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맛집 579 - 깐깐한 식객 황광해의 줄서는 맛집 전국편
황광해 지음 / 토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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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몇 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 먹자고 임실의 ‘행운집’을 다녀왔다. 임실군 강진면의 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아주 허름한 식당이다. ‘백양국수’를 삶아 넣은 고기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그 먼 곳에 간 것은 그 집 소문을 듣고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도 ‘백양국수’ 이야기로 시작한다. “백양국수는 중간 정도 굵기의 중면이다. 이 집을 몇 번 가보고 국수도 결국 발효음식임을 확인했다. 지방에는 여전히 많은 국수공장이 있다. 그러나 ‘백양국수’ 정도로 국수를 제대로 만드는 곳은 드물다. 국수는 말리는 과정에서 건조만 시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역시 숙성, 발효다.

 

 

노부부가 국수를 만들고 또 말리고, 묶어서 전국으로 판다. 방송에 소개가 되면서 전화로 국수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 새벽 나무바퀴가 달린 수레를 노인이 직접 끌고 국수 배달을 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왔다. 그 장면을 보고 전북 임실에 갔다. 노부부는 손으로 국수를 뽑고 양지와 음지에서 번갈아 말리고 또 숙성시킨다. 오래된 가정집 2층이 통째로 국수 공장이다. 2~3일씩 걸리는 이 일을 노부부가 다 해낸다. 봉급을 주며 사람을 고용하기엔 수지가 맞지 않아서 여전히 노부부가 힘든 국수 만드는 일을 직접 해낸다. 천일염을 사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도 없다. 다만 철저한 자연건조다. 사람의 힘으로 모든 과정을 다 해낸다. 국수를 작두로 썬다. 고단한 작업이다. 아들도 국수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다고 이미 선언했다. 노부부 중 한 분이라도 몸져눕는 날이면 ‘자연건조 백양국수’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백양국수’의 태양건조 국수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한다. 국수 맛이 이런 것이었구나, 감탄한다. 자연과 발효, 숙성의 힘이다. 면의 질감과 맛이 전혀 다르다. 대기업의 공장형 국수로는 따라오지 못할 맛이다. 당연하다. 대기업은 ‘제품’을 만들었고 ‘백양국수’는 ‘음식’을 만들었다. 대기업은 산업이지만 백양국수는 ‘문화’다. 국수 만들기에 온몸을 던진 노부부의 고단한 일상. 감동실화다. 대기업의 국수 중 ‘가슴에 감동으로 남을 국수’ ‘기억에 남을 국수’는 없다. 힘없고, 만들 줄 아는 것이 국수고, 할 줄 아는 것이 국수공장이라서 ‘100년’ 동안 만들었던 ‘백양국수’는 우리 가슴에 남는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반죽을 여덟 번 밀어내는 일을 허투루 하지 않았다. “좋은 날씨는 국수 만들기 좋은 날”이라는 말이 두 사람의 삶을 설명해 준다. 서른과 스물셋의 나이에 만나 짝을 이루고 평생 국수를 함께 만들어온 노부부의 삶 전체가 국수에 녹아 있다. 단 한 번이라도 백양국수를 먹어본 사람은 ‘백양국수’ 팬이 된다. 그들의 마음속에 ‘백양국수’는 감동으로 남는다.”

 


내가 가 본 맛집이 신문 기사나 책에 보이면 나도 이미 알고 가봤단 공감과 동시에 당시 음식 맛이 떠오른다. 이 책에서 소개된 속리산 기슭의 ‘경희식당’이 그렇다. “경희식당은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반가와 궁중, 상민들의 밥상을 모두 합친 특이한 밥상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창업자 남경희 할머니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밥상이다. 게다가 철저한 한상차림이다.

