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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센코'란 이름을 검색하면 한달쯤 전 칼럼들이 몇 개 뜬다. 지난 12월 중순, 그러니까 황우석 사태가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무렵에 씌어진 칼럼들이다.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T. D. Lysenko; 1898-1976)는 스탈린시대 러시아의 농생물학자로서 멘델의 유전학설을 비판하고 소위 '리센코학설'(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그에 따르면, 이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환경조건을 변화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을 변경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이해하기론 용불용설 같은 것이어서 환경조건에 따른 개체 변이가 유전된다는 식인 듯하다(이른바 획득형질 유전론). 문제는 그의 이 유사-과학이 멘델의 유전학 같은 '부르주아 과학'에 대항하여 스탈린시대에 '프롤레타리아 과학'으로 공인받았다는 것. 

 

물론 이후에 그의 '정치적' 과학은 농업생산 분야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신뢰를 상실하게 되며 스탈린 사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모스크바 유전학연구소장 직에서 완전히 사임하게 되는 것은 흐루시초프시대인 1965년). 하지만, 그의 유사-과학은 유전학 분야에서 러시아가 서구에 최소한 10여 년 이상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게 20세기 과학사의 최대 스캔들의 하나인 소위 '리센코 어페어'이다.  

 

개인적으론 대학원 시절 언젠가 이를 풍자한 러시아 현대소설을 읽을 일이 있어서 리센코주의에 대한 자료들을 모으기도 해서(비록 거기에 대해 글을 쓰는 기획은 엎어졌었지만) '리센코'란 이름이 친숙한데, 그때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새길사, 1996)의 저자이자 얼마전 <인간복제논쟁>(지식의풍경, 2005)이 번역/소개된 도미니크 르쿠르의 <리센코, 프롤레타리아 과학의 실제 역사>였다(이 책은 얼마전에 지인의 도움으로 영역본을 구했다). <인간복제논쟁>의 부제는 '인간 복제 이후의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이며 원제는 "Humain, Posthumain"(2003), 즉 '인간과 포스트인간'이다. 이미 '인간복제'의 기술적 가능성과 문제점에 관한 책들은 여러 권 출간돼 있으므로 이 책과 더불어 '테마 독서'를 해봄직하다.

 

 

 

 

흥미로운 건 르쿠르의 책 부록으로 '유나바머'론이 포함돼 있다는 것(*최근에 <산업사회와 그 미래>(박영률출판사, 2006)로 다시 출간됐다). 유나바머? 시사상식인데, 본명이 시어도르 카진스키인 그는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 천재로 버클리대 교수를 지낸 인물이다. 극단적인 문명혐오주의자로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지난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6회에 걸쳐서 과학기술 관련인사들에게 우편물 폭탄테러를 감행해왔다. 초기에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공격해 대학(University), 항공사(Airline)와 폭파범(Boomber)의 Un+A+Bomber 를 조합, '유나바머'로 불렸다. 그는 95년 테러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유력지에 과학문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과학기술문명비판논문(=유나바머 선언문) 게재를 요구함에 따라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에 3만5000자의 논문이 실렸다. 동생의 제보에 따라 96년 4월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중이다. 이른바 '유나바머 어페어'이다. 르쿠르가 인간복제문제와 유나바머 문제를 어떻게 접속시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이하에서 옮겨오는 칼럼들은 그런 궁금중과는 무관하며 (아마도 21세기 전반기 과학계 최대 스캔들로 기록될) '황우석 어페어'에 촉발되어 '리센코 어페어'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글들이다. 첫번째 칼럼은 한겨레신문(2005. 12. 13)에 실렸던 김환석 교수의 칼럼 "'영웅만들기'의 함정;이고, 두번째 칼럼은 동아일보(2005. 12. 12)에 실렸던 소설가 복거일의 칼럼 '과학윤리기준 과학자에 맡겨야'이다(복거일은 대표적인 보수주의 논객이다).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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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튼의 결별선언 이후 한 달 동안 전국을 폭풍처럼 혼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황우석 스캔들은 이제 서울대의 조사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따지고 보면 한 과학자의 연구논문에 대한 논란일 뿐인데, 이렇게 ‘핵폭풍’에 비유될 만큼 국가적 재앙의 위기에 몰려 정부와 온 국민이 하루하루 불안과 조바심에 떨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과학계 내부의 자정 메커니즘으로 쉽게 처리되었을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지경으로 사회적인 대혼란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지 한 과학자가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계층과 지역과 성별과 세대 그리고 지지정당의 차이를 뛰어넘어 미래 과학한국의 비전을 또렷이 보여주며 나라의 발전을 이끌고 갈 어떤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는 가난한 농촌 출신이지만 복제와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나타낸 과학영웅일 뿐 아니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발언이 표상하듯 진한 애국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더구나 여기에 전세계 난치병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라는 인류애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위인’이 아니고 무엇이랴?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업적과 자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정부와 언론이 손을 맞잡고 이끌어 온 ‘황우석 영웅 만들기’의 결과 때문이다. 그는 원래 생명공학에서는 주변적 분야에 속하는 동물복제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초기에 그는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갑자기 생명공학의 스타로 떠올랐고, 심지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복제한 백두산 호랑이 새끼를 대통령이 북쪽에 선물할 계획(결국 실패하였지만)에 관여할 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박기영 보좌관과 정동영 장관 등 청와대와 정부 및 여당의 전폭적 지원 아래 배아줄기세포 분야로 그의 영역을 확장하여 마침내 한국의 생명공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세계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학자를 국민영웅으로 만들려고 국가가 기획하고 개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행한 결과만을 낳았다. 옛 소련의 스탈린 치하에서 기존의 유전학을 비판하고 획득형질 유전과 이를 이용한 농업증산을 주장하여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으로 떠받들던 리센코, 북한에서 1960년대 초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경락의 존재를 증명했다고 주장하여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한때 칭송받았던 김봉한 등이 좋은 예이다. 이들은 모두 과학적 연구성과가 국가 개입에 의해 부당하게 부풀려져 과학계에서 제대로 검증받을 기회를 못가졌던 것이 치명적 문제였다. ‘영웅 만들기’의 폐해는 또한 특정한 과학자 내지 그의 분야에 국가의 연구자원이 집중되어 과학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큰 부작용을 초래한다.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를 통해 과학을 키우겠다는 국가의 야심은 잘못된 것이다. 과학자 스스로도 과학계의 검증보다 국가의 지원을 통해 영웅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발견 못지 않게 조작과 사기 논란도 종종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처럼 온 나라를 뒤흔들지는 않는다. ‘영웅 만들기’는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이고 결국 핵폭풍의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김환석/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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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논란도 그런 충돌을 배경으로 삼아 나왔다. 종교와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서 다르다. 종교는 믿음에 의지한다. 과학은 검증에 의존한다. 믿음이 종교가 의지하는 방법론이므로 경전에 계시된 진리를 반박하는 사실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그것들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검증에 의존하고 이론들 사이의 경쟁을 허용하므로 과학은 꾸준히 나아간다.

 

과학의 성취는 필연적으로 종교의 토대를 허물었다. 종교는 과학에 거세게 저항했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 이후 과학적 지식에 의해 자신의 신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것을 바라보아야 했다. 불행하게도 과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과학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를 줄곧 줄였다. 과학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임을 보여 주었다. 이어 태양 또한 은하계의 뭇별 가운데 하나이고 다시 우리 은하 역시 수많은 은하계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음을 밝혀냈다.

 

반면에 종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만큼 중요한 존재며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안심시킨다. 과학의 성과들을 누리면서도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엔 종교에 의지하는 것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이번 줄기세포 논란에도 사람의 왜소화가 포함되었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명체가 첫 생명체의 후손이고 외양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며 그런 뜻에서 혈연을 지녔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밝혀냈다. 이런 발견은 사람은 다른 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우리의 통념과 어긋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구호로 흔히 포장되는 이런 통념은 모든 종교의 가장 근본적 신조다. 여기서 다시 종교와 과학은 부딪친다.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이 과학적 연구를 인도하는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그것이 환상임을 지적하면서 현대의 윤리는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의 이런 주장은 과학적 연구를 인도할 윤리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필요한 지식들은 과학자들만이 지녔기 때문이다. 과학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고 전문화가 가속되므로 윤리적 판단에 필요한 지식들을 일반 시민들이 지니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과학이 경쟁을 통해서 발전한다는 점이다. 검증을 통해서 이론들의 우열이 가려지므로 과학은 어느 분야보다도 경쟁이 치열하다. 자연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내용이 허술한 연구나 이론은 이내 밀려난다. 반면에 종교는 경쟁을 거부한다. 배교나 이단을 허용하는 종교는 아직 나온 적이 없다. 10여 년 전 미국 생물학자들이 황 교수의 연구에 선행적인 배자분할 실험에 성공했을 때 교황청 기관지는 ‘광기의 터널로 들어서는’ 과학자들을 규제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역사를 살피면 우리는 권력이 잘못 작용하면 과학이 사악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만난다.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 교훈적인 사례는 공산주의 러시아에서 트로핌 리센코의 학설이 초래한 비극이다. 스탈린 시대의 농업생물학자인 리센코는 멘델의 법칙에 입각한 유전학설을 비판하며, 환경 조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연과학마저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바라보던 스탈린 시대의 광풍(狂風)에 힘입어 “채소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 공식 이론으로서 지위를 차지했지만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농민이 굶어죽었다. 권력이 개입해 이론 사이의 경쟁을 배제하고 특정 이론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면 이런 폐해가 생겨난다.

 

소비자의 이익을 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장에서 나오는 경쟁이다. 이런 이치는 과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부가 나서서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윤리적 규정을 만든다면 걱정스럽다. 어떤 윤리나 법도 과학의 빠른 발전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런 규정들은 윤리를 지키기보다는 과학의 발목을 잡는다. 그저 경쟁하게 하라. 기업가들이든, 과학자들이든.(복거일/소설가)

 

 

 

 

두 사람 모두 황우석 사건과 관련하여 국가 개입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초점은 약간 다르다. 김환석 교수가 "과학과 국가의 잘못된 결합"을 문제삼고 있다면, 복거일씨의 경우는 '국가권력의 개입' 자체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유가 특이한데, 국가는 종교 등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그런 연장선상에서라면 복거일의 본격적인 '종교비판론'을 기대해봄직하다! 더 나아가 지극히 종교 정향적인 미국식 정치 마인드에 대한 비판도!). 여하튼 나는 '인용'만 하며,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당신의 몫이다...  

06. 01. 09.

P.S. '리센코 어페어'에 대한 참고자료로 '맑스 코뮤날레'에서 발표됐던 논문 "혁명기의 러시아 과학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를 옮겨놓는다(복거일과는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다. 비록 '노동자-농민'이 이런 문제에서도 '해결사'가 되어줄 거란 전망에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필자는 김해민(노동자의 힘 회원)님이다.

리센코 사건
1936년, 소련의 과학기술계에서는 특별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모스크바의 레닌 농학아카데미에서 발표된 "유전학에서의 두경향"이라는 논문에서 리센코(T. D. Lysenko)는 환경적 조작과 접목에 의해 유전이 변형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주류였던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반진화론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견해가 진정한 다윈주의에 기초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발표는 과학기술계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1948년에 개최된 같은 회의 에서 우크라이나 농부의 아들인 리센코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멘델의 과학을 "반동적이면서 퇴폐적이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과학을 추종하는 자를 "소비에트 인민의 적이다"라고 공격하며 자신들의 학설을 사회주의 생물학 중 하나로 당이 공식적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은 이를 승인함으로써 과학기술계의 논쟁은 일단락 되었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이 여파로 유전학 과목은 폐강되고 관련 연구소는 폐쇄되었다. 과학기술자들 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당의 결정을 찬양하는 공개적인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내쫓기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당시 곡류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 식물 육종학에 대한 기초를 세운 과학자 바빌로프도 이 과정에서 실각되고 볼가강 중류의 사하로프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에 맹위를 떨치던 리센코주의도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해 버렸다. 맑스주의 내에서도 리센코 학설은 '맑스주의와 정반대 되는 것' 혹은 '과학적 특성이 결코 없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아울러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과학운동은, 소련의 폐쇄적인 흐름과는 다르게 다양한 논의를 바탕으로 운동의 흐름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급진과학운동은 무려 10여 년 간의 소강상태에 빠져버렸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물론 단편적인 사건으로 혁명기 러시아의 과학기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스탈린시기에 과학기술은 매우 큰 발전을 이룩한 것 또한 사실이다. 냉전이 살벌한 시기에도 미국의 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의 과학기술 수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자본주의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해주는 사건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숙련노동자의 조직된 힘을 분쇄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도입해 왔고, 기계에 의한 노동의 대체로 줄곧 노동자들을 소외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혁명기 러시아에서 그것도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소련에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하였고, 그것도 20년이나 지속되었을까?

