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사아 학술총서로 거의 유일해 보이는 ‘슬라비카 총서‘가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봄에 제임스 빌링턴의 <러사아 정체성>이 출간된 데 이어서 지난주에는 아델 마리 바커가 엮은 <러시아 소비하기>와 마틴 밀러의 <프로이트와 볼셰비키>가 한꺼번에 나왔다. 모두 책이 기획되는 과정을 지켜본 터라 손을 보태지 않았음에도 보람을 느낀다. 포스트소비에트 시기, 그러니까 1991년 이후 러시아 사회와 문화에 대한 고급 안내서로서 매우 유용한 책들이다.

가령 <러시아 소비하기>는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와 대중문화‘가 부제로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급변하는 사회상과 대중문화를 폭넓게 조망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또 <프로이트와 볼셰비키>는 ‘제정러시아와 소비에트연방에서의 정신분석‘ 수용과 배척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년에는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의 커리큘럼을 새롭게 짜보려고 하는데(포스트소비에트까지 포함하려 한다) 유익한 참고서들이다. 학술서의 출간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총서의 남은 책들도 무탈하게 출간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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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때문인지 주말이면 잠을 보충하던 습관 때문인지 아침을 먹고는 다시 수면을 청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오늘 벌어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은 최장경기시간 기록을 세웠군). 내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강의가 일상이다) 돌아가야 하기에 강의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가을학기의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고 할까.

자주 다니던 동네 카페에서 익숙한 맛의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다가 어제 적은 ‘김윤식과 그의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선생의 문학기행과 예술기행을 떠올렸다. 이 분야의 책들로는 독특하지 않았던가 싶다. 주로 해외 한국학학술대회 참석차 떠났다가 미술관에 들러 만났던 그림들과 작가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담았다. <문학과 미술 사이>가 내가 제일 먼저 읽은 책이고 가장 좋아한 책은 <낯선 신을 찾아서>였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 거기에 더하여 <환각을 찾아서>와 <샹그리라를 찾아서> 등의 책들이 이 계열에 속한다(<김윤식 문학기행>이라는 다소 멋없는 제목의 책도 있긴 하다).

공통적인 것은 ‘찾아서‘라는 말이 담고 있는 갈구와 방황의 정신이다. 훼손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문제적 주인공의 여정이 바로 소설의 형식이라고 루카치가 말했던가. 루카치의 세례를 받은 김윤식 비평 역시 근대와 함께 근대 극복을 동시에 지향한 운동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방황의 여정이지만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정식화한 대로 우리는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방황하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괴테(독일문학)의 계산법이다.

독일문학기행은 내게 그러한 독일문학의 유산을 현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달에는 문학기행 뒤풀이도 계획하고 있는데 뒤풀이 강의까지는 이 문제도 더 정리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안 그래도 괴테에 관한 책들을 아침에 빼놓았다. 여행을 정리하는 여행은 다시 책속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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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두 구해 놓고도 읽질 못했네요.
책속의 그 현장을 찾아가 볼수 없는 저에게
믿을만한 저자가 책을 남겨 주어서 감사할 따름~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더욱.

로쟈 2018-10-27 21:15   좋아요 0 | URL
매우 드문 열정의 비평가였다고 생각해요.
 

유심을 교체하고서야 핸드폰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핸드폰을 오래 써서 그렇다는데 다행히 기기에는 이상이 없어서 당분간은 더 쓰게 될 것 같다. 독일여행의 여독이 남은 탓인지 비가 오락가락하는 금요일을 요양 모드로 보냈다. 그렇다고 손을 아주 놓은 건 아니어서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들을 가늠하고 필요한 책은 주문했다. 원서들도 주문하거나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미국 정치학자 버트럼 그로스의 <친절한 파시즘>(현암사)도 그 중 하나다.

파시즘의 출처는 독일이지만 ‘친절한 파시즘‘이란 용어로 저자가 겨냥하는 것은 미국이다. ‘민주주의적 폭력은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부제이고, 원서의 부제는 ‘미국에서 새로운 권력의 얼굴‘이다. ˝미국 정부 관료 출신의 정치학자인 버트럼 그로스(1912~1997)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대기업과 거대정부가 점점 더 강하게 결탁하며 등장할 이른바 ‘친절한 파시즘’이 조용히, 교묘하게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980년에 나온 책이지만 마치 한 세대 뒤를 예언이라도 한 것처럼 현재의 미국사회와 세계정치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친절한 파시즘이라는 유령은 우리에게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지?

