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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책이다. 책 제목이 <유럽의 시간을 걷다>이고 부제가 ‘한 권으로 떠나는 인문예술여행’인지라, 흔한 여행 수기 아니면 여행 안내서일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둘다 아니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책이다. 유럽 건축이 책 내용의 중심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역사와 미술 내용도 있고 심지어 저자의 소설도 꽤 된다. 그 모든 것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서로 어울러져 좋았다. 저자는 당시 건축을 설명할 때 역사를 빼 놓지 않는다.

 

 

바로크 시대는 “르네상스 후반 매너리즘에서 보여준 것과 유사한 기하학과 자유곡선, 장식성이 극대화되었다. 이 과정이 로마의 가톨릭에서 전개된 바로크 양식의 시작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불안감에서 출발한 바로크는 동시대 또 다른 권력의 축인 절대왕정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과한 장식은 종교성을 배제하면 군주의 절대성과 권위를 드러내기에 효과적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자.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바로크 특징은 욕망과 비정형성,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 먼저 욕망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주요세력의 욕망을 살펴보자.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 열망과 이를 선전하기 위한 욕망, 절대왕정의 독보적 권위를 표현하기 위한 욕망, 상업가문 또는 귀족들의 축적된 부를 표출하기 위한 욕망 등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욕망들이 바로크의 미학적 특징으로 발현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각형과 원이 회화, 조각, 건축의 구도를 잡는 데 사용되었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사각형, 원, 타원, 동심원 등 보다 다양한 기하학 형태들이 겹쳐진 복합적인 작도를 통해 비정형의 미학을 찾았다.”

 

 

건축 이야기가 책의 주인공이라 미술품 설명이 많지 않았지만, 미묘한 인상을 주는 그림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본 후 경험한 감정에서 ‘스탕달 신드롬’이란 말이 기원했을 정도다. 스탕달 신드롬은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느끼는 황홀경과 분열 증상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대부분의 <지대넓얕>類 책들이 그렇듯 저자도 역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역사의 인과 관계를 거칠게 단순화한다.


“화약과 흑사병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요인에 의해, 중세를 이끌어나갔던 중요한 세계관은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봉건제의 해체에 대해 살펴보자.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유럽사회의 인구가 감소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노동력의 감소로 이어졌다. 노동인구의 하락은 연쇄적으로 영주들의 소득 감소를 야기했고, 결국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를 독점적으로 축적한 다른 지방의 영주가 화약이 장착된 새로운 무기를 들고 전쟁을 일으켰고, 작은 영주들이 자연스럽게 몰락하는 수순을 밟게 되었다. 부와 무기는 지배세력이 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건이었다. 권력의 분산이 아닌 권력의 집중이 일어난 것이다. 봉건제의 해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스도교의 몰락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 또한 흑사병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흑사병이 창궐하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 성직자들의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일부 성직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발병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많은 성직자가 그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성직자들은 흑사병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숙한 산간 지역으로 도망갔을 뿐 아니라, 흑사병 확산이 멈추고 안정기에 접어든 이후에도 사람들을 수탈하고 교회의 재산을 사유화하는 등 윤리관과 도덕관이 완전히 무너져 바로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흑사병에 의해 희생당한 성직자를 대체할 사제를 뽑아야 했는데, 그 수가 많았기 때문에 사제가 되는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이는 성직자들의 도덕적 가치관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흑사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신앙은 의미 없는 구호 혹은 헛된 희망이라는 자의식이 팽배했고, 그리스도교 몰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쉬운 설명을 위해 역사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해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저자는 유럽 마녀사냥의 원인이 교회의 자금난 타개를 위한 해결책이었다고 설명한다.

 

중세 말 신앙의 “믿음 회복과 자금난 타개를 위해 교황청이 생각한 대책은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었다. 종교재판의 경우 로마 교황청에 속한 성직자들이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교황청의 정책에 반하는 내용을 설교에 넣으면 이들을 종교재판에 회부해 파면하고 처벌했다. 이는 가톨릭을 이탈하는 사람들이 변절 후에 겪게 될 현실적 어려움과 고난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데 유용한 방법이었다. 교회 자금난을 위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만행은 마녀사냥이었다. 당시 마녀로 선고받아 화형을 당한 사람이 30만 명 정도인데, 실제로 이들의 죄목은 확실치 않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이들의 공통점은 과부였고 재산이 많았다는 것이다. 과부였기에 옹호해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 재산이 교황청으로 몰수된다는 점은 마녀사냥이 만연할 수밖에 없던 이유였다.”