1917년 혁명 후 볼셰비키 혁명 정부 앞에 놓인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레닌은 자국의 정세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연합군을 탈퇴하였다. 하지만 전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연합국측의 간섭전쟁과 국내 반-볼셰비키세력들에 의한 격렬한 내전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내전은 혁명을 더욱 힘들게 했다. 산업 생산량은 극도로 하락하였고, 농촌은 황폐화되었다. 이 시기 볼셰비키 정부는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 복구가 무엇보다 절실했다. 레닌은 생산력의 복구를 위해 내전동안 전시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산업경영권을 중앙집권화하고 자주적 '노동자 관리'기구를 강제 폐지시켜 버렸다. 또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전된 과학기술 중에서 선진적인 부분 채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과학적 관리 기법이라는 테일러 시스템을 도입시켰다. "근로인민 자신들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현명하게 적용된다면 테일러시스템은 전 근로인민의 필요노동일을 훨씬 절감시키는 믿음직한 수단이 될 것이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른바 이 '소비에트 테일러시스템'은 스탈린 시대까지 이어졌다. 1921년 3월 제10차 전당대회에서 전시공산주의 정책을 완전히 폐지하였으나 노동부에서 차등임금제와 식량배급량 차별제, 노동카드와 성과급제 및 반-볼셰비키 성향의 부르주아 지식인과 기술자들을 중용하였다. 이들이 당과 국가의 여러 정책들을 주도하는 핵심적인 위치로 상승하게 되었고 이들은 대개 산업행정, 고등기술교육, 연구 기관, 기획기관에서 최고의 기술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영향력을 근거로 정책 결정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려 하였고, 이러한 면들이 기술관료주의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후, 권력을 잡은 스탈린은 레닌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급격한 산업화를 주장하였다. 1929년에 스탈린은 집단농장화를 실시하고 대규모 산업화 정책에 착수하게 되었다. 스탈린 시대에는 과학을 생산력이라기보다는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인식하였다. 모든 과학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편할 것을 요구하였고 과학과 철학 모두에 대한 당성의 우위를 강조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기술관료들은 공산주의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붉은 전문가'로 교체되었다. 무엇보다도 스탈린은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형식상으로 남아 있던 산업의 집단적 관리 원칙과 노동자들의 복지를 위하는 노조의 마지막 권한을 모두 폐지해 버렸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 흘러온 이러한 사회적 관계들은 혁명기 러시아가 리센코주의를 받아들이게 한 것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소련의 낙후된 생산력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박한 과제로 다가왔다. 레닌은 과학을 생산력으로 주요하게 파악했고, 부르주아의 선진 과학을 수용해야 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레닌의 이러한 생각은 이후 과학기술에서 자본주의적 이용만 제거하면 순수한 기술만 남아 이를 사회주의적으로 이용하면 된다는 기술 중립론적 시각으로 비판받고 있다. 스탈린의 경우는 좀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낙후된 경제의 복원과 반-볼셰비키 성향의 기술관료의 관료주의 폐지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고, 당시 거의 쿠데타적 권력 쟁탈과정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과학을 상부구조인 이데올로기로 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출발해야 하는가?
스탈린처럼 과학기술을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은 과학기술과 사회관계를 잘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의 내재적 발전 경향을 지나치게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르지 않다. 그리고 과학기술은 단지 누가 이용할 것인가라는 문제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아무리 생산수단이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과학기술혁명이 수준 높은 생산력으로 되어 인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 생산과정/이용과정(노동과정)속에서 주체와의 관계와 사회관계속에서 판단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즉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소유관계의 문제와 아울러 과학기술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조직적 생산관계와 개발 생산단위들 간의 경제운영관계의 문제 그리고 사회관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사고 해야한다. 결국, 당시 급박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공산당의 잘못된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은 소유문제가 해결된 사회주의국가에서도 과학기술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혁명기 러시아라면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어떻게 과학기술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까? 맑스는 이러한 질문에 한가지 해답을 제시한 바 있다. 맑스에 따르면 진리를 파악하는 자는 관념적 몽상가들이나 학자가 아니라 가장 실천적인 계급, 즉 이론적인 수준에 한정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실천적 수준에서 진실을 증명코자 하는 계급, 즉 대다수 노동자 계급과 그 노동자 전위세력으로 파악하였다. 맑스는 인식에 있어 실천의 중요성, 그리고 가장 실천적인 계급적 관점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렇다면 한번 상상해 보자. 레닌이 자주적 노동자관리기구를 폐지시키지 않고, 노동자-농민의 자주성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했다면, 그리고 스탈린이 그나마 남아있던 노동자들의 마지막 자주권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노동자-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주장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의사 통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비록 많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지만 실천적 주체인 노동자들은 테일러 주의를 사회주의에 적용하면서 테일러 주의의 문제점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고 폐기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새롭게 사회주의적 노동과정을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농민들은 리센코주의의 과학을 집단 농장에 적용하면서 리센코주의의 진실성을 적어도 20년보다는 빨리 확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강조는 나의 것) 

  

P.S.2. 이너파벨님이 알려주셨는데, 하인리히 야곱의 <빵의 역사>(우물이있는집, 2005)에도 리센코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아마도 '러시아의 빵 - 1917년'이란 절에서인 모양이다. 재인용하자면,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한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자 바빌로프가 응수한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그렇다, 분명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새로운 물적 토대는 새로운 인간을 형성해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그 새로운 조건이며 그것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조건 없이 가능하지 않은) '새로운 인간'은 어디서 굴러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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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09 23:17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전 황우석 사태 보다는 아직도 음모론 가지고 끝까지 황우석을 옹호하는

"황빠"들의 정신구조가 더 궁금합니다.


이네파벨 2006-01-10 10:1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번역한 책 <빵의 역사>에서 바빌로프와 리센코의 일화가 나옵니다.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들추어보았어요.
가혹한 기후를 견뎌낼 수 있는 최상의 품종의 밀을 찾아내 육종을 통해 종자로 공급하려는 계획을 가진 바빌로프에게 리센코의 제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학은 시간이 남아돌지 모르지.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여기, 러시아에서 혁명 과업을 완수했다. 거만하게도 인종적 특성과 불변하는 성질을 내세우는 멘델의 과학 따위는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다. 그렇지 않은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살아있는 생명체를 변화시키는데 몇 세대가 걸린다고 믿을 수 없다. 다윈과 마르크스에 의하면 생명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환경이다. 새로운 조건에서는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인간을 통해 관찰한 바 있다. 과연 식물이 인간보다 더 반동적인지 살펴보자."
그러지 바빌로프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만일 환경만으로 생물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아마 리센코는 아무 씨앗이나 집어들고 시베리아의 툰드라지대로 가지고가서 심은 뒤 씨앗이 얼지 않도록 평원 전체를 데워야 할 것이다."

역시...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군요........

과학과 정치...정치와 과학...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결코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쌍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섭고도 슬프게 느껴지네요....
(웰즈의 타임머신에 나오는...그 지하인과 지상인의 끔찍한 공존(상호의존)관계에 비유한다면 억지일까요?)

로쟈 2006-01-10 10:58   좋아요 0 | URL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저로선 nature vs. nurture의 해묵은 논쟁이라기보다는 과학 대 유사-과학의 해묵은 논쟁 같습니다. nature주의자나 nurture주의자나 토대는 '과학'이니까요...
 

아침에 전철을 타면서 이번주 <씨네21>을 집어들었고("포르노 혁명은 어떻게 시작됐나"라는 기사제목도 눈에 띄고 해서),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끄트머리쯤에서 씨네 블로그 소식란에 '타르코프스키가 묻혀 있는 묘지에 다녀오다'(http://blog.cine21.com/spotkanie)를 읽었다. 내용은 대략  "1986년 12월 29일,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가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2005년 12월 28일,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를 추모하러 레지던스 감독들 셋과 그의 친구들이 파리 근교에 있는 묘지에 다녀왔다. 파리에 러시아처럼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이었다."라는 것. "기념일이니 많은 추모객이 와 있고 콘서트도 열릴 예정이라는 정보에 쉽게 무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묘지는 너무 조용했다"고.

일행은 20주년인 줄 알고 갔지만, 계산대로 20주년이 되는 건 올 2006년 12월 29일이다. 그리고 러시아식으로 하자면, 지난 7일이 크리스마스였으니까 내일 모레가 그의 사망 19주기가 될 듯하다. 망명감독이었던 만큼 그가 러시아 밖에 묻혀 있다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가 파리 근교에 묻혀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두 달 전에 올해가 사망 20주년이 된다는 걸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기회가 닿은 김에 그에 대하 몇 가지 이미지들을 띄워놓는다(당연한 일이지만,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글을 한편 쓰는 것이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이다). 먼저 블로거님이 올려놓은 묘지 사진들 중 두 장(원경과 근경).

그의 묘비에 생몰연대와 함께 기록돼 있는 건 러시아어로 '천사를 본 사람에게 (바침)'란 뜻이다. 말하자면, '천사를 본 사람'이 그의 묘비명이 되겠다. 묘비 옆에 놓여 있는 건 러시아 정교의 상징물인 성모상(이콘화)이다. 아직 시들지 않은 붉은 카네이션(?)이 화병에 꽂혀 있는데, 마음으로나마 꽃송이를 더 보탠다.

'천사를 본 사람'이라고 돼 있지만, 사실 타르코프스키 자신을 천사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 감독 빈 벤더스가 그런 경우이다. 페터 한트케의 대사 “아이가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하던 때가 있었다. 왜 나는 네가 아니라 나인가?"로 시작되는 그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영어제목은 <욕망의 날개>)의 마지막 장면에는 이전에 천사였던 오즈 야스지로, 프랑수아 트뤼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친다는 자막이 엔드타이틀로 들어가 있다(내가 그 영화를 제일 처음 본 건 아주 오랜 전 남산 독일문화원에서였다. 미어터지는 관객들 때문에 끼니도 굶었던 그날 나는 줄곧 서서 영어자막의 이 '흑백' 영화를 봐야했다. 그 전에 보았던 <파리, 텍사스>가 아니었다면 그런 수고를 무릅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벤더스 영화제가 연초부터 개최되어 진행중이기도 하다(일시 2006년 1월 3일(화)~2006년 1월 10일(화) I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I 상영작 <베를린 천사의 시><랜드 오브 플렌티> 등 5편). 소식을 전한 기자는 70년대 대표작들인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도시의 앨리스><길 위의 왕들>이 빠져 있어서 아쉽다고 했는데, 그 점은 나도 아쉽다. <베를린 천사의 시> 이후로 벤더스의 영화는 내게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려나 이 참에 타르코프스키의 필모그라피를 한번 따라가본다(이미지들은 러시아의 타르코프스키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1. 증기롤러와 바이올린(1960, 46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스크바영화학교 졸업작품이고 뉴욕학생영화제(1961)에서 1등상을 수상했다. 나는 화질이 안 좋은 복사본으로 두어 차례 영화를 봤었는데, 길을 닦는 증기롤러 기사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한 어린 학생간의 짧은 만남을 줄거리로 한 영화.

