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주장과 달리 진화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유전자 산물이 아니다. “진화란 자신과 정확히 똑같은 유전자를 복제하고 싶어하는 유전자의 이기적 욕구와 유전자 욕구를 무작위로 만들려는 돌연변이 능력 사이에 벌어지는 경쟁이다." 유전자 돌연변이가 유전자 자체를 변화시키더라도 개체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기능에 미치는 효과는 아주 미미하거나 아예 없기에 자연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고 계속 축적된다. 이런 돌연변이를 ‘중립 돌연변이(neutral mutation)’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의 유전자 차이는 수백만 개에 이르지만, 대부분 중립 돌연변이라” 사람들, 즉 개체 사이의 차이는 발현되지 않는다.<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

 

 

 

 

 

 

 

 

 

 

 

 

 

 

2004년 노벨상을 받은 린다 벅과 리처드 액설은 “사람 게놈에서 족히 3퍼센트가량인 1,000개 남짓 유전자가 다양한 냄새들을 감지하는 데 쓰이고, 유전자 한 개는 냄새 분자 하나에 반응하는 수용체 한 개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사람의 1,000개 남짓 유전자 중에서 300개 가량은 수선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이한 돌연변이 형태라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사람 이외 다른 포유류는 이 유전자 전부를 사용한다).

 


안 쓰는 유전자들이 그렇게 만다면, 왜 사람은 애초 그렇게 많은 후각 유전자를 거느려야 했을까? 생물이 세대를 거치면서 게놈에 간간히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만약 돌연변이가 어떤 유전자 기능을 망가뜨리면 그 결과는 위험하거나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를 망가뜨리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돌연변이라면 어떨까? 그런 돌연변이는 세대로 조용히 전수된다. 수학적으로 따져보아도 확실한 사실이다.

 


예를 들면 고래의 비도는 냄새 맡는 일에 쓰이지 않는다. 고래의 비도는 분수공으로 변해, 냄새 맡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일에 쓰이고 있다. 고래는 포유류의 후각 유전자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지만, 그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 고래가 비도를 분수공으로 바꾸면서 냄새 유전자들이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자, 냄새 유전자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돌연변이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쓸모없는 유전자들이지만 진화의 기록으로서 조용히 DNA 안에 남게 된 것이다.” <내 안의 물고기>(김영사, 2009)

 

 

 

 

 

 

 

 

 

 

 

 

 

 

 

그러다가 이러한 쓸모없는 “중립 돌연변이가 축적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유전자 서열이 분기될 것이다. 같은 유전자가 여러 다른 종에서 (자연선택과 무관하게) 다양한 정도로 뒤섞여 수백만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으며 이것이 유전자 계보” 즉 진화의 토대가 된다. 도킨스 말처럼 유전자 시선에서만 개체를 볼 것이 아니라, 개체 관점에서 유전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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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이론 주창자 대부분이 그렇듯 다윈도 본인 저서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두 가지 큰 실수를 하여, 논란이 계속 되었다. 다윈은 “인간과 고유 포유류 사이의 두뇌 능력에 근본적 차이가 없다”는 근거로 진화론을 주장했다. 다윈 논리는 한 마디로 ‘본질적 차이와 정도의 차이’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본질적 차이’는 어떤 중간 종(種)도 있을 수 없고 정도 차이로 환원할 수도 없는, 실제로 철저하게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류임을 의미한다. 반면 ‘정도 차이’는 중간 종을 인정하는 것이며, 종의 표면적인 차이가 정도 차이로 환원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진화론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다윈 이론의 쟁점은 “인간과 영장류의 인지적 차이는 본질적 차이인가, 정도의 차이인가?’가 되며, 그 차이는 ‘서로 이을 수 있는 차이일까?”로 귀결된다.

 

 

 

 

 

 

 

 

 

 

 

 

 

 

 

 

다윈의 결론과 달리 많은 사람, 특히 종교학자들은 세 가지 근거로 인간 두뇌는 영장류와 비교해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인간만이 인공지능 같은 고도의 공작 기계를 만들 수 있고, 예술품을 만들 수 있고, 법률을 제정하는 등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역사를 후대에 전수해 진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종교학자들은 “만일 인간 마음이 본질에서 다른 것이라면, 즉 단지 정도 차이가 아니라면, 인간 마음은 자연에서 자연적인 원인으로 진화하여 생긴 것일 수 없으므로, 그것은 초자연적인 원인, 신의 창조에 의하지 않고는 생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개념어 해석>(모티어 J. 애들러, 모티브북, 2007년)

 

 

 

 

 

 

 

 

 

 

 

 

 

 

 

다윈의 두 번째 실수는 이 책 <풀 하우스>에서 소개되어 있다. 다윈 저서 <종의 기원> 맨 마지막 페이지에 쓴 ‘진보’라는 단어가 문제가 된다. “자연선택은 오로지 각 개체에 의해, 개체를 위해 작동하므로 모든 정신과 물질적 자질은 완성을 향해 ‘진보’되어 갈 것이다”라고 다윈은 기술했다. 하지만 이 책 저자는 ‘진화는 특정 방향이 있는 진보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진화는 ‘무엇인가’가 어디론가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풀 하우스, 자연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변이 확장이나 위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류는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질을 가진 생명 진화의 예정된 결과다.”


“인간의 해부학적 복잡성, 신경의 정교함, 습성의 다양성과 유연성 등 호모 사피엔스의 생명 특성을 보면, 인간은 틀림없이 어떤 진보의 경향을 보인다.”


“인류가 지구 시간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존재한다는 지질학의 놀라운 발견을 봐선, 진화 방향은 인간을 향한 예정된 진보다.”


“35억년 전 지구에 살던 생물은 박테리아와 그 사촌들 같은 아주 간단한 종류의 단세포 생물들뿐이었으나, 오늘날 지구는 쇠똥구리, 해마, 피튜니아, 인류 등으로 붐비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진보가 생명의 역사를 진전시켜 온 기본 추진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는가?”


“진화가 진행됨에 따라 생물의 구조나 생리 기능에서 전문화 정도가 커진다.”


“다른 생물은 인류보다 못하다.”


“생명체 발달 과정은 복잡화, 조직화, 전문화의 증가를 통해 진화 단계를 하나씩 밟아 사다리를 올라간다. 어마어마한 대뇌 피질과 기막히게 복잡한 행동 패턴을 소유한 인류는 우리가 아는 한 그 정상에 위치에 있다.”


“지난 몇십 억 년 동안 동물들은 전체적으로 몸의 크기, 먹이 섭취 및 방어 기술, 뇌와 복잡한 행동, 사회적 조직화, 환경 조절의 정확성 등에서 상승 진화했다.”


“진화는 한 집단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전환하는 연쇄적 선형의 사다리다.”