 

 

그렇지만,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다른 해석을 보인다.

 
“15세기부터 17세기 유럽에서 마녀라는 죄목으로 50만 명이 화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 위 어느 사회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주술이나 마법 개념이 존재”했지만, “마녀를 고문해 다른 마녀 이름을 이끌어낸 사례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희생된 원인을 흔히 “지방행정관들이 마녀 혐의를 받은 자들의 전 재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어” 마녀사냥에 열 올렸다는 점으로 찾는데, 이것은 사소한 이유다. 한 사회의 문화는 제도가 아닌 대중 의식에서 찾아야 한다. 중세 후기 교회가 크게 흔들리던 시절 교회와 정부는 마녀사냥과 고문을 지시했다. “사회 위기의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 시킨 것이다. “고통 당하던 대중은 부패한 성직자나 탐욕스런 귀족을 저주하는 대신 마녀를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는 마녀를 잡아다 고문하여 화형에 처했고 이를 본 대중은 “교회나 귀족이 대중을 위해 무엇인가 하는 귀중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마녀사냥 전투에서 보인 당국의 정열과 용감성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녀사냥은 시민이 “저항할 수 있는 잠재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서로 의심하고, 이웃끼리 싸우고, 모든 사람이 소외되고, 서로 간 사회적 거리감을 조장하였다. 모든 사람이 공포에 휩싸이고, 불신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단순한 지역적인 문제에 모든 사람이 분노하고 좌절하게 했다. 그 결과 지배계급에 의존하게 되어 부의 재분배와 사회계급을 타파하고 교회와 사회제도에 대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난한 자로부터 박탈했다. 마녀사냥은 사회 특권층 마법의 총탄이었다. 바로 이것이 마녀사냥의 감추어진 비밀이다.”<문화의 수수세끼>(마빈 해리스, 한길사, 2000)

 

 

 

 

 

 

 

 

 

 

 

 

 

 

 

이 책처럼 건축과 역사, 미술, 소설 등을 책 한 군데 몰아 넣을 경우 단점은 각 분야의 수준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독자에 따라 건축 내용은 어렵지만 소설은 유치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역사는 쉽지만 미술은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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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9-02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네스크와 고딕이 종교적 권력이 표현된 예술이었다면, 바로크와 로코코는 세속적 권력이 표현된 예술이었던 것 같네요.. 20세기를 대중의 시대라고 했을 때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예술을 후세 사람들은 어떻게 정의내릴지 궁금해집니다^^:

2017-09-02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2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9-02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제목 예술입니다^^ 지대넓얕류 책의 유행시대를 잘 말해 주시네요.(지대넓얕 끝나서 아쉬워서 어쩌죠. 별 수 있나요. 각자책파 해야죠ㅎ;;)
바로 전 리뷰와 논지가 겹치시네요. 휩쓸리는 대중.
각자의 관점에 따라 분석하고 해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고과정이고 우리는 또 각자 생각에 따라 접수하고. 휩쓸리는 대중의 도돌이표....

북다이제스터 2017-09-02 23:42   좋아요 1 | URL
요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도 보고 싶은 것으로 한정하다니 보니 모든 책의 리뷰가 엇비슷한 것 같습니다. ㅠㅠ
그래서 요즘 고민이 시각과 관점의 다양화인데, 넘 어렵습니다. ㅠㅠ 어찌해야 할까요?

