터 2018-12-04 10:57   좋아요 1 | URL
syo 님께서 올해 읽으신 책들에 비해서는 별로요....ㅠㅠ
그래도, 죽을둥살둥 읽으려고 노력한 점을 알아주시는 syo 님 칭찬이니 감사합니다.^^

올 한해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부탁드립니다.^^

AgalmA 2018-12-17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글 중 베스트 뽑는 글이 저는 제일 좋더라고요^^b 올해도 역시 멋짐 폭발이시네요~효효

2018-12-17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7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7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7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7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올해 상반기 읽은 책 주제

사회 9, 철학 5, 언어 3, 경제 3, 역사 2, 미술 2, 수학 1, 소설 1, 과학 1, 물리 1, 자기계발 1, 에세이 1, 뇌과학 1 (모두 31권)

 

●  올해 상반기 단 한 문장

˝호레이쇼, 천상과 지상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꿈도 꾸지 못할 많은 것들이 있다네.˝ <햄릿>의 1막5장 - 셰익스피어

 

●  올해 상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6권

<시대를 훔친 미술> /미술,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경제, <후설 & 하이데거: 현상학, 철학의 위기를 돌파하라> /철학 <스피노자의 뇌> /뇌과학, <국제분쟁의 이해> /사회, <철학 듣는 밤> /철학

 

 

 

 

 

 

 

 

 

 

 

 

 

 

 

 

 

 

 

 

 

 

 

 

 

 

 

 

 

 

 


●  그럼, 올해 상반기 읽은 책 Best Top 10

 

10.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가라타니 고진 지음, 김경원 옮김
이산, 1999년 5월, 264쪽/철학


평등이 중요하긴 하지만...


다종다양한 물건은 진정한 성질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질적으로 동등하지 않은데, 우리가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인간 평등’ 사상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양적 등가의 가치표현은 ‘인간은 동등하다는 개념이 이미 국민 선입관으로 고정될 때라야만 가능하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평등 사상 자체가 ‘등가성’에 뿌리박고 있기에 이질적인 것이 왜 어떻게 등가형태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중요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말했다. 지배적인 사상, 곧 우리에게 자명해 보이는 사상 - 자유, 평등, 휴머니즘 - 은 부르주아 계급의 사상이다. 따라서 그들의 근본적인 전제를 의심할 때 투쟁이 시작될 수 있다.

 

9.

 

 

 

 

 

 

 

 

 

 

 

 

 


<질량의 기원>
히로세 다치시게 지음, 임승원 옮김
전파과학사, 1996년 3월, 238쪽/물리
 
질량은 질량이 없는 물질에서 생겼다.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질량은 보존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어려운데,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2로 질량(m)과 에너지(E)가 등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사실 질량과 에너지는 등가가 아니다. 광자처럼 질량이 없는 입자도 에너지가 있다. 광자가 운동하면 공식과 다르게 적용된다.


물체의 속도(v)가 광속(c)보다 충분히 작을 때 물체 에너지는 E=mc^2+(1/2)mv^2로 표현되며, 속도를 내지 않는 정지 상태의 물체도 mc^2 만큼의 에너지가 있다. mc^2는 ‘정지에너지’라 불리며, 물체가 갖는 고유 내부에너지로 생각된다. 에너지는 보존되지만 질량이 보존되지 않기에 광자는 질량이 없지만 고유 내부에너지가 질량이 있는 물질로 전화한다.


즉 빛은 질량이 제로여도 에너지를 가질 수 있고, 그 에너지가 전자와 양전자의 질량으로 전화한다. 소립자반응으로 질량이 없는 빛에서 질량이 있는 전자와 양전자가 생기거나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8.

 

 

 

 

 

 

 

 

 

 

 

 

 


<한글을 알면 영어가 보인다>
김옥수 지음
비꽃, 2016년 9월, 288쪽/언어


영어식 잘못된 표현 알아채기

 

복수명사는 원칙적으로 우리말에 없다. 외국어에 영향받아 억지로 들여왔다. 우리말은 복수명사를 부사로 표현한다.


사례) 머린은 궁전 다락방 보관함에서 '가져온' '방석들'에 앉았다.
→ 머린은 궁전 다락방 보관함에서 '방석을 여러 장' 가져와 '포개' 앉았다.