 

 

우리가 이렇게 착각하는 것은 “경향을 알고 싶어 하는 강렬한 인간 욕망이 종종 실재하지도 않는 방향성을 찾아내거나 입증되지 않는 원인을 추론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건들에서 반드시 패턴을 찾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어서, 단순히 무작위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에서 분명한 경향을 잡아 그 원인을 찾는다. 대부분 사람은 순전히 무작위적인 결과에서도 규칙성이 자주 나타날 수 있음을 잘 모르고 있다.” 착각으로 보이는 “외견상 방향성 또는 경향은 사실 한 시스템 안에서 변이 정도가 축소되거나 확장된 ‘부차적’ 결과이지, 어떤 것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여 간 결과가 아님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류가 생겨난다. 방향성이란 그러한 시스템의 가장자리가 확장되거나 위축되는 변이의 한 극단에서 찾아낸 ‘희귀한’ 대상에 근시안적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비롯된다. 변이 경계가 확장되고 축소되는 이유는 평균값이 변화되는 원인과는 전혀 다른 범주의 것이다. 따라서 경계선의 확장과 위축을 덩어리의 확장과 위축으로 착각하면 완전히 엉뚱한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우리는 플라톤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하나의 이상형[인류]을 그 시스템[자연]의 본질로 추상화하고 전체 집단을 구성하는 각 개체 사이의 변이를 무시하거나 평가절하하고 있다.” “변이가 자연의 기본 속성이며, 평균이라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평균은 개체에는 적용될 수 없는 추상적 숫자일 뿐 아니라, 대체로 각 개체 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일반적으로 분포가 유난히 많이 기울어져 있을 때는 평균값은 곡선이 기울어진 꼬리 쪽으로 크게 끌려가며, 중앙값은 그보다 덜 끌려가고, 최빈값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미미한 꼬리 쪽[인류]은 생명체 전체를 근본적으로 정의하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 꼬리를 다양한 복잡성을 가진 전체를 대표하는 특성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 꼬리[인류]는 그 시스템 안의 전체 성분들[자연]의 완전히 무작위적인 움직임의 결과로 생긴다.” “꼬리는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 꼬리에서 어떤 형태의 생물이 생겨날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인류는 운 좋게 당첨된 것이지 생명의 방향성이나 진화 메커니즘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다.”

 

 

이 같은 저자 연구로 다윈의 첫 번째 실수인 ‘본질적 차이와 정도의 차이’ 문제도 해결되었다. 본질적 차이인지 정도의 차이인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류는 그저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인간이 자꾸 ‘진화는 진보다’라고 믿고 싶은 것은 “인간은 원래부터 특별한 존재라고 간주하고 싶은 전통적 희망”일 뿐이다. “인류 출현은 운 좋게 맞아떨어진 필연적 흐름에 가깝다. 하지만 엄청나게 우연한 사건은 프랙털 원리에 따라 강력한 힘으로 모든 국면에 개입한다. 현생 인류가 출현하기까지 몇십만 단계 중 어느 한 단계에서 미미하지만 다른 변이가 일어났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역사는 어떤 자의식을 가진 생물도 출현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인류 출현은 복잡성을 향한 추진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예측 불가능한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영광스러운 사건일 뿐이다.”

 

 

진화론이 인간을 종교의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었다. 신이 인간을 특별한 존엄과 그에 상응하는 특별한 운명을 가진 존재로 창조했다고 믿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는 진보’라는 잘못된 개념을 계속 고수하여 인본주의와는 결별하지 못했다. 이제 인간이 진보된 상태가 아니라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여, 인간이 자연의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는 ‘인간 존엄성’ 개념과도 결별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이 끈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선택은 오로지 국지적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만을 낳기 때문에, 복잡성의 감소 방향[단순화]이 더 진화의 경향일 수 있다. 30억년 전 대양 원시 생명 수프에서 합성된 최초의 세포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놀라운 복잡성까지 생명의 진화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더 큰 복잡성을 향한 장거리 행진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문제는….. 그것을 확인해 줄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 자연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는 분류 시스템의 얼개를 통해서만 그것과 교감할 수 있다. 이 점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어떤 기본 범주들은 너무나 명확하므로 그 구분법은 시간과 문화를 초월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영원한 이분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양성 모델’은 서양 역사에서 최근에야 보편화되었다.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는 인류의 분류 방식은 하위 속물에서 상위 이상형 상태까지 위계적 연속체를 이루고 있다는 ‘단성 모델’이 선호되었다. 물론 그때에도 인류를 크게 여자와 남자 두 무리로 가를 수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상적 원형적 형태는 단 하나이고 실제로 표현된 것(실제 인류)은 형이상학적 발전 과정의 어느 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를 걸쳐서 지속되는 여성 억압의 심도를 이해하려면 분류가 급격하게 변화한 역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단성 모델에서 전통적인 남성성은 더 큰 열정에 의해 단일 사다리의 정상에 있고, 전형적인 여성성은 힘의 생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사다리 밑에 위치한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자’는 운동의 잔인성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이 운동은 개인적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면 깊은 곳에서 긍정적 사고를 불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꾸짖는 방식으로 교활하게 변질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성격과 기질은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성격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도 그렇게 쉽게 고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대처하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못하느냐고 누가 감히 책망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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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럴 일 없겠지만, 공저자 두 명이 이 리뷰를 읽는다면 화들짝 놀라 펄쩍 뛸 일이다. 자신들 저작 의도를 왜곡했다고 분명 지적할 것 같다. 저자들은 ‘현재 진화이론의 다섯 학파(사회생물학, 인간행동생태학, 진화심리학, 문화진화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각각 특징과 한계를 밝히고 서로 접목해 진화론 연구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집필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행간은 진화심리학만을 보내버릴 의도로 이 책을 쓴 것처럼 보인다.

 

사실 시중에 넘쳐나는 각종 진화이론을 읽다 보면, 어떤 이론은 ‘이건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때 있고, 또 어떤 이론은 ‘기가 막히게 앞뒤 설명이 지나치게 잘 맞는다’는 의심도 든다. 하지만 대부분 책에 실험과정은 생략한 채 결론만 나오며, 비전문가인 독자는 각종 진화이론이 모두 옳은 것인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여러 가지 진화이론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저자들 스스로 진화이론 분과에서 어떤 학파에 속하는지 명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프로필을 보면 사회생물학이나 인간행동생태학, 문화진화론 전문가인 듯싶다. 사실 저자들도 말한 것처럼, 다섯 학파는 분류를 위한 분류일 뿐 그 경계가 모호하다. 특히, 사회생물학과 인간행동생태학, 문화진화론과 유전자-문화 공진론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하여튼 현대 진화론의 각 학파는 자신들 이론이 옳다고 주장하며, 서로 치고받는 형국이 책 전체에 나쁘게 보이지 않는다. 교수인 저자들은 점잖은 ‘교수체’로 서로 싸우지 말고 장점을 배우자고 교통정리를 한다. 당신 이론은 이런 것이 장점(센스)이고 이런 것은 단점(넌센스)이라고 설명하며, 다섯 학파 모두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근데 이런 교통정리 과정에서 뭔가 찜찜함이 있다. 진화심리학 단점은 뿌리를 건드리는데, 다른 이론들은 잔가지만 문제 있다고 언급하는 형세다.