 

 

‘경희식당’의 음식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고 남경희 할머니의 삶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속리산으로 오기 전 대전과 유성에서 음식점을 했다. 유성에서 음식점을 할 무렵 시누이 ‘이 씨 할머니’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씨 할머니’는 서울에서 ‘궁중음식’을 배운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경희식당’의 밥상에 ‘정과(正果: 온갖 과일, 생강, 연근, 인삼 따위를 꿀이나 설탕물에 조려 만든 음식)’가 오르는 이유다. 쇠고기 정과의 경우 궁중이나 대단한 반가에서나 먹었던 음식이다. ‘경희식당’의 밥상에는 숱한 반찬 중 하나로 천연덕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몇몇 다른 정과류도 남경희 할머니가 어떤 경로든 궁중, 반가음식을 배웠음을 알려준다. 남경희 할머니는 반가 출신으로 알려졌다. 음식을 ‘법도에 맞게’ 만지는 것은 반가에서 자랐고, 또 반가로 시집 온 경우에 가능했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태어나서 20대에 음식점을 했던 걸로 보면 아마 집안이 극도로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삶의 궤적은 지금 ‘경희식당’의 밥상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 번 긴 추석 연휴에 머릿속만 채울 책만 사다 놓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뱃속도 채울 맛집 책도 서둘러 읽었다. 특이한 책이다. 음식 사진은 단 한 장도 없는데, 맛이 그려진다. 저자는 먹거리 X파일의 담당 PD였다. 그의 “착한 식당” 기준은 명확하다. 이번 추석엔 막국수와 짜장면을 꼭 먹어야겠다.

 

 

막국수
“막국수는 메밀을 거칠게 갈아서 동치미 국물에 먹었던 아주 담백한 음식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입맛은 달고 짜고 매운 것을 좋아한다. 전통적인 막국수 맛은 “아무 맛이 없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막국수는 메밀의 심심한 맛과 동치미나 백김치의 곰삭은 맛을 취하는 것이다. 음식이 그악스러워지는 것은 우리 입맛이 그악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설탕과 조미료가 듬뿍, 통깨를 뿌리는 것은 애교고 더러는 참깨를 갈아서 가득 얹는다. 마지막에는 김을 부숴서 왕창 얹어서 내온다. 고추장, 참깨, 김은 모두 맛이 강하다. 조미료로 이런 맛들을 묘하게 조정하여 21세기 판 막국수를 완결한다. 이런 판국에 메밀맛과 식감이 날 리가 없다. 심심한 메밀과 곰삭은 동치미의 맛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삼군리메밀촌’은 메밀국수, 막국수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세운 집이다. 그저 묵묵히 메밀국수, 막국수를 만들면서 슬그머니 “이게 막국수야”라고 이야기한다. 깊은 산속, 차량의 내비게이션도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막국수를 만들었다. 딸이 재배한 메밀을 가져다 나이 든 노인이 직접 손 반죽하여 막국수를 만든다. 메밀전도 대단한 수준이다. 두부도 좋다. 압권은 동치미다. 기교 부리지 않고, 달지 않고, 입에 감기지 않으면서도 한 모금 마시면 ‘그래, 이게 동치미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짜장면
“‘신성각’을 만나지 않았다면 객관적인 짜장면 맛집을 찾는 것은 포기했을 것이다. 화학조미료와 감미제를 사용하는 집을 ‘최고의 맛집’으로 인정하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는 맛에 대해서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맛있다”는 한 단어로 음식을 표현하는 것은 상상력 부족이다. 조미료로만 만든 냉면국물을 퍼먹으면서 “맛의 깊이가 있다” “깊은 맛” “맛있다”고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서글프다. 맛은 재료, 조리사의 내공과 정성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맛은 식재료의 맛을 살리고, 한편으로 한 그릇에 들어가는 여러 식재료의 섞인 맛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그날의 기후와 음식물의 온도, 습도, 튀긴 음식의 바삭함, 볶은 음식의 불맛, 탕반의 감칠맛과 삶고 찐 음식의 질감과 익은 정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맛’을 결정한다.

 

 

효창구장 옆길의 외지고 허름한 가게.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찾기 힘든 길이다. ‘이문길’이라는 중년의 남자가 “지구상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감동했으면 좋겠다”고 써 붙이고 짜장면과 짬뽕을 만든다. 손님이 앉으면 주문을 받고 그때부터 면을 친다. 작은 식탁이 네댓 개 정도고 끼어 앉으면 11명이 앉을 수 있다. 업력은 30년을 넘겼다. 여러 차례 방송 출연 섭외가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첨면장(단맛이 나는 중국 된장, 춘장 또는 첨장이라고 함)을 직접 만들었으면 하지만 이 규모의 가게에서는 힘들다.

