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이진아도서관에서 10월 30일부터 12월 8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에 ‘20세기 러시아 예술가소설‘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다. 이반 부닌과 나보코프, 그리고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을 읽는 강의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wingles 2018-10-25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착하시자 마자 강의 공지~ 감사합니다^^

로쟈 2018-10-26 08:34   좋아요 0 | URL
^^
 

함부르크공항에서 탑승을 앞두고 있다. 출국이라고 적지 않은 건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유일한 일정으로 찾아간 곳은 함부르크미술관인데 뭉크의 대표작 몇 점과 인상파 그림들도 소장하고 있지만 간판 그림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책표지에도 자주 쓰이기에 친숙한 그림이다. 실물을 보니 생각만큼 큰 그림은 아니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였지만(10-15분) 교통체증으로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미술관에 도착했고 관람시간도 한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그림들만 바쁘게 둘러보고 기념품숍에서 소개책자를 구입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륙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기는 프랑크푸르트. 이제 귀국행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독일문학기행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토마스 만의 고향 뤼벡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중세 한자동맹의 중심도시였지만 17세기 이후에는 기세가 꺾였고 현재 인구 22만 가량의 중소도시다. 함부르크에서 뤼벡까지는 1시간 거리(하지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교통체증으로 30분 이상 더 소요되었다). 중세 때 세워진 뤼벡의 관문 홀슈텐 문을 거쳐서 옛 도심으로 들어갔는데 목적지인 부덴브로크하우스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부덴브로크하우스는 이름대로 만의 첫 장편이자 걸작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1)을 중심으로 한 토마스 만 문학관이다. 작품의 등장하는 부덴브로크가의 저택 내부를 일부 재현하면서 만의 집안, 특히 형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을 중심으로 만 가계의 여러 인물들도 조명하고 있었다. 토마스 만 문학의 의의와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의 성취에 대해서 짧은 강의를 하고 기념품코너에서 독어판 <부덴브로크의 사람들>을 구입했다. 독어를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문장은 식별할 수 있기에. 그리고 의당 그래야 할 것 같아서(전시실에는 일어판과 중국어판도 여러 언어의 번역판들과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어판은 빠져서 아쉬웠다).

부덴브로크하우스에서 빠져나와 향한 곳은 귄터 그라스하우스다. 사실 예상 못했던 방문지인데 여행사에서 알아내어 일정에 넣은 곳으로 귄터 그라스의 생애와 함께 화가 귄터 그라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국내에도 그의 스케치북이 나와 있지만 그라스는 미술가로도 상당한 실력을 발휘했던 작가다. 대표작 <양철북>(1959)의 책표지 등도 모두 그의 작품이고. 문학과 관련한 자료 전시관은 아니었지만(현재의 폴란드 그단스크가 그라스의 고향이자 <양철북>의 배경인 단치히다) 그라스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독어판 <양철북>을 구입했다.

자유식으로 점심을 먹고 난 오후시간은 자유시간이어서 일행은 독일의 대표 마트들에서 귀국을 위한 쇼핑을 즐겼다. 이렇게 또 한 차례의 문학기행이 마무리되는구나 싶었다. 내년 봄에는 이탈리아 문학기행이 예정돼 있는데 귀국하는 대로 세부 일정을 확정할 참이다. 오늘 오후 (독일은 현재 새벽시간이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함부르크미술관의 그림들을 독일의 마지막 인상으로 남겨놓으려 한다. 미리 작별의 인사를 적는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덧 독일문학기행도 마지막 일정만을 남겨놓고 있다. 어젯밤에 함부르크에 도착했고 오늘 날이 밝으면 토마스 만의 고향이자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1901)의 배경인 뤼벡을 다녀오는 게 마지막 일정이다. 내일은 오전에 함부르크미술관을 방문하고 오후 항공편으로 귀로에 오르게 된다.

괴테와 실러의 바이마르에서 북부 함부르크까지는 꽤 먼 거리로 어제 오후 6시간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두 차례 휴게소에서 정차한 것까지 포함해서다). 해가 떨어진 다음에 도착했기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음에도 함부르크에 대해서는 일부 야경만 본 상태다.

바이마르에 함부르크로 향하면서 어제 오전에 들른 곳은 튀링엔 주의 대학도시 예나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인구 13만이 채 되지 않으며 이 가운데 2만 가량이 대학생인 도시다. 대학 캠퍼스가 따로 있는 건 아니어서 현대식 증축건물이 덧붙여진 대학도서관 건물옆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수분 걸어가자 여기저기 대학 건물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일행이 내부까지 들어가본 곳은 대학본관이자 인문학 강의동. 특별해보이지 않은 로비에 라이프니츠, 헤겔, 마르크스와 예나대학의 인연을 적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에나대학은 1934년에 프리드리히 실러 예나대학으로 개명되었지만 통상 예나대학으로 불린다. 실러가 괴테의 추천으로 사강사로 강의한 인연을 고려한 개명이지만 예나대학이 실러보다 우선하여 떠올려주는 인물은 헤겔이다. 거기에 마르크스도 얹을 수 있는데 두 사람이 각각 박사학위를 받은 곳이 예나이므로 우리식으로는 대학동문이다.

1770년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난 헤겔은 예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801년부터 1806년까지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주저인 <정신현상학>을 집필해 1807년에 출간한다. 철학사가 ‘헤겔의 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의 개막이다. 특히 1806년에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예나로 진주하였고 이때 나폴레옹을 가리켜 헤겔이 했다는 혼잣말을 철학사는 기록한다. ˝저기 말을 탄 세계정신이 지나간다.˝ 헤겔의 철학은 그 세계정신의 철학이다.