2. 이반의 어린시절(1962, 96분)

타르코프스키의 공식적인 '데뷔작'. V. 보고볼로프의 소설 <이반>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장르상 '전쟁영화'이면서 '비극적 서사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6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장상 수상작이고, 철학자 사르트르가 '초현실적 리얼리즘' 영화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좋은 화질과 나쁜 화질로 두 번쯤 봤는데, 장편영화 중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지 않다.

3.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 185분)

장르는 사극, 즉 역사드라마인데, 제목 그대로 러시아의 전설적인 성상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학교 동기인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와 함께 각본을 썼는데, 루블료프의 전기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몇 개의 일화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야심작'이면서 그의 영화로선 가장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하지만 권력과의 마찰을 빚기 시작하면서 이후 감독으로서의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게 된 작품.  

4. 솔라리스(1972, 169분)

알려진 바대로 스타니슬라프 렘의 SF소설을 원작을 한 영화(렘은 영화에 불만을 표시했었다. 사실 타르코프스키는 'SF'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몇 년 전에 스티븐 소더버그가 리메이크함으로써 다시금 관심을 끈 바 있다. 1972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5. 거울(1975, 108분)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어머니에게 바쳐진 가장 '자전적인' 영화. 그의 노모가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사진 이미지는 도입부에서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젊은 어머니의 모습. 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 '아르세니'는 러시아의 저명한 시인이며 <거울>과 <향수> 등에 나오는 시들은 모두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의 시이다.

6. 잠입자(1979, 163분)

타르코프스키가  러시아에서 찍은 마지막 영화. 러시아의 대표적 SF작가인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하지만, 역시나 영화의 방점은 'SF'와 무관하다. 1982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이미지는 영화 속 주인공, '잠입자' 혹은 '안내인'의 모습.  

7. 향수(1983, 127분)

이탈리아의 한 온천을 배경을 한 영화이며, 1980년대 서구 평단에 '타르코프스키 르네상스'를 가져온 작품. '80년대 국내에서 타르코프스키가 '전설'로만 회자될 때 가장 자주 들먹여지던 작품이 이 <노스텔지아>와 유작인 <희생>이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올렉 얀코프스키는 최근까지도 현역 배우로서 영화를 찍고 있다. 이 영화로 타르코프스키는 로베르 브레송과 함께 칸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공동 수상했다.

8. 희생(1986, 153분)

잉마르 베르이만의 주선으로 스웨덴에서 만든 타르코프스키의 유작.  영화를 찍을 당시 그는 암투병중이었으며, 그는 이 영화를 자신의 아들에게 바친다. 국내에는 1995년에 처음 개봉되어 예상'밖'의 관객들을 동원하기도 했었다(그리고 작년 봄에는 이를 기념하여 <노스텔지아>와 함께 재개봉되기도 했었다). 1986년 제39회 칸느 영화제에서 유일무이하게 그랑프리, 예술 공헌상, 기술상, 국제 영화 비평가 협회상 등 4개 부문 동시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작품. 곧 타르코프스키는 영화예술의 '신화'가 되었다. 여러 번 영화를 봤지만, 위의 이미지는 기억에 없다(어찌된 것인지?). 흔히 알려진 런닝타임(143분)보다 10분 더 긴 것과 관련돼 있는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미지는 아래와 같은 것이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는 그냥 멋쩍음을 덜기 위해서 집어넣은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물론 다른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장편 영화들은 5작품 '컬렉션'을 비롯해서 모두 출시돼 있다. 그리고 <봉인된 시간>과 <순교일기>도 아쉬운 대로 소개돼 있고. 하지만, 본격적인 영화론이 할 만한 책이 김용규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이론과 실천, 2004)밖에 없다는 건 유감이다. 전문가의 글로는 <세계영화작가론2>(이론과실천, 1994)에 실린 정성일의 타르코프스키론이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정도이다(언젠가 '러시아영화감상'이란 수업을 할 때 리포트를 받으면, 타르코프스키론의 1/3 정도는 이 글을 베껴쓴 것이었다). 타르코프스키에게 빚진 바 없는 이들이라면 상관없는 얘기이지만, 그게 아닌 이들이라면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인 감독론은 아니지만, 타르코프스키를 부분적으로 다룬 책들은 여럿이다. '클라시커 50'의 <영화감독>(해냄, 2004)에서 개괄적인 소개를 참조할 수 있고, '시사인물사전' <쾌락의 독재>(인물과사상사, 2000)에도 타르코프스키가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이윤영의 <영화, 피그말리온의 꿈>(문학과지성사, 1999), 조광제의 <인간을 넘어선 영화예술>(동녘, 2000), 송희복의 <영화, 뮤즈를 만나다>(문예출판사, 1999) 등에도 타르코프스키론이 실려 있다(이윤영의 글 정도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한창호의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돌베개, 2005)와 김정란의 <빛은 사방에 있다>(한얼미디어, 2005)가 타르코프스키에 관한 장을 포함하고 있다. 후자에 실린 '타르코프스키를 만나다’에서는 저자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과 상상 속에서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고 한다(이 두 권의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06.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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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5-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가져가요. 필요해서. 그림이 안보여요. 영화포스터들.

로쟈 2007-05-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새 다운됐네요.--;
 

'1963년의 성탄절'이란 제목을 달았다가 '브로드스키의 성탄절'로 고친다. 아래에 옮겨온 글은 원래 재작년, 그러니까 2004년 성탄절에 쓴 것인데, 러시아의 시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의  시 '성탄-1963'에 대한 '읽기'이다. 제목 그대로 성탄을 기념하는 시인데, 씌어진 것은 1964년 1월이다.  러시아에서는 축일을 구력에 따르기 때문에 1월 7일, 그러니까 내일이 성탄절이며,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다(메리 크리스마스!). 어느 새 '재작년'이 돼 버린 기억을 잠시 떠올리며, 성탄시를 옮겨놓고 이미지들을 띄워놓는다(아래의 사진은 역시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데릭 월코트와 브로드스키. 월코트의 수상작은 <오메로스>(고려원, 1994)이다).

1987년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이오시프 브로드스키(1940-1996)는 성탄절에 관한 시들만으로 시집 한 권 분량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거의 해마다 성탄을 기념하는 시들을 썼으며, 그가 쓴 성탄시들이 대략 20편 정도 된다. 17세 때부터 시 번역(주로 영시 번역)을 하면서 습작을 겸했던 이 마지막 러시아 시인이 (노동을 하는 대신에) 시를 쓴다는 이유로 고발되어 재판을 받고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 되는 것이 1964년이다(예외는 예외로서 대우를 받는다). 그리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는 것이 1972년이며, 거기서 그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시를 쓰고(짐작에 영시인으로서의 그는 존 단과 T. S. 엘리엇 계보에 속한다) 강단에서 시를 강의한다(나보코프가 러시아 망명문단의 가장 탁월한 소설가였다면, 브로드스키는 가장 재능있는 시인이었다).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1988년에서야(그러니까 노벨상 수상 이후에서야) 비로소 그의 시집들이 러시아에서도 공식 출간되며, 1992-97년 사이에 4권짜리 전집이 출간됐고, 현재는 2권에서 7권짜리까지의 다양한 전집들이 나와 있다. 그리고, 뛰어난 에세이들과 두꺼운 인터뷰집들도. 한국에서 그가 소개된 것도 물론 노벨상 수상 직후이다. 기억에 두 권의 번역 시선집, <소래 없는 노래>(열린책들), <겨울물고기>(정음사)가 (부랴부랴) 나왔고, 나중에<아름다운 시대의 종말>(문학사상사)인가란 또 다른 시집이 번역/소개됐다(제목에 20세기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안정효가 옮긴 그의 에세이집<하나 반짜리 방에서>(고려원)도 나왔는데, 이 책이 노벨상 수상 이전에 나왔는지 이후에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번역시집들이야 대개 그렇듯이 독서용이라기보다는 장서용이기 때문에(겨울 물고기란 시 정도만 인상에 남는다. 우리말로도 시였기 때문에), 브로드스키가 우리에게 소개는 되었지만,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정말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는 다만, 노벨상 작가/시인으로, 고상한 상품으로 잠시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아무 말도 건네지 않고 지나가버렸던 건 아닐까? 이젠 브로드스키를 전공한 러시아문학도들도 없지 않으므로(두엇 된다) 그의 작품세계가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물론 읽기가 쉬운 건, 인터뷰와 에세이, 그리고 시집 순이다).

 

브로드스키에 대한 문단들을 쓰면서 CD로 나와 있는(국립문학박물관에서 제작한 것으로 16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낭송하고 있는데, 1시간이 좀 안되는 분량이다) 그의 시낭송을 오랜만에 들었는데, 얼핏 들으면 독일시를 낭송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약한 비음이 많이 섞여 있는데, 호흡기쪽에 문제가 있지 않았던가 싶다). 하여간에 그의 시들을 읽을 때는 그의 목소리를 참조하여, 그의 목소리로 읽게 될 것이다(이게 포노센트리즘음성중심주의이다. 형이상학에서뿐만 아니라 시 읽기에서 음성중심주의는 불가피하다). 그렇게 한번 시험 삼아 읽어본다. 그가 23살의 성탄절을 기념하여 쓴 시<1963년의 성탄절>(1964년 1월에 완성한 걸로 돼 있다)인데, 제목을 직역하면 그냥<성탄 1963>이다. 그러니까 이때의 성탄(聖誕)은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절이 아니라, 기원 1년, 아기 예수의 탄생일을 가리킨다. 데리다의 표현을 빌면, 성탄절은 이 성탄의 반복(불)가능성에 근거한다. 아래는 1960년대말의 브로드스키.

 


전체 12행 중 마지막 4행은 이렇게 돼 있다(첫 4행을 반복/변주하고 있는데, 시 분석 시간이 아니므로 이런 자세한 내막은 생략한다. 그러니까 이 시의 1/3만 읽도록 한다. 일종의 맛보기로). 물론 (러시아어의) 키릴 알파벳으로 읽힐 수는 없기 때문에, 로만 알파벳과 우리말로 음역한다(굵은 글씨에 강세를 주어 읽으면 된다).


Volkhby prishli. Mladenech krepko spal.

Krutye svody jasli okruzhali.

Kruzhilsja sneg. Klubilsja belyj par.

Lezhal mladenech, i dary lezhali.

 

발흐 쁘리슐리. 믈라제네츠 끄렙까 스.

끄루띄예 즈슬리 아끄루좔리.

끄루쥘샤 스. 끌루샤 벨르이 르.

믈라제네츠, 이 다리.


이게 일단 무슨 뜻인가를 보이기 위해서 (대충 직역해본) 영역과 우리말 번역을 제시한다.


Magicians had come. A Baby was sleeping fast.

Round arches surrounded the trough.

Snows were swirling. White vapor was whirling.

The Baby was lying, and the gifts were laid.

 

동방박사들이 왔다네. 아기 예수는 곤히 잠들어 있었네.

둥근 아치의 기둥들이 구유를 둘러싸고 있었네.

눈들이 원무(圓舞)를 그리고, 하얀 입김이 맴돌았네.

아기 예수는 누워 있고, 선물들이 놓였다네.