 

 

조미료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나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졸리거나 물을 계속 마신다. 속이 더부룩한 증상도 많이 겪는다. 미국 식약청의 안전(?) 발표나 한국 식품위생법상 사용가능 판정이 문제가 아니다. ‘내 몸’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먹기 힘들다. ‘신성각’은 벽에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써 붙였다. 누구나 “조미료 없는 짜장면이 어디 있어?”라고 되묻는다. 그러나 가능하다. ‘신성각’의 짜장면은 ‘왜곡된 단맛’이 없이, 그저 “원래의 짜장면이 이랬나?” 싶을 정도로 조미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공장에서 생산된 된장이나 춘장은 원래 달다. 그러니 주방에서 감미제와 조미료를 더 이상 넣지만 않아도 과하게 달지 않은 맛이 만들어진다. 춘장의 짠맛과 단맛 정도가 희미하게 느껴진다. 이게 ‘신성각’ 짜장면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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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9-28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녁은 면 음식을 먹어봐야겠어요.
식도락의 모습을 엿보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9-29 19:34   좋아요 1 | URL
공교롭게 면 이야기만 적었네요.
제가 면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munsun09 2017-09-29 19:36   좋아요 1 | URL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다음 달 스웨덴과 핀란드 출장을 앞두고 요즘 두 나라에 대한 호기심 배양 중이다. 출장이든 관광이든,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여행은 여행 전 완성된다.

 

 

 

 

 

 

 

 

 

 

 

 

 

 

스웨덴 사람
스웨덴 사람들에게 중요한 개념 두 가지는 '러곰(lagom)'과 '트뤼겟(trygghet)'이다. "러곰은 '적당히'란 뜻으로 바이킹 시대 풍습에서 유래했다. 바이킹들은 큰 사발에 술을 담아 돌려 마셨는데, 너무 적게 마시면 아쉽고, 너무 많이 마시면 다른 사람이 못 마셨기 때문에 각자 적당하게 마셔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스웨덴이 사회주의를 포용할 수 있었던 것은 타인을 배려한 러곰에 대한 사상이 있었다.
"트뤼겟은 '안정' 또는 '안전'으로 번역할 수 있으며, 스웨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 특유의 복지제도도 트뤼겟 개념에서 출발한 듯하다. 복지 국가는 국민이 불편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보호한다는 취지다.

 

스웨덴 근대 역사
1814년부터 스웨덴은 중립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어느 동맹이나 연합에도 속하지 않고 스스로 영토를 지킨다는 중립주의다. 스웨덴은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유일하게 나토에 참여하지 않고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만 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스웨덴은 '평화 중재자'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수천 명의 전쟁포로를 스웨덴으로 데려왔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평화 중재와 이란-이라크 중재자로 나섰고, 보스니아 내전도 중재했다. 베트남 전쟁 시 미국 병역 기피자들에게 스웨덴을 피난처로 제공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스웨덴의 원조와 공정한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 음식
스웨덴은 해산물이 풍부하다. "튜브에 담긴 칼레스 캐비어는 아침 식탁에 항상 오른다. 가장 싼 생선은 청어인데 어디서든지 유리 단지에 담긴 인라그라드 실(ingrad sill : 식초, 포도주, 향신료를 섞어 마는 매리네이드 소스에 재워놓은 청어)을 살 수 있다. 겨자나 카레 등 다양한 소스와 같이 먹고 감자, 납작한 빵, 샐러드와 잘 어울린다. 식당에서 다양한 청어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실브리까(sillbricka)를 시키면 된다."


훈제 생선도 인기가 많다. 훈제 연어 그라브락스(gravlax : 설탕, 소금, 후춧가루 등을 문질러 바른 연어)는 향신료 딜(dill)을 곁들여 먹는다." "또 다른 특별 음식은 얀손스 프레스텔세(janssons frestelse)이다. 이 요리는 청어와 감자, 양파로 만든다. 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감자 요리에 조금 질렸다고 해도 정신없이 먹을 정도로 맛있다."