1818년 라인란트팔츠 주의 소도시 트리어 출생의 마르크스는 베를린대학에서 법학과에 다니다가 프로이센의 반동적인 분위기가 다소 덜한 예나대학으로 옮겨서 1841년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학위를 받은 뒤 라인신문의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신문이 강제폐간 당하자 프랑스로 거처를 옮기며 1883년 영국 런던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랫동안 추방자이자 망명가의 삶을 산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대학건물 로비에서 독일철학의 의의와 독일정신의 의미에 대해서 잠시 강의하는 것으로 우리는 예나에서의 공식일정을 마쳤다. 뮌헨에 도착한 이후 바이마르까지 독일의 가을답지 않은 화창한 날씨였다면 예나부터는 다소 쌀쌀했고 오늘은 드디어 비 소식도 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을 남겨놓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 정신문화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바이마르가 어제의 방문지였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곳이 아직 바이마르의 호텔이다. 튀링엔 주(주도는 에어푸르트)의 중심도시 바이마르는 여느 독일 도시들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인구가 6만 8천 가량으로 7만이 되지 않으며 그제 방문한 베츨라보다 조금 큰 정도다(헤세의 고향 칼브의 세 배 정도군).

어제 아침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바이마르에 도착한 때는 점심 무렵. 버스에서 하차하여 도심 쪽으로 걸어들어가 헤르더 광장의 한 식당에서 역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현지식으로 식사를 할 때는 매 끼니 맥주를 곁들이고 있다. 독일이니까) 목적지로 향했다. 바이마르의 핵심 방문지는 국립극장에 세워져 있는 유명한 동상의 두 주인공 괴테와 실러의 집을 각각 방문하는 것이다.

바이마르 고전주의 시대를 만든 두 거장의 우정과 협력은 1794년에서 1805년까지 10여 년에 걸친다. <빌헬름 텔>(1804)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실러가 이듬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괴테는 크게 슬퍼하며 자신의 반쪽을 잃었다고 적었다. 그만큼 실러가 괴테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미완성 상태에 있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파우스트> 등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이자 조력자가 바로 실러였다. 물론 일찌감치 실러의 재능과 역량을 인정하여 바이마르로 초대한 사람이 괴테이고.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1832년 생을 마치므로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이마르 사람으로 죽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바이마르의 괴테하우스는 괴테가 1782년에 얻은 집으로 궁전은 물론 아니지만 비교적 큰 저택이다. 괴테가 사용한 물건과 수집한 예술품, 광물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고 괴테가 가꾼 정원의 모습도 가늠해볼 수 있다. 오디오 해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인지 따로 안내문들이 붙어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기념품숍에서 영어판 안내서를 구할 수가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찬찬히 읽어볼 참이다.

비르템베르크 주 출신의 실러는 <도적떼>(1781)의 공연 성공 이후 극작가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영주 카를 오이겐의 반대에 부딛치자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1789년에 예나대학의 비정규 교수가 되지만 수강생이 적어 강의가 폐강되고는 해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1799년 이후 <발렌슈타인> 3부작을 필두로 하여 <마리아 스튜아르트>(<메리 스튜어트>)<오를레앙의 처녀><메시나의 신부> 등 일련의 대표작을 써내며 이 여정의 대미가 <빌헬름 텔>이다. 바이마르의 실러하우스는 그가 1802년에 예나에 이주하여 생을 마친 곳이다.

괴테하우스와는 달리 실러하우스는 리모델링된 외관을 갖고 있었고 내부도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러의 생애와 대표작을 차례대로 따라가보게끔 구성돼 있었고 임종한 실러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가 마지막 방에 걸려 있었다. 실러하우스에서의 짧은 강의는 주로 괴테와 실러의 협업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와 <빌헬름 텔>의 주제 등에 할애했다. 실러하우스를 나오면서는 방문기념으로 로로로시리즈의 문고본 전기 <실러>를 구입했다(괴테하우스에서는 <괴테>를 구입했으니 공평하게).

괴테하우스와 실러하우스를 차례로 방문한 일행은 바이마르극장 앞 광장에 세워진 괴테와 실러의 동상을 찾아 단체사진을 찍고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바이마르의 마지막 일정으로 괴테가 관장으로도 일했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유서 깊은 이 도서관의 정식이름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이다. 바이마르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의 기미상이 서 있는 민주광장 왼편 건물이었는데 입장 시간이 지나서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다(안내 책자만 구입했다). 안나 아말리아와 아우구스트는 모자지간이다. 바이마르 공국을 독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모자다.

도서관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가 막간에 푸슈킨의 흉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랐다.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 동상이 왜 바이마르에 있는지는 검색해봐야 알겠지만 짐작에는 독일과 러시아가 동상을 서로 교환한 게 아닌가 싶다. 괴테의 동상이 러시아 어딘가에 세워지는 조건으로 말이다(괴테는 생년이 푸슈킨보다 정확히 50년 앞선다). 이런저런 서프라이즈도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해야겠다...

PS. 찾아보니 바이마르의 푸슈킨 동상은 1949년 푸슈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흉상의 외모는 실제와 좀 다른데 ‘독일화된 푸슈킨‘을 보여준다는 평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0sun 2018-10-2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하나의 서프라이즈~
푸슈킨은 서울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고
열일중.ㅎ

로쟈 2018-10-26 23:37   좋아요 0 | URL
네, 서프라이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