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차 부산에 내려가면서 가방에 챙겨넣은 책은 수전 손택의 평론과 연설을 모은 <문학은 자유다>(이후)와 제발트의 산문과 에세이 모음, <캄포 산토>(문학동네), 그리고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난다) 등이다. 예전에 읽었던 손택의 연설들을 다시 읽어보고 제발트의 책으로 넘어왔는데, 애초에 관심을 두었던 ‘역사와 자연사 사이‘라는 에세이는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과 거의 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눈길을 돌린 게 ‘영화관에 간 카프카‘인데, 이건 한스 치슐러(치쉴러)의 <카프카 영화관에 가다>란 책에 대한 리뷰다.

20년쯤 전에 한국어판도 나왔다가 절판된 책으로 알라딘에는 이미지도 뜨지 않아 따로 검색을 했다. 나도 나오자마자 구입했기에 어딘가에 보관돼 있을 책이기도 한데 제발트를 읽다 보니 다시금 관심을 갖게 돼 영어판도 주문했다. 제발트는 이 책을 뛰어난 카프카 연구서로 높이 평가한다. 제발트의 독자라면 이런 평가가 충분히 예측가능하고 또 이해될 것이다.

카프카에 관해서라면 나도 꽤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데(정작 독서를 미루고 있다) ‘영화관에 간 카프카‘는 카프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카프카와 제발트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아주 요긴해 보인다(이번 겨울에 제발트와 카프카에 대해 강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견적상 제발트의 리뷰에 대한 꼼꼼한 읽기는 영어판을 배송받은 이후로 미뤄야겠다. 이제 황현산 산문집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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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태양탐사선 파커가
아니 이건 이미 쓴 시다
파커는 잘 가고 있다
내가 노량진과 용산을 지나듯이
예정된 진로로 잘
가지 않으면 인생은 뭐란 말인가
아침에 집을 나오고
흔들리는 전철에서 같이 흔들리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파커는 태양이 고향인가
집 떠난 파커는 태양의 궤도를 돌다가
언젠가 장렬하게 생을 마친다
파커는 파커답구나
서울역에서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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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8-18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은 30도씨에 바람 불고있음~
저는 나흘간 따스한 햇살과 싱싱한 초목기운 듬뿍 받고 오후에
귀가해요^^* 이 기운으로 일년 버텨야죠~ 쌤도 활기차고 따끈한
기운 받고 오셔요~*^^*

로쟈 2018-08-18 12:56   좋아요 0 | URL
네 부산도착. 날씨도 쾌적하네요.~
 

오늘자 한겨레에 실린 '책과 생각' 꼭지를 옮겨놓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대해 강의하는 겸 오랜만에 작품과 관련서들을 읽고 적었다. 번역본은 황현산 선생의 번역본 외에도, 김현, 김화영 선생의 번역본들을 참고했다. 기억에 가장 처음 읽은 건 중학생 때 전성자 교수의 번역본이었던 것 같다. 같이 읽어볼 만한 참고도서는 많은데, 가장 유익한 건 절판되긴 했지만 오이겐 드레버만의 <장미와 이카루스의 비밀>(지식산업사)이다. 최근에 나온 야스토미 아유미의 <누가 어린왕자를 죽였는가>(민들레)는 일본에서의 <어린왕자> 연구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공한다. 그밖에 크리스토프 킬리앙의 <어린왕자 백과사전>(평단)은 <어린왕자>의 독자들에겐 기본서. 생텍쥐페리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나 아내와 친구의 회고록 등도 번역돼 있다...