주류는 국가에서 독점하고 있어 시스트메트(systemet)에서만 살 수 있다. "가장 강한 5.4% 맥주는 스탈크외르(starkol)와 격식 차린 자리에 마시는 브렌빈(brannvin :스칸디나비아 보드카)이나 베스크(칵테일에 사용하는 독한 술)를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사람들이 흔히 마시는 술은 푼쉬(punsch)이다. 달면서도 독한 데 매우 추운 날 커피와 함께 마시거나 식후 혹은 콩 수프에 곁들여 마신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향료와 건포도를 넣어 따뜻하게 데운 글뢰그(glogg)라는 술을 마신다."

 

인구가 단지 900만 명인 스웨덴에서 소설 <창문 밖으로 도망친 100세 노인>은 100만 부 이상 팔렸다. 소설의 어떤 내용이 스웨덴인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이 책만으로는 알 수 없다. 짧은 여행이지만 만날 스웨덴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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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9-19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웨덴으로 출장이라니 너무 부럽잖아요!!^^
잘 다녀오세요~~~ 저 책은 저도 재밌게 읽었는데 님의 이 페이퍼로 스웨덴에 대한 몇 가지를 벌써 배워가요~~~아는 척을 좀 해야겠죠!!ㅋㅋ
출장 잘 다녀오세요~~~^^*

북다이제스터 2015-09-19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절판된 책으로 알고 있는데 예전 읽어 보셨나봐요^^ 시리즈가 좋더라구요. ㅎ 얼마 전 영국인가 출장 다녀오셨죠?^^

북다이제스터 2015-09-19 19:28   좋아요 0 | URL
아, 100세 노인 소설 말씀이신듯. 제 실수입니다. ㅋ

숲노래 2015-09-20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장길에
두 아름다운 나라에서
즐거움도 기쁨도 듬뿍 누리시기를 빌어요.
짬이 나신다면 두 나라에 있는 책방도 둘러보시고
사진도 올려 주시면... @.@
 
핀란드 CURIOUS 26
데보라 스왈로우 지음, 김정은 옮김 / 휘슬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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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여유로워 보일까요?”
“숲”
“네? 뭐라고요?”
“핀란드는 숲이 많기 때문이에요.”

<카모메 식당> 중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여유로워 보일까요?"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 전 국토 70% 이상이 숲으로 덮여있다. 호수 20만 개가 있으며, 호수의 섬이 1만4천 개에 달한다. 핀란드를 뜻하는 핀란드어 ‘수오미(Suomi)’ 역시 호수의 나라를 의미한다. 국기의 흰색은 눈[雪], 파란색은 호수를 상징한다.
 
역사
핀란드가 고작 98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국가인 것을 많은 사람이 모른다. 600년 동안 스웨덴 통치 아래 있었고, 직후 100년 넘게 러시아 지배에 있다가 러시아 10월 혁명의 혼란을 틈타 1917년 독립했다.

 

핀란드인 기원은 6000년 전 동쪽에서 사미(Sami)족이 이주해 정착했다. 이후 핀란드 남서지역에서 서유럽 표류 난민이, 동쪽 우랄산맥과 볼가 강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 유목민이 이동해 사미족을 북쪽 지역으로 밀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핀란드 서쪽에 하메니티(Hamenite), 동쪽에 카렐리안(Karelian)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문화가 형성되었다. 서기 800년경 카렐리안인은 스웨덴 바이킹이 정복한 러시아 노브고르도와 교역하면서 비잔틴 문화와 러시아 정교를 받아들였다.

 

이후 핀란드는 크게 수오말라이셋(Suomalaiset: 오늘날 핀란드인은 자신을 이렇게 부른다)와 하말라이셋(Hamalaiset), 카르잘라이셋(Karjalaiset)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12세기 중엽 스웨덴은 십자군을 이끌고 들어와 통치를 시작한다. 스웨덴은 자국민을 이주시켜 당시 핀란드 수도인 투르크의 왕실과 상류계층, 군대, 교회를 지배했다. 당시 스웨덴어도 유입되어 핀란드의 또 다른 주요 언어가 되었다. 16세기 스웨덴은 루터파 교리를 채택했고, 핀란드도 루터파가 공식 종교로 확립되었다.