원문을 보면 ‘some cushions’을 ‘방석들’이라고 표현했다. ‘방석 여러 장’이란 뜻이다. 그리고 '포개'라는 단어를 넣었다. 표현이 한층 살아난다. 번역은 외국어를 한글로 한 번 걸러내기에 원문에 담긴 색깔이 그만큼 둔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번역할 때는 더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이 필요하다. 우리말은 복수명사를 부사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는 사례다.


또한, 영어는 가능하면 명사로 표현하는 반면 우리말은 가능하면 동사로 표현한다. 따라서 명사 분위기를 동사 분위기로 최대한 바꿀 때 비로소 우리말에 가까운 번역이 나온다. 사례에서 '가져온 방석'을 '방석을 가져와'로 바꿨다.


7.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 2009년 3월, 312쪽/수학
 
내게 확률이 어려운 이유


우리는 ‘우연’한 일을 잘못 판단하거나 어설프게 결정해 버린다. 사실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은 상황 그자체가 아닌 예측이 불가능하거나 요동치는 확률 효과로 흐려진 이미지다. 확률은 우리 일상에서 언제나 함께 한다. ‘우연은 인과성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개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 직관을 거슬러 사건을 확률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어려워 한다. 우리는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싶어하도록 진화한 탓에 우연한 요인을 쉽게 인정하지 못 한다.


우리가 이처럼 확률과 우연, 불확실성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 상황을 통제하길 바라는 성향과도 관련있다. 사람들은 위스키 반 병을 마시고도 자동차를 운전하지만, 자신이 탄 비행기가 조금만 흔들려도 기절한다.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은 우리 자아상과 자존심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자신 삶을 통제할 방법을 찾거나, 적어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방법을 찾는다.


우리가 통제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우연을 인지하지 못하고 굳이 패턴을 찾으려는 논의와 관련 있다. 사건이 임의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는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사건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사건은 임의적으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고 느껴야 할 필요성과 우연을 인식하는 능력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행운을 능력이라 오해하고, 우연한 사건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우연한 일을 통제하느라 쓸데없이 너무 많이 노력한다.
 
6.

 

 

 

 

 

 

 

 

 

 

 

 

 


<만들어진 모성>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심성은 옮김
동녁, 2009년 2월, 416쪽/사회
 
엄마의 자식 사랑이 커지면 사회가 안전하지 않다.
 
유럽 중세 부모는 자신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 지역 공동체 구성원이 대신 아이를 키웠다. 모든 인류에게 당연할 것만 같은 아이 중심의 서로 사랑하는 가정은 유럽 중세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 인식은 본능보다 사회에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가족애는 비교적 최근 생겼다.


중세 이후 근대 산업 사회가 도래하면서 가족에 대한 우리 인식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면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공동체보다 가족 구성원 간 사랑이 중요해졌다. 공동체 의식이 감소하면서 가족 의식이 커진 것이다.


가족은 사회 질서에 따라 사랑이 증감한다. 사회가 개인에게 충분한 안전을 보장하면, 개인은 가정에서 벗어난다. 반면 위협받는 개인에게 사회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면 가정이 보호처가 된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국가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다.
 
5.

 

 

 

 

 

 

 

 

 

 

 

 

 


<당신 인생의 이야기>
태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엘리, 2016년 10월, 448쪽/소설
 
인과론과 목적론이 같을 수도 있다니…
 
우주는 완벽하게 두 가지 문법을 가진 하나의 언어다. 모든 물리적 사건은 전혀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분석되는 하나의 서술이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론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이다. 하지만 두 가지 방식 모두 타당하다.


작용이나 수학 적분으로 정의되는 사건은 일정 시간이 지나야 의미를 가진다. 작용이란 에너지와 관련된 양인데, 에너지는 뉴턴 방정식의 힘처럼 외부에서 주어진다고 말하기 어렵다. 운동에너지나 잠재에너지는 물체의, 정확히 말하면 계의 성질이다. 따라서 인과의 외적 요인이 아닌 계의 내부 성질이 작용한다. 원인과 결과가 아닌 작용의 기본 원리가 자연에 내재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분히 ‘목적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식으로 목적론적 해밀턴-라그랑주 역학은 인과론적 뉴턴역학과 완전히 같은 내용을 기술한다. 자연을 타당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할 수 있다.
 