 

모든 진화론 학파에 현 인기 순위를 매긴다면 “진화심리학자들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저자들은 솔직히 인정한다. “진화심리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관점을 연구에 적용하기 매우 수월했기 때문이다. 한편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춰 대중들에게 덜 위협적인 인상을 줬다. 왜냐하면, 대중은 인간 차이에 대한 (사회생물학과 인간행동생태학의) 진화론 설명을 재빨리 인종차별과 유전적 환원주의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진화심리학은 운 좋게도 재능 있는 저술가들을 여럿(특히, 스티븐 핑거, 로버트 라이스, 데이비드 버스) 확보하고 있다. 또한,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은 대중성이 가미된 설명을 제시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 언론에 주목받은 것은 물론 동조하지 않은 학자들을 포섭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진화심리학 모든 이론의 대전제는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은 약 200만 년 전 인류의 수렵, 채집 시대인 홍적세(약 198만 년 기간) 동안 생존이나 생식 등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뱀과 자동차 비교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다. 많은 현대인은 뱀의 위험에 더는 노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현대인은 TV나 책, 혹은 유리 상자 안에 있는 뱀을 볼 때조차도 뱀을 극도로 혐오한다. 반면, 자동차 사고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매일 죽거나 다치고 있지만, 자동차를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는 현대인은 극히 드물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사람이 뱀을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그리고 자동차를 ‘무서워할’ 만큼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이 가진 대부분 감정과 행동은 현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멀고 먼 옛 조상 시기에 존재했던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12)

 

 

 

 

 

 

 

 

 

 

 

 

 

 

그럴듯해 보이는 데 과연 그럴까? 이제부터 저자들의 집중 포격이 시작된다. “심지어 가장 열렬한 진화심리학자일지라도 자신들 연구 분야에서 빈약한 연구와 근거 없는 서술이 성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먼저 “우리 조상들이 홍적세 동안 생활했던 방식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은 “그 당시 세상에 적응한 속성을 둘러싸고 마구잡이 식 추측과 허무맹랑한 속설을 양산했다. 많은 연구자는 그 당시 인류가 (수렵, 채집을 위한) 아프리카 사바나뿐 아니라 사막, 강가, 대양의 연안, 숲 속, 극지 등에서도 살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고정관념은 틀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 심지어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조차 현대의 수렵, 채집인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활했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의 생활사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가설을 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인간의 특정 형질은 홍적세 이전에 형성되었을지 모른다. “예컨대 자녀양육이나 학습능력 등은 무척추동물 시기에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지각적 선호의 상당수는 오랜 계통발생사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인과관계 이해는 심지어 조류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안정적인 사회적 유대관계 형성, 위계질서 구축, 공동사냥 등과 같은 사회적 행동도 어쩌면 인류 이전 영장류 때부터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모방능력 역시 인류 이전의 영장류 시절에 진화한 것일 수 있다.” 사회생물학자다운 저자들 이의제기다.

 

또한 “홍적세 이후 인간의 심리적 형질에 진화가 작용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기간이 겨우 약 2만 년으로 짧아서 그런가? “근래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전 유전체를 여러 차례 분석하여 수백 개 유전자는 근년에 진화했음을 확인했는데, 그중 두뇌에 발현되는 유전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최근에 이루어진 자연선택은 진화된 심리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은 존립 근거를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생각보다 극도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최근 실험 결과를 보면 인류는 25세대 만에 1 표준편차의 진화 변이가 일어난다. 이 말은 수천 년 이내에 실질적인 뇌의 생물학적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화심리학 문제는 “인간을 자연선택에 희생되는 수동적 존재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진화를 환경이 던져준 문제를 유기체가 해결하는 과정으로 간주하는 진화심리학은 일종의 왜곡이다. 예컨대 적소구축이론(niche-construction theory)은 유기체가 자신을 둘러싼 선택환경의 중요한 부분들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적응을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다른 동물보다 ‘불일치’나 ‘적응 시차’를 훨씬 덜 경험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의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가소성을 고려하면, 인간의 인식과 행동 중 상당 부분은 ‘(수렵, 채집 시대에 고정된) 유전자에 의해 완벽하게 규정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외견상 진화심리학은 전문적이고 기본적인 진화생물학 문헌보다, 리처드 도킨스류의 대중적 진화론 서적들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진화는 진화심리학 교과서에서 다뤄지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현상이다. 여러 가지 형질 중에서 어떤 것이 자연선택의 결과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대 진화생물학의 고질적 문제로 악명 높지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결책은 없는 실정이다.” 저자들은 진화심리학을 관에 집어넣고 관 뚜껑에 못질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이 책 모든 내용의 논의를 단순화하면 각종 진화론 학파 간 서로 혹은 사회과학자와 논쟁하는 근본 이유는 인류 진화를 생물 혹은 유전자로 보는 환원주의 문제 제기에 있다. 이 논쟁은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시대에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기저기서 망령처럼 떠돌아다닌다. 난 이 책 저자들 설명에 공감한다.

 

사회생물학자 “애드워드 윌슨은 환원주의가 행동을 연구하는 데 적절한 접근방법이라고 믿었다. 사전을 보면, 환원주의란 ‘복잡한 자료와 현상을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환원주의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과학 전반에 걸쳐 적용되고 있으며, 죄악은커녕 미덕인 것처럼 보인다. 윌슨은 자신 사고방식이 바로 환원주의며, 그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밝혔다.”

 

“많은 사회과학자는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분석에 반대하며) 문화를 여러 개의 기본단위로 쪼개어 수학적 모델 안에 포함할 수 없다고 본다. 문화현상은 전체적 관점에서 좀 더 질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유전자와 문화는 극과 극인 것처럼 보인다. 유전자는 잘 정리된 염색체 위에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부위에 자리 잡은 분명한 미립자성의 대립유전자 쌍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전자 개념은 우리를 오도시킬 만큼 단순화한 것이다. 유전학자들은 아직도 유전자가 염색체 위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서 끝나는지 그리고 그 사이의 어느 부분을 유전자로 간주해야 하는지 확실히 규정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유전자의 종류도 셀 수없이 많다. 조절유전자, 인트론, 엑손, 정크 DNA, 미토콘트리아 DNA, 엽록소 DNA, 이기적 DNA, 전위유전 단위, 역전사 바이러스, 움직이는 유전자, 중첩 유전자, 유전자 속의 유전자, 상이한 조직에서 상이한 단백질을 코팅하는 유전자, 기타 수많은 복잡한 유전자를 아직도 밝혀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생물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화된 유전자 개념이 생물학적 진화의 연구 과정에서 엄청난 가치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문화의 경우에만 애매한 기본단위(환원주의)가 문제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 명료한 유전자’ 개념(환원주의)으로 생물학의 실증적, 이론적 연구가 모두 번창했으며, 문화 연구자들 역시 이 같은 실용적 태도를 보여야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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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진화 -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이경식 옮김 / 시스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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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경제경영학 도서 분야 베스트 셀러에 오른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강의>에서는 뛰어난 조직은 구성원의 충성심이 핵심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무릇 조직에 충성심이 없는 구성원이 많으면 조직은 그들의 이기적 행동을 감시하고 처벌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2007년 국내 출간된 이후 많은 반향을 일으키며 현재까지 스테디 셀러로 자리 매김 한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에서는 성과가 높고 사업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난 기업의 공통점으로 조직 구성원의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한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항상 내 뒤통수를 치며 나를 이용해 먹는 보스가 있을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본 칼럼 마지막 부분에 할애한다.

 

 

이기적 개인들의 협력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말했듯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이기적인 개인은 다른 사람이 베푸는 이타주의의 혜택을 실컷 보고 자신은 남에게 갚지 않거나 베풀지 않는다. 타인의 관용과 이해를 바라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못된 인간들을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더구나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 선택된 뿌리 깊은 이기심으로 남의 고통에 피도 눈물도 없이 무관심하며, 남을 이용해 야멸차게 내 성공을 추구하도록 진화되었다. 사실 인간은 천사가 아니며 가능한 자신 이익부터 먼저 챙기는 이기적 행동이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야생 자연생활 환경에서 진화했다. 그러나 이런 이기주의자들이 가득 찬 인간 사회에 협력이라는 행위가 언젠가부터 나타났으며, 협력을 바탕으로 한 인간 문명이 만들어졌다. 사실 상 협력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과 미묘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협력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은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상대방의 행동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나의 사전 예상과 내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상대방의 사전 예상에 따라 협력의 여부와 강도가 달라진다.