 

18세기 프랑스 나폴레옹은 스웨덴 국왕 구트타프 4세의 왕위를 뺏고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1세와 ‘틸지트 조약(Treaty of Tilsit: 러시아가 프랑스와 동맹 맺고 영국에 대한 대륙 봉쇄령에 참여하며, 대신 프랑스는 러시아에 여러 혜택을 준다는 조약. 혜택은 대불 동맹 전쟁 중이던 스웨덴을 러시아가 침공하여 스웨덴 영토이던 핀란드를 차지해도 좋다는 양해와 장차 러시아가 오스만 투르크를 공격할 때 프랑스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체결했다. 이때부터 핀란드는 러시아 지배에 들어간다.

 

핀란드가 러시아 공국 시절인 19세기 문호 엘리아스 륀토르(Elias Lontor)는 수많은 부족 구전 설화에 바탕을 둔 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를 발표했다. 이것은 사상 처음으로 핀란드인 자신의 역사서와 문화서였다. “당시 핀란드인은 이제 막 자신이 누구며, 민족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던 때였으며, 이 작품은 핀란드 독립운동에 촉매재가 되었다.” 이때 “핀란드의 위대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그의 대표작 핀란디아를 작곡했고, 화가이자 건축가인 칼렐라(Kallela)는 서사시 칼레발라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적극적 동참은 핀란드인이 감정적 차원의 독립에 기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결과 차르가 축출되고 공산당이 집권하자, 핀란드는 그해 12월 6일 독립을 선언했다.

<The Defense of the Sampo, 1896> 칼렐라(Kallela)

 

하지만 독립 후 러시아가 지원하는 적색군은 남부를 장악하고, 독일이 지원하는 백색군은 북부에 근거지를 둔 상태에 108일간 내전이 일어났다. 전쟁은 3만 명이 희생된 후 백색군이 승리하여 공화제가 시작된다. 그 후 2차 세계대전 직전 소련과 독일이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으면서 독일은 리투아니아를 지배하고 소련은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로 진격할 수 있게 되었다. ‘겨울 전쟁’이라고 알려진 100일간 전쟁에서 핀란드는 소련에 패배한 후 독일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1944년 결국 수적 열세로 핀란드군이 러시아군에 전멸하면서 긴 전쟁은 막을 내렸다. 전쟁 패배의 대가로 상당한 영토를 양도했으며, 막대한 전쟁 배상금 역시 핀란드인의 몫으로 남았다.

 

2차 세계대전 후 핀란드 경제는 사실상 붕괴하였다. 하지만 핀란드는 다른 여러 나라와 달리 외국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자력으로 붕괴한 경제를 재건하였다. 농경 사회를 산업 사회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저가의 대량 생산은 미국이나 유럽의 다른 공업 선진국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인식하고 첨단 기술과 디자인, 창조성을 중시하는 상품으로 특화했다. 이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빠른 1952년 전쟁 배상금 상환을 종결했다. 1990년대 핀란드 경제 위기가 다시 찾아왔다. 핀란드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했던 소련이 붕괴되었다. 완전 고용에 가까웠던 실업률이 20%를 넘었으나, 핀란드는 최첨단 산업으로 다시 극복했다. 어떠한 역경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핀란드인 민족성을 ‘시슈(sisu)’라고 한다. 오늘날 핀란드 번영의 토대로 보고 있다.