˝1980년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날 파시즘적 경향을 도발적이며 독창적으로 분석해냈다고 평가된다. 특히 2016년 말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위협이 도래할 미래를 정확히 예견한 분석으로 재조명되며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노엄 촘스키, 마이클 무어 등 여러 진보적 지식인들은 미국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도발할 때마다 이 책과 “친절한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소환하고 있다.˝

파시즘이라는 주제와 관련한 기본서는 케빈 패스모어의 <파시즘>(교유서가)과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이다. 팩스턴 책의 원제는 ‘파시즘의 해부‘인데, 말 그대로 ‘파시즘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친절한 파시즘>을 그 옆에 꽂아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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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프스키 2018-10-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념서는 책세상에서 출간한 ‘파시즘‘도 있는데 이 도서랑 목록의 교우서가 도서랑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당돌하고 광범위하게 느낄 수 있는 질문 좋고 갑니다...

로쟈 2018-10-27 21:13   좋아요 0 | URL
책세상판은 국내 전공자가 쓴 책이고요, 교유서가판은 옥스포드대학판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책입니다.
 

엊저녁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른가 김윤식 선생(1936-2018)의 부고를 접했다. 위중한 상태라는 소식은 들은 바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해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은 이후 30년간 선생의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이 배웠다. 러시아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근대와 근대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강의하고 있는 현재의 일상도 선생의 강의와 책에서 계발된 바 크다. 공저를 포함해 250권이 넘는 저작은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질에 있어서도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필두로 한 선생의 한국근대문학사 탐구와 비평은 후학들이 뛰어넘어야 할 산맥이다.

올해 한국문학계는 황현산 선생(1946-2018), 허수경 시 인(1964-2018)에 이어서 소중한 경륜과 자산을 잃었다. 애석한 마음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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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18-10-2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올려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려요
문학의 깊이를 폭넓게 배우고 있고 자극도 됩니다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로쟈 2018-10-26 23: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시금 돌아와 서재의 PC로 적는 페이퍼다. 출국하는 날부터 상태가 안 좋았는데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긴급통화만 가능하고 카톡도 와이파이존에서만 된다. 핸드폰 상태만으로는 독일에 있을 때와 다를 게 없다(와도 온 게 아닌 것인가?). 



열흘간이었지만 밀린 책들이 또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러시아문학도 끼여 있어서 미리 '처리'한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바 있는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의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이 드디어 나왔다(알라딘에는 영어판과 함께 스페인어판도 뜬다). 소비에트 풍자문학 대표작가의 대표작. 


"러시아 우화에 등장하는 '바보 이반'을 차용해 스탈린 체제하 소련을 그린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이 지하 출판에 이어 서방에서 출판되고, 보이노비치가 반체제 인사 탄압 저항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역시 반체제 인사로 분류됐다. 그는 감시와 협박에 시달리고 심지어 KGB의 독살 시도까지 뒤따랐으며, 끝내 국외로 추방당했다. 하지만 보이노비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펜을 꺾지 않고 부조리한 체제와 그 체제가 낳은 개인들의 위선에 끊임없이 성내고 대들며 소련 사회와 온갖 군상을 기록했다. 한 편의 부조리극 같은 현실을 코믹하지만 신랄하게 풍자한 <촌킨>은 보이노비치의 삶과 문학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풍자문학으로는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비교해볼 수도 있겠는데, 예술가소설과 민담류 소설이라는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 20세기 러시아문학을 새로 강의한다면, 한 주를 할애해도 좋겠다 싶다...


18.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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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10-2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시자마자! 독일문학기행 잘 읽었습니다^^건강도 챙기십시오^^요즘 건강이 걱정되는 한분(!)이 있는데 선생님 걱정까지 되네요ㅋ 오래오래 건강히 뵙고 싶은 욕심에~

로쟈 2018-10-26 08:35   좋아요 0 | URL
아직은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