 


세 명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점치고서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요셉과 마리아에게 선물을 증정했다는 얘기는 성탄과 관련하여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그 동방박사가 러시아어로는 볼흐브(Volkhv)인데, 마법사/점성술사라는 뜻이다(물론 이 경우는 좋은마법사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magician이라고 옮겼는데(실제로는 어떻게 옮겨지는지 알지 못한다. 영어 성경을 읽은바 없기 때문에), 이게 우리말로 박사인 것이 재미있다. 이런 용례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면, 박사는 모름지기 별점도 볼 줄 알고, 제법 마법도 부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하니, 우리 주변엔 엉터리박사들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옆길로 잠시 새는 얘기지만, 사실 박사(博士)란 말의 어의(語義)는 널리 아는 사람이다(넓을 박이니까). 그런데, 그 박사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1)대학에서 수여하는 가장 높은 학위. 또는 그 학위를 딴 사람. (2)어떤 일에 정통하거나 숙달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이런 박사의 줄임말이 이다. 내가 어제 김박, 이박하고 저녁을 먹었지.에서 김박’‘이박이 거기에 해당한다. 그럼, 쿠웨이트 박도?). 그러한 제도적인/비유적인 정의에서 나는 넓을 박의 원형을 발견하지 못하겠다. 어떤 일의 전문가를 박사라고 칭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요즘의 박사들은 밤하늘을 쳐다보는 대신에 한 우물만 판 사람들을 가리킨다(해서,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그러했듯이, 별만 쳐다보고 다니다가는 그런 우물에 빠지기 십상이다. 요즘은 철학 전공자들도 밤하늘을 쳐다보기보다는 우물이나 파지만).


그러니까 요즘 쓰는 박사라는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가 들어가 있다. 널리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 아는 사람, 다르게 말하면, 좁게 아는 사람박사이니까 말이다(가령 협사(狹士)가 아니라). 해서 이러한 추세에 따르자면, 널리 아는 박사는 박사로서 의심스러운 사람이며, 척척박사는 사이비-박사의 별칭이다. 좁게 아는 사람으로서의 진짜 박사들은 보통 자신의 무지를 용맹정진에의 표식 혹은 부산물로 간주하는바, 이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이 전공 타령이다(이 전공에는 내 전공남의 전공이 있으며, 서로간에 간섭을 안 하는 것이 예의이다).

 


전공(專攻)이란 말의 어의는 오로지 (하나만) 친다이다(더 리얼하게 말하면, 한 놈만 족친다). 여기서 친다(攻)란 말을 보다 친근한 말로 바꾸면 물고 늘어지다가 될 것이다. 즉, 전공이란 자기가 물고 늘어지는 한 가지를 가리킨다. 가령, 연애가 전공인 사람은 연애만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다. 연애(戀愛)가 뜻하는바, 밤낮으로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즉, 사모/사랑에 눈먼, 연애에 눈먼 사람이다. 거기서 알 수 있는바, 오로지 하나만을 물고 늘어지기의 가능조건은 눈멂이다. 한 우물 파기의 전제조건 또한 눈멂이다. 오호, 두더지들! 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진짜 박사들, 곧 두더지-박사들이 주로 하는 일이란 자기 앞가림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들은 자기 앞가림을 위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을, 세상을 근심하며 살피는 눈을 찌른 이들이다. 보고 있지만 보지 않기 위해서, 알고 있지만 모른 체하기 위해서, 혹은 알아야 하지만 알지 않기 위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이 두더지-박사들과 대조되는 것이 마법사/점성술사로서의 동방박사들이다. 그들은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감하고 사막의 먼 길을 찾아온다. 예루살렘의 한 허름한 마구간까지(우리는 흔히 마구간이라고 하는데, 러시아에서 알게 된 거지만 동굴이라고도 있다. 마구간이 동굴에 있었다고 하면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탄생, 곧 성탄(聖誕)을 축하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용한 브로드스키의 바로 앞 시구에 따르면, 바로 이 날 밤부터 삶의 계산이 시작되었다(쥐즈니 스트 나취짜 스 에또이 취). 여기서 삶의 계산(zhizni schet)라는 건 브로드스키의 고유한 표현인데, 영어로 하면 account of life정도가 될 듯하다. 그건 무슨 뜻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서력(西曆)의 시작이 바로 이 기원년, 즉 애노 도미나이(A.D.; Anno Domini)로부터가 아닌가. 그러니까 아기 예수가 탄생한 바로 그날, 바로 그 해로부터 삶의 카운트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말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 카운트가 시작된 것이 바로 2004년 전이고 오늘이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시간을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관습을 고려해본다면(이건 거의 관습법이다), 성탄일이 갖는 에포크(epoch)적 의미를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성탄절은 그런 에포크적 계기의 반복(불)가능성을 표시한다.


일상적으로도 성탄절인 25일부터 31일까지는 한 해의 마지막 한 주이다. 해서 한 해의 계산(=어카운트)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한 해의 손익을 계산하고(무얼 잃고 건졌는가? 누굴 차고 누구한테 채였는가?), 몇 점짜리 한 해였는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걸 좀 좀스런 차원이라고 한다면, 좀 거창하게는 인생/인류의 구원에 대해서 계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지나온 나/우리의 생애가 구제/구원 받을 만한 것인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삶의 계산은 복합적이며 복잡하다(왜 아니겠는가? 하나부터 세기 시작했지만, 벌써 2004이고, 곧 2005가 되는데!). 성탄일이 갖는 이러한 에포크적 계기는 현상학적 에포케(epoche), 곧 판단중지의 계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시간의 원점이면서 계산의 영점이기 때문이다. 그걸 브로드스키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의 시구를 다시 읽어보자. 이번엔 반복되는 소리에 주의하면서.


발흐븨 쁘리슐리. 믈라제네츠 끄렙까 스빨.

끄루띄예 즈보듸 야슬리 아끄루좔리.

끄루쥘샤 스녝. 끌루빌샤 벨르이 빠르.

리좔 믈라제네츠, 이 다릐 리좔리.


여기서 반복되는 소리인 끄루(끌루)이란 뜻의 러시아어 끄룩(krug)과 어원을 같이한다. 그러니까 기의(시니피에)상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기표(시니피앙)/소리상으로는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백코러스나 백댄서처럼). 그걸 나는 둥근(아치), 원무(를 그리고), (돌았네)라는 식으로 옮겨봤지만(원무를 그리다, 맴돌다는 원래 소용돌이치다란 동사를 옮긴 것이다), 그것은 소리의 번안일 뿐이지 번역은 아니다. 시에서는 음향적인 내용이 논리적인(=로고스적) 내용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시의 번역가능성은 동시에 번역불가능성이다. 아니, 그 불가능성을 옮기는 것이 시의 번역이다. 다행히, 시에는 그런 음향적인 내용 외에도 논리적인 내용이 가미가 되며, 그걸 옮기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인용한 대목의 중간 두 행을 보자.


둥근 아치의 기둥들이 구유를 둘러싸고 있었네.

눈보라가 원을 그리고, 하얀 입김이 맴돌았네.


여기서 둥근 아치와 (마구간의) 구유는 의미론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는 것들이다(즉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것이다). 둥근 아치가 사원/성당(聖堂)의 배경이라면 구유는 마구간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치들이 구유를 둘러싸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시인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마구간을 성당화한다. 이것이 소위 성체화(聖體化; transubstantiation)이다.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화되는 것이 바로 성체화이다(성체화는 나의 번역이고, 신학에서 뭐라고 번역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것이 기적아닌가? 마구간이 성소(聖所)가 되는 것 말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 가져온 이 기적은 바다를 가르는 식의 모세의 기적과는 다르다. 모세의기적이 반복적인 일상에 날벼락을 가져오는/내리는 것이라면, 예수의 기적은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즉 무의미한 삶이 어느 순간 의미 있는 삶으로 전도되는 것이다(즉, 땡전 한푼 없던 삶이 뭔가 의미깨나 있는/있을 삶으로 카운트되기 시작하는 것). 이를 테면, 그것은 기적 없는 기적(miracle without miracle)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그리고 그의 삶은 그러한 기적, 기적 없는 기적의 가능성을 지시한다.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니.라는 식의 포교 문구를 나는 그냥 그런 식으로 이해한다(참고로 말하자면, 불경스럽게도 나는 신도 내세도 구원도 믿지 않지만, 시는 믿는다. 브로드스키가 보여주듯이 시에서도, 그리고 문학에서도 성체화의 기적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구원 없는 구원 말이다. 여보게, 예수 가라사대, 이 마구간 같은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군! 여기가 성당이요, 천국이래. 아니, 궁전이고, 타워 팰리스래! 그래요? 거기도 마구간이래요?

 

이어지는 행에서 시인은 눈들이 원무를 그리고, 하얀 입김이 맴돌았네.라고 쓰는데, 눈들은 아마도 천사들을 대행하는 듯하다(하얀 입김은 아기 예수의 여린 입김일까?). 그런데, 어인 눈일까? 원래의 배경에서라면, 즉 예루살렘에서라면 눈보라 대신에 몰아쳐야 할 것은 모래바람 아닌가? 여기서 힌트를 주는 것은 제목의 1963이다. 즉 1963년에 젊은 (자칭) 시인 브로드스키가 놓여있는 공간, (눈보라 치는) 레닌그라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참고로, 1960년대 러시아시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옙투센코나 보즈네센스키 등의 체육관 시인들이 한쪽에 위치하고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레닌그라드파라 불린 언더그라운드 시인들이 있었는바, 안나 아흐마토바가 이들의 대모(大母)였으며 브로드스키는 이 후자에 속한다. 그는 전자의 시인들을 혐오했다).


해서, 마구간 바깥에 눈들이 원무를 그린다(눈보라의 소용돌이가 일어난다)는 배경설정은 공간적인 오버랩이면서 시간적인 오버랩이다. 그것은 1963년이란 시간을 기원년의 시간으로 성체화한다. 그런 식으로 고작 두 행을 가지고서 시는 마구간을 성소로, 그리고 1963년을 그리스도의 시간(in the year of our Lord)으로 전환시킨다. 이것이 시의 기적이며, 이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기 예수의 탄생이다. 그러니, 브로드스키가 해마다 성탄에 관한 시를 쓰고자 했던 것은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인류 역사상 그만한 이벤트를 어디에서 또 찾을 수 있겠는가?


예수의 탄생을 축하/축복했던 우리의 동방박사들은 그런 의미에서 브로드스키의 선조(先祖)이자 시인들이다. 그들이 어떤 축원의 말을 남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에서는 그들이 남긴 선물이 기록돼 있다. 시의 마지막행이다.


아기 예수는 누워 있고, 선물들이 놓였다네.

 


원시에서 누워 있다’‘놓여 있다는 같은 동사이며, 이 시행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구문적으로도 동일하다. 그것이 암시적으로 뜻하는 바는 아기예수=선물이라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사건이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뜻하는 선물이었다면, 동방박사들은 인간을 대표해서 거기에 답례를 했던 것이다(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이 먼저 선물한 것이 아니다). 이 선물의 교환이 신과 인간 사이의 비대칭적 교환이다. 그것이 비대칭적인 것은 아기 예수(단수)와 선물들(복수)의 교환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마지막 시행을 다시 읽어보자.


리좔 믈라제네츠, 이 다릐 리좔


이 시 전체가 원환적인 구조로 돼 있다고 언급했지만, 이 마지막 시행도 원환적이다. 같은 소리로 열리고 닫히기 때문이다. 보통 원(환)은 완전성과 영원성의 상징이다. 그러니 성탄에 관한 시가 그러한 원환적 구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반면에 이 시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내 생각에) 아기 예수의 부모, 즉 요셉과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 점이다(앞부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좀 특이한 일이다(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이게 왜 그럴까를 캐기 위해서는 아마도 브로드스키의 다른 시들과 함께 성탄과 관련한 시와 그림들을 좀더 뒤적여봐야 할 것이다. 그런 게 ‘공부’이긴 하지만, 내가 당장에 해치울 수 있는 공부는 아니다. 그런 공부를 하기에는 돈깨나/시간깨나 부족하다. 현재의 나로선 말이다...