AgalmA 2017-09-02 23:49   좋아요 1 | URL
제가 북다이제스터님께 조언드릴 깜냥이 되나요ㅎ
제 인상으로는 지금 일 압박 영향도 있지 않나 싶어요. 예전에 여유로우실 때 르네상스 독서 행보를 보여 주셨잖아요ㅎㅎ....
저도 요즘 다이제스터식 지대넓얕류 책들이 소설 같기도 해서 심드렁. 이런저런 알려진 정보로 자기 주장 약간 입히는 식이니까요. 요즘은 유발 하라리 인용이 대세ㅎㅎ;;
차라리 심각한 철학류, 전문서적류에 몰두하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북다이제스터 2017-09-02 23:58   좋아요 1 | URL
세상이 미친 거 같아요‘란 제정신 아닌 비판적 생각 갖곤 살기 힘든 세상인 거 같아요. 좀 더 추상적, 더 높은 하늘에서 관조하는 책들로 옮겨 가보면 더 나을 수도 있을 거 싶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서울 퇴계로 5가에서 가파른 길을 올라 앰배서더 호텔에서 좌회전하여 동대입구역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 책 저자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웰콤시티 사옥'이 한눈에 들어온다. 녹슨 철판으로 나무 느낌이 들도록 한 2, 3층 외벽 그리고 페인트조차 칠하지 않아 거푸집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1층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문외한인 내게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1층 창문은 조금 답답해 보인다. 가느다랗고 긴 창문은 채광에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 저렇게 창을 내었을까 궁금했는데, 저자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1887~1965) 작품을 따른 것이다.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파리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의 창을 이렇게 설명한다. “거실의 창은 수평의 띠이며, 이 기다란 창을 통해 주변 전원이 그림처럼 들어오고, 거실 내부에 있는 사람이 마치 전원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즉 공간의 확장인 것이다.”


‘웰콤시티 사옥’ 승효상, 2000년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르 코르뷔지에, 1931년



이렇게 베껴도 괜찮을까, 하고 짓궂은 생각이 들 때쯤 저자는 설명한다. “대부분의 건축은 다른 건축을 본받거나 답습하여 태어나는 아류다. 그렇다고 그러한 현상을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귀중한 삶이 의탁 되는 건축은 보수적이어야 우리의 안정적 삶이 나쁜 건축 속에서 실패하지 않도록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류적 건축 - 다른 건축이 답습하거나 영향받아 세워지는 건축 - 을 추적하다 보면, 반드시 어떤 원형과 만나게 된다. 즉 한 시대를 결정짓는 건축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건축을 우리는 건축의 원형이라 부른다.”



건축가 승효상에게 원형은 의심의 여지 없이 르 코르뷔지에 건축이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인 르 코르뷔지에, 그는 ‘건축가는 지적 감수성으로 보편적 세계를 보는 자’라는 명구에 정확한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탁월한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였으며 엄청난 자기훈련을 통한 지식의 축적으로 이를 정제시킨 지성인이었고, 더욱 나은 세계를 위해 부단히 주장하고 제안하고 이를 실현한 건축가였다.” “그는 정식으로 건축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독서와 여행을 통해 동서고금을 통찰하고,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향해 그의 건축을 전달하며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놓았다.”



1904년 르 코르뷔지에는 “불과 27살 되던 해 도미노 하우스(Dom-ino Hause)라는 현대 건축의 개념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는다. 콘크리트의 구조적 성질을 이용하여 2층 구조를 만드는 3개의 슬래브와 이를 지지하는 가느다란 기둥, 그리고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구조 시스템으로, 벽체는 슬래브를 지지하는 기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스템이다. 따라서 입면이나 평면 구성은 구조의 부담을 떠안지 않고 풍부한 형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도미노 하우스(Dom-ino Hause) 개념