한겨레(18. 08. 17) 당신은 여전히 ‘어린 왕자’를 읽나요?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문학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다. 100여 종이 넘는 번역본이 출간된 우리에게도 사정은 같다. 생텍쥐페리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로도 유명한 <어린 왕자>를 읽지 않은 독자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친숙하다. 하지만 그런 친숙함이 곧바로 <어린 왕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읽는 동화, 아니 동화 아닌 동화이지만, 과연 어린이라면 <어린 왕자>를 아무런 해설도 경유하지 않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랜만에 <어린 왕자>를 손에 들면서 궁금했다. 최근 타계한 불문학자 황현산 선생은 번역가로서 보들레르와 프랑스 상징주의 시 번역에 가장 큰 공을 들였지만 <어린 왕자> 번역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비록 짧은 분량의 작품이긴 하지만 네 번이나 고쳐서 책을 낼 만큼 정성을 들이고 또 욕심을 낸 번역본이기도 하다. 그 번역본에 붙인 해설에서 선생은 이 해설이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어린이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어린이들은 보아뱀의 겉모습을 보고 그 속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사실 이런 해설이 필요없다”는 것도 이유다.



<어린 왕자>의 해설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뱀 그림을 보고서 모자를 그린 걸로만 생각하는 ‘우둔한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들이 <어린 왕자>의 독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작 이 작품의 화자로서 사막에 불시착하여 우연히 어린왕자를 만난 조종사 ‘나'도 어린왕자와는 달리 양이 들어가 있는 상자를 꿰뚫어보지 못한다. 그는 자조적으로 “어쩌면 나도 얼마큼은 어른들처럼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미심쩍어 한다. 그렇지만 이 ‘얼마큼은 어른', 한때 어린이였지만 지금은 더이상 어린이가 아닌 이들이 <어린 왕자>의 이상적 독자가 아닐까. 작가 생텍쥐페리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는 더이상 어린이가 아니어서 어린시절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어린왕자와 분리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린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어린왕자의 친구가 된다.

 

아버지가 네 살 때 세상을 떠난 생텍쥐페리에게는 특히 그러했지만 어린이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다. 어머니는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요구한다. 어느날 어린왕자의 별에 씨앗으로 날아온 꽃나무는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 꽃은 아침마다 꼼꼼한 화장을 하고서야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방금 일어난 척하며 어린왕자에게 식사 시중을 요구한다. 바람이 끔찍하다면서 바람막이도 요구하고 거짓말을 꾸미다가 들통나면 억지 기침을 함으로써 어린왕자를 괴롭힌다. 향기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꽃의 심술궂은 허영은 어린왕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어린왕자가 자기 별을 떠나게 된 이유다.



지구에 와서야 어린왕자는 자기 별의 꽃이 장미라는 걸 알게 되며 한 정원에 그와 같은 장미꽃이 5천 송이나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한다. 자신이 유일하다고 했던 꽃이 상심할까 염려해서다. 이때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다.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것은 물론 바람막이까지 씌어주었기에 그의 장미는 여느 장미와 다른 유일한 장미이며, 그는 그의 장미에게 책임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린왕자는 별을 떠난 지 일년 만에 다시 그의 별로 돌아간다. “난 꽃을 사랑하기엔 너무 어렸어”라는 게 조종사에게 토로하는 말이지만 그의 별을 떠난 지 고작 일년밖에 되지 않은 걸 고려하면 그 깨달음은 작가 생텍쥐페리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친구를 갖고 싶어서 자기 별을 떠난 어린왕자가 다시금 그의 별로 돌아간 것을 성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황현산 선생은 “이 번역은 때때로 ‘엄숙하게' 말할 줄 아는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때때로 엄숙하게 말하더라도 어린이는 어린이다.


18.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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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다. 보통은 한주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시간이지만, 이번주에는 내일 부산에서 강연 행사가 있기에 여유롭지 않다. 일요일에는 오늘 추가로 들여놓은 책장들을 보러 서고에도 다녀와야 한다. 10개를 더 들여놓았고 단순 계산으로 1700권쯤, 기존 서가의 빈 곳까지 포함하면 2700권 가량 더 꽂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꺼번에 책이사를 하거나 매주 100-200권씩 나르거나 해야 할 참.

그런 생각중에도 오늘 배송중인 책이 궁금하다. 김진희의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푸른역사)인데, ‘베티 프리단과 <여성의 신비>의 사회사‘가 부제로 <여성의 신비>의 의의와 문제성을 짚어본 책이다. 일종의 가이드북. <여성의 신비>는 얼마전에 <여성성의 신화>라는 새 제목으로 나왔고, 알라딘에서는 눈치 좋게도 세트판매를 하고 있다.