 

 

06.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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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7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1-07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사람의 운명이란 게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지도교수님의 '재미있는' 강의에 빠지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게 '경지'인지 '지경'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돌바람 2006-01-1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한 편의 조각을 이리 감상하는 것도 참 특별한 경험입니다. <겨울 물고기>랑 <하나도 채 못되는>(성원, 한벙운 옮김, 1987)만 맛보고 드는 단순한 생각 하나.
브로드스키는 1972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의 자신을 이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도 나는 분명하고 명확하게 그들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 얘기는 내 어린시절의 향수 때문이 아니라 내가 떠나온 모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지금이 아닌 그 당시 그들의 생활 속에는 지금의 내가 어린 나이로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잘 기억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 그러나 지금의 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그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더우기 지금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아! 지금이 미국과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데, 그리고 이것이 내가 그들과 우리의 방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인용한 부분에서 '그들'은 시를 쓴다는 이유로 그를 감옥에 쳐넣은 그의 조국일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는 그를 기억하는 부모이자 페테르부르크인들(레닌그라드인이 아닌.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일 수도 있겠지요. 포커스를 맞춰서 본다면, 브로드스키는 예수를 부모의 기억과 예수가 예수로서 자신을 바라보는(1973년 이후의 브로드스키처럼) 공동의 기억 공간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예수가 예수가 되려면 예수가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끼워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이 내(예수)가 그들(요셉과 마리아)과 우리의 방(성탄??)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

이건 좀 위험한 생각이지만, 예수가 예수가 되려면 그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방박사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깨달은 이후(브로드스키에게는 1973년 이후가 되겠지요) 바라보는 자신의 탄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 인간적인 예수이지요. 위의 인용구는 브로드스키가 그의 에세이에서 꾸준히 강조하는 맥락이라는 점에서 인용한 것이어요.^^

*에세이만 보고 끼워맞추다 보니 기냥 억측이 난무합니다. 시집이 없으니 으그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요. 아, 하나 더.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도 쬐끔 맛보여주심 안 되나요?

로쟈 2006-01-1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미하며 읽으셨군요.^^ 브로드스키의 에세이까지 소장하고 계신 분은 드물게 만나는지라 반갑습니다. 제가 분석한 시는 청년 브로드스키의 소품이고, 같은 테마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기 때문에 두루 살펴봐야 종합적인 의견을 제출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흐마토바의 시도 읽으신 듯한데,'푸슈킨과 아흐마토바'란 주제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흐마토바 시 읽기가 언제 가능할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돌바람님의 주문을 한켠에 담아두고 있겠습니다...

돌바람 2006-01-11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청년 시절의 시로군요. 헛다리 짚었네요.
아흐마토바의 시는 브로드스키를 통해 부분 인용된 것들만 보았답니다.
 

2006년의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은 지난해 12월에 '막차'로 출간된 책들이다. 그래도 새해의 기분을 좀 내기 위해 첫번째 책만큼은 2006년에 나온 책으로 꼽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의 <자서전>(미메시스, 2006)이 그것이다. 원저는 'An Autobiography'(1943).

건축 분야에 문외한인지라(나는 아직 전세집에 산다) 나로선 저자의 이름이 생소한데,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구겐하임 미술관'이 그의 작품이란 소개를 보고서야 대충 지명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위의 사진 참조). 그는 "70여 년 동안 천여 점에 달하는 건축 작품을 남긴 라이트는 많은 건축가들이 20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손꼽는 인물"이며, "이러한 평가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현재 그에 관련된 논문과 저작만도 2천여 편에 달한다"고 한다.

소개를 좀더 따라가보면, "그는 살아 있을 때부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탁월한 디자인과 독창적인 이론에 있어서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파란만장하였기 때문이다. 책은 이 위대한 건축가가 자신의 삶과 사랑, 그리고 건축에 관한 모든 것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어나간 기록으로, 건축이 자연과 소통하고 융합해야 한다는 그의 '유기적 건축 이론'과 혁신적인 양식들이 과연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라이트 자신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건축과 생애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 자료가 함께 실려 있으며, 라이트의 작품들을 연도순으로 정리한 별책을 첨부하여 그의 작품 세계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설명보다 사실, 나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위대한 건축가는ㅡ필연적으로ㅡ위대한 시인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순간과 나날과 시대의 독창적인 해설가여야 한다"는 라이트의 말이다. 자신이 '건축업자'나 '건축기술자'가 아니라 '건축가'라는 걸 단 두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저자'로서의 자격도 충분하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의 자서전은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1장이 '가족과 친구들', 2장이 '일', 그리고 3장이 '자유'이다. 92세의 장수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만하면 남부럽지 않은 생애이다.

Annunciation Greek Orthodox Church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 정도만 잠시 감상해보자. 수태고지 그리스 정교사원(Annunciation Greek Orthodox Church)이라고 돼 있는데, 1956년작이고 위스콘신주의 와우와토사(Wauwatosa)에 있다고 한다. 세상은 넒고 사람뿐만 아니라 건축도 가지가지라는 걸 새삼 알게 해준다.

 

 

 

 

로이드 라이트에 대해서는 작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자연을 품은 공간 디자이너>(살림)라는 문고본 소개서가 이미 나와 있다. 검색해 보면 품절된 책이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태림문화사, 1998)란 소개서도 있고. 교양을 조금 더 확대하자면, 20세기 건축에 대한 안내서들을 몇 권 꼽아볼 수 있겠다. 클라시커 시리즈의 <20세기 건축>(해냄, 2002)부터 김석철의 <20세기 건축>(생각의나무, 2005)까지. 나는 주로 '사유의 건축'에 관심이 있지만, 언젠가 전세살이를 좀 면하게 되면 이런 건축'작품'들에 대한 견문도 넓혀보아야겠다.

 

 

 

 

한편, 로이드 라이트가 미국 최고의 건축가라면, 스페인이 자랑하는 최고의 건축가는 단연 안토니 가우디(1852-1926)이고, 이 가우디만큼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 그의 건축들만큼이나 특이한 '가우디'란 이름부터가 기억을 용이하게 할 뿐더러 이미 그에 관한 다수의 책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건축관련서를 읽는다면, 가장 먼저 손에 들어볼 만한 책들인데 이 분야 번역서들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평은 들은 바 있어서 미뤄두고 있었다. 건축 분야에도 주변에 전문 리뷰어가 있었으면 싶다.

  

 

 

 

한편, 철학이란 게 '생각의 집짓기' 혹은 '개념의 건축술'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만큼 '건축과 철학'이란 주제는 유구한 주제이다. 보드리야르의 <건축과 철학>(동문선, 2003), 데리다 등이 쓴 <공간의 논리>(현대건축사, 2001), 그리고 라이크만의 <들루즈건축>(접힘과펼침, 2004) 등이 그것인데, 공통점은 모두 번역이 미덥지 못하다는 것. 그간에 건축 분야의 책들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의 집짓기'란 표현을 처음 본 건  김윤식 문학선으로 나온 <작은 생각의 집짓기>(나남, 1985)에서였다. 대학 1학년 때 읽은 듯한데, 그맘때 읽은 책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건 박이문의 <시와 과학>(일조각, 1975). 철학과 사르트르에 대한 열정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이를 테면, '이문유치원' 혹은 '이문초등학교'?). 

지난 연말에 읽은 박이문 선생의 '자서전격' 저작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미다스북스, 2005)에 실린 저작 목록을 보니까 시집을 제외한 30여권의 책들 가운데 적어도 20권 이상의 책들을 사서 읽었다(나중에 박이문론을 써도 되겠다). 그런데, 이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철학적 여정의 피날레는 '둥지의 철학'이 될 거라고 한다. 아직 저자의 구상이 최종적인 형태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경우에 '둥지로서의 철학'이 실용주의적 처세술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혹은 우리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 모두 '새'가 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새-되기? 새됐어?). 혹은 (애독자로서) 우려된다. 허무주의자의 '행복'이 부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어쨌든 건축가의 자서전을 제일 처음 꼽은 것은 새해를 설계하는 시기에 세기의 건축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설계했었나 들여다보는 것도 유익한 참고가 될 듯해서이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미국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의 <낯선 육체>(새움, 2006). 아직 알라딘에는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올라와 있지 않지만, "알폰소 링기스는 현상학과 실존주의, 현대철학,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발표하고 있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이다." 이 사실을 내게 알려준 건 책을 간행한 새움출판사쪽이다(표지만 봐서는 무슨 '사진집'류가 아닌가 착각하겠다). 보도자료를 보내주셨는데, 반갑게도 나의 관심분야와 맞아떨어지는 책이기도 해서 주저없이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알폰소 링기스'란 이름이 다소 생소한데, 조금 검색해보다가 나는 무릎을 쳤다. 레비니스의 <전체성과 무한>(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의 영역자인 것이다! 소개에 따르면 그는 "레비나스의 윤리학을 미국에 소개하고 탁월하게 주해한 선구자로 그의 사유를 계승 발전시킨 학자이다. 링기스는 또한 메를로-퐁티, 클로소프스키 등의 주요 저서들을 영역하고, 그들의 이론을 심화시키는 한편 비판적으로 경쟁하면서, 현대를 사는 육체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사유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낯선 육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링기스의 저서로 삶정치(biopolitics)에 대항하는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탐구를 담고 있다."(나는 '생체정치'라고 옮기는 'biopoltics'에 관한 책으론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안다. 조만간 '생체정치'는 국내 인문학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그러니 한번 읽어봄 직하지 않은가.

 

 

 

 

세번째 책은 베른트 하인리히의 <까마귀의 마음>(에코리브르, 2005). 지난 연말에 나온 책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책인데(표지가), 600쪽이 넘는 분량이니까 '까마귀'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들 가운데 가장 두껍지 않을까 싶다(일단 그게 마음에 든다). 저자는 미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라고 하며, 책은 그의 대표작이라고(그의 책으론 <숲에 사는 즐거움>, <동물들의 겨울나기>가 더 소개돼 있다). 

소개를 잠시 옮겨본다: "하인리히는 미국 동북부 메인 주 숲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사색하며 지내는 현장 학자이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인 '도래까마귀'는 1980년대부터 근 20년간 저자가 여러 개체들을 자식처럼 길들이며 함께 지내왔던 새이다. 저자는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의 생태를 섣불리 몇몇 개념으로 추상화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일궈나가는 동물들의 생활상과 행동 하나하나를 충실히 묘사해간다.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은 그런 실증적인 관찰과 체험의 기록이다. 그런 단단한 기초 위에서 저자는 비로소 조심스럽게 자신이 관찰한 한 숭고한 새의 마음의 세계, 즉 그들의 의식과 지능, 다른 포식동물과의 공생, 놀이, 인간과의 우정, 가족애를 긍정한다." 요컨대, 까마귀란 종의 '평전'쯤 되겠다.

저자가 동물행동학자'라고 돼 있는데, 사실 '동물행동학'의 역사가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콘라트 로렌츠, 니코 틴버겐, 폰 프리슈가 그 원조들이기 때문이다. 이 중 대중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는 역시나 <야생거위와 보낸 일년>(한문화, 2004)의 저자 로렌츠이며(창가시고기 연구로 유명한 틴버겐은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이자 저술가 데즈몬드 모리스의 스승이기도 하다. 프리슈의 전공은 꿀벌들의 의사소통 수단인 춤, 즉 벌춤), '야생거위'에 대한 그의 연구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조류의 '각인' 행동을 발견함으로써 유명해졌는데, 그걸 이용해서 그는 거위들의 '어미' 행세를 했다. 사진은 '자녀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 '어미' 로렌츠). 한편, <핀치의 부리>(이끌리오, 2002)는 생태학과 진화론에 걸친 저작이지만, 새를 다룬 책들 가운데 가장 명망이 높은 책이므로 같이 되새겨둔다.

이솝우화의 단골손님이기도 하지만, 문학에서 '까마귀'와 관련해서 내게 떠오르는 이름은 카프카와 포우, 두 작가이다. 카프카란 이름이 체코어로 '까마귀'를 뜻하기도 한다는 카프카(그 경우엔 '까프카'라고 해야겠다)와 "Nevermore!"란 후렴구가 유명한 시 '까마귀(The Raven)'(1848)의 저자 포우 말이다. <까마귀>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And the raven, never flitting,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
On the pallid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And his eyes have all the seeming of a demon's that is dreaming,
And the lamp-light o'er him streaming throws his shadow on the floor;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 - nevermore!