‘빌라 사보아’는 “이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다섯 가지 원칙이 충실히 적용된 교과서적 주택이다. 이 새로운 텍스트는 주거건축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시대적 전범이 되어 현대 주거건축 형식을 완성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번째 원칙은 ‘필로티(piloti)’ 개념이다. 건물을 공중에 띄우고 기둥만 땅과 접하게 함으로써 건물 밑의 땅을 공공용지나 정원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유로운 평면’ 개념인데, 칸막이 등이 건물 구조나 기둥에 영향받지 않고 공간 쓰임에 따라 수시로 자유롭게 구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둥과 벽체의 선이 일치하지 않고 미묘한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 세 번째는 ‘자유로운 입면’이다. 벽면이 건물을 지지하는 하중이나 구조로부터 영향받지 않아 내부 상황보다 외부 주변 환경과 더욱 긴밀하게 연관될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 건축 입면은 중요한 감성 장치였다. 네 번째는 ‘수평의 긴 창’ 개념이다. 우리 두 눈이 만드는 시각 구조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창으로 접속되는 주변 풍경이 무한한 수평의 프레임을 통해 내부에 전달되어 내부 공간을 확장한다. 마지막으로 ‘옥상정원’ 개념이다. 하늘과 직접 만나는 또 다른 세계가 옥상정원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르 코르뷔지에, 1931년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 성당은 고딕의 허구적 형식을 깨뜨렸다. 이 건축에는 그의 다섯 가지 현대 건축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성당 공간은 직육면체의 70평 남짓 좁고 가느다란 공간, 검박한 콘크리트의 벽체와 떠 있는 듯한 간결한 천장,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 부분 부분 비치는 천장의 원색, 침묵하는 돌 제단…….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이 공간은 판테온의 공간감에다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의 장엄함을 더 한 것보다 더욱 높고 높다. 그리고 그 위대함은 이방인이 한없이 묵상하게 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너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 성당' 르 코르뷔지에, 1960년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가 만든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Neue Nationalgalerie)’도 저자에게는 건축 원형이다. 이 건축에 주목할 만한 것은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거나 불과 8개에 불과한 외부 기둥이 지극히 가늘다는 것, 혹은 기둥 없이 뻗은 18미터 길이 캔틸레버(cantilever: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 건물의 처마 끝, 현관의 차양, 발코니, 계단 등에 많이 이용된다) 구조의 기술적 성취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포디엄(podium: 건물 기둥이나 벽을 세울 때 이를 지지하기 위해 평지보다 약간 높인 기초나 주초, 혹은 기단부)과 지붕의 수평면 사이에 창조된 투명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딱히 어떤 특별한 기능을 하지는 않는다. 어떠한 기능도 다 수용할 수 있으며, 또한 모든 기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그는 이 공간을 유니버설 스페이스(universal space)라고 불렀다. 이 공간은 21세기가 된 지금에도 현대 건축의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되고 있다."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Neue Nationalgalerie)’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1968년


“외부 풍경은 베를린 국립미술관 신관의 내부를 둘러싼 입면이 된다.”



저자에게 건축이란 인문학이다.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나 공학이 아닌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술이나 공학이 없던 시절에도 집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져야 하고, 이는 우리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관한 공부여야 한다. 남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영화 등을 보고 익혀야 하며, 과거에 어떻게 산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므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승효상, 컬처그라퍼, 2012)




















재건축이 결정되었다고 현수막을 내걸면서 자기가 사는 집과 동네가 헐리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가풍이고 뭐고 없다.

단순히 집의 모양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건축을 일개 조형물로 보는 잘못된 관점이다. 건축은 ‘공간’에서 본질적인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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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0-22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23 18:46   좋아요 1 | URL
건축 관련 책 좋아하세요?
저자가 워낙 인문학적이고 달필이라 책이 괜찮습니다. ^^
감사합니다. ^^

qualia 2016-10-22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 님, 그런데 한국의 건축은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한국인/건축가는 한국만의 독특한 양식을 창조해내는 데 완전 실패했다고/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은 시도조차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패했다/하고 있다는 말조차 적절한 지적은 아닙니다. 걍 게으름과 무능과 딴짓의 연속이 한국 건축사(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현재까지의 실태라고 봅니다.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은 동양 3국 가운데서 그 독특함/차별성이 가장 뒤떨어진다고 봅니다. 물론 일부 평지돌출적인 사례는 몇몇 있다고 봅니다만...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은 일본 전통 건축이 선점한 형태적/기하학적 다양성과 미학적 독특함과 탁월성, 건축기술적 우수성에 가로막혀 조선시대 이래로 제자리 걸음에 머물고 있거나 퇴보했다고 봅니다. (중국은 동양 건축의 한 원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큰 영향력이 있죠.) 한국 현대 건축 양식은 말할 게 전혀 없을 정도고요. 한국인들은 머리는 좋으나 그보다 더 강한 욕구인 음주가무와 주색잡기, 권력놀음에 대부분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느라 혁신적인 건축 양식을 창조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지요. 일 하느라 이곳저곳 방방골골을 다녀봅니다만, 그때마다 느끼는 건 《우리 한국의 건축 양식은 없다》라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한 나라의 진정한 건축 양식은 기념비적인 대규모 왕조 건물이나 성/성곽, 사찰/절, 관공서, 공공 건물 따위에서 드러난다기보다는 일상 생활이 영위되는 마을, 도시 등등의 주거 건물, 즉 집 건물에서 드러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 볼 때, 한국의 근현대 집 건물들은 전혀 양식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잡탕과 국적불명, 조악함과 무형식/무양식, 반미학이 그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한국의 실체 혹은 민낯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23 18: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qualia 님.
가끔 답변 달아주실 때마다 넘 반갑고 한편 긴장됩니다. ㅎㅎ 대부분 긴 글 남겨주시는데, 항상 제 답변은 짧은 듯하여, 죄송합니다. ^^
저자도 한국적 건축물에 대해 고민하는 문장이 있는데, 비판은 있지만 대안은 없는 듯 싶습니다. ㅠ
이번에도 제 답이 짧습니다. 제가 이 분야에 아직 비판의식이 깊지 않습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23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집을 지어서 갈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저보다는 아내가 열공 중입니다 ㅋ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23 21:19   좋아요 1 | URL
집 지을 계획 있으시군요.
그럼 더 전문적인 책이 필요하실 듯 합니다. ^^
제 주변에 근간 새 집 지으신 분들 계신데요, 집 짓는 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다들 엄청 늙으시더라요. 사기치는 건축, 시공 업자가 넘 많더라구요. ㅠㅠ 하여튼 부럽고, 자신의 집 짓는다는 건 분명 큰 의미가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23 2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일요일 밤 마무리 잘 하시고 편한 밤 되세요 ^^:
 