 

사회와 문화
핀란드인은 양심적이고 근면하며 놀라울 정도로 준법적이고 정직하고 청렴하다. 한데 결코 엄격한 벌칙이나 감시 때문이 아니다. 자신 자유와 권리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와 독립성에도 최선을 다해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수년 전 핀란드 한 야당이 국민 세금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자신 정당을 뽑아달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핀란드인은 이런 정책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차이를 더 벌릴 것으로 생각하여, 그 정당에 투표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을 향한 핀란드 사람들의 공평한 신뢰가 바로 오늘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핀란드는 대통령 중심에 내각 책임제를 혼합한 이원 집정제다. 대통령은 임기 6년, 국회의원은 4년의 단원제다. 선거 때마다 10여 개의 정당이 나오며, 대다수 핀란드인은 정책에 따라 표를 행사하는 유동적 유권자다. 정부는 종종 두세 개의 유력정당과 한두 개 이상의 군소정당 연립으로 구성된다. 가장 큰 정당은 사회민주당이며, 그 밖 주요 정당은 좌익 동맹, 스웨덴 인민당, 기독교 연합 등이 있다.

 

핀란드인 특징은 말을 시작하자마자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묻는 말에도 어떠한 부연 설명이나 수식어 없이 최소 정보로 대답한다. 대화 중에도 타인과 좀처럼 눈을 맞추지 않으며, 특히 낯선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눈을 맞추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라 믿는다. 핀란드는 대단히 평등한 사회이므로 이곳 사람들은 서로 재촉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식당 서비스도 엄청나게 불친절하다고 느껴진다. 식당 종업원은 비굴하거나 과장되게 시중드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이런 모든 것에 외국인은 핀란드 사람들이 퉁명스럽고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핀란드 남자는 연애할 때도 절대 오랜 유혹과 감언이설을 사용해 여성을 귀찮게 하지 않는다. “만약 춤추는 곳에서 한 남자가 여성에게 ‘같이 나갈까요?’ 혹은 ‘춤출래요?’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 여성이 지구에서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창조물이라고 찬미하는 것이다.”

 

이런 국민 성격으로 사우나 파티에 상대를 초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친밀감 표시다. 대부분의 핀란드 가정은 모키(Mokki)라 부르는 통나무로 된 작은 여름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 별장에 반드시 있는 것이 사우나 시설이다. 사우나 없는 핀란드 집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핀란드 군인이 훈련 막사를 지을 때면 가장 먼저 설치하는 것이 사우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도심 아파트 지하에도 공동 사우나를 짓고 유료로 사용한다. 보통 핀란드 사우나는 섭씨 70~110도에 달하며, 가족이 아닌 이상 남녀가 함께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은 핀란드 방식이 아니다.

<카모메 식당> 중 "사우나 가자네요"

 

 

핀란드어
핀란드 언어는 기원전 3000년쯤에 발생했으며, 우랄어족 일종인 피노 우그릭(Finno-Ugric)에 속한다. 핀란드 언어는 다른 언어에서 차용한 단어가 많다. 예컨대 Coffee는 ‘카비(kahvi)’, bacon은 ‘페코니(pekoni)’, television은 ‘텔레비죠(televiso)’이다. 반면, 또 다른 단어들은 외국 단어라고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변형한다. Computer는 지식 기계란 의미의 ‘티에토코네(tietokone)’이고, telephone은 말할 수 있다는 의미의 ‘푸헤린(puhelin)’이다.

 

핀란드어는 발음 나는 대로 모든 글자가 위치하는 표음어다. 발음의 명확성을 위해 겹문자를 사용한다. 두 글자는 긴소리를 나타내고, 한 글자는 짧은소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다. 예를 들어, ‘kukka’는 꽃을 의미하고 ‘kuka’는 누구를 의미한다.

 

핀란드어는 외국 성인이 배우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악명이 높다. 격 변화가 무려 15개인 핀란드어는 배우기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접미사와 전치사, 후치사를 포함하여 단어 어미 변화에 아주 다양한 체계가 있다. 또한 문법적 관계, 시간과 장소, 소유, 목적어도 단어 어미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내 집에서 역시(in my house, too)’에 해당하는 핀란드 단어는 ‘talossanikind’이다. 접미사 ‘-ssa’는 영어 전치사 ‘in’에 대응하고, ‘-ni’는 ‘my’를, ‘-kin’은 ‘too’를 의미한다.