<협력의 진화: 이기적 개인의 팃포탯 전략(The Evolution of Cooperation: the Second Edition)>은 이런 복잡한 협력에 관한 궁금증을 아주 쉽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게임이론 전문가인 미시간 대학교 정치학과 로버트 액설로드 교수와 포괄 적합도 이론(Exclusive Fitness Theory: 일종의 친족 이론)의 창시자인 다윈진화학자 윌리엄 헤밀턴 교수가 함께 썼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를 저술한 리처드 도킨스가 추천서를 작성했다. 도킨스는 나는 지구 위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면 세상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에게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것이다. <협력의 진화>성경을 대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라고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상호관계의 최선 전략

이 책은 저자인 로버트 액설로드의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다른 사람과 앞으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언제 협력을 하고, 또 언제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할까?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친구나 동료에게 계속해서 호의를 베풀어야 할까? 파산 직전인 거래처에 당장 편의를 제공해도 될까? 적대국의 도발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강력하게 응징을 가해야 할까?

이런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전세계 6개 나라의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 등 각계 게임이론 전문가들이 개발한 76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출 받아 6차례 상호 24만 번 리그 방식의 게임을 벌였다. 각 프로그램은 상대 프로그램이 과거 얼마나 협력했는지 혹은 배반했는지를 조회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앞으로 협력 혹은 배반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전략이 코딩되었다. 프로그램 전략들의 예시는 이런 것들이다. 결코 먼저 배반하지 않지만 상대가 일단 배반하면 그때부터 끝까지 복수만 하고 용서를 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든지, 상대의 협력에 열 번에 한 번씩 배반하여 상대방을 가끔씩 슬쩍 이용해 먹는 프로그램 등이다. 또한 상대방의 반응을 판단하기 위해서 자신의 협력 후 상대가 협력한 확률과 자신이 배반한 후 상대가 협력한 확률을 계산하여 매 게임마다 이 두 조건부 확률을 새로 계산한 후 장기 혜택을 극대화시킬 방향으로 협력 혹은 배반을 선택하는 등 다소 복잡한 전략 프로그램들도 출전하였다.

그러나 게임 결과는 예상보다 싱거웠다. 6차례의 리그에서 한 차례 2등 한 것을 제외하고 매번 최종 리그 승리자는 팃포탯(Tit-for-Tat) 전략을 쓰는 프로그램이었다. 팃포탯 전략은 게임을 항상 협력으로 시작하고 게임 진행 중에는 상대방이 행동하는 것과 동일하게 대응하는 전략이다. 즉 게임 중 상대방이 협력하면 나도 바로 다음에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나도 바로 다음에 배반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은 매번 개별 게임마다 승리하는 최상의 전략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전략과 상관없이 독립적이고 절대적으로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없으며,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상호관계 리그에서 최종 승리자가 팃포탯이었다.

이 리그들은 장기 간 상호 반복 작용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체스나 바둑과 같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제로섬(Zero-Sum) 게임과 다르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과 많이 닮아 있다. 체스 같은 게임에서 경기자들은 이익이 서로 완전히 상충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최강의 수를 둘 것을 가정하여 전략을 짠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는 서로 협력하여 함께 보상을 받아 모두에게 좋을 수도 있고, 서로 배반하여 둘 다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비제로섬 게임이다. 팃포탯 전략이 매번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상대방이 협력하는 한 나는 거기에 맞춰 협력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상대방이 예상치 않은 배반을 했을 경우 바로 응징을 했다는 것이며, 셋째 상대방의 배반에 응징한 후에는 바로 용서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이 나의 행동 패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전략을 단순하고 투명하게 행사했다는 점이다.

 

 

협력과 용서

리그 내용을 전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가장 큰 시사점은 결코 먼저 배반하지 않는 신사적프로그램들이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팃포탯보다 오히려 더 이기적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수의 프로그램을 더 자주 많이 배반하는 형식으로 설계했다. 이타적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일수록 더 많은 이득을 본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신사적 규칙을 따르는 프로그램들 성적이 좋았던 이유는 서로의 평균 점수를 크게 올려줄 만큼 게임이 충분히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신사적 프로그램 중 점수가 낮거나 거의 배반만 하는 비신사적 프로그램들의 성적 부진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 용서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관용을 충분히 베풀지 않고, 상대방 협조 가능성을 너무 비관적으로 예상하고, 자기 이익만을 지나치게 챙길 경우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었다. 더구나 상대방의 배반 도전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느긋하게 응대한 프로그램들도 더욱 빈번히 상대방에게 이용 당하여 큰 혜택을 보지 못했다.

더 나아가 이 실험에 진화론의 선택과 도태 원리를 추가하기 위해 각 프로그램이 경기에서 얻은 평균 점수와 비례하여 그 프로그램과 동일한 전략을 사용하는 자손의 수가 증감하는 것으로 설계했다. 실험 결과는 흥미로웠다. 50번 정도의 세대에 이르면 낮은 점수 하위 1/3에 속하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사라지고 중위권에 속하는 프로그램들도 숫자가 많이 줄었다. 반면 상위 1/3의 프로그램들 숫자는 계속 증가했다. 이 결과는 진화론의 적자생존 과정과 동일했다. 실험을 계속하여 1,000번째 세대에 이르자 거의 팃포탯 전략 프로그램만이 살아 남았다. 인류의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본다면 3만년이 지난 인류에게 협력이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팃포탯이 여러 세대에 걸쳐 끝까지 살아 남은 이유는 상대방을 착취해 이득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착취는 간혹 일시적 성과를 거둘 때도 있지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우선 어떤 이득을 볼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해 배반하면 즉시 응징하는 규칙의 프로그램들에게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다. 또한 보복이 보복을 낳는 상호보복의 악순환에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팃포탯 전략은 신사적이라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보복적이라 상대방이 배반하면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도록 억제한다. 또한 관대함은 상호협력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되며, 전략의 단순성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기 쉽게 해서 장기적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협력의 기원