 

 

 

 

 

 

 

 

 

 

 

 

 

 

 

 

 

 

건축은 ‘공간의 조직’을 볼 수 있어야 본질을 알 수 있다. 공간의 조직이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집의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을 얼마만큼 크게 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진다. 그러니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예술이나 공학이 아닌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술이나 공학이 없던 시절에도 집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져야 하고, 이는 우리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남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문학과 영화 등을 보고 익혀야 하며, 과거에 어떻게 산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들추지 않을 수 없고,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를 알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하므로, 건축을 굳이 어떤 장르에 집어넣으려 한다면, 그것은 인문학이어야 한다.

종묘의 본질은 정전 자체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바로 정전 앞의 비운 공간인 ‘월대’가 주는 비움의 아름다움에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가없이 넓은 사막의 고요나 천지창조 이전의 침묵과 비교해야 한다.

거의 모든 행정의 결과는 건축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정부의 의식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그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국가에서 발주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턴키’라는 이름으로 건축가와 시공자를 짝짓기 하여 뽑게 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다. 검사와 변호사의 관계처럼 서로 감시하는 직능인 이 둘더러 한 팀이 되라는 것은 불륜을 노골적으로 저지르라는 말이다.

몽고 초원 6월 말은 야생화가 가장 많이 피어 있는 때였다. 백리향, 양지꽃, 물매화, 말나리, 미나리아제비, 할미꽃, 앵초, 엉겅퀴, 원추리가 십만 평 백만 평 단위로 펼쳐져 있었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들판은 푸르게 되었다가 백색으로 뒤덮였다가 붉은 꽃이 다시 올라와 물들이는 등, 초원에서 전개되는 꽃들 간의 생태적 드라마를 보면서 그 놀라운 섭리와 질서에 대해 우리 모두 말을 잃었다. 신의 정원이었으며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풍경을 보는 것이 여행의 마지막 단계라고 했다. 크게 깨달은 게 있었다. 꽃 이름을 아는 게 그 꽃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며 그 속에 내재된 자연의 질서를 깨닫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그 꽃을 다시 보았고 더욱 아름다웠다.

미개한 사회로 갈수록 기념탑의 숫자가 많다. 기념탑이란 게 본시 구호와 선전을 위한 원초적 도구인 까닭이다. 선동과 구호의 선전을 위한 건축물 목적이 ‘도취’라면 인간을 비인간화시킨다. 이것은 비윤리적이다. 리얼리즘 철학자 루카치는 “미적 효과의 목표로 환상(도취)은 예술을 백일몽 차원으로 떨어뜨리는 하나의 기만이며 사기다. 감정이입을 예술적 체험의 핵심으로 삼는 것은 예술적 체험을 일상적 삶의 차원으로 격하시킨다는 의미이며, 니체의 ‘디오니스적 도취’는 감정이입적 반응의 극단적 형태이고, 초월이란 자신이 균열되고 불구적인 인격이 되는 무가치성이요, 세계와 인간 관계를 공허하게 만든다. 위장된 오만은 스스로를 기만할 따름”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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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성당 데이비드 맥컬레이 건축 이야기 1
데이비드 맥컬레이 글 그림, 하유진 옮김 / 한길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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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아치와 둥근 천장, 벽 곳곳을 장식한 엄청난 양의 유리, 그리고 보는 이를 압도하는 까마득한 높이가 인상적인 고딕 성당은 12세기 프랑스 북부에서 시작하여 15세기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한 건축 양식이다.
 