그러고도 갈가마귀는 날아가지 않고 아직도 앉아 있었네.
나의 침실문 바로 위 팔라스의 창백한 흉상 위에 아직도 앉아 있었네.
그의 두 눈을 꿈꾸고 있는 악마의 온갖 표정을 담고-
새를 흝어내리고 있는 등잔불빛이 마루 위에 그의 그림자를 던져주는데
마루 위에 누운 채 떠돌아다니는 나의 영혼은 그 그림자를 떠나서는
두 번 다시 들리우지 못하리라- "이젠 끝이야"




 

 

한데, 책소개는 아직 덜 끝났다. 포우 얘기도 나온 김에 꼽는 책은 '미국 정신의 르네상스를 이끈 우정'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대화>(이레, 2005). 두 사람의 이름은 지난주에 정현종 시인의 글들을 읽다가도 만날 수 있었는데, 사실 나는 <자연>의 저자이면서 초월주의/초절주의 운동가/철학자 에머슨과 <월든>과 <시민 불복종>의 저자 소로우 간에 어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신간의 제목이 눈에 띈 건 그런 배경 때문이다.   

소개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초월주의 운동을 이끌던 에머슨은 1837년 자신보다 열네 살이나 어린, 하버드 대학에 다니던 스물한 살의 고학생 소로우를 만난다. 서로의 환경은 매우 달랐지만 소로우와 에머슨은 곧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소로우가 마흔네 살에 죽을 때까지 우정을 지켰다. 에머슨은 소로우가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게끔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에머슨과 소로우 간의 25년에 걸친 '비밀스런 우정'이 탄생하게 되었고, 책은 그걸 기록하고 있다고.

"지은이는 소로우와 에머슨의 교우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정신사의 두 영웅의 모습을 추적한다. 그가 밝히는 이 둘의 관계는 보통의 친구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경쟁과 협력이 있는가 하면, 사랑과 질투의 시선도 교묘하게 교차한다. 언제나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했던 에머슨이 소로우의 성장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일화, 에머슨이 영국강연 여행을 떠난 9개월 동안 그의 집에서 리디안과 아이들을 돌보는 에머슨의 역할을 하면서 소로우가 겪었던 심리적 갈등도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니까 시간이 나면 일독해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꼽는 책은 저명한 SF작가 아서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옹기장이, 2005). 원저는 'Rendezvous with Rama'(1973)이며, 발표 당시 휴고상, 네뷸러 상, 존 캠벨 기념상, 주피터상 등 주요 SF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번역본은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그렇긴 하나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 그의 소설들을 나는 읽어본 바 없고, 다만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았을 뿐이다.

사실 아서 클라크의 책을 꼽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건 그가 <스타십 트루퍼스>의 저자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3대 과학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떠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아시모프의 대표작은 <파운데이션>이라고들 하지만, 내가 재미있게 읽은 건 그의 자서전, 즉 <아이작 아시모프 자서전>(작가정신, 1995)이다. 1995년 연말에 출간된 그 책을 나는 딱 10년전, 그러니까 1996년 정초에 읽었다(2권짜리를 읽었는데, 미진하게 끝나길래 출판사에다 '이게 끝이냐, 혹 잘라먹은 거 아니냐?'란 항의성 전화까지 한 적이 있다. 출판사 답변은 '그게 다예요'였고, 관심에 감사하다며 다른 책을 한권 보내왔었다.) 그 자서전이 현재는 절판된 듯하여 아쉽다(내 책은 아직 버리지 않았으니까 어디 박스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하튼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라면 이 '3대 작가'들의 세계에 한번쯤 빠져보시길.

 

 

 

 

하지만, SF로 죽일 시간은 부족하면서 한편으론 '진지함'은 남아도시는 분들은  수전 그린필드의 <미래>(지호, 2005)나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를 일독해보시길. 전자는 원제가 'Tomorrow's People'(2003)이고(부제는 "내일의 과학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후자는 원제가 'The Future of Life'(2002)이다. 한해의 시작때면, 올 한해뿐만 아니라 더 먼 장래까지도 한번쯤 내다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런 인지상'정(情)'에 '지(知)'를 보태는 데 참고할 만한 책들이겠다. 비슷한 성격의 책으론 보다 중립적인 것으로는 존 브록만(브로크만)이 엮은 <앞으로 50년>(생각의나무, 2002)도 있다.

오늘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는 이 브로크만과 관련한 기사가 표제를 장식했는데, '새해 아침의 생각'으로 던져진 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란 질문이고, 이건 <디제라티, 디지털 시대의 파워엘리트>(황금가지, 1999),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의 저자/편집자로 유명하다는 과학저술가이자 편집자, 그리고 '세계물음센터'(www.edge.org)의 운영자인 브로크만이 1997년부터 연례행사로 벌이고 있는 연말 이벤트의 일환이라고 한다. 올해가 10번째인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몇몇 스타 과학자들의 대답을 옮겨와본다(*최근에 책으로 출간됐다. <위험한 생각>(갤리온, 2007)이 그것이다).

Q. 당신이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이 있다면?  

브라이언 그린(이론물리학,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주의 구조>(승산))=여러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생각, 우리는 ‘우주들’(multiverse)이라 불리는, 광대한 우주(universe)의 집합 가운데 하나일 뿐일지 모른다는 생각.

 

 

 

 

리처드 도킨스(생물학,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조상 이야기>(까치))=차가 고장나면 차를 탓하는 것처럼 잘못된 비난과 책임 덮어씌우기는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더 진실에 가깝게 분석하는 일을 그만두고 지름길로 가는 수단으로 만들어낸 의도적 허구라는 게 나의 위험한 생각이다.

 

 

 

로드니 브룩스(로봇공학, <로봇 만들기>(바다출판사))=내가 가장 우려하는 바는 비생명체가 생명체로 바뀌는 자발적 변형이 극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것이 (지구에서) 단 한번 일어났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수십년 안에 그것이 매우 희귀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여러 증거들을 얻는다면 어찌될까. 우리는 우주에서 완전히 외톨이 생명체일까.

 

 

 

 

다니엘 데넷(과학철학, <다윈의 위험한 생각>)=우리는 정보 홍수 속에서 익사하거나 익사하지 않을 것이다. 익사한다면, 우리는 정보 과식에 의해 심리적으로 압도돼 희생될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정보 과잉 앞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익사하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선조들과는 아주 아주 다른 존재가 돼 있을 것이다.

 

 

 

 

로렌스 크라우스(물리학, <외로운 산소 원자의 여행>(이지북))=세계는 근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

 

 

 

 

제레미 번스타인(물리학, ·<오펜하이머>(모티브북))=가장 위험한 생각은 우리가 플루토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왜 작용하며 얼마나 안정적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무한한 미래에 안전하게 저장될 수 있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셰리 터클(심리학, <스크린 위의 삶>(민음사))=컴퓨터 문화 안에서 살며 몇 세대 지나고 나면 시뮬레이션은 완전히 자연스런 일이 될 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진정성은 가치를 잃어 한 시대의 흔적으로 남는다.

 

 

 

 

하워드 가드너(심리학, <체인징 마인드>(재인) <다중지능>(김영사))=나의 위험한 생각은 (인간의) 도덕 정신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 즉 권력욕이나 즉흥적 만족, 적의 절멸 같은 다른 동기들에 의해 도덕정신이 동원되거나 압도될 수 있다는 것.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심리학, <몰입의 즐거움>(해냄) <플로>(한울림))=정치경제가 다른 어떤 가치에 앞서 자유시장을 만능해결책으로 지니고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한 것은 자유시장이 일부엔 해택을 주지만 대다수엔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는 지성적이고 정치적인 사기이기 때문이다.

 

 

 

 

스티븐 핀커(심리학, <빈 서판-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사이언스북스))=평균 능력과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마다 집단마다 유전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다음 십년 동안 위험한 생각이 될 것이다.

 

 

 

 

리처드 리스벳(심리학, <생각의 지도>(김영사))=우리가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존 앨런 파울로스(수학, <수학자, 증권시장에 가다>(까치)·<수학 그리고 유머>(경문사))=‘초자연적 존재는 있을까’ 하는 의문은 진부하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우리는 존재할까’ 하는 물음이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지닌 약간 통일적 실체, 그 이상의 어떤 존재일까.

 

 

 

 

린 마굴리스(생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섬모를 이용해 박테리아는 먹이를 향해 헤엄치고 유해한 가스를 피해 헤엄친다. 뜨거움을 피하고 불빛을 좇는다. 그래서 우리 감수성은 박테리아 조상의 감각 섬모에서 직접 진화했다는 생각, 그래서 박테리아는 우리의 친구나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생각.

 

 

 

 

다니엘 힐리스(물리학, <사이언스 북>(공저, 사이언스북스))=우리 모두가 가장 위험한 생각들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 그 자체.

 

 

 

여기에 나의 가장 위험한 생각을 덧붙이자면,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소개를 올해도 계속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06. 01. 05 - 06.

 

 

 

 

P.S. 연말에 나온 '고전'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재출간된 <아미엘 인생일기>(동서문화사, 2005)이다. "19세기 스위스의 문학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이 40년동안 쓴 일기를 엮은 책"으로 "수양서 성격을 띠고 있는 일종의 사적인 에세이"이며 "인간과 역사에 대한 고민, 개인과 사회에 대한 통찰, 인간 내면에 대한 반성과 고뇌를 받아들이는 한 개인의 치열한 모습을 담고 있다."

"1883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1923년 프랑스에서 다시 발간되어 식민지 쟁탈과 영토분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인간과 생명, 윤리와 도덕에 대한 존엄성이 퇴색되어 가던 혼란기의 유럽에 큰 반향과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완역되어 선보인다"니까 관심을 두어봄 직하다. 1,000쪽이 넘는 분량이기 때문에, 대충 1월부터 슬슬 읽기 시작하면 연말쯤 다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의 인생 40년을 1년 동안 압축해서 살아보는 한 가지 방식이겠다.

그게 좀 지겨우신 분이라면, 새로 나온 입문서 <사드>( 김영사, 2005)로 워밍업을 하신 다음에 <소둠 120일>(고도, 2000)로 빠지시거나 '규방'(<규방철학>)에 묻히시면 되겠다. 요컨대, '맑고 순수한 영혼' 아미엘과 함께 '타락한 영혼' 사드를! 이게 내가 특별히 알려드리는바, 2006년을 또 '갉아먹는' 두 가지 비법이다. 아미엘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사드에 대해서는 간간이 '보고'를 드릴지도 모르겠다. 소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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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06 01:20   좋아요 0 | URL
건축은 잘 아는 분야라고 할 수 없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건축가에요. 스타.라는 말이 어울리는 건축가라고 할까요.
좋은 책 소개받고 갑니다 ^^

로즈마리 2006-01-06 02:15   좋아요 0 | URL
퍼갈게요..^^

Tamino 2006-01-06 03:29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면 로자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로그인 2006-01-06 08:2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이네파벨 2006-01-06 18:54   좋아요 0 | URL
멋집니다.

로쟈 2006-01-07 19:18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2006년 새해의 목표로 세운 것 중 하나는 매주 꾸준히 시를 한두 편씩 읽는 것이다(연말에 책 한권 분량을 묶는 게 멋쩍지 않은 한해를 보내기 위한 한 가지 계획이다). 우연이긴 하지만, 첫주에 내가 읽고자 하는 것은 <성경>의 '시편'(1편)과 20세기 최고 시인으로 꼽히기도 하는 칠레의 거장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초기시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1924)이다.

 

재작년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어서 이를 기념한 평전이 출간됐었고, 그게 작년에 우리에게도 번역/소개된 애덤 펜스타인의 <빠블로 네루다>(생각의나무, 2005)이다. 이왕이면 이전에 소개됐던 네루다의 회고록 <추억>(녹두, 1994)도 재출간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하다(정현종 시인에 따르면,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며 감동적인 회고록을 나는 본 일이 없"다고. 물론 우리 번역본도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며 감동적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해보지 못했다).