이 실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협력이 애초에 어떻게 창발하기 시작했는지 다윈진화론자 윌리엄 해밀턴이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상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집단 내 협력하여 얻은 이득을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즉 집단 내 어떤 개체의 협력과 희생으로 다른 개체가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상호 협력이 서로에게 이득이 될 수 있지만, 상대방의 협조적 노력을 악용하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지속적 교류 없이 단 한차례만 만날 때나 두 개체 사이의 상호작용 횟수가 사전에 미리 확정되어 있다면 최대 이익을 얻기 위해 생물학적 진화 관점에서도 이기주의가 정답이다. 그렇다면 이런 배반만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협력, 희생 등 이타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족주의 때문이다. 친족주의란 윌리엄 해밀턴이 창시한 이론으로 진화론의 자연선택을 유전자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리차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덕분에 이 이론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동일 유전자는 언젠가 죽을 한 개체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체의 친족들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하여 충분히 가까운 혈연관계라면, 비록 본인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한 개체의 이타주의가 그 개체의 유전자 입장에서는 번식에 이득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이타주의는 직계 가족과 같은 높은 혈연관계에서 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은 혈연 혹은 친족관계가 거의 없거나 적은 경우에도 협력 등 이타주의가 발생한다. 이를 친족주의의 개념이 확장된 호혜주의라고 부른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로버트 액설로드는 추가 실험을 했다. 배반이 지배하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개체들이 팃포탯 전략을 행사하는 개체들과 얼마나 많이 상호 작용해야 특정 집단이 협력의 호혜주의로 진화할 수 있는지 본 것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집단 내 각 개체는 팃포탯과 단 5%만 상호작용해도 협력의 집단으로 진화하였다. 이로써 소수의 친족주의가 집단 전체의 호혜주의로 창발할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특히 상호작용이 더 장기간 지속되면 될수록 최초 팃포탯 집단 크기가 5%보다 훨씬 더 적더라도 집단 전체는 호혜주의로 변하였다. 이처럼 협력은 혈연관계가 적은 환경에서도 확산될 수 있다. 그리하여 두 개체가 향후 다시 만날 확률이 충분히 클 때는 호혜주의에 입각한 협력은 살아남을 수 있고 친족관계가 전혀 없는 집단 내에서도 진화적으로 호혜주의가 안정화된다.

생물체는 협력이 진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력 특성이 적용되면서 발전했다. 먼저 협력이 진화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배반에 반드시 응징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발달시켰다. 인간과 같이 고등생물은 자신의 종() 개체들을 매우 잘 식별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다. 특히 인간은 주로 (배반자의) 얼굴인식을 중심으로 이런 능력이 발달했다. 인간의 이 기능이 얼마나 잘 발달했는지는 안면인식 장애라는 뇌질환을 통해서도 꺼꾸로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올리버 색스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추천한다.) 정상인은 오랜 세월로 형태가 많이 바뀐 얼굴만 보고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런 연관을 짓지 못한다. 이 질병과 관련된 뇌 부위는 후두골의 기저, 관자놀이의 내부 표면까지 뻗어 있다. 이처럼 뇌의 상당량이 사람의 얼굴인식 임무를 할당할 만큼 중요한 기능임을 알려준다.

이뿐만 아니라 상대와 얼마나 상호작용이 가능한지 지속 가능성의 단서를 찾아 내는 능력도 생물체에 발달했다. 미래 상호작용의 가능성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상대의 협력에 보답할 가치가 떨어진다. 이는 한 생물이 병에 걸려 생존력이 감소하면 협력했던 다른 생물은 일회성 이득을 취하도록 변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기제는 미생물 수준에서도 작동한다. 주로 감염을 통해 다른 숙주로 이동할 수 있는 미생물은 기존 숙주의 노화나 질병 등으로 상호작용의 지속가능성이 감소하면 상리공생에서 기생으로 돌변한다. 기생형태가 되면 확산 및 감염 능력이 있는 더 많은 개체들을 생산함으로써 숙주를 더 심각하게 착취할 수 있다. 인간 장내 박테리아는 정상일 때는 무해하거나 이익이 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장에 구멍이 뚫리면 전신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가수 故 신해철씨의 사인이다.) 이처럼 미생물뿐만 아니라 앞의 컴퓨터 프로그램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협력은 지능 없이도 창발하고 진화할 수 있다.

 

 

개인을 위한 팁

그렇지만 협력이 진화하기 위해 지능이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들이 사회나 조직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 지능적으로 취해야 할 몇 가지 팁이 있다. 사실 사람들은 제로섬 방식의 상호작용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당장 눈에 보이는 상대방 성공을 비교하여 자신을 돌아본다. 이런 비교는 질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질투는 상대방이 거둔 성과를 깎아내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그래서 결국 배반을 한다. 하지만 배반은 더 많은 배반을 부르고, 서로 처벌을 받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질투는 스스로를 파괴한다. 우리의 삶은 대게 제로섬 방식이 아니다. 상대방과 나를 비교해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 따지는 것은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닌 이상 좋은 태도가 아니다. 상대방이 얻은 평가와 명성 그리고 재산은 결코 좋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이기겠다는 목적은 달성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갈등만 일으킨다. 상대방을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자신이 얻은 것을 상대방과 비교하는 것은 자기 파멸의 질투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 더 나은 방식은 다른 사람이 내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팃포탯이 우승한 것은 상대방을 무찔러서가 아니라 함께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행동을 상대로부터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팃포탯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함께 높은 성과를 얻도록 상대를 유도함으로써 리그에서 최종 우승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비제로섬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매 게임마다 상대방보다 잘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매우 다양한 사람들과 수많은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더 그렇다. 오히려 각 상대들이 나와 같거나 조금 더 잘하도록 내버려두어도 좋다. 오랜 기간 반복되는 게임에서는 상대방의 성공이 사실상 내가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공급업체에서 물건을 사는 회사의 경우 두 회사가 좋은 협력관계를 맺을 때 함께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공급업체가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해서 이를 시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만일 대금 결제를 제때 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공급업체의 수익을 깎아 내린다면, 보복은 보이지 않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공급업체는 배달을 지연시키거나, 품질관리를 허술하게 하거나, 대량 구매 시 할인에 인색하거나, 혹은 사업 환경 변화와 같은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보복할 것이다. 질투는 보복이라는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한다.

물론 상호작용 기간이 짧을 때 팃포탯 전략을 쓰는 사람을 만나면 배반과 협력을 번갈아 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내리 배반만 해도 유리하다. 그러므로 나중에 다시 상대를 만날 것 같지 않으면 배반하는 편이 신사적인 것보다 이득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집시와 같은 집단은 인간 관계가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주위에 대부분이 항상 배반 전략을 쓰더라도 아주 적은 비율이 팃포탯처럼 협력을 갚을 줄 아는 전략을 쓰는 사람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팃포탯 전략을 쓰는 것이 유리하다. 팃포탯 전략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비율이 전체 상호작용 중 단 5%만 되어도 항상 배반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 물론 계속 배반하면서 기다리다가 상대방이 협력하면 그때부터 협력을 시작하는 안전 제일주의를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내가 배반을 시작한 순간 상대방도 배반으로 보복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양쪽이 모두 상호배반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배반을 용서한다면 상대방은 나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상대로 얕볼 위험이 있다. 혹시 이런 장기적인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하더라도 나의 첫 배반에 대한 상대의 즉각적 보복 때문에 처음부터 신사적으로 나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신사적이지 않은 전략은 처음에는 전도유망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자기 성공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파괴하여 결국 몰락하게 된다.

팃포탯 전략의 비상한 성공은 단순하지만 설득력 있는 교훈을 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즉 받은 만큼만 되갚아 주라는 것이다. 상대방이 한 차례 배반했을 때 두 차례 이상 배반하는 것은 자칫 끝없는 보복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반면에 한 차례 미만으로 응징하면 상대방으로부터 이용 당할 위험이 높아진다. 물론 용서의 적정 수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서로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복하는 악순환 상황에서는 보다 큰 관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상대방이 내 행동을 이용하여 착취하려 든다면 지나친 관용은 오히려 손해다. 상황에 따라 적당한 수준의 용서를 정확하게 결정하기 어렵지만 한 차례 배반에 한 차례 응징하는 것이 대부분 상황에서 적당하다.