˝미국사 연구자가 쓴 이 책은 베티 프리단의 성장 배경과 지적 계보를 정리하고, 책의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 의의와 한계, 그리고 파장을 친절하게 정리했다. 이름만 친숙한 고전을, 감히 말하자면 “읽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에 고전 해설서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매주 나오는 게 페미니즘 관련서이고 그간 구입한 책도 좀 쌓였다. 여성주의 문학에 대한 강의책도 준비중이어서(올해 안으로 출간하는 게 목표다) 살펴보기도 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는 이주의 페미니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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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9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번 여름의 과제 가운데 하나가 제발트의 작품들을 읽고 강의하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작품 <아우스터리츠>(을유문화사)를 오늘 강의했다(다음주에 한 차례 더 지방에서 강의하게 된다). 절판된 <이민자들>을 제외하고 <현기증>과 <토성의 고리>,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를 차례로 읽었고, <공중전과 문학>도 참고로 읽었다. 리뷰는 <공중전과 문학>의 메시지를 간추린 것이다. 어제가 광복절이라는 점도 고려한 책선정이었다. 한편, 한국전쟁에서의 공중폭격을 다룬 문학작품이 있던가 궁금하다...



주간경향(18. 08. 20) 전쟁의 공정한 평가는 문학적 책임


200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W. G. 제발트는 동시대 가장 경이로운 독일 작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전 몇 권의 시집과 비평집 외에 단 네 권의 소설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진작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고, 현재는 독문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작가다. <공중전과 문학>은 1997년 취리히대학 초청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강연과 그에 대한 반응, 그리고 강연 이후의 소회 등이 담겨 있다.  


제발트는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와의 짧은 여행에 대한 친구 카를 젤리히의 묘사를 읽고 강연의 주제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1943년 발저가 환자로 있던 스위스의 정신병원을 나선 한여름 날 밤에 독일 함부르크시는 영국 공군의 야간공습으로 철저히 파괴된다. 그렇지만 젤리히의 회고에서 이 우연의 일치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거꾸로 제발트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우연이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역사적 기억이다. 그 기억은 공중전에 대한 것인데, 좀 더 정확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영국 공군의 폭격에 의해 초토화된 독일 도시들에 대한 기억이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영국 공군은 40만 번의 출격으로 100만톤의 폭탄을 독일 전역에 투하했고, 공격을 받은 총 131개의 독일 도시 가운데 드레스덴을 포함한 몇몇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 공습으로 희생된 민간인 사망자만 60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일은 당사자들의 회고뿐 아니라 전후 문학에서 기이할 정도로 망각되었다고 제발트는 지적한다. 게다가 전범국가로서 독일의 책임은 이 과도한 폭격과 학살을 문제삼지 못하게 만든다. “독일 국민 대다수가 함께 경험한 극에 달한 파괴의 참상은 그렇게 일종의 터부에 묶여, 스스로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가정사의 비밀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 비밀의 소환과 환기가 제발트 문학의 비밀이고 핵심이다. 1944년생이고 알프스 북부지방이 고향이기에 제발트는 당시의 폭격과 파괴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전쟁 당시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통해서 그는 전쟁세대로 재탄생한다. 그 끔찍한 사건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제발트의 작품에서는 사진이나 이미지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참혹한 역사적 기억과 그에 대한 문학적 책임을 되새겨보게 하는 에세이를 통해 제발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 독일은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독일 자신이 공중폭격의 원안자였다는 것을 그는 잊지 않는다.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나치스의 공군은 최신형 화염폭탄을 통해 런던을 거대한 불바다로 만들고자 했었다. 또한 게르니카와 바르샤바, 베오그라드 등의 도시를 공습함으로써 도취적인 파괴의 선례를 보여준 것도 독일이었다. 제발트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무자비한 폭격과 파괴행위를 공정하게 역사의 법정으로 소환하고자 할 뿐이다. 그는 그것이 여전히 문학의 몫이고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작가였다.


18.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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