<고딕 성당>


거대한 성당 완성에 보통 100년에서 200년이 소요되어 교회 재력은 필수였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 경제 상황이 풍족하지 않으면 대규모 장기 프로젝트 추진은 불가능했다. 보통 중세가 빈곤했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유럽 전역에 많은 고딕 성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농가에는 양식이 넘쳐났으며, 상업이 발달하여 도시가 날로 번창했다."
 
당시 새로운 성당 건축이 결정되면 교회 재산을 관리하는 참사회가 건축책임자를 고용해서 설계와 감독을 맡겼다. 건축책임자는 함께 일할 채석공과 석공, 조각공, 회반죽공, 벽돌공, 목수, 대장장이, 지붕공, 유리공 등 각 분야 전문가를 고용했다. 성당 건축의 첫 번째 일은 실내 작업장, 가설재, 비계 등을 만드는 데 쓸 나무를 베기 위해 숲으로 가는 것이다. 주로 성당 지붕을 짓는 데 쓰는 커다란 목재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주문해 왔다. 동시에 석재를 캐기 위해 석회석 산지로 이름난 계곡으로도 갔다.
 
성당은 보통 정면이 서쪽 방향을 바라보도록 지으며, 반원 모양의 후진과 성가대석이 위치한 뒤편 부분부터 건설을 시작한다. 먼저 기초 공사로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8미터 정도 구멍을 파서 기단을 만든다. 기단에 쓰일 첫 기단석은 주교가 축성을 드린 후 사용한다. "기단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위에 세우는 성당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기단은 건물 양쪽에 두 개씩 만든다. 외곽 버팀벽과 안쪽 기둥을 각각 기단 위에 세우기 위함이다.
 

<기단 공사>


버팀벽은 육중한 무게의 둥근 천장이 기둥에 가할 압력을 분산시키는데 필요하다. 기둥과 버팀벽 사이는 아치 모양의 반원형 석조를 이어서 힘을 분산시켰다. "고딕 성당 천장이 각각 기둥에 바깥으로 밀어내는 힘을 가하는데, 이 힘은 반원형 모양 석조를 통하여 버팀벽으로 전해졌다가 다시 기단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해서 기둥들은 높이보다 매우 가느다란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둥 사이로 창을 낼 수 있는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둥은 보통 높이가 50미터, 두께가 2미터며, 수백 개의 마름돌로 이루어졌다.
 


<안쪽 기둥, 바깥 버팀벽>

 

벽과 기둥이 완성되면 지붕 공사가 시작된다. 지붕을 보호하기 위해 연판을 덮고 버팀벽에는 석재 홈통과 낙수 물받이를 만들었다. "낙수 물받이는 무시무시한 괴물 모습을 하고 있어서 이무기돌이라고도 했는데, 지붕에 고인 물은 이곳을 통해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비가 오면 마치 이무기가 물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이무기돌>


천장에 사용되는 무거운 석재와 콘크리트를 지붕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서 수레바퀴식 대형 자아틀를 사용했다. "바퀴 안에 사람이 들어가 걸음을 옮기면 수레바퀴와 굴대가 회전하면서 밧줄을 감아올렸다. 그렇게 하면 아주 무거운 자재도 거뜬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자아틀>


성당의 둥근 천장은 먼저 4개의 기둥 사이를 교차하여 목조 홍예틀을 설치하고 틀 안에 회반죽을 부어 아치형 뼈대를 먼저 만든다. "회반죽이 다 마르고 홍예틀을 떼도 아치형 뼈대는 스스로 버틸 수 있었다." 수직으로 교차하여 있는 홍예틀 사이는 나무판자인 흙막이판을 걸쳐 놓고 그 위 가벼운 마름돌을 놓고 서로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콘크리트를 부었다. "콘크리트가 마르면 흙막이판과 홍예틀을 떼어내면" 4개 기둥 사이 한 개의 둥근 천장이 완성되었다.
 