사회 및 조직 생활에서 최대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개인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팁은 너무 영악하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정교하고 복잡한 전략보다 단순한 전략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 심지어 성과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들은 사실 상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이런 전략들의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 선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고정된 환경의 한 요소로 생각하고 자기 성과만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제한된 범위에서는 뛰어날 수도 있지만 상호작용 효과를 무시하는 것이다. 체스와 같은 제로섬 게임에서는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상대방이 협력해 줘야 내가 잘 될 수 있다. 협력을 유도하고 격려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회 및 조직을 위한 팁

지금까지가 개인들의 성과 향상을 위한 팁이었다면 사회 및 조직이 구성원들의 협력을 증진시킬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협력의 장려뿐만 아니라 협력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도 존재한다. 시장에서 독과점 가격이 형성되지 않도록 한다거나 잠재적인 적들이 서로 공조하지 못하게 할 경우 협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반대로 적용하면 된다. 하여튼 협력이 어려운 경우는 지속적 상호작용이 반복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므로 협력 증진의 방법은 두 사람이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며, 다시 만났을 때 서로 알아볼 수 있게 하며, 또 과거에 서로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먼저 현재와 비교하여 미래가 충분히 중요하다면 상호협력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호작용이 미래 언제 중단될 지 모른다는 것이며, 다른 한 하나는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득을 오늘 당장 받기 원하지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결론으로 협력을 증진시킬 방법은 먼저 상호작용이 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당 기간 동안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이동배치를 줄이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상호작용이 보다 자주 빨리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호작용의 범위를 소수에게 한정할 경우 소수자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더 자주 일어난다.

이런 측면에서 수평 조직보다 수직계층 조직이 특정 개인들의 상호작용을 집중시키고 향상시키는 데 더 효과가 크다. 관료제는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룰 수 있도록 조직화한다. 이런 조직 특성이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빈도를 증가시켜 서로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어떤 쟁점이 발생하여 조직의 다른 부서들 사이에 조정이 필요할 경우 위계구조의 높은 지위에 있는 정책 입안자들이 서로 자주 접촉하여 처리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조직은 사람들을 장기적이고 다층적인 게임으로 함께 묶어 미래의 상호작용을 더욱 중요하게 만들며 상호작용의 빈도를 증가시킨다. 이는 구성원들 사이의 개별적 상호작용이 일어나기 어려운 큰 집단에서도 협력이 창발될 수 있다. 이것은 다시 조직 자체가 보다 크고 복잡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도록 조직을 진화시킨다.

교섭이나 협상이 필요한 경우 상호작용을 더 자주 일어나게 하는 방법은 쟁점을 작게 조각 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양측은 한두 차례 큰 선택을 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작은 선택을 많이 할 수 있게 하면 호혜주의가 보다 효과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매우 중요한 상호작용을 작은 덜 중요한 상호작용들로 쪼개면, 현재 선택에서 배반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미래에 상호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비교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적어지므로 협력의 안정성은 증대된다.

사회나 조직에서 이기주의 상황이 판을 치는 경우 사람들의 흔한 반응은 이런 상황을 억제하기 위한 법률이나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정부 등 중앙 통제 기구다. 사람들이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이득이 없더라도 전체의 혜택을 위한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배반했을 때 처벌이 워낙 커서 협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처벌을 크게만 할 필요가 없다. 상호작용의 장기적 혜택을 배반의 단기적 동기보다 약간이라도 더 높게만 하면 된다.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회나 조직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팁은 팃포탯 효과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사실 상 성경의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 주어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협력은 문제가 있다. 이는 상대가 나를 이용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무조건적 협력은 뺨 맞은 당사자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준다. 그들도 나중에 이 뺨을 때린 사람과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응징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협력하면 상대방 교화의 부담을 사회나 조직 전체에 지우게 되는 것이다. 하지면 팃포탯의 호혜주의는 남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이 살아남기 어렵게 만들다. 사실 상 팃포탯은 거의 모든 리그에서 우승했지만, 매 게임에서 맞붙었던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근본적으로 팃포탯은 게임에서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없는 구조다. 팃포탯은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어서가 아니라 상대로부터 협력을 이끌어 내어 우승했다. 팃포탯은 상호이익을 증진시켜 좋은 성적을 냈지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좋은 성적을 올린 게 아니다. 심지어 앞으로 상호작용을 할 일이 없는 사람에게도 팃포탯을 쓰는 것이 나중 나와 사회 혹은 조직 전체를 위해 이득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처벌받음으로써 집단 전체의 협력 상태가 높아지는 것이다.

 

 

상사와 협력

조직에서 항상 내 뒤통수를 치며 나를 이용해 먹는 보스가 있을 경우 나는 어떻게 대처 해야 할지 답을 할 차례가 되었다. 보스는 아랫사람을 상대할 때 아랫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배반하면 가차없이 다시 협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스 자신은 본인의 권위를 이용해 배반과 협력을 번갈아 한다고 가정하자. 반면 아랫사람은 보스가 연이어 두 번 배반하지 않는 한 협력하고 연이어 두 번 배반하면 다시는 협력하지 않는다고 치자. 이는 현실과 같이 아랫사람 입장에서 보면 두 번에 한 번씩은 이용 당한다는 점에서 굴종적이고, 일정 횟수 이상은 참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이런 유사한 사례를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조직계층 상위에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많은 혜택을 얻는다. 이에 비해 최하위계층 사람들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굴종하기 때문에 항상 피해를 받는다. 이는 상위계층 사람들이 계층구조에 왜 만족하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최하층 사람들이 여기에 맞서서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 슬픈 일이지만 없다. 상호작용이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될 경우 아랫사람은 배반을 선택하고 끝없이 보복을 받는 것보다 두 번에 한 번씩 보스에게 당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위계층에 속한 사람이 헤어날 길이 없다. 아랫사람이 피해를 받지만, 그렇다고 그 구조에 저항하려 했다가는 더 큰 피해를 볼뿐이다. 혼자 항거해 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이유는 보스 전략이 가진 불변성 때문이다. 낮은 신분의 반란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를 끼칠 따름이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인 것은 사회에서 항상 뒤통수를 치는 보스를 만날 확률은 극히 드물다. 이런 보스는 상대방 배반에 단 한차례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에게 최대한의 것을 얻어낸다는 평판을 지속적으로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평판을 쌓기는 쉽지 않다. 이런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배반을 많이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대 경기자들이 보복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평판을 얻을 때까지 아무 보상도 없는 의지의 싸움을 수없이 벌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협력의 진화 관점에서 보면 이런 보스는 소수의 팃포탯 집단을 만나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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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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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 일련의 세 차례 선거에서 야권은 계속 패배했다. 특히 마지막 보궐 선거에서 야당이 패한 직후 진보주의자로 알려진 유시민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말 세다라는 짧은 표현을 하였다. 세월호 사고 등으로 정국이 야당에게 유리하게 형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선거 참패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밝힌 듯 하다. 매번 선거 이후 각종 언론은 야당의 패배 이유를 찾기 위해 각종 분석 기사들을 쏟아 냈지만, 그 어떤 설명도 충분치 않아 보였다.

필자도 궁금하던 즈음 <바른 마음: 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라는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유권자가 선호할만한 정책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보수 정당이 속성상 진보 정당보다 한참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거라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보수 정당이 50미터를 앞서 출발한다는 그 속성을 모르면, 진보 정당이 보수 정당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SNS에는 개인주의, 이기주의, 집단주의 등 관련하여 개인적인 지향 혹은 지양 의견을 피력하는 글들이 많다. 유독 SNS에 이런 글들이 많은 이유도 궁금했지만, 그러한 의견들이 맞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그런 유형의 내용은 이렇다.