 

 

또 연말에는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네루다의 시에 곡을 붙인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알레스뮤직)도 출시되어 막판 분위기를 띄웠다. 경향신문의 소개 기사에 따르면,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남긴 최고의 걸작 ‘모두의 노래’. 그리스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네루다의 시 13편에 웅장하고 애수 넘치는 선율을 입힌 오라토리오 ‘모두의 노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시됐다. ‘예술’과 ‘혁명’이라는 두 깃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았던 거인들이 조우한, 기념비적 음반이다. 테오도라키스는 1973년에 망명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이 음악을 작곡했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초연해 환호를 받았다. 지금 우리가 듣는 ‘모두의 노래’는 초연 당시의 음악을 다시 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그럼 (내겐 생소한) 테오도라키스는 누구인가? "국내 음악팬들은 아그네사 발차의 음반 ‘조국이 내게 가르쳐준 노래들’로 테오도라키스의 선율과 친해졌다. 이 음반에 담긴 ‘기차는 8시에 떠나네’의 멜로디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그의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는 테오도라키스 음악에서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는 민중가곡 1,000여곡, 교향곡 5곡, 발레음악 2곡, 오라토리오 2곡, 오페라 4곡 외에도 다수의 영화음악을 작곡해낸 그리스의 음악적 ‘국보’(國寶)다. 이 음반은 테오도라키스가 직접 지휘하고, 그리스를 대표하는 가수 마리아 파란두리와 페트로스 판디스가 성야곱합창단과 호흡을 맞춘 실황이다. 웅장한 서정미. 특히 마리아 파란두리의 영성(靈性) 넘치는 목소리는 가슴을 파고 든다. 70여쪽에 달하는 해설지에 네루다의 서사시 ‘모두의 노래’가 국내 최초로 번역돼 실려 있다."

 

<모두의 노래>가 번역돼 실려 있다는 얘기에, 그리고 <빠블로 네루다> 평저도 끼워준다는 얘기에 솔깃하여 나는 이 음반(과 책)을 올해의 첫 구입품으로 골랐다. 그런 만큼 스무 살의 청년 네루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다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새해에 읽은 첫번째 시로 고른 것이 억지스럽거나 근거없는 것은 아니겠다. 네루다의 시집에는 '사랑의 시' 20편과 '절망의 노래' 1편, 도합 21편이 수록돼 있는데, 일단 먼저 읽을 것은 첫번째 사랑의 시(Poema 1)이다(이 첫번째 시의 영역본들은 대개 첫 구절인 '한 여자의 육체'란 제목을 달고 있다).(*이후에 30분 정도 쓴 분량을 날려먹었다. 자주 '등록'을 해도 왜 이 모양인지! 다시 쓸 기운/시간이 없는 까닭에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다.)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20살의 청년시인 네루다에게 전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작은 아주 '관능적'이다(아주 노골적으로 에로틱하다). 그가 '에로스의 시인'이고 '디오니소스의 시인'이란 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 이 시들을 쓸 때의 네루다의 모습이 평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한 가운데 사진이다. 맨 왼쪽 사진이 그가 3살 때, 그리고 두번째 사진은 사춘기인 16살 때의 모습이다. 오른 편의 사진들은 장년과 노년의 네루다를 보여준다(노년의 네루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필립 느와레가 연기했던 그 네루다이다). 

 

 

 

 

 

 

 

 

 

<사랑의 시>는 (적어도 책자 형태로 출간된 걸 기준으로 한다면) 내가 알기에 3종의 우리말 번역이 있다. 이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은 정현종 시인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 1989/2007)이다. 하지만 네루다 시선집 형태의 이 중역본 시집에는 <사랑의 시> 4편만이 다른 시들과 함께 번역돼 있다('정현종과 네루다'에 대해서 따로 페이퍼를 쓸 계획이다. 그는 2004년에도 <100편의 사랑의 소네트>(문학동네)를 번역/출간한 바 있다. 탄생 100주년인가를 기념해서 칠레정부로부터 전세계 100명의 시인에게 주어진 네루다 메달을 수상하기도 했고. 차후에 정현종 연구자들이 논문을 쓴다면 가장 자주 들먹이게 될 이름이 아마도 바슐라르와 네루다가 될 것이다).

 

두번째 번역은 영역본이 아닌 스페인어본을 직역한 것으로 추원훈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청하, 1992)가 있다. 절판된 책이라 요즘은 구하기 어려운 시집. 원시집의 시 21편이 고스란히 옮겨져 있는 게 장점이다. 그리고 세번째 번역은 김남주 시인의 옥중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푸른숲, 1995)에 포함돼 있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 특이하게도 김 시인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뺀 스무 편의 말 그대로 '사랑의 시'들만을 옮겨 놓았다. 정현종, 김남주 두 시인의 번역은 영역본에서 옮긴 중역본이다(시 번역에서 원어역이 특별한 권위를 갖는 건 아니다. 번역시도 '시'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특히나).

 

이제 이 시를 읽기 위해서 스페인어 원문과 영역, 그리고 3종의 우리말 번역을 아래에서 나열해놓겠다.

Cuerpo de mujer, blancas colinas, muslos blancos,
te pareces al mundo en tu actitud de entrega.
Mi cuerpo de labriego salvaje te socava
y hace saltar el hijo del fondo de la tierra.

 

Fui solo como un túnel. De mí huían los pájaros
y en mí la noche entraba su invasión poderosa.
Para sobrevivirme te forjé como un arma,
como una flecha en mi arco, como una piedra en mi honda.

 

Pero cae la hora de la venganza, y te amo.
Cuerpo de piel, de musgo, de leche ávida y firme.
Ah los vasos del pecho! Ah los ojos de ausencia!
Ah las rosas del pubis! Ah tu voz lenta y triste!

Cuerpo de mujer mía, persistirá en tu gracia.
Mi sed, mi ansia sin limite, mi camino indeciso!
Oscuros cauces donde la sed eterna sigue,
y la fatiga sigue, y el dolor infinito. 
 

***

Body of a woman, white hills, white thighs,

you look like a world, lying in surrender.

My rough peasant's body digs into you

and makes the son leap from the depth of the earth.

I was alone like a tunnel. The birds fled from me,

and night swamped me with its crushing invasion.

To survive myself I forged you like a weapon,

like an arrow in my bow, a stone in my sling.

But the hour of vengeance falls, and a love you.

Body of skin, of moss, of eager and firm milk.

Oh the goblets of the breast! Oh the eyes of absence!

Oh the pink roses of the pubis! Oh your voice, slow and sad!

Body of my woman, I will persist in your grace.

My thirst, my boundless desire, my shifting road!

Dark River-beds where the eternal thirst flow

sand weariness follows, and the infinite ache.

***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나를 내맡길 때, 너는 세계처럼 벌렁 눕는다.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인 내 몸은 너를 파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활의 화살처럼, 내 投石器의 돌처럼 벼렸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放心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둔덕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끝없는 내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河床이 흘러내리고,

피로가 흐르며, 그리고 가없는 슬픔이 흐른다.(정현종, 1989)

***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너를 내어주는 모습은 꼭 이 세상을 빼어 닮았구나.

우악스런 농사꾼 내 몸뚱이는 너를 파헤쳐

대지의 밑바닥에서 아들놈이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은 내게서 도망쳤고

밤은 엄청난 침략으로 내게 쳐들어왔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너를 벼리었다 무기처럼,

내 활에 재어진 화살처럼, 내 투석기(投石機)의 돌멩이처럼.

그러나 복수의 시간은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가죽의, 이끼의 갈증나고 단단한 젖의 몸.

아 젖가슴의 사발들! 아 넋나간 눈동자!

아 음부(陰部)의 장미들! 아 너의 느릿한 슬픈 음성!


내 여인의 몸이여, 나는 네가 상냥하길 고집하리라.

나의 목마름, 끝없는 나의 번민, 막막한 나의 행로여!

영원한 목마름이 계속되는 어두운 수로(水路)들,

끊이지 않는 피로, 그리고 한없는 고통.(추원훈, 1992)

***

여자의 육체, 하얀 언덕, 하얀 허벅지,

몸을 맡기는 네 모습은 이 세계를 닮았다

거칠기 짝이 없는 농부의 육체가 너를 파헤쳐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세차게 솟아나오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고독했다 새들은 도망치듯 날아가버리고

침략처럼 밤은 그 막강한 힘으로 나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남기 위해 너를 단련시켰다 무기처럼

화살처럼 투석기의 돌처럼


이제 복수의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피부와 이끼와 우유로 만들어진 갈증과 욕망의 육체여

오 가슴의 두 컵이여! 오 딴전을 부리고 있는 두 눈이여!

오 불두덩의 장미여! 오 느리고 슬픈 목소리여!


나는 너의 매력에 사로잡히리라, 오 여자의 육체여

이 목마름, 이 끝없는 욕망, 이 정처 없는 나의 길이여!

영원한 갈증이 흐르고, 피로가 흐르고

밑 모를 고통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이여(김남주, 1995)

 

***

 

그럼, 이제 시를 읽어보도록 하자. 이 시는 전체 4연 16행으로 이루어져 있고(각 연의 2, 4행이 각운을 맞추고 있는 행이다), 의미상으로도 네 개의 마디로 돼 있다. 시제상으론 '현재-과거-현재-미래' 순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1연과 3연이 현재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면, 중간에 끼인 2연은 일종의 플래시백이다. 그럼 1연의 내용은 무엇인가? 청년 네루다는 비유적으로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한 여자의 육체'에 대해서. 

 

이 육체에 대한 묘사를 세 번역본은 각각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 "여자의 육체, 하얀 언덕, 하얀 허벅지,"로 옮겼는데(영역은 "Body of a woman, white hills, white thighs,") 이 대목의 경우 나로선 정현종의 번역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여기에선 '여자' 일반이 아니라 내 앞에 누워있는 '한 여자'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한 여자의 육체'는 여기서 지형학적인 비유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것은 3-4행의 비유를 예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즉, 1연의 묘사를 따라가자면, 흰 언덕들(아마도 가슴 혹은 엉덩이)과 흰 넓적다리(허벅지)를 가진 한 여자가 지금 마치 '세계(=대지)'처럼 누워있고('세계로서의 한 여자'라는 비유는 흔한 듯해보이지만 대담한 것이다), 그 '대지'를 이제 파고들어가 새로운 생명을 싹튀우게 하려는 '나'는 농부에 비유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야만인이며 시골사람'(정현종)보다는 '우악스런 농사꾼'(추원훈)이나 '거칠기 짝이 없는 농부'(김남주)가 '나'에 대한 기술로서 보다 타당하다. 1연에서 핵심이 되는 비유는 '대지(=한 여자): 농부(=한 남자로서의 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3-4행의 번역으로는 추원훈의 것을 고르고 싶다. 그런 식으로 1연을 재조합해 보면 이렇게 된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 흰 허벅지,

네가 나를 내맡길 때, 너는 이 세계처럼 벌렁 눕는구나.

우악스런 농부인 내 몸뚱이는 너를 파들어가고

대지의 밑바닥에서 아들놈이 튀어나오게 한다.

 

 

원시의 1행은 "꾸에르뽀 데 무헤르, 블랑까스 꼴리나스, 무슬로스 블랑꼬스(Cuerpo de mujer, blancas colinas, muslos blancos)" 정도로 읽히는 듯한데, 여기서 주된 리듬을 만들어내는 건 '-아스 -아스, -오스 -오스'라는 유사운의 반복이다. 시번역에서 메시지의 전달 못지 않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리듬의 전달이다(사진은 'blancas colinas'나 'muslos blancos'로 검색된 이미지).