4.

 

 

 

 

 

 

 

 

 

 

 

 

 


<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윤평중 지음
교보문고, 1997년 11월, 290쪽/철학
 
세상만사에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 다만 상호주관적일 뿐이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머스 쿤은 자신 저서의 깊은 뜻을 몰랐다. 나중 인문학자들이 그의 책을 읽고 쿤에게 그 의미를 알려주었는데, 쿤은 자신 책 뜻에 놀랐다고 한다.


과학은 단순하게 사실의 나열이나 반증주의의 학문이 아니다. 과학은 마음의 상태다. 과학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상호주관적 진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우주의 객관적 진실은 우리 모두의 주관적 진실이 모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문학과 사회과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해석이 중요하다. 대상에 중립적이고 순수한 접근은 불가능하며, 우리는 ‘합법적 편견’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우리가 과학 패러다임을 논쟁할 때 논점의 장단점은 서로 대화하여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 대화로 올바른 관점에 이르는 것이 ‘이해’가 지향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합리성’ 이론도 이와 유사하다. 사회에서 무엇이 합리적 태도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규범은 토론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우리 삶의 근거가 될 때 규범은 객관성과 주관성을 초월한다. 우리는 사회에서 바람직한 태도가 무엇인지 상호주관적인 담론으로 정할 수 있다.
 
3.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이광근 옮김
당대, 2005년 3월, 392쪽/사회
 
‘우리는 발전해야만 한다’라는 당위는 최근에 생겼다.


예전에는 인문학이 학문의 전부였는데, 19세기 자본주의가 심화되고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과거 연구에 한정되자, 현재 상황을 중시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사회과학인 경제학과 정치학, 사회학을 성장시켰다. 사회과학은 자본주의의 작동 메커니즘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지식 토대를 제공했다.


당시 서구 자본주의 사회과학자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연구하기 위해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접목했다. 이때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었다. 사회과학 관점에서 보면 독립된 사회가 모두 같은 기본방식으로 발전하지만, 역사학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가정이었다. 사실 이같은 마술은 실용적인 측면이 있었다. ‘가장 발전한’ 서구 국가는 ‘덜 발전한’ 제3 세계국가들에 모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했고, 덜 발전한 국가가 서구 모델을 모방하도록 부추겼으며, 그 무지개 끝에는 정치적 발전이 있다고 약속했다.
 
1.

 

 

 

 

 

 

 

 

 

 

 

 

 


<경제학 - 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지음, 강유원 옮김
이론과실천, 2006년 12월, 229쪽/철학
 
월급 올랐다고 좋아하지 마!
 
월급이 오르려면 기업은 자본을 집적해야 한다. 자본을 집적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분업화해야 하고, 노동자는 초과노동을 해야 한다. 노동자의 분업과 초과노동으로 자본이 더 많이 집적되면 자본가는 더 많이 생산하여 상품은 과잉생산이 되며, 취약한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일부 대기업이 독점하면서 다수 노동자가 실직하거나 임금은 비참한 상태로 축소된다.


노동 분업으로 자본이 집적되면 노동자는 더욱더 시장가격의 변동, 자본가 변덕에 의존하게 된다. 분업은 인간 사이의 경쟁일 뿐 아니라, 노동자가 기계로 전락하여 기계와 경쟁한다. 노동자가 더 많이 벌려고 할수록 모든 자유를 완전히 단념한 채 탐욕에 봉사하는 노예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임금 상승의 상황에서도 당연한 결과는 노동자의 초과노동과 때이른 죽음, 기계로 전락, 노동자에게 위협이 되는 자본의 노예화, 노동자 간 경쟁, 다른 노동자의 굶주림 혹은 거지가 되는 것이다.
 
1.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2009년 7월, 645쪽/경제
 
It’s not economy but society, stupid!
 