“내 친구 다들 유행가를 듣던 어린 시절, 내가 레드 제플린을 들으면, 어떤 친구는 내게 그건 허영심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명품을 좋아한다고 무조건 허영심이라 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사람들이 뭔가를 좋아할 때는 정말 순수하게 그냥 좋아서인 경우도 굉장히 많은데……” 이런 글은내가 내 돈으로 명품을 사는데 왜 다들 시비야?”라는 말과는 뉘앙스가 분명 다르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과 행동은 옳은 것인가?

 

 

도덕심리학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던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의 도덕 규범 책들 관점에서 이런 SNS 글을 읽는다면, 이런 생각과 행동이 도덕적으로 혹은 정의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반면 이 SNS 글을 이 책 <바른 마음>을 통해 본다면 그런 생각과 행동에 도덕(정의)의 잣대를 댈 수 있는지 여부와,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동일 상황을 왜 서로 상충되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학문이도덕심리학이다. 도덕심리학은 인간의 도덕 근간을 신경과학, 유전학, 문화인류학 및 진화심리학에서 가져오고, 도덕의 발현과 상충은 사회심리학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철학이 삶의 의미를 알려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예일대학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결국 착오라는 사실을 깨닫고 펜실베이니아 대학 심리학 분야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지도 교수가도덕적 사고와 다른 종류 사고의 차이점주제를 권유하였고 저자는 이를 연구하여 도덕심리학 분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의 도덕심리학 연구의 지향점은 사람들이 극과 극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시 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돕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와 결혼했으며,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뿌리>, <종교, 진화와 자기초월의 행복> 그리고 <공동의 위협이 어떻게 공통의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는가> 3편의 TED 강의로 조회수 300만회 이상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하면, 저자의 정치 성향은 진보주의자였고, 미국 민주당 지지자였으나 미국과 다른 문화인 인도 생활의 경험과 진화심리학, 도덕심리학 그리고 정치심리학 등의 연구를 통해 인류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수주의 가치와 진보주의 가치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깨달은 듯 하다.

 

 

감정과 이성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회는 수 천년 동안 감정보다 주로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적어도 감정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지만,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성으로 판단하고 추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감정과 이성을 분리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근간 행동경제학 등 많은 학문이 이런 전통적인 이성 지상주의에 반기를 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덕심리학에서도 감정이, 더 적확한 표현은 직관이 도덕의 영역이며, 이성은 오히려 직관에 수반되는 부수적 작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리며, 그 후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혹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적당한 이유 찾기와 같은 도덕적 추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은 감정적으로 먼저 받아들인 이후 이성을 사용하고, 이성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도덕적 직관이라도 일단 형성(판단)되면, 이것으로 그럴듯한 정당화 사유를 만들 수 있고, 잘못된 정당화 사유를 본인 자신도 도덕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직관이 바뀌지 않는 한 도덕 가치를 다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또한 도덕적 판단은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무언가 잘못된 짓을 했다는 주장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덕, 정치, 종교 등을 주제로 다른 사람과 논쟁할 때마다 종종 분통 터지는 일들이 발생한다. 내가 이성적인 근거를 대고 차근차근 설명하지만 상대방이 설득되지 않으면, 상대방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편견을 갖고 있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상대방도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진지하다. 이성적 이유로 상대방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당신의 생각이야말로 착각이다.

상대방이 본인의 도덕 관념을 바꿀 수 있는 경우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되었을 경우에만 일어 난다. 점잖은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흔히 말한다. 정치와 종교 관련 이견은 아무리 대화를 해도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의 근간

무엇이 도덕인지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는 기준은타인에 대한 피해 여부. 어떤 행동을 할 때 이것이 도덕적인지 혹은 정의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가치는 남에게 해가 되는지 여부로 생각하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생후 2개월 된 영아들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착한 사람을 알아 본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가치는 도덕 기준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한가지 도덕적 가치로 복잡한 세상을 살거나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이 한가지 가치만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가끔 본다. 예를 들어, “남에게 피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연구 과정에서 문화인류학 문헌으로 세 가지 도덕 근간을 찾아 냈다. 그것은자율성 가치’, ‘공동체 가치그리고신성함 가치. 자율성 가치란 사람은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치에서 존중되는 도덕 개념은 인권, 자유, 정의 등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개인주의적 사회에서 많이 나타난다. 고전경제학에서 합리성을 지닌 개인을 경제 주체로 가정한 것도 이 자율성 가치에 근본을 두고 있다. 특히 자율성 가치를 중시하는 개인을 WEIRD라는 약자로 소개하고 있다. 원래 WEIRD란 단어는기묘한’, ‘이상한’, ‘섬뜩한등의 뜻을 갖고 있는데, 여기서는 Western, Educated, Industrialized, Rich, Democratic의 머리 글자를 따왔다. 서구화되고 고학력이고 산업화되고 부유하고 민주적인 사람들이 자율성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보면 자율성 가치를 다른 가치(공동체 가치와 신성함 가치)보다 더 중시 여기는 사람들은 예상보다 상당히 적다는 것이다.

반면 공동체 가치란 사람은 가족, 회사, 군대, 부족, 나라 등 개개인들로 구성된 더 큰 실체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가치에서 존중되는 도덕 개념은 의무, 역할, 위계질서, 공정, 명성, 애국심 등이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설계하고 자기만의 목적을 추구 해야 한다는 개인주의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양 이외 대부분의 국가와 문화에서 자율성 가치보다 더 중시되는 도덕 근간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신성함 가치란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신이 부여한 것으로 자신의 존엄과 창조주의 거룩함을 욕되게 하지 말며, 그에 걸맞은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행위가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그 누구의 인권도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예를 들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느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면 도덕은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 문신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직관이다.) 이 가치에서 존중되는 도덕 개념은 고결함, 거룩함, 순결, 절제 등이며 모든 인류 문화에 토속 신앙과 종교가 탄생하고 존재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 가지 도덕 근간 혹은 도덕 가치가 개인, 집단 계층, 문화 그리고 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도덕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기며, 어떠한 도덕 가치는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 가치의 위계 때문에 신성함 가치 관점에서 동성애자나 뚱뚱한 사람이 배척이나 잔혹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물질주의를 통속적으로 보는 신성함 가치 관점에서 본인이 열심히 일을 하여 번 돈으로 명품을 사는 자율성 가치 신봉자들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공동체 가치 관점에서 종교를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는 신성함 가치 신봉자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보수주의 VS. 진보주의