 

이런 특성으로 핀란드어 어순은 영어보다 중요하지 않다. 단어는 문장 어디에 놓아도 명확하게 뜻이 통한다. 이런 점을 포함해 핀란드어가 우랄어로부터 유래되었다는 특징은 많다. 단어에 성의 구분이 없다. ‘han’은 ‘그’와 ‘그녀’를 모두 뜻한다. 정관사나 부정관사도 없으며, 수동태가 없다.

 

음식
전통음식은 연어, 순록고기, 귀리 빵, 고수 향료, 향이 강한 딸기와 맥주 등이 있다. 핀란드인은 철기시대부터 맥주를 즐겼다. 핀란드인이 해외에 나가면 가장 그리워하는 음식은 귀리 빵과 소금에 절인 청어(silli)를 꼽는다. 전통음식 중 ‘칼라쿠코(kalakukko)’는 파이 일종으로 귀리로 된 반죽 안에 흰 송어, 농어, 무지개 송어 등 각종 생선과 돼지 살코기, 비계를 넣고 주머니처럼 싼 다음에 다시 호일로 싸서 오븐에 구운 빵이다.

 칼라쿠코(kalakukko)

 

핀란드 가정에서 실제 으뜸으로 치는 것은 미트볼과 크림이 ‘매우’ 많이 들어간 수프다. 각종 딸기를 배합해 만든 소스들을 베이컨이나 매쉬 포테이토와 함께 먹는다. 독일식 소시지인 ‘마카라(makkara)도 일상으로 먹지만, 핀란드인의 채소 소비는 최근까지도 매우 낮다. 핀란드 빵과 버터는 상당히 맛있으며, 전통 요구르트인 ‘비리(villi)’, 고기에 채소를 약간 넣고 쌀과 함께 볶은 ‘피로(pirro)' 스튜(순록 고기와 감자), ‘랍스코우시(lapskoussi)’ 스튜(송아지 고기, 돼지고기, 양배추), ‘세카리(sekali)’ 스튜(돼지고기, 콩,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즐긴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점심은 스칸디나비아식 뷔페 요리인 ‘스모르가스보드(smorgasbord)’이다. 식사 순서는 먼저 생선 요리를 양껏 먹고 차가운 순록과 양, 햄 훈제를 먹는다. 그 후 따뜻한 음식과 디저트를 먹는 순이다. 구즈베리(gooseberry)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것과 달리 독특한 맛을 내며, 링곤베리(lingonberry) 잼은 고기 요리에 많이 쓰이는데 특히 순록고기와 잘 어울린다. 핀란드 술은 ‘코스켄코르바(koskenkorva)’ 보드카와 ‘시마 미드(sima mead)’ 스파클링 와인을 꼽는다.

 

시마 미드(sima mead)

 

 

핀란드는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일 인당 커피 소비량이 1위이다. 커피를 자주 마시기도 하지만, 매우 진하기 때문이다. ‘풀라(pulla)’는 전통적으로 커피와 함께 먹는 달콤한 빵이다. 다량의 시나몬과 칼더먼으로 채워진다.

 

<카모메 식당> 중 "코피 루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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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2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라쿠코를 먹으면 왠지 야채빵 먹는 맛이 날 것 같아요. ^^

북다이제스터 2015-08-29 08:25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요^^

AgalmA 2015-09-0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핀란드 여행 계획이라도 세우신 줄 알았습니다ㅎ 덕분에 핀란드 공부를^^...문화, 먹거리까지 짱짱~

북다이제스터 2015-09-01 17:30   좋아요 1 | URL
확실히 글은 의도를 숨기지 못 하는 듯 합니다 ㅠ 다음달 출장 가게 되어 좀 알고 가려구요. 역시 예리하십니다^^

AgalmA 2015-09-01 18:55   좋아요 1 | URL
스웨덴, 핀란드 이쪽 메탈 음악도 알아주는데...공연 좀 찾아보시라고 할 수는 없고ㅎ;...그나저나 핀란드식 사우나를 하시겠군요ㅎ...생생한 체험담 기대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5-09-01 20:54   좋아요 1 | URL
네덜란드 고딕 메탈 Within Temptation 까진 무척 좋아하는데 북쪽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 걸릴 것 같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