마르크스주의자는 사회 현상을 적대 관계의 계급 투쟁으로 본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계급 투쟁 속에서 어떠한 계급이 승자가 될지는 특정 계급이 자신 이익 이외 다른 계급 이익을 얼마나 폭넓게 또 다양하게 끌어안고, 거기에 얼마나 봉사하는지에 달려있다. 결국 핵심은 사회 전체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 더 잘살게 되었고, 수치로 따진다면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진 사실을 조금도 부인할 수 없는데, 사회적 파국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교리는 틀렸다.


이렇듯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의 진짜 재난은 소득 수치로 계산되는 경제 현상이 아닌 제도적 문화 현상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여러 사회제도 속에 묻어 들어 가 있는데, 자본주의가 사회제도를 회생시킬 수 없을 정도로 손상 시켰다. 이같이 저질 인간으로 떨어져 버린 상태를 문화적 진공(cultural vacuum)’이라고 말한다. 문화적 진공 속에서 우리 삶은 경제적 필요와 욕구만 있다면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이 살아갈 만 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 시야를 경제적 선입견인 착취 문제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8-06-22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의 꾸준한 반기별 정리 페이퍼를 보면서 저도 정리하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나네요... 북다이제스터님의 정리하는 힘이 느껴지는 페이퍼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4 12:57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은 평소에 정리를 잘 하시고, 전 일년에 두 번만 몰아서 정리하는 듯합니다. ^^

단발머리 2018-06-23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책 제목들이 하나같이 고급집니다.
일단 Best 1,2,3로 고르신 책들 먼저 돌아봅니다. 너무 좋은 페이퍼예요^^

북다이제스터 2018-06-24 12:58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모두 무척 좋은 책이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  올해 하반기 읽은 책 주제
사회 7, 역사 5, 인류문화 4, 철학 3, 경제 3, 언어 3, 물리 2, 책읽기 2, 교양인문 1, 건축 1, 과학 1, 수학 1, 여행 1, 음악 1(모두 35권)

 

 

●  올해 하반기 단 한 문장
(낯선 문장이 왠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사회는 존재를 결정하지만, 관념의 본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 피터 버거

 


●  올해 하반기 아쉽게 순위에 들지 못한 책 6권
<민중의 세계사> /역사, <원더풀 사이언스> /과학,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음악, <현대 철학 아는 척하기> /철학,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역사,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경제

 

 

 

 

 

 

 

 

 

 

 

 

 

 

 

 

 

 

 

 

 

 

 

 

 

 

 

 

 

 

 

●  그럼, 올해 하반기 읽은 책 Best Top 10

 

10.

 

 

 

 

 

 

 

 

 

 

 

 

<극한의 경험>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옥당, 2017년 7월, 576쪽/역사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입 다물라고?

 

경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경험이 많아지면 깨달음이 더 커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경험이 늘어난다고 지식(깨달음)이 무조건 많아진다고 말할 수 없다. 예민한 사람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많은 외적 자극이 필요하지 않다. 특히 미묘한 자극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감수성이 무딘 사람이 아니라면, 전쟁과 같은 극한 경험이 유용한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아무리 강한 사람도 자극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 인간은 과도한 감각 자극의 공격을 받으면, 깨닫기보다 무감각해진다. 인간은 과도한 자극에 자신 감수성을 축소하는 방어기제를 작동한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 문화에 따라 현실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한다. 문화가 경험을 권위의 원천으로 인정하고, 사람들이 경험을 자주 이야기하고, 경험에서 느낀 깨달음이 풍성하게 오간다면, 사람들은 경험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9.

 

 

 

 

 

 

 

 

 

 

 

 

 

 

<불안한 현대 사회>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
이학사, 2001년 2월, 190쪽/사회

 

 

내가 불안하고 헛헛한 이유

 

주체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뛰어넘는 종교적,  정치적 또는 역사적 의미를 아예 지워버리거나 잘 의식하지 못한다. '좋은 삶을 위해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누구나 중립적 입장을 지키려 한다. 좋은 삶을 위해 개개인 각자 자기 방식대로 추구할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 나름의 가치관이 있지만, 이를 놓고 얼굴을 붉히며 서로 갑론을박하지 않는다. 이성적으로 확증할 수 없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 가치에 왈가왈부하며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대주의가 무관심으로 발전한다. 우리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고, 우리는 타인 삶이나 사회에 점점 무관심해진다. 결국, 인생 의미는 축소되거나 덤덤해진다.


모든 ‘가치’는 선험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니체식 비판은 인본주의를 찬양하고 강화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인본주의는 인간 이외 존재, 전통, 자연, 하느님과 같은 모든 의미를 제거하여 우리에게 상실감을 안긴다. 또한, 그러한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 안간힘을 헛된 것으로 치부한다. 궁극적으로 니체식 비판은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인간의 힘과 자유를 느끼게 하지만, 개인이 의지할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기에 불안과 허무만 남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고 “개인 자유가 역시 중요하지”라고 말하고,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결국 내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게 중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우리 사회는 몹시 불안하고 헛헛할 수밖에 없다.

 

 

8.

 

 

 

 

 

 

 

 

 

 

 

 

 

<관용>
웬디 브라운 지음,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10년 2월, 344쪽/사회

 

 

타인과 차이를 너그럽게 존중하라고?

 

오늘날 우리는 모든 곳에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차이를 교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관용(똘레랑스)이 요구된다. 쉽게 변하거나 교정 가능한 차이는 관용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관용은 차이 문제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차이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지 않게 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대체로 개인이 선택하고 사적으로 누린다고 간주된다.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각자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다문화주의 교육은, 문화에 자유주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관용 태도가 뿌리 깊은 자유주의 사회는 문화 특수성을 넘어선 공적 유대와 공정함, 정의라는 관점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평등보다 차이를 부각하는 오늘날, 국가가 평등 보장이라는 자신 역할에 태만할수록,  국가는 점차 관용에 더 많이 호소할 것이다. 국가는 평등한 대우와 보호를 관용으로 대체하여, 시민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 임무에서 벗어난다. 게다가 관용은 본질적 차이라는 담론을 순환시켜 관용 대상이 관용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순간 국가 폭력이 정당화된다.

 

 

7.

 

 

 

 

 

 

 

 

 

 

 

 

<노동을 거부하라!>
그룹 크리시스 지음, 김남시 옮김
이후, 2007년 11월, 320쪽/사회

 

 

일은 정말 신성할까?

 

아무리 많은 월급과 사원 복지 혜택이 유혹해도 사람들은 퇴근 이후나 휴일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신 삶을 느낀다. 노동은 노동자 욕구나 의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치 증식 원리에 따라 노동자 에너지를 돈으로 전환하는 끊임없는 소모 과정일 뿐이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노동을 싫어한다. 노동은 노예를 위한 것이다.

 

1770년 윌리엄 템플은 인간이 스스로 일하고 싶어 한다고 착각들게 할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가난한 집안 아이들을 네 살 때부터 일하는 곳으로 보내 공장 일을 하면서 학교 수업을 받게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하루에 최소 열두 시간 이상 항상 무엇인가 하게 하면, 아이들은 노동으로 돈을 벌든 아니든 매우 유용하다. 이렇게 자란 세대들이 규칙적인 작업에 익숙해지면 일이 편하고 즐거울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배운 것이 노동의 미덕과 노동하는 태도였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생산 리듬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시간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아이들을 종소리에 반응하도록 가르쳤고, 시간에 늦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도록 강요했고, 태도와 동작을 교정하고 훈육했으며, 아주 작은 이탈이나 소홀함도 육체적 처벌과 모욕으로 벌을 주었다. 기능 지식을 주입하여 머리를 식민화하였고 육체를 노동 도구로 만들어 육체마저 식민화하였다.

 


6.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 2004년 4월, 512쪽/경제

 

 

기회비용은 과연 타당한가?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유를 대며 ‘평등’에 반대하고 서로 다른 ’차이’를 부각한다. 흔히 ‘내가 대학원과 유학 생활에서 투자한 돈과 시간이 그동안 얼마인데’, ‘너희 놀 때 난 무척 많이 공부했어’, ‘나는 4년제 명문대를 나왔는데 어떻게 지방대, 2년제 대학 나온 애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겠어’란 주장들이다.  근데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

 

‘책상 1개 = 바지 2개’라는 등가식에서  애덤 스미스는 ‘기회비용’을 찾아냈지만, 마르크스는 이 관계에서 양적인 등가관계를 끄집어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른 가치형태는 양적 비교를 위한 같은 척도가 없기에 다른 양적 관계를 가치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가치형태는 양적 관계를 표시하는 수학 도식이 아닌 ‘질적 관계’를 표현하는 논리 도식이다. 하지만 화폐가 질적인 등가 가치를 양적으로 변화시켰다. 여러 생산물이 단 하나의 등가물(화폐)로 비교될 때, 비교는 양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질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질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두 사람 간 학력을 소비한 돈과 시간으로 양적화하여 차별화한다. 게다가 그것이 문제 될 수 있다는 걸 의문시조차 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무섭다.

 

 

5.

 

 

 

 

 

 

 

 

 

 

 

 

<애로우 잉글리시 전치사 혁명>
최재봉 지음
애로우잉글리시, 2015년 2월, 253쪽/언어

 

 

전치사는 왜 존재할까?


전치사는 ‘앞에 나와 있는 명사‘의 존재와 상태를 설명한다. 전치사는 ‘앞‘에 위치한 단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는 표지판 같은 역할을 한다.


‘Two men nap outside the railway station.‘은 ‘두 남자가 기차역 밖에서 잠자다‘란 의미가 아니다. ‘두 남자가 잠잔 곳은 바깥인데, 안쪽에 있는 것은 기차역‘이란 의미다. 예문에서 outside가 지시하는 것은 두 남자다. 두 남자가 바깥쪽에 있으니 안쪽에 있는 것이 기차역이다.


‘A man climbs up slop to the top of the mountain, 2400m above sea level. ‘예문에서, 2400m 의미도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높이를 잴 때 자신이 있는 곳에서 위로 높이를 본다. 그런데 영어는 바로 앞에 산이 나왔기에 산 입장에서 높이를 재야 한다. 산 높이를 아래가 아닌 산 입장에서 위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어민 사고다. 그렇기에 2400m 다음에 above는 ‘해수면 위‘가 아니고, ‘산의 위치가 위에 있다’라는 뜻이다. 그럼 자연스러운 순서에 따라, 산이 위에 있으니 그다음에 above를 통해 시선은 밑을 향해야 한다. 그래서 밑을 봤더니 해수면이 있다는 의미다.

 

 

4.

 

 

 

 

 

 

 

 

 

 

 

 

 

<파국의 지형학>
문강형준 지음
자음과모음,  2011년 9월, 224쪽/철학

 

 

혁~~~ 명!


우리는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정규직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해고되지 않을지, 노후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더욱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더 이상 유의미한 역사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이미 우리 삶에 어떠한 희망의 목표도 남아 있지 않았다는 좌절, 내가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길이 나를 어디로 인도할지 알 수 없다는 절망, 이런 디스토피아 감성이 우리 삶의 서사 위에 짙게 드리워 있다.


누군가에게 불만인 현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지배계급은 혁명가를 ‘미친놈’ 취급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노예가 주인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대든단 말인가? 그래서 지배계급에게 바로 이 ‘미친 힘’, 광기의 힘은 항상 가장 두려운 공포다. 로마인부터 계몽주의 철학자를 지나 합리적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광기는 언제나 ‘미친 짓’으로 비난받았다. 진정한 사유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가능하다고 보는 관념은 광신이 가진 혁명적 수사를 거부하고 이를 ‘전체주의 담론’으로 치환하여 정치를 대화와 타협, 점진적 변화라는 자유주의 프레임 속으로 가둬버린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개혁은 사회 질서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소멸시키거나 뒤바꾸지 못한다. 오로지 질풍노도처럼 몰아쳐서 소심한 부르주아를 부르르 떨게 할 ‘대참사’만이 현재의 사회 조건을 뒤바꿀 수 있다.

 

 

3.

 

 

 

 

 

 

 

 

 

 

 

 

 

<실재의 사회적 구성>
피터 L. 버거 외 지음, 하홍규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년 12월, 315쪽/사회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진짜 주제는?

 

개인은 현 사회를 역사적이며 객관적인 사실로서,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서 직면한다. 사회 질서는 개인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개인 외부에, 계속 실재한다. 개인은 현 사회가 사라지길 바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회피하려는 개인 시도에 저항한다. 개인은 사회에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사회 질서를 아마도 강압적인 것으로, 그런데도 실재하는 것으로 경험한다.

 

이처럼 당신이 사회를 객관적인 실재로 바라본다면, 당신 자신이 ‘물화(thingness)’될 가능성은 커진다. 물화의 전형적인 반응은 ‘그 문제에 난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 위치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어’ 와 같은 변명이다.  하지만 사회 질서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사회 질서는 ‘사물의 본질’이 아니며, ‘자연법칙’에서 유래할 수 없다. 사회 질서는 오로지 인간 활동의 산물로 존재한다.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을 서툴게 혼동하지만 않는다면, 사회 질서에 어떠한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분명 우리를 얽매고 있는 무언가에서 해방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역사적 사건들, 사회적 힘들, 또는 이데올로기 산물이라는 점을, 곧 사회가 구성되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당연한 믿음 안에 갇히지 않고 삶의 다른 방식을 꿈꿀 수 있게 한다.

 


2.

 

 

 

 

 

 

 

 

 

 

 

 

 


<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사회평론, 2001년 12월, 224쪽/철학

 

 

21세기 윤리의 방향은?

 

우리는 모든 행위 결과가 필연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연은 자유의지를 배제하고 행위가 어쩔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인과성을 배제하고 행위를 보는 것이다. 물론 필연이 우리를 좌우할 수 있지만, 우리는 결과의 원인을 사전 알고자 노력하며, 다양한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만이 사람을 주체적으로 만든다. 자유의지는 필연성 혹은 인과성을 괄호에 넣을 때 책임성이 생긴다. 자유(의지)는 ‘자유로워지라’라는 당위로서 존재한다.


‘자유’에 대한 의무는 타자에게도 적용된다. 도덕법칙이란 ‘너의 인격 및 모든 타자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단지 수단이 아니라 동시에 항상 목적으로 대하도록 행위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도덕법칙이 보편적이기 위해서 미래의 타자도 상정해야 한다. 윤리에는 역사 문제가 내포된다. 이론적으로 역사에는 목적이 없지만, 역사의 의미나 목적은 원래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 문제인 것이다.


그저 풍족하게 살고 싶다면 자본주의도 상관없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에 대항해야 하는가? 그것은 윤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위기를 체험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의 ‘행복’을 위해 후손을 희생한다면, 그들을 목적이 아닌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는 것이다.

 


1.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최무영 지음
책갈피, 2008년 12월, 560쪽/물리

 

 

우리는 삶 자체가 아닌 해석된 삶을 산다, 양자역학처럼.

 

고전역학에서 물체 상태는 위치와 속도와 같이 명확한 인과관계의 물리량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물체 상태는 이른바 ‘상태함수’로 규정되는데, 이는 인과관계와 직접 관련 없다. 상태함수는 물체의 여러 가지 가능한 상태만 기술하기에 우리가 실제로 물리량을 잴 때 이론 체계와 실제 세계를 연결하는 해석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른바 대상의 상태를 다양한 고유상태들이 여러 개 포개져 있는 결합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을 측정하면 계(系)는 가능한 고유상태 중 특정 상태 하나로 바뀐다. 이중 어떤 고유상태로 바뀔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고, 다만 각 고유상태로 바뀔 확률만 얘기할 수 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전제며, 우리 삶도 그렇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2-20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다님! 이 알차고 어려운 책들 좀 보소....

북다이제스터 2017-12-20 20:25   좋아요 0 | URL
syo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제가 창피합니다. ^^

시이소오 2017-12-20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천 책 10권중 제가 읽은 책이 없네요. 내년엔 북다이제스터님 리스트를 쫓아가봐야 겠어요. 올 한해도 알찬 리뷰감사드리고 내년에도 부탁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2-20 20:29   좋아요 0 | URL
올해 회사 보스 눈치 보느라 좋은 책 얼마 많이 읽지 못 했습니다. ㅎㅎ 동병상련 일 것 같아서 넋두리 해봤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2-20 2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7년을 깔끔하게 정리하셨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12-20 20:30   좋아요 1 | URL
ㅎㅎ 올해 하반기만 정리했습니다.
2017년 전체 정리도 해야 되는데요....ㅎㅎ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