저자는 이 세가지 도덕 근간을 진화심리학 연구로 심화하여 여섯 가지 도덕 가치로 가다듬었다. 그 가치를 간단하게 소개하면 배려/피해 가치, 자유/압제 가치, 공평성/부정 가치, 충성심/배신 가치, 권위/전복 가치, 그리고 고귀함/추함 가치다. (여기서 ‘/’ 좌우는 서로 대칭되는 개념이다.) 물론 정확하게 구별되진 않지만 배려/피해 가치와 자유/압제 가치는 자율성 측면이고, 공평성/부정 가치, 충성심/배신 가치 그리고 권위/전복 가치는 공동체 측면이고, 고귀함/추함 가치는 신성함 측면을 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여섯 가지 도덕 가치를 어떻게 서로 다르게 받아 들이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진보주의자는 배려/피해 가치에 의지하는 경향이 훨씬 크다. 진보주의자는 개인, 동물, 타국의 국민들 등에 대한 배려로 가치의 폭이 훨씬 넓으나, 보수주의자의 배려 가치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 더 한정되고, 충성심과도 뒤섞이는 경향이 있다. 자유/압제 가치 측면에서 진보주의자는 평등(더 정확한 개념은 평등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 지배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과 시민의 권리 그리고 인권 쟁취 등을 중요시 한다. 반면 보수주의자는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정신으로 복지정책에 반대하며, 억압적 정부 규제로 내 사업이 방해되는 것을 싫어하고, 국제조약이 우리나라 번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듯 보수주의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절대적 평등보다 집단을 위한 자유주의를 선호한다.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충성심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세계시민주의를 지향한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는 질서 유지와 혼란 방지를 위해 권위/전복 가치를 중시 여기는 반면 진보주의자는 불평등,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을 자신들 본연의 특성으로 삼을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고귀함/추함 가치에서는 보수주의자가 안정감을 선호하고 진보주의자는 새로움을 추구한다.

이런 여섯 가지 가치를 근간으로 저자는 사람들의 도덕 가치 위계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 약 13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였다. 조사 결과의 시사점은 첫째, 보수주의자는 여섯 가지 가치 모두를 거의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즉 보수주의자는 가치 선호에 균형감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경험을 거쳐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낮아지는데, 많은 노인들이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둘째, 진보주의자는 배려와 자유 가치를 충성심, 권위 그리고 고귀함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2~3배 이상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를 볼 때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보수적인 사람은 고귀함 가치를 상당히 중시하지만 중도주의자나 진보주의자는 고귀함 가치를 여섯 가지 가치 중 가장 낮게 판단한다.

 

 

선거 캠페인 전략

이런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진보 정당보다 보수 정당이 보수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 캠페인에서 쓸 수 있는 정책 카드가 상당히 많아 진다. 보수 정당은 여섯 가지 도덕 가치 카드 모두를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카드가 고귀함 가치일 경우 보수 유권자들을 더욱 강력하게 단결시킬 수 있다. 또한 보수 정당의 정책은 중도주의자들에게도 공감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진보 정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배려/피해 및 자유/압제 가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로 저자는재분배를 통해 국민들에게 좀 더 공평하게 돈을 나누어주고자 하는 쪽은 오히려 민주당(진보 정당)인데, 미국의 시골 주민과 노동 계층이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보수 정당)에 왜 투표를 많이 하는지의문점이 풀렸다고 한다.

물론 이 모든 조사와 논의의 가정은 보수, 중도, 진보의 인구 수가 균일하다는 가정이고, 예를 들면, 특정 지역 진보주의자의 인구 수가 절대적으로 많으면 진보 정당이 선거에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인류의 보편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닌 한 인구 수가 각 성향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참고로 개인의 보수/진보 성향은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50~70% 결정되며, 나머지는 본인이 속한 공동체 문화와 개인의 인생 경험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보 정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진보 정당의 천성에는 맞지 않겠지만, 보수주의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여섯 가지 가치 모두를 활용하여 정책을 제시해야 하며, 이성적 논리로 유권자를 설득하기 보다는 유권자가 도덕적 직관을 발휘할 수 있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진보주의자들이 진보 정당을 이데올로기 변절자로 낙인 찍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보수주의자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다 당내 큰 반발을 경험한 것도 이런 맥락의 어려움일 듯 하다.

 

 

공동체 가치

저자는 이 책 결론으로 개인은 보수주의 가치와 진보주의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진보주의자들이 중시하는 자율성 가치보다는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공동체 가치와 신성함 가치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별도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저자가 과거 진보주의 성향에서 중도주의자로 변화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고, 개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미국 독자들을 위한 추가 설명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진보 정당인 민주당이 보수 정당인 공화당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전략적 단초를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저자는 공동체 가치가 생각보다 무척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진화론 관점에서 보면 서로 협력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유리하게 발전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 가치는 집단 그 자체에 대한 헌신이라기 보다는 집단에 속한 구성원과의관계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목숨을 바친 경우는 막연히 조국을 위해서라기 보다 함께 했던 전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공동체 가치가 강한 집단이 인류 진화에서 유리하게 작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그 이유를 보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람들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성원들의 공유된 제도, 규범, 네트워크, 신뢰 등 일체의 사회적 자산을 포괄하여 지칭하는 것이다. 특히 이것 중신뢰가 사회적 자본의 핵심이다. 집단의 구성원 관계에서 신뢰가 낮은 조직은 구성원이 서로 믿지 못하여 그 부수적 감시, 통제 등의 비용과 노력이 증가하고 집단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주의가 지나친 집단 – ‘남에게 피해만 되지 않으면 괜찮다라는 생각을 가진 집단은,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말을 인용하면, “공동체 가치로 깊은 유대감이 형성되지 못한 국민들은 삶의 의미에 굶주리게 되어 지도자의 사탕발림에 더 잘 넘어가게 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행복은 개인 안에서 찾아 오기도 하지만, 더 소중한 행복은 관계에서 찾아 온다. 행복은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보다 나보다 더 거대한 무엇, 이 둘 사이에서 올바른 관계가 맺어질 때 행복은 찾아 온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성함 가치

저자는 미국 9.11 테러 원인을근본주의를 믿는 과격한 이슬람 특정 집단의 과격한 종교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종교는 돈과 시간을 잡아 먹고, 사람들 사이에 적의를 불러 일으키며, 종교적 환상은 사실에 어긋나고 비생산적이라고 종교의 무용론을 말하는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의문점을 가져 보자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란 믿음만의 문제라고 잘못 보는 것이며, 종교의 다른 혜택인소속감의 가치를 무시한 것이라 보고 있다. 종교는 자신이 믿는 것과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구성물이라고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종교를 설명하고 있다.

종교가 진화해 온 것은 신을 유용한 방식으로 활용할 줄 알았던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더 유리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신은 공동체 내의 개인 이기심과 불화를 차단하여 공동체의 협동심과 신뢰를 돈독하게 다지는데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 마을 안에서 간통을 저지른 건 두 사람이지만, 이것이 신의 노염을 사 마을 전체에 가뭄이 들거나 역병이 들 수 있다고 사람들이 믿게 되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간통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전 방지했을 더 했을 것이다.

이렇듯 신은 집단에 대한 징벌자 역할을 수행하여 사회적 통제 수단으로 큰 효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떠한 혈연 관계도 없는 큰 집단이 서로 협력하며 더 오래 지속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값비싼 희생이 필수적인데, 종교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도덕가치의 균형

저자는 드디어 책 말미에 이 모든 논의를 종합하여 도덕심리학 관점에서 도덕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도덕이란 (중략) 개인의 이기심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규제하며, 나아가 협동적인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문화에 대해 어떤 문화가 좋고 어떤 문화는 나쁘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화는 좋고 아프리카 문화는 나쁘다든지, 미국 문화는 좋고 우리나라 문화는 나쁘다든지 말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덕의 범주에 들어 있는 가치들자율성 가치, 공동체 가치 그리고 신성함 가치도 어느 가치가 절대적으로 더 좋고 더 나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가치들에 대해 개인마다, 집단마다, 계층마다 상대적 위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균형 잡힌 도덕 관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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