 

" 여자의 육체, 덕들, 적다리"라는 정현종의 번역은 '한 - 흰 -흰'이라는 유사운의 반복과 '언/넓'에서 '어'운의 반복 등으로 리듬감을 살리고 있지만, '언덕들'의 조사 '들'이 '산문적'이고(이에 따르자면 '넓적다리'도 '넓적다리들'이 돼야 한다), '넓적다리'는 육감적인 시어이지만 리듬상 다소 튄다. "여자의 몸, 하얀 구릉, 하얀 허벅지"라고 옮긴 추원훈의 번역에서는 '블랑꼬스'라는 형용사를 '하얀'이라고 반복해줌으로써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지만, '구릉'과 '허벅지' 간의 리듬상의 연관성이 좀 약하다.

 

"여자의 육체, 하얀 언덕, 하얀 허벅지"라고 한 김남주의 번역이 이 1행에 한정하자면 리듬을 가장 잘 살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얀'의 반복 외에도 '언덕' '허벅'에 쓰인 유사운들이 리듬을 만들어내기 대문이다. 때문에 '여자의 육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여기서 '블랑꼬스'의 역어로 '하얀'과 '흰'은 선택적이라고 보지만, 나는 좀더 무표적인(unmarked) '흰'을 골랐다.     

 

 

이제 2연. 2연은 이미 지적한 대로 플래시백의 과거시제이다. '너'를 만나기 전의 '나'의 모습에 대한 되새김인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홀로였다/고독했다"라는 것. 나는 '터널처럼'이란 비유가 스페인어 시에서 어느 정도 상투적/독창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의미상으론 '텅 비어있었다' 정도의 뜻을 전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새들이 나한테서 날아갔다"는 표현에 이어지는 것은 '밤의 엄습'이다. 논리적으론 '밤의 엄습'을 피해서 새들이 날아간 것이 되는데, '밤'은 혼자라는 외로움이 극대화되는 시간으로 짐작에 혼자서 밤을 보내야 하는 괴로움이 "막강한 힘으로 나를 엄습하는 밤"이란 이미지를 낳은 게 아닌가 한다. 이러한 엄습을 맞이하여 '내'가 필사적으로 하던 일은 '너'를 무기처럼 벼리는 것이었다. 이때 2인칭 대명사 '너'는 다른 연들의 '너'와는 지시대상이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1, 3, 4연에서의 '너'는 현재에 비로소 실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과거에 '너'를 벼렸다는 건 '너'가 비유가 아니라면 논리상 모순된다).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이란 이어지는 비유에 적합하게 읽으려고 한다면, '너'를 '나'의 '남성(男性)'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현종의 번역을 근간으로 해서 2연을 정리해본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다.

그리고 밤은 그 막강한 군단으로 나를 엄습했으니.

나는 살아남기 위해 너를 무기처럼 벼렸다.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요는 내가 벼르고 별렀다는 얘기. 그리고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왔다"!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3연의 내용은 관능적인 성애의 묘사와 영탄적인 환희의 표현이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한다(te amo)'란 표현은 여기서 비유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며 현재진행형인 사랑과 애무를 뜻한다. 국역본에서 2행의 번역이 "피부의 육체, 이끼의 단호한 육체와 갈증나는 밀크!"(정현종) "가죽의, 이끼의 갈증나고 단단한 젖의 몸."(추원훈) "피부와 이끼와 우유로 만들어진 갈증과 욕망의 육체여"(김남주)로 각기 다른데, (1)피부 (2) 이끼 (3)갈증나고 단단한 젖이 모두 '육체'에 걸리는 걸로 보인다(정현종의 번역에서는 '갈증나는 밀크'를 따로 취급했다. 밀크?).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대상이 '한 여자의 육체'인 걸 고려하면, '피부' '이끼'(이건 '대지'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단단한 젖'이 무얼 지시하는지 아는 건 어렵지 않다. 그건 이어서 영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슴과 눈동자, 둔덕과 목소리에 대한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3연을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나는 2행을 좀 의역했다). 이 3연에서는 김남주 시인의 번역을 가장 많이 참조했다(정현종 시인의 '에로티시즘'은 그의 시구를 빌면 '헐벗은 가지의 에로티시즘'이다. 그는 도취적이지만 한편으로 경건하다. 비록 네루다의 시를 열애한다고 해도 그는 '육체파' 시인은 아닌 것이다).     

 

허나 인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 육체의 피부, 이끼, 그리고 갈증이 난 단단한 젖. 

오 젖가슴의 두 사발이여! 오 넋나간 눈동자여!

오 불두덩의 장미여! 오 느리고 슬픈 너의 목소리여!

 

이제 마무리인 4연이다. 이제 1연의 '한 여자의 육체'는 '내 여자의 육체'가 되었다(김남주 번역에서는 이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1-3연까지 서술된 것은 그러한 의미전이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번역번들로는 가장 의미파악이 어려운 게 이 4연이다. 당장 1행만 하더라도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통해 살아가리."(정현종), "내 여인의 몸이여, 나는 네가 상냥하길 고집하리라."(추원훈), "나는 너의 매력에 사로잡히리라, 오 여자의 육체여"(김남주)라는 세 번역은 제각각이어서 의미를 종잡을 수가 없게 돼 있다. 

 

네루다의 이 사랑의 시편들에 대한 저명한 연구자, 레네 데 코스타의 해설은 추원훈 번역본에 발췌되어 실려 있다('The Poetry of Pablo Neruda', 하바드대출판부, 1979, 제1장). (번역돼 있지는 않지만) 꼬스따의 책 서론에 따르면, 이 연작 시집은 당초 1923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열정적인' 내용이 포함된 탓에 출판사측으로부터 출간을 거부당했다고 한다. 청년 네루다는 여러 문인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페드로 프라도란 중견 시인이 '보증'을 서 준 덕분에 1924년 출간될 수 있었다고. 어쨌든 이 밀리언셀러 시집의 대성공으로 '시인'으로 인정받은 네루다는 23세 때, 젊은 시인들에게 외교관의 자격을 부여하던 남미식 전통에 따라 극동 주재 영사로 임명 받는다. 해서 이후 5년 동안 그는 미얀마, 타이, 중국, 일본, 인도 등지에서 살았다고(하지만, 아주 외롭고 고립되었던 시기였다고).

 

맨마지막 시행과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내가 읽은 한 국내 논문에서는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정서는 우울(멜랑콜리아)이라고 한다. 네루다 자신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시집은 "가장 고통스러웠던 청춘기의 열정과 칠레 남부의 황폐한 자연이 혼합된 목가적 시들이 망라된 '고통의 책'"이었다고도 하고. 그 고통, 우울은 어쩌면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갖게 되는 필연적인 정서가 아닌가 싶다(곽지균 감독의 영화 <그 후로도 오랫동안>(1989)의 대사. 강수연: "육체는 슬퍼요." 김영철: "슬픈 건 섹스지").

 

 

"육체는 슬퍼라, 나는 모든 책을 읽었노라"라고 말라르메는 노래했지만, 책으로도 모자라고 정사(情事)로도 모자란 우리의 '무량의 슬픔'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인지? 네루다의 나머지 시편들에서는 알아볼 수 있을까?.. 

 

06. 01. 02 - 04.

 

 

 

 

 

 

 

 

P.S. 네루다 평전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 알게 된 것인데, 네루다를 처음으로 만나본 한국 작가는 상허 이태준이며(1951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문학좌담회), 본격적인 번역소개는 1969년 김수영의 번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물론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직후 네루다가 활발하게 소개되었을 것임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톤을 이어받은 사람은 김남주 시인으로 그의 네루다 번역은 정현종 시인보다 한 해 빠르다. 나는 1995년판 <은박지에 새긴 사랑>에서 인용하였지만, 이미 1988년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가 출간되었던 것. 하이네와 브레히트, 네루다 등의 시 번역서인데, 푸른숲에서 다시 나온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95)와는 편제가 다르다. 해서, 본문에서의 시 인용은 김남주-정현종-추원훈 순이어야 했다. '사랑의 시'만을 놓고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참고로, 네루다 시에서의 '사랑'의 테마를 분석하고 있는 한 논문에서의 번역을 여기에 옮겨둔다. 원어 번역의 또 다른 사례가 될 것이기에 비교해봄 직해서이다. 1, 3, 4연만의 번역이긴 하지만.

 

여자의 몸, 하얀 언덕, 흰 허벅지,

그대는 몸을 맡기는 행위에서 대지를 닮았구나.

거치른 농부, 내 육신이 그대를 파헤치면,

땅의 밑바닥으로부터 아들이 뛰쳐나오니까.

(...)

그러나 복수의 시간이 덮치지만,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이끼의 피부에다 탐욕스런 탄탄한 가슴을 가진 몸.

아아, 우유의 잔들이여! 아아, 딴전부리는 눈들이여!

아아, 내밀한 곳의 장미여! 아아, 느리되 구슬픈 그대의 음성!


내 여인의 몸이여, 그대의 매력을 지탱하리.

나의 갈증, 끝없는 나의 갈망, 내 정처없는 길이여!

영원한 목마름이 이어지고 피곤이 계속되고,

또 무한의 고통이 여울져가는 어두운 강바닥이여!

 

일단 스페인어 'gracia'에 해당하는 영어 'grace'를 정현종, 김남주 두 시인은 '경이로움'과 '매력'으로 각각 옮겼고(흔히는 '우아함'이나 '세련미'를 지칭하는 단어), 추원훈은 '상냥함'으로 옮겼다. 그리고 스페인어 동사 'persistirá', 혹은 영어의 'persist (in)'를 두 시인은 '살아가리', '사로잡히리라'라고 옮긴 데 반해서 추원훈은 '고집하리라'로 옮겼다. '보기 나름'이 아니라면 어느 한 편은 오역인 셈이 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내 여자의 육체'와 등가어로 제시되고 있는 2행의 내용이다. 이 2행의 경우는 세 번역본이 대동소이한데, 대략 "나의 갈증, 나의 끝없는 욕망, 나의 정처없는 길이여!"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너의 상냥함'은 이러한 2행과 조화를 이루기에는 너무 미약하다. 반대로 가장 시적인 표현은 정현종의 '경이로움'이며, 나는 이에 따르도록 하겠다. 3행에서 '검은 하상(河床)'이 받는 것은 문맥상 앞에 나온 '나의 길'이겠다. 그러니까 '나의 길'이란 이러이러한 하상이다, 라는 게 3-4행의 내용. 이 '검은 강바닥'에 흐르는 건 영원한 갈증과 피로, 그리고 무한한 고통(슬픔)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본다.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경이로움을 살아가리라.

나의 갈증, 끝없는 나의 욕망, 나의 정처없는 길이여!

검은 강바닥을 따라 영원한 갈증이 흘러내리고,

피로와 무량(無量)의 슬픔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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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from 오선지위의 딱정벌레 2008-10-28 12:55 
    그린비의 네루다에 관한 세상의 모든 까칠이들에게 추천합니다! - 파블로 네루다를 보고 다시금 그의 시집을 꺼내 보았다. 단지 네루다를 꺼낸것이 아니라 고 김남주 시인을 보았다. 88년 김남주 시인의 번역으로 에서 네루다를 처음 알게되었다.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 3인의 번역시집이다. 김시인이 투옥 중에 번역한 것으로 많은 곳에 나와있다. 하지만 투옥되기 전에 번역한 것으로 나와 있다. 시기로 보면 78, 79년 즈음..
 
 
이리스 2006-01-3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루다를 처음 만난분이 이태준 선생이었는지 몰랐습니다. 세가지 버전의 번역, 잘 보았습니다. ^^; 추천 누르고 갑니다.

로쟈 2006-01-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좀 길죠?^^

소타기 2006-02-18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한번더~~로쟈님지금처럼좋은글많이올려주세요~~
몰래몰래읽고가는거..죄송해서요~

섬나무 2007-10-2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고에 묵은 물건들 뒤지는 중입니다. 썩지 않아서 참으로 고마운 것들이군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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