<고딕 성당 천장>


성당 창문에 쓸 유리는 너도밤나무의 재와 모래 혼합물을 고온에 녹여 만들었다. 색깔을 내기 위해 여러 가지 금속물을 넣었다. "빈 대롱 끝에 유리 액체를 한 방울 묻힌 후 대롱을 불어 풍선처럼 부풀린다. 부푼 풍선 모양 끝부분을 자르고 대롱을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리면 유리는 보통 지름 20센티미터 정도의 평평한 원판 모양으로 펼쳐진다. 냉각된 유리는 치수에 맞게 잘라 납으로 된 테로 서로 연결했다. 납테로 이으면 가로와 세로가 80센티미터가 되는 큰 유리판도 만들 수 있었다. 커다란 유리판을 다시 석재로 된 방사상창살과 보강창살 사이에 끼워져 18미터나 되는 높은 창으로 만들었다."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바닥에는 미로를 도안했다. "미로 중심을 찾아가는 행위는 기나긴 순례의 여정에 오르는 일 못지않게 하느님 은총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성당 바닥 미로>


"성당 정면에 난 세 개의 문 위에 아치형 박공벽을 만들기 위해서 홍예석(아치를 만들기 위해 쐐기 형태로 자른 돌)을 만들고 각각 문 위에 놓을 반원형의 부조판인 홍예면(성당 문 위의 반원형 아치 안에 있는 부조로 장식된 부분)을 조각했다." 신도좌석과 북쪽, 남쪽 수랑이 교차하는 지점의 지붕 위에 뾰족탑을 세우면 성당 건축은 완성되었다.
 

<성당 정면 홍예면>


책 부제가 "이 아름다운 건물이 지어지기까지"이다. 예전 많은 고딕성당을 보기 전 이 책을 먼저 읽지 않은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 그 때가 되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살펴보고 조금 다르게 고딕성당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고딕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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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인문적 건축이야기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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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건축물의 창문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건축가들이 창을 내면서 고민할 때 들이는 시간은 건물 전체 외관을 디자인하는 시간 절반을 넘는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는다.” “밋밋한 면에 창이라는 구멍만 숭숭 나 있는 벽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이야기할 수 없다. 뭔가 좀 들어가고 나온 부분이 있어야 그 요철에 의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샘터 사옥>은 “간단한 부재를 벽에 끼워 넣어 그림자가 대각선으로 그려지게 했다.” <김옥길 기념관>의 “건축가는 창틀조차 거부하고 콘크리트 벽을 파낸 홈에 유리를 직접 끼워 넣도록 했다. 창틀 없는 유리창은 콘크리트 순수함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실내로 들어오는 빛 모양도 말끔하고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는 건물의 아름다움은 콘크리트, 빛, 그림자의 순수함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샘터 사옥> 김수근 건축가

 

<김옥길 기념관> 김인철 건축가

 

 

“건축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건축을 이루는 재료가 만드는 독특한 맛과 구축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벽돌 건물의 아름다움은 “단지 벽돌을 쌓았다고 해서 그냥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쌓았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쌓음의 흔적은 줄눈에 새겨진다. 벽의 입체감을 위해 시멘트 줄눈을 파낸다든지 뒤틀리고 모서리가 깨진 벽돌만 모아서 벽을 만들기도 한다. 벽돌의 깊이가 없으면 벽돌 무늬 벽지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벽이 된다.”

 

 <경동교회> 김수군 건축가

 

 

“페인트조차 칠해지지 않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거푸집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콘크리트를 노출하는 것은 그 위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을 요구한다. 노출 콘크리트는 직사각형 모양의 거푸집 판의 자국 선들이 벽면의 온갖 선들과 잘 맞도록 해야 한다. 노출 콘크리트에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져 있는 동그란 구멍인 폼타이들이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나 하는 것도 건축가와 시공자의 근면함과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웰콤시티 사옥> 승효상 건축가

 

 

“내가 돈을 내어 짓는 건물이므로 내 마음대로 디자인을 고칠 수 있다는 논리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많은 건축가에게 좌절감을 안겨왔다. 건축 문화 축적을 더디게 한 걸림돌이 되었다. 좋은 건물은 건축가의 훌륭한 설계만으로 지어지지 않는다. 건축주의 안목이 중요하다.”
“건축물은 구체적인 인간 모습과 생활 그리고 사회의 부대낌, 사회가 바라보는 미래 모습을 담는 그릇이 된다. 건축은 건축가가 공간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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